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ailure. (1) (9/16)

Failure. (1)

유진은 입안에 들어있는 것을 세게 빨아들였다. 아무리 해도 목으로 넘어오지 않아 더 세게 흡하고 빨아들이는데도 들어오지 않아서 칭얼거리다 눈을 번쩍 떴다. 크리스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유진을 보고 있었다.

“아…앗!”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에 유진이 몸을 움직이자 아직까지 들어있던 크리스의 것이 또 느끼는 곳을 진득하게 눌렀다. 쾌감에 신음한 유진은 곧 크리스가 유진이 자는 내내 삽입한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리스의 것은 아까 사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단하게 서 있었고 애초에 한 번으로 가라앉는 사람도 아니었다. 유진의 절정이 우선시 되고 봐주는 것이 아니었다면 끝도 없이 할 수 있을 사람이었다. 처음에 그러기도 했고.

“…크리스….”

“그런 눈으로 보면 곤란한데, 유진.”

크리스가 웃으며 유진에게 입을 맞추더니 안에 들어있던 것을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그 행위조차 유진에겐 어마어마한 쾌감으로 다가왔지만 크리스는 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유진의 몸이 쾌감으로 떨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같이 긴 성기는 유진이 사정없이 두 번쯤 달하고 나서야 완전히 빠져나왔다. 유진의 몸이 튕기듯 굳었다가 풀렸다. 허전했다.

오랫동안 크리스의 굵은 것을 물고 있던 유진의 안이 아주 느리게 닫히는 것이 느껴져 부끄러운데도 유진은 크리스의 손길이 아쉬워 그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크리스가 온화한 얼굴로 유진에게 키스해주었다. 유진은 팔을 벌려 자신을 안아달라 졸랐고 크리스는 곧바로 유진을 품에 안아주었다. 유진은 노곤노곤해져 크리스에게 들러붙었다. 기분이 좋았다.

맞닿은 심장이 똑같이 뛰고 있었다. 크리스의 눈에 가득 담긴 애정에 유진이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자 크리스가 유진의 얼굴을 자신의 품에 묻게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크리스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유진이 예쁘고 사랑스럽단 말을 여러 표현으로 말했다.

알렌 부부는 감성적인 부분이 많았고 유진이 학대로 인해 애정결핍이 있으며 수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상담사의 권고를 받아 애정을 엄청나게 표현해주었다. 그런데도 크리스의 달아서 온몸이 움츠러드는 말들이 나쁘지 않았다. 자신은 드디어 크리스의 손에 떨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분명 무서운데도,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을 아는데도 크리스에게 의지하게 되고 애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유진의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빨리 도망쳐야 했다. 유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크리스는 납치범이나 감금을 하는 사람치고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지만 그것은 유진이 성욕으로 인해 사람을 납치하는 경우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낮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평가였다. 애초에 사람을 스토킹하고 납치해 감금해놓고 이런저런 짓들을 하는 것이 멀쩡한 사람일 리가 없으니.

그런데도 크리스의 달콤한 말들이, 따뜻한 품이, 돌봐주는 것들이 좋고 더 해주길 원했다. 어쩌면 자신은 크리스가 더는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다면 몰래 울지도 몰랐다. 몰래 울겠다는 발상 자체가 유진의 약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라 혀가 차졌다. 벌써 자신은 망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약한 생각이라니.

“유진?”

“…이 안쪽이 간지러워서요….”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나 보다. 유진은 구차한 핑계를 댔지만 크리스는 유진의 입을 벌리게 해 어디인지를 확인하고 손끝으로 문질러주었다.

“여기?”

“네….”

앞쪽의 단단한 입천장은 유진이 느끼는 부분이라 그 행위도 몸이 움찔거리게 좋았다. 크리스가 걱정 섞인 표정으로 유진을 보더니 유진을 들어 올렸다.

“우선 씻을까? 유진.”

유진의 허리가 완전히 풀려 옆으로 안는 것도 불안해지자 크리스가 아예 아이를 안듯이 유진을 한쪽 팔에 올리고 다른 손으로 유진의 등을 받쳤다.

