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Irony (8/9)

Irony

이른 더위를 식혀주는 는개가 내렸다. 이슬비보다 가는 비라 우산을 펴는 게 미련해 보였으나, 애써 다듬은 머리가 아쉬워 그는 우산을 펼쳤다. 평상시라면 빗소리가 북소리처럼 고막을 두들겼을 테지만, 오늘은 빗소리가 잔잔하게 그의 귀를 감싸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는 잔잔한 호수 같은 옅은 미소를 머금고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언제나 그렇듯 대표의 사치스러운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정원이 펼쳐졌다. 푸르고, 붉고, 노랗고. 주로 쨍하고 원색적인 색들로 채워진 정원을 가로질렀다. 돌을 밟을 때마다 구두가 부딪혀 뚜벅뚜벅하는 소리가 부서져 사방에 퍼졌다.

그는 중앙에 성처럼 떡하니 서 있는 저택 앞에서 벨을 눌렀다. 문은 바로 열리지 않았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인가. 그는 약간의 짜증과 지루함을 담아 구두로 바닥을 두들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순간적으로 쌀쌀한 공기가 그를 덮쳤다. 대표는 인내심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가 이런 더위와 습기를 참을 리가 없었다. 초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에어컨을 가동했을 것이다. 유세한은 쓰게 웃으며, 곧 나올 아이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대표와 그의 전 아내를 닮은 화사한 미모의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나왔다.

“안녕, 오빠!”

“잘 있었어?”

최여정이 입가를 가리며 까르르 웃었다. 여정이 손을 내밀어 유세한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유세한이 구두를 황급히 벗고 들어갔다. 집안은 썰렁한 공기로 얼어붙어 있었다. 초가을의 바람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오빠, 아빠 데리러 온 거지? 아빠 지금 자고 있어.”

여정은 유세한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그를 끌었다. 머뭇거리며 고민하던 유세한은 잠자코 아이에게 끌려갔다. 이 넓은 집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혼자서 대표를 찾을 바에야, 아이를 따라가는 게 훨씬 빠르고 편했다.

아이는 엘리베이터 상승 버튼을 눌렀다. 유세한은 그걸 보자 대충 대표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갔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이는 곧바로 4층을 눌렀다. 짐작은 확신이 되었다. 그는 웃으며 여정을 내려다보았다. 앞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여정이 고개를 휙 돌렸다. 반동으로 양 갈래로 묶은 머리가 강아지 꼬리처럼 살랑살랑 움직였다.

“하늘 보러 가셨어?”

유세한의 말에 여정이 환하게 웃었다.

“응. 아빠는 하늘 좋아해.”

아이는 입술을 쭉 내밀어서 노래를 부르더니 난데없이 자신의 머리끈을 보여주었다. 고작 머리끈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비싼지 잘 아는 유세한은 감히 만져볼 생각도 못 하고 웃으며 보고만 있었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는 머리끈의 가치를 모르고서, 마구잡이로 당겨보았다.

“이거 엄마가 다른 나라 갔다가 사 왔다? 예쁘지? 아빠도 예쁘다고 이걸로 머리 묶어줬어.”

“대표님이 머리도 묶어주셔?”

“응. 아빠 머리 잘 묶어. 나 때문에 따로 연습했다고 그랬어.”

조잘거리며 얘기하던 아이는 갑자기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아빠가 엄마 없다고 무시당하면 안 된다고, 연습했어. 그럴 거면 그냥 엄마랑 살지….”

유세한은 시무룩해진 아이 얼굴을 보며 그저 자조적으로 웃었다. 대표가 여정이 친구들에게 엄마 없는 소리를 듣는 순간, 어떤 일을 저지를지 예상이 되었다. 과연 그가 가만히 있을까. 아마 자신의 신조에 해당하지 않는 일들을 합법적으로 저지를 것이다.

유세한은 최희서와 똑같은 눈매를 가진 여정을 보며 희박한 소망을 가졌다.

어쩌면, 여정은 최희서와 다르게 정상적인 아이로 클지도 모른다. 아니, 이런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걸까. 유세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형제들을 생각했다. 장남 최희를 시작으로 막내 최희서까지. 정상적인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미친놈은 최희서였다.

유세한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최희서가 자신의 본능을 드러낸 날을.

사실 그날, 직원이 큰 잘못을 저지른 건 맞았다. 유통을 하는 과정 중에 미성년자가 개입된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챈 최희서는 때리는 용도로 가지고 있던 골프채를 들고 직원을 찾아다녔다. 직원은 도망가려다 재수 없게 잡혔다. 최희서는 마침 옆에 있던, 웬만한 저택보다 훨씬 비싼 도자기를 들었다. 호리병의 날씬한 부분을 잡고서,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도자기를 던졌다. 도자기가 직원의 머리에 부딪혀 깨졌다. 직원이 “악!” 하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최희서가 재킷을 벗어 던지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가장 먼저 직원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이 씨발 새끼가!’

최희서가 발로 배나 머리, 혹은 골프채로 직원의 등을 두들겨 팼다.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폭력에 유세한의 얼굴이 굳어갔다. 검은 옷이 축축하게 변할 때까지 한참 두들겨 패던 최희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직원의 가슴을 유심히 확인했다. 직원의 가슴이 미약하게나마 움직이는 걸 보더니 들고 있던 골프채를 바닥에 내던졌다. 소매를 걷어붙인 최희서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직원의 머리를 발로 밟으며 말했다. 직원은 머리가 눌리는 통증에 몸을 꿈틀거렸다. 그걸 본 최희서의 눈에 안도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야, 주 선생님 불러.’

‘네?’

주 선생은 최씨 집안 주치의였다. 그를 왜 부르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가서 멍하니 최희서를 보는데, 최희서가 피 묻은 얼굴을 닦아내며 웃는 게 보였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얼굴에 정신이 순간 멍했다. 피를 빨아먹으러 온 뱀파이어를 마주한 느낌에 가슴이 뛰었다.

‘이 새끼 죽을 거 같아. 살려줘야지.’

‘죽이시려고… 팬 거 아니셨습니까?’

아무리 봐도 죽이려고 작정하고 팬 사람이었다. 유세한이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묻자, 최희서는 느릿하게 다가왔다. 향수 냄새가 뒤섞인 피 냄새가 훅 후각을 찔렀다. 유세한이 강렬한 향을 피해 뒤로 걸었다. 최희서가 한 걸음 바짝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였다. 왁스로 고정했던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한 가닥 내려와 흔들거리고 있었다.

호수보다 맑은 갈색 눈을 마주하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유세한은 본능적인 겁에 질려 쓰러지려 했다. 최희서가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유세한을 잡아주었다.

최희서는 잡념에 빠진 유세한을 힐끔 보더니, 그가 설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최희서는 그의 팔에 걸쳐진 재킷을 들고서 싱긋 웃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사람을 죽이겠어.’

유세한은 최희서 어깨너머로 꿈틀거리는 사람을 보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심각하게 맞아서 걱정이 되었다. 과연 주 선생님을 부른다고 해도, 사지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최희서는 재킷을 여유롭게 입더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자신이 직접 주 선생에게 전화하려는 것 같았다.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던 최희서는 지레 겁을 먹고 파리하게 질린 유세한의 뺨을 만져주며 말했다.

‘내 옆에서 오래 일했으면서 아직도 나를 몰라?’

‘…잘 압니다.’

