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권-챕터 13. [종전을 위하여] (2) (62/112)

챕터 13. [종전을 위하여] (2)

“적습이다!”

키아나트리체의 초대 황제가 펠노아에서 최초로 마족을 쓰러트린 후 마족을 척살할 기간트리카가 발명되고 인류 연합을 구축한 인간들은 스탈라 조약을 체결했다. 그 이래로 공식적인 인간 간의 전쟁은 이 미노타와 키아나트리체의 공방전이 처음일 것이다.

역사를 써 내리고 있는 키아나트리체의 기간트리카군은 전장에서 명당 평균 비어빌리터 일반 보병 백의 전력이 되었다.

그러니 같은 군 계급이라도 어빌리터와 일반군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징병된 병사나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어빌리터의 전투를 위한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차출되고 차출되어 최종적으로 소모되는 병력이 어빌리터다.

남보다 못한 목숨이라니 누군가는 마땅찮게 받아들이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키아나트리체는 미노타에게 무너지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하나아홉넷삼, 삼둘둘삼, 여섯팔둘칠, 포인트 이동한다.”

“삼여섯오칠, 야, 씨발, 자리 지키라고!”

“에… 네…넵! 으…으으… 죄…죄송합니다.”

군에서만 쓰는 음어투성이에 거칠고 사나운 환경이 낯선 유네는 어리바리한 자신을 다독이고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 듯했다. 전투가 끝나고 매일같이 혼나느라 눈물도 모자랐다. 밝은 우윳빛이던 그녀의 피부는 그슬린 화약이 이제 익숙해졌다.

“북 하나둘오, 서 둘하나, 적 발견.”

“조준 완료.”

“발사!”

사람들이 거칠고 화나 있는 이유야 적이 적이니만큼 그들도 긴장했기 때문이다. 마족만큼 까다로운 적은 다름 아닌 그들처럼 어려서부터 전투 훈련을 받은 어빌리터였다.

수십 발로 지형을 변형시키는 유도탄들이 미노타의 기간트리카 부대를 향해 날아갔다. 연기가 가시고 산개한 적들이 어떻게 나올까 지켜보고 있던 중 기간트리카 한 기가 연기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확인 불명 땃쥐 하나 오른쪽 출현.”

“기습인가.”

“북 하나삼여섯, 서 넷오, 적 위치 포착.”

“조준 완료.”

“발사!”

적의 어빌리티를 파악할 겸 전술을 무너뜨리기 위해 발사하는 미사일에 대응하는 적군들은 그들만큼 괴물 같은 힘을 발휘했다. 날아간 미사일이 특정 영역에 들어서자 격자 모양으로 잘리고 잔여 폭발물들이 모두 땅에 처박혀 폭발했다. 시야가 가려진 건 키아나트리체 쪽이었다.

“저건 도대체 무슨 능력이야?”

“‘절단’계에 ‘압력’계가 섞인 듯합니다.”

“어빌리티가 두 개라고? 하, 돌아버리겠네.”

“제가 상쇄하겠습니다!”

미노타군을 막는 전장 어디선가, 곳곳에 류제가 마주한 적 있는 학생들의 싸움도 도드라졌다. ‘토막’ 어빌리티를 가진 요리부 부장이 날아오는 상대군의 어빌리티 공격을 순식간에 흩트려 놓았다.

“우와아… 말도 안 돼. 저걸 다 막다니.”

“저자들은 우리랑 같은 사람이 아니야. 마족을 상대로도 살아남은 정예병들이 우리와 같을 수 없지.”

일반병으로 이루어진 보급군이 보는 전투는 적이나 아군이나 인간임이 의심스러운 괴물들 간의 싸움일 뿐이다.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은 이 이질적인 싸움이 늘 새로웠다.

방어선은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폭격이 이어지자 미노타군에서도 원거리 공격으로 작전을 바꾸었는지 키아나트리체의 진지에도 유도탄이 빗발쳤다. ‘방어’ 계열 어빌리터들이 나섰지만 온갖 곳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막기는 한계가 있었다.

“적 침입! 7번 방어선 돌파. 그쪽으로 간다!”

“저 미친 자식, 자폭한다. 피해!”

“막겠습니다!”

유도탄을 막느라 정신이 팔린 와중 전선을 뚫기 위해 자폭까지 감내하는 미노타군의 미친 짓거리 때문에 기간트리카가 반쯤 박살 난 류제에게도 미사일이 용서 없이 날아들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폭렬음 때문에 귀가 멀 지경이다.

“크윽, 왜 이런 짓까지……!”

류제의 ‘강화’ 어빌리티는 만능에 가깝지만 광범위한 공격을 막아야 할 때에는 부적합했다. 그는 날아드는 미사일을 기간트리카 부스터와 어빌리티를 이용해 다른 방향으로 각기 쳐 내렸다. 멀리서 유도탄이 처박혀 지형이 망가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그가 마지막 한 발을 쳐 내리려는 찰나 그 방향에 미처 보지 못한 일반병이 진지에 고립되어 있었다. 혀를 찬 류제는 폭발하는 유도탄을 정면으로 맞고 땅에 추락해 미끄러졌다. 한바탕 쏟아진 공격은 퇴로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는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적들이 물러간 후였다.

“사라졌군.”

“이 틈에 재정비하라. 포구 닦고 포신 정렬!”

“류제, 괜찮아?”

그가 아무리 뛰어난 전투 센스와 개인전에 강력한 어빌리티를 가졌다 할지언정 대비 없이 공격을 정통으로 맞는 건 위험했다. 비키가 류제의 망가진 기간트리카를 강제 장갑 해제시키자 그의 온몸에서 숨기고 있던 열기가 흘러나왔다.

“으윽… 버틸 만해.”

신속하게 어빌리티로 몸을 보호한 류제는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나 온몸에 입은 찰과상과 화상은 ‘회복 강화’를 해도 시간이 꽤 걸릴 듯했다. 그가 회복할 때까지 적들이 잠자코 기다려주진 않을 터. 소대원이 몇 명 생존했나 눈대중으로 훑는 소대장은 의식이 있는 류제의 상태를 보고 별것 아니라는 양 흘겼다.

“의무대에 다녀와라.”

“알겠습니다.”

소대장에게 경례한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비키가 같이 가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손을 내저어 거절했다. 절뚝거리며 류제는 홀로 의무대로 향했다. 거기에 세라가 있을 텐데 비키와 함께 가라고? 염치도 없다.

전장에서 말도 안 되는 바람이지만 류제는 의무대는 가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치유할 능력이 있는 어빌리티를 가진 그마저도 이런 꼴이다. 어빌리터가 마족도 아니고, 부상이 저절로 치료되지 않는 여타 군인들은 의무대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날락했을 것이다.

과한 배려일지도 모르겠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참전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르쳤던 학생이 부상당한 사실을 안다면 걱정으로 잠 못 이룰 그녀의 성미가 안타까웠다.

의무대에 도착한 그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앞줄에 서있던 군인이 부러진 팔의 치료를 마치고 나왔다. 곧 막사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들어오십시오.”

안에는 다른 ‘치유’계 어빌리터들도 있었지만 류제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세라였다. 긴 머리를 단정히 하나로 묶은 그녀의 모습이 어색하다. 류제는 한눈을 팔고 있는 그녀에게 경례했다.

“2중대 1소대 분대장 병장 류제 신리. 왼쪽 팔의 화상과 몸통의 찰과상 치료 부탁드립니다.”

적십자를 두른 하얀 가운을 입고 서류 업무를 보던 세라가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덥수룩한 검은 머리 안으로 보이는 푸른 눈동자. 그녀가 아는 얼굴이었다.

이런 곳에서 그녀가 맡았던 마지막 학생을 만나게 될 줄이야. 지저분해진 류제의 몰골에 세라는 울컥하는 심정을 참아냈다.

“상처 확인하죠.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녀는 곧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를 앉혀 상처를 살폈다. 손에서 치료의 빛이 나왔다. 이 손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천막 뒤에서 고통스레 비명 지르는 소리보다는 많을 것이다. 류제는 잠자코 상처가 치료되는 순간을 기다렸다.

“당신을 여기서 보고 싶지 않았어요. 저도 이기적이죠.”

침묵이 얼마큼 이어졌을까. 류제의 군복에 달린 계급장을 본 세라는 작게 한탄했다. 류제는 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답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 제립학교 학생들이 참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당신마저 이곳에서 보게 되어도 실감이 안 납니다.”

“세라… 선생님.”

“여기선 선생님이라 부르면 안 돼요.”

