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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돌아오는 길] (7) (78/112)

에필로그. [돌아오는 길] (7)

이제부터 야한 걸 하러 간다고 니냐롯트에게 선언한 꼴이 되었지만 반박도 못 할 만큼 꼬르륵 소리가 우렁찼다. 분명히 류제 뜻대로 하지 않겠다고 엄청나게 먹어댔는데 전혀 흡수가 안 된 느낌이다.

빨랫줄에 접힌 이불처럼 류제의 어깨에 대롱대롱 늘어진 재경이 현기증이 난 어린애처럼 징징거렸다.

“배가 너무 고파. 고파서 죽을 거 같아. 죽을 것 같다고! 나 죽을 거라고!”

“안 죽으니까 조금만 참아.”

발장구를 치며 죽는다는 소리를 쉽게 하는 재경의 엉덩이 한 짝을 쥔 류제가 차분하게 달랬다. 공복 때문에 기력이 없어 높은 곳도 보이질 않는 건지 비명도 지르다 만다.

배고픈 재경을 위해 왕궁에서 빠져나온 류제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아가타의 고층 건물들 사이를 건너 제립학교 담을 뛰어넘었다.

가볍게 발돋움해 A동 5층 재경의 기숙사 방 베란다 문을 연 그가 대충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도 봤던 전경이지만 고양이의 스크래치가 남은 이 방은 항상 정겨웠다.

잠깐 사이 비쩍 마른 것 같은 재경을 침대에 눕힌 류제가 후우 결심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단둘뿐이다. 방해꾼이 없는 건 모든 것을 되찾은 후로 처음이다.

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을까 의심될 정도로 재경은 굶어 죽은 귀신처럼 손을 허우적거렸다.

“으어어, 뱃가죽이 등에 붙겠다.”

“보채지 마.”

류제가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았다. 죽은 생선처럼 철퍼덕 누워있던 재경은 꾸역꾸역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아픈 배를 짓누르던 그는 장신구를 푸는 류제를 쏘아보았다. 음식을 먹어도 배가 안 차는 건 그의 몸이 진짜 마족이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이런 짓이라니. 저지른 짓이 너무 많아서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다 문제지만 머리도 좋으면서 딱 들으면 몰라? 마족으로 만든 거 말야! 그것도 이…이런 이상한 몸으로! 유네가 다 말해줬어. 야한 거라며?”

어차피 지금은 듣는 사람도 없으니 재경이 부끄러움을 감내하고 이판사판 달려들었다.

인간의 편으로 돌아선 트루 엔딩의 마왕은 모든 마족들을 놓아주고 절대 마족을 만들지 않기로 협약을 맺는다. 이 엔딩이라면 스토리상 당연히 류제는 누구도 마족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데 뭐? 날 마족으로 만든 데다 류제의 체액을 먹어? 그런 쪽팔린 짓까지 해야 한단 말야?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선 방법이 없었어. 그래도 육체에서 용인의 피를 전부 일깨운 건 아니야. 비율은 절반도 안 되니 인간 음식을 먹는 덴 지장 없어. 다만 용인의 식사를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점점 힘들어질 거야. 지금처럼.”

류제의 말은 재경이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다. 수상쩍은 눈빛이 점점 수위가 올라갔다. 이대로라면 오늘은 몸에 손을 대도록 허락을 내려주지 않을 것이다. 머뭇거리던 류제는 추욱 어깨를 늘어뜨리며 사실을 털어놓았다.

“…물론 사심이 있긴 해. 네가 살고 싶다고 했잖아. 살아서 나와의 미래를 제대로 생각해 보고 싶다며. 나도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진짜 그게 다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네가 또……!”

실은 법정에서 있었던 귀족파와의 언쟁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재경이 차마 류제가 겪게 될 곤란함을 뱉지 못하고 뻐끔거렸다. 재경 그 때문에 마왕이 했던 실수를 반복할까 봐 무서웠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난 곤란하지 않아. 그보다, 렌.”

나는 그에게 걱정만 안겨주나 보군. 그게 싫지는 않았던 류제는 앞에 있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협약을 깬 건 니냐롯트와 무언의 약속이 오갔으니 큰 제재는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마족을 만드는 건 렌으로 마지막이다. 그의 곁에 남아줄 사람은 렌만으로 충분했다.

“너는 이곳에 와서 행복했어?”

류제가 반대로 질문했다. ‘이곳에 왔다’라고 묻는 것 자체가 재경이 필사적으로 숨겼던 사실을 알았다는 뜻이겠지. 언젠가 류제가 그의 목을 조르며 원망하던 모습이 생각난 재경은 고개를 숙여 팔을 감쌌다.

“네가 우리와 만나 이루어낸 것들을 평화를 위한답시고 포기시키기 싫었어. 전부 우리를 위해서였잖아. 그 결과로 이룬 것들에 네 행복도 있었으면 했지.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그들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게 분수에 안 맞게 거창했다. 인류를 위한 희생이니 뭐니 하지만 그게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물론 그 행복을 위해 목숨을 바쳐버린 건 어불성설이었어도 어쨌든 인류가 행복해야 그도 행복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진실을 아는 류제는 조금씩 다가갔다. 류제는 두려워하는 재경의 손을 떼어내 가볍게 붙잡았다. 짙은 뭉게구름이 태양을 가려 그림자를 만들었다. 얼굴을 맞댄 류제가 도망가지 말라며 똑똑히 쳐다보았다.

“아직도… 내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해?”

“…….”

“여전히 이 세계에 네가 없었으면 해?”

그렇게 물어보는 류제는 슬퍼 보였다. 푸른 눈동자를 엿본 재경은 잘못한 사람처럼 마음 아팠다. 그렇다고 대답했다가는 그가 또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살아서 내 마음에 답해주는 건 바라지 않았어?”

제발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며 류제가 소중하게 껴안았다. 언제 이렇게 커다래진 걸까. 품에 안긴 재경은 모른 척할 수 없는 진심에 어찌할 바 몰랐다. 그를 물기 전 류제가 울부짖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부끄러워진 재경은 얼굴을 감추었다. 류제의 어깨에 이마를 맞댄 재경은 고개를 저었다. 붉어진 귓불이 대답을 대신했다. 지푸라기 같은 머리칼이 류제의 손가락 사이사이 얽혔다.

기억을 잃었던 그는 류제의 다정함을 독점하기를 좋아했다. 그 다정함은 분명 자신에게만 향하는 상냥함이었다.