유세한이 대답하자 최희서가 눈웃음을 지었다. 지금 당장 연예계에 데뷔한다고 해도 납득이 가는 눈웃음이었다.

‘넌 아직 날 몰라, 내가 말이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에요. 한번 말한 건 꼭 지켜야 해.’

그는 유세한을 보며 유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음성이 너무 달콤해 말초신경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난 사람은 절대 안 죽여.’

주 선생이 전화를 받았는지 최희서가 등을 돌렸다. 그는 허리에 한 손을 댄 채, 구두로 바닥을 탁탁 두들기며 태연하게 말했다.

‘선생님, 지금 제 회사로 와주시겠어요? 사람 한 명 살려야 해요. 헬기 보내드릴 테니까 타고 오세요.’

주 선생은 최희서가 보낸 헬기를 타고 도착했다.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 선생이 말했다. 최희서는 군소리 없이 직원을 병원에 보내줬고, 가장 좋은 병실도 내주었다. 그 후 치료비까지 최희서가 모조리 대주었다. 죽는 게 나을 정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맞았던 직원은 다행히 최희서의 지극정성으로 두 발로 병원을 걸어나갔다.

최희서는 직원이 일상생활이 가능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직원을 고소했다. 직원은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최희서의 본성을 알았을 때 그만뒀어야 했다. 아니, 그 전에 김산이란 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렸을 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유세한은 우울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빠, 어디 아파?”

여정이 유세한의 우울함을 알아챈 것인지 상냥한 얼굴로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의 걱정이 마음에 들어 유세한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안심이 되었는지 해맑게 웃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토끼처럼 총총 걷는 아이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아이가 멈춘 곳은 대표가 낮잠을 자는 방이었다. 천장이 투명해서 하늘을 바로 볼 수 있는 방이었다. 대표는 그 밑에 해먹을 걸어두고, 거기에 누워 멍을 때리다가 잠이 들곤 했다.

“아빠 자니까 조용히 들어와, 오빠.”

아이가 발꿈치를 들어 올리며 속삭였다. 유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수줍게 웃어주고는, 몸을 돌려 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다.

투명한 천장에서 여과 없이 빛이 쏟아져 내려, 그 아래에 잠든 남자를 온화하게 감싸고 있었다. 해먹에서 삐죽 나온 날씬한 팔이 보였다. 이불은 거의 반이나 떨어져 바닥에 퍼져있었다. 남자의 검은 머리가 느릿하게 움직이는 해먹에 맞춰 흔들렸다.

음울한 회색빛을 바탕으로 한 푸른색이었는데도, 남자의 존재만으로 방이 환해진 듯 착각이 들었다. 유세한은 귀신에게 홀린 듯, 멍한 얼굴이 되었다. 유세한이 아이에게 이끌려 앞으로 걸어갔다. 최희서의 예쁜 얼굴과 모델같이 쭉 뻗은 몸이 보였다. 최희서가 두 눈을 꼭 감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얼마나 순해 보이던지, 손을 내밀어 그의 보드라운 뺨을 한 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무의식중에 움찔거리던 손을 모아 잡은 유세한은 여정을 보았다. 여정은 해맑게 웃더니 보란 듯이 최희서의 뺨을 매섭게 두 손으로 내리쳤다. 따끔한 통증에 최희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풍성한 검은 속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영롱하고 밝은 갈색 눈이 나타났다. 그것만으로 완벽했다. 부스스한 얼굴에 졸음이 가득인 얼굴이었지만, 눈을 뜬 것만으로 최희서는 완벽해졌다.

늘 정장을 입고 능글거리던 대표가 저렇게 무방비한 얼굴을 하자, 가슴이 뛰었다. 하늘에서 쏟아진 회청색 빛을 머금어서일까. 그의 분위기가 적당히 음울하면서, 맑아 보였다.

“아빠, 그만 자. 오빠 왔어.”

최희서가 짜증을 내며 눈을 감으려 하자 여정이 뺨을 두 번 더 내리치며 말했다. 최희서는 눈을 반쯤 떠서 여정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 욕설이 한가득이었지만, 딸 앞이라 참는 듯했다. 해먹에서 내려온 최희서는 애교를 부리는 딸을 안았다.

“넌 여기 왜 왔어.”

이제야 유세한을 발견한 최희서가 무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많이 졸린 것인지, 말투가 많이 늘어지고 나른했다. 눈빛도 평상시보다 느슨했다. 여정의 등을 두들겨 주던 최희서가 요염한 붉은 입술을 열었다.

“잘 때 방해하지 말랬잖아.”

“김산 씨 일 때문에 들른다고 문자를 남겼습니다.”

김산이란 이름에 최희서의 눈빛이 확 돌변했다. 그는 여정을 연약한 짐승 다루듯, 느리게 내려놓더니 유세한에게는 빠르게 다가와 손을 휙 내밀었다. 유세한은 참을성 없는 대표를 위해 만들어 놓은 서류를 내밀었다. 최희서는 놀아달라고 매달리는 여정의 머리를 매만졌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서류에 꽂혀있었다. 여정에게 머물던 손을 아예 뗀 최희서는 서류의 마지막 장까지 빠르고 정확하게 훑어보았다. 그는 담배가 피우고 싶은 것인지 애타는 동작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김산에 대한 최근 정보를 모조리 파악한 최희서는 짧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조소를 머금은 얼굴이 보석을 뿌린 듯 화사하게 반짝거렸다. 그는 바닥에 엎어져 혼자 노는 여정을 안았다. 아빠에게 다시 안긴 여정이 까르르 웃으며 최희서 허리에 팔을 둘렀다.

“여정아.”

“응?”

최희서가 사탕보다 달콤한 목소리로 아이를 꼬드겼다.

“당분간 엄마한테 가 있을래? 너 엄마 보고 싶다고 그랬잖아.”

“엄마한테?”

아이가 난처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엄마는 보고 싶은데, 아빠가 왜 갑자기 엄마한테 가라고 하는지 몰라서 당황하는 게 보였다. 최희서는 보송한 아이 뺨에 입술을 문대더니,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아이를 유혹했다.

“엄마랑 여행 좀 다녀와. 아빠가 돈 줄게.”

“돈은 엄마도 많아.”

여정의 순수한 대답에 최희서가 듣기 좋은 웃음을 터트리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돈은 아빠가 더 많아. 네 엄마는 적당히 많은 거지. 아무튼 나가서 엄마한테 전화 좀 하고 와. 여행 가자고. 아빠가 돈 준다고 하면 아마 10년 여행 계획을 짜올 거다.”

“왜?”

아이다운 질문에 최희서는 짤막하게 답했다.

“그렇게 해야 나한테 복수한다고 생각할 테니까. 어쨌든 여정아, 엄마한테 전화하고 와.”

“아빠 폰으로?”

“아니. 네 폰으로.”

최희서는 여정이 나갈 때까지 아무 말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여정이 문을 닫고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자유로워진 듯, 뒷목을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아아, 피곤해 죽겠네.”

눈을 감고 느릿하게 숨을 내쉰 최희서가 멀뚱히 서 있는 유세한을 보았다. 뒷목에 손을 댄 채로 그가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늘 보는 얼굴인데 새롭게 다가오는 미모에 유세한이 얼굴을 붉혔다. 뻔히 보이는 생각에 최희서는 웃음을 짙게 덧그리더니, 허리를 쭉 폈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 최희서는 불을 붙이고서,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피어오른 담배 연기가 아스라이 사라졌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최희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삼인성호라고 알아?”