“어…어?”

“유진, 웃기면 안 돼.”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배어있어서 유진은 크리스의 목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유진의 불안과는 달리 크리스는 유진을 힘들이지 않고 욕실로 데려갔고 유진은 욕조에 몸을 담근 채로 크리스가 이를 닦아주는 것을 받았다. 아예 물 뱉는 그릇까지 받쳐 든 크리스의 시중을 받으며 유진은 계속해서 크리스를 살폈다. 크리스의 표정은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이런 것을 좋아하는 크리스를 보니 자신이 크리스에게 길들여져 조금 상태가 안 좋긴 해도 취향은 그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은 그것에 아주 조그마한 위안을 받았다.

여러 체액으로 더러워진 유진의 몸을 간질거릴 정도로 부드럽게 씻어낸 크리스가 물을 바꾸고 유진을 욕조 난간을 짚고 엎드리게 했다. 안에 가득 사정했던 크리스의 정액이 유진의 약간 벌어진 입구로 끊어지지 않고 느리게 계속 흘러나왔다. 유진이 자세를 부끄러워하자 크리스가 결국 옷을 입은 채로 욕조 안으로 들어와 유진의 상체를 자신에게 기대게 하고 손가락으로 안을 벌리고 휘저었다.

“흐…흐으…응.”

유진의 몸이 다시 쾌감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크리스가 자신의 어깨를 유진에게 물게 하고 계속해서 정액을 빼내었다. 유진의 안이 계속해서 크리스의 손가락에 달라붙는데도 크리스는 가끔 유진의 몸만을 쓸어주었다. 크리스가 유진의 안을 완전히 깨끗하게 만들고 나서야 유진을 돌려 안았다. 그리고 바닥에 닿아 약간 붉어진 무릎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금방 빨개졌네. 욕조 안이라 무게도 많이 안 실렸을 텐데.”

정말로 속상해 보이는 크리스의 표정에 유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나마 속으로 웃어서 다행이었다. 못 움직이는 것은 좋아하면서 정말 조금 빨개진 무릎이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 그래도 크리스의 품은 기분이 좋아서 유진은 크리스의 옷을 벗겨내고 맨살에 몸을 붙였다. 젖은 옷이 사라지자 더 좋았다.

“이제 나갈까? 유진.”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크리스가 일어서서 가운을 입더니 유진을 안아 올려 타월로 감쌌다. 아까 올 때처럼 안겨 침대에 내려지는데 크리스가 음식을 가지러 돌아서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크리스….”

크리스가 바로 돌아서 유진을 끌어안았다. 그것을 보인 것을 후회하면서도 크리스가 닿는 모든 부분에 입을 맞추고 유진을 불러대는 것은 좋았다. 결국 유진은 자신도 팔을 들어 크리스를 안았다.

“유진!”

크리스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는 것이 머리 한구석에선 성공이다 싶은데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 귓가에 쿵쿵하고 맥박이 들렸다. 크리스가 유진의 양 볼을 감싸고 키스했다. 깊은 데도 부드러운 키스에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 떨어지는 데도 심장은 계속해서 고장 난 것처럼 세게 뛰었다. 울음이 섞여 호흡이 힘들어지자 유진이 크리스를 약하게 밀었고 크리스는 유진의 추락을 아는 사람처럼 유진이 민 것을 꺼리지 않았다.

“유진, 유진, 유진. 나의 사랑스러운 유진.”

오히려 숨이 가쁜 유진에게 공기를 불어 넣어 주고 눈물을 입술로 지워나갔다. 크리스의 기쁨에 가득 찬 얼굴이 좋으면서도 끔찍하게 싫었다. 자신은 완전히 망가졌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쳐야 해. 조금만 더 함께했다가는 유진은 크리스가 없이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것뿐이면 차라리 참을 수 있었다. 유진 스스로 크리스 채워준 기구들을 매달고 침대에서 크리스가 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릴지도 몰랐다. 그러면 노라와 루카스는 어떻게 하나. 그들에게 또다시 자식을 잃게 할 수는 없었다.