류제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다니. 이 어색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었던 재경이 번뜩 고개를 들어 류제를 밀쳤다. 그 전에 확실하게 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었다.

“아니, 잠깐만. 그…그… 날 좋…좋아한다는 게 무슨 뜻인데?”

엔딩을 보면 세계가 고정되어 스토리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고 로라 하놋이 그랬다. 엔딩은 류제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냐에 달려있었다. 그런데 웬걸, 류제가 날 좋아한단다. 기억을 되찾기 전에는 둘이서 이것저것 했던 것 같긴 한데 솔직히 실감이 안 났다.

“말 그대로지. 널 좋아해.”

“다…다양한 의미가 있잖아. 좋아한다는 게… 그… 친구로서의 의미도 있고.”

“널 성적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그런 의미를 포함해 사랑한다는 말이야.”

혹시 또 혼자 삽질할까 봐 류제가 직구로 꽂아 넣었다. 재경이 가지던 ‘좋아한다’ 중에서 가장 뜻이 깊었다. 이대로라면 진짜 도망갈 곳 없는 정면충돌만 남았다. 도망칠 구석이 있어야 마음이 편했던 재경이 어영부영 말을 덧붙였다.

“아니, 근데 그 전에 뭔가 더 설명해야 할 것들이 잔뜩 있잖아. 난 남자인 데다 삼류 악당 포지션인 데다 넌 그…그러니까…….”

“신부 후보가 다섯 명이나 있는 미연시 주인공이고?”

뜨끔한 재경이 얼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해진 미래에서 어긋나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경험해 왔기에 벌써부터 겁에 질렸다. 물론 그 모든 고생 끝에 얻어낸 류제의 마음이지만 하도 두들겨 맞았더니 거리낌이 있었다.

“싫어? 절대로 안 내켜? 이제 네가 걱정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아… 그…….”

어떤 사탕발림보다 재경은 뭐니 뭐니 해도 류제의 맨얼굴에 제일 약했다. 이상이라 할 수 있는 저 얼굴이 다짜고짜 애틋하게 밀어붙이면 잘 돌아가던 머리도 마비되어서 답이 안 나왔다. 게다가 류제의 부탁은 항상 거절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내…내키지 않지 않는 건 아니지 않지만…….”

해피 엔딩을 위해서 다른 이들과 이어주어야만 하는 강제성이 없으니 지금부터는 모두 재경의 결심에 달려있었다. 귀가 새빨개진 재경은 심장이 쿵쿵거리는 이유가 깜짝 놀라서 그런 건가 싶었다. 류제가 그의 여자 친구 사귀기 대 프로젝트 후보에 없던 인물이라서 그런가?

“그게…….”

그 류제가, 히로인 중 한 명만이 가질 예정이던 류제가 자신을 그런 의미로 좋아한다니 역시 이상했다. 그럼 루트가 뭐야. 왕녀 트루 엔딩 루트도 아니고, 노말 히로인들 루트도 아니고, 삼류 악당 렌 지미 루트? 그런 괴상한 루트는 듣도 보도 못했다.

왕녀와 결혼하고 하하 호호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류제가 자신을 선택해서 얻는 게 뭘까. 재경이 힐끗 류제를 올려다보았다. 시원하게 잘린 앞머리 아래로 보이는 신비로운 얼굴이 그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럼 괜찮다는 거야?”

“잘… 모르…모…모르겠어.”

사귄다고? 나랑 류제가? 나는 류제를 좋아하는 건가? 물론 류제가 제일 친한 친구이고, 비밀을 알아버린 유일한 존재이며, 그럼에도 원망 없이 그를 원한다는 건 좋았다. 예전처럼 함께 있을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은 끝이 어디 있으랴.

근데 역시 같은 남자끼리 사귀는 건 딴 나라 이야기고 사…사귄다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옛날부터 여자 친구를 원했지만 잘할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류제가 당당하게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도 애매한데.

말하자면 첫사랑을 자각하지도 못한 재경은 사귄다는 의미를 절대 가볍게 여길 수 없을 정도로 류제의 고백에 한없이 진지하게 접근했다는 소리다. 그의 머릿속에서 졸업, 취직, 결혼, 2세 계획(남자끼리인데?), 노후 계획(마족에게 노후가 있나?)까지 훑고 지나갔다.

“정신 차려!”

배가 고픈데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빙글빙글 눈이 돌아갔다. 과열된 뇌의 전원이 꺼지기 전에 류제가 재경을 흔들어 깨웠다. 진지하게 생각해 주는 건 기쁘지만 당장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류제도 바라지 않을 만큼 과했다.

“대답은 나중에 하고 일단 그 몸을 유지할 수 있게 하자.”

아까부터 재경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깃털처럼 힘도 없어서 이러다간 기껏 마족으로 만들어놓은 육체에 부담이 갈 것이다. 떨리는 숨을 들이켜는 건 류제 쪽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래서 내가 네 뭘 섭취한다는 거야? 침을 마셔?”

왜냐하면 류제는 재경이 분명히 이런 맥 잘못 짚은 이야기를 할 것임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과할 정도로 꽉 막힌 성교육 때문에 소꿉놀이 같은 소망을 가진 재경에게는 있을 법했다.

같은 방에서 살면서 느낀 건데 재경은 이따금 몽정한 팬티를 실례한 어린애처럼 부끄러워하며 몰래 빠는 일은 있어도 자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류제도 새삼 부끄러워졌다.

“뭐야, 대답해 봐. 야한 거라도 여긴 우리 둘밖에 없잖아.”

나쁜 짓을 저지를 사람처럼 몰래 속살거리는데 갈 길이 참 멀다.

재경은 법정에서 유네가 ‘야한 거’라고 말해줬지만 솔직히 뭔지는 잘 몰랐다. 그냥 상황상 류제가 이상한 짓거리를 했다고만 생각해서 열이 올랐는데 그 ‘야한 거’라는 의미는 타액의 교환인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 놀라지 말고 들어.”

재경의 곁에 앉은 류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설명했다. 너무 적나라하게 말하면 무서워서 도망칠지도 모르니 남자가 번식을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체액은 용인의 육체인 류제도 물론 가졌고 그것에는 마족이 충분히 섭취 가능한 생명력이 있다는 그럴싸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인간이나 붙잡아 섭취하게 하는 건 재경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인간들도 싫어할 테니 그 대상을 자신으로 한정해 버린 류제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재경의 마음이 거절하지 않아서였다고 정당방위로 포장했다.

