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tep. 4. (5/16)

step. 4.

갑자기 희망이 보였다. 어쩌면, 어쩌면, 크리스는 자기 마음대로 유진을 만들고 나면 사회에 내보낼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옷을 입힌다는 생각을 굳이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가뜩이나 크리스는 유진이 고통을 무서워한다는 이유로 고통을 주는 행위들은 전혀 하지 않았다. 유진이 크리스가 싫어하는 일들만 하지 않으면 굉장히 잘해줬고 설령 유진이 실수하더라도 유진이 크리스의 눈치를 보고 반성하고 있다는 것만 보이면 쉽게 용서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는 유진을 살려줬던 사람이다. 그의 통제 욕구에 잘 맞았다곤 하지만 자신도 어린 나이에 묶여있으면서 유진을 돌보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지금과 같은 행위들은 나간다는 보장만 있으면 참을 수 있었다. 나중에 나갈 수만 있게 되면 탈출은 지금보다 훨씬 쉬울 것이고 유진은 기회가 오면 반드시 탈출할 자신도 있었다. 나갈 수만 있다면. 유진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유진의 마음이 바뀌고 크리스에게서 주어지는 자극들은 보다 기분 좋게 다가왔다. 유진은 빠르게 변하고 싶었다. 크리스가 만족할 만큼 바뀌고 나면 뭐가 되든 결론이 보일 것이다. 완전히 바뀌기 전에 유진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 데리고 나가주면 더 좋고.

그래서 크리스가 매일 유진의 젖꼭지에 무언가를 하는 것도 괜찮았다. 피어싱도 하나쯤은 괜찮다고 했는데도 피어싱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크기를 유지하는 것과 유진이 크리스를 보기만 해도 달뜨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오늘도 유진의 붉은 젖꼭지엔 링이 3개씩 채워져 있었다. 달랑이는 보석들이 무게감을 주었지만 크게 무겁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두의 자극 때문에 일어선 페니스가 무거웠다.

“유진, 또 잔뜩 적셨네?”

“네….”

“여기까지 흘러내렸어.”

크리스가 요도구에서 쿠퍼액이 흐르는 자국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계속 자극받아 예민해진 고환을 지나 움푹 들어간 회음부를 누르고 그 뒤까지 간 손가락이 동그랗게 주름을 덧그렸다. 이제 다음 단계인가 싶어진 유진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괜찮아?”

“…뭐든 괜찮…!”

유진이 모범 답안을 천천히 내어놓자 크리스의 입술이 유진의 입술을 덮쳐왔다. 유진의 전부를 가지고 싶다는 듯이 움직이는 크리스의 키스에 따라가지 못한 유진이 삼키지 못한 타액을 흘렸다. 계속 이어지는 키스에 숨이 모자라진 유진이 고개를 젓자 그제야 크리스가 키스를 끝내주었다.

“하아, 하아.”

“유진은 아직 조금만 격해져도 숨을 못 쉬네.”

말은 약간 핀잔 같은데 크리스의 얼굴에는 흐뭇함만이 있었다. 유진이 고개를 살짝 숙여 시선을 흩뜨렸다. 크리스가 입술로 유진의 타액으로 더럽혀진 얼굴을 닦아주었다. 다시 부드러운 키스가 시작되고 유진의 몸이 완전히 녹아 크리스에게 기대졌다. 손가락도 움직이는 것이 힘들었다. 늘어진 유진을 기분 좋은 표정으로 보던 크리스가 입술을 유진의 통통 부은 젖꼭지로 가져갔다.

“하읏!”

유진의 몸이 크게 튀었다. 이제 젖꼭지도 정말 성기만큼이나 느끼는 것 같았다. 크리스의 입술이 유진의 젖꼭지를 빨고 이가 긁었다. 긁혀 열이 오른 젖꼭지를 오돌토돌한 혀로 핥자 머리가 아찔했다. 크리스의 손이 페니스로 향했다. 양쪽의 자극에 유진이 매우 빠른 사정에 이르렀다.

“가…갔는데에….”

“그래도 무겁잖아. 유진.”

“그…그래도…아읏…하아…앗!”

금세 무거워진 페니스가 다른 체액을 올렸다. 매번 가는 거지만 배출 시간이 길어 사정 상태를 오래 지속하는 것 같아서 미칠 것 같았다. 유진의 눈에서 생리적인 눈물이 흘렀다. 1초가 몇 시간처럼 아득했다. 전신을 덜덜 떠는 유진을 크리스가 끌어안았다.

“예뻐, 유진.”

눈물로 부은 눈가에 크리스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열이 오른 눈가에 닿으니 좀 차가운 것도 같아서 유진이 고개를 조금 돌려 크리스의 입술이 좀 더 눌리게 했다. 크리스가 작게 웃었다.

“유진 너는 정말 특별해.”

유진의 젖은 머리카락을 살짝 넘겨 정리한 크리스가 유진의 드러난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애정 어린 동작에 유진의 마음이 또 조금 무너졌다. 싫어해야 하는데 다정하게 느껴져서 제대로 싫어하기가 힘들었다.

“크리스….”

“응, 유진.”

“우리 헤어질 때는 어떻게 헤어졌어요? 들켰어요…?”

“들킨 것 보다 안 좋았지. 그렇지만 유진, 너 스스로 기억할 때까진 잊고 있어. 억지로 떠올리려 하면 안 좋을 거야. 잊을만했고.”