유진은 자신의 정신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았던 두 사람을 떠올렸다. 잠도 못 자고 실종된 유진을 찾고 있을 텐데 자신은 크리스가 보이는 조금의 애정에 길들어 두 사람을 그 상태로 놔두다니. 기약 없는 기다림은 사람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차라리 저가 죽었다고 아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유진의 뇌는 앞뒤가 안 맞는 생각들을 섞어 내놓았다. 계속해서 차악을 고르는 것이 잘못된 일인데도 몰릴 대로 몰린 유진은 그것이 맞는 생각이라 믿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진의 공포는 크리스가 언젠가는 유진을 내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을 잊게 했다. 불확정이니 가능성에 불과하고 유진이 크리스와 같이 떨어진다면 그냥 이 공간에서 살지도 모르지만 그런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극심한 공포에 유진의 몸이 덜덜 떨리는데도 유진은 크리스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파고들었다. 절대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크리스가 안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유진에게 가장 큰 기회였다. 어차피 집 구조상 자력 탈출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유진에게는 다른 카드가 있었다. 크리스가 유진을 데리고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갑자기 몸을 떠는 유진을 시트와 자신의 몸으로 감싼 크리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유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너무 오래 씻었나? 유진, 따뜻한 음식을 가져올게.”

“안 돼요….”

유진은 황급히 돌아서는 크리스를 끌어안았다. 크리스가 유진을 품에 안고 어르다 시트를 칭칭 감고 안아 들었다.

“그럼 같이 가자. 유진.”

유진은 아주 힘겹게 자신의 입술 끝을 올렸다. 혀를 약간 아프게 씹으며 자신에게 채찍질했다. 반드시, 반드시 이 상태를 이어가야만 했다. 유진은 어리광을 부리듯 크리스의 품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크리스의 입술이 유진의 정수리에 스치듯 닿았다가 떨어졌다.

여전히 잘 꾸며지고 깨끗한 주방은 그런데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느낌이 났다. 매일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주니 당연한 일인데도 마음에 안 들었다.

“유진, 여기에 잠깐만 앉아있어.”

크리스가 아일랜드 형식으로 된 바 앞의 등받이가 낮은 의자에 유진을 앉혔다. 유진의 심장이 아까보다 거세게 뛰었다. 대리석으로 상판을 만든 것이 조금 위험해 보였지만 유진은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유진의 한계점이었으며 크리스의 경계가 풀어졌고 장소를 옮겼으며 몸에 드물게도 시트가 제대로 감겨있었다. 아니 시트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유진의 한계점이 왔다는 것과 크리스의 경계가 풀어졌다는 것이 중요했다.

유진은 크리스가 돌아서 냉장고 문을 열 때 균형을 잃은 척을 하며 바에 머리를 부딪치며 의자 밑으로 떨어졌다. 빗맞아 터진 이마에서 피가 쏟아지고 쿵 소리에 놀라 돌아본 크리스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던지고 다급하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어? 어어….윽!”

“유진! 안 돼!”

저렇게나 절실한 표정이라니. 유진의 가슴이 크리스의 표정과 외침 때문에 심하게 아파져 왔다. 납치범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진을 걱정하는 표정이라 유진은 꼴좋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조금은 미안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자신을 데리고 나갈 것이란 생각에 기뻤다. 크리스의 철저함을 볼 때 내출혈의 위험을 놔둘 리가 없으니 검사가 가능한 외부로 나갈 것이고 외부로 나가게 되면 아무리 크리스라고 해도 무언가 흔적을 남길 것이었다.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사람들이 그 흔적을 쫓아 유진을 구해내 주기를.

뒤통수가 바닥에 한 번 더 부딪히는 것을 느끼던 유진은 달려온 크리스의 품에서 의식을 잃었다. 마지막의 기억은 얼굴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떨어지는 감각이었다.

유진은 어둠 속을 둥둥 떠다녔다. 한참을 떠다니는데 점점 빛이 밝아왔다.

“엄마?”

엄마였다.

“유진, 사랑하는 내 아기.”

