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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5월. 신체검사!] (5/112)

외전 [3.5월. 신체검사!]

남성향 하렘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이나, 하물며 미연시 게임에서 잊어버렸다 하면 존재감을 어필하는 캐릭터가 있다.

그야말로 여성의 스리 사이즈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변태’ 캐릭터가 그 예이다.

작가는 그를 등장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적절한 눈 호강 노출과 약간의 망상, 캐릭터의 의외의 모습 등 성격상 잘 부각되지 않는 모습들을 쉽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런 뻔한 도구적 캐릭터는 번번이 수학여행 여탕 훔쳐보기나 해변에서 비키니 입은 여학생의 모습을 보고 코피 뿜는 등의 반응을 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아, 이 캐릭터는 매력이 아주 쭉쭉빵빵하구나.’라고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

이들은(물론 변태 캐릭터가 주인공인 경우가 다반사라도) 전개되는 스토리와 상관없이 내용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부작용이 있지만 대리만족을 충족시키거나 하렘의 출중함 또한 드러내 주어 여러 방면으로 유용한 캐릭터였다.

이런 캐릭터가 게임 초반에 가장 두드러지는 때가 있으니 그게 바로 신체검사 이벤트다.

미연시 「기간트리카 데이브레이크!」의 배경이 되는 아가타 기간트리카 제립학교 역시 입학하고 몇 주 되지 않아 키, 몸무게, 맞춤형 교복 제작을 위한 신체 사이즈, 시력, 청력, 혈액검사 등이 이루어졌는데 주인공이 소속된 1학년 8반도 신체검사를 위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양호실에 호출되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서 대기하던 중 틈만 나면 양호실 신세를 졌던 재경이 ‘나 양호실 처음 와봤어’라고 말하는 같은 반 여학생의 말에 뜨끔, 몸을 움츠렸다.

나는 도대체 몇 번을 온 거지. 재경이 손으로 양호실에 실려 갔던 나날들을 꼽아보았다. 입학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섯 손가락이 꽉 채워지자 재경은 자존심이 상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쪽팔린 심정을 숨기려 류제의 등을 머리로 퉁, 치니 류제가 뒤를 돌아보려고 목을 꺾었다.

“왜 그래?”

“암것도 아냠마.”

다시 변태 캐릭터에 대한 고찰로 돌아와서 이 미연시에도 역시 그런 캐릭터가 존재했는데 그 중요한 역할을 맡은 자가 바로 다름 아닌 렌 지미였다.

기억해 보라, 그의 가방에서 발견된 19금 잡지의 어마어마한 위용을. 하지만 문제는 재경이 그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전반적으로 못 하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원래 스토리에서는 신체검사를 하는 날 렌 지미가 여학생들이 버스트를 재고 있을 때 몰래 숨어들어 가 스리 사이즈를 훔쳐 듣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거꾸로 매달리는 형벌을 받는다.

하지만 중요 이벤트도 아니고 버스트 사이즈가 왜 중요한지 몰랐던 재경은 그가 빙의한 캐릭터의 변태 캐릭터성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왕녀님 봤어? E컵이래! 키도 엄청 크시잖아. 170이라니. 우리 반에서 제일 큰 거 아냐? 진짜 워너비 몸매다.”

“바보야, 남자애들 있잖아. 우리 반에서 제일 큰 사람은…….”

그녀가 뒤에 있는 류제와 렌 그리고 유네를 신경 썼는지 소곤소곤 속삭이며 말을 이었다.

“류제 있잖아. 류제 신리.”

“에이, 류제랑 왕녀님은 비슷할 거 같은데?”

소곤소곤 변태 캐릭터였던 렌 지미가 양호실 안으로 숨어들어 가 스리 사이즈를 훔쳐 듣는 제 역할을 못 하자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엑스트라 캐릭터들이 스스로 정보를 떠들어서 류제의 귀를 가렵게 만들었다.

“봤어? 봤어?! 왕녀님 어빌리티 척도가 70이 나왔대!”

“그게 가능해? 말도 안 되는 수치 아냐?”

“역시라고 해야 하나. 왕녀님은 왕녀님이야. 하아… 난 정말 걱정인걸. 거기에 E라니. E? 그게 가당키나 하냐고. 지체 겸비에 제국의 왕녀에 아름답기까지. 정말 사기적이야.”

“야, 속보야, 속보! 비키 셀로니아 님은 D컵이 나왔대!”