“네.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참말이 되어버린다는 뜻이죠.”

아나운서 같은 조곤조곤한 설명에 최희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담배 연기를 뱉어낸 최희서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으나, 눈빛이 한없이 가라앉은 걸 보아하니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았다.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거 참 쉬워.”

최희서는 김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성실하게 살던 남자가 한순간에 무능력자가 되어버렸다. 지속적인 돈 낭비, 정신과 이력, 정신병원 입원, 아들 둘의 증언.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사회에서 매장시키기에 충분한 조건들이었다.

서류상으로 보는 김산은 누가 보아도 도박에 미친 놈이었고, 그 결과 가정을 파탄 낼 뻔한 사람이었다.

유세한이 기억하는 김산은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미남이었다. 흔한 외모가 아니라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뇌리에 그의 얼굴이 푹 박혀있었다. 유난히 크고 맑은 눈 때문일까. 유세한은 그가 도박에 미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홀로 남은 왕을 지키기 위해 검을 치켜든 기사와 같았다.

최희서도 마찬가지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입술을 끌어당겨 비릿하게 웃었다.

“이래서 어린애들은 안 된다는 거야. 적정선을 모르고 덤비거든. 그런데 문제는 김산도 있어. 애새끼들 예쁘다고 맨날 끌어안고 사니까 애새끼들이 겁도 없이 이딴 식으로 나오지.”

다 피운 담배를 착실하게 휴대용 재떨이에 비벼 끈 최희서가 이어 말했다. 그의 눈에 떠올랐던 무거운 고민이 사라져있었다. 그는 유쾌한 대표의 얼굴로 돌아와 방긋 웃었다.

“뭐, 그래도 신체는 멀쩡하니까 괜찮은 거 같아. 산이 예뻐해 주는 점은 날 닮은 거 같네.”

그 점뿐만 아니라 쌍둥이는 전체적으로 최희서를 닮았다. 그걸 본인만 모르는 듯해, 유세한은 안타까웠다. 최희서는 팔짱을 끼고 유세한을 보았다. 그의 표정이 심통이 난 듯 뾰족했다.

“날 나쁜 사람 보듯 보면 안 돼. 예쁜 건 예쁘게 봐. 예쁘게. 알았어?”

최희서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유세한의 볼을 가볍게 만졌다. 유세한은 가만히 있었다. 대표가 자신을 강아지 다루듯 대하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대표는 자신뿐만 아니라 전 아내, 강도윤도 이런 식으로 대했다. 연애로 맺어진 인연이 아니었기에 강도윤 또한 딱히 최희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강도윤은 최희서가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걸 깨닫고,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강도윤의 불륜을 알아챈 최희서는 합의이혼을 시도했고, 그것이 안 되자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그는 여정이 “엄마랑 있고 싶어.”라고 말하자, 딱 그것만 들어줬다.

“드디어 우리 자기 보러 갈 수 있겠네.”

최희서가 흥얼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유세한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저 멀리서 고된 삶을 살고 있을 김산을 떠올렸다. 어린 딸을 보며 살포시 웃던 김산의 얼굴이 머리에 잔재처럼 남아 가슴이 떨렸다.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양심이 반응한 것이다.

“대표님, 김산 씨한테 사과하러 가는 게 아니시라면…. 안 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사과?”

최희서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되물었다. 유세한을 보는 시선이 말갛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맑고, 올곧아서 그런 짓을 벌인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김산의 인생에서 최희서라는 오점이 얼마나 큰지 잘 아는 유세한은 약간 용기를 냈다. 적어도 김산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의 삶이 너무 고달파서, 내버려 두면 안 될 거 같았다.

“김산 씨도 지금은 나름 잘 적응하고 사시는 거 같은데, 지금 대표님이 찾아가면 혼란을 느끼지 않을까요?”

최희서의 성격을 고려해 최대한 둘러 말했다.

“왜 혼란을 느껴. 이미 그 자체가 혼란인데.”

너무 맞는 말이라 유세한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최희서 옆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일이었을 테지만, 최희서와 함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었다. 믿을 수 없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유세한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그저 묵인하는 자신도 범죄자가 된 거 같은데, 정작 한 사람을 삼인성호처럼 몰아간 세 사람은 후련한 얼굴로 살아가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세한은 최희서 옆에서 일하는 비서에 불과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내가 사과를 왜 해.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어? 나 여태까지 사람 한번 죽여본 적 없는 선량한 사람이야.”

그 말에 머릿속으로 최희서가 사람을 죽일 것처럼 두들겨 패던 것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치는 광경이었다.

선량이라…, 최희서 성격과는 정말 안 어울리는 단어였다. 최희서의 얼굴과 매치한다면 꽤 어울리긴 했으나, 유세한은 괜히 죄책감이 들어 둥둥 떠다니는 선량이란 단어를 지워버렸다.

“그럼 가시는 이유가 혹시 고백하러…?”

가는 이유가 궁금해서 유세한은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최희서는 유세한을 보더니 소리 내서 웃었다. 어깨를 흔들더니 최희서가 유쾌하게 말했다.

“단란한 가정을 즐겨보고 싶어졌어.”

단란한 가정…. 유세한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을 곱씹었다. 자신이 생각한 단란함과 차원이 달라 보였다.

“내 아들들이 효자라면, 아빠한테 보답을 어떻게 해줄지 정말 궁금해서 가보려고.”

효자…. 이 세상 수많은 효자들이 들으면 소름 끼쳐 할 얘기였다.

그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보았으나 역시나 최희서에게 통하지 않았다. 정상인의 범주를 진작 넘어선 최희서가 정상인의 얘기가 통할 리 없었다. 유세한은 속으로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호텔에서 최희서에게 당해 널브러져 있던 김산의 아름다운 나신이 떠올랐다. 밤새 울었는지 발갛게 부은 눈가가 이상하게 예뻐 보여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묶여 있어서 자국이 남은 손목에 경건한 자세로 키스하던 최희서도 명화에서 튀어나온 듯 우아했다. 새벽 어스름이 기어들어 온 호텔 방에서 그나마 애틋하게 느껴지던 광경을 떠올리던 유세한은 고개를 저었다.

최희서의 기묘한 집착을 알면서 모른 척했던 그 날의 감정이 기어 올라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김산과 김이삭, 김이탁의 일을 아무도 알 수 없게 막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식으로 최희서를 설득하는 건 불가능이었다. 그의 부모가 온다 해도, 염라대왕이 기어 올라와 목숨을 담보로 다그친다고 해도 그는 설득될 수 없었다.

유세한이 늘 그렇듯 거리를 두고 도망치려 하는데, 최희서가 다가와 그의 팔을 안 아플 정도로 잡았다. 깜짝 놀란 유세한이 고개를 돌려 최희서를 보았다. 눈이 마주친 최희서가 소년 같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류 없애는 거 잊지 마. 너만 알고 있어야 돼.”

최희서는 김산의 가족 일을 철저하게 비밀로 했다.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도 알 수 없도록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까지 김산의 일을 아는 자는 유세한 밖에 없었다. 최희서는 그 외 사람도 믿을 수 없다며, 유일하게 유세한에게만 일을 지정해 맡겼다.