크리스의 목소리가 유진이 주기적으로 만났던 정신과 의사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담백하고 건조하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말투와 목소리. 유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는 것만이 달랐다. 유진은 크리스의 눈에 스치는 슬픔이 누구를 위한 슬픔인지가 궁금해졌다. 유일하게 자신에게 스스로 통제권을 넘긴 존재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일까 아니면 돌봐야 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 있던 유진에 대한 슬픔일까. 유진은 입술을 살짝 벌려 크리스에게 키스를 졸랐다. 크리스는 바로 유진에게 키스했다. 부드러운 입술이 몇 번이고 와 닿아 녹아버리나 싶을 때 유진의 혀가 붙잡혔다. 간질거릴 정도로 약하게 붙잡은 크리스가 유진의 입안을 느리게 유영했다. 솜사탕을 먹은 것처럼 입안이 달콤하고 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진의 복잡했던 머리가 몽롱해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졌다.

드물게 용기를 내어 과거를 물은 것은 크리스에겐 벌 줄 일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크리스는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처럼 유진을 품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대신 안아주고 싶었다는 말과 의도적으로 자주 부르는 게 분명한 이름이 계속 유진의 마음 한쪽을 긁고 있었다. 어색할 정도로 이름을 넣어 말하는 것이 그때의 습관이 아닐까. 밥을 먹을 때조차 품에서 놓아주지 않아 크리스의 무릎 위에 앉아 크리스의 손가락을 핥았다. 간만의 수프에 간만의 손이었다. 초기에 기선제압을 위해 했던 이후론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기선제압 같지는 않아서 유진은 조금 불편했지만 최선을 다해 핥았다.

“유진은 헤프네.”

“…죄송합니다.”

“예뻐.”

손가락이 입안에서 움직이기도 하는 바람에 유진이 흘린 타액과 계속 자극 받는 젖꼭지 때문에 쿠퍼액이 샌 것을 지적하는 크리스의 말에 유진이 새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고작해야 그런 자극에 쿠퍼액을 흘리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런 유진의 고개를 들게 한 크리스가 웃으며 유진에게 가벼운 키스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크리스의 품에서 어루만져지자 잠이 왔다. 느리게 눈을 깜박이는 유진을 보며 웃던 크리스가 유진의 코끝을 아프지 않게 물었다.

“잠꾸러기. 그런데 자면 안 돼, 유진.”

크리스가 드물게도 유진을 자지 못하게 했다. 여태껏 유진이 크리스가 시키지 않은 일은 안 하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사정을 제외하고는 유진이 하려는 것을 직접적으로 못하게 하는 일은 없었다. 특히나 잠 같은 생존에 필요한 것은 더욱이. 유진의 잠이 완전히 깨었다. 왜 자지 못하게 하지? 대체 무엇을 하려고?

유진 대신 눈을 비벼준 크리스가 유진을 조금 걷게 했다. 완전히 품에 안겨 걷는 터라 발이 엇갈릴 법도 했는데 크리스의 리드가 너무 능숙해 발만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다른 때보다 길게 걷고 크리스가 해주는 마사지도 받으니 온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크리스가 하는 마사지는 유진이 다리를 다쳐 병원에서 받았던 마사지보다 좋았다. 크리스가 움직이는 대로 따르고 나면 근육에 적절한 긴장감이 생겼는데 유진은 크리스의 마사지가 유진이 몸을 거의 쓰지 않는데 근육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는 이유라 짐작했다.

마사지를 마치고 크리스에게 안겨 욕실로 이동했는데 평소와는 루틴이 좀 달랐다. 샤워 후에 화장실로 옮겨놓고 크리스가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샤워가 끝나자 크리스가 러그와 의자를 가져왔다. 자신이 의자에 앉아 유진을 자신의 다리 위에 엎드리게 하는 크리스에 유진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유진, 조금 차가울 거야.”

뒤에 딱딱한 무언가가 닿더니 차가운 것이 안으로 들어왔다. 유진의 손이 러그의 털을 쥐어뜯을 듯이 세게 잡았다. 차가운 것은 끝없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유진의 등에 식은땀이 났다.

“유진, 모래시계가 보여?”

“…읏…네.”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만 참아.”

모래시계가 너무 커 보였다. 하지만 방에는 시계를 아예 두지 않아 감각을 흐려놓는 크리스가 모래시계를 준비해 유진이 기약 없는 상태로 무서움을 느끼지 않게 해준 것은 고마웠다. 유진은 크리스의 품에 안겨서 힘듦을 겪어 나가고 있었다. 모래가 떨어지는 것을 뚫어질 듯 바라보던 유진의 뇌리에 뒷일이 스쳤다. 이번에도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때부턴 모래가 떨어지는 것도 싫었다.

유진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모래는 떨어졌다. 유진은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아 배의 감각도 잊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크리스는 유진을 혼자 남겨두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유진은 크리스의 발등에 키스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도 꽤 긴 시간이 지나고 크리스가 돌아왔다. 유진은 크리스의 품에 달려들듯 안겼다. 크리스의 커다랗고 단단한 몸이 유진의 몸을 충격 없이 안아 들었다. 유진의 격한 환영이 마음에 들었는지 크리스는 유진을 안고 이동하는 내내 유진과 입을 맞춰주었다. 말캉한 입술에 눌려 입을 벌리면 혀가 유진의 입안을 헤집었다. 느끼는 부분들을 누르는 혀에 유진의 몸이 떨렸다. 온 정신이 크리스와의 키스에 쏠렸다. 침대에 눕혀지고 나서야 내려진 것을 깨달은 유진에게 크리스의 애무가 쏟아졌다. 링째로 크리스의 입안에 들어간 젖꼭지에 유진의 허리가 뒤틀렸다.