“그러니까… 그걸… 어… 내가… 어…….”

“먹어야지. 내 그걸. 음마의 방식으로.”

“마…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여자라면 모를까 어디로 넣는데?”

“어디긴. 하반신에 구멍이 몇 개나 된다고.”

재경은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나 살살 파다가 새파랗게 질렸다. 질겁한 재경이 엉덩이를 가렸다. 사적인 욕심과 재경의 몸을 위해서 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한 류제는 재경의 엉덩이에 그걸 쑤셔 박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 그 방법이 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강 순수 재경은 달랐다.

“불가능해!”

“방법이 없잖아. 어떻게 섭취하게.”

“방법 있어!”

“뭔데?”

“시…식사 같은 거지? 어쨌든 먹으면 되니까 입으로 하면 되는 거 아냐? 네가 그… 알아서 내보내고.”

상상을 초월하는 변태 같은 플레이에 류제는 사레가 걸렸다. 내가 알아서 자위를 하고 재경의 입에 배출하는 건 생각도 못 했다. 그야 그건 류제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종의 고난이도 플레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 입? 그게 저 아무것도 모르는 요망한 입에서 나온 말인가!

“잘 들어, 렌. 난 소중한 첫 경험부터 허들을 높이고 싶지 않아.”

“엑, 입이 허들이 높은 거야?”

‘적어도 아래보다는 덜 높은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재경에게는 순수함이 담겨있어 류제는 잠시 뻐끔뻐끔 꺼내야 할 말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너, 할 수 있어? 내 그걸… 입에 넣을 수 있냐고. 거기서부터 문제잖아.”

“모…몰라! 네가 그냥… 그… 하면 되잖아. 어…어떻게든 해서 내보내면 내가 알아서… 그… 먹… 서…섭취… 그래, 섭취하면…….”

새하얀 액체가 재경의 얼굴에 흩뿌려지고 그걸 재경이 받아먹으려 혀를 내미는 요망한 그 장면을 상상해 버린 류제가 재경의 어깨를 붙들며 자제를 요청했다.

“너 진짜 잘 부추기는구나.”

“에엑… 그…그게 뭐야. 부추겨? 내가?”

“난 분명히 널 좋아한다고 말했거든? 나도 좋아하는 사람하고 첫 섹스는 제대로 하고 싶어. 그런 플레이로 낭비하기 싫어.”

“뭐? 이건 그냥 식사…….”

전자레인지가 다 돌아가 땡! 하고 생각이 멈추었다. 그의 최대 야한 짓은 손잡고 뽀뽀하기. 합방은 결혼하면 어떻게든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생각해 보니 류제가 그를 좋아한다면 지금이 그 합방의 때가 아닌가. 그러니까, 어…….

“어… 그…….”

재경이 얼굴까지 새빨개졌다. 귓불은 물론 잘 익은 홍당무처럼 달아올라서 건들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건… 아… 그… 어… 에… 이건… 그… 결혼을… 그… 한 후에…….”

“그럼 고민할 것도 없이 나랑 결혼하면 되겠네. 자, 자, 긴장하지 마.”

“사귀겠다고 말 안 했다고! 대답은 나중에 하라며 이 사기꾼아! 남자끼리 결혼하는 것도 문제 아냐?”

“뭐가 문제야. 왕녀한테 부탁하면 되지. 거참, 우리 재경이 말 많아. 배고파서 힘도 없는 주제에.”

의미 없는 발버둥을 무시한 류제가 재경을 침대 위에 넘어뜨렸다.

몸에 올라타 웃옷을 벗는 류제는 야하기 짝이 없었다. 두꺼운 근육으로 덮인 맨몸이 드러났다. 류제의 맨몸이라면 신물이 날 정도로 봤는데. 느껴본 적 없는 야한 분위기에 재경은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너…넣는다고? 들어가? 가능한 거 확실해? 역시 이런 건 사귀고 나서 해야 하는 거 아냐? 벌 받는다고! 큰일 나!”

“지금은 예외 상황이라서 괜찮아. 몸은 내 거라도 마음은 뭘 선택하든 네 자유니까.”

“마음을 허락해야 몸도 허락하지. 그런 파렴치한…….”

“일단 해봐. 몸이 움직이면 나중에 머리도 알아서 따라올 때도 있으니 해보지 않으면 평생 몰라. 안 그래? 사나이 중의 사나이잖아.”

재경이 딱 그런 타입이었기 때문에 그런 억지로도 납득했다. 류제가 재경의 옷도 차근차근 벗겼다. 이제는 피부가 깨끗하니 적당히 근육이 붙은 맨몸이 드러났다.

핏줄이 툭 불거진 커다란 손이 다 나은 피부에 밀착했다. 손바닥이 재경의 몸보다 뜨거웠다. 여유로워 보이지만 재경의 피부에 닿는 류제의 손도 떨려왔다. 덩달아 재경도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걱정은 다 날아갈 만큼 기분 좋게 해줄게.”

허리를 숙인 류제가 숨이 멎을 것 같이 누워있는 재경의 입술 위에 가볍게 키스했다. 맨정신에 뽀뽀라니. 허들이 높아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가운데 새 마족의 육체는 꼴에 분위기를 타고 달아올랐다. 배가 고프다. 재경은 그보다 더한 걸 원했다.

입을 벌려 혀를 입 속에 밀어 넣은 류제는 재경이 놀라 밀쳐내기 전에 베개를 쓸어 뒤통수를 제 쪽으로 당겼다. 밀착된 재경은 키스 지옥에 빠졌다. 입 안을 헤집는 혀가 어딘가를 스치면 찌릿하고 심장 언저리가 아파왔다.

자연스레 재경의 바지의 버클을 끌러 지퍼를 내린 류제는 그가 재경의 정신에 침입했을 때 만들었던 음문을 몰래 해제시켰다. 솔직히 이것까지 알았으면 자신을 노예로 만들었다고 길길이 날뛰었을 게 뻔하니 모르는 게 약이다.

뭐든, 난 이걸 렌의 기억에 있는 용도로 오남용하지는 않았잖아? 딱 렌의 기억만 봤고. 렌은 육노예의 의미를 받아들여도 한참은 잘못 받아들인 것 같지만. 자존심이 있지 난 그런 치사한 방법으로 손에 넣긴 싫어.

“으으, 류제… 간지러워.”