유세한은 그런 최희서를 볼 때면 묘한 착각에 빠졌다. 최희서가 사실은 김산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착각이었다.

유세한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최희서를 지그시 보았다. 자신이 원인이 된 두려움을 마주한 최희서는 괜찮다는 듯,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최희서가 다정하게 말했다.

“나 실망시키지 마. 우리 여태까지 잘 해왔잖아.”

유세한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미 컴퓨터에 있는 자료는 다 지웠습니다. 사진은 제가 직접 찍었으니 유출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최희서가 만족한 듯 웃었다.

“근데 애가 몇 살이라고 했지? 아기 선물은 사가야 할 거 같은데.”

김산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태도에 유세한은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관심이 있는 건지. 관심치고 애정이 보였으나, 그렇다고 애정이라고 칭하기에는 너무 양아치 같았다.

역시 감을 잡을 수 없는 최희서였다.

“대표님, 김산 씨가 아이 낳은 거 아셨으면서 왜 2년이나 기다리신 거죠? 이미 아셨으면서….”

줄곧 마음에 걸렸던 이야기를 유세한이 꺼냈다. 최희서는 이미 김산이 아이를 낳은 사실을 2년 전에 알고 있었다. 이혼하자마자 최희서가 김산에 대해 알아오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유세한은 최희서의 명령에 따라 자세하게 알아왔다. 유세한은 최희서가 바로 김산에게 갈 줄 알았으나 최희서는 담배만 피울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흑막 같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선 김산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 희미한 애정이 옅어져 있었다. 유세한은 음영이 드리워진 얼굴을 보며 슬며시 생각했다. 최희서가 혹시 김산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김산에 대해 2차 조사를 명령한 것이다. 그것이 줄곧 의문이었던지라 유세한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이 정도 질문은 대표도 어느 정도 허용해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최희서는 새삼스럽게 그걸 왜 물어보냐는 얼굴로, 눈을 깜박거리며 말했다.

“산후조리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는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기 전 유세한을 보며 덧붙였다.

“늦은 나이에 애 낳아서 힘들 텐데. 산후조리 확실히 안 하면 병들어.”

유세한이 덤덤하게 바라보자 최희서가 진득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최희서는 단지 김산의 몸이 회복되는 기간을 기다려준 것뿐이다.

“이게 애새끼와 어른의 차이지.”

잠시 고민하던 최희서는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며 물었다.

“아, 엄마를 생각하는 아빠와 아들의 차이라고 해둘까?”

유세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최희서는 배시시 웃을 뿐이었다. 그 미소가 더할 나위 없이 선하고 예뻐서 유세한은 미미하게 볼을 붉혔다.

*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 창문을 열어 놓고 달게 잠을 자던 이탁은 온몸을 기분 나쁘게 짓누르는 습기와 더위에 눈을 떴다. 얼굴에 후드득 달라붙는 빗물에 이탁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방문을 열고 나온 이탁은 이삭의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닫아줬다. 부스스해진 머리를 긁적이며 나가려는데, 이삭의 옆에서 몸을 뒤집고 새근거리며 자는 유담이 눈에 들어왔다. 이탁은 잠이 무겁게 내려앉은 눈을 똑바로 떴다.

무럭무럭 자란 아이의 머리가 탐스럽다. 김산을 닮아 숱이 많은 머리를 잠이 깨지 않게, 아주 약하게 만져주었다. 아이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깰까 봐 손을 거두고, 아이 발끝에 걸린 얇은 여름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었다. 아이가 다시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했다.

이탁은 태아처럼 몸을 말고 자는 형을 무심한 시선으로 보다가 몸을 돌렸다. 형한테까지 이불을 덮어줄 의향은 없었다. 이탁이 배려하고 아껴주는 건 아빠와 딸이자 동생인 유담밖에 없었다.

이탁은 아빠 방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었는데, 방을 차지하고 있는 건 빗소리뿐이었다. 이탁은 문고리를 억세게 잡고서 입술 끝을 비틀어 웃었다.

“또 어디 간 거야.”

유담이 돌이 지난 후, 김산은 어느 날부턴가 툭하면 밖을 나갔다. 어차피 자신들의 서명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반항이라도 하는 건지, 밖에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 봤자 아직 젖먹이인 유담 때문에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근처에서 맴돌다가 잡혀 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빠를 임신시키기로 결정한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그렇지 않았다면 김산은 정말 작정하고 저 먼 곳으로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뭐든 터질 일은 예방하는 건 좋은 일이었다. 터지고 나서 후회하고, 수습해봤자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이탁이 후회하는 건 딱 하나였다. 자신의 나이 스무 살 때 아빠를 임신시켰어야 했다. 뭐 하러 1년이나 더 기다려줬는지 스스로 이해가 안 갔다.

아빠랑 매일 매일 몸을 섞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줄 알았으면, 스무 살이 되자마자 따먹었어야 했다.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입맛을 다신 이탁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매섭게 지면을 때리는 게 위에서 한눈에 보였다. 운동화를 신었던 이탁은 집으로 다시 들어가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우산도 없이 나갔을 김산을 위해 장우산을 하나 더 챙기는데, 자신을 빤히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잠에서 덜 깬 이삭이 싱글벙글 웃고 있는 유담을 안고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보고 있었다.

“오빠.”

유담이 귀여운 목소리로 이탁을 찾았다. 이삭이 가까이 다가와 유담을 넘겨주었다. 아이를 안아 들자, 특유의 젖내가 확 풍겼다. 아빠의 모유 냄새가 아니라는 게 아쉬웠다. 유담이 아빠의 모유를 빨고 나면, 그 입술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게 무척 좋았었는데. 혹은 목덜미나 배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거나.

이탁의 이상야릇한 생각을 알아챈 듯, 이삭이 팔짱을 끼며 타박했다.

“애 상대로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이상한 생각 안 했어.”

능글맞게 대답한 이탁은 유담의 장밋빛 뺨을 건드렸다. 유담이 까르르 웃으며 어깨에 이마를 비볐다. 아이 뺨에 슬며시 뽀뽀한 이탁은 고개를 들어 형을 보았다. 이삭의 표정이 평온했다. 김산의 가출 아닌 가출을 여러 번 겪다 보니, 무덤덤해진 모양이다. 이탁은 안고 있던 유담을 내려놓았다. 유담이 오동통한 다리를 움직여 이삭의 다리를 기둥처럼 꽉 잡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삭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 머리를 매만졌다. 김산을 닮아, 유난히 크고 검은 눈이 순수해서 예뻤다. 마치 한밤중의 펼쳐진 호수를 그대로 빨아들인 듯, 검고 맑았다.

“아빠는?”

혀 짧은 소리가 정확하게 김산을 찾고 있었다. 이삭은 유담의 둥근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이탁 오빠가 찾으러 간대. 아가는 오빠랑 밥 먹을까?”

“아빠.”

유담이 이삭의 다리를 잡으며 칭얼거렸다. 아무리 잘해줘도 낳아주고, 길러준 사람을 이길 수 없는 듯했다. 그러나 이삭은 딱히 불만은 없었다. 자신도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김산이 제일 좋았기 때문이다. 유담의 마음을 이해했다. 이삭은 쓰게 웃으며 아이를 안았다.

“그럼 아빠 올 때까지 오빠랑 놀자.”

이삭이 능수능란하게 유담을 달래 거실로 갔다. 이탁은 자신을 향한 무언의 명령을 알아채고, 밖으로 나갔다.