엄마가 어린 유진을 끌어안으며 웃고 있었다. 탕하고 총소리가 들리고 유진의 시야는 새카맣게 변했다.

“엄마? 엄마!”

“유진.”

“아빠?”

목소리와 함께 시야가 다시 환해졌다. 엄마가 아빠의 품에 안겨 웃고 있었다. 아. 두 사람은 결국 만났구나.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알렌씨? 알렌씨! 정신이 드셨나요?”

누군가 유진을 부르며 손을 잡아왔다. 그래, 자신은 케네스 알렌으로 살아왔다. 유진이란 이름은 오랜만…그래, 크리스가 있었다. 유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신을 차리셨네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선생님!”

호화롭게 꾸며져 있어서 병실인 줄 몰랐는데 옷차림을 보니 간호사인 것처럼 보였다. 곧 의사가운을 입은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병실로 들어왔다.

병원이구나. 유진은 크리스가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했지만 제대로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직도 자신이 크리스의 손아귀에 있다면 대화가 고스란히 넘어가 안 좋은 꼴을 당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유진이 정신을 차렸는데도 크리스가 오지 않는다? 그것이 과연 말이 될까.

의사는 유진의 몸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동공의 반응이나, 언어, 손과 발 등의 움직임 등을 확인한 의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빠른 대처로 출혈이 심해지기 전에 처치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나중에 제대로 된 검사를 다시 해봐야겠지만 지금으로는 후유증이 없이 회복될 것 같습니다.”

유진의 등을 토닥여 준 의사가 나가고 곧바로 다른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미안해요, 미안….”

분명 처음 보는 여성이 울음을 참는 얼굴로 달려왔다. 옆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빠르게 잡으려고 했지만 막을 수는 없었다. 익숙한 얼굴이라 의아해하던 유진은 두 가지 사실을 한꺼번에 떠올렸다. 눈앞의 남자는 가드너 상원의원으로 무기 불법화를 주장한 젊은 바람이었다. 정치 명문가의 아들로 아주 특이한 행보를 거쳐 대선 후보까지 가지 않겠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옆의 미국 제일의 재력가 밀러 가문의 고명딸인 리사와의 결합이 당시에는 아주 뜨거운 감자였다는 얘기도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크리스의 얼굴이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크리스의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이라…크리스가 들킨 것인가? 그러면 이들은 입막음을 위해 온 것인가?

“몸은 괜찮나요? 닉 가드너로 크리스토퍼의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리사 가드너로 크리스토퍼의 엄마입니다.”

“아….”

리사가 유진에게 닿지도 못하고 유진의 몸을 걱정하는 것이 보였다.

“우선 아들의 일을 사과드립니다.”

“아니죠, 처음에 놓친 것부터 사과해야죠. 알렌. 정말로 미안해요. 우리는 당신이 살해당할 뻔한 것을 막지도 못했고, 크리스토퍼로부터도 지키지 못했어요.”

살해라니? 유진은 자신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대체 무엇이길래 자신을 보호했던 것인가?

유진이 새롭게 알게 된 많은 사실에 당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부부는 빠르게 사과했다.

“아, 몸도 성치 않은 사람에게 너무 갑작스럽죠?”

“그건 괜찮습니다만…크리스는요?”

“앰뷸런스가 크리스의 집으로 왔다는 얘기에 바로 붙잡아 격리해두었습니다. 곧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예요. 당신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못 간다고 버텨 아직 신고하지 않았을 뿐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가족들이 곧 도착할 겁니다.”

“…신고를 조금 미룰 수 있을까요?”

“대체 왜…? 알겠습니다. 우선 가족들과 만나고 몸이 안정되고 나서 이야기하지요.”

유진은 그들이 빠져나가고 노라와 루카스를 기다리며 그들의 말을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그들은 아마도 크리스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친부모일 텐데 어째서? 크리스의 병증을 알고 있었나? 그리고 자신은 위험했었나? 유진은 떠오르는 의문들에 머리가 복잡했다.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케네스!!! 오 하느님.”