그녀는 교직을 박탈당했고 여기서 그녀의 계급은 중위다. 씁쓸하게 말한 그녀가 입술에 검지를 대었다. 눈 아래에 있는 점이 눈물처럼 보였다.

“모두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도 사치겠죠.”

벌써 여럿, 그녀는 살리지 못한 시체를 수습했다. 죽기 살기로 덤벼오는 미노타의 기간트리카군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왕녀의 나라카 토벌을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저지했어야 했나 후회가 막심하다. 적어도 학생들만이라도 지키고 싶지만 그녀의 힘은 미력했다.

“제가 이 전선만큼은 꼭 지켜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밀로니… 의무관님.”

벌써 여럿 높은 등급의 마족을 상대해 본 그의 대단한 전투 센스를 아는 세라는 다부지게 말하려는 류제가 애어른처럼 보이지 않는 자신이 미웠다. 그는 군을 모르지만 누구보다 강하니 믿음직스럽다. 그의 실력을 보자면 전쟁이 끝났을 때쯤에는 그녀보다 높은 계급을 달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반년은 넘게 걸릴 회복을 세라의 능력과 자신의 ‘강화’ 어빌리티로 한달음에 멀쩡해진 그는 한 시간도 쉬지 못하고 전장에 복귀했다. 그가 없는 틈에도 사람들은 유도탄으로 흐트러진 방어선을 구축하는 중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낡아지면 안 되는 부속품 같았다. 보기 귀하다던 ‘힐링 팩터’도 여기서는 소모품처럼 쓰인다고 한다. 필요에 의한 자발적 착취인가 아니면 그렇게 자신을 세뇌하고 있는 건가. 여기서는 이런 걸 고민하는 그가 비정상적이다.

“수고했다.”

돌아오는 위로에는 생명을 향한 존중이 부족했다. 별수 있나. 다음 날 또다시 밀어닥치는 미노타군을 막기 위한 전투를 해내는 수밖에.

세라가 예견했던 대로 그는 제립학교에 있었을 때처럼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영웅 포르테 들라크루아가 특히나 신경 쓴다는 소문도 있고 어빌리터 최초로 장군을 배출해 낸 셀로니아 가문의 영애와도 친하니 장성급 장교들이 그를 언급하는 날도 잦아졌다. 귀족들은 그를 예의주시했다.

미노타군의 총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방어 덕분에 공격이 수그러들었던 그날은 양 진영에 고요함이 맴돌았다. 아무리 식량 부족 문제가 있다지만 미노타는 왜 의미 없는 전쟁을 선포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둘 마음에 품었던 날이다.

정보원으로 쓰기 위해 광폭한 포로들을 붙잡은 수용소에 미노타어를 할 줄 아는 통역사가 붙었다. 협약을 깬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애쓰는 통역사로 인해 키아나트리체가 포로들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사실을 눈치챌 무렵이었다.

“자아, 시작해 보자. 진정한 끝을 위해서.”

류제와 같은 하늘 아래에 서있는 미나가 자랑스레 두 팔을 벌려 야망에 찬 입꼬리를 찢었다. 미노타가 돌연 키아나트리체에 전쟁을 선포한 이유? 그들 따위 키아나트리체의 눈을 나라카에서 돌리게 하려는 수단에 불과했다.

“이상하네요. 땃쥐 놈들이 오늘따라 조용합니다.”

“뭔들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 거겠지. 배를 곯는다고 우리가 쉽사리 뚫려줄 것 같아?”

짝지어 주변을 돌던 기간트리카 정찰병이 미노타군이 있는 방향을 관찰하며 몰래 연초를 피웠다. 이제야 살겠다며 바위에 걸터앉은 군인은 오랜만에 만끽하는 조그마한 평화를 즐겼다.

위대한 키아나트리체가 쉽사리 당할 리 없지. 이 상태가 지속되다 인류 연합군이 도착한다면 미노타는 백기를 들 거다. 그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할 때였다.

“혹시 저기 검은 거 안 보입니까? 새…인가?”

“새는 무슨. 헛소리하지 말고 망이나 잘 봐.”

“뭔가 이상합니다. 저건… 미노타군의 기간트리카 아닙니까? 이것들이 또 움직이려는 거군요.”

“아냐, 저 날개는 분명…….”

미노타의 기간트리카군의 머리 위에 지금껏 잠자코 있었다기엔 거짓말 같은 수의 마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못 본 게 아닐까 눈을 비비고 봐도 분명히 기간트리카군 위에는 마족들이 있었다. 마족과 눈이 마주친 듯해 망원경을 거둔 정찰병은 겁에 질려 현실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어. 저것들 다 마족입니다!”

“뭐라고? 미노타군을 습격한 건가?”

“아뇨, 공격하는 게 아닙니다. 협공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아까부터 뭔 개소리야?”

미간을 찌푸린 군인이 망원경을 빼앗아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후임이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그녀는 태어나 본 마족 수의 몇 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괴물들의 태동을 보고 서늘한 식은땀을 흘렸다.

“빨리 상부에 보고해. 인간 간의 전쟁에 끼어든 마족이라니 정상이 아냐. 마족과 미노타군이 협력? 인간과 마족이 서로 협력했다고? 말도 안 돼.”

이 이상행동은 ‘탐색’ 능력이 있는 세라 또한 느꼈다. 오싹오싹한 마족의 기운이 주변을 둘러싸자 의무대에서 서류 정리를 하던 세라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를 박찼다. 그녀는 그길로 대대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상합니다. 인간이 아닌 것들이 수백… 아니 수천… 엄청난 숫자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것들? 미노타 놈들이 아니라?”

“그게 무슨 말인가, 밀로니 중위. 전쟁 냄새를 맡은 마족이 인간 사냥을 시작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기엔 수가 비정상적입니다.”

“상세히 말하라!”

그리 물을 것도 없이 세라의 증언 이후 지휘통제실에 수많은 통신이 올라왔다.

지형이 들썩거렸다.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계곡으로 방류된 썩은 시체들이 삐걱거리며 파도처럼 몰려왔다. 미노타군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 이것인가. 미노타의 전 국민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고 과장해도 이 광경을 본 자들이라면 진실이라고 믿을 것이다.

“구울… 저거 구울 아냐? 구울 떼잖아!”

“여기도 마족이다! 마족이 나타났다! 비상사태입니다. 전방에 마족 출현! 수는 약… 파악 불가!”

“빨리 윗선에 연락해.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왜 마족과 미노타군이……!”

지휘부와 접촉하기 위해 통신병이 전장을 뛰어 달려 나갔다. 때를 놓치지 않은 박쥐 날개들이 깍깍깍 그녀들을 비웃었다.

공포가 엄습한다. 수많이 토벌했다 의심치 않았던 마족이 하늘을 메울 만큼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가 없다. 미노타가 마족과 손을 잡았다고? 뱀과 개구리가 협력할 수 없듯 먹이사슬로 얽힌 마족은 인간과 동행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냔 말인가.

전장은 마족과 미노타군과 구울들이 키아나트리체의 군과 얽혀 아비규환이 되었다. 죽은 몸으로 공격을 방해하는 구울들의 떼가 진득하니 전선을 침범했다.

미노타가 어째서 마족과 행동하는지, 저 쏟아지는 구울들의 의미는 무엇인지, 푸르고도 푸른 하늘이 붉게 빛나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무엇도 설명할 수 없는 채 강물의 방향을 바꾸려는 미약한 움직임처럼 키아나트리체는 앞에 있는 적들을 쓰러뜨려야 했다.

* * *

침 흘리며 도사리던 마족들이 키아나트리체 전역에 이를 드러내고 인간들을 죽인 대공습이 일어난 때는 재경이 속한 부대가 한 서큐버스에게 몰살당하기 하루 전날 늦은 오후였다.

마족들이 고개를 들기 나절 전까지만 해도 미노타군의 움직임은 꺼진 산불처럼 수그러들었고 전장은 조용했다. 마족은 날개의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하사받은 군사 지휘권으로 미노타군의 공격을 책임져 방어해야 하는 니냐롯트 왕녀가 당시 제1 작전사령부 지휘통제실 막사에 없었던 이유는 전쟁이 빠른 시일 내에 종식할 가능성을 아가타 왕궁에 있는 장군들과 논하기 위해서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노타가 쳐들어오자 니냐롯트는 예정했던 나라카 토벌을 중지하고 그 병력으로 미노타군을 막을 방어선을 구축했다. 부족한 병력은 제립학교 학생들로 충원했다.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니 인류 연합군을 호출했고 귀족들은 전시에 가지게 되는 군사통제권으로 피난민과 아가타를 지키기 위해 대규모 병력 이동을 지시했다.