물안개가 자욱했다. 세상에 물을 탄 듯, 탁했다. 느리게 눈을 깜박거리자 속눈썹에 물기가 걸렸다. 마치 거대한 베일을 회색 도시에 한 번 드리운 느낌이었다. 시야가 전체적으로 연하고 부드러웠다. 빗물 덕분이었다.

이탁은 엘리베이터 하강 버튼을 눌렀다.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탁은 주머니에 든 담뱃갑을 만지작거렸다. 같이 탄 이웃 주민의 눈이 신경 쓰여 담배는 꺼내지 않았다.

이탁은 1층에 도착하자마자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불을 붙인 이탁은 여유롭게 담배 연기를 빨면서, 아파트 단지를 걸어 다녔다. 슬리퍼 안으로 빗물이 들어와 발가락을 적셨다. 먼지와 모래가 뒤섞여 썩 유쾌하진 않았으나, 운동화가 흠뻑 젖는 것보단 나았다. 이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김산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분명 옷도 제대로 입지 않았을 테고, 신발도 아무거나 신고 정신병 걸린 사람처럼 돌아다닐 것이다. 아니, 실제로 정신병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미쳐버린 아빠도 아빠였다. 목숨을 부지하면서 자신들 옆에만 있다면, 미쳐도 좋다. 오히려 미쳐서 한 번쯤은 자신들을 진정한 연인으로 봐줬으면, 하는 소박한 꿈도 있었다.

꿈은 꿈이기에 아름다운 것인가. 쓸데없이 감성에 촉촉이 젖은 이탁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 피운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서 이탁은 고기를 탐내는 하이에나처럼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다. 담배꽁초를 버릴 곳이 없을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빗물이 가득 스민 좁은 시야에 넓은 등이 보였다. 평범한 남자들처럼 하얀 티셔츠에 가벼운 면바지를 입었을 뿐이지만, 타고난 몸이 아름다워 무엇을 입어도 멋있어 보였다. 경호원 일을 그만둔 지 몇 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자세가 올곧았다. 손을 느리게 움직이는 걸 보아하니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탁은 웃음을 한껏 머금은 채 천천히 아빠에게 다가갔다. 김산은 웅덩이가 산산조각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탁을 본 김산의 무감한 얼굴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이내 펴졌다. 피우던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비벼 끈 김산은 벤치에 털썩 앉았다. 밤새 시달린 허리와 엉덩이가 아픈지 앉을 때 김산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김산의 창백한 얼굴을 눈여겨보던 이탁은 손을 내밀어 그의 뺨을 감쌌다. 김산은 강아지처럼 가만히 오목한 부분에 뺨을 댄 채, 눈을 순박한 강아지처럼 깜박거렸다. 꿈속의 한 장면 같이 아름다웠다.

순간 그 얼굴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이탁은 쓰고 있던 우산으로 경계를 나누었다. 검은 우산 밖은 자신들을 모르는 사람들의 세상이었고, 우산 안은 아빠와 자신만의 은밀한 세상이었다. 김산은 허리를 숙이며 나른하게 다가오는 이탁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입술을 벌렸다. 이탁의 부드러운 입술이 맞닿더니 익숙한 자리를 찬 듯, 혀가 안을 더듬거리며 들어왔다. 주인을 닮아 능글맞은 혀가 들어와 입천장을 희롱했다. 은근히 안을 데우는 혀 놀림에 김산은 손끝을 움찔거렸다. 갈 곳이 없는 손이 허공을 맴돌자 이탁이 손목을 잡아 자신의 목에 감게 했다. 목에 닿은 김산의 손바닥이 보드랍고 따뜻했다. 유담의 손바닥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균적인 남자치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으응….”

살짝 벌어진 틈새 사이로 김산의 신음이 이슬처럼 굴러떨어졌다. 이탁은 그 신음이 빗물과 함께 자연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쉬워 고개를 바짝 밀착했다. 코끝에 김산의 피부가 닿았다. 김산의 체취가 났다. 맡아도 맡아도, 지겹지 않은 체취에 이탁의 눈빛이 약에 취한 사람처럼 몽롱해졌다. 고개를 우로 틀어 김산의 입안을 잔뜩 맛본 이탁이 서서히 얼굴을 떼어냈다. 그새 부어오른 입술이 새빨갰다. 잘 익은 자두 같았다.

“…한 번 더 해도 돼?”

이탁이 아랫입술을 핥으며, 애써 다듬은 목소리로 물었다. 허리를 쭉 펴고 앉아 아들의 입술과 혀를 받아주던 김산은 주변을 보았다.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이탁의 덩치가 좋아, 자신의 상체를 적당히 가릴 정도라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할 거 같았다. 주차장 쪽은 이탁이 우산으로 가린 터라 걱정이 없었다. 김산은 아들의 목에 적극적으로 팔을 감고, 당겼다. 이탁이 순순히 끌려갔다. 입술을 벌렸다. 김산의 입술이 꽃잎이 닿는 것처럼 포근하게 자신을 감쌌다. 입술과 입술이 서로 빨아들이는, 춥 하는 소리가 빗소리에 파묻혀 금세 사라졌다. 이탁은 자신의 목을 감쌌던 손이 내려와 뺨을 매만지는 걸 느끼고 눈을 가늘게 떴다. 가끔씩, 아빠를 너무 한계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면 김산은 무의식중으로 이렇게 만져주곤 했다. 마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예전처럼. 혀가 얽혀 들어가고, 타액을 꿀처럼 빨아들였다. 올바르던 김산의 고개가 아들의 힘에 밀리는 듯, 뒤로 쳐졌다. 그것을 이탁이 커다란 손으로 받쳐 자신 쪽으로 확 당겼다. 아들이 강압적인 힘에 잠시 놀라 눈을 크게 뜨던 김산은 곧 고분고분하게 아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바다같이 넓은 어깨는 아늑한 느낌이 있어, 잡기에 편했다. 자신의 어깨를 꽉 움켜잡는 손길에 이탁은 입을 맞추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꼭 애교 많은 고양이를 안은 기분이었다.

농밀한 입맞춤을 끝내자 김산이 눈을 느리게 떴다, 감았다. 송아지 눈 같은 맑은 검은 눈이 어룽거렸다. 그 안에 자신이 보였다. 아빠의 눈망울에 자신만이 들어찬다는 건,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탁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김산의 부은 아랫입술을 엄지로 만져주었다.

“밖에 나와서 혼자 뭐해.”

“…답답해서.”

김산이 이탁을 물끄러미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탁은 우산을 다시 어깨에 걸쳤다. 비에 젖은 등이 축축했다. 키스하느라 등과 뒷머리가 젖는 것도 몰랐다. 쓰게 웃은 이탁은 아빠의 앞머리를 만졌다. 최근에 자른 앞머리가 손가락에 잡히지 않고 부스스 흩어졌다.

“어디 갈 때 연락하고 가랬잖아.”

부드러운 다그침에 김산이 냉소적인 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마치 깐깐한 스승을 앞에 둔 제자가 된 기분에 이탁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빠를 멋대로 무능력자로 만들어 놓은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

김산은 몇 달 전에야 자신이 아들들의 서명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아들 둘은 그것을 예방책이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김산에게 말하지 않았다. 또 굳이 말해서 몸이 회복된 김산에게 얻어맞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반년 만에 몸이 회복된 김산은 화가 나면 주먹부터 날렸기 때문이다. 이탁과 이삭이 약한 편은 아니었으나, 전문적으로 몸을 쓴 김산을 이기기엔 조금 힘에 부쳤다. 그날도 이기기 힘들었지만, 사실 다른 이유로 아이들은 얌전히 맞아주었다.