잔뜩 수척해진 두 사람이 빠르게 달려왔다. 루카스의 신발은 한쪽은 자주 신던 운동화고 한쪽은 슬리퍼였다. 언제나 단정하던 노라의 머리카락도 엉망이었다.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유진을 끌어안고 울며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 유진의 이마에 드레싱이 있는 것을 알아차린 두 사람이 아픈 얼굴을 보이자 유진은 별것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며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아픈 것은 정말로 싫었다. 이미 유진이 없는 동안 두 사람이 얼마나 아파했을지 듣지 않아도 뻔했다.

“네가 카르텔이 일으킨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살아있었다니. 카르텔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니?”

그것은 유진도 몰랐다. 아예 사고가 일어났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는데.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어요.”

“교통사고로 폭발이 일어나 가해자들과 네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었어. 가해자들의 정체는 문신으로 알았고. 네 차인 데다 네 옷을 입고 있어서 우리는 당연히 너인 줄만 알고….”

말을 하던 노라가 다시 벅차오르는 눈물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카르텔의 일원들은 반드시 몸 어딘가에 문신을 하니까 그것을 발견했다면 카르텔이 맞았을 것이었다. 그러면 크리스는? 크리스는 또다시 자신을 구해낸 것인가?

“가드너씨가 네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줬을 땐 너무 놀랐어. 꿈인 줄만 알았단다. 네 장례식은 한참 전에 치러졌는데…가드너씨가 아닌 사람이 연락했다면 믿지 않았을지도 몰라.”

“원래 알던 사이세요?”

“너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분들이지.”

“네?”

“너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셨어. 우리가 이사 다닐 때도 항상 도움을 받았고.”

두 사람은 면회는 내일 다시 하라는 간호사의 축객령이 올 때까지 유진의 곁에 머물다가 웃으며 자리를 떴다.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유진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가드너 집안과 알렌 부부의 관계, 자신이 죽을 뻔했었다는 것, 가드너 부부는 자신과 크리스를 각각 감시해왔다는 것, 크리스가 잡혀있다는 것.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유진은 복잡한 머리에도 불구하고 진통제의 효력으로 서서히 잠이 들었다.

“유진! 괜찮아, 괜찮아.”

유진은 또다시 꿈에서 크리스를 보았다. 크리스는 유진의 작은 몸이 하나도 보이지 않게 끌어안고 유진의 귀에 계속해서 괜찮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한쪽 손이 축 늘어진 것이 크리스의 상태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안심시키기 위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만 유진을 끌어안고 있는 팔이 떨리는 것과 크리스의 이마가 젖은 것으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또 무슨 상황일까.

유진은 잠에서 깨어나 꿈의 내용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꿈이 만들어 낸 허상인지 유진이 잊어버린 과거의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민을 계속해봐야 답이 없었다. 우선 가드너 부부에게 보호하고 있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물어봐야겠지. 유진은 면회 시간이 되자마자 들어온 노라와 루카스에게 가드너 부부를 불러달라고 얘기했다.

“우리를 불렀다고요.”

“네, 몇 가지 여쭐 것이 있어서 부탁드렸습니다.”

두 사람은 무슨 질문이든지 답을 하겠다며 유진에게 대답했고 유진은 너무 순순히 나오는 그들 때문에 당황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원래 저를 알렌 부부에게 보내신 것이 두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원래는 우리가 데리고 있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크리스토퍼의 상담의가 둘을 붙여 놔선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실례지만 왜 저를 데리고 있으시려고 하셨는지요?”

“우리 아들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하더군요.”

이번엔 닉슨 쪽이 대답했다.

“크리스토퍼가 납치를 당했다가 겨우 구출되어 돌아왔을 때 우리는 크리스토퍼의 충격을 걱정해 정신과에 보냈습니다. 거기서 놀랍고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트라우마가 될 만한 충격은 거의 받지 않았지만 아이가 높은 수준의 통제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죠.”

“사실 전조는 있었다고 생각해요. 동물들을 아주 좋아하는데 자신을 싫어하면 가차 없어졌죠. 아예 보이지 않는 것처럼 대했어요. 대신에 자신에게 잘 다가오면 너무 들러붙어 아프게 하거나 결국 죽게 했죠. 다행히 한번 죽게 만들고부터는 동물은 절대로 기르지 않겠다고 했지만요.