미개발된 몸은 성감대도 한정적이라 류제가 할 수 있는 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실크를 펴듯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피부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배고픈 서큐버스의 몸은 타액에 금방 발정하여 강력히 요구했다. 진한 키스가 끝나고 야하게 혀를 내민 재경이 입맛을 다셨다. 숨이 차서 헉헉거리는 흉부가 야하다.

“제대로 풀어줄 테니 긴장하지 마.”

“어디를… 우앗! 뭐 하는 거야?”

일일이 설명하자니 또 이야기가 늘어질 게 뻔했다. 재경의 허리를 받쳐 편하게 든 류제는 그의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귀여운 구멍을 혀로 진득하게 맛보았다. 그런 더러운 곳을 핥다니 정신이 나간 건가 싶었던 재경이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으, 아, 더러워! 더럽다고!”

“안 더러워. 오히려 맛있다고 생각해.”

“뭐라는 거야, 이 변태가!”

질겁하는 재경을 보자니 평범하게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하다 결혼한다면 첫날밤을 어떻게 보낼 예정이었는지 기가 안 찼다. 변태라는 말이 썩 듣기 좋았던 류제는 심술을 부리듯 집요하게 혀를 굴렸다.

망할 마족의 몸은 인풋과 아웃풋의 용도도 모르는지 들어가면 안 되는 곳에 혀를 넣어도 문제없이 받아들였다. 민감한 부분이 벌어지니 얼굴에 피가 몰린 재경은 숨을 쉬는 방법도 잊어버릴 것 같았다.

긴장과 떨림으로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보기 싫어도 꼿꼿이 선 자신의 물건에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지만 류제는 절대 엉덩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기분 좋아?”

“좋을 리가 없잖아! 으히익!”

안 좋다는 말에 쓸데없이 열이 오른 류제가 좋다는 말이 순순히 나올 때까지 괴롭히겠다는 듯 집요하게 핥아댔다. 알았으니 제발 그만하라며 재경이 손짓했지만 류제는 얼굴을 밀어내는 재경을 무시하고 쿠퍼액이 줄줄 흐르는 그의 것을 손으로 쥐었다. 거기까지 만질 줄 몰랐던 재경이 거의 울다시피 했다.

“왜…왜 이런 짓까지 하는 거야?”

“너도 기분 좋아지길 바라니까 그러지.”

“나까지 꼭 기분 좋아질 필요가 있어?”

타인의 손에 찾아지는 쾌감이 무서워서 그런 거겠지만 제법 서운한 소리를 한다. 잠시 핥는 것을 멈춘 류제는 되다 만 2차 성징으로 머리카락보다 얇실하게 난 재경의 음부 털을 만지작거렸다.

“네가 기분 좋으면 나도 불끈거려. 그리고 나만 기분 좋으면 그게 섹스야?”

“아…알겠으니까 세…섹… 그런 말 하지 마!”

“뭐야, 섹스를 섹스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너한테는 식사지만 나한텐 섹스야.”

몸은 어른이라도 아직 어른이 될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재경은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 말을 말지, 내가. 매번 배고플 때마다 이런 부끄러운 짓을 해야 한다니 세상이 망했다. 음란한 말을 입에 담는 류제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아으, 아…….”

어느새 그의 구멍을 쑤시고 있는 건 혀에서 기다란 손가락으로 바뀌었다. 쑤셨다가 뺄 때마다 단단한 뼈마디가 느껴졌다. 류제의 손가락이 이런 데에 들어갈 거라고 누가 알았겠나. 펜을 쥐던 그 손가락이 음탕했다.

재경이 그의 것을 입으로 핥는 건 허들이 높다고 생각하는 류제였지만 류제는 재경의 것을 문제없이 입에 넣었다. 씁쓸한 쿠퍼액과 류제의 침이 섞여 미끌미끌한 페니스는 약한 부분을 건들면 솔직하게 움찔거렸다. 행동 하나하나에 놀라 몸을 떨며 기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 그도 불끈불끈해졌다.

“기분 좋지?”

“시끄러워어……. 일일이 물어보지 마.”

솔직하게 답하기도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터질 것 같던 재경이 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렸다. 찌걱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귀를 괴롭혔다. 이 생중계를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구멍을 쑤시는 손가락이 두 개로 늘었다. 뭔가를 찾고 있는 건지 이리저리 벌리면서 헤집는데 내장이 짓눌리는데도 역겨운 기분 없이 그 이상을 기대한다.

“윽… 아, 잠깐, 거기는……!”

“찾았다.”

짝사랑의 한계로 망상으로만 즐겼던 손가락 감촉이 지금 덮어졌다. 발가락을 꽉 조인 재경이 울먹거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윽, 거…거긴 누르지 마.”

“왜, 기분이 이상해져?”

몸은 달아올랐고 공들여 길들인 구멍도 충분히 젖고 넓어졌다. 허리를 편 류제가 재경의 엉덩이를 낮게 내렸다. 이제 끝난 건가 안도한 재경이 참았던 숨을 내쉬며 얼굴을 드러냈다. 힐끗 보자니 류제도 땀을 잔뜩 흘려댔다. 젖어 이마에 붙은 검은색 머리카락이 야하다.

“들어갈게, 렌.”

류제가 재경의 허벅지를 넓게 벌렸다. 류제조차 긴장되는 순간. 드디어 하나가 되려는 찰나 열심히 풀어둔 구멍으로 들어갈 거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묵직한 뚜껑이 수욱 빨려들자 지레 겁먹은 재경이 발버둥을 쳤다. 단번에 허벅지가 좁혀져서 넣는 건 실패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절대 안 돼. 무리야!”

“또 왜애!”

이게 몇 번째일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납득을 한단 말인가. 이러지 않으면 에너지를 얻을 수가 없다고. 사귀는 거라든가 서로 좋아하는 건 차치하고도 식사의 의미로도 안 되는 건가! 류제가 절망하려던 때 재경은 보다 더 근본적인 두려움을 표했다.

“그…그… 역시 안 들어가. 절대 안 들어가. 너무 커…….”

재경이 류제의 흉기를 힐끗거렸다. 옛날 목욕탕에서 봤을 때는 커도 큰갑다 하며 그냥저냥 부러워했는데 저게 거기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심장도 항문도 여러모로 터질 게 분명했다.

“하아, 귀여운 말만 하기는.”