그날, 이탁과 이삭은 출근을 하고 김산과 유담은 집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던 김산은 인터폰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택배였다. 김산은 아이를 조심스럽게 매트에 내려놓고, 택배를 받으러 걸어갔다. 그 사이, 유담은 김산의 휴대전화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아이의 앙증맞은 손이 김산의 휴대전화를 잡고, 엉성하고 빠른 동작으로 던져버렸다.

김산이 돌아왔을 땐, 방긋 웃는 아이와 저 먼 곳에 부서진 휴대전화가 있었다. 김산은 쓰게 웃으며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이가 ‘아빠!’하며 덥석 안겼다. 김산은 두 아이를 키워본 아빠답게, 아이 등을 부드럽게 토닥거리며 중얼거렸다.

‘휴대전화를 두고 간 내 잘못이지…. 어린 네가 뭘 안다고.’

김산은 이삭과 이탁처럼 눈을 곱게 접고, 배시시 웃는 얼굴을 보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가끔 그는 유담을 보며 혼란을 느꼈다.

정말 유담에게 모든 것을 숨기고, 자신의 딸로 키우는 게 맞을까. 혹여나 아이가 미래에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 알고 충격을 받을까 봐, 그것이 걱정이었다. 누가 보아도 정상적인 가족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빠.’

유담이 김산을 부르며 스스럼없이 안겼다. 아이를 가만히 안고 정면만 무표정하게 응시하던 김산은, 망가진 휴대전화를 내던졌다.

‘아빠랑 산책가자.’

통장에 돈이 얼마 있는지 대충 세어보던 김산은 아이 옷장을 뒤적거렸다.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진 유담은 자신이 고르겠다며 품에서 앙탈이었다. 김산은 귀엽다는 듯 아이를 보며 웃었다. 아들과 다른 느낌이었다.

‘이거 입을래?’

아이가 고른 건, 영 안 예뻤다. 아마 그냥 자기 마음대로 고른 듯했다. 김산은 아이를 한 팔로 능숙하게 안은 채, 진지한 얼굴로 외출복을 골랐다. 이런 건 이삭이 참 잘하는데. 무심히 그런 생각을 이어가던 김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김산이 고른 것은 곰돌이가 달린 연분홍색 원피스였다. 활짝 웃는 곰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김산은 아이를 내려놓았다. 실내복을 벗기고 천천히 외출복을 입혔다. 마지막으로 부스스한 머리를 빗으로 곱게 빗긴 후,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씌어주었다. 아이를 안아 거울을 보여주자 아이가 김산의 어깨에 매달려 고개를 들 생각을 안 했다. 김산은 딸의 귀여운 애교에 등을 토닥여주었다. 유모차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채우자, 아이가 손을 꼬물거리며 김산을 잡았다. 김산은 다정하게 웃어주며 아이 뺨을 만져주었다.

‘가자.’

여느 날과 다름없는 산책이었다. 유담과 가볍게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아이를 유모차에서 내려주자, 아이가 신이 나서 뛰다가 넘어졌다. 으앙, 하고 울지 않고 벌떡 일어난 유담이 모래를 어설픈 손길로 털어냈다. 그리곤 의연한 얼굴로 김산을 보며 칭찬해달라는 듯, 눈을 반짝였다. 김산은 무릎을 굽히고 아이를 보고서 웃었다.

‘넌 제발 예쁘게 컸으면 좋겠어, 아가야.’

김산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 건지, 아이가 해맑게 웃었다. 김산은 씁쓸하게 웃으며 모래가 묻은 아이 콧등을 쓸어주며 중얼거렸다.

‘너희 오빠가… 좀 그래. 내가 낳고, 키웠는데 많이 이상한 거 같아.’

김산은 더 놀고 싶어 하는 유담을 안아 유모차에 태웠다. 손에 묻은 먼지를 닦아주고서, 그는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잡았다.

‘아빠는 네가 정말 잘 크길 바란다. 네 오빠나… 그 아빠들의 아빠들처럼은 안 컸으면 해.’

이 일의 근원인 최희서와, 그것을 답습해 태어난 이삭과 이탁을 떠올린 김산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다 그놈의 얼굴을 보고 반한 탓이지. 한숨을 푹 내쉰 김산은 몸을 일으켰다.

하긴, 근데 최희서 얼굴이 오죽 예뻤어야지. 다른 건 인정 안 해도 최희서 얼굴과 몸매는 인정했다. 성격만 괜찮았으면 최희서도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었을 텐데. 이게 다 가정교육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김산은 걸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그럼 이삭과 이탁은 뭐 때문에 저렇게 되었을까. 최희서의 유전자가 너무 막강해서? 아니면 자신이 너무 유하게 키워서? 아님 둘 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김산은 생각을 포기하고 서둘러 휴대전화를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휴대전화 기종을 아무거나 고르고,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는데 직원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김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세 번 정도 해보던 직원은 떨떠름한 얼굴이 되어 김산을 보더니, 강렬한 한마디를 남겼다.

‘보호자님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보호자…?’

‘네. 이렇게 뜨거든요.’

직원이 태블릿PC를 보여주었다. 화면을 확인한 김산은 속에서 열이 끓어오르고, 머리가 식어가는 걸 한순간에 경험했다. 유모차 손잡이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개새끼들이. 온갖 욕이 입에서 맴돌았으나 아이 앞이라 겨우 참았다. 김산은 경직된 얼굴로 어색한 웃음을 띄웠다. 직원은 김산의 얼굴에 드리운 살기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대로 가다간 사람 하나 죽겠구나. 직원은 직감했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나설 수 없어 우물쭈물거리며 말했다.

‘그, 오류가 있는 거일 수도 있으니… 한 번 확인해보시고 다시 매장에 방문해주시겠어요?’

‘네.’

짧게 대답한 김산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류일 리 없다. 그 아이들이라면, 그렇게 하고도 남았다. 자신의 다리에 기대어 앉아 있는 딸을 물끄러미 보던 김산은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으로 향했다. 친분이 있는 아주머니는 하루만 아이를 봐달라는 김산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와 친분이 있는 유담은 낯가리는 거 없이 아주머니에게 덥석 안겼다.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에 김산은 뺨에 뽀뽀해주고 주먹을 움켜쥐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이들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띠익, 하고 버튼을 빠르게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파에 앉아 허공만 노려보던 김산은 벌떡 일어나 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녀왔습… 어?’

먼저 온 것은 이탁이었다. 김산은 이탁의 정장 재킷을 틀어잡고, 안으로 끌어당겼다. 문이 닫혔다.

‘키스해주려고?’

이탁이 능글맞게 웃으며 김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김산은 아이 얼굴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탁이 손등으로 김산의 뺨을 쓸어 만지며 나른하게 속삭였다.

‘여기서 섹스할까?’

입술을 만지도록 허락한 김산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명치를 세게 때렸다. 난데없는 주먹질에 이탁이 소리도 못 내고 바들바들 떨며 허리를 숙였다. 아이가 힘이 빠진 틈을 타, 김산은 양손으로 멱살을 움켜잡고 안으로 끌어당겨 바닥에 내던졌다. 육중한 몸이 바닥에 떨어지며 쿵, 소리가 났다.