“하지만 부모의 눈에는 그런 전조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동물들을 싫어해서 때리거나 죽이려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서툴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상담의의 말을 듣고서야 그것들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상담의는 당신의 존재가 크리스토퍼에게 얼마나 구원인지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아들을 구해준 은인으로 제대로 대접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상담의가 말했어요.”

유진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유진이 생각한 대로였다.

“당신은 학대 피해자로 크리스토퍼 같은 통제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의 접촉은 위험하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당신을 우리 아들에게서도 지키고 싶었어요. 이번에는 실패했지만요.”

두 사람에게선 진정으로 유진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 보였다. 유진의 아들의 은인이라는 이유로 아들을 감시하고 결국엔 자신들의 손으로 감옥에 넣을 준비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아니 그들은 유진을 잘 키워줄 부모를 찾은 것부터 유진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사실 유진은 그들에게 그 모든 것을 받을 만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유진은 크리스가 없었으면 거기서 죽었을 것이었다. 오히려 크리스가 자신이 먹어야 하는 빵까지 유진에게 먹이기 위해 숨겨놓았다. 찬 바람도 크리스가 막아주었다. 유진이 슬퍼할 때마다 위로도 해주었다.

“크리스를 만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이 유진을 말리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졌으나 단호한 유진의 반응에 어쩔 수 없이 그러겠다 약속해주었다. 대신 유진의 몸이 가장 중요하니 몸이 완전히 회복되고 나서 다시 연락을 달라고 말했고 그 전이라도 언제든 신고를 진행해도 된다고 몇 번이나 사과와 함께 당부했다. 유진은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다. 크리스의 문제를 알고 나서는 아들로 느끼기보다는 위험한 존재로 보는 것인가? 너무나도 피해자인 자신에게 이상적인 가해자의 부모였다. 하긴 크리스의 통제 수준을 봤을 때 저 정도의 부모가 아니라면 그것이 더 이상할 터였다.

유진은 두 사람이 나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노라와 루카스와 인사하는 것까지 보았다. 그들은 유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친해 보였다. 다행히 가드너 부부는 크리스가 유진을 납치해 감금해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노라나 루카스에게는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유진은 노라나 루카스에게 자신이 여태껏 감금당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껏 걱정만 잔뜩 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또 얼마나 슬퍼할지. 거기에 아직도 젖꼭지가 서 있어 헐렁한 환자복에서도 자칫하면 티가 날 정도였다. 요도도 크리스가 벌려놓은 그대로 벌어져 있었다.

아니 이 모든 것은 변명일지도 몰랐다. 유진은 크리스를 만나고 나서도 자신이 신고를 하지 않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도무지 그를 신고하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재판을 거치고 그를 감옥에 넣는다는 생각을 갇혀있던 당시에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자신은 망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자신을 다잡았다. 기껏 탈출했고 성공했다. 망가졌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파묻힐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살아남은 자신을 칭찬해야 했다. 아직은 이상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자신은 대단했다.

유진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애초에 크게 다치지도 않았고 크리스의 관리 덕분에 몸 상태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퇴원일이 잡히고 그 전날, 유진은 크리스를 만날 수 있었다.

유진은 가드너 부부에게 크리스를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그들의 집으로 갈 것을 기대했는데 정작 그들이 유진을 데리고 움직인 곳은 바로 아래층이었다. 유진은 자신의 병실과 사뭇 다른 광경에 놀랐다가 구속복이 입혀진 크리스를 보고 더 놀랐다.

“그럼 이야기 나눠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호출 벨을 누르구요.”

리사가 유진의 손에 벨을 쥐여주며 당부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앞의 모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유진! 몸은 다 나았구나.”

크리스가 유진의 무사함에 안도하는 것을 보니 원래도 없었던 기가 더 없어졌다. 그는 구속복을 입은 상태인 것도, 자신의 부모가 유진을 더 걱정하는 것에도 신경이 하나도 쓰이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오로지 유진의 건강에만 신경 쓰는 모습에 유진의 가슴이 좀 더 내려앉았다.