진짜 생각도 없이 꼴리는 말만 한다. 애무하면서 재경이 질겁할 만한 온갖 상상의 나래로 성욕을 증진시켰던 그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런 꼴로 사람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너무 커서 안 들어갈 것 같아 무섭다니 당장 얼마나 큰지 확인시켜 주고 싶네.

“해보지도 않고 겁먹은 거잖아. 걱정 마. 안 아파. 마족의 몸이 그렇게 간단하게 아파질 거 같아?”

“하…하지만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그런 게 들어가면 진짜…….”

“걱정 마. 제대로 기분 좋을 거야. 사나이답게 참을 수 있지?”

재경에게도 기분 좋은 스위치는 존재했으니까. 반박을 듣기 전에 닫힌 허벅지를 다시 벌린 류제가 자신의 것을 구멍에 맞추어 꾹 밀어 넣었다.

도망갈 시간을 끌려던 재경은 내장이 압박당하는 느낌에 놀라 몸짓을 멈추었다. 긴장하는 구멍을 풀어주기 위해 류제가 재경의 귀에 바람을 후 불며 혀로 핥았다.

“이히이익!”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긴장이 풀어진 틈에 쭈욱 들어오는 기둥은 끝도 없이 안을 괴롭혔다. 아프진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라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아…아으…으… 천천히… 류…류제에…….”

부들부들 떨리는 허벅지를 끌어당기며 더 깊은 곳까지 넣은 류제는 귀두가 결장을 꾹 누르는 감각에 몸을 움찔댔다. 전부 들어갔다. 여태껏 꿈에 그리던 순간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성을 놓고 마음대로 처박았다가는 재경은 분명 겁에 질려 다시는 안 하려 들지도 몰랐다. 입에서 신음밖에 못 나오도록 짓누르기보단 무서워하지 않게 달래주는 게 첫 관계의 과제였다.

“착하다. 다 넣었어. 하나도 안 아프지?”

상냥한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말해도 내벽으로 감싸지는 감촉 때문에 류제도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흥분을 참느라 더웠던 그가 버릇처럼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뒤로 넘어갔다가 자연스레 흘러내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멋진 모습에 재경이 버럭 외쳤다.

“그럼 빨리 싸!”

“아니, 말을 무슨…….”

이 와중에 누가 신재경 아니랄까 로망이 깨지는 소리나 해댄다. 류제는 순간 결심을 후회할 뻔했다. 아무리 식사의 의미라지만 자신이 무슨 정액 배출기란 말인가. 넣으면 넣은 대로 싸게.

솔직히 감개무량해서 지금 당장도 위험하지만 소중한 첫 경험을 그냥 보낼 순 없었다. 오늘은 절대 두 번까진 용납 안 할 테니 처음이 중요하다. 렌도 이번을 잣대로 관념이 굳어질 테니 반드시 기분 좋게 해줄 거야. 너무 좋아서 애원하도록 해줘야지.

“움직일게. 숨 쉬어.”

“우…움직인다고? 안 돼, 안 된다고!”

또 안 된단다. 뭐만 하면 안 된단다. 아주 안 된다는 말이 입에 박혔지. 그래도 움직이려는 류제 탓에 느낌이 이상했던 재경은 원흉의 얼굴에 발길질을 먼저 했다.

몸부림을 따라 내벽도 움직여서 류제는 미칠 것 같았다. 소중한 사람의 몸에 들어간 거시기는 쾌감을 요구하는데 렌은 요망하게 발길질이나 하고 움직임은 부족해서 죽을 것 같았다. 실은 애원하고 싶은 건 류제였다.

“하아. 렌, 자꾸 이러면 곤란해. 왜 자꾸 부추겨?”

“부추기긴 누가 부추겼다고 그래. 진짜 한 대 때린다? 좋은 말로 할 때 움직이지… 으윽!”

발길질을 하던 재경이 몸을 움찔거렸다. 자기가 움직이는 바람에 좋은 곳에 찔려버린 모양이다. 부들부들 몸이 떨리고 잠시 눈동자가 풀리자 류제가 재경의 간악한 발을 붙잡았다. 탐욕스럽게 발바닥을 핥은 그는 악마처럼 웃었다. 흥분해서 샐쭉하게 조여진 붉은 동공이 폭주했을 때보다 오히려 무섭다.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 안 끝나니까 각오해.”

“어… 류…류제에? 잠깐, 우리 문명인답게 말로 하면 안 될까?”

“기분 좋을 거라니까. 나 믿지?”

신용이 하나도 안 가는 말을 속삭이는 게 참 마왕답다. 잘못 걸렸다는 생각에 재경은 오한이 들었다. 안 믿는다고 말하기도 전에 내장에서 뜨거운 게 쭈욱 빠졌다가 다시 밀쳐 넣어지는 감각은 소름 끼쳤다. 서큐버스의 몸이기 때문일까, 원래는 건조해야 할 내장에서 주제도 모르고 미끈거리는 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하아… 재경아, 네 안… 굉장히 뜨거워.”

“아으… 그 이름은… 으…….”

“여기지? 여긴가? 느끼고 있어?”

너무 상냥하고 부드럽고 집요하게 구니까 그 몸짓 손짓 발짓 하나하나에서 사랑을 못 느낄 수가 없었다. 재경은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다. 생리적으로 나오는 눈물은 음란한 허리 짓에 털썩거려 또르르 흘러내렸다.

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야했다. 침묵 속에서 절로 뱉어지는 음란한 의성어와 류제의 야한 얼굴에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하나 모르겠는데 류제는 얼굴을 가리는 재경의 손을 붙잡고 침대에 꾹 눌렀다.

“얼굴 제대로 보여줘.”

“그…그러지 마. 부끄럽단 말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은 류제는 붕대가 가렸던 얼굴을 혀로 핥았다. 두껍고 큰 혀의 감촉이 생소했다. 강아지도 아니고 왜 이런 데를 핥지. 움찔움찔 느끼는 부분에 반응하며 신음하던 재경은 어렴풋이 류제의 의도를 추측했다. 다쳤던 부분을 제대로 확인하고 싶은 걸까.

얼굴을 시작으로 만들어준 육체가 단단히 붙어있나 확인하는 것처럼 류제는 재경의 몸에 차근차근 잇자국을 냈다.

눈부터 시작해서 볼, 턱, 목, 어깨, 갈비뼈까지 내려오는 애무에 재경은 정신을 못 차렸다. 이가 닿을 때마다 아까처럼 심장이 아파졌다. 질식할 것 같은 깊은 사랑을 받으니 어쩔 줄 모르겠다. 터질 것처럼 뛰어대는 심장이 고장 난 것 같았다.