지켜야 하는 일도, 의견도 다르니 나라가 혼란한 와중에도 왕궁 안은 파벌 싸움의 연속이다. 찬성파와 반대파의 논쟁은 새로운 결론에 이르기까지 쓸데없이 긴 시간을 소요했다. 그동안 결정권자는 지쳐간다.

“주제도 모르는 야만인들이 뒤늦게 제국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할지언정 마국에 있을 들라크루아 대령을 황제 폐하의 직속 호위 기사로 삼는다니 성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적들이 고개를 숙일수록 스스로를 지켜야 하지요. 그네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는 또 모를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늦기 전에 그녀를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야 하지 않소. 아니면 왕실 기사들이 미덥지 못하다는 말이요?”

“전적이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도를 넘어선 지적으로 왕녀파를 자극했다. 그녀가 잠자코 은빛의 눈동자를 굴려 황제를 흘겼다. 황제의 미간이 좁혀졌다. 대화가 황제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걸 눈치챈 사람은 왕녀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없는 사람을 들먹여서 무슨 소용입니까. 허나 나라를 지켜야 할 영웅의 부재는 치명적입니다. 그녀의 귀환은 정녕 기약이 없습니까?”

국경 근방 국민들의 피난을 돕는 일반군으로 이루어진 제2 작전사령부 특공부대의 여단장인 백작 부인이 속셈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니냐롯트를 자극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황제의 슬픔에 빌붙어 왕권을 슬금슬금 넘보는 저치가 무슨 심략인가 니냐롯트는 경계심 먼저 든다.

“연락을 넣었으니 돌아오지 않겠소.”

“이제 우리는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으면 되는 겁니까? 천하태평이군요.”

“태평한 사람에게는 그리 보이나 봅니다.”

가문의 상징인 독수리 지팡이를 들며 히죽거리는 그를 똑바로 쳐다본 왕녀가 차분히 반박했다.

전시에 귀족이 일부 군사통제권을 부여받는 등 키아나트리체의 군사 체계가 지금처럼 변한 건 마족에 대비해 모든 군사통제권이 왕가로 귀환되고 귀족들의 사병이 제한되면서부터다.

이로써 제립학교서부터 대부분의 어빌리터를 휘하에 관리하는 왕가는 귀족이 견제 불가능한 강력한 군사력을 소유하게 된다.

귀족들은 사병 수를 줄이는 대신 전시에 군 계급을 달고 군대를 휘두를 수 있게 타협했다. 유네가 납치되었을 때 움직여 준 멜가로스크 자작의 사병이 어빌리터라는 사실은 밝혀진 바 있다.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병력이 줄어든 만큼 사병에도 어빌리터가 포함되었고 그 병력은 전시나 마족 토벌 시 급히 파견되었다.

백작 부인과 멜가로스크 자작 등 귀족파의 대다수가 의무로서 정규 군사 훈련을 받았다고 하나 저런 자가 준장이라니. 나라를 이끌어야 할 왕가의 입장으로 보자면 준장을 달기 전 공적만으로 대령까지 올랐던 셀로니아 가문의 이전 장군과 확연히 비교된다.

멜가로스크는 사병으로 마족 토벌을 지시한 적도 없거니와 가문에서 어빌리터를 배출해 내지 못했다. 대신 마족으로 초토화된 개국공신의 영지를 사들여 토지제 개편에 대성공해 자작 작위를 수여받았다. 이후 친비어빌리터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치면서 고정적인 지지층을 유지했다.

멜가로스크는 명예에 있어 마족 척결에 앞장서는 셀로니아 가문에 항상 뒤처졌다. 선대 멜가로스크 자작은 아둔한 판단력이 두드러질 때가 잦아 셀로니아 가문이 그들을 가장 멸시했다. 이에 멜가로스크는 셀로니아 후작가에 일방적으로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그 열등감 때문인지 멜가로스크 자작가는 셀로니아 후작가의 멸족이라는 대사건에도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왕비의 서거가 있기 1년 전이었나. 당시 대여섯 살 남짓 어린 공주였던 니냐롯트는 흐릿하지만 멜가로스크의 어빌리터들을 향한 적의만큼은 실감했다.

“나라카 토벌은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님이 맡기엔 섣불렀던 모양입니다. 미노타의 움직임에 현명하게 대처했어야 했어요. 가트 회의에서 협박한 것만으로는 그들의 야욕을 잠재우기 부족했던 건가. 아니면 대표자의 기량 부족일지도 모르겠군요.”

“감히! 말조심하시오.”

“루이나, 일일이 반응할 것 없다.”

그녀를 호위하는 루이나가 칼에 손을 대자 니냐롯트가 저지했다. 나라카 토벌에 동의했던 주제에 이제 와 빈정거리다니. 니냐롯트는 대신 등 뒤로 주먹을 쥐며 화를 참아냈다. 류제 신리의 참전도, 지금 이 상황도 모두 저들이 의도했던 대로 굴러가는 것 같아 분했다.

“그럼 왕녀 저하께선―”

“전시이니 그리 부르지 마시오. 아무리 내 나이가 어려도 폐하께 직접 하사받은 군사권이요.”

“…솔라 키아나트리체 작전사령관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협약을 어긴 미노타의 징벌은 인류 연합군만으로 충분하십니까?”

정당한 호칭을 바라는 모습마저 귀엽다는 듯이 구는 저 능글능글한 시선도 끔찍하다. 아닌 척 사사건건 날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는 주제에. 나라를 위하는 게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가문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자.

저자가 싫다 한들 니냐롯트도 귀중한 영웅의 쓰임새를 수수방관할 수는 없었다. 이 자리에 자리하지 않았음에도 정계에 휘둘리는 포르테 들라크루아는 언제 연락이 닿을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이 시대에 존재하는 위대한 마족 토벌자이다. 영웅의 경험은 인간을 상대로도 통할 터.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 키아나트리체는 그녀의 실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폐하의 직속 기사는 섣부르다는 의견에 동의하오.”

“나라카에서 막 귀환할 그녀의 몸 상태를 고려해야겠지요. 그녀의 공적을 무시할 수 없으니 입장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들라크루아 대령에 관한 처우는 이후에 논하도록 하지. 호위 기사로 삼는다 하더라도 미노타를 굴복시킨 후에는 다시 나라카를 토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가만히 듣고 있던 황제의 입에서 말이 떨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수척하고 메말랐다. 니냐롯트는 아직도 나라카 토벌에 집착하는 황제에게서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일기장에 있던 글씨를 미루어 보아 과거의 니냐롯트는 요새에 있는 자를 알았을 것이다. 그녀가 정녕 포르테 들라크루아일까. 삼킨 혼자만의 궁금증은 맛을 모르겠다.

“…그 말이 맞습니다, 폐하.”

맞다면 그녀는 손에 닿을 곳에 있는 포르테 들라크루아를 빤히 알고도 전장에 투입시키지 않은 꼴이 된다. 전력을 헛되이 낭비한 것인가. 지도자로서 짧은 불안감이 그녀를 쿡쿡 건드렸다.

“심려치 마십시오. 반드시 우리 키아나트리체를 승리의 길로 이끌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다.”

“장하군요. 거친 곳이 익숙하지 않으셨을 텐데. 고단하신 공주님을 위해 누군가 마사지 전문가를 불러드려라.”

“필요 없소.”

왕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구겨지자 백작 부인이 풉 하고 아무도 모를 비웃음을 보냈다. 군사권을 받았어도 아직도 저들은 날 아래로 보고 있다. 휘둘리지 않게 편을 만들고 강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저치들에게 그녀는 올해 열여덟인 경험 부족한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왕궁의 문을 박차고 친위대 무리와 합류했다. 이대로 작전사령부 본부로 가서 인류 연합군 합류를 대비하며 이 전쟁을 끝낼 준비를 할 것이다.

전시에 사용하기 위해 알라마니 기술관에서 시범으로 나온 사륜구동차가 마차 대신 흙먼지를 일으켰다. 상석에 앉은 그녀가 생각에 잠겼다.

아가타에서 빠져나오니 어둑했던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겨울의 마지막 달은 이다지도 끝을 몰랐다.

[염탐꾼은 누구인가?

질문이 낯설다면 요새에서 기다리는 자에게 물어라.

두 발 달린 짐승이 전해줄 것이다.]