“그…그러면 금방 가…가요….”

“가면 되지.”

“너무 금방인데….”

“빨리 가는 게 좋아, 유진.”

크리스가 한 손으로 유진의 통통한 젖꼭지를 튕기면서 다른 한쪽은 이로 링을 잡아당겨 빼내었다. 젖꼭지를 쥐어짜 긁어 내리는 것에 유진의 페니스에서 정액이 튀었다. 크리스가 유진의 귀두에 유진의 정액을 펴 바르며 링을 모두 잡아 빼기 시작했다.

“아…안 돼, 안 돼요, 미,미쳐, 버려요, 제…제발, 안, 안 돼…!”

유진은 고개가 완전히 넘어갔다. 연이은 사정에 몸을 덜덜 떨었다. 곧바로 묽은 체액이 나오는데 크리스의 손가락이 요도 입구를 세게 막았다.

“으흣! 가…가고 싶어요. 제발…제발 가게 해주세요.”

“미안, 유진. 잠시만 참아.”

유진이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가 유진의 눈꺼풀에 살짝 키스하고 작은 기구를 유진의 뒤쪽에 가져다 대었다. 약하게 떨리는 진동이 간지럽다 싶은데 크리스가 요도구를 막고 있던 손가락을 요도구에 넣을 듯이 눌러 문질렀다.

“아읏!”

유진의 고개가 격렬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쾌감이 너무 강했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가 크리스로 가득 찼다. 유진이 뭐가 안 되는 건지도 모르면서 안된다고 중얼거렸다. 크리스가 된다고 귓가에 속삭이는 통에 다시 튀어 올랐다. 온몸이 완전히 풀려버린 유진의 뒤에 무언가 길고 가는 것이 들어왔다. 그것은 너무 가늘기도 했고 젤이 발렸는지 마찰이 적어 무리 없이 유진의 안으로 들어왔고 자리를 잡자 아주 느리게 부피를 키웠다.

유진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안에서 잔뜩 부피를 키운 기구가 그려졌다. 크리스가 유진을 지금 아프게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무서웠다. 하지만 기구는 의외로 굉장히 작게 부푼 것으로 커지는 것을 멈췄다. 기껏해야 유진의 새끼손가락 정도나 될까. 거기에 아예 입구 쪽은 커지지도 않은 것 같았다. 무서웠는데도 부풀지 않으니 이상했다.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안을 조였다.

“왜 더 키워줘?”

“아니요!”

크리스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는데 유진의 대답이 너무 빠르고 단호했다. 크리스가 아예 소리를 내어 웃었다. 유진의 귀가 새빨개졌다.

“아주 천천히, 기분 좋은 것들만 줄 테니까. 그래도 무서우면 내게 매달려. 유진.”

크리스의 눈빛이 온화해서 유진은 자신을 이런 상황에 처하게 만든 사람이 크리스인 것을 아는데도 넘어갈 것만 같았다. 이게 만약 연인 간의 관계였다면 엄청난 배려에 고마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유진이 딴생각하는 것을 본 크리스가 유진의 젖꼭지에 매달린 보석들을 튕겼다.

“아흣!”

가슴으로 전기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곧바로 선 페니스 때문에 안에 들어온 기구를 조이면서 유진은 정신을 차렸다. 연인이 젖꼭지를 이렇게 만들고 싶어 하면 접근금지 신청을 백번도 넘게 냈을 것이다. 아니 통제 욕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도망쳤다. 사람들은 흔히 폭력적인 사람을 고성이나 막말, 주먹질 등으로 판단하곤 하는데 거기까지 가기 전에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했다. 유진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유진이 크리스와 이런 만남이 아니라 매우 평범하게 만났더라도 이런 욕망이 보이자마자 유진은 크리스를 무서워하고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쾌감에 떨며 울면서도 크리스를 찾고 그에게 닿는 것으로 안심하고 있다. 유진은 길들여진 자신에게 혀를 찼다.

“유진, 아프진 않아?”

“…네, 그냥 조금 이물감만 있어요.”

“다행이네.”

크리스는 유진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다가 유진의 페니스를 입에 물었다. 단단하게 선 젖꼭지들도 크리스의 손가락에 뭉개졌다. 다시 눈앞에 폭죽이 터졌다.

“또…또 가요.”

“가는 건 안 돼.”

유진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당장에라도 정액이 나올 것 같은 데 가는 건 안 된다니 지옥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았다.

“제…제발…가고 싶어요. 크, 크리스. 제발!”

유진의 고개가 완전히 젖혀지고 발가락까지 힘이 들어가 종아리가 땅겨왔다. 하지만 크리스는 유진에게 좀 더 질척한 키스만 해주었다. 덕분에 유진은 혀까지 풀렸다. 타액을 늘어뜨리며 풀린 혀로 애원하는 건 유진이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소리였다.

