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Restart step. (11/16)

Restart step.

유진은 천천히 잠에서 깨어났다.

“유진 일어났어?”

“네….”

크리스가 유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유진은 커다란 손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마음 깊이 안도했다.

“고맙습니다.”

“뭐가?”

“전부요, 그때 구해주신 것도, 지금 곁에 있어 주신 것도, 카르텔을 정리해주신 것도.”

“카르텔 조사한다더니 거기까지 알아냈어? 유진은 똑똑하네.”

크리스가 기특하다는 듯이 유진을 보며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진이 말하지 못한 것도 많은데 그것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처음 만나 돌봐준 것도, 정말 위험해지자 자신의 몸을 날려서 구해준 것도, 그래서 손에 피를 묻힌 것도, 기억을 잊으라 해준 것도, 은인이란 이유로 유진이 잘 클 수 있게 양부모를 구해준 것도, 계속 돌본 것도, 부모님의 묘지를 합쳐놓은 것도, 유진이 돌보지 않는 동안 묘소를 돌봐준 것도, 최근에 살해위험에서 구해준 것도, 너무 많았다. 크리스가 없었으면 유진은 벌써 몇 번이나 죽었을 것이었고 그렇게 행복한 시간들을 만날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유진이 밝히지 않은 행선지를 알고 따라와 객실까지 침입해왔어도 크리스의 온기는 없어서는 안 됐다. 오로지 크리스여야만 했다. 그 당시의 지옥에서 유진을 구해준 유일한 사람. 자는 내내 크리스의 목소리가 유진을 구원했다. 그때의 유진도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자신은 살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유진조차 의심하던 엄마의 사랑을 유진보다 더 굳게 믿어준 사람도 크리스였다. 유진은 진심으로 크리스가 고마웠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유진이 연거푸 감사 인사를 하는데도 크리스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 유진은 연봉이 적은 편이 아니었지만 크리스가 가진 자산의 발끝도 못 따라갈 것이 뻔했다. 크리스가 카르텔을 없애기 위해 쓴 돈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을 금액이 통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대체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까. 20년가량을 유진을 위한 일들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유진의 마음속의 천칭이 한쪽으로 끝도 없이 기울어졌다. 유진도 잘 알고 있었다. 천칭에 크리스가 유진에게 해준 것을 올리고 반대편에 크리스가 유진에게 했던 나쁜 일을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 죄는 상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자신을 구해내는 데 일조했다면 그것은 정말로 나쁜 일인가.

“무슨 생각해? 유진.”

“제가…제가 무엇으로 보답할….”

“이제 멀쩡해졌네. 유진.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도 있고. 그럼 가볼게.”

“네?”

크리스는 유진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 준 후 일어나 객실을 나갔다. 유진은 따라가지 못해 멍하니 굳어 있다가 닫힌 문을 한참 보고서야 그가 가버렸다는 것을 인식했다. 크리스가 나갔다.

“…크리스.”

유진이 작게 크리스를 불러보았지만 크리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넋을 놓고 앉아있던 유진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씻고 음식을 먹었다. 분명 몸은 움직이는데 머리는 제대로 돌지 않았다. 어째서 크리스는 가버렸을까. 유진이 아주 느리게 짐을 챙기고 호텔을 나갈 때까지도 크리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유진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부모님의 묘소에 들렀다. 또 꽃이 바뀌어 있었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 시선을 돌렸는데도 너무 커서인지 시야 한 귀퉁이에 계속 크리스가 두고 간 꽃이 들어왔다. 유진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나니 유진의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함께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꿈에서 본 것이 생각났다. 아주 사이가 좋았으니까 반드시 같이 계시겠지. 고맙다는 말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엄마는 모든 것을 걸고 유진을 지켜주었다. 마지막 모습이 유진을 안심시키기 위한 미소였던 것이 효과를 발해 예쁜 미소의 엄마가 그대로 그려졌다. 유진은 크고 깊게 숨을 들이쉬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이제 자주 올게요. 아빠, 엄마.”

딱 붙은 묘비를 몇 번 쓸어내린 유진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그래 이제는 언제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크리스에게로 생각이 연결되었다.

“저기, 이걸 전해 드리라고….”

“감사합니다.”

크리스가 준 것이 분명한 봉투를 관리인이 전해주었다. 유진은 바로 봉투를 열어보았다.

“아….”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기였던 유진, 세 사람이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급하게 이사를 한 데다 유진과 유진의 엄마가 카르텔에 끌려가는 바람에 남은 것이 거의 없었는데 어디서 구한 것인지. 크리스는 또 유진에게 너무나 큰 선물을 주었다. 나는 대체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 유진은 집으로 향하는 동안 내내 고민했지만 답을 구할 수는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걱정스러운 얼굴의 노라와 루카스가 달려 나왔다. 유진은 두 사람과 포옹을 끝내고 봐서 좋았다는 얘기와 크리스가 주고 간 사진을 보여드렸다. 노라가 눈물까지 머금는 것을 유진은 감사하게 여기며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진이 직장에 복귀하면 그쪽에서 살아야 해서 집을 나가게 되는데 그 시기가 문제였다. 유진은 빠르게 복귀하고 싶었고 노라와 루카스는 조금 더 있다가 복귀하길 바랐다.

“두 분도 고향에 돌아가셔야죠.”

“그래도 네가….”

“저는 이제 완전히 안전해졌어요.”

유진은 긴 설득 끝에 합의에 도달했다. 이제서야 도망이 끝났는데 계속 유진에게 신경을 쓰게 할 수는 없었다. 유진이 눈에 보이면 두 사람은 어릴 때의 유진을 보는 것처럼 걱정을 버리지 못했고 유진은 얼른 복귀해 두 사람이 스스로에게 집중할 시간을 줘야 했다. 그래야 두 사람도 힘들었던 마음을 치료할 수 있었다. 한참이나 손을 잡고 이야기하던 세 사람은 잘 시간이 되자 굿나잇 키스와 함께 헤어졌다. 유진은 손에 남은 온기로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세 사람은 앞으로의 이별을 준비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유진은 자신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혼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까지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서 잠이 들려고 하자 허전함이 느껴졌고 곧 크리스가 그리웠다. 그의 품이나 온기가 고스란히 떠올랐다. 왠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그리워 유진은 억지로 잠을 청했다.

“흐….”

유진은 몽롱한 정신에도 자신의 젖꼭지와 페니스에 열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유진의 몸은 열기를 쫓아 더 큰 쾌감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곧 채워지지 않는 것에 심한 허기를 느꼈다. 여러 사건들로 인지하지 못했던 몸의 변화가 다시 유진을 덮친 것이었다.

미칠 것 같은 목마름에 유진의 정신이 서서히 깨어났고 유진은 자신의 몸에 황당함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마찰로 인해 쓰라릴 정도로 움직이는데도 쿠퍼액만 조금씩 흐를 뿐 도무지 절정에 달할 수 없었다.

“…크리스, 크리스.”

아무리 크리스를 불러도 유진의 곁에 크리스가 오는 일은 없었다. 유진은 쾌감은 배웠지만 혼자서 하는 것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유진은 겨우 페니스만을 문질러 억지로 사정한 후 한참을 차가운 물로 몸을 식히고 지쳐서 잠이 들었다.

유진의 불면의 밤은 계속되었다. 제대로 해소되면 나아졌을지도 모르는데 유진은 계속해서 제대로 갈 수가 없었다. 사정은 하고 있었지만 남은 욕망이 쌓여 아랫배가 무거웠다. 몸과 사고도 점점 둔해졌다. 크리스가 필요했다. 결국 유진은 항복하고 말았다.

“크리스…. 도와주세요.”

크리스의 가족에게 연락해 크리스와 연락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도 유진은 자신의 방 침대에 앉아 크리스를 불렀다. 크리스라면 분명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문을 톡톡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크리스?”

“안녕, 유진.”

크리스였다. 유진은 크리스가 벌린 팔 안에 뛰어들었다. 온기와 체향이 그리웠던 그대로였다. 유진의 몸이 빠르게 달아올랐다.

“크리스…크리스….”

“그래, 유진. 나야.”

유진이 볼을 비비며 달라붙는 것을 크리스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받아 주었다. 유진은 크리스의 품에 안겨 젖꼭지가 당겨지자 예쁜 소리로 울었다. 자신이 시트에 문지르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좋아요…좋아….”

“혼자서 문질러서 조금 벗겨졌네. 다음부턴 혼자서는 만지면 안 돼. 유진.”

“네….”

“착하다.”

크리스가 유진의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칭찬이었다. 유진은 칭찬에 들떠 가슴을 더 내밀었고 크리스의 입술이 곧 젖꼭지로 옮겨왔다. 뜨겁고 촉촉한 혀가 유진의 젖꼭지를 빙빙 돌렸다. 눈앞이 빛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하읏!”

젖꼭지만으로 사정한 유진이 크리스에게 얼굴을 묻었다. 부끄러웠다. 아무리 크리스가 그렇게 길들였다고 해도 정말 젖꼭지만으로 사정하다니. 크리스가 웃는 것이 떨림으로 느껴졌다. 유진의 얼굴에 더 열이 올랐다. 크리스가 웃음을 멈추더니 유진의 귀두에 정액을 펴 발랐다. 민감한 곳에 크리스의 손길이 닿자 금세 또 열이 차올랐다. 하지만 유진에겐 더 급한 곳이 있었다. 부끄러워 얼굴이 불에 타듯 달아올라도 참을 수가 없었다.

“크리스…안에….”

“안에?”

“넣…넣어 주세요….”

크리스가 유진에게 키스했다. 유진은 다가올 행위로 인한 기대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크리스의 손가락이 귀두에서 기둥을 타고 오목한 회음부를 굴리다 빠끔거리는 입구로 향했다.

“하…하으….”

“또 완전히 닫혀버렸네. 유진.”

크리스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유진이 놀라 매달렸다. 유진의 눈동자에 비치는 절실함에 크리스가 유진의 눈꺼풀에 입 맞추며 유진을 달랬다.

“천천히 열어줄 테니까. 응?”

유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크리스가 웃더니 유진을 네발로 엎드리게 했다. 유진은 크리스가 잡아주는 자세에 순응했다. 그러나 유진의 입구에 닿은 것은 유진이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흐? 아…안 돼!”

딱딱한 손가락이 아니라 부드러운 혀가 닿았다. 있는지도 몰랐던 솜털들이 바짝 일어섰다. 유진은 몸부림쳤으나 크리스의 손에 단단하게 잡힌 허벅지는 유진을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고 유진은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운데, 너무 부끄러운데도 크리스가 혀를 움직일 때마다 녹아 풀리는 입구가 느껴졌다. 쾌감에 입구가 흐물흐물했다. 덕분에 소리가 잔뜩 젖었다. 젖은 소리가 유진을 더욱 부끄럽고 뜨겁게 만들었다.

“거…거기 계속….읏.”

“이제야 좀 열렸네. 그치? 유진.”

크리스의 말대로 한참이나 핥아져 흐물흐물한 그곳에 크리스의 손가락 하나가 부드럽게 들어왔다. 저항감 없이 들어온 손가락은 바로 유진의 전립선을 세게 눌렀고 유진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절정에 달했다.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유진의 기억은 거기서 끝이었다.

“크리스!”

유진이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크리스는? 유진이 주위를 둘러보며 크리스를 찾았지만 크리스는 없었다. 메모 한 장 두고 가지 않은 그에게 원망을 느끼며 일어나는데 이상했다. 안에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유진은 그것이 크리스가 남겨 놓은 힌트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진은 그것을 넣은 채로 출근했다.

“하아, 하아.”

시간이 지날수록 유진의 안에 든 기구는 부피를 늘렸다. 일하는 중간중간 벌어지는 내벽에 유진의 페니스가 단단하게 굳어 존재감을 드러냈다. 부끄럽고 들킬까 두려웠다. 일부러 커다랗고 긴 점퍼를 입고 왔지만 실내에서 겉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사람들은 유진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것을 보고 컨디션 불량이라 생각해주는 것 같았다. 유진은 좀 더 부피를 키우는 기구에 몸을 떨며 가볍게 달한 후 부들거리는 다리로 세면대로 가 차가운 물을 틀어 얼굴을 닦았다. 하루가 너무나 길었다.

유진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돌아오는 길에는 안의 기구가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세팅이 되어있었던 모양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현관문을 닫자마자 퍼졌다.

“조심해야지. 유진.”

크리스였다. 유진은 자신을 받쳐 안은 크리스에게 얼굴을 비볐다. 너무나 손길이 고팠다.

“너…너무 느껴서….”

“귀여워라, 유진.”

크리스가 유진에게 키스해주었다. 유진은 앞으로 이어질 행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유진은 크리스에게 안겨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눕혀지는 순간에도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유진이 침대에 눕혀지고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옷이 전부 벗겨지고 있었다.