“뭐? 더 커 보이는데? 비키 님이 D컵이면 난 몇 컵인 거야? A? 싫다~”

아까부터 E니 D니 앞에 있던 여학생들이 알파벳 놀음을 하느라 시끄러웠다. ‘나는 분명 대한민국 보통의 건아라고 생각했는데 왜 여기서는 양호실을 수시로 방문하는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가.’에 대하여 고찰하고 있던 재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D컵이란 게 뭐야?”

앞에 있는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에 류제고 유네고 화들짝 놀랐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렌이 함정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유네야 작은 가슴이 콤플렉스라서 암만 남장을 하고 있어도 과연 작년보다는 성장했을까 몰래 재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류제는 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누나들이 많아 여자애들이 저런 이야기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아서 황급히 재경의 입을 틀어막고 입단속을 시켰다.

“쉿, 함부로 말하면 안 돼!”

“므흐는 그으… 으그 느르.”

“레…렌 군도 참. 그런 거는 우린 몰라도 되는 거야.”

그러니까 무슨 뜻인지 알아야 몰라도 되는지 판단할 거 아냐. 재경이 이거 놓으라고 껌딱지처럼 쭈욱 떼려고 했으나 류제의 손은 강경 그 자체였다.

재경은 아무것도 안 알려 주고 입만 막기 급급한 그들이 수상해서 사정없이 노려보다가 제 입을 막는 류제의 손을 꽉 물어버렸다.

“아야!”

“에퉤퉤. 류제 주제에 감히 내 입을 막으려고 하다니. 간도 크시네.”

“물 것까지는 없잖아.”

류제가 침이 묻은 손바닥을 체육복 바지에 비벼 닦았다. 손바닥에는 재경이의 건치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빨리 말해 봐. E컵이니 D컵이니 다 뭔 소리냐고.”

“좀 조용히. 조용히 말해!”

“그래, 렌 군! 조용히이이……!”

둘 다 폭주하는 재경을 막아보려고 했으나 이미 그 괄괄한 목소리가 여자애들의 귀에 들어간 후였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그녀들은 교활한 여우처럼 웃으며 순진한 재경을 놀려대기 시작했다.

“세상에 그것도 모른단 말야? 그 알파벳 전부 등급이야, 등급. 일종의 계~급도라고나 할까.”

“등급?”

“야! 너네 괜한 소리 하지 마.”

“류제, 시꺼 임마! 뭐… 어빌리티 등급 같은 거야?”

“아~니~”

그녀들 중 한 명이 검지를 내저으며 후후 웃었다. 재경이 그래도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를 제외하고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아 조급해졌다.

그럼 뭐야.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난 몇 컵이려나. A가 제일 좋나? 아님 Z? Z가 좋겠다. 거대로봇처럼.

“하하. 어떻게 해. 얘 진짜 모르나 봐. 너 주변에 또래 여자애도 없었냐? 아, 남자애들은 컵 수 안 재는 건 알지? 몰라? 진짜 몰라? 어쩜 생긴 거랑 다르게 노니.”

“그러니까 뭔지 알아야 내가 알 거 아냐. 빨리 말해 봐. 답답하게시리!”

“렌 구우운! 그러니까 우리가 알 필요 없는 거래도!”

분개하는 재경을 놀리는 여학생들은 배를 잡고 자지러지게 웃고 류제나 유네만 난감해했다.

남들이 놀려대도 재경은 컵 수에 대한 감을 잡지 못했다. 여자애는 재고 남자애는 안 잰다고? 그게 뭐야. 남녀 차별이냐!

“아! 참고로 세라 선생님 컵 수, 나 몰래 본 적 있는데 D컵이시더라? 난 적어도 E컵이신 줄 알았어.”

“밑 둘레가 작으셔서 더 커 보이는 걸지도 몰라.”

“너네도 우리 앞에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개인 정보는 혼자만 알고 있으란 말야. 곤란해지잖아.”

“왜, 뭐 어때서. 어차피 보이는 건데. 내 컵 수도 알려줄까? 야한 망상 하면 안 된다?”

“아, 진짜. 왜 나만 왕따시키냐고! 컵 수가 뭐냐니까. 무슨 등급이냐고. 어빌리티 등급 아냐?!”

“아니야아, 진정해 렌구운!”

왕따라는 소리에 유네가 아니라며 전면 부정하며 울상을 지었다.