싸고 싶어, 싸고 싶어, 싸고 싶어. 유진의 정신이 한계에 몰렸다. 유진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크리스가 미웠다. 기침까지 해가며 우는 유진을 난처한 표정으로 보던 크리스가 유진의 안에 들어있던 기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뭉툭한 끝이 안을 휘저었지만 유진에게는 젖꼭지와 페니스의 자극에 묻혀 이물감조차 사라져 갔다. 유진이 이물감을 못 느끼게 되자 크리스가 휘저으며 받았던 저항감이 줄어들었다. 유진은 드디어 사정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흐앗!”

오래 참아서인지 정액이 제대로 못 튀어나오고 끈끈하게 늘어졌다. 유진이 갑갑함에 몸을 뒤틀다가 기구가 부피를 더 늘린 것을 깨달았다. 늘어나는 동안엔 전혀 몰랐는데. 유진의 공포가 많이 줄어들었다. 사실 뒤의 기구가 문제가 아니었다. 여태까지의 일들로 예민해지고 참을성이 없어진 유진이 사정을 참아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아랫배 전부가 묵직해지고 고환은 아예 둔통까지 느껴졌다. 거기에 요도는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내보내면 편해진다는 것을 아는데 크리스가 못 내보내게 요도구를 세게 틀어막거나 갈 것 같으면 자극을 멈추는 것으로 유진이 내보내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그 끔찍한 고문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안 돼요, 안 돼, 제, 제발요, 미쳐 버려요.”

“보고 싶어, 유진.”

“아…안, 안 돼…….”

크리스는 유진의 귀두 밑 예민한 부위에 돌기가 달린 진동 링을 끼우고 세게 조였다. 요도가 꽉 죄인 느낌이 났다. 거기에 흡입기가 씌워졌다. 유진은 자신의 몸에 행해지는 것들을 보면서도 싫다고도 하지 못했고, 몸을 돌려 피하지도 못했다. 링은 떨리진 않았지만 흡입기에 잔뜩 조여 당겨졌다가 밀어내어지는 페니스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지독한 자극을 느꼈다. 거기에 크리스는 이로 유진의 젖꼭지를 잘근잘근 씹었다. 링 사이에 이를 넣어 링을 벌리는데 링이 움직이는 것도, 이가 닿는 것도 모두 유진의 시야를 점멸케 했다.

“제…제발, 아흣, 아, 진짜 미, 미쳐요, 이상해져요, 제발, 아앗!”

유진이 꽉 조인 링 때문에 사정만 못 하고 흔들리자 크리스의 손이 유진의 안에 있는 기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른 자극들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던 유진은 곧 피부 속 깊은 곳이 간질거렸다.

“응? 아읏.”

“유진, 금방 잘 받아먹네.”

“뭐…뭔가 이, 이상해요.”

“기분이 좋은 거야. 좋다고 말하면 또 가게 해줄게.”

“…네…네…조, 좋아요, 좋아….”

유진이 좋다고 말하며 몸을 떨자 크리스의 손놀림이 조금 격해졌다. 다시 또 사정의 욕구가 치밀었다. 크리스가 빠르게 페니스를 물고 있던 흡입기를 빼고 링을 조금 헐겁게 한 후 진동기능을 켰다.

“흐, 좋아요, 아!”

하얀 정액이 튀어 오르다 곧 묽은 체액을 방출했다. 하지만 페니스의 진동도, 젖꼭지를 깨무는 크리스의 입술도, 빙글빙글 돌아가며 안을 넓히던 기구도 어느 것 하나 움직임을 멈추는 것이 없었다. 유진은 묽은 체액을 줄줄 흘리면서 시트를 긁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조, 좋아요, 제…제발, 제발…아, 안 돼….”

극심한 쾌감과 함께 유진의 눈앞이 새카만 어둠으로 뒤덮였다.

멀리서 웅하고 기계가 떨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유진은 소리가 싫어 고개를 저었다. 몸 전체에 스멀스멀 무언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진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크리스가 곁에 없는지 방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몸에 기어 다니는 것은 벌레가 아니라 민감한 곳들에 붙어있는 진동기였다. 최대한 진동을 약하게 조절한 진동기들이 젖꼭지와 페니스, 그리고 뒤쪽에 있었다. 뒤에 들어있는 것은 정신을 잃기 전의 막대 같은 형태의 기구가 아니라 구슬이 연결되어있는 모양 같았다. 유진은 너무 빨리 크리스를 찾지 않기 위해서 그나마 쾌감을 느끼지는 못하는 뒤쪽의 자극에 집중해 최대한 참았다.

뒤의 자극은 정말로 이상했다. 숨을 쉴 때마다 움직이는 내벽이 기구를 조였다 푸는데 거기서 간질간질한 느낌이 오는 것 같았다. 뭔가 기구 자체의 자극이라기보다는 내벽의 움직임이 자극을 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떤 자극이고 어떤 이유로 움직이는지에 상관없이 유두가 그랬듯 크리스가 원하는 대로 울게 될 것이었다. 당장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유두가 신경줄을 태우는 것 같았다. 뜨겁고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시트에 문지르면 얼마나 시원할까. 어두워서 잘 찍히지 않을 텐데도 문지를 수가 없다는 것이 슬펐다. 크리스는 신기할 정도로 마찰로 인한 손상이 없게 신경을 썼다. 그 덕에 유진이 시트에 유두를 문지르면 분명 피부가 쓸릴 거고 그러면 크리스는 한눈에 유진이 시트에 젖꼭지를 문질렀다는 걸 알아차릴 터였다. 그것을 크리스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유진에게 주어진 시간은 몹시도 긴 것 같았다.