“앗.”

“속옷이 질척하네. 유진.”

“…네….”

크리스가 지적한 대로 유진의 속옷은 잔뜩 젖어 있었다. 크리스가 유진의 속옷을 끌어 내리자 은빛의 실이 늘어났다 끊기는 것까지 보였다.

“유진, 이거 오늘 안 들켰어?”

“네? 네….”

“내 앞에서만 이렇게 세운 거야?”

크리스가 웃으며 묻는데도 유진은 솔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뇨….”

“그럼 힘들었겠네? 유진.”

힘이 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힘이 들었다고 말하면 더이상 해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난 유진이 크리스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거짓말보다는 솔직하게 말하고 애원을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아 솔직하게 말했다.

“네…옷으로 가리긴 했지만….”

“그럼 내일부터는 힘들지 않게 해줄게. 유진.”

유진은 크리스가 보이는 표정에서 즐거움을 읽고 눈을 감았다. 크리스의 즐거움에는 유진의 난처함이 따라갈 가능성이 높았다. 무서운데도 저항하고픈 생각은 들지 않았다. 크리스는 순종적으로 눈을 감은 유진에게 몇 번이나 입을 맞추며 유진의 나신에 손을 올려 움직였다.

유진은 계속 쏟아지는 크리스의 입맞춤을 조르며 몸을 흔들었다. 크리스의 손이 닿는 곳은 어디든 좋았다. 손끝으로 누르지도 않고 스치면 표면이 간질거렸고 힘을 주어 누르면 안에서부터 욱신거림이 퍼졌다. 좀 더 만져달라 흔들리는 유진의 몸을 크리스는 잔뜩 만져주었다. 점점 휘는 유진의 등이 가슴을 내밀었다. 크리스가 유진의 붉은 젖꼭지를 아프지 않게 쥐어 잡아당겼다.

“흐앗!”

“오늘은 안 비볐어? 유진.”

“네, 네. 안 만졌어요.”

“착하네. 유진.”

크리스가 유진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칭찬을 들은 유진의 몸이 보상을 바라 떨렸다. 크리스가 웃는 것이 느껴졌다. 유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크리스의 입술이 유진의 젖꼭지를 삼켰다. 번개가 내려꽂히는 것 같았다.

“조…좋아. 좋아요.”

크리스의 얼굴이 흐뭇해 보여서 유진은 조금 더 솔직해졌다. 크리스의 손이 유진의 페니스로 향했다. 유진이 좋아하는 정도로 쥐어진 페니스가 아까부터 줄줄 흐르던 쿠퍼액에 하얀 정액을 섞어 보내기 시작했다.

“크, 크리스 안에도 만져주세요.”

유진은 사정하면서도 오늘 하루종일 신경 쓰이게 만들었던 안을 제대로 만져지고 싶었다. 크리스의 손이 유진의 안을 채운 기구를 잡았다. 기구를 빼낼 거라 생각한 유진이 의식적으로 몸에 힘을 빼자 기구가 더 깊이 들어왔다. 어째서?

“아?”

“유진이 아직 다 안 열렸으니까. 알겠지?”

유진은 크리스가 말하는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고 곧 앞뒤로 동시에 가해지는 자극에 크리스에게 울며 매달렸다.

“거기, 거기, 좋아요, 히익, 또, 또 느껴요.”

“계속 느껴야지. 유진.”

크리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유진에게 계속 느껴야 한다고 말했고 유진은 그저 크리스의 말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점점 눈앞이 점멸하는 주기가 짧아졌다. 한 번만 더 제대로 깊게 찔리면 정신을 잃을 것 같아 유진은 키스를 졸랐다. 안을 크리스가 만져주지 않으니 그렇게라도 크리스와 제대로 닿고 싶었다.

“키스, 키스해주세요. 이제 더는 못….”

크리스의 입술이 다가오자 유진이 크리스의 목을 감고 매달렸다. 입속을 크리스의 혀로 범해지는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유진은 강렬한 절정과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

유진이 알람 소리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크리스가 없어진 다음이었다. 왠지 기운이 빠져 누워있으니 완벽하게 정리된 침대와 자신의 몸이 느껴져 유진은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 크리스가 해놓고 간 것이 틀림없었다. 그냥 버려두고 간 것은 아니었다. 바쁜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유진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가 자신의 몸에 늘어난 기구를 알게 되었다.

속옷처럼 생긴 검은색의 가죽이 유진의 페니스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안쪽에 무엇을 덧댄 것인지 겉을 만졌을 때는 단단하기까지 한 그것은 유진의 힘으로는 벗을 수도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앞쪽에 지퍼가 아주 짧게 되어있었다. 거기에 안쪽엔 어제의 그 기구가 크기를 좀 더 키운 채로 들어가 있는 데다 고정되어있었다. 유진의 오늘도 어제처럼, 아니 어제보다 훨씬 더 힘들 것이 느껴졌다. 분명 다리를 움직이는 데에는 제약이 없는 디자인인데도 유진은 아주 어색하게 걸어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서 유진은 보다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크리스가 챙겨놓은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 크리스가 채워준 것 덕분에 옷을 이상하게 입진 않아도 되었지만 대신 발기하면 압박감 때문에 괴로웠다. 발기하면 할수록 더 죄어오는 것 같아서 유진은 최대한 흥분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안쪽에 들어간 기구가 세게 눌리거나 부피를 키우면 어쩔 수가 없었다. 괴로움에 점심도 거르려는데 메세지가 왔다.

밥을 제대로 먹으라는 메시지는 당연히 크리스의 것일 게 분명해서 유진은 억지로 식사를 했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식사는 당연히 무슨 맛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입안을 좀 더 마르게 했을 뿐이었다. 오후 시간은 더욱 힘들었다. 제대로 풀어낼 수 없는 쾌감이 계속해서 쌓이기만 했다. 유진의 손이 엄청나게 빨라졌다가 아예 멈췄다가를 반복했다. 그나마 큰일로 쉬고 왔다고 일감이 적고 쉬운 편이어서 다행이었다. 겨우겨우 버텨낸 유진이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차로 향했다.

“휴….”

운전석에 올라탄 유진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이제 또 집에 가는 동안엔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크리스가 있을 것이었다. 유진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유진은 거칠 정도로 급하게 현관문을 열었지만 크리스는 없었다. 대신 준비되어있는 저녁을 먹으며 유진은 크리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져도 크리스는 오지 않았고 유진에게 채워져 있던 압박 기구도 벗겨졌다. 억지로 주어졌던 쾌감에서 벗어나 기분이 좋아야 했는데 유진의 기분은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구가 절로 벗겨졌으니 오늘은 크리스가 올 수 없는 것 같았다. 유진은 크리스가 보고 싶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그래도 계속 크리스를 기다리다 피곤한 아침을 맞이했다.

유진은 안에 들어있던 기구를 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빼지 않은 채로 출근했다. 기구가 들어있어 눌릴 때마다 절정을 맞이하면서도 유진은 기구를 빼지 않고 크리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크리스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유진은 그 날도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 크리스를 기다리느라 일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크리스가 있을 줄 알았는데 크리스는 집에도 없었다. 유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거실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크리스를 기다렸다. 유진이 지쳐 잠이 들 때까지도 크리스는 오지 않았다. 다음 날 깨어난 유진이 침대에 옮겨져 있었던 것만이 크리스의 흔적이었다. 어째서 크리스가 오지 않는 건지 유진은 궁금한데도 그에게 물을 수가 없었다. 오늘만, 오늘만 기다려보고. 유진은 자신이 무엇이 두려워 크리스를 부르지 못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날도 크리스는 유진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유진은 갑작스러운 추위를 느꼈다. 허전함이 만든 추위에 크리스가 바꿔놓고 간 침구 속에 몸을 웅크리고 바들바들 떨다가 유진은 잠이 들었다. 알람이 울리는데도 유진은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크리스가 없었다. 유진의 안을 채우는 기구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예 빼버리면 벌을 주러 크리스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툭 떨어져 벗겨지던 압박용 기구를 생각하면 그것도 아닐 것 같았다. 유진은 점점 크리스가 올지에 대한 확신이 사라져갔다. 분명 어제까지만 기다리다 오늘은 크리스를 불러보려고 했는데 부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불렀는데도 오지 않는다면 더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무 빨리 복귀한 거 아냐?”

“아, 아니. 요새 뭘 좀 하느라 잠을 못 자서 피곤해서 그래.”

“잘 자야지.”

“고마워.”

동료가 유진을 걱정할 정도로 유진의 얼굴은 형편없었다. 유진은 거울 속에 비친 파리한 얼굴에 크리스에 대한 원망을 가졌다가 금세 풀이 죽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안에 기구가 들어있는데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유진은 무거운 다리를 옮겨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진한 커피를 마시며 일을 했다. 금요일의 퇴근이라 다들 앞다투어 돌아가는데도 유진의 걸음은 느렸다. 현관문을 열어 크리스의 부재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엔 집에 도착했고 역시나 크리스는 없었다.

“…크리스?”

유진은 아주 작게 크리스를 불러보았다. 작아서 자신의 귀에도 안 들릴 지경이었지만 크리스는 항상 유진의 그런 작은 소리도 들어주었던 것에 조금의 기대를 가졌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크리스는 와주지 않았다.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가 오지 않은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유진은 무너졌다. 이제 크리스는 자신을 버렸을지도 몰랐다. 울다 지친 유진은 눈물에 잔뜩 젖은 얼굴 그대로 잠이 들었다.

크리스가 눈물에 잔뜩 젖은 유진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자 유진의 눈이 번쩍 떠졌다.

“많이 울었네, 유진. 마음 아프게.”

“크리스?”

유진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크리스를 붙잡지도 않고 우는 통에 크리스가 유진을 안아 올려 품에 안고 눈물을 먹어버렸다.

“울지마, 유진.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

“기다렸는데, 불렀는데….”

유진은 크리스를 기다리던 시간을 원망할 법도 했는데 원망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리스가 유진에게 올 이유가 있던가. 크리스의 욕망만이 그 이유였고 당연히 그것이 사라지면 크리스는 유진에게 오지 않을 수 있었다. 유진의 마음이 뒤엉켰다. 크리스가 필요한데 필요해선 안 됐다. 크리스의 부모조차 유진에게 사과하며 크리스를 신고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 역시 크리스에게 벗어나려 위험한 도박으로 머리까지 다치게 하면서 크리스의 곁을 떠났다.

하지만, 하지만 분명 크리스는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 말했다. 그렇게 말해놓고 이제는 오지 않을 수도 있을까. 이 따뜻한 온기는 더이상 접할 수 없을까.

“뭐든…뭐든 할 테니까….”

“유진, 유진, 나의 사랑스러운 유진. 너는 정말 나를 견딜 수가 없게 만들어.”

유진이 최대한의 용기를 끌어모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크리스가 유진을 세게 안으며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유진은 크리스에게 팔째로 안겨 있다가 크리스의 말에 팔을 움직여 빼내고 크리스를 안았다. 따지고 싶은데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크리스는 유진이 자신을 끌어안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버틸 수가 없네. 유진. 울 정도로 내가 보고 싶었어?”

“네…없으면 안 돼요.”

“어렵네. 하지만 유진은 사랑스러우니까 내가 조금 물러서야겠지.”

크리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어 유진은 크리스를 한참 바라보았지만 크리스의 표정은 유진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결국 와주어서 다행이었다. 유진은 크리스의 품에 파고들었다. 크리스의 손길이 부드럽게 유진의 얼굴을 살폈다. 잔뜩 울어 발갛게 익은 눈가도, 며칠을 기다리는 바람에 거칠어진 피부도 크리스의 손이 닿았다.

“안 갈 테니까 제대로 자. 유진.”

유진은 정말인지 묻고 싶어 크리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크리스가 웃으며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진은 크리스의 옷자락을 세게 쥐고 잠이 들었다. 잠이 드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얼굴이나 머리에 크리스의 입술이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유진은 얼마 자지 못하고 계속 잠에서 깼다. 크리스가 사라질까 하는 불안에 깊이 잠을 못 자는 것인데 크리스가 혀를 찼다. 유진의 심장이 덜커덕 멈췄다. 자라고 했는데 못 잔다고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유진이 크리스가 보이는 언짢음에 또 의기소침해졌다.

“유진.”

“네.”

“잠 못 잔 거 아니까 지금 자야지.”

“알겠어요….”

유진도 제대로 자고 싶었다. 모자랐던 잠 때문에 약간의 두통까지 일어나는데도 몸이 추락하는 듯한 기분과 함께 불안함에 눈이 계속 떠졌다. 억지로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하는데 크리스가 유진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앗.”