“불편하지 않으세요?”

“안 불편해. 나의 사랑스러운 유진.”

크리스가 아주 환하게 웃었다. 유진은 자신의 탈출시도를 알고 있는 크리스가 좀 더 화를 낼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응을 보니 아예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를 데려가실 때…제가 또 위험한 상태였습니까?”

크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이를 악문 크리스에게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너를 쫓고 있었어. 다행히도 네가 서점에 들렀을 때 내가 바꿔치기할 수 있었지만. 추격전이 벌어지자 우리 집에서 보낸 사람들도 너를 놓쳤어.”

크리스는 다시금 그때의 분노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몇 번의 욕설이 어울리지 않는 크리스의 입 밖으로 나왔다.

“그럼 시신은…?”

“사고가 났을 때 다시 바꿔치기한 거야.”

유진은 크리스의 반응에 자신이 또다시 크리스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을 빼돌리고 가해자들을 죽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유진이 그들에게 죽었다고 속여 유진을 완전히 구해냈다.

“고마워요.”

“유진, 유진, 나에게 고맙다고 하면 안 돼.”

크리스가 세상에서 가장 안쓰러운 존재를 보는 눈으로 유진을 말렸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전 죽었을 거예요.”

“생명을 구해줬다고 해서 납치범을 용서해서는 안 돼.”

“그래도….”

“탈출을 위해서 대리석에 머리를 부딪치며 의자에서 떨어져서도 안 되고.”

유진의 몸이 완전히 굳었다. 크리스는 유진이 탈출을 위해 다친 것을 알고 있었다. 유진은 손에 쥔 벨을 다시 확인했다.

“그건….”

“알고 있어. 유진.”

크리스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유진의 공포까지도 거부로 받아들여 벌을 주던 사람이었다. 유진의 등이 식은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도망칠 땐 상대방을 다치게 만들어야지. 유진.”

크리스가 부드럽게 말하는 데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나 무서웠다. 자신이 지금 크리스보다 훨씬 몸이 자유로운데도 크리스가 무서웠다. 크리스는 현재 나를 해칠 수 없다, 그는 묶여있다. 유진은 자신을 달랬다.

“겁먹지 마. 유진. 이번엔 내 실패야. 이거 널 안아줄 수 없는 게 불편하네.”

“크리스의 실패요…?”

“네가 나에게 빠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널 주방으로 데려가 손을 놓았지.”

유진의 몸이 덜덜 떨렸다. 유진은 크리스에게 완전히 까발려져 있었다. 자신이 크리스에게 떨어진 것도 들켰다. 유진은 벌떡 일어서서 방을 나섰다.

“유진, 벗어나고 싶으면 날 죽여.”

크리스가 해맑게 말했다. 유진은 병실 문이 닫히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크리스가 자신이 크리스를 받아들여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문제인데 크리스는 죽이지 않으면 자신을 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문제는 그런 말을 듣고도 이제 진행할 거라 말하는 크리스의 부모에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신이었다.

“우리 아들은 당신에게 위험해요. 다시 한번 생각해봐요. 응?”

몇 번이나 어르는 리사에게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감옥에 간다고 해서 그가 거기서 죽을 정도로 오래 썩을 리가 없었다. 벌써 십수 년을 계속해서 쫓아온 것을 이미 보지 않았나. 아니, 모조리 다 변명이었다. 유진은 크리스를 감옥에 보낼 수 없었다.

“그래도 크리스는 제 생명을 몇 번이나 구했습니다.”

“혹시 기억이 돌아왔습니까?”

“아뇨? 무슨 기억…?”

“아닙니다. 실언이라 생각해주십시오.”

크리스의 아버지가 실언이라 했지만 유진은 그것이 계속 신경 쓰였다. 다 잊으라고 했던 크리스의 목소리나 꿈속에서 봤던 것과 관계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에 관해선 루카스에게 묻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증인보호프로그램만 아니라면 제대로 찾아볼 수도 있을 텐데 카르텔이 유진을 발견할 위험 때문에 엄마와 아빠의 무덤에도 못 가는 유진에겐 무리였다.