결국 유진은 끝까지 참지 못하고 크리스를 불렀다. 저번처럼 눈을 감고 크리스가 높인 조도에 눈이 익숙해지길 기다리고 있으니 크리스가 다가와 키스를 해주었다.

“유진은 정말 영리해.”

유진은 크리스의 키스가 끝나자 천천히 눈을 떴다. 크리스의 얼굴이 가까이에 있었다. 언제봐도 엄청난 얼굴이었다. 납치와 감금, 그리고 성적인 조교. 여태껏 일어난 일 모두가 비현실적이었는데 크리스의 외모는 거기에 버금가게 비현실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얼굴을 잊을 수 있었을까. 문득 모두 잊어버리란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크리스인가. 통제 욕구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자신을 잊어버리란 말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크리스의 엄청난 실패라도 봤나? 그걸 떠올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유진의 몸이 두려움으로 떨렸다.

“기분은 어때? 유진.”

“간지러워요….”

크리스가 유진의 가슴을 손끝이 스치는 정도로 약하게 쓰다듬었다. 당연히 더 간지러워 유진의 허리가 움찔거렸다. 유진의 이마에 크리스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고 유진은 무릎을 세워 엉덩이를 든 채로 엎드려서 크리스의 어깨에 턱을 올린 자세가 되었다. 크리스가 유진의 젖꼭지에 달린 진동기들을 떼어내고 링을 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랑거리는 보석에 진동기를 도로 붙였다. 금속을 타고 젖꼭지에 전해지는 진동에 소름이 돋았다.

“흐읏! 아?”

크리스의 손이 유진의 안쪽에 들어있던 기구를 천천히 빼내었다. 기구는 작은 구슬과 그것을 연결하는 가는 봉의 반복으로 되어있었는데 그것을 천천히 빼내니 입구가 구슬이 빠져나올 땐 빠끔하게 벌어졌다가 구슬이 없는 부분이 나올 땐 최대한 조여들었다. 벌어질 땐 심장이 조여 숨을 들이쉴 수 없었고 조여들 땐 안쪽의 욱신거림 때문에 숨을 내쉴 수가 없었다. 별로 길지도 않은 기구에 구슬이 무려 세 개나 있었다. 후들거리는 허벅지에 힘을 주어 버티며 마지막 구슬이 완전히 빠져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유진의 기다림과는 달리 빠져나오던 기구는 크리스의 손으로 다시 밀어 넣어졌다.

“아흣! 다, 다시?”

“응, 유진. 여기가 완전히 흐물거릴 때까지 계속 왔다 갔다 할 거야.”

크리스의 미소가 아찔했다.

“아, 안, 안 돼요…기분…이,이상해.”

구슬을 빠르게 움직이기라도 했으면 나았을 텐데 느리게 움직이니 봉인지 구슬인지 감촉만으로도 제대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입구까지 느껴졌다. 살이 기구에 달라붙어 모양대로 오므라들었다. 그 자체로 피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멀스멀하게 쾌감이 올라왔다. 그 감각에 몸을 떨면 젖꼭지에 채워진 링의 장식과 진동기가 흔들렸다. 그러면 민감해진 젖꼭지로 느끼는 유진의 몸이 더욱 흔들려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지옥 같은 쾌감이었다.

“크…크리, 앗, 스…제…제발.”

“더는 힘들지?”

크리스의 팔이 단단하게 굳는 걸 본 유진이 눈을 세게 감았다. 기구가 빠르게 빠져나갔다. 구슬에 민감해진 입구가 긁혔다. 눈을 감았는데도 새하얬다.

“흐읏!”

유진의 무릎이 벌어져 주저앉듯 엎드렸다. 유진이 가슴을 크게 들썩이며 숨을 쉬고 있는데 크리스가 다시 이상한 기구를 들고 다가왔다. 유진은 크리스의 품에 얼굴을 묻기 위해 기어갔다. 슬프게도 의지할 곳이 크리스밖에 없었다. 유진이 자신의 배에 얼굴을 묻은 것이 좋았는지 크리스가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천천히 등을 쓸며 손을 옮겼다. 예쁘게 자리 잡은 척추기립근 탓에 선명하게 홈이 패인 게 예뻤다. 민감하기도 해서 크리스의 손이 등을 지나는 동안 유진의 몸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매끈한 피부가 적당히 땀에 젖어 피부가 빨려들듯 달라붙는 것 같았다. 꼬리뼈에 도착한 손에 힘을 주어 누르자 유진에게서 달콤한 한숨이 새었다.

잔뜩 젤을 바른 유선형의 기구가 천천히 유진의 안으로 들어갔다. 앞부분은 아까의 구슬과 비슷한 크기라 풀린 입구가 쉽게 삼켰지만, 뒤는 미세하게 굵어져 가장 굵은 곳은 구슬의 두 배 정도의 굵기여서 크리스는 유진의 페니스를 문질러 유진의 주의가 분산되게 한 후에 완전히 넣었다.

유진은 안을 기구로 채우고 크리스의 품에 안겨 부드러운 애무를 받았다. 자극과 거리가 먼 애무는 쾌감보다는 온기를 전달하는데 더 적합했다. 반신욕까지 기구를 품고 끝낸 유진을 크리스가 천천히 기구를 움직여 얼마나 풀렸는지 확인했다.

“많이 벌어졌네. 유진.”