‘왜, 왜 이래!’

명치를 얻어맞아, 이탁이 헐떡거리며 김산에게 외쳤다. 김산은 대답 없이 이탁의 머리를 발로 내리눌렀다. 바닥에 얼굴이 눌린 이탁이 바닥을 손으로 내리쳤다.

‘아, 아빠.’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애절한 눈과 목소리를 무시하며 김산이 냉정하게 말했다.

‘닥쳐, 개새끼야. 넌 좀 맞아야 돼.’

처음으로 아이에게 저급한 욕을 한 김산은 이탁을 신나게 두들겨 팼다. 물론 돌아온 이삭도 이탁처럼 흠씬 두들겨 맞고 피떡이 되었다. 아이들이 굶겨서 말랐던 몸은 출산 후, 아이들이 밥을 하루 네 끼를 갖다 바쳐서 빠르게 회복되었다. 아이들 덕분에 김산은 마음이 후련해질 때까지 아이들을 팰 수 있었다. 지은 죄가 많은 애들도 군소리 없이 맞아주었다.

‘아아, 아파라….’

다 맞은 이삭이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리자 이삭이 손으로 코를 막았다. 그 모습을 하찮게 지켜보던 김산이 휴지를 내밀었다. 휴지를 받아들고 코를 틀어막은 이삭이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어 앉아 김산을 올려다보았다. 이삭이 피범벅이 된 얼굴로 히죽 웃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김산은 소름이 끼쳐 팔뚝을 쓸어 만졌다. 이삭은 얻어맞은 팔이 아팠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재킷과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일어났다. 왁스로 고정했던 머리가 흐트러져 얼굴을 덮고 있었다. 앞머리를 쓸어 올린 이삭이 더운 숨을 내뱉으며 김산에게 다가와, 팔을 꽉 잡았다.

‘화 풀리셨어요? 더 맞아줄까요? 어떻게 하실래요?’

이탁도 벽에 기대어 앉아 김산을 투명한 눈으로 보았다. 금가루라도 녹여 만든 듯,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엄청 때린 거 같았으나, 기가 죽기는커녕 아이들의 음심은 더욱 커진 거 같았다.

정말 제대로 미친놈들이었다. 김산은 소름이 돋아 뒤로 도망갔으나, 이삭에게 금방 잡혔다. 이삭은 피가 흐르는 얼굴로 소름 끼치게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나 죽이고 싶으면 죽여도 되는데. 죽일래요? 아니면 내가 직접 죽는 거 보여줄까요?’

이삭을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없었다. 이삭은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해도, 자신은 이삭에게 그럴 수 없었다. 이삭은 배로 품고 있던 자식이었다. 아들의 자해 현장이 트라우마처럼 머리에 남은 김산은 몸을 살짝 떨었다. 그는 긴장감 탓에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날 그렇게 만든 거야.’

‘아빠가 도망갈 거 같으니까.’

앉아 있던 이탁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탁은 상의를 벗어 피를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아빠 유담이 없으면 도망갈 거잖아. 유담이 커도 도망갈 거 같고. 그래서 도망 못 가게 한 건데, 왜?’

이탁을 뒤이어 이삭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느릿하고, 음험하게 말을 이었다.

‘뭐가 잘못됐어요, 아빠? 아빠 평생 일하지 말고 백수로 살라고 그렇게 해준 건데, 뭐가 잘못된 거예요?’

자신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듯, 자신을 몰아가는 두 아들의 말에 김산은 머리가 어지러워 비틀거렸다. 김산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추운 바다에 들어갔다 막 나온 사람처럼 몸이 떨리고 있었다. 이삭이 피범벅이 된 몸으로 안아주었다. 아플 법한데도 이삭은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의연하게 그를 안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빠 걱정해서 그렇게 해준 건데, 기분 나쁘셨어요?’

‘걱정?’

이삭을 거칠게 밀어내며 김산이 되물었다. 그의 눈빛이 바닥까지 깊어져 있었다.

‘사람 걱정해서 아예 그렇게 만들어?’

자신의 입으로 그 단어를 내뱉을 수 없어 김산이 이삭을 노려보았다.

‘우리가 아빠 보호자 된 게 그렇게 기분 나쁜 일이에요? 우리는 아빠가 우리 보호자였을 때 기분 별로 안 나빴어요.’

이삭이 김산의 손목을 여유롭게 잡았다. 밟혔던 손등이 아팠는지 이삭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손목을 잡아, 김산을 이끌었다. 이삭이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입술을 움직였다.

‘아빠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우리가 다 해줄 테니까. 그냥 이대로 살아요.’

‘…진짜 너희 별걸 다 하는구나.’

김산이 질렸다는 듯, 체념한 어투로 중얼거리자 이탁이 다가왔다. 까진 손등이 자신의 어깨에 내려앉더니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솥뚜껑만 한 듬직한 손이 세 아이 머물고, 태어났던 배를 감쌌다.

‘아빠를 위해서라면 다 하지.’

‘그게 날 위한 게 아니란 걸… 알잖아.’

이삭이 김산의 턱을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가족을 위한 거잖아요.’

피가 굳은 입술이 다가와 자신의 입술을 머금었다. 비릿한 맛이 났다. 자신이 때려서 아이가 다친 것이었다. 자제심을 잃고 아이를 최희서처럼 두들겨 팼다. 통쾌함 뒤로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잘못한 건가. 어차피 포기하고 같이 살기로 한 거, 참아줄 걸 그랬나. 왜 아이가 저렇게 될 때까지 때린 걸까. 아이가 아프지는 않을까.

허리를 감아오는 뱀 같은 팔에 김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것을 이삭이 보란 듯이 받아갔다. 얻어맞아 퉁퉁 부었어도 아름다운 얼굴을 멍하니 보던 김산은 눈을 감아버렸다.

이제 와서 도망을 생각해봤자, 이미…….

김산의 손이 이삭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이삭의 키스가 더욱 깊어졌다. 영혼까지 삼킬 것 같은, 키스였다.

고개를 숙이고 그날을 떠올리던 김산은 아들의 듬직한 발을 보았다. 발이 빗물에 젖어 엉망이었다. 참 예쁜 발이었다. 막 태어났을 때는 너무 작아서 세게 잡으면 으스러질 것 같은 발이었다. 그 발에 직접 발찌를 채워주고, 여린 발등에 뽀뽀를 해주었다.

너무 작고 사랑스러워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들이었다.

이제는 괜찮다고 느꼈는데, 새삼스럽게 올라오는 울적함에 김산은 고개를 들어 아들을 보았다.

“오늘은 정말 집에 가기 싫어.”

“왜?”

“답답하니까. 너희들은 좋은 직장 얻어서 매일 출근하지만, 아빠는 집에 있잖아.”

이탁은 김산 옆에 나란히 앉았다. 팔을 뻗어 아빠 상체를 끌어안은 이탁이 다정하게 말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라니까. 우리가 집안일 더 열심히 할게. 유담은 어린이집 보내면 되니까, 걱정 안 해도 되고.”