유네는 렌이 여자 친구를 사귄다면 손잡고 뽀뽀를 하고프다는 그 순수한 꿈을 지켜주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는 렌이 들으면 안 된다고. 오염된단 말야! 하고 유네가 마음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으나 짓궂은 친구들은 잘난 척 심하고 뻐기기 좋아하는 렌이 당황하는 모습을 퍽이나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컵 수는 말야… 여자 가슴 사이즈야. 푸하하! A컵이 제일 작은 거. 내려갈수록 커져. 알겠냐, 이 체리 보이야.”

“진짜 대놓고 그런 소리 하지 말래도! 렌 군이 당황했잖아!”

“남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걸 알려 주는 게 죄냐? 성교육도 제대로 안 받은 게 죄지!”

소심하게 투닥거리는 유네를 보던 재경은 순간 머릿속에 불이 꺼졌다가 들어온 듯이 멍청하게 눈을 끔벅거렸다. 그러다 문제의 ‘컵 수’에 대한 정보가 파악되자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쿡 하고 찌르면 툭 하고 터질 것 같았다.

“아, 그, 가…가…그…….”

“우하하하! 쟤 얼굴 빨개진 것 좀 봐!”

“시…시…시…시끄…시끄러워!”

표정 관리에 실패한 재경이 새빨개진 얼굴을 류제의 등 뒤에 숨겼다.

얼굴이 새빨개졌다고? 류제는 귓불만 빨개졌던 렌이 진화했다는 게 신기해서 제 옆구리에 살짝 삐져나온 렌을 슬쩍 구경했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렌은 평소처럼 받아치지 못하고 입도 뻥긋 못 했다. 렌은 정말 이런 이야기에 약하구나. 그런데 얼굴이 빨개지는 거랑 귓불만 빨개지는 거랑 무슨 차이지? 쑥스러움과 쪽팔림 차이?

신기한 부분을 발견한 류제가 그게 무슨 알고리즘일까 이과적인 고뇌에 빠졌다. 뭐든 귀여웠던지라 류제는 고아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막냇동생을 달래주듯이 재경의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었다.

그들이 밖에서 컵 수 이야기를 하며 대기하고 있는 동안 유네를 제외한 히로인들의 전체적인 신체 치수에 대해 정보가 나왔다.

스리 사이즈는 기밀이라 비밀에 부치더라도 미연시에 공개되었던 대략적인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니냐롯트 솔라 키아나트리체

키 : 170cm

몸무게 : 59kg

E컵

어빌리티 : 뇌전, 폭우 (공격형)

어빌리티 척도 : 70

비키 셀로니아

키 : 165cm

몸무게 : 47kg

D컵

어빌리티 : 화염 (공격형)

어빌리티 척도 : 62

미나 플로리아

키: 160cm

몸무게 : 42kg

C컵

어빌리티 : 분석 (보조형)

어빌리티 척도 : 20

그리고 이번 연도에 새롭게 신체검사를 받은 또 다른 히로인 담임 선생님 세라 밀로니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았다.

세라 밀로니

나이 : 26세

키 : 167cm

몸무게 : 55kg

D컵

어빌리티 : 탐색, 힐링 (보조형)

어빌리티 척도 : 45

“다음, 렌 지미 학생. 들어오세요!”

드디어 반에 세 명 있는 남학생들의 차례가 돌아왔다. 양호실 안으로 들어가니 남학생들의 프로필을 보겠다고 여학생 몇 명이 남아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컵 수 이야기를 들은 터라 여자애들 가슴이 엄청 신경 쓰이게 된 재경이 버스트 부분을 보지 않으려고 기를 쓰다가 앞을 못 보고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하아. 렌 학생…….”

세라는 양호실에서도 넘어지는 재주를 선보인 재경의 부은 이마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키를 재기 전 부은 혹부터 치료해 준 세라는 이 장난꾸러기가 언제 크려나 앞날이 까마득했다.

우여곡절 끝에 신장계 위에 재경이 발을 올렸다.

“렌 지미. 키 168, 60kg입니다.”

“우이쒸.”

원래 내 키랑 똑같잖아. 재경이 하나도 자라지 않은 짜리몽땅한 신장에 불평하며 기구에서 내려왔다.

그다음 시력검사, 청력검사, 스리 사이즈를 잰 그가 마지막으로 그의 담임 선생님이 들고 있는 구체의 구슬 앞에 섰다.