“그…그거 하지 마.”

“싫어?”

정성 들인 애무가 거절당하자 상처받은 표정에 재경은 이 못된 말을 해버린 입을 때리고 싶었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도 어이가 없는데 류제가 약한 표정을 짓는다고 못된 말을 후회하니 어지간히 류제에게 끌려다닐 운명인가 보다.

“싫…은 건 아…아닌데.”

“그럼 왜? 힘들어?”

“아니… 나…나 진짜 어떻게 될 거 같아. 이…이상해지는 거 아니지? 좀 쉬…쉬었다가 하는 게…….”

“어디가 아파?”

숨을 잘 내뱉지 못하는 재경은 심장 엔진이 과열되어 있었다. 근질근질하게 차오르는 마음을 똑같이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심장에 쌓이는 것이다.

“누가 여기를 쥐고 있는 거 같아. 이러다 죽으면 어떻게 해?”

기특한 재경을 조심스레 쓰다듬은 류제가 키스했다. 그러니 이런 뻔한 애정 표현을 해도 쉽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 하지.

“괜찮아. 다 정상이야. 나도 그래.”

류제는 재경의 손을 감싸 자신의 심장에 맞대었다.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이 재경과 똑같았다.

같은 마음을 품었다는 생각에 재경이 울먹거렸다.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어서 이래도 되나 겁부터 났다. 기분이 좋은 것과 복잡한 마음이 섞인 재경은 무엇인가가 두려워졌다.

피스톤이 빨라지자 윽윽거리며 신음을 죽이던 재경은 류제가 자세를 바꾸기 위해 잠시 멈추었을 때 팔을 가만히 붙잡았다. 뭔가 요구하는 게 있을까 했는데 재경이 훌쩍거렸다.

“내가 밉지 않아? 네 이야기의 끝은 이런… 이런 게 아니란 말야. 내가 망치지만 않았어도 너는 분명 그 다섯 명 중에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 맺어졌을 거야. 그런데 나 때문에 바뀌어버린 거라고. 넌 그래도 괜찮아?”

아직도 그 부분을 신경 쓰는 건가. 그를 싫어해서 거절한 건 아니니 류제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이렇게 잘 느끼고 있으면서 왜 과거를 담아두는 거람.

“운명이란 조그마한 변화 속에서 바뀌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 세계는 네가 온 시점부터 달라졌지.”

“…그…건…….”

“그게 더 운명적이라 생각하지 않아? 난 네가 너라서 좋아하는 거야. 그냥 렌 지미가 아니라 신재경으로 강화된 렌 지미니까.”

류제는 재경이 안심할 수 있게끔 깊게 끌어안았다. 자신을 인정해 주자 재경은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 칠칠치 못하게 법정에서처럼 펑펑 흐느낄 것 같았다.

격양된 감정 때문인지 재경은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을 드러냈다. 류제가 부딪혀 오는 이 마음에 어떻게든 보답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나… 나 진짜 열심히 했어. 불청객이 되지 않도록 노력 많이 했어. 아무도 몰라줘서 힘들었어. 엄청, 엄청. 근데 말할 수 없었어… 류제에…….”

“내가 알아. 지금까지 혼자서 많이 힘냈구나.”

“넌 절대로 날 버리지 않을 거지? 계속 곁에 있어줄 거지?”

소중한 사람이 그를 버리고 떠나는 악몽을 재경은 가장 두려워했다.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이 그를 떠나는 건 싫었다.

재경이 류제를 깊게 받아들이자 류제도 그를 보듬었다. 알몸보다 더 깊이 서로를 교감하는 것 같았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류제 그도 겁을 먹었었다. 렌이 당연히 거절할 거라며 한 걸음 물러나 다른 사람들도 다가가지 못하게 견제하기 바빴다.

그 치졸함 때문에 넘어야 할 한 발짝을 딛을 수 없었는데 그만큼 멀어진 상태로 고백하니 당연히 렌은 그의 진실한 마음을 보지 못했다. 그 한 발짝이 가까워진 만큼 지금 렌은 부딪히는 마음을 제대로 봐 주었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널 사랑해. 내 마음은 순수하게 내가 결정했어. 그게 그렇게 쉽게 흔들릴 것 같아? 날 이렇게 만드는 사람은 너뿐이야. 절대로 널 혼자 두지 않아.”

그는 재경이 무서워하는 부분을 정확히 꼬집었다. 재경은 류제와 얽혔던 다른 히로인이 운명대로 다시 류제와 맺어질 가능성을 무서워했던 것이다. 충만함이 다가오며 불안을 떨친 재경은 류제를 안았다.

류제는 꿈에도 생각 못 했던 순간이 이런 식으로라도 도래하자 결국 눈가의 물을 재경의 볼에 떨어뜨렸다. 재경은 언뜻 가물가물한 장면이 생각났다. 류제가 우는 꿈.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스러워하며 울고 있다. 류제는 악몽처럼 재경을 원망하지 않았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자신을 필요로 했다.

“류제…….”

“괜찮아. 내 손을 잡아줘. 제대로 잡아, 재경아.”

“으…….”

“놓고 싶지 않아. 계속 붙잡고 싶어. 내 마음을 제대로 느껴줘. 응? 느끼고 있어?”

이제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류제가 손바닥으로 소중하게 몸을 쓸어 확인했다. 푸른 눈동자 사이로 보이는 붉은 동공이 이다지도 상냥하다. 부드럽던 허리의 움직임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으힉……! 어… 아, 힉! 느…느끼고 있어. 있으니까 천…천천히이…….”

나도 지금처럼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물론 렌은 나를 다른 친구들하고 이어줘야 한다고만 생각했을 테지만 그냥 후회가 남았다. 내 무지 때문에 힘들었구나. 하지만 내가 더 빨리 다가갔다면 너는 미래가 무서워서 도망가 버렸을지도 몰라. 우리의 시련은 필연적이었을 거야.

절정이 오려는 듯 내장이 움찔거렸다. 쾌감으로 재경의 것에서 정액이 분출됨과 동시에 큰 움직임 끝에 류제도 깊게 사정했다.