크리스의 말대로 한참을 기구를 물고 있던 안이 벌어져 기구가 움직이는 게 몹시 부드러웠다. 크리스는 유진의 팔다리를 접은 채로 묶어 쿠션을 유진의 배에 끼우고 옆으로 눕게 했다. 그리고 기구를 완전히 빼내고는 다른 기구를 유진의 안에 넣었다. 어느 정도 삽입되자 빨려들듯 끌려 들어가는 것에 유진이 작게 신음을 내었다. 그러자 크리스는 유진의 페니스와 고환에 진동기를 부착하고 아주 약하게 작동시켰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진동 소리가 유진의 숨소리에 섞였다. 크리스는 유진의 머리나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진이 또 잠이 온다 생각하며 있다가 뒤의 기구가 움직이는 것에 놀라 커다래진 눈으로 크리스를 보았다.

“이제 시작이야, 유진.”

분명 기계장치가 아닌 것 같았는데 기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잡이 부분이 고환 밑을 누르는데 피부 속이 간지러운 느낌과 고환이 징하고 울리는 듯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차라리 계속 눌리고 있으면 괜찮을 텐데 기구가 움직여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눌렸다 안 눌렸다를 반복해 점점 감각이 커지는 것 같았다. 안쪽도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뻐근해질 정도로 욱신거려 열이 오르는데 약한 진동이 오고 있는 페니스는 발기했다. 크리스의 눈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하아…앙!”

유진이 욱신거림에 가슴이 갑갑해 크게 숨을 들이쉬는데 안쪽에서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 눈을 깜박이는데 앞이 축축했다. 사정하는 것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사정을 한 것이었다.

“아…????”

유진의 팔과 다리가 튀었지만 완전히 펼 수 없게 짧게 연결된 사슬이 유진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유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며 쿠션을 세게 말았다. 뒤쪽의 이상한 자극은 계속되었다. 숨을 쉴 때마다 움직이는 기구에 숨을 잠시 참아보기도 했지만 지나친 쾌감은 산소 부족을 불러왔고 유진은 밭은 숨을 쉬었다. 당연히 기구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페니스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정액이 줄줄 흐르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어졌는지 뭔가 조이는 느낌이 나다가 절정에 올랐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유진의 몸이 비명을 질렀다. 내보내고 싶어 아랫배가 무거운데도 요도를 빠져나오는 것이 없었다.

“흐읏? 이, 이거…이상, 이상해요….미, 미쳐요…계…계속 가, 가요.”

“응, 계속 가. 유진.”

절정 중인데 다시 절정이 오고, 다시 온 절정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절정이 왔다. 켜켜이 쌓이는 절정감에 유진의 뇌가 전기로 지져지는 것 같았다. 거기에 묽은 체액이 쏟아질 때보다 절정시간이 길었다. 너무 큰 쾌감이 유진을 집어삼켰다. 유진의 전신이 덜덜 떨렸다. 페니스와 고환에 붙은 진동기도 유진을 몰아붙였다.

“아…안, 안돼요, 안 돼, 안 돼, 저 심…심장이 터질 것 같….아흣!”

고개를 세게 저어가며 지독한 쾌감에서 도망가고 싶어 하던 유진은 결국 정신을 잃으며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유진, 일어나야지?”

크리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말하는 내용에 유진이 정신을 차렸다. 눈에 초점이 맞지 않아 깜박이며 조절하는 중에 크리스가 귀엽다며 유진에게 짧은 키스를 했다. 유진의 시야가 맑아지자 크리스가 손을 들어 보였다. 크리스는 수술용 장갑 같은 것을 끼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좋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크리스가 장갑을 낀 손으로 포장지를 뜯었다. 아주 가늘고 약간 휜 은색의 금속 막대 같은 것을 쥔 크리스가 유진의 페니스에 차가운 젤 같은 것을 바른 후 막대에 크림을 바르더니 유진의 요도구로 가져왔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들어가선 안 되는 곳에 막대가 들어올 것 같았다.

유진의 눈이 충격으로 커졌다. 하지만 팔을 풀어둔 크리스의 의도가 보여 유진은 자유로운 손으로 크리스를 막거나 자신의 눈을 가리는 대신 크리스의 허벅지를 쥐고 크리스가 가는 막대를 자신의 요도구로 집어넣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막대가 너무 얇아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들어갈 곳이 아닌 곳에 끝도 없이 들어가는 막대는 정말로 무서웠다.

“아!”

“아파?”

“아뇨, 뭐가 닿는 느낌이 들어서….”

“한 번 더 느끼면 완전히 다 들어간 거야.”

막대를 조금 움직인 크리스가 다시 막대를 밀어 넣었다. 벽이다 싶었던 곳에 틈이 있었는지 막대가 쏙 들어가 폭신한 무언가를 찔렀다. 찔린 곳에서 욱신거리는 듯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흐읏?”

크리스가 이번엔 아까 유진이 기절하게 만들었던 기구를 유진의 뒤에 천천히 삽입했다. 기구가 완전히 삽입되자마자 쾌감을 느낀 유진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그대로 사정을 하는데 앞의 기구가 방해했다. 정액이 막대를 비집고 나오느라 유진은 정액이 나오는 구간 전체를 똑똑히 느꼈다. 지옥은 또다시 유진의 앞에 놓여졌다.