“렌 학생. 구슬에 손을 얹고 자신의 어빌리티를 발현해 보세요.”

방심하고 있다가 돌연 위기 상황에 봉착해 버렸다. 난 내 어빌리티가 뭔지 모르는데. 결국 렌 지미의 어빌리티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 지금까지 오게 된 재경이 에라 모르겠다, 구슬에 손을 올려 필사적으로 되뇌었다.

나와라. 어빌리티! 내 어빌리티야. 뭔진 모르겠으나 좀 나와 봐!

“…렌 학생, 어서 하세요.”

“어… 그게… 그러니까…….”

선생님이 상냥하게 압박하자 재경이 배에 힘주는 신음을 흘리며 미지의 힘을 추출하려고 했으나 올라오는 것은 식은땀이요, 들려오는 것은 여자애들의 웃음소리였다.

“렌 학생?”

담임 선생님이 또 그녀의 말썽꾸러기 학생이 장난치는 줄 알고 웃으며 화를 내는 기행을 선보였다.

그러나 재경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렌 지미의 어빌리티가 뭔지 알고 재경이 발현한단 말인가. 일단 슬렉터가 어빌리티를 읽고 기간트리카가 장갑되었으니 어빌리티는 가지고 있을 텐데.

이거 설마 엄청난 위기인가? 여기에서 어빌리티를 발현 못 하면 난 퇴학당하는 거 아냐? 안 돼. 아직 여자 친구는커녕 그냥 친구도 많이 못 사귀었는걸. 제발 퇴학만은 안 된다.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알라신 다 찾은 재경이 어빌리티야 제발 발현되어라, 마음속으로 난리를 부렸지만 구슬은 미동조차 없었다.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내부의 빛으로 세라 밀로니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렌 지미 학생… 똑바로 하고 있는 것 맞나요?”

“하고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99가 최대인 어빌리티 척도가 겨우 2정도밖에 안 되는 게 말이나 돼. 그녀가 이 문제아를 어떻게 해야 할까 탄식을 내뱉었다.

계속 재경을 기다려주던 그녀가 렌 지미의 프로필 공란에 어빌리티 척도 2라고 쓰려는 찰나 구슬 안이 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안 돼! 선생님 표정 안 좋잖아. 퇴학당하면 전쟁 이벤트 어떻게 막을 건데? 안 돼. 절대로 안 돼! 내 고교 생활이 이대로 끝난다고? 나는 용납 못 해!

적어도 수학여행까지는 가게 해줘. 수학여행 한 번도 못 가봤단 말이야. 류제와 서큐버스가 친해지는 것도 막아야 하는데!

재경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구슬 안에서 순간 번쩍, 하고 빛이 났다가 사라졌다. 마치 번개가 치는 듯이 아주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세라가 어안이 벙벙해서 눈을 끔벅거렸다.

8반 학생들 중 가장 척도가 컸던 왕녀보다 더 강한 빛을 본 그녀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비볐다. 니냐롯트 왕녀보다 더 강한 빛이라니. 지금까지 평범했던 렌 학생이?

“뭐…뭡니까. 왜 하다가 말아요? 어서 다시 해보세요!”

“됐어요? 어쩌다가 됐지?”

재경은 자신이 뭔가 했다는 말에 기뻐하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으나 한 번 소원을 들어주었으니 이제 끝이라며 손절한 구슬은 언제 빛났냐는 듯이 깜깜무소식이었다.

“렌 학생.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어빌리티를 컨트롤 못 하고 있는 건가요?”

“아… 그…그게 아니에요. 할 수 있는데.”

세라의 진지한 말투에 퇴학당할까 무서워진 재경이 아까 그 빛을 재현하기 위해 어빌리티 척도 측정기에서 끙끙거렸다. 그동안 류제와 유네의 신체측정도 끝났다.

일단 재경이 헤매는 동안 추후 추가될 어빌리티 척도를 제외한 유네와 류제의 프로필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유네 나르타

키 : 155cm

몸무게 : 40kg

어빌리티 : 바람 (보조형)

류제 신리

키 : 172

몸무게 : 65kg

어빌리티 : 강화 (보조형, 공격형)

“하아… 렌 학생. 일단 뒤에 있는 학생들 먼저 하고 마지막으로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유네 나르타 학생.”

“아, 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어요. 유네 학생, 앞으로 오세요.”