유진은 크리스의 몸 위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몸 전체가 완전히 크리스 위에 놓였다. 유진이 크리스를 바라보자 크리스가 눈을 맞추고 웃었다.

“아.”

“이제 잘 수 있겠어? 유진.”

유진의 고개가 아래위로 움직이고 유진은 곧 크리스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었다. 조금 빠른 속도로 두근거리는 소리가 자장가 같았다. 이번에는 깨지 않았다.

크리스는 유진이 제대로 자고 일어날 때까지 미동도 없이 자세를 유지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유진이 깰 것만 같았다. 크리스를 그렇게 필요로 하면서도 발목이 잡힐 만한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영리함에 어이가 없는데도 크리스는 유진을 이길 수는 없었다.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고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단 한 번 크리스를 부른 것이 끝이라서, 아무것도 없는 거실 바닥에서 울면서 웅크리고 자서, 크리스는 원래 정해놓았던 기준을 어겼다.

자신이 정해놓은 것을 절대 어긴 적이 없는데 유진의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최소한만을 넘기면 아무래도 유진에게는 약해졌다. 이번에도 생각대로라면 좀 더 확실한 말을 하거나 크리스를 부르며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는 기다려야 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와 유진을 달래 재우고 있지 않은가. 물론 크리스에게도 소득은 있었다. 유진은 정답은 말하지 않았지만 대신 뭐든 하겠다는 예쁜 말을 해주었다.

유진은 꽤나 늦게까지 자다가 눈을 떴다. 눈앞에 크리스가 있었다. 약속을 지켜준 크리스에게 유진이 다가가 입을 맞췄다.

“잘 잤어? 유진.”

“네.”

크리스가 눈을 완전히 휘며 웃는 바람에 유진의 볼이 약간 상기되었다. 잠시 멍하게 있던 유진이 빠르게 크리스의 몸에서 내려와 옆을 파고들었다.

“고맙습니다.”

크리스가 도로 유진을 안아 올렸다. 유진이 미안함에 몸을 잠깐 바둥거렸지만 크리스가 움직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다시 크리스의 몸 위에 올려진 유진이 크리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크리스의 손이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참 쓰다듬을 받고 있으니 며칠간 제대로 먹지 않아 비어있던 배가 배고픔을 호소했다.

“밥 제대로 먹어야지.”

“네.”

크리스가 유진을 안은 채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미리 챙겨왔는지 냉장고에 못 보던 음식들이 있었다. 크리스는 그중에 치킨 수프를 꺼내 데웠다. 유진은 크리스가 움직이는 동안 계속 크리스에게 딱 붙어 졸졸 따라다녔다.

아주 간만에 크리스가 유진을 품에 안고 밥을 먹여주었다. 유진은 한동안 어떻게 혼자 밥을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어? 유진.”

“네. 맛있어요. 고마워요. 크리스.”

유진이 잘 먹는 것을 본 크리스가 디저트도 꺼내왔다. 상큼한 과일 볼이라 유진은 크리스와 함께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신기할 정도로 좋았던 것만 떠올랐다. 분명 당시에는 괴로웠던 것 같은데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완전히 뒤편으로 밀려나고 크리스가 곁에서 해주었던 것들만 생각나다 금방 몸에 열이 올랐다.

“흐읏.”

그러고 보니 아직도 기구가 유진의 안에 들어있었다. 크리스가 오지 않을까 무서워하던 동안엔 정말로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크리스가 곁에 있으니까 금세 열기로 변해 유진을 쾌감으로 물들였다. 유진은 자신이 크리스를 사랑한다는 것을 다시 또 깨닫고 말았다.

그렇게나 길들었는데도 유진의 몸은 마음을 뒤쫓았다. 이제 몸 때문이라는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유진은 이 사실을 조금이라도 늦게 크리스에게 들키길 바랐다. 혹시나 이번처럼, 아니 이번과는 다르게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유진은 허덕이면서도 생각들로 복잡했다.

“유진?”

뒷정리를 하고 있던 크리스가 유진의 상태에 하던 것을 멈추고 유진에게 다가왔다. 유진은 팔을 벌려 크리스의 목에 매달렸다.

“만져주세요. 크리스.”

크리스가 유진을 안아 들고 침실로 향했다. 유진은 크리스의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부분에 얼굴을 묻고 크리스의 체향을 느끼고 있었다. 몸의 열이 점점 더 뜨거워졌다. 크리스가 유진을 침대에 부드럽게 내려놓았을 때 유진은 이미 녹아내려 온몸이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까지 열로 몽롱해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유진을 보던 크리스가 유진의 옷을 천천히 벗겨주었다. 환한 빛 아래 드러나는 몸이 부끄러울 법도 한데 항상 나신으로 있던 생활이 길어서인지 유진의 흥분만 더 커졌다.

“안에 빼줄까? 유진.”

“아니요….”

“그러면?”

“더…더 벌려 주세요….”

유진은 빨리 안을 벌려 크리스의 것을 담고 싶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크리스의 입술이 유진의 입술에 덮였다. 유진은 크리스가 주는 것이라 들어오는 크리스의 혀를 쪽쪽 빨았다. 크리스가 웃는 것이 느껴졌다. 유진이 서툴게 빨기만 하는데도 크리스는 재주 좋게 유진을 좀 더 기분 좋도록 만들었고 크리스가 입술을 떼었을 때 유진은 타액으로 온 입가를 더럽힐 정도로 멍해져 있었다.

크리스가 유진의 목덜미로 입술을 옮겼다. 유진은 곤두선 자신의 젖꼭지를 크리스의 몸에 비볐다.

“유진.”

크리스의 목소리가 낮았다. 경고가 담긴 목소리에 유진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잘못, 잘못 했어요.”

“옷을 입고 있는데 거기에 비비면 또 벗겨지잖아? 유진.”

“네….”

“혼나야겠네. 유진.”

“네.”

크리스가 자신의 상의를 찢듯이 거칠게 벗고는 침대 밖으로 나갔다. 유진은 고개를 숙이고 크리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크리스가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돌아왔다. 침대 한쪽에 가방을 올린 크리스가 뭔가를 꺼냈다.

유진이 한동안 끼고 있었던 링이었다. 유진은 팔을 뒤쪽에 짚고 가슴을 내밀어 크리스가 링을 쉽게 채울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크리스의 손이 유진의 젖꼭지에 젤을 치덕치덕하게 바르는 동안 신음을 참던 유진은 링이 젖꼭지에 채워지자 더이상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버렸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읏!”

“혼나는 건데 페니스도 줄줄이네. 유진.”

“잘못했어요. 여…여기도 막…막아주세요.”

유진이 발기한 자신의 페니스를 잡고 요도구를 보이며 막아달라 말했다. 크리스가 튜브를 꺼내는 것을 보는 유진의 몸이 흥분으로 떨렸다.

“흐읏.”

튜브가 유진의 벌어진 요도구에 꽂히고 차가운 내용물이 유진의 요도로 흘러들어 갔다.

“유진, 둘 중에 어떤 거로 막아줄까?”

크리스가 꺼내 든 두 개의 막대는 유진도 아는 것이었다. 유진은 용서를 받기 위해 좀 더 길이가 긴 것을 고를까 하다가 크리스에게 뭐든 좋다고 말했다.

“정말 뭐든 좋아?”

“네.”

“이거라도?”

크리스가 갑자기 다른 것을 꺼냈다. 빽빽한 돌기가 있는 굵은 관이라 위압감이 엄청난데도 유진은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의 입술이 유진의 이마에 살포시 닿았다. 유진이 떨어지는 크리스에게 고개를 들어 뽀뽀했다. 크리스가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약간의 요철이 있는 적당한 굵기의 관을 유진의 요도로 천천히 넣었다. 아주 오랜만에 삽입되는 것인데도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흐으…기분 좋아요…흣, 거, 거기.”

“안 잊었네? 유진.”

“네, 네에…아!”

관이 유진의 안쪽의 폭신한 곳을 후비자 유진의 몸이 덜덜 떨렸다. 쾌감이 너무나 날카로워 베일 것 같았다. 크리스가 유진의 뒤로 와 완전히 몸을 안아 고정시키고 관 앞쪽을 핀으로 막고는 관을 좀 더 밀어 넣기 시작했다. 유진은 쾌감으로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관은 계속해서 들어가 아주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젖꼭지가 허전한 거 같네? 유진.”

“네? 네….”

유진은 전혀 허전하지 않았지만 크리스가 원하는 대로 답했다. 유진의 젖꼭지를 조인 링에 무거운 추들이 달려 유진의 젖꼭지가 아래로 당겨졌다.

“하읏!”

유진의 페니스가 통통 뛰었다. 앞이 핀으로 막혀 내보내지 못하는데도 흥분한 페니스가 흔들리는 것을 크리스가 웃으며 손가락으로 두드려 유진이 달하게 만들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가면 힘들 텐데. 유진.”

유진의 얼굴에 일그러진 미소가 떠올랐다. 무서운데도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크리스가 경고까지 했으니 분명 힘들 텐데 유진의 몸은 앞으로의 쾌감을 더 바랐다. 크리스가 유진의 기쁨과 공포가 뒤섞인 얼굴을 보더니 입을 맞춰왔다. 유진은 크리스의 입맞춤에 적극적으로 혀를 얽으며 크리스의 맨살에 젖꼭지를 비볐다.

“흐응…앙….”

잔뜩 조여지고 당겨진 젖꼭지가 크리스의 피부에 문질러지니 콧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진의 페니스가 움찔움찔 튀었다. 절정감이 치달아 안이 꽉 찬 느낌이었다. 관이 안쪽에서부터 꽂혀있는 데다 앞이 막혀 있어 나올 수가 없는데 내보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크리스가 웃으며 유진의 페니스를 문질렀다.

“흐읏! 그, 그러면 너무 느껴요.”

“느끼면 되지.”

크리스가 유진의 동그랗게 올라붙은 고환을 굴리며 말했다. 핀을 빼줄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 유진이 더 느끼도록 종용하는 손길이 자비가 없는데도 유진은 좋았다.

“크리스, 크리스.”

“응. 유진.”

“좋아요, 좋아.”

“예뻐.”

크리스가 유진을 예쁘다고 말하며 더 예쁘게 웃었다. 유진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 같았다. 유진은 일부러 눈을 세게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해도 크리스가 예뻐 보이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미친 것 같았다. 크리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나락까지 떨어지는 느낌에 유진의 몸이 떨렸다. 그런데도 유진의 몸은 달랐다. 유진은 자신의 내벽이 크리스의 것을 물고 싶어 오물거리는 것을 느꼈다.

“안…안에도 만져주세요.”

크리스가 뭔가를 누르자 유진의 안에 들어있던 기구가 부피를 늘렸지만 크리스는 그것을 만져 줄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유진은 한 번 더 조를까 하다가 크리스가 표정을 굳히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아서 참았다. 대신 크리스가 만져주는 페니스를 허리를 움직여 좀 더 만져지도록 했다. 늘어난 쾌감에 유진이 신음했다.

“흣, 기분 좋아요, 이거 좋아.”

크리스가 유진의 움직임을 보더니 유진의 요도를 차지하고 있는 관을 잡았다. 유진의 눈이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크리스가 유진의 눈가에 키스하고는 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 좋아, 좋아요, 거기 쑤셔지는 거 좋아요. 흐읏, 지, 지금.”

크리스는 유진이 달하려 하자 관을 다 빼낼 것처럼 쭉 잡아뺐다가 유진의 체액으로 가득 차 미끈거리는 요도에 관을 끝까지 처박았다.

“!!!!!”

유진은 신음조차 낼 수 없었다. 요철이 요도를 긁고 폭신한 곳이 강하고 길게 찔렸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렬한 쾌감이었다. 유진의 허리가 완전히 휘어 바들바들 떨리는데 크리스의 손이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하…으…앗….”

유진은 페니스가 터질 것 같았다. 아랫배까지 팽팽해졌다. 하지만 관이 요도를 왔다 갔다 하기만 하니 관을 비집고 아주 약간의 체액만 입구를 번들거리게 할 뿐 제대로 내보낼 수 없었다. 요도 안이 화끈거렸다.

“뜨거워, 뜨거워요. 크리스, 안에….”

크리스가 유진의 젖꼭지에 달린 추를 좌우로 흔들리게 만들었다. 젖꼭지가 세게 당겨졌다. 욱신거리는 감각에 유진의 눈이 크게 열렸다.

“앗! 아흣.”

유진의 몸이 충격을 줄이기 위해 추가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리스의 눈이 번뜩였다. 크리스가 관을 움직이던 속도를 더 높였다.

“아, 안 돼, 크리, 크리스, 싸, 싸고 싶어요, 제발, 제발 싸게 해주세요.”

크리스는 관을 빼주는 대신 강하게 찔러넣었다.