“과연 그대가 날 도와줄 수 있는 것인가. 신원 미상의 그대를 믿어도 되는 것인가. 저들의 속셈은 무엇인가.”

그녀의 한탄에 답해줄 이 없듯 편지의 답장은 여태껏 오지 않았다. 답장을 보내줄 이가 상황을 타개해 줄 구원자이며, 그 구원자가 포르테 들라크루아일 것이라는 추측은 혼자만의 생각이다.

나는 어쩌다 중요한 사실을 망각했을까. 스스로에게 의심이 샘솟았다. 이리도 휘둘려지니 작전사령관이라는 높은 자리에 왕녀라는 신분만으로 오른 그녀에게는 수많은 생명을 좌우할 군사통제권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보단 전장에 조예가 깊은 포르테 들라크루아가 차라리 현명하겠지. 그러나 포르테가 그녀만큼의 권력을 가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왕비의 서거 후 황제의 명으로 마족 토벌전을 성공으로 이끈 전쟁 영웅 포르테가 직전까지 중령에 머물렀던 이유는 비어비리터파의 견제 때문이었다. 중령을 단 지 5년이나 지났고 키아나트리체 마족 토벌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완수했는데도 장성은커녕 대령으로 진급하지 못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니냐롯트처럼 태어날 때부터 왕족이거나 귀족인 셀로니아 가문 출신이 아닌 어빌리터들은 대령 이상의 계급을 달지 못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만연했다.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어빌리터가 높은 계급을 가지게 된다면 휘두를 수 있는 권력도 커지므로 다수의 비어빌리터의 공포가 섞인 규칙이다.

키아나트리체에 존재하던 마족을 상당수 몰아낸 포르테의 공적이라면 멜가로스크 자작의 준장의 지위를 빼앗아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걸 귀족들이 수수방관 지켜보진 않을 것이다. 포르테는 마족만 멸할 수 있다면 그만이라는 태도니 그만큼 이용하기 좋은 말도 없었다. 왕녀는 그런 포르테 들라크루아가 처음엔 원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왜 백장미 부대를 선발로 나라카 토벌을 강행했을까. 때늦은 의문을 표하니 머리 한편이 안개라도 낀 듯 복잡했다.

사륜구동차가 멈췄다. 대기하고 있던 군인이 친히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충성. 먼 길 걸음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미노타는?”

“어제보다 움직임이 미미합니다.”

“방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주시해라. 특이점이 보이면 곧바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니냐롯트는 미노타의 기세가 줄었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이대로 인류 연합군이 도착하고 서서히 전쟁이 종식된다면 전흔 수습은 버겁지 않다.

부재하는 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 들은 그녀는 혼자 있겠다고 사람을 물리고 지휘본부 천막으로 들어갔다.

“하아.”

안은 여러 전술 장비들, 참모들과 방어전 의논을 거친 흔적들, 그녀 앞으로 들어온 보고서들로 어지럽혀 있었다. 지친 그녀는 휴식을 위해 의자에 앉았다.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아팠다.

전투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눈이 얼마큼 내리나 창문 밖을 확인하던 그녀는 오랜 친우가 하늘에서 내려오자 반가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새 한 마리가 어깨에 앉았다.

“오랜만이구나. 좋은 소식을 가져왔느냐.”

이 새는 그녀가 이름 모를 사람에게 보냈던 그 새다. 울지 않는 짐승은 턱 밑에 정수리를 비비며 그저 좋아했다. 기대 반, 포기 반. 니냐롯트는 살며시 손을 들어 새의 발목에 있는 쪽지를 살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회신이 담겨있었다. 침착하게 말린 종이를 펼쳐 글자를 읽는 니냐롯트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명령대로 미노타의 셋째 왕자와 접선. 미노타 왕실이 마족에게 넘어갔다는 증언 확보. 이 전쟁은 의도되었다. 미노타가 움직였다면 뒤따라 마족이 움직일 가능성이 농후.]

[나라카의 마족도 낌새가 이상하다. 부대 대원들이 섣부르게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친근한 이로 의태한 서큐버스가 수신자의 근처에 있을 것이다. 편지도 마족에 손에 들어갈 위험이 있으니 자세한 정보는 줄이겠다. 믿어선 안 되는 자를 감별해라. 종이는 태우도록.]

“이게… 무슨……!”

짐작대로 요새에 남은 사람은 포르테 들라크루아였던 것이다. 포르테는 기억에 없는 니냐롯트의 명령으로 미노타의 셋째 왕자와 접선하기 위해 남들의 눈을 속인 것처럼 보인다.

전장의 영웅이 그녀의 명령을 들은 것도 놀라운데 미노타의 뒤에 마족이 있었다는 글이 니냐롯트가 가진 상식의 벽에 막혔다. 그 고고하고 자존심 강한 마족이 하찮다고 여기는 인간과 협력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렇지만 과연 가장 거슬리는 단어는 서큐버스다. 그녀는 문자를 뇌리에서 되뇌며 누가 볼까 편지를 불에 태워 없앴다. 사람의 마음에 간섭하는 존재가 가까이 있다니. 그녀를 괴롭히는 끔찍한 악몽과 특정 기억이 흐릿해진 이유도 다 그 때문인가?

“나는… 틀렸던 건가. 역시 그들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꼭두각시 장난감이란 말인가.”

정체 모를 마족에게 또다시 농락당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막무가내의 외침이 아른거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해야만 했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녀가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았다.

마음이 울적해지자 손에서 전류가 흘렀다. 따끔함에 놀란 니냐롯트가 눈을 뜨자 미약하게 흔들거렸던 희미한 이미지가 선명해졌다.

“그래, 나는…….”

덕분에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고양이 수인화 사건 때 루이나가 아로즈네그 소위에게서 전언을 받았다. 미노타와 관련된 포르테 들라크루아의 편지. 사이가 썩 좋은 편이 아니던 포르테와 그녀가 연락을 교환하게 된 계기는 그때부터였다. 그때 포르테에게서 이런 서신이 왔었다.

[미노타의 왕자라고 주장하는 자가 긴밀히 보호를 요청했다. 미노타를 마족이 잠식했다는 신용하기 어려운 주장이 있었다. 사실 확인을 도와주었으면 좋겠군.]

그녀가 왜 이런 중요한 사실을 내게 비밀스레 전달했을까. 거기까지 떠올리니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그녀는 중요한 정보들을 확실히 잊어버렸다.

그런 짓을 벌일 이는 누구인가. 내가 마족의 존재를 알아챘다는 사실을 알던 이는 포르테 들라크루아의 편지를 먼저 읽었던 루이나가 있다.

하지만 늙지 않는 마족과 달리 루이나는 어릴 적부터 함께해 왔다. 그녀를 마족이라 치부하기엔 인간이라는 증거가 많다. 그녀조차 기억이 지워졌거나 혹은 아무것도 모를 가능성이 높다. 나라면 몸이 먼저 나가는 루이나에게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거야.

그렇게 되면 그녀에게 돌연 마족 이야기를 했던 사람은 두 사람이 남았다. 첫째는 류제 신리. 둘째는―

니냐롯트는 어째서인지 렌 지미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가 알고 있던 거였나? 그럴 리가. 그렇다면 그가 바로 마족, 서큐버스인가?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못할 그때, 허락도 없이 막사 문이 젖혀졌다. 생각에 빠진 그녀의 정신이 현실로 돌아오자 밖에서 커다란 소란이 이는 소리가 들렸다. 참모들이 연이어 들이닥쳤다.

“큰일 났습니다. 사령관님, 마족입니다! 숫자는 측정 불가. 가장 강한 마족은 등급2에 해당합니다.”

“하늘에서 미노타군이 마족과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땅에서는 구울이 쏟아집니다!”

“5번, 7번, 9번, 12번 방어선이 무너졌습니다. 코드 레드. 지금 병력으로 방어력이 부족합니다!”

“…진정하라. 어느 때라도 냉정을 잃지 마.”

“사령관님, 하지만―”

“우리의 적이 누가 되었건 쓰러뜨려야 하는 것은 변함없다.”

포르테의 전언대로다. 그때가 작년 가을쯤이니 미노타가 마족의 수중에 떨어진 지는 오래다. 나는 그걸 미리 알고 있었다. 머릿속에 스치는 확신이 명확해졌다.