시무룩해진 재경이 터덜터덜 구슬 앞에서 비켰다. 분명 아까 반짝 빛난 것 같은데 왜 빛난 건지 모르겠다. 감을 잡지 못한 재경이 애꿎은 제 양손만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네 나르타, 어빌리티 척도 32. 다음, 류제 신리.”

실망하는 렌을 쳐다보던 류제는 세라의 호출에 따라 구슬에 손을 올려놓았다.

어빌리티를 발현해 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평소에 하던 대로 어빌리티를 발현해 본 그는 구슬에서 깨질 듯이 진동과 함께 터져나갈 듯한 빛이 분출되자 눈을 질끈 감았다.

“류제 학생, 손을 떼세요!”

류제가 구슬에서 손을 떼자 다시 빛이 잠잠해졌다. 척도의 끝은 99가 최고인데 99를 까마득히 넘어서는 수치를 확인한 그녀가 식겁해서 류제를 훑었다.

“세상에.”

어쩌면 그녀의 반에 인류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어마어마한 학생이 들어왔을지도 몰랐다.

“이걸 어째야 한담…….”

아까 렌 때도 그렇고 설마 고장 난 것이 아닐까 세라가 구슬에 손을 대서 확인해 보았으나 수치에 이상은 없었다.

척도 측정기가 수용하지 못할 정도의 재능이라니. 그녀는 담당 학생이 변화시킬 미래가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고 기뻐해야 할까 안쓰러워해야 할까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뭐야, 뭔데 저래? 류제가 개쩐다고? 원래 개쩔었잖아.”

“어빌리티 척도가 높다는 건 아주 대단한 거야, 렌 군. 어빌리티 척도는 그야말로 ‘어빌리티로 세계를 뒤바꿀 수 있는 정도’를 수치상으로 나타낸 거니까. 류제 군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흐음. 나도 아까 엄청 빛났는데.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랬어?”

“뭐야, 내 말 의심하냐?”

부루퉁해진 재경이 심술궂게 째려보자 유네가 아니라며 극구 부정했다. 류제의 수치를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99+라 공란에 적어놓은 세라가 다시 재경이 어빌리티 척도를 측정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재경은 한 시간 동안 겨우겨우 씨름한 덕분에 간신히 10을 찍을 수 있었다.

두 자릿수가 되었다는 사실에만 만족한 재경은 이 렌 지미란 놈 어빌리티는 개쓰레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능력일 게 뻔하다며 속으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기운 내.”

“좋겠네, 넌. 99+라니! 아까 구경하던 여자애들이 완전 신난 얼굴로 반으로 뛰어가더라. 비키가 완전 열불 내겠구만. 키도 우리 반에서 가장 크다며. 부럽네 참!”

“렌 군도 큰 편인걸.”

“60대하고 70대하고 같냐?! 왕녀님도 170이라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맨날 쥐똥만 한 거야?!”

“나…난 50대잖아. 너무 그러지 마. 성장기니까 렌 군도 빨리 키 클 거야!”

재경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려고 좋은 말만 해대는 유네가 얄미웠다. 그야 넌 여자애니까 그런 거잖아! 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투덜거렸다.

1학년 8반 세 남학생을 밖으로 보낸 세라 밀로니는 렌 지미와 류제 신리의 프로필을 살피며 심상찮은 표정을 지었다.

“이것 참…….”

류제 신리. 이런 경우에도 없는 수치라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군에 등용되겠지. 마족 간의 전투 최전선에 서서 귀족들의 파벌 싸움에 이용만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의외로 류제 신리 학생은 머리가 좋고 흐름을 잘 읽어 혼자 잘 헤쳐나갈 위인 같은 면모가 있으니 걱정이 덜한데 문제는 렌 지미, 이 학생이다.

“하아… 골칫덩이가 몇이니.”

아무리 잠깐 빛났던 어빌리티가 이 학생이 가진 진짜 힘이라고 해도 세라는 렌이 절대 어른들의 추악한 다툼에서 홀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10이라는 수치면 변방에서 기간트리카 보조 경비병으로는 먹고살 수 있겠지. 거기서는 자유로운 그의 천성대로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저 애한테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괜히 기대감을 줘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 없었다.

그리하여 세라는 류제와 똑같이 정점의 어빌리티 척도 99+가 나온 렌 지미의 척도를 그냥 10으로 돌려놓았다.

아직 어빌리티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녀는 차라리 렌이 어빌리티의 재능을 개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며 이기적이게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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