“아흣!”

유진은 안으로 달해 몸을 강하게 경직시켰다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하아, 하읏?”

유진의 뒤쪽을 채우고 있던 기구가 부피를 많이 늘렸다. 유진의 입구가 벅찰 정도로 팽팽해졌다. 크리스가 젤을 적신 손가락으로 팽팽해진 입구를 덧그렸다.

“방금, 방금 갔는데에.”

유진의 말꼬리가 늘어졌다. 크리스가 웃기만 했다. 크리스가 다시 관을 움직이면서 입구를 만지는 통에 유진의 몸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유진의 발이 시트를 긁어대자 갑자기 크리스가 손을 떼었다. 사라진 손길에 유진의 몸이 굳었다.

“…크리스?”

크리스가 유진의 젖꼭지에 달린 추를 떼어냈다. 유진의 눈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방황했다. 다행히 크리스는 기구를 바꾸고 싶었을 뿐인지 링까지 빼내고 흡입기를 붙였다. 젖꼭지가 강하게 빨아 당겨지는 것에 유진의 목에서 또다시 신음성이 터졌다. 어렸을 때 봤던 만화경처럼 눈앞에 다양한 색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너무 좋았다.

“흐읏!”

크리스는 흡입기가 잘 붙었는지를 확인하더니 유진의 요도에 삽입된 관을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또, 또 가요, 또 가.”

크리스가 마지막에 손을 살짝 비틀어 유진의 입구 쪽을 헤집듯 관을 빼내었고 유진은 관이 빠짐과 동시에 쌓여있던 체액을 줄줄 흘리며 방출했다.

“계, 계속 가요, 계속.”

유진이 아예 정신을 못 차리고 웅얼거리자 크리스가 유진에게 입을 맞췄다. 유진의 사정 아닌 사정이 끝날 때까지 내내 입안의 민감한 부분들을 건드리는 크리스 때문에 유진은 위아래를 전부 자신의 체액으로 더럽혔다. 사정이 끝나고 유진의 몸이 널브러져 덜덜 떨리는데 크리스가 유진의 페니스에 뭔가를 하더니 유진의 요도에 기구를 삽입했다.

“아, 안 돼, 안 돼요, 막 사정했는데.”

유진이 황급하게 고개를 저었지만 크리스의 손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고 곧 아까보다 굵고 오돌토돌한 기구가 유진의 요도를 채웠다. 오돌토돌한 부분이 요도를 긁자 가뜩이나 사정 직후의 예민한 요도가 불에 타는 것 같았다. 게다가 크리스가 기구를 안쪽의 폭신한 곳까지 넣자 그것만으로도 눈이 넘어갈 정도로 느끼는데 기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이거?”

“움직이는 거야. 유진.”

“흐읏, 미, 미쳐요, 안에 또, 또 문지르면, 아.”

크리스가 손을 떼고 유진이 기구들에 바들바들 떠는 것을 보더니 전에 썼던 장갑 같은 것과 무릎보호대를 채웠다. 유진은 쾌감으로 몸을 떠느라 크리스가 장갑과 무릎보호대를 채워주는 동안에도 계속 움직였지만 크리스는 힘들이지 않고 유진에게 두 가지를 하게 한 후 네발로 서게 했다. 당연히 유진은 제대로 설 수 없었다, 침대 위라 마찰이 큰 무릎보호대는 미끄러지지 않았지만 동그란 부분으로 짚게 되어있는 팔 쪽은 그대로 미끄러졌다. 중간에 크리스가 받쳐주어 얼굴을 침대에 처박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유진은 엉덩이만 높게 세운 채로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다. 중력 때문에 아래로 쳐져야 하는 자신의 페니스가 배 쪽에 가깝게 올라붙은 것이 유진에게도 느껴졌다.

“싸고 싶어요, 싸고 싶어.”

“안으로 갈 수 있지? 유진.”

크리스가 유진과 눈을 맞추며 말하는 바람에 유진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눈꺼풀에 밀린 눈물이 시트를 적셨다.

“흐읏, 가, 가요, 가고 있는데, 아, 안 돼, 또, 또 가.”

유진의 감은 눈꺼풀 안에서 불꽃이 펑펑 터졌다. 장갑에 갇힌 손은 시트를 쥐어뜯을 수도 없었다. 유진의 발이 보호대 때문에 떠 있어 허공에서 움찔거렸다.

“안 돼, 안 돼요, 계, 계속, 미쳐요, 크리스, 크리스.”

“응, 유진.”

“안아, 안아주세요.”

크리스가 유진의 뒤에서부터 안아 자신의 품에 앉혀주었다.

“얼굴, 흐읏, 크리스, 얼굴 보고 싶어요.”

“얼굴 보고 싶어?”

“네, 네에, 크리, 크리스, 보, 보고 싶어요.”

크리스가 유진을 돌려 자신 쪽을 보게 해 앉히자 유진이 서툴게 크리스의 입술을 찾았다.

“흐읍.”

뭉툭한 손으로 크리스의 어깨를 짚고 크리스의 입술에 계속해서 자신의 입술을 밀어붙이는 유진의 등을 크리스가 감싸 안았다. 크리스의 손이 등에 닿자마자 유진의 몸이 한껏 굳어졌다 한순간에 풀리며 유진이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으면서도 크리스의 이름을 되뇌는 유진을 크리스가 품에 완전히 안아 주었지만 기구들은 멈춰주지 않았다. 유진은 금세 쾌감으로 인해 다시 일으켜졌다.

“크리스, 크리스.”

유진이 지나치고 계속되는 쾌감에 크리스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유진을 다시 침대에 내려놓을 뿐이었다.

“안아, 안아주세요.”

유진이 크리스를 붙잡고 싶었지만 뭉툭한 손은 팔만 있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제대로 붙잡을 수가 없었다. 이대론 크리스를 안을 수 없었다. 안 됐다. 유진은 크리스에게 안아달라 애원했다. 모든 감각이 크리스에게 향했다.

“크리스, 크리스, 제발, 제발 안아주세요, 크리스.”

크리스가 도로 안아주지 않을 것처럼 보이자 유진의 몸은 거짓말처럼 흥분이 가라앉았다.

“앗! 아파.”

흥분이 가라앉자 기구들의 움직임이 그저 통증으로만 다가왔다. 유진이 고통에 신음하자 크리스가 다시 유진을 안아 올렸다. 유진이 크리스의 품에 얼굴을 비비며 울었다.

“크리스, 크리스, 아파, 아파요.”

“착하지. 유진.”

크리스가 유진에게 키스하며 요도 바이브를 천천히 빼주었다. 젖꼭지에 물려있던 흡입기도 떼고 나니 통증은 좀 가셨지만 설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더 안아주세요.”

유진이 울음으로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하면서 안아달라 졸랐다. 크리스가 유진을 꽉 안고 유진의 눈가에 계속 키스해 주었지만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멈춰지진 않았다. 크리스가 유진의 손과 다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자 유진이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팔과 다리로 크리스를 붙잡았다. 크리스가 떠나갈까 무서웠다.

“잠깐 물 좀 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이렇게 서러워하면 어떻게 해, 유진.”

유진의 얼굴은 물론이고 귀와 목까지 새빨개졌다. 눈물도 쏙 들어갔다.

“많이 아팠지?”

크리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유진의 몸을 살폈지만 유진은 사라지고 싶은 마음에 제대로 반응을 할 수도 없었다.

“괜찮…괜찮아요.”

“아픈 건 솔직해야지. 유진.”

크리스가 유진을 다시 품에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정수리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춰주는 크리스 덕분에 유진의 부끄러움이 조금씩 없어졌다. 유진의 몸에 과도하게 들어가 있던 힘이 서서히 풀리자 크리스가 유진의 얼굴을 들게 해 눈을 맞췄다.

유진이 부끄러움에 계속 떨어지는 시선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크리스의 얼굴에 안쓰러움과 애정이 가득해 보여서 유진의 심장이 또 고장 난 듯이 뛰었다.

“크리스….”

유진이 다시 크리스의 품에 파고들었다. 크리스는 유진이 완전히 진정할 때까지 품에 안고 다독여주다가 유진을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크리스와 함께 있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욕조 크기 때문에 유진만 욕조에 앉힌 크리스가 유진을 부드럽게 씻겨 주었다. 좁은 공간에서 불편할 텐데도 크리스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다 씻긴 유진을 들어 올려 물기를 닦아주고 가운을 입혀 다시 침대로 옮겼다.

“…안 불편하세요?”

“우리 집이 더 편하긴 하지.”

크리스가 웃으며 답했다. 유진은 크리스가 우리 집이라 말한 그 이상한 공간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도 우리 집이라고 말하는 것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유진이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표정을 짓자 크리스가 유진에게 입을 맞췄다.

“으음….”

유진의 입술 틈으로 기분 좋은 소리가 새었다. 크리스에게 좀 더 달라붙은 유진을 크리스가 살며시 떼어냈다. 유진의 눈이 커지기 전에 크리스가 빠르게 이유를 밝혀주었다.

“약 가지러 갈 거야. 유진, 잠깐만 혼자 있어.”

유진이 새빨개져선 고개를 끄덕이자 크리스가 웃으며 유진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곤 침실을 나갔다. 금방 돌아온 크리스가 손에 연고와 물을 가져왔다. 유진은 크리스가 건네주는 뚜껑이 열린 생수병을 받아들고 마셨다. 많이 울어서 그런가 물이 달았다. 유진이 만족할 만큼 물을 마시고 나자 크리스가 연고를 묻힌 가는 관을 유진의 요도구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흐….”

“조금만 참아, 유진.”

크리스가 유진의 이마에 키스하며 달래 주었지만 크리스는 착각하고 있었다. 유진은 통증 때문에 소리를 낸 것이 아니었다. 몸이 미쳤는지 약을 바르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유진은 그것을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아서 손을 슬며시 뒤로 해 시트를 움켜쥐었다.

유진은 곧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손을 뒤로 숨겨봐야 관이 들어가는 것이 기분 좋아 단단하게 서는 자신의 페니스가 크리스의 손안에 있는데 무슨 소용인가. 마치 양이 숨느라 머리만 덤불에 묻는 것과 똑같은 짓이었다. 유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크리스는 유진의 반응을 놀릴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아주 신중하게 유진의 안이 다치지 않도록 연고를 발라준 후 유진을 품에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아이나 귀여운 강아지에게 하는 듯한 담백한 키스가 유진의 얼굴 곳곳과 머리에 쏟아졌다. 애정이 느껴져 유진의 마음이 녹았다. 유진은 금세 크리스의 품에 적응했다. 마음이 편해지니 또 눈이 가물가물 감겨왔다.

“졸려? 유진.”

“…조금요.”

“그럼 자야지.”

“그치만….”

“주말이 끝날 때까지 곁에 있을게. 유진.”

내일 저녁까지는 함께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유진은 들떴다. 유진은 크리스의 품에 볼을 비비다 기분 좋게 잠에 빠져들었다. 오르가즘을 느끼고 난 후의 잠은 정말로 달콤했다.

크리스가 기분 좋은 얼굴로 자는 유진의 몸을 계속해서 만져주었다. 맨살에 닿는 감촉이 좋은지 유진의 몸이 크리스의 몸에 비벼져 쓰다듬자 파고들기까지 했다. 온기에 약한 유진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웠다. 크리스가 유진의 이마를 드러내어 입맞춤을 하며 유진이 많이 다가온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쾌감에 약하도록 길들였는데 유진은 크리스가 없으면 아예 발기가 풀릴 정도로 크리스에 대한 의존이 엄청난 시간을 들여 배운 쾌감보다 강했다. 그것은 정말로 황홀한 일이어서 다른 때라면 자신이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유진이 고통에도 화가 나지 않았다. 애초에 유진에게 쓴 요도 바이브는 솔에 가까운 재질이라 크게 다쳤을 리도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에게 유진의 티끌만 한 고통이나 상처조차 얼마나 싫은 일인지를 생각하면 지금의 크리스의 상태는 매우 좋은 것이었다. 크리스는 입술을 오물거리는 유진에게 손가락을 물려주었다. 입에 들어온 것을 쪽쪽 빠는 것이 귀여워 조금 눌린 볼에 키스를 하자 유진이 눈을 떴다.

유진은 눈을 뜨자마자 가까이에 있는 크리스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환하게 웃었다. 크리스가 유진을 세게 끌어안았다.

“왜 벌써 일어났어? 유진.”

크리스가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 좋아 유진은 크리스에게 입을 맞췄다. 크리스가 커다란 손으로 유진의 양 볼을 감싸고 쪽 소리가 나게 키스해주었다.

“크리스.”