뜨겁다. 처음 느끼는 오르가슴에 정신이 어떻게 될 것 같은 재경은 마족의 몸이 되어서 그런 건지, 인간이었어도 이랬을 건지 궁금해졌다. 남자끼리도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 있는데 왜 결혼을 못 했던 걸까.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기숙사 방을 채웠다. 류제가 수고했다며 볼에 키스했다. 처음은 가볍게 이 정도로 끝내는 게 좋겠지. 더 하고 싶었지만 이 이상 했다가는 재경이 치를 떨 것이기 때문에 류제는 깊게 박았던 그의 것을 천천히 빼냈다. 손에 묻은 재경의 정액을 몰래 슬쩍 핥아보니 먹을 만했다.

“하아.”

참을 수 없던 배고픔이 사라졌다. 이런 포만감은 처음이라 재경도 사정감과 충만함을 만끽하며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분위기에 휩싸여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깨닫고 후딱 이불을 빼앗아 몸을 감쌌다. 분위기에 취해 무슨 개소리를 해댔는지 현타가 아주 세게 왔다.

겁탈마 류제를 사정없이 노려보던 재경은 발길질로 류제의 등을 꾹꾹 밀었다.

“이 에로 대마왕.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나한텐 전생의 기억이 있거든.”

“발라당 까진 자식 같으니. 제길, 천 년 묵은 할아버지랑 손잡고 갑자기 어른의 계단을 올라버린 기분이야. 할머니한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지.”

“지금 걱정되는 게 그거냐.”

그게 렌, 재경답기는 하다. 하하 웃는 류제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재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것마저 부끄러웠던 재경은 이불로 머리마저 감쌌다.

배가 차서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재경은 류제의 사랑을 온몸으로 만끽하니 다른 히로인들과 엮어주려던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짓거리가 너무 허망하게 느껴졌다. 잠시 얼굴만 뺀 재경이 팬티를 입는 류제를 흘겼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날 언제부터 좋아한 거야? 내가 뭐 두근거릴 짓이라도 했나?”

“그러게. 어느 순간부터 좋아졌는데 꽤 오래되긴 했지.”

“진짜? 기억나는 건 언젠데?”

“음, 일단 수학여행 갔을 때 야한 꿈으로 네가 나오긴 했어.”

“거기서부터?!”

거의 초반 부분 아냐? 그럼 뭐야, 엄청 오래됐는데. 재경이 하나, 둘, 셋, 넷, 개월 수를 세어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 내가 한 짓은 뭐냔 말이지. 억지로 다른 사람하고 맺어주려고 했다니 최악인 데다 진짜 헛짓거리였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 질투 장난 아니었어. 넌 날 유네랑 맺어주려고 하고, 진짜 싫고, 날 봐주지도 않고. 뭐 상황이 상황이었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만.”

“나한테 고백한 그것도 진심이었어? 고목나무 아래에서.”

그때 미나의 일로 머리가 돌았던 재경은 그것 말고 마지막에 한 고백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역시 타이밍이 안 좋았던 거였나. 류제가 하아, 자신의 바보 같음에 감탄했다. 아, 생각해 보니 그 클립 결국 효과가 있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지만 난 매번 너한테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어.”

류제가 재경의 이마에 뽀뽀했다. 섹스도 했는데 그게 뭐라고 재경은 힉 놀라며 새빨갛게 얼굴을 붉혔다. 거리감이 이 이상 더 줄어들 수도 있구나 싶었다.

“내가 널 좋아하는 바람에 세상이 멸망할 뻔했지만 네가 세상을 지켜냈으니 내가 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지.”

제 딴에 진리인 것인 양 언어유희를 자랑스레 늘어놓는 류제를 뒤로한 재경은 이불을 뒤집어써 한참을 생각했다. 꿈지럭거리던 그는 이불 사이에서 눈만 쏙 빼 들고 통보했다.

“해.”

“뭘?”

“뭐긴 뭐겠어.”

“또 하고 싶어?”

“이 변태가 뭐라는 거야? 머릿속에 든 게 그것밖에 없냐?”

그래도 류제가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 재경이 기어코 그 선언을 입에 담았다.

“사귀는 거 말야.”

그들에게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음을 얻어내고 말겠다고 긴 계획을 세웠던 류제는 재경이 그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

“거짓말.”

“뭐야? 사람이 말을 하는데. 죽는다 진짜. 사나이 중의 사나이는 거짓말 안 해.”

사나이 중의 사나이는 결심도 빠른가? 물론 절대 싫지 않지만 몸과 마음은 따로일 수도 있을 거라는 우울한 생각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던 류제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제일 좋아하며 날뛰어야 할 류제가 대답을 않자 더 부끄러워진 재경이 점점 이불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아니, 솔직히 이런 짓까지 했는데 안 사귀는 것도 우습고. 그… 남자끼리긴 한데 나도 너…너라면 어쩐지 그… 내가 원했던 이상과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 내 이상이라는 게 네가 잘생겨서 그런 건 아니고… 뭔가 그런 느낌 있잖냐. 사귀는 것 같은 좋은 느낌… 아, 설명을 못 하겠네. 대신 나중에 나한테 실망하고 그러면 안 된다? 솔직히 왜 내가 좋다는지 하나도 모르겠고 나도 사귀고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실망만 안 하면…….”

“그러니까 요컨대 너도 내가 싫지 않다는 거지?”

답답하게 구니 고민 없이 그렇다고 대답하려던 재경은 ‘아, 몰라!’라며 베개를 던지고 휙 돌아누웠다. 류제가 끈끈이주걱 떼어내듯 베개를 치우니 재경의 귓불이 사정없이 새빨개져 있었다.

“사귀는 거 허락하는 거지?”

“나랑 사귀는 게 네 생각과 달라도 멀어지지는 말아 줘. 그것만 약속하면 뭐.”

당장 재경이 염려하는 건 류제가 실망해서 멀어지는 것인 듯하다. 재경을 꾸짖는 일은 있어도 절대 미워하지 않을 류제는 이불 속에 숨어있던 재경을 그대로 껴안고 빙글빙글 돌렸다.

“우아악! 우악! 뭐 하는 짓이야!”

“절대 안 멀어져!”

“시…시끄러워! 옆방에 다 들리겠네!”

“하, 다시 태어나길 잘했어! 아하하! 이게 내가 원하던 해피 엔딩이거든!”

짐승 같은 환호 소리를 낸 류제가 깜짝 놀란 재경을 꽉 껴안았다. 류제는 너무 좋아서 부비부비 얼굴을 비볐다. 그가 지금껏 고민하고 무서워했던 게 전부 날아가는 느낌이다. 아아, 정말 이렇게 사랑스러운 애인을 어디서 구한담.