그녀가 새로운 군용 기간트리카 ‘데이브레이크’를 제작한 이유. 그건 나라카의 마기를 견디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미노타의 셋째 왕자의 증언을 토대로 키아나트리체의 기간트리카군이 서큐버스에게 세뇌당하지 않도록 기존 기간트리카보다 정신 방어력을 높이고 장갑 해제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마족을 상대하는 자들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과거의 그녀는 학생을 납치하려 한 미노타의 징벌과 야망인 나라카 토벌을 사이에 두고 정답을 고민했다. 어느 것을 택해도 함정일 것만 같은 데다 미노타가 마족에게 넘어간 것처럼 학교에도 마족이 있다는 의심을 했기 때문이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이유는 여전히 깜깜하다.

켕기는 것이 있으니 나라카 토벌을 계획한 척하고 포르테 들라크루아를 호세마타 요새에 남겼다. 일기장에 혹시 모를 힌트를 남겨둔 것도 이제 떠오른다. 모든 대비를 한 그녀는 가트 회의에서 엄포를 놓고 미노타가 어찌 움직일지 가만 지켜보았다.

그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없다. 기억이 지워진 그녀가 나라카 토벌을 강행하니 미노타의 뒤에 있는 마족이 지금 움직였다.

모든 것이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 이대로라면 마족은 미노타처럼 키아나트리체를 정복할 것이다. 이전보다도 못한, 말 그대로 인간들이 마족들의 가축으로 전락하는 셈이다.

마족의 목적은 둘째 치고, 그럼 귀족파의 꿍꿍이는 뭐지? 아무래도 이와 얽힌 저들의 꿍꿍이가 거뭇하다. 그들은 정말로 내가, 키아나트리체가, 인간들이 마족에게 굴복하기를 바란 것인가? 마족이 미노타를 앞세워 침공할 줄 알아서 내게 나라카 토벌을 종용했나?

어빌리터인 내가 지도자가 되느니 차라리 키아나트리체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는 것일지도. 어빌리터를 싫어하는 극단적인 귀족파에 있어서 이상적인 시나리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력에 미친 짐승도 아니고 어빌리터가 싫다는 이유로 인간이 마족과 손을 잡는다는 추측은 과했다.

“포격 준비!”

이유를 불문하고 마족들의 손아귀에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버티자. 며칠 후면 인류 연합군이 도착한다. 인간은 마족을 멸할 도구를 끊임없이 개발해 왔다. 쾌락을 좇으며 인간을 무시하고 늘 제자리에 머무르는 마족들과 달랐다.

“물러서지 마라! 전원 전투 준비. 우리가 여기서 한 마족이라도 더 죽여야만 승리의 가능성이 있다! 버텨라!”

기간트리카를 장갑한 그녀가 당당히 전장에 나섰다. 그녀의 주변으로 그녀의 친위대와 높은 척도의 장교들이 섰다. 칠전팔기. 수많은 마족들과의 전투 끝에 살아남은 정예병들이 그녀의 곁에 있었다.

“아하하! 하하하하!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가련한 가축아, 부활할 마왕님의 첫 제물이 되어라.”

“마족 부활의 때가 머지않았다. 만찬의 시간이다!”

셀 수 없는 마족들과 미노타의 기간트리카가 하늘을 채웠다. 본 적 없는 전성기 마족의 시절로 돌아간 게 아닐까 두렵다. 하지만 뭐랄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짐작하고 있었던 것만 같다.

“발사!”

“마법 공격을 우선적으로 막아라! 배리어 구축!”

“소대장님, 마족 분파 식별 완료했습니다. 데이터 전송합니다.”

“움직임은 최소한으로. 정확히 핵을 노린다. 가자!”

마족들의 마법이 전장을 흩뜨려 놓았다. 쏟아지는 구울들이 동료를 낚아채 목을 부러뜨려도 미사일은 날아갔다. 원거리, 근거리, 보조, 모든 계열의 어빌리티가 부딪히고 상쇄되었다. 그 틈으로 기어들어 간 비어빌리터들이 전장을 누비며 그들만의 무기로 구울을 쓰러뜨렸다.

모든 이가 힘을 합쳐 싸우는 순간 폭약으로 터진 흙먼지가 니냐롯트의 얼굴에 스쳤다.

이 전쟁이 패배로 끝나면 그녀의 목숨은 위험하다. 최악의 가정으로 귀족파가 왕가의 목숨을 팔아 마족에게 굴복할지도 모르지. 기억을 잃기 전 그녀가 무엇인가를 해냈기를 바라는 수밖에.

어리석은 누군가의 얼굴이 스쳤다.

“와라!”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뇌했다. 의태한 마족의 손에 농락당하든, 귀족의 계략에 넘어갔든 그녀는 과거의 자신이 만들어놓은 무기들을 빠짐없이 붙잡아 승리를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다.

번개가 전장을 휩쓸며 적들에게 내리꽂혔다. 전류가 흘러 뇌에 충격이 가해지자 높은 정신 방어력을 가진 몇몇 미노타의 군인들의 눈빛이 돌아왔다.

몸을 비틀며 기괴한 비명을 지르던 미노타군의 아무것도 비치지 않던 탁한 눈에 생기가 돌았다. 현장을 목격한 생기는 두려움이 되었다.

“어… 어어. 내가 왜 여기에…….”

“……?! 이곳은… 어떻게 된 일이야?”

“마…마족? 저 기간트리카는……!”

“키아나트리체인?”

기억의 공백이 혼란스러운 와중 마족들과 키아나트리체의 기간트리카들이 전장을 나도는 모습에 한 미노타 군인은 모든 것이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같은 인간을 공격하는 자신들의 동료를 그네들조차 납득할 수 없었다.

“미노타군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배신자 미노타 자식들은 사령관님께 맡기고 마족 저지에 집중해!”

“6번 방어선이 무너졌습니다. 지원군, 지원군……!”

니냐롯트의 직감이 맞았다. 아무리 미노타가 식량난으로 굶주릴지언정 인간을 장난감으로 여기는 마족과 진정으로 손을 잡았을 리가 없다. 이 전쟁은 만들어졌다고 포르테 들라크루아는 전했다. 저들도 서큐버스에게 세뇌당한 것이다.

인간들 정치에 끼어 마족들이 움직인 이유는 마왕에 대한 복수인가? 이이제이로 인간들을 처리하는 건 마족들의 성미와 맞지 않다. 저 괴물들의 목적은 모른다. 몰라도 싸워서 이겨야 한다.

“너희의 적은 우리가 아니다!”

키아나트리체의 신형 기간트리카는 방어 가능한 강력한 전기 공격으로 니냐롯트가 차례차례 미노타군을 기절시켰다. 그러나 전뇌는 그녀에게도 무지가 남은 것처럼 미노타군에게 서큐버스가 걸어놓은 기억의 잠금장치를 완벽하게 끌러주지는 못했다.

* * *

성큼 나서는 걸음걸이를 신경질적인 구둣발 소리가 나란히 뒤따랐다. 광원이 모호한 빛이 일렬로 늘어진 기둥을 훑어 산란하니 손발을 교차하는 검은 실루엣이 일렁거렸다. 마기가 그림자 진 실내에 아득히 들어오는 황혼은 마왕성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끝까지 귀찮게 하는군!”

불평 담긴 외침이 매끄러운 검은 대리석을 쓸었다. 혼란한 틈을 타 마왕성으로 복귀한 그녀는 미노타군처럼 세뇌하려고 했던 키아나트리체의 기간트리카군에게서 예기치 못한 방어막을 발견한 데다 렌 지미를 처리하려 보냈던 부하도 감감무소식이라 심기가 불편했다.

상대를 정신적으로 지배해서 능욕하기 좋아하는 서큐버스는 다분히 자기중심적이고 고상한 존재이지만 강한 자가 대접받는 병마족처럼 위대한 군주만큼은 받들어 모셨으면 한다.

보고는커녕 재깍재깍 연락도 없는 부하의 행태는 그렇다고 치고 완벽하게 세운 계획이 하찮은 것들 때문에 조금씩 엇나간 건 누군들 선호하지 않았다.

“지금 태평하게 식사할 때야?”

또각, 또각. 세찬 발걸음이 멈추었다. 언젠가 어떤 왕조에서 쓰던 것이라고 했던가. 그녀가 도착한 거대한 홀에는 과거 마왕이 식사를 즐기던 긴 테이블이 있었다.

“조급함으로 좋은 날을 망치지 마라. 여유로움은 똑똑한 사고를 만든다, 몽마의 군주여.”

테이블 위에 만찬 메뉴로 오른 인간에게서 흐르는 피를 와인 잔에 따라 홀짝거리던 율폰이 무신경하게 말했다.