유진이 크리스를 부르며 매달렸다. 너무 좋았다. 크리스가 유진이 붙는 것을 모두 받아 주었다. 유진은 계속 크리스의 품에 안겨서 시간을 보냈다. 유진이 갇혀있었을 때처럼 크리스는 유진을 품에서 놓지 않았다. 그 와중에 유진이 통증을 느낀 것을 신경 쓰는지 아예 성적인 느낌이 없이 유진이 좋아하는 스킨십을 잔뜩 해주었다.

그래도 유진의 페니스가 작은 자극에 서면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한참 느리게 만져주며 유진이 가라앉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달하지 못할 정도의 느리고 약한 자극이 계속 주어지면 그 온기에 녹아 유진이 흐물흐물해져 흥분을 넘어서게 되었다. 곧 약간의 발기는 그저 좀 더 달콤한 것에 불과한 작은 일이 되었다.

“기분 좋아요.”

“기분 좋아? 유진.”

유진의 눈이 가늘어지며 기분 좋음을 알리면 크리스가 웃으며 유진에게 입술만 닿는 키스를 해주었다. 유진은 따뜻하고 포근한 무언가에 둘러싸인 기분으로 크리스의 손길을 받았다. 중간중간 크리스가 챙겨온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았다.

유진이 한동안 식사를 못 하고 있었던 것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게 확실하게 드러나는 식단이라 유진의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비록 유진에게 와주지는 않았지만 크리스는 유진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거기에 좁은 공간이라 유진을 매달고 요리하는 크리스의 모습도 좋았다. 원래 성향상 자신의 기준 안에서 완벽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긴 했는데 음식에 들이는 공이 남달랐다.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있어서 유진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크리스에게 질문했다.

“원래 요리를 좋아하시나요?”

“아니, 싫어하지. 유진이 없으면 요리는 절대 안 해.”

크리스가 웃으며 팬을 굴리는 바람에 유진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유진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귀밑의 동맥이 펄떡거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유진의 심장은 엄청난 혈액을 내뿜었다.

“정말요?”

“정말.”

크리스가 팬을 내려놓고 불을 끈 후 아예 몸을 돌려 등에 붙어있던 유진과 눈을 맞추고 대답했다. 유진이 조금 떨리는 손으로 크리스의 손목을 잡자 크리스가 무릎을 숙여 유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쪽 소리가 나게 붙였다 뗐다. 유진의 눈이 뽀뽀에도 감기지 않는 것을 본 크리스가 유진을 완전히 안아 올렸다.

“유진, 사랑스러운 나의 유진.”

크리스가 유진을 든 채로 몇 번이나 입을 맞추자 유진은 녹을 수밖에 없었다. 팔로 크리스의 목을 감고 있는데도 안정감이 없어질 정도가 되자 크리스가 유진의 허리를 단단하게 붙잡고 키스를 하며 침대로 향했다.

“밥을 좀 먹여야 하는데.”

크리스가 유진을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눈가를 쓸며 하는 말에 유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정말 잠깐이었다. 잠깐 유진에게 먹여야 한다며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침대 밖으로 나온 것이었는데 밥도 먹기 전에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문제는 배도 그렇게 고픈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배…아직 안 고파요….”

크리스가 유진의 코를 살짝 쥐고 비틀었다. 식사를 많이 거른 유진을 걱정하는 것이 느껴져 유진의 얼굴이 헤실 헤실 하게 풀렸다.

“유진.”

크리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유진을 끌어안았다. 작게 한숨을 쉬는 그에게 유진이 달려들듯 키스를 하고 떨어지며 소리 내어 웃었다.

“유진, 유진, 유진.”

크리스가 애절하게 들릴 정도로 유진을 부르며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이 반응하는 크리스가 좋아, 유진은 한참이나 크리스의 품에 안겨 웃고 있었다. 그동안의 불안감이 다 사라질 것 같았다. 크리스는 그런 유진에게 아주 다정했다. 유진의 얼굴 곳곳에 크리스가 키스의 비를 내렸다. 유진의 머리카락에 손을 넣어 헝클기도 했다. 그러다 유진과 눈을 마주치면 그의 선명한 녹안이 젖은 것으로 보일 정도로 반짝였다.

유진은 몇 번이나 소리를 내어 웃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정말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아. 유진.”

크리스가 웃느라 정신이 없는 유진을 안고 침실을 나섰다. 유진을 식탁 의자에 앉힌 크리스가 빠르게 움직였다. 유진이 크리스를 잠깐 보고 있으니 바로 앞에 음식이 차려졌다. 유진은 곧 크리스의 품으로 자리를 옮겼고 크리스가 유진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먹었다. 유진은 크리스가 한 입씩 먹여줄 때마다 크리스에게 키스했다. 덕분에 유진의 식사는 아주 느리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유진도 크리스도 식사가 느리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정리까지 크리스가 끝내는 바람에 유진은 호스트로서 조금 아닌 것 같았지만 크리스의 앞에서 호스트가 될 수도 없었다. 이 집이 유진의 집인 것과는 별개였다. 크리스의 통제문제는 크리스가 꽤나 긴 시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스스로도 의지를 가지고 관리를 한 것이 보이지만 완전히 고쳐지지는 않는 문제였다. 그런 그가 강하게 집착하는 유진을 뒷정리를 위해 자신의 통제 바깥에 내놓을 리가 없었다. 유진은 그저 크리스가 정리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집이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가 유진의 공간에 찾아온 것이었다. 유진보다 크리스가 몇 배는 불편할 터였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원래 지내던 공간보다 협소한 것도 문제였지만 크리스의 성향상 자신의 공간이 아닌 곳을 편하게 느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유진의 공간에 와주었다. 유진은 회사에도 복귀했다. 유진이 크리스에게서 탈출하긴 했어도 크리스가 다시 마음만 먹는다면 유진을 도로 가두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이 크리스가 유진을 다시 감금하는 것을 반대하겠지만 과연 100프로 막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그의 부모의 감시를 받는 것은 스스로 용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조부가 그에게 직접적으로 준 자금을 굴려 성인이 되기 전부터 카르텔 하나를 지원해 키워나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부모조차 그런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크리스의 통제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유진과 크리스 양쪽에 사람을 붙이고 있었는데도 그랬으니 요즘처럼 유진에게 감시자가 안 붙어 있을 때는 뻔했다. 유진은 생각하면 할수록 크리스가 그의 기준에서 자신을 굉장히 소중하게 대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유진은 괜히 가슴 속이 몽실거리는 것을 느끼며 정리를 끝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크리스에게 안겼다.

“유진?”

크리스가 의아해하며 유진을 불렀지만 유진은 크리스를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크리스는 그런 유진의 얼굴을 억지로 들게 하지 않았다.

유진은 남은 주말 내내 크리스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지냈다. 행복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금방 일요일 밤이 되어 크리스를 보내야 하는 시각이 다가왔다. 유진을 든든하게 먹이다 못해 여러 가지 것들을 챙겨놓은 크리스가 자리에서 일어서 나가는 것을 배웅하는데 보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유진,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크리스가 침실을 나와 현관까지 따라온 유진에게 들어가 보라는 신호를 주었다. 유진은 대답을 하지 않고 크리스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크리스가 현관문을 열자 결국 참지 못하고 크리스를 붙잡았다.

“가지 마세요….”

“유진?”

“같이 있고 싶어요.”

유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크리스의 반응이 무서워 감은 눈이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크리스에게서 어떤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갑갑해졌다. 결국 유진은 한쪽 눈꺼풀만 살짝 들어 올렸다.

유진의 눈은 양쪽 다 크게 열렸다. 크리스가 울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눈물을 쏟는 것이 말도 안 되고 당황스러운데도 아름다워서 유진이 눈만 커다랗게 뜨고 멍하니 있는 것을 크리스가 세게 끌어안았다. 다른 때보다 높은 체온도 당황스러웠다.

“유진, 유진, 나의 사랑스러운 유진.”

크리스는 본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다. 한눈에 보이는 애정에 유진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이렇게나 좋을까. 지금도 유진은 꼼짝을 못할 정도로 강하게 크리스의 품에 붙들려있었다. 크리스의 뜨거운 입술이 유진의 귀와 목에 잔뜩 와 닿았다. 가끔 입술이 떨어지며 닿는 숨결의 뜨거움이 부끄러울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크리스….”

“응, 유진.”

크리스의 표정이 녹아내릴 정도로 달콤했다. 유진은 약간의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나 좋아할 줄 알았으면 좀 더 빠르게 말을 하는 것이 나았을걸.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기뻐하는 크리스가 유진은 정말로 조금 불쌍했다. 그러고 보면 크리스에게 유진은 20년에 가까운 기다림이었다. 자신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구하고 싶었던 사람과의 이별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유진의 다른 행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 크리스는 유진을 위해 몇 번이나 손을 더럽혔다. 사람을 몇이나 죽였는지. 아무리 정당방위라고 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유진은 크리스가 사랑스러웠다. 유진은 손을 빼어 크리스의 볼을 감쌌다.

“유진.”

크리스의 얼굴에 유진에 대한 경탄이 드러났다. 크리스가 유진을 안고 다시 침실로 향했다.

“나의 유진.”

크리스가 유진을 침대에 앉히고는 침대 밑에 한쪽 무릎을 댔다. 유진이 크리스를 일으키려 상체를 숙이는데 크리스가 유진의 발을 받쳐 들어 발등에 키스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경건해 보여 유진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일처럼 멀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이나 발등 위에 머문 온기가 떨어지고, 고개를 든 크리스를 본 유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너무 잘생겨서 차가움마저 느껴지는 얼굴에 조금은 얼이 빠져 보일 정도의 기쁨이 넘실거렸다. 유진이 다급하게 크리스를 일으키려 했지만 크리스는 다른 발등에도 한참 입을 맞췄다. 유진은 진이 빠져버렸다. 크리스의 전환이 너무 급작스럽고 심해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도 좋냐고 묻는다면 좋았다.

“크리스.”

유진의 부름에 크리스가 침대로 올라왔다. 유진을 안고 귓가에 응, 하고 대답하는 게 간지러워 유진이 목을 움츠리자 크리스가 유진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끌어안았다. 유진의 가슴 속이 간질거렸다.

그날부터 크리스는 유진의 집에서 함께 지냈다. 유진은 크리스의 품에서 잠들고 크리스가 챙겨주는 음식을 먹었다. 씻는 것은 저녁에만 크리스가 함께 들어와 유진을 씻겨 주었다. 유진의 생각과 달랐던 것은 크리스가 유진의 외모에는 그다지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옷이나 스타일에는 아예 간섭하지 않았다. 유진의 건강과 관련이 없으면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 것 같았다. 뭐가 되든 크리스는 유진에게 칭찬만을 했다.

그것이 아니라도 유진이 거절하면 하지 않을 것 같은 담백함이 크리스에겐 있었다. 유진이 크리스의 통제문제가 성적인 행위에만 남았나 생각할 정도로 미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는데 왜냐하면 유진이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아침에도 크리스의 품에 안겨 씻겨달라 조르기까지 했다. 유진이 스스로 하는 것보다 훨씬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해주는데 크리스와의 잠이 달콤한 유진에게 싫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복귀가 너무 일렀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크리스와 떨어져 지내는 근무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거기에 유진이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한 이후로 크리스는 유진에게 기구를 사용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키스 이외에는 성적으로 닿아오는 일이 아예 없었다. 유진이 통증을 느껴 기구를 빼줄 때도 일부러 남겨 놓았던 안쪽을 늘리는 기구조차 자기 전에 빼주고는 그런 것은 존재도 안 하는 것처럼 굴었다. 우스운 건 유진의 몸이었다. 혼자 남겨졌을 때 스침만으로도 쉽게 발기하고 안에 넣어지고 싶어 울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몸을 태우는 욕망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크리스와 섹스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또 아니었다.

크리스가 키스해주거나 유진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면 조금 더 닿고 싶고 몸을 겹치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그러나 학습된 것처럼 자동으로 떠오르던 몸의 달뜸은 없어졌다. 유진은 크리스와 사랑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할 건 다 해버렸지만 이런 달콤한 공기가 흐른 것은 처음이라 그런가 연애도 해보지 못한 유진이 안아달라 조르기엔 문턱이 너무 높았다. 몸이 길들어 쾌감을 찾을 때 요구하는 것은 약간의 수치심이 전부였다. 오히려 가끔은 당연히 크리스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좋은 도구이기도 했고.

감금되어 성적인 조교 외의 자극이 극히 적은 상황에서 유진이 성적인 쾌감에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그것이 크리스가 유진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유진을 지켜주었다. 쾌감을 좇아 그에게 달라붙는 유진의 모습이 크리스에게 좋기도 했을 것이고, 통제 욕구를 성욕으로 치환하기도 했을 테니까.