“세상에, 이런 해피 엔딩이 다 있네. 해피 엔딩 따위 안 믿었는데.”

“해피 엔딩이지. 너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잖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난 두 번 다시 안 속아.”

“노력하면 되지. 서로 또 싸우고 힘들고 원망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도록. 안 그래?”

자신만만하게 코끝에 키스한 류제에게 재경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양을 등진 류제는 재경이 원했던 망상 속 옥상은 아니지만 서로 손바닥을 마주 잡고 키스했다.

“그게 함께 살아간다는 거 아닐까? 재경아.”

재경아. 류제가 그렇게 불러주는 게 좋았다. 그 울림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도 사랑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싱숭생숭했다.

이 기회에 한 번 더 하고 싶어진 류제가 발기한 그의 것을 재경의 하반신에 몰아붙였다. 능글스럽게 웃으니 기가 찬 재경이 소리를 지르며 류제를 밀쳐내려고 노력했다.

“아, 싫어! 싫다고! 안 할 거야! 그만하라고 했지? 너 진짜 내 심장 터져서 죽는 꼴 보고 싶어?”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헐레벌떡 뛰어온 세라가 기숙사 방문을 벌컥 열었다. 이제 막 학생들 치료가 끝난 그녀는 렌이 기숙사로 돌아왔다기에 한번 들러볼까 하다가 우연히 류제의 짐승 같은 환호 소리를 듣고 놀라 들이닥쳤다.

세라는 팬티 바람의 류제가 이불 속에 갇혀 싫어하는 재경에게 무턱대고 들이대는 모습을 착각하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세에상에, 세상에, 세상에! 아무리 당신들이 다 자란 성인이라지만 제립학교 소속으로 되어있다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셔야지요. 성인이 되었다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굴어도 되는 게 아닙니다!”

이후 A동 사감실 앞에 두 사람을 끌고 온 세라는 한 시간 동안 류제에게 할 수 있는 설교는 다 늘어놓았다. 이렇게 빨리 손을 댈지 몰랐다는 둥 뭔가를 하려면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둥 맞는 말만 해대서 류제는 반박할 수 없었다.

보기 드문 상황에 재경이 킬킬거리며 비웃지만 이내 재경도 세라에게(정식 양호교사를 노리는 세라가 최근 심도 깊게 배우는) 건강한 성생활에 관한 긴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어쩐지 처음 만났을 때 세라에게 벌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킥킥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재경을 냉큼 안아 든 류제가 5층 계단을 룰루랄라 올랐다.

이제 같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 어차피 출석 일수도 모자라고 시험도 안 쳐 류제도 올해 졸업은 글러먹었다. 재경도 탈영 혐의가 벗겨지고 2학년 교육과정 대체가 인정되니 올해 2학기만 어떻게 하면 내년에 곧바로 3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또 1년 같이 학교생활을 한다.

지금부터 여름방학이니 그동안 호감도 많이 올려서 애인으로서 기반을 잡겠다는 류제의 결심은 뒤로하고 정식으로 사귀게 된 다음 날 아침이 상쾌하게 찾아왔다.

오늘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두근거림을 채 느낄 새도 없이 해가 뜨자마자 댓바람부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먼저 깬 류제가 비몽사몽 문을 열었다. 팬티 차림인 그의 앞에 나타난 건 고양이 귀가 쫑긋 달린 냥냥이였다.

“렌은 어디 있냥!”

“우아악!”

남자 기숙사에 여자가 냉큼 노크를 하다니. 질겁한 류제가 침대로 샤샤샥 도망갔다. 이 동네 인간들은 섬세함이란 쥐뿔도 없었다.

문 여는 소리를 듣고 깬 재경이 졸려서 눈을 비볐다. 오랜만에 보는 냥냥이가 신이 나서 인사했다.

“렌냥! 소식은 들었냥. 재판에서 이겼다지 않냥!”

“으으음… 뭐, 이겼지. 으하아암.”

“우리도 재판 구경 가려고 했는데 지금 전국 투어 중이라서 장비를 옮길 수가 없었냥. 그래서 늦게라도 내가 찾아온 거냥.”

“그래? 뭐, 고맙긴 한데. 축하해 주려고? 이 꼭두새벽부터?”

꾸물꾸물 고양이 잠옷을 오랜만에 꺼내 입었던 재경이 꾸물꾸물 기어 나오며 연이어 하품했다. 뭔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 볼일이 있는 듯해 신발을 미적미적 신고 앞에 서니 고양이녀가 히죽 웃었다.

“실은 말이냥, 우리가 밴드부 활동 명목으로 방학 동안 전국 투… 봉사 활동을 하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너만 한 보컬이 없지 뭐냥.”

류제를 힐끗거린 고양이녀는 갑자기 고양이 수인화 짐승 모드로 돌변했다. 그대로 잠에서 덜 깬 재경을 납치해서 호다닥 도망가는 냥냥이 뒤로 류제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렌! 어디 가?”

“어어?”

“걱정 말아냥. 수신제 때 했던 노래도 있으니까 준비할 시간은 많냥! 우리 밴드는 인기 스타가 되어 월드 투어를 할 테니까양!”

렌이 어려운 일에 휘말린 데다 부상이 심하대서 차마 제안을 못 했는데 소문을 듣자 하니 다시 건강해졌다지 않나. 마음 바뀌기 전에 냅다 실행에 옮기는 것이 밴드부이니 고양이녀는 소중한 보컬이 다시 돌아와서 몹시 신났다.

“적어도 어디 가는지는 말을 해줘야지!”

밴드부 전국 투어라니. 오늘부터 두근거리는 독점의 나날이 이어질 거라 기대하던 류제가 허탈해하던 찰나 멀어지는 재경이 손을 흔들었다. 어찌 되었든 재경도 밴드부 활동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방문에 기대어 그 인사를 받아준 류제가 점이 되어버린 그들을 지켜보다 짧게 웃었다. 렌의 위치야 언제든지 알 수 있으니 꿈을 찾은 렌이 도약 준비를 하는 동안 루나에게 답장이나 쓸까. 재판에서 승소한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동봉해서.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남은 날이 아주 많으니까.

류제는 다 함께 모여 재경을 환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담긴 사진을 햇빛에 비춰보았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고 행복이란 이런 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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