마족의 부흥을 위해 어빌리터를 납치하고 있으나 시대를 잘 타고난 반푼이들이 대부분이다. 어빌리터는 마족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재료지만 내재된 증오가 적으면 인간보다 못한 마족이 될 뿐이다.

“왕녀가 기간트리카에 개짓거리를 해놨어. 정신 방어 단계를 높인 데다 장갑 강제 해제에 조건을 걸었지. 덕분에 ‘러다이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졌다고 마가릿 무능한 년아, 변명이라도 해보시지?”

“무능이라. 내가? 이 몸이? 위대한 페스트의 왕이? 마왕성에 갇혀버린 나는 비애로 얼룩져 절망했지만 원하는 만큼 기계를 개조해 주었다. 자비로움과 무능을 착각하지 마라. 네 아둔함을 나한테 돌리지 마라. 왕녀의 감시를 소홀히 한 실책에서 눈을 돌리지 마라, 플로냐, 라미아, 놀레이트.”

꺾쇠처럼 기다란 다리를 꼬고 비죽거린 병마 페스트의 왕 마가릿은 비틀어진 날개를 쓰다듬으며 미나를 고깝게 흘겼다. 신선한 피가 흐르는 만찬회를 즐기려는데 방해자가 난입한 것이 싫은 모양이다.

무능하다고 투덜거린 건 애꿎은 화풀이였기에 미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남 탓을 노련하게 빈정거린 마가릿은 눈독 들이고 있던 인간의 팔 하나를 뜯었다. 늘 끼고 있는 하얀 장갑은 피로 얼룩져 다갈색이 되었다. 병마족의 손이 닿은 시체에는 검은 흔적이 우수수 퍼져나갔다. 미식가인 마가릿은 입을 벌려 뼈까지 고고하게 씹어 먹었다. 잠자코 보던 미나도 착석했다.

“열받게도 저 미친년이 맞는 말을 할 줄이야. 제길, 의심받지 않게 단단히 세뇌시켜 놨는데 하등한 인간 주제에 쓸데없는 짓 하기는. 그새 ‘러다이트’의 파훼법을 찾았어!”

왕녀와 머리싸움에서 졌다는 사실이 미나는 분했다. 타고시아 해변의 악몽 때도 그렇고 니냐롯트 왕녀는 손바닥 위에서 농락당하는 주제에 이따금 통제를 이상한 방향으로 벗어나곤 한다. 인간들을 움직일 권력이 있으니 가장 쉬우면서도 방심할 수 없는 존재다.

그들이 계획을 성공하기 위해 마가릿이 만든 기계는 두 개다. ‘러다이트’와 ‘옵시그나티오’. 제립학교를 습격한 마가릿의 실수로 인간들의 손에 넘어간 기구는 어빌리티를 봉인하는 ‘옵시그나티오’다. 기간트리카 장갑을 강제 해제시키는 ‘러다이트’는 미나가 부활체를 마왕성으로 운반할 때 반항을 잠재우기 위해 사용할 목적이었다.

“내가 공들인 미노타의 병력은 영양가가 있었나?”

“생색내지 마. 너보단 내 부하들이 공을 들였지. 영양가야 없으면 곤란해. 그것도 잠깐이겠지.”

“없어도 상관없어. 미노타의 왕실을 도륙하는 건 좀 즐거웠거든.”

율폰이 나른하게 웃자 미나도 따라 입가를 실룩거렸다. 미노타에서 한 거라고는 우두머리의 목을 자른 것밖에 없는 주제에. 내 부하들이 저항하는 미노타인들을 구울로 만들고 어빌리터들을 세뇌시키느라 수족(手足)이 부족해서 군주인 내가 직접 발로 뛰어야만 했단 말이지.

“그럼 뭐가 문제지? 선별은 유능한 동포들에게 맡기면 돼. 우리를 토벌하겠다 제 발로 찾아온 어빌리터만으로도 지하 감옥이 미어터지려고 하지 않나. 여유롭게 생각하라고.”

예정대로 전쟁은 일어났고 수많은 어빌리터가 밀집되었다. 전쟁이 있으면 증오 또한 키우기 쉽다. 그녀가 부활체를 데려와 기억을 깨우고 마왕의 힘이 부활하기만 하면 작전 진행은 더할 나위 없이 수월했다.

“거슬리는 건 ‘러다이트’뿐만이 아냐. 왕녀가 자기 어빌리티로 미노타군의 세뇌를 풀려고 했어. 세뇌당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거 같은데 언제부터 제정신이었는지 나조차도 몰라.”

“왕녀의 어빌리티라면… 공기 중의 드라코니스 입자를 자극해 물과 전기 속성으로 바꾸는 능력이지. 컨트롤이 안 된다고 들었다만.”

“일일이 감정에 휘둘려 비구름을 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장한 거겠지.”

“오호라. 전기를 이용해 뇌에 충격을 주는 방법인가.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인간 주제에 독특해.”

“암시가 약하면 충격으로 마법이 풀릴 수 있어. 어차피 전쟁은 터졌고 목적은 이뤘지만.”

원하는 바는 이루었다는 정신 승리를 해보려 하지만 미나는 속에서 분함이 가시질 않았다. 사람을 홀리는 어여쁜 얼굴에 주름이 지니 악마의 면상이 드러났다.

“망할.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네. 언제부터 왕녀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어빌리티를 조절할 수 있었지? 류제 신리에게 공을 들이는 사이 감시를 빠져나갔나. 하, 학교에 숨어든 마족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차라리 백치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인간의 정기를 주로 섭취하는 미나는 인육을 즐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무엇인가를 물어뜯고 싶은 기분이었다. 테이블 위에 돼지 목처럼 남은 인간의 머리를 든 그녀는 그자의 입술을 물어뜯어 키스했다. 그녀의 입으로 차가운 피가 흘러내렸다.

피식거린 율폰은 의자에 팔을 나른하게 기댔다. 와인 잔을 흔들며 응고하는 혈액을 관찰하던 그는 피에 혀를 대고 불꽃으로 만들어 삼켰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수렁에 빠질 텐데도 순순히 당하지 않는 인간. 궁지에 몰려도 포기하지 않다니 미련하군.”

“유유자적할 때가 아니야, 율폰. 왕녀도 왕녀지만 부활체를 이곳으로 데려와야 하는데 ‘러다이트’를 쓰지 못한다면 어떻게 류제 신리를 붙잡을 거야? 새 기간트리카는 이제 내 정신계 마법도 막힌단 말이야!”

미나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을 닦았다. 붉은 립스틱이 번진 것처럼 새하얀 피부에 혈액이 발렸다. 황홀하게 우적거리던 마가릿이 듣다못해 코웃음을 쳤다.

“이봐, 뇌 주름 적은 서큐버스. 인간이란 인간이기에 인간이지. 드라코니스 입자로 이루어졌어도 기간트리카는 육체가 아니야.”

“나도 알아! 어빌리터들이 기간트리카를 순순히 해제할 거 같아? 인간 사냥이 한창인데?”

“네 역할을 페스트에게 양보하는 건 어때.”

“죽어도 싫어!”

미나에게는 마왕만큼은 반드시 그녀의 손으로 부활시켜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그 고집을 쉽사리 꺾지 못했던 율폰은 쯧 혀를 차며 화염 인자로 마가릿의 인자를 건드렸다.

“병마의 군주여, ‘러다이트’의 쓸모를 끌어올릴 수 있겠나.”

역병 인자에 물들어 까맣게 탄 것 같은 팔을 으적으적 씹어 먹던 병마의 군주는 일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못마땅하게 저작 운동을 했다.

고민하던 그녀는 얼굴을 동서남북으로 구기며 인간의 손톱 끝까지 으적으적 씹어 이물질(군번줄)을 퉤 뱉었다. 아무리 서큐버스가 눈에 거슬려도 인간들 주제에 ‘러다이트’의 해결법을 모색했다는 사실이 괘씸했다.

“인간들이 구버전 슬렉터를 업그레이드한 방향에 따라서 다르겠지. 미천한 개미와 다름없는 가축들은 슬렉터가 드라코니스 입자를 호출해 정보를 저장하는 부분을 건드렸을 거다. 기간트리카 자체에 사용자 정보가 내재되도록 설계를 바꾸었다면 슬렉터 신호를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현재의 ‘러다이트’는 그래서 무용지물이 됐을 가능성이 커.”

본능적이고 먹지도 않을 식량의 홀로코스트를 즐기며 뒷일은 나 몰라라 제멋대로인 병마족이지만 오파츠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상한 성격인 마가릿은 다른 마족이 이해하지 못할 단어를 주절거리며 저 혼자 납득했다.