여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존재감이었다. 요도 전체가 저 안쪽부터 있는 것은 느껴지는데 막대(아니 구멍이 나 있으니 관이었다), 관이 꽂혀있으니 거기로도 나가느라 정액이 나오는 건 느렸고 나와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유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힘들고 서러웠다. 그런데 크리스의 손이 다가왔다. 크리스는 관의 끄트머리를 잡고 짧고 느리게 움직여 안을 계속 찔렀다.

“하으…이거 힘…힘들어요.”

“정말 못 참겠어? 절대로?”

정말 못 참을 것 같은데 절대로란 말을 들으니 섣불리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유진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크리스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유진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결국 유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크리스가 웃으며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진은 정말 착하네.”

유진은 손가락과 발가락 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몸에 힘을 주어 견뎌내고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가 다시 포장지를 뜯자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더한 것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유진의 몸이 덜덜 떨리며 입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났다.

“유진, 유진, 여기 봐.”

유진이 억지로 눈을 들어 크리스를 보았다. 크리스가 유진의 풀린 동공과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유진을 완전히 안아 올려 품에 안고 등을 쓸었다.

“유진, 많이 무서웠어?”

“…괘…괜찮….”

“이건 무서워해도 괜찮아. 유진”

“너…너무 기분 좋은데 이상하니까….”

크리스가 괜찮다고 해주니까 그제야 무섭다는 것을 긍정할 수 있었다. 유진이 크리스의 몸에 바짝 붙어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크리스는 유진을 단단하게 안고 등을 느리게 도닥거렸다. 그러면서 천장을 열어주었다. 오후의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왔다. 하얗기만 하던 방도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유진의 공포를 조금 줄여주었다. 유진의 몸이 떨리는 것을 멈추자 크리스가 유진을 안은 채로 일어서서 침대를 내려왔다.

꽤 높은 침대에서 유진을 들고도 내려오는 움직임이 부드러웠다. 그의 통제 욕구는 자신의 몸에도 있었는지 몸을 움직이는 방법이 완전히 달랐다. 유진은 탄력 있게 당겨졌다 돌아오는 근육을 느끼며 맨손으로는 크리스를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다. 가뜩이나 체급 자체가 달라 힘들 거라 판단했지만 아주 작은 희망은 품고 있었다. 유진은 학교에서 하는 무도 계열 수업은 트라우마 때문에 빠졌지만 대련 외에선 굉장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매우 익숙한 사람과의 대련이나 선제공격으로 상대를 아예 쓰러뜨린 이후처럼 트라우마가 자극되는 일을 피하면 트라우마 때문에 경기를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그래서 크리스가 경계심을 완전히 풀면 배운 사람으로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지 않을까 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크리스의 몸은 단순히 근육만 키운 몸이 아니었다.

크리스는 침대를 내려와 성큼성큼 걸어 침실의 밖으로 향했다. 유진은 처음으로 보는 집 구조를 제대로 담기 위해 빠르게 눈을 움직였다. 이것을 몰라 여태껏 참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구조를 보기 전에 탈출시도를 미룬 자신에게 칭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크리스의 신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동으로 열리는 듯한 문이 열리는데 두께가 상당했다. 센서의 반응 속도도 상당했다. 크리스는 단 한 번도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남들보다 빠르게 걸었는데도 거기 맞춰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나가니 또 정면에는 같은 문, 좌우로는 복도가 펼쳐졌다.

“어디로 갈까? 유진.”

“어디든 좋아요.”

크리스가 좋아할 만한 답을 고를 노력도 필요 없었다. 애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디로 갈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나 크리스는 유진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잠깐 멈춰 유진에게 입을 맞췄다. 부드럽게 입술을 건드리는 감촉에 유진이 몸을 살짝 떨었고 그제야 자신의 몸에서 그 어떤 것도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진의 요도엔 가는 관이 뒤에는 기구가 삽입되어 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열기가 몸에 퍼졌다. 페니스가 단단해지고 기구가 또 저릿하게 안의 어떤 곳을 눌렀다.

“아….”

유진의 얼굴과 귀, 그리고 목까지 새빨개졌다. 크리스가 그런 유진을 보고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이마나 코끝에 입을 맞췄다. 유진이 크리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크리스가 웃으며 다리를 움직였다. 크리스의 움직임에 맞춰 흔들리는 몸에 자극들이 쏟아졌다.

“여기는 서재.”

유진은 몸의 괴로움도 잊고 크리스가 보여주는 서재를 빠르게 훑었다. 의학과 경제학, 심리학 전공 서적들에 소설들이 더해져 있었다. 소설은 베스트셀러 위주의 취향이 보이지 않는 목록인 것으로 봐서 유진을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데려올 마음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크리스가 해오는 행위의 교과서적인 면모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짐작이 갔다. 크리스는 유진을 심리학적인 조언에 따라 길들이고 있었다. 유진은 자신이 정확하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할 수 있는 미친놈에게 잡혀있는 것이었다.

책상에 놓인 거대한 더블 모니터를 뒤로하고 크리스는 문으로 향했다. 크리스가 다가오자 스스르 열린 문으로 잘 꾸며진 주방이 나타났다. 잡지에나 나올 법한 주방엔 창이 양쪽으로 있었는데 거기에 보이는 경치로 유진은 이곳이 꽤 고층 건물인 것을 깨달았다. 탈출이 더욱 힘들어졌다. 가뜩이나 구조가 이상한 데다 최고급 센서로 작동하는 두꺼운 문을 몇 개나 지나야 하는데 창문은 아예 안 열릴 테고 설령 빠져나가더라도 건물을 탈출하기는 힘들 것이 분명했다. 환기구를 이용하는 방법이 아니라면 크리스가 아예 유진을 데리고 나가야만 이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진은 절망으로 휩싸였다. 크리스가 스스로 유진을 데리고 나가지 않는다면 절대로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없었다. 나가지 않으면 구출될 리가 만무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그 때문에 유진의 몸에서 기운이 쭉 빠지자 뒤에 들어있던 기구가 좀 더 깊게 들어왔다.