도구로 다뤄지는 섹스에는 그렇게나 당당할 수 있었는데 역시 유진은 사랑꾼이었던 부모님의 자식이 맞았다. 유진의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랑을 했는지 유진은 이제 잘 알고 있었다. 유진의 남은 기억에서도 두 분의 사이가 매우 좋았지만 크리스가 알려주는 이야기에서 두 사람은 마치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러브스토리 같았다.

그래, 크리스는 유진의 친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다. 두 분의 무덤을 그렇게 만든 것도 크리스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유진이 비극적인 기억에서 망각으로 보호받고 있는 동안 크리스가 대신 유진의 부모님의 흔적들을 챙기고 찾아다녀 유진은 크리스로부터 행복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유진의 부모님이 쓴 육아 수첩도 받았다. 정말 드물 정도로 아빠의 흔적이 많이 남은 수첩에 유진이 얼마나 많이 울며 기뻐했는지 몰랐다. 유진을 기다리며 행복함만을 드러내는 글들에 담긴 애정은 누가 봐도 엄청나서 유진은 크리스의 품에서 그것을 한 장씩 읽는 것이 매우 좋았다.

“으음….”

유진은 퇴근해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을 맞이해주는 크리스에게 매달렸고 크리스가 몸을 숙여 유진과의 키스를 받아 주었다.

“잘 다녀왔어? 유진.”

“네. 다녀왔어요, 크리스는요?”

“나도.”

유진의 짐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으로 옮긴 크리스가 유진을 안듯이 감싸고 유진을 집으로 들였다. 유진은 항상 자신보다 늦게 나갔다가 빨리 돌아오는 크리스가 고마웠다. 유진의 마음속에 아직은 남은 두려움이 드러날 일을 아예 없애주는 것이 느껴졌다.

“아!”

“무슨 일 있어?”

“크리스, 이 근처에 그 집이 있는 거예요?”

유진은 여태까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장소가 가깝지 않으면 크리스가 지금처럼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떻게 지금까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왔는지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이게 다 크리스가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유진을 보살피는 데 익숙해져 문제였다.

“응, 바로 두 블록만 가면 있지.”

“…언제부터요?”

유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네가 연방 수사국에 들어갔을 때부터. 유진.”

유진의 심장이 잠시 멎었다가 빠르게 뛰었다.

“크리스, 크리스.”

유진이 크리스를 부르며 안겨드는 것을 크리스가 웃으며 팔을 벌려주었다. 유진의 등을 감싼 손이 아래위로 느리게 움직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유진이 진정할 때까지 크리스가 계속해서 유진에게 뽀뽀와 쓰다듬는 것을 해주었다. 유진은 그것까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크리스는 너무나도 다정했다. 유진이 크리스의 통제문제를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따로 더 찾아보기도 하고 있었고, 하지만 알아볼수록 크리스는 궤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고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가 해주는 것들이 계속 쌓여 만 갔다.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되어 한 번에 넘치게 쌓일 때도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유진이 크리스의 품에 묻었던 얼굴을 들고 까치발을 하자 크리스가 고개를 숙여주었다. 유진이 급하게 크리스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고 자연스럽게 열리는 입에 혀를 얽었다. 여전히 늘지 않는 유진의 서툰 키스에도 크리스는 잘 어울려줬고 유진은 곧 몸을 크리스에게 기댔다. 키스가 너무나도 달아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크리스, 크리스.”

유진이 마음이 급해 계속해서 크리스를 부르며 매달리자 크리스가 유진을 아예 안아 올려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유진을 자신의 다리 위에 앉힌 크리스에게 유진이 다시 입술을 겹쳤다. 유진은 키스를 하며 자신의 겉옷을 벗으려는데 떨림이 있는 손으론 성에 차지 않았다. 유진의 혀가 굳어지는 것을 알아차린 크리스가 쉽게 유진의 옷을 벗겨주었다.

“크리스도….”

크리스가 웃으며 유진에게 키스했다. 크리스가 이끄는 대로 키스하던 유진은 맨살끼리 닿는 감촉을 느꼈다. 유진이 좋아하는 느낌이었다. 언제 벗겨졌는지 모를 옷에 유진의 눈이 동그래지는 것을 본 크리스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귀여워, 유진.”

유진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르자 볼이며 입가에 키스의 비가 내려왔다. 유진이 다시 크리스와 눈을 맞추었다. 아름다운 녹색의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담긴 것을 보자 다시 자석이 서로 붙듯이 입술을 붙였다. 이번의 키스는 농밀해서 유진은 자신의 몸을 크리스에게 붙여 문질렀다. 의식을 하고 한 행위는 아니어서 젖꼭지가 눌러졌을 때 유진은 신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흣.”

놀라고 부끄러운데도 크리스의 손길이 필요했다.

“크리스, 만져주세요.”

유진이 가슴을 내밀며 말하는 것을 크리스가 거부할 리가 없었다. 크리스의 손가락이 유진의 통통한 젖꼭지를 부드럽게 굴렸다. 유진에게서 달콤한 콧소리가 새었다.

“좋아요, 기분 좋아.”

크리스의 입술이 유진의 드러난 목의 힘줄을 따라 움직였다. 유진의 등줄기를 타고 전류가 흘렀다.

“흣.”

크리스가 아프지 않게 유진의 목덜미를 물자 유진의 몸이 튀었다. 유진은 자신의 몸이 너무 빠르게 달아오른 것을 깨달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그것은 매우 생경한 느낌이라 어색한데도 계속해서 웃음이 났다.

“예뻐, 유진.”

“네, 예뻐해 주세요. 받고 싶어요.”

“유진!”

크리스가 답지 않게 크게 움직이는 것을 유진이 팔로 크리스의 목을 감아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크리스의 입술이 유진의 젖꼭지에 닿았고 유진의 다리가 허공을 걷어찼다. 크리스가 유진을 침대에 눕혔다. 유진은 좀 더 편해진 자세로 크리스를 환영했다.

“달아.”

“좋아요….”

크리스의 입술이 유진의 젖꼭지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말캉한 입술로 물었다가 혀로 튕기면 예전에 배웠던 쾌감과 지금 느끼는 충족감이 한참 동안 올라오고 유진의 발은 계속해서 시트 위를 긁었다. 유진의 젖꼭지는 핑크빛에서 붉은빛으로 모습을 바꿨다.

“예쁘게 익어버렸네. 얼굴도.”

유진이 크리스가 젖꼭지를 보며 하는 말에 얼굴을 붉히자 크리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크리스의 키스가 다시 시작되었다.

“흐읏, 아, 좋아, 좋아요.”

유진의 페니스가 긴 애무에 갑갑함을 호소했다. 크리스의 몸에 닿게 문질러 갑갑함을 표현하자 크리스가 유진의 하의를 완전히 내렸다. 발목까지 내려온 것을 유진이 발로 벗어 던져버리는 것을 본 크리스가 웃으며 유진에게 키스했다.

“귀여워. 유진.”

유진이 다시 크리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흥분은 계속해서 유진의 온몸을 간지럽혔다.

크리스의 입술이 다시 유진의 젖꼭지를 물었다.

“거기… 거기만…계속….”

“젖꼭지 말고 다른데?”

유진이 부끄러움에 눈을 세게 감자 크리스가 낮게 웃는 것이 느껴졌다. 유진이 고개를 획 돌리자 아예 크게 웃은 크리스가 유진의 입술로 입술을 옮겼다.

“귀여워, 유진.”

크리스가 혀도 쓰지 않고 입술로 꼭꼭 도장을 찍는 바람에 유진이 고개를 원위치시켜버렸다. 크리스가 유진의 눈꺼풀에, 코끝에 스치듯 키스하고 귓가에 달콤한 말들을 속삭였다. 귀엽다, 예쁘다, 사랑스럽다의 순서 없는 반복에 민감한 귀가 시달리니 유진은 결국 크리스의 손을 잡고 자신의 페니스로 옮겼다.

“흐읏!”

이미 유진의 페니스는 선액을 줄줄 흘리고 있어 미끌거렸는데 거기에 크리스의 손이 닿으니 몸이 완전히 튀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허리가 둥근 곡선을 그리며 떴다. 크리스는 유진이 민감한 귀두를 손바닥으로 굴리며 귀를 입으로 괴롭혔다.

“흐… 아… 동시에….”

“동시는 싫어? 유진?”

“앙!”

크리스가 동시는 싫냐고 물어놓고 하던 것은 안 멈추고 오히려 한 손을 더해 젖꼭지를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동시에 주어지던 세 군데의 공격을 이기지 못한 유진이 높은 소리를 내며 사정해버렸다.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가 안쪽의 허전함과 함께 시야가 돌아왔다.

“크…크리스….”

유진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꼬물거리자 크리스가 유진을 돌려 눕혔다. 크리스의 작은 탄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등 전체를 바꿔버릴 기세의 크리스의 애무가 시작되었다. 목덜미를 물려 바들거리며 떨고 있는 유진의 도드라진 척추뼈를 따라 이로 긁었다. 그래서 누르는 것에 약한 유진이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거기에 힘이 들어가 솟은 유진의 날개뼈를 한참이나 눌러 유진이 시트 위를 기게 했다.

“히…아…안 돼요… 안 돼….”

유진이 아무리 손으로 시트를 밀며 움직이려 해도 어깨를 잡고 있는 크리스의 손 때문에 조금도 앞으로 가지 못하는 유진이, 절정에 완전히 이르지는 못하면서 턱밑까지 오르는 쾌감에 바둥거렸다. 스스로의 무게에 눌리고 있는 페니스가 또다시 선액을 흘려 시트가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허리를 흔들려는 유진의 낌새를 알아차린 크리스가 유진에게 엉덩이를 들게 했다.

“흐?”

“시트에 문지르면 나중에 따가우니까. 유진.”

크리스가 손으로 페니스를 감싸고 움직이며 등에 애무를 계속했다. 유진은 쾌감에 저도 모르게 허리를 흔들다가 문득 정신이 들면 멈추고를 반복했다.

“마음대로 움직여도 돼, 유진.”

크리스가 웃으며 하는 말에 용기를 얻은 유진이 고개를 돌려 크리스를 봤다. 유진이 키스를 조르는 것에 크리스가 입꼬리를 올린 채로 입술을 겹쳐왔다. 유진은 크리스의 손에 자신의 것을 비비며 계속해서 신음을 크리스의 목으로 넘겼다. 이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 나와요.”

“싸.”

유진이 크리스의 손을 자신의 정액으로 더럽혔다. 숨이 차고 사정한 느낌이 나는데도 몸의 열기가 식지 않았다. 유진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크리스….”

“응. 유진.”

“안… 안 넣어요….?”

“넣고 싶어?”

“네….”

“이렇게 귀여워서 어쩌나.”

크리스가 유진을 안아 올려 입을 맞춰주었다. 유진은 기대감과 기쁨에 크리스의 목을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크리스의 젖은 손이 유진의 페니스를 다시 만지기 시작했다. 유진의 허리가 다시 흔들리고 크리스의 손길이 기둥에서 고환으로, 고환을 한참 손안에서 굴리다 회음부로 이동하자 유진의 입구가 오물거리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느껴졌다. 심지어 또 흘리는 선액 때문에 젖어드는 느낌까지 났다.

“얼… 얼른….”

유진이 크리스를 보며 조르자 크리스가 쪽쪽 소리가 나게 유진의 얼굴에 키스했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에 유진은 졸랐을 때보다 부끄러움이 커졌다. 크리스는 유진이 뭘 해도 좋아하는 티를 내주었다.

크리스의 손이 유진이 원하는 곳으로 움직이자 유진의 허리에 힘이 들어가 등의 골이 뚜렷해졌다. 크리스의 다른 손이 유진의 깊이 팬 골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아흣.”

유진의 고개가 넘어가자 입구 근처에 있던 손가락이 아주 얕게 안으로 들어왔다. 유진의 입구가 벌어지는 것에 맞춰, 들어왔다고 말하기도 무색할 정도로 얕은 침입을 한 손가락에도 유진의 눈앞이 번쩍거렸다. 유진은 의식적으로 숨을 깊이 내쉬며 힘을 풀려고 노력했다. 크리스가 유진의 노력을 기특하다는 듯이 짧은 키스를 해주었다. 너무 좋았다.

골을 훑던 손가락의 누르는 힘이 커지고 유진이 달콤한 소리로 울자 크리스의 손가락이 아주 느리게 유진의 안으로 들어왔다. 고작해야 손가락 하나인데 유진의 내벽은 들어온 것을 반기느라 들러붙었다. 좋았다.

“좋…좋아요…. 좋아.”

“나도.”