“하, 끔찍하기 짝이 없군. 드라코니스 입자는 마왕님의, 우리 마족의, 용의 후손들의 것인데.”

“그렇게 따지면 어빌리터의 것이기도 하지. 드라코니스 입자는 의지에 따라 흐르는 것일 뿐 누구도 소유할 수 없어.”

“닥쳐, 이 배신자!”

마가릿의 말을 반쯤 이해하지 못해 심통이 난 미나가 금세 아는 척하자 마가릿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병마의 군주의 외침이 마왕성 기둥을 따라 진동했다. 어찌나 고함이 큰지 거대한 청동 의자가 들썩거리자 있는지도 몰랐던 나콜렙시가 깨어나 잠꼬대하듯 대꾸했다.

“협곡에서 마왕님의 힘을 확인할 때는 좋았지. 인간들에게 ‘러다이트’를 노출하지 말았어야 했어. 아니면 ‘옵시그나티오’를 밀든가. 똑같이 드라코니스 입자를 건드렸다지만 ‘옵시그나티오’는 인간들의 어빌리티가 드라코니스 입자를 건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거니 기술을 알아도 어찌하지 못할 거 아냐.”

율폰의 부탁을 받고 포르테 들라크루아를 상대로 ‘러다이트’를 실험했었던 나콜렙시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자는 줄 알았더니 다툼 소리를 듣고 깨어난 모양이다. 코를 킁킁거리는 그녀는 맛있는 냄새가 나는 테이블을 쳐다보며 침을 흘렸다.

나콜렙시의 말대로 비밀 병기라고 하지만 기능 테스트 문제로 인계에 잦게 유출되기는 했다. 연장자에 어울리게 일침을 가한 나콜렙시가 탐스러운 갈비뼈를 뜯으며 첨언했다.

“그리고 마왕의 부활체를 폭주시키는 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야. 아주 쉽던데 왜 ‘러다이트’가 꼭 필요한 거야?”

“난 부활체를 폭주시키려는 게 아니야. 마왕님을 부활시키려는 거지. 부활시키기 위해선 자신이 누구인가 똑똑히 마주해야 해. 머리를 휘젓지 않으면 본성이 나오기 힘들거든.”

“플로냐는 고상하네.”

“고상한 게 아니라 지금 그게 가장 적절한 방법이래도!”

여러 번 마왕의 부활체를 자극한 바 있던 미나가 차마 부탁은 하지 못하고 변명만 늘어놓았다. 만찬회 멤버들은 입을 다물고 각기 다른 생각에 빠졌다. 서큐버스와 척을 지는 페스트는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다가 선심 썼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널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고 흠모하고 경애하는 마왕님을 위해서라면야. 재료가 있으면 못할 것도 없다.”

“재료라. 알라마니 기술관인가. 그곳도 방해되니 곧 파괴할 예정이었지. 병마의 군주여, 오랜만의 외출이 되겠군.”

마왕성 밖에 나가는 것을 허락해 준다는 율폰의 말에 마가릿이 깔깔거리며 두 팔을 벌렸다. 이 답답한 곳에서 나가 살육을 즐길 수 있다니 몸이 근질거려서 황홀감이 차올랐다.

“플로냐여, 그럼 네가 ‘옵시그나티오’를 사용해라.”

기간트리카 장갑을 강제 해제시키는 ‘러다이트’와는 다르지만 어빌리티를 봉인하는 ‘옵시그나티오’면 나라카와 가까운 호세마타 요새에서 서큐버스도 부활체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율폰 네가 필요하던 거잖아.”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키아나트리체의 왕가를 굴복시킨다면야.”

어차피 류제 신리도 지금은 인간. 어빌리티를 제한하면 물리 공격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서큐버스라도 못할 것 없다. 고민하던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집을 부리면 때만 늦춰질 뿐이다.

두 마족이 사용하는 도구의 전환. 이는 전쟁 이벤트에서 본디 없었던 일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근소한 차이겠지만 재경의 행동이 그러하듯 근소한 차이가 모여 미래를 바꾸었다.

“곧 인류 연합군이 키아나트리체에 도착하겠지. 서둘러 움직여.”

“연합?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거창도 하구나. 가축들이 떼로 모인다고 뭐가 달라지지?”

“작은 벌도 여럿 모이면 성가심을 넘어선다. 강한 독을 가진 벌을 저지하려면 불이 필요한 법이지. 보다 깊은 증오를 위해 우리가 나설 때야.”

“바로, 여기, 지금부터인가! 기분이 좋아졌어. 인간들이 드라코니스 입자를 다루는 기술은 조잡하기 그지없지. 알라마니 기술관이라. 그들에게 한 수 알려주러 가겠다.”

오랜만에 나들이를 갈 생각에 신이 난 마가릿이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날개를 펄럭거렸다.

“그럼 예정대로 류제 신리와 접촉할게.”

“나는 좀 더 만찬을 즐기다가 아가타로 가겠다.”

“늑장 부리지 마. 호세마타 요새야. 잊지 마.”

그거야 어렵지 않다. 자신이 특출한 줄 아는 무능한 가축들은 몸이 성치 못한 영웅을 버리고 새로운 영웅을 만들기 원한다. 자신만의 신념과 확신을 가진 포르테 들라크루아와는 다르게 완벽하게 제어할 꼭두각시 영웅. 그런 인간들의 하찮은 심리는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그 영웅은 인간들의 영웅이 아니라 우리들의 왕이 될 테지만.

“나콜렙시, 그만 일어나. 우리 이야기 제대로 들었어?”

“으음…….”

잠시 깨어났던 나콜렙시는 테이블에 있는 인간을 먹다가 잠들어 그들의 대화를 하나도 듣지 않았다. 졸려서 눈이 안 떠지던 나콜렙시가 투정을 부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가야 해? ‘러다이트’도 아직인데 기간트리카가 있으면 내 수면 마법은 무용지물이잖아. 마왕님이 오실 때까지 그냥 잘래.”

“네 마법은 하나가 아니잖아, 이 망할 수마(睡魔, 水魔) 니켈. 마왕님께 알랑거렸던 젖도 덜 뗀 가축을 찢어 죽일 거라며?”

“귀찮아졌어. 어차피 부활하면 그깟 인간 따위 다 잊고 우리들의 소중한 마왕님이 될 텐데 뭘.”

“잠자는 동안 잊었겠지만 나콜렙시, 우리는 수가 압도적으로 부족해. 네가 군주의 힘으로 분파를 통솔하고 비어빌리터들을 몰살하기로 했잖아.”

“으음… 그럼 지하 감옥을 지키는―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 다시 눈을 감는 잠꾸러기 니켈을 보자니 부아가 치민다. 그들에게는 좀 더 강한 증오를 가진 어빌리터가 필요했다. 마왕님이 올 채비를 포함해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어쩜 하는 일도 없이 매일같이 잠만 자는지. 천 년의 세월 동안 쌓아 올린 증오와 지혜와 힘을 왜 잠에 낭비할까. 이해할 수 없는 미나는 게으름에 치를 떨었다.

억지로 떠밀리긴 했지만 나콜렙시는 사실 인간들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소중한 마왕이 돌아오기만 하면 되었다.

그녀는 오래전 마왕과 함께 처음 나라카에 당도했던 순간을 추억했다. 푸른 하늘을 검게 뒤덮던 그때의 복수심, 그때의 증오, 그때의 분노.

아주 먼 옛날의 세월 동안 바래지고 으스러져 나콜렙시는 이제 그 감정이 무엇인지 혼탁해졌다. 하지만 마왕은, 그녀의 사랑하는 사람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날개를 흔들어 깨어났다.

이로써 마족의 사천왕이 모두 인계에 출전할 준비를 마쳤다.

* * *

주적 마족과 대적하느라 미노타와의 국경선 위주로 만들어졌던 방어선이 삽시간에 무너졌다.

키아나트리체는 니냐롯트의 전격에 기절한 미노타군을 포박하고 포로수용소에 잡아넣었지만 세뇌 탓에 포로들은 반항이 극심하고 공격적이었다. 니냐롯트는 수용소가 한계에 봉착하기 전에 이들의 세뇌를 풀어야만 하는 숙제가 생겼다.