“으응!”

유진이 크리스의 품 안에서 절정감을 느끼며 기절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강하게 버텨오던 유진의 몸이 한계를 맞았는지 열이 펄펄 끓었다. 크리스가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놓고 얼음팩을 수건에 싸서 열이 쌓이는 부위에 놔두는 등 난리를 쳤지만 열은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유진의 정신도 계속 열과 약에 사로잡혀 자고 있지 않으면 몽롱했다. 몽롱한 정신은 꿈인지 현실인지, 잊었던 기억인지 유진의 바람인지 모를 것들을 보여주었다.

처음엔 루카스와 노라와의 생활이 보였다. 정말로 따뜻하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두 사람의 딸인 에이프릴을 범죄로 잃어 유진의 사정을 듣고는 바로 입양을 결정하고 사랑을 말 그대로 쏟아부었다. 유진이 눈치를 덜 보게 되었을 때 흘리던 눈물. 항상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손길. 유진의 도망을 위해 명분을 잡아 주를 몇 개나 움직이면서도 두 사람은 유진을 항상 안아주었다.

그다음엔 엄마가 보였다. 유진의 친엄마. 아빠가 죽기 전엔 유진도 아주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웃고 있는 아빠와 엄마는 매우 익숙했으니까. 하지만 아빠가 죽고 엄마는 마음에 병을 얻어 엄마만을 닮은 유진을 잃어버렸다. 다행히 엄마가 다른 곳으로 갈 때 함께 갈 수 있었지만 가서는 이상한 아저씨들이 유진을 괴롭혔다. 눈에 보이면 걷어차이고 두들겨 맞고, 씻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고 먹는 것도 아저씨들이 먹고 버린 것을 주워 먹었다. 엄마에게 다가갈 수도 없어서 너무나 추웠던 게 생각났다. 유진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유진, 유진.”

누군가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리고 차가운 것이 유진의 온몸을 감쌌다. 가뜩이나 추운데 더 추워져 유진이 몸을 바둥거리며 거기서 벗어나려 했다.

“유진, 괜찮으니까. 응?”

목소리에 애원이 섞여 있어 유진은 몸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차가운 것은 곧 아늑해졌다. 유진은 머리를 들이밀며 쓰다듬어 달라고 요구했다.

“나의 사랑스러운 유진. 나에게서 도망치지 마.”

유진의 이마에 보드랍고 촉촉한 무언가가 닿았다. 그리곤 빗방울이 이마에 떨어졌다. 목소리의 주인이 걱정되었다.

“비…비가 와요.”

“응? 유진, 뭐라고?”

“비 오니까 들어가야….”

“유진….”

유진을 감싸고 있던 아늑함이 보다 세게 유진을 감쌌다. 기분 좋은 압박감에 유진을 다시 잠이 덮쳤다.

“들어가야…들어가야 하는데….”

크리스는 자신에게 들어가자 조르다 잠이 든 유진의 늘어진 몸을 고쳐 안았다. 품에 쏙 들어오는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불안감이 솟았다. 해열제는 물론이고 일부러 링거까지 맞혀 열을 떨어뜨리려고 했으나 유진의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유진을 잃을까 걱정이 되어 미칠 것 같았다. 어릴 때 집에서 키웠던 동물들이 떠올랐다. 크리스는 최선을 다해 잘해주었지만 동물들은 크리스를 싫어했다. 그나마 크리스를 싫어하지 않았던 작은 새는 죽었다. 너무 손을 타 죽은 거라고 했다. 그 뒤로 크리스는 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유진을 처음 만났을 때 유진은 크리스를 경계하면서도 호의와 호기심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서 크리스는 유진을 불렀고 다가온 유진은 크리스의 곁에서 보다 건강해졌다. 크리스는 예쁜 유진이 자신의 곁에서 점점 좋아지는 모습이 좋았다. 자신이 납치되어 묶인 채로 감금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유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풀려나면 유진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유진이 항상 크리스가 유진의 엄마에게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슬퍼하니까 유진의 엄마도 데려가 고쳐서 유진을 슬프지 않게 하고 자신이 웃게 해줄 거라 다짐했는데. 유진과 함께할 수 없다는 말에 아주 긴 계획을 세웠고 미리 세워둔 예정과는 다르고 빠르게 유진을 데리고 왔어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유진을 대했다. 그래 유진은 이렇게 아파서는 안 됐다. 자신이 얼마나 참았는데.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도망치다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크리스는 자신의 품에 안은 유진을 팔로 칭칭 감았다가 놓았다.

크리스는 유진의 팔에 꽂혀있던 링거를 뺀 후 유진을 안고 욕실로 향했다. 체온보다 조금 차가운 물에 유진을 안고 들어간 크리스는 유진의 페니스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유진이 잠이 들어있었지만 주어지는 자극에 발기한 페니스는 크리스가 여태껏 가르친 대로 민감하게 반응했고 금세 정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유진의 숨이 조금 안정되었다. 크리스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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