유진의 좋다는 얘기에 나도란 대답을 해준 크리스가 좋아서 유진은 크리스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볐다. 크리스의 입술이 유진의 볼이 닿을 때마다 살짝 물듯 볼을 머금었다 놓아주었다. 유진의 열기는 정말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크리스가 너무 격한 환영을 하는 내벽을 살살 문질러서 달래주었다. 전립선을 누른 것도 아닌데 녹을 것 같았다. 유진의 기분처럼 유진의 내벽이 진탕되기 시작했다. 크리스가 조금 자유로워진 움직임을 바탕으로 안을 휘저었다.

“흣, 좋, 좋아, 아, 기분 좋아요, 앗, 거기, 거기.”

크리스의 손가락이 큰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가다 유진의 전립선을 스쳤다. 통통하게 부은 곳이 손가락에 조금 눌리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유진은 그 느낌을 쫓아 더해달라 졸랐다. 말로만 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움직여 가져다 대었다. 크리스가 웃으며 유진이 제대로 눌리고 싶은 곳에 맞을 때까지 손가락을 가만히 두었다. 유진은 제대로 위치를 잡고 움직였으나 모자랐다.

“크리스, 크리스, 눌러, 눌러주세요.”

“혼자서는 힘들어?”

“네. 크리스가 해주세요.”

크리스가 짧은 입맞춤과 동시에 손을 움직여주었다. 유진이 움직였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유진의 입이 벌어졌는데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간만에 느끼는 쾌감에 크리스와의 행위였다. 유진은 심장이 조여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좋고 행복했다. 유진은 금방 절정에 올랐다.

“!!!!!”

유진의 정액이 크리스의 턱 끝까지 뿌려졌다. 제대로 된 절정으로 몸을 떨면서도 유진이 크리스의 턱에 묻은 정액을 핥아 깨끗이 하려는 것을 끌어안은 크리스가 미친 듯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유진의 내벽을 문지르며 달래주었다.

“하아, 하아, 흐읏, 아.”

“예뻐라, 유진.”

크리스가 눈을 휘며 웃는 것이 좋아 유진의 시야가 몽롱해졌다. 크리스의 손이 유진의 등을 느리고 부드럽게 두드렸다. 유진의 몸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나른해졌다. 유진은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려 애썼지만 크리스가 유진의 눈꺼풀로 입술을 옮기는 바람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유진은 잠이 들어버렸다.

“아!”

“일어났어? 유진.”

“크리스.”

“잘 잤어?”

유진이 잠든 자신에게 놀라면서 깨어나자 크리스가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침 인사를 했다. 유진은 어젯밤의 일을 사과하고 싶었는데 크리스의 표정이 너무나 온화해서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결국 크리스의 품에 얼굴을 묻어 비비는 것을 선택한 유진을 본 크리스가 한참 동안 유진의 드러난 정수리에 키스하는 것으로 아침이 시작되었다.

유진은 자신의 몸과 시트가 깨끗한 것을 침대 밖으로 크리스에게 안겨 나오면서 깨달았다. 유진은 혼자만 만족했을 뿐만 아니라 뒷정리도 하지 않고 잠이 든 것이었다. 물론 크리스가 유진에게 뒷정리를 시킬 리도 없지만 그래도 함께 달하고 진득한 후희를 한 후, 같이 씻는 것도 좋았을 텐데 유진이 자 버린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는 단 한 번도 유진에게 애무를 시키지 않았다. 유진이 느끼는 것만 다양해졌을 뿐이었다. 유진은 크리스에게 안겨 밥을 먹고 씻겨지며 나름의 각오를 다졌다. 혼자만 받는 것은 하지 않아야지.

조금 이르게 준비가 끝나 유진은 크리스와 키스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조금 달아오른 상태로 출근을 했다. 유진의 표정이 너무 좋았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일이 있냐고 묻는 통에 유진은 온종일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일이 잘되는 데도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드디어 끝나고 유진은 날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역시나 크리스는 먼저 와있었다.

“크리스!”

유진이 달려들듯 크리스의 품으로 안기는 것을 부드럽게 받아 안은 크리스가 잘 다녀왔냐며 인사를 했다. 유진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크리스에게 입을 맞췄다. 길고 진한 키스가 끝나고 유진이 젖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크리스.”

“나야말로. 유진.”

크리스가 환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맞춰왔다. 유진의 가슴 속이 무언가 말랑한 것으로 차올랐다.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크리스가 유진을 안고 욕실로 향하면서도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욕실 앞에서 완전히 옷이 벗겨진 유진은 준비되어 있는 욕조에 들어가게 되었다. 혼자 들어오는 것이 전부라 너무 아쉬웠다.

“크리스.”

“응. 유진.”

“집을 옮길까요?”

“어디로?”

“유진!”

유진이 쑥스러움에 웃기만 하는 것을 크리스가 알아듣고 유진을 끌어안았다. 젖은 유진의 몸 때문에 크리스의 셔츠가 젖어 들러붙었다. 유진은 자신을 끌어안은 크리스의 넓은 등을 어루만졌다. 크리스는 진정이 되자마자 유진을 들어 올리곤 물기를 닦았다. 서두르는 손길에 유진은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다. 크리스가 계속해서 웃는 유진을 완전히 안아 올리고는 욕조의 마개를 급하게 뺐다. 유진은 나오자마자 크리스에게 옷이 입혀지고는 크리스가 이끄는 대로 집을 나섰다.

크리스의 말대로 두 블록을 지나고 나자 집으로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외관은 평범했다. 유진이 알아차린 것은 작은 간판이었다. 크리스는 유진이 짐작했던 대로 의사였다. 정신과였던 것은 의외였지만. 1층엔 카페까지 하나 있었다. 크리스는 병원 쪽 입구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바로 앞의 엘리베이터를 지나 관계자 외 출입금지가 붙은 문을 열고 유진을 끌어안아 입을 맞췄다. 절실하게까지 느껴지는 키스에 유진의 다리가 풀리자 유진을 안아 올린 크리스가 문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크리스의 키스는 끝나지 않았다. 딩동 하고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유진이 처음 보는 집이 나타났다.

“바꿔 버렸어요?”

“아니.”

유진의 질문에 크리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크리스가 좀 더 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거실과 주방, 몇 개의 방문들을 지나고 집의 끝에 다가가자 벽이 움직이며 공간이 열렸다. 유진의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 보는 거실을 지나자 또 문이 열리고 유진이 알고 있던 주방이 나왔다. 주방을 지나 복도로 복도에서 다시 침실로 향하면서 유진은 크리스의 목을 좀 더 세게 끌어안았다. 유진의 생각이 맞았다. 그때 그 방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탈출시도를 했더라면 절대 성공했을 리가 없을 구조였다. 무서워야 하는데 유진은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크리스가 이런 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유진, 뒤를 돌아봐.”

크리스가 웃는 유진의 이마에 짧은 키스를 하고는 유진에게 뒤를 돌아보라 말했다. 유진은 크리스가 말한 대로 자신이 지나온 길을 보았다. 모든 문이 열려 있으니 끝까지 일직선으로 길이 열려 있었다. 일자로 쭉 뚫린 길에 유진의 코끝이 찡해졌다. 눈도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사랑해. 유진.”

크리스의 말은 너무도 무거워서 유진은 고개만을 아래위로 끄덕이다가 겨우 한마디를 할 수 있었다.

“알고…알고 있어요….”

눈물로 얼룩진 유진의 얼굴에 크리스가 계속해서 입을 맞췄다. 유진의 눈물은 크리스와 욕조에 함께 들어왔을 때야 멎었다. 두 사람이 함께 들어왔는데도 비좁은 느낌이 없었다. 이런 것이 유진이 집을 옮기고 싶었던 이유였다. 크리스가 너무 다정하게 유진을 안아주었다. 유진은 크리스의 다리 위에 앉혀져 크리스가 계속해서 유진의 눈가에 키스하는 것을 받았다.

“좋아요….”

유진이 크리스를 끌어안으며 말하자 크리스가 유진의 머리에 입술을 내렸다 떼며 물을 떠 유진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따뜻한 공기와 물, 넓은 욕조. 유진의 집과는 완전히 달랐다. 크리스는 처음부터 유진을 떠올리며 이 집을 만들었다. 잠금장치를 한 문이 많은 것은 유진의 공간을 제한하기 쉽고 탈출이 힘들도록, 그 문이 전부 일자로 뚫리도록 배치된 것은 만약 잠금장치만 열어 둔다면 불편함이 전혀 없도록. 유진이 카르텔에 쫓기는 것만 보지 않았더라면 저 문들은 항상 열린 채로 유진을 맞이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랬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이상할 정도로 일자로 뚫려있을 이유가 없었다.

다 씻고 유진은 커다란 타월에 감싸여 크리스에게 들려 침대로 향했다. 커다랗고 부드러운 침대가 유진을 반겼다. 유진은 자신의 작은 침대가 크리스에게 얼마나 불편했을지를 떠올렸다. 크리스의 키를 생각하면 자신의 침대는 아주 불편했을 것이었다. 말은 안 해도 발이 나가지 않았을까. 왜 여기에 오겠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지. 장소에 각인된 공포는 없었는데도.

유진에게 각인된 공포는 크리스였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크리스의 기분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지금은 희미해져 갔다. 크리스의 기분을 거스르는 것이 몹시 힘든 일이라 거스를 일이 거의 없기도 했고 유진이 같이 있고 싶다고 한 이후로 크리스의 다정함이 너무 강렬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유진도 크리스가 급변하면 자신이 제대로 대처를 못 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진이 손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크리스가 쉽게 화를 낼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의 통제 욕구는 사소한 행동에 있지 않았다. 그의 시야는 훨씬 넓었다. 유진의 의도가 보다 중요했다.

오히려 유진은 각인된 공포보다는 이제 완전히 익숙해진 크리스의 온기를 잃게 되는 일이 무서웠다. 더이상 곁에 있어 주지 않거나 유진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된다면, 그래서 유진에게서 영원히 떠난다면 유진은 버틸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공포는 유진을 겁먹게 하는 것보다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랑하게 되면 당연한 감정이었으니까.

유진은 침대에 함께 누운 크리스의 옆을 파고들어 크리스에게 입을 맞췄다. 몇 번이고 달싹거리듯 붙었다 떨어지는 입술을 크리스가 다가오더니 붙잡아버렸다. 크리스가 유진을 붙잡아 입술이 떨어지지 못하게 만들고는 입술만을 붙이고 있어서 유진이 혀를 내어 크리스의 입술을 핥았다. 크리스의 입술이 열리고 두 사람의 혀가 얽혔다.

달콤해서, 너무 달콤해서 유진은 크리스의 품에 보다 깊이 파고들었고 크리스가 사이에 있던 타월을 치워버렸다. 유진은 맨살끼리 닿는 감촉이 좋았다. 크리스의 걱정도 좋았다. 엄청나게 부드러운 타월에도 유진의 피부가 마찰로 벗겨질까 해서 치우는 것을 유진은 잘 알고 있었다. 유진은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크리스의 몸에 이미 일어선 젖꼭지를 문질렀다. 크리스와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유진이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것을 전혀 밀리지 않는 크리스가 받아 주다 못해 제대로 끌어안았다. 유진의 등과 엉덩이에 크리스의 손이 닿았고 그대로 온기가 열기가 되어 유진을 덮쳤다. 유진이 허리를 흔들자 크리스의 큰 손이 유진의 올라붙어 동그란 엉덩이를 감싸듯 쥐었다.

“으흣.”

엉덩이를 그저 쥐었을 뿐인데 어째서 안이 이렇게 간질거리는지 유진은 몰랐다. 유진의 신음에 크리스의 손이 보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그거 좋아요….”

“좋아?”

크리스가 웃으며 유진이 앙앙거릴 때까지 만지는 걸 계속했다. 동시에 온몸에 떨어지는 키스가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유진의 페니스가 배에 붙어 선액을 흘려댔다. 크리스의 입술이 유진의 페니스를 머금었다.

“하읏!”

유진의 다리가 넓게 벌어졌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크리스의 커다란 손이 유진의 허벅지를 눌렀다. 벼락을 맞은 듯이 눈앞과 몸이 튀었다. 크리스의 혀가 유진의 벌어진 요도에 들어가듯이 핥았을 때 유진은 참지 못하고 크리스의 입안에 사정해버렸다.

“흐….”

유진이 몸이 완전히 늘어졌다. 약간의 떨림만이 남아 유진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크리스의 혀가 다시 움직였다.

“사…사정…방금, 방금 했는데….”

“응, 유진.”

크리스가 유진의 페니스를 문 채로 웃으며 말하는 바람에 유진의 페니스에 다른 자극이 쏟아지고 유진의 시야 가득 크리스의 얼굴이 확대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유진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아, 안 돼, 안 돼, 또 가요, 아, 미, 미쳐 버려요.”