문득 인계에 난입해 재앙을 뻗치곤 했던 마족은 보통 단독으로 행동했다. 약한 인간이야 떼를 짓지 사냥하는 존재인 그네들은 그럴 필요 없다는 강자의 사상이 두드려졌다. 지금처럼 마족들이 무리로 덤벼드는 경우는 기록상 처음이라 지휘통제실에서는 미노타군을 상대하기에 효율적이었던 부대를 재편성해야만 했다.

마족을 상대한다면 마족 분파별과 등급별에 따라 최소 8인, 최대 20인의 어빌리터의 협동이 필요하다. 일반군의 협조도 필요하지만 긴급 상황인 지금은 차치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편제가 생겼다.

지휘통제실은 척도와 능력을 고려하여 편성한 중대를 최소 단위로 기준을 잡아 전투 효율을 증진시켰다. 기간트리카 부대의 전 대원이 어빌리터이기에 가능했다.

마족과의 전투 경험이 없는 햇병아리들과 얽히고 싶지 않은 군인들도 있겠지만 당장 생존이 우선이다. 편성된 중대는 흐트러진 방어선 근방에서 마족과 각개전투를 펼쳤다.

마족들에게 농락당해 배신자의 탈을 뒤집어쓴 미노타를 보자니 언젠가 키아나트리체도 마족에게 삼켜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군인들 사이에 만연했다. 예고 없는 등장부터 다분히 비정상적인 마족의 공격은 그만큼 무차별적이었다.

거기에 납치 행위가 관찰되었으나 마족이 인간을 나라카로 끌고 가는 전례는 많았다. 식량을 보존하는 개미나 벌 같은 마족의 습성으로 지레짐작한 지휘부는 전력 손실을 줄이고 마족의 척살에 집중한 작전을 세웠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반항할지라도 누구도 인간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입에 담지 않았다. 미노타군과는 비교 불가한 마족들의 공격은 정신을 피폐하게 가라앉혔다. 각개전투를 하고 있노라면 과연 그들이 열세인가 우세인가도 판별할 수 없다. 그저 마족을 해치우고 재편성되고 출격하는 것의 반복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수일 내로 인류 연합군이 도착하며 정신계 어빌리터의 노력으로 세뇌가 풀린 미노타 군인의 비율이 다소 증가했다는 것이다. 포로수용소에 끌려온 그들은 미노타가 저지른 짓에 두려움에 떨며 순순히 항복했다.

포로수용소로 옮기기 전까지 협동해 마족을 쓰러뜨렸지만 세뇌가 어디까지 풀렸는지 모르니 포로수용소 내부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신을 차린 포로들은 억울한 심정에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훈련 중 집합이 있어서 연병장에 모였는데 그 이후부터 생각이 안 납니다. 그때가 11월이었나. 겨울 대비 진지 공사를 시작했을 때니 그랬을 겁니다.”

“맞습니다. 위대한 후툼께서 위기를 힘을 합쳐 이겨나가자 친히 연설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로 머릿속이 깜깜해져서…….”

“이건… 우린… 정말……! 아무리 식량이 부족하다지만 키아나트리체를 공격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우리 미노타는 다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빌리터를 납치하라 지시했다니, 더더욱 모르는 일입니다. 위대한 후툼은 그런 비겁한 짓거리는 하지 않습니다!”

니냐롯트는 제정신을 차린 소수의 미노타군에게 세뇌당한 전우들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계급이 높은 장교조차도 전쟁이 터진 경위를 몰랐다. 부정을 하려 해도 제정신이 아닌 전우들을 본 그네들은 변명을 잃었다. 인간을 공격하는 습성만이 남은 짐승 같은 자들과 같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역겨웠다.

정신계 어빌리터들도 속수무책이자 니냐롯트가 미노타 포로들의 머리에 전류를 흘려보내 세뇌 해제를 시도했지만 정신을 차리는 이는 역시 드물었다. 마법 인자가 깊이 침투해서일까. 저들을, 그리고 니냐롯트 자신도 완벽히 정상으로 되돌리려면 이 마법을 건 마족을 붙잡아 쓰러뜨리거나 해제하도록 만들어야만 할지도 몰랐다. 과연 그게 가능할 것인가는 불확실하다.

“고약한 마족들 같으니.”

“노림수를 모르겠습니다. 인간들을 잡아다가 나라카에서 고사라도 지내는 건가.”

수통에 물을 담아 마시던 류제가 움찔거렸다. 마족의 집념이 어찌나 치열한지 삼일 밤낮으로 마족 하나와 붙들고 싸울 때가 왕왕 있었다.

그의 전투지는 이제 미노타 국경 근방의 방어선이 아니다. 같은 중대에 속했던 비키와 유네와도 흩어졌다. 다들 어디에서 싸우고 있는지 알아도 찾아갈 수 없으니 다시 만난다면 그것이 기적이었다.

“누가 마왕을 부활시키려고 제물을 모으는 거라는 소리를 하더군요. 그 우스갯소리를 듣고 걱정이 드는 저 자신도 정상이 아닙니다. 막내야, 네 생각은 어떠냐.”

“신빙성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거보지 말입니다.”

등급이 낮은 마족 하나를 처리하고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류제의 중대에서 그의 심장을 철렁이게 하는 추측이 튀어나왔다.

마왕의 부활. 작년 1년간 그에게 접근해 왔던 마족들이 했던 말이, 그에게 속삭이던 유혹이 있었다. 마족이 움직인 이유가 류제 그 때문이라는 진실이 외면하는 그림자 뒤에서 으르렁거렸다.

“안 괜찮아. 반드시 미노타의 뒤에는 마족이 움직여. 마족들이 왜 움직이는 것 같아? 다 널 노리고 있는 거야. 네가 마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

―여기는 델타. 거기 둘칠, 들리나, 오버.

그의 망상을 깨뜨리는 무전이 귀에 박혔다. 기간트리카 안에서 중대를 대표해서 수신을 받은 류제가 동요하지 않은 척 답신했다.

“Lima Charlie. 8중대 둘칠. 병장 류제 신리. 무슨 일이십니까.”

―그쪽에서부터 동 둘둘하나, 남 아홉오넷 마족 접근 중. 등급3 병마족 추측. 처리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수고하도록. 스탠바이하겠다.

“73.”

자리에서 일어난 류제는 통신 받은 장소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멀리 마족이 보인다.

“지시 내려왔습니다.”

“또 마족이야? 하아, 방금 해치운 참이었잖아. 융통성 있게 해주란 말이지.”

“등급3의 병마족이랍니다. 장갑 유의하십시오. 가시죠.”

“더러운 역병 자식들.”

막 불을 붙여 피우던 연초를 뱉은 중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립학교 학생이지만 척도가 높고 강한 탓에 노련한 어빌리터들과 함께하게 된 류제도 어김없이 일어서 마족 척살에 나섰다. 병마족이라. 상당히 까다로운 분파다.

제립학교에서 등급1의 병마족과 싸워 살아남은 그여도 오늘은 운이 좋지 못했다. 마족의 핵은 무사히 파괴했지만 보조 계열 어빌리터인 부중대장 소위가 버프를 걸다 공격당해 팔이 역병 인자에 감염된 것이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인내하는 그녀는 어렵사리 본부 의무관에 실려 갔다. 조금이라도 본부 도착이 늦었다면 팔이 잘려나갔을 것이다.

최소 단위를 유지해야 하는 중대의 자리가 비었으니 그의 중대는 또 재편성되었다. 그만큼 전투 가능한 인원이 빠르게 감소해갔다.

의무대는 부상자들로 넘쳐났고 ‘힐링 팩터’ 수급도 모자란 판에 이대로 가다간 키아나트리체는 필연적으로 궁지에 몰릴 것이다.

수습 중인 옛 전투지에서는 일반군이 구울을 태우는 냄새가 만연했다. 과연 키아나트리체에 희망이란 있는 것일까. 마족들이 어디까지 손을 뻗쳤을까. 렌은 무사할까.

병마족과의 싸움으로 부러진 뼈를 아무렇게나 붙였더니 상처 부위가 쑤셔와 의무관에게 검진을 받고 있던 류제에게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본부에서 정보를 수신받고 각 중대별로 지시를 내리는 지휘통제실 직할 장교다. 서류를 뒤적거리던 장교가 의무관을 둘러보며 말했다.

“8중대 소속 류제 신리 병장, 있나.”

“충성. 8중대 병장 류제 신리. 무슨 일이십니까.”

“사령관님께서 찾으신다. 따라오도록.”

사령관? 지끈거리는 손목을 돌리던 류제는 무거운 자리에 부담감을 삼켰다. 사령관이 누구인지는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런 전장에서 말로만 들리는 그녀는 어지간히 다른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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