유진은 퇴원해 부모님의 집에서 한동안 지내기로 했다. 두 사람이 너무 걱정하기도 했고 유진도 감금되어있는 동안 두 사람이 너무도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가드너 부부의 지원을 받아 상담을 받으면서 지냈다.

“알렌, 기분은 어떤가요?”

“괜찮습니다.”

“언제나 괜찮다고 말하네요.”

상담의가 부드럽게 웃었다. 유진도 자신이 얼마나 어이없는 사람인지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크리스의 앞에선 벌을 받을까 벌벌 떨었는데도 상담의가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밖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자신은 괜찮았다.

“…혹시 잊어버린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까?”

“그것은 조금 힘들어요. 가짜 기억과 진짜 기억을 구분해내기도 쉽지 않구요.”

유진은 별 소득 없이 나오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납치와 감금을 당했던 것을 가드너 부부는 알고 있었고 그것을 상담의에게도 말한 것 같았지만 상담의는 단 한 번도 유진에게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차라리 이것이 나았다.

함께 먹을 디저트를 몇 개 산 유진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 안에는 루카스만이 있었다.

“노라는요?”

“잠깐 케첩을 사러 나갔어.”

“오늘은 새우를 먹을 건가 보네요.”

유진이 웃으며 말하자 루카스가 동의했다.

“루카스.”

유진은 궁금했던 것을 묻기 위해 루카스를 불렀다. 유진의 표정에 긴장이 담겨서인지 루카스의 얼굴도 진지해졌다.

“제가 구출되었을 때 이야기를 아세요?”

“글쎄, 나는 네가 카르텔에 납치되어있었고 경찰에게 구해졌다는 것만 들었단다. 그 과정에서 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무슨 일이 있니?”

“아니요, 꿈을 잠깐 꿔서요.”

“…프로그램 관리자에게 이야기를 해놓으마.”

“고마워요, 루카스.”

유진은 프로그램 관리자가 아주 늦게 응답해줄 거라 생각했지만 다음 날이 되자 바로 관리자가 문을 두드렸다.

“어?”

“안녕하세요, 켄.”

“들어오시죠. 생각보다 빠르게 방문하셨네요.”

“네?”

“요청 때문에 오신 것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무슨 요청을 하셨지요?”

“그럼 무슨 일로 오셨나요?”

관리자의 등장에 온 가족이 거실로 모였다. 관리자는 가족들이 모이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기대하지도 못했던 좋은 소식을 풀어놓았다.

“카르텔의 소멸로 여러분은 증인보호프로그램에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

“확인 절차를 거치느라 오래 걸렸습니다. 여태껏 케네스를 쫓던 카르텔이 다른 카르텔과의 세력다툼으로 완전히 제거되었어요. 이제 모두들 도망 다니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들 뜻밖의 희소식에 당황했다가 루카스와 노라가 유진을 껴안았다. 울며 신에게 감사하는 가족들을 보며 관리자가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라며 앞으로의 삶을 축복해주었다. 길고 길었던 쫓기는 삶이 드디어 끝이 났다. 이제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 죽이거나 노라와 루카스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파티가 시작되었다. 더이상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가족들이 자축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세 사람만의 조촐한 파티였지만 노라와 루카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유진만이 무언가를 잊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파티가 끝나고 자신의 머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어 주는 두 사람을 침실로 힘들게 들여보내고 자신의 침실로 들어와 침대에 눕는데 옷에 쓸린 젖꼭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흣!”

그러고 보니 크리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아아아아. 유진은 고개를 맹렬하게 저으며 기억을 지우려 애썼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다른 생각…. 오늘로 켄은 보호 프로그램에서 벗어났다. 유진은 카르텔과 엮였기 때문에 보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것은 정말로 드문 일이었다. 카르텔은 끈질긴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말로 구성원들 모두가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그래, 있을 수가 없었다. 유진은 갑자기 머리를 꿰뚫고 지나가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유진은 반드시 내일 카르텔에 관해 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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