유진의 머리가 베개에 눌린 채로 격렬하게 저어졌다. 유진의 결 좋은 머리카락이 마구잡이로 헝클어졌다. 하지만 크리스의 행위는 끝나지 않았다. 유진은 새하얗게 변하는 시야와 함께 절정에 달했다. 그때 유진의 뒤쪽에 젤이 잔뜩 뿌려지고 발렸다. 언제 데웠는지 차가운 느낌이 없는 젤이 크리스가 유진의 입구를 벌리자 느리게 흘러들어 갔다.

“간지… 간지러워요. 크리스.”

느리게 흘러들어 가는 점성 있는 액체는 예민한 부위를 무언가로 간지럽히는 듯이 괴롭게 만들었고 유진은 크리스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얼른 긁어줬으면. 유진이 크리스에게 애원하는 눈으로 쳐다보자 크리스가 올라와 유진의 눈꺼풀에 입술을 내렸다. 젖어 촉촉한 입술이 유진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귀여워, 유진.”

부끄러운 와중에도 크리스가 웃는 것이 좋았다. 유진은 크리스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크리스의 손가락이 유진의 안으로 들어왔다. 젤이 흘러간 것을 뒤쫓은 손가락이 간지러움은 가라앉혀 주었지만 유진을 더 뜨겁게 만들었다. 안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가 유진의 다리를 좀 더 벌리게 만들었다. 크리스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흐읏!”

크리스의 손가락이 통통하게 부어오른 유진의 전립선을 눌렀다. 찌릿하는 감각에 유진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와 동시에 일어난 유진의 사정은 유진의 인지보다 빨랐다.

“아, 안 돼, 가고, 가고 있어요, 갔는데, 안 돼, 안 돼.”

유진이 자신의 사정을 깨달았는데 크리스의 손가락이 전립선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유진의 무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발이 시트 위를 움직였다. 유진의 손이 새하얗게 될 만큼 베개를 쥐었다. 하지만 유진은 쾌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곧 유진의 요도구에서 묽은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흣, 또, 또 가요, 이거, 안, 안 돼, 히익, 아.”

크리스의 손가락이 유진의 전립선을 찧듯이 움직였다. 거듭해서 강한 힘으로 눌리는 전립선은 이미 뒤로 가는 쾌감을 배운 유진에게는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강했고 유진은 곧 정신을 잃었다.

“유진, 일어나야 해.”

크리스가 유진을 깨웠다. 유진은 자신이 정신을 잃었던 것을 깨어나며 알았다. 크리스의 손길에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가면서 짧게 정신을 잃었다가 잠이 들어버린 것 같았다. 어제는 제대로 삽입을 하고 싶었는데. 매번 혼자만 가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꼭 쾌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몸을 겹치고 싶었다. 아쉬움에 시무룩해진 유진은 보다 극진한 시중을 받으며 출근 준비를 마치고는 차고에서 자신의 차를 발견해 크리스에게 키스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 자는 사이에 크리스가 차를 옮겨온 것이었다.

“고마워요. 크리스.”

“천만에요.”

크리스가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크리스는 유진에게 해주는 모든 일이 별일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 유진은 크리스의 반응에는 신경 쓰지 않고 발돋움을 해 크리스에게 입을 맞췄다. 크리스가 허리와 고개를 숙여 유진이 발돋움을 하지 않아도 되게 낮춰 주었다. 아쉬운 키스가 끝나고 유진은 크리스에게 손을 흔들며 차를 움직였다. 크리스는 유진이 차고를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렇게 행복한 날들은 계속되었다. 유진은 아예 집을 정리해 크리스와 함께 살았다. 문을 혼자 열 수 있도록 유진의 정보도 전부 등록했다. 어차피 크리스가 항상 기다리고 있거나 안아서 옮겨 다녀 쓸 일은 없었지만 크리스는 그렇게 해주었다. 그렇게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지만 유진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크리스가 삽입을 해주지 않았다. 물론 크리스의 페니스는 너무 커서 전에도 엄청난 준비를 한 후에 삽입을 하긴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삽입이란 행위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확장하려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행위 도중에는 유진이 정신을 못 차리도록 몰아붙여 유진이 관련해서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다. 중간에 몇 번의 주말도 있어 시간이 없다거나 유진의 몸을 걱정한 핑계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유진은 정공법을 쓰기로 했다.

“크리스. 우리 이야기 좀 해요.”

“응? 알겠어.”

유진은 퇴근하자마자 크리스에게 안겨 이동하면서 크리스에게 말했고 크리스는 유진을 앞쪽 집의 거실 소파에 내려주었다.

“유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왜… 삽입을 안 해요?”

맨정신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하는 이야기라 부끄러웠지만 유진은 참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내일은, 내일은 하며 미뤘던 일이었다.

“유진. 삽입은 하지 않을 거야.”

크리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말의 내용에 유진의 머릿속엔 온통 물음표만 가득 차올랐다. 삽입을 하지 않겠다니? 꼭 삽입이 섹스의 전부는 아니지만 굳이 안 하는 건…? 게다가 유진은 삽입의 쾌감도 잘 알고 있었다. 쾌감이 아니더라도 닿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데 삽입을 하지 않겠다니.

“유진, 유진이 잘 알고 있듯이 나에게는 통제문제가 있어. 이 문제는 고쳐지지 않을 거고 삽입을 하게 된다면 결국 원하는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유진을 통제하게 될 거야.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그래서 삽입을 하지 않겠다고요? 언제까지…?”

“내가 고쳐질 때까지.”

“고쳐지지 않을 거라면서요?”

“말 그대로야.”

“만약 안 고쳐지면….?”

“계속해서 지금처럼 지낼 거야.”

유진은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사람이 사귀면서 삽입이 완전히 배제된 생활이라니. 그렇다고 크리스가 유진의 몸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크리스는 정말 유진만을 달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럼 크리스는요?”

“나는 유진이 달하는 모습만 봐도 좋아.”

진심을 담아 웃는 크리스가 미친놈처럼 보였다. 크리스에게 문제가 있어서 하지 못한다고 하면 유진도 참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크리스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유진은 몸으로 느꼈었다. 굳이 문제를 찾자면 며칠 내내 발기한 채로 지내는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지루라 가고 싶은데 못 가는 사람도 아니고. 관계가 바뀌며 흥분이 떨어졌다고 하기엔 너무 자주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크리스는 유진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도 치워버린 것이었다. 유진의 명치쯤이 무언가로 틀어 막힌 듯 갑갑해졌다.

그날 밤, 유진은 처음으로 크리스에게 등을 돌리고 잠이 들었다. 크리스는 유진의 반응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유진은 계속해서 생각했다. 크리스에 대해, 그의 문제에 대해 유진이 결정해야만 했다. 나는 크리스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유진도 감금되어있는 동안의 일들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허들도 낮아져 기구를 넣은 채로 근무한 적도 있지 않았나. 이번에 받아들이게 되면 유진은 보다 더 심한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유진이 위험해질 상황에 넣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감금 당시에도 유진의 몸을 해한 것은 조금도 없는 사람이었다. 유진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고려해 기억조차 잊도록 세뇌를 건 사람이다. 유진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뼈를 부러뜨린 사람이었다.

유진의 고민은 끝이 나지 않았다.

유진의 이성은 크리스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욕망은 에스컬레이트 된다. 절대 돌아오는 법은 없다. 거기에 크리스는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다고 그의 부모가 말했다. 그는 이때까지 살아온 거의 모든 시간 동안 자신의 욕망을 참아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의 유일무이한 집착의 대상인 자신이 손에 떨어진다면? 감금되었을 때의 생활은 댈 것이 아닐 게 분명했다.

하지만 유진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크리스의 욕망을 잘 알고 있는데도 그가 유진을 해칠 거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가 할 행위들은 오히려 유진에게 흥분만을 가져다줄 뿐이었다. 몸은 좀 바뀌겠지만 생활에 지장이 있냐면 그것은 아닐 것이었다. 유진은 자신에 대한 크리스의 애정을 믿고 싶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사실 유진의 추는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었다. 다만 크리스가 유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억제할 정도인데 그것을 유진이 마음대로 어기게 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크리스가 보여준 사랑을 받아 마음을 키운 자신이 그것을 배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진의 고민은 어이가 없는 형태로 끝나버렸다.

“으음….”

“잘 잤어? 유진.”

“네…앗!”

유진은 자연스럽게 크리스의 품에 파고들어 잠투정을 하다 크리스의 인사에 그에게 자신이 볼을 비비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고작해야 몇 달인데 그 사이에 유진의 몸은 완전히 크리스에게 적응해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자면서도 크리스의 품을 파고들었다. 유진이 그것을 알고 놀라며 잠이 제대로 깼을 때의 크리스의 표정이 유진의 심장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큰 고민에 며칠간 크리스에게서 일부러 등을 돌리고 잤는데 그것이 크리스에게 상처가 되었던 것 같았다. 유진이 파고들면 언제나 귀엽다는 듯이 웃어주었는데 오늘 유진이 본 크리스의 표정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만든 미소였다. 말투는 그대로인 게 더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나 티를 안 내서 유진에게 마음의 부담조차 주지 않으려는 사람인데. 유진은 다급하게 크리스에게 입을 맞췄다.

“유진?”

크리스가 잠깐 떨어진 입술 사이로 유진을 불렀지만 유진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다시 입술을 겹쳤다. 유진의 고개가 살짝 꺾이며 결합이 깊어지자 크리스의 손이 유진의 뒤통수를 감싸고 키스가 깊어졌다. 유진은 숨이 차오는데도 크리스를 밀어내지 않았다. 아니, 밀어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혀를 얽었다. 크리스는 그런 유진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유진이 크리스가 준 숨결로 숨을 돌렸다.

“크리스, 만져주세요.”

유진이 가슴을 내밀자 크리스의 손이 유진의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조금 세게 눌렀다. 아침이라 서 있던 유진의 페니스에서 선액이 줄줄 흘렀다. 며칠 동안 접촉이 없었던 것이 가뜩이나 민감한 유진을 보다 더 민감하게 만든 것 같았다.

“크리스, 크리스.”

유진이 크리스에게 어떻게든 해달라는 의미를 담아 매달렸다. 크리스가 답지 않은 급한 키스와 함께 커다란 손으로 유진의 페니스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크리스의 혀가 유진의 입안 곳곳을 헤집고 숨을 막을 듯이 깊게 들어왔다. 유진은 크리스의 급한 키스에 마음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이 함께 살고부터 키스는 거의 눈이 마주치면 했었다. 그런 행위들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 크리스에게 얼마나 스트레스였는지, 그런 소소한 행위들을 크리스가 얼마나 바랐는지가 느껴졌다.

유진은 빠르게 절정에 달했다. 크리스가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매우 기뻤다. 사정 후의 허전함 대신 충만함이 몰려왔다. 유진은 크리스에게 파고들어 크리스의 페니스를 두 손으로 쥐었다.

“유진.”

크리스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크리스가 유진의 손을 거둬들였다.

“안 돼요?”

“안 돼요.”

크리스가 웃으며 경어까지 써 유진이 만지는 것을 거부했다. 유진은 분노와 서러움에 다시 크리스의 것을 잡으려다 크리스에게 손목을 잡혀 침대에 고정되었다. 유진은 조금 버둥대다 미동도 하지 않는 크리스 때문에 전략을 바꿨다.

“크리스, 저도 만지고 싶어요.”

“안 돼. 유진.”

크리스의 결의는 너무 단단하고 단호했다. 키스만으로도 녹아내리고, 고작 며칠 동안 침대에서 돌아누웠다고 그렇게나 서운해했으면서. 크리스의 페니스를 잠깐 잡은 것만으로도 크리스의 흥분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핏줄까지 서 손바닥에 닿는 감촉으로도 어디에 혈관이 지나는지 알 것 같았고 맥박까지 뛰고 있었다. 유진은 손바닥에 닿았던 뜨거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삽입이 안 된다면 만지게라도 해주세요.”

“유진.”

크리스에게서 난처함이 보였다. 하지만 유진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만지게 해주세요.”

“안 돼.”

크리스가 아예 침대 밖으로 나가버렸다. 유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당황했다가 분통을 터트렸다. 크리스는 아주 독했다.

“크리스.”

유진이 크리스를 부르자 크리스가 침실 문 쪽에서 이유를 물어왔다. 유진은 대답 대신 팔을 벌렸다. 크리스가 다가와 유진을 안아 올렸다.

“정말로 만지게도 못하게 할 거예요?”

유진의 질문에 크리스가 당했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처지게 했다.

“그래. 유진.”

크리스의 답에 유진의 코가 찡해졌다.

“유진, 나는 괜찮아.”

“저는요?”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이미 다친 것 같은데….”

유진은 자신의 가슴을 누르며 말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미안해, 유진.”

크리스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물러서지 않았다. 유진의 기운은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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