아이들이 장담했던 대로, 아이들은 퇴근 전과 퇴근 후에 육아에 전념했다. 살림도 두 아이가 각자 나눠서 했다. 김산이 하는 건, 아이들이 없을 동안 유담을 봐주는 정도였다. 가벼운 설거지나 청소도 가끔 김산이 했다. 그 외는 정말 한적한 삶이었다. 너무 지루해서 어딘가로 가고 싶은데, 딱히 할 것도 없어서 방에 누워 아이와 뒹굴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아이들은 김산에게 하고 싶은 일은 뭐든 해도 된다고 했다. 그래 봤자 그것도 아이들이 허락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딱히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탁이 노래하듯 가볍게 말하며 김산의 팔뚝을 주물렀다. 꼭 희롱당하는 기분이라 김산은 꾸물거리며 이탁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탁의 손이 갈고리라도 되는 것처럼, 김산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이탁은 자신보다 한 뼘 정도 작은 아빠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빠, 우리끼리 데이트 갔다 올까?”

“데이트…?”

김산이 약간 멍한 얼굴로 묻자, 이탁이 예쁘게 웃으며 김산의 뺨을 쓰다듬었다. 엄지로 김산의 입술을 벌린 이탁이 은밀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형이랑 유담이 두고, 우리끼리 노는 거야. 어릴 때처럼. 가끔 그랬잖아. 기억 안 나, 아빠?”

기대로 눈이 넘실거렸다. 이삭이 교통사고를 당해 아팠을 때, 심심해하는 이탁을 데리고 근처 동물원이나 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리 긴 소풍은 아니었다. 근처에서 도시락을 사 들고 공원에 갔다.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도시락을 나눠 먹고, 아이를 데리고 구경시켜준 게 고작이었다.

그걸 기억하고 이탁은 행복에 젖어 김산을 보며 말했다.

“제법 좋았잖아, 우리.”

요염하게 눈웃음을 살살치며 입술을 만지는 게 영락없는 여자 여럿 울린 남자였다. 그러나 알면서 속아 넘어가 줄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사악한 속내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선한 웃음에 김산은 그만 넘어가 버렸다.

항상 이게 문제였다.

*

장우산을 썼는데도 빗줄기가 워낙 강해 어깨와 발끝이 젖었다. 기분 나쁜 꿉꿉함에 김산이 질색했다. 이탁은 싫은 기색을 팍팍 내는 김산을 보며 귀엽다는 듯 웃었다. 이탁은 글로브박스를 열어 수건을 꺼냈다. 장마를 대비해 들고 다니는 작은 수건이었다. 수건으로 대충 얼굴과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차 시트에 기대 비가 채찍처럼 쏟아지는 밖을 보았다. 이대로 가다간 데이트가 아니라 차에서 그저 시간을 보내게 생겼다.

“어디 가려고?”

김산이 무감한 얼굴로 물었다. 핸들에 손을 올리고, 그 위에 턱을 기대고 귀엽게 밖을 보던 이탁이 씩 웃었다.

“영화 보러 갈까?”

그러고 보니 언제 영화를 봤더라. 고민하던 김산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영화관하면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게 있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밀착된 좌석. 택시 안에서도 대범하게 자신의 성기를 만지던 애였다. 전적이 있는 이탁을 김산이 노려보며 말했다.

“거기선 하지 마.”

김산의 서슬 퍼런 눈빛에도 이탁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봐. 나도 나이 먹어서 그런 짓 안 해, 아빠.”

양심을 어디다가 팔아먹었을까. 한탄하며 바라보다 김산은 답을 찾았다. 애초에 애들은 양심이 없었다. 어렸을 땐 그래도 착했던 거 같은데…. 예쁘장하고 잘 생긴 아들의 얼굴을 보며 생각에 잠겼던 김산이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땐 착했잖아. 근데 왜 이렇게 큰 거야.”

“착했다고?”

이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더니, 광고 속 아이돌처럼 상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척이지. 몰랐구나? 순진하네, 우리 아빠.”

한숨이 더 커졌다. 처음부터 개망나니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김산은 의미 없는 고민에 부질없는 답을 내놓았다.

“학교에서도 이렇게 생활한 거야?”

“에이, 무슨 소리야. 우리가 얼마나 착하게 지냈는데. 아빠한테 예쁨받으려고.”

이탁이 김산의 뺨을 감쌌다. 갑작스레 아이의 눈빛이 진중해져 김산은 덜컥 겁을 먹었다. 설마 여기서 하려는 건 아닐까. 김산이 아이의 손목을 안전바 잡듯, 애타게 잡았다.

아이의 눈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장미꽃이 만개해 독한 향을 내뿜는 것처럼, 짙은 미소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강아지처럼 순한 듯 보이지만 아이의 미소는 치명적이었다.

“아빠 우리 계속 예뻐해 줘. 우리도 아빠만 사랑할 테니까.”

“난….”

처음부터 지금까지 너희만 사랑했어. 그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김산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아이의 눈이 그걸 원하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그 말을.

처음으로 자신을 범한 이후로, 듣지 못한 그 말을 말이다. 왠지 아이들이 원하는 마지막 말은 해주고 싶지 않아 김산은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이탁은 김산의 얼굴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줄곧 보았다. 아빠의 눈 끝이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아빠의 진심을 엿본 것 같았다. 이탁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더니, 이탁도 아빠를 따라 차 밖만 보았다. 사내답게 마디가 불거져 나온 손이 점점 빠르게 핸들을 쳤다. 이탁의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몇 분 동안 차를 때리는 빗소리만이 고요히 안을 적셨다.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하면, 아빠는 거절하겠지?”

이탁이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물음을 들었으나 김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내리떴다. 예전보다 몸이 회복되긴 했으나, 확실히 마른 몸이었다. 경호원 시절 일했을 때보다 근육도 빠져 몸이 전체적으로 가늘어졌다.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핀 김산은 입술을 달싹거렸다.

“너희가 바라는 사랑이 그 사랑이 아니잖아.”

김산의 차분한 대답에 이탁이 고개를 돌렸다. 턱을 괸 아이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웠다. 반은 어둠에, 반은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대조적인 얼굴에 김산은 가슴에 맺혔던 한숨을 터트렸다.

“너희가 바라는 건…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이탁의 손이 김산의 어깨에 나비처럼 살포시 얹어졌다가, 강하게 틀어잡아 자신 쪽으로 당겼다. 뒷목을 잡아 이탁은 입을 맞출 것처럼,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그러더니 아이가 매혹적인 얼굴로 느슨하게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아버지로서 사랑해서 우리를 못 버리잖아. 애인으로 사랑했다면, 진작 버렸겠지. 그러면 계속 아버지로서 사랑해줄래, 아빠?”

아이가 짓궂게 웃더니, 엄지로 김산의 눈가를 쓸어 만졌다. 마치 그곳에 한이 서린 눈물이 있는 것처럼, 아주 애절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김산은 가슴이 저릿해져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강제로 김산의 턱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뭐가 됐든 서로 사랑한다는 거에 의미를 두자고. 가족이든, 애인이든… 사랑하면 된 거야.”

아이의 입술이 예고했던 대로 다가와 김산의 숨을 앗아갔다. 조수석에서 맞이한 아이의 입술은 이제 거칠지 않았다. 충분히 농익었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어른스럽고, 예의가 있었다. 입술을 다정하게 벌려 혀를 밀어 넣고, 입안을 애무해주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래에 열이 몰렸다. 위험한 징조였다. 이대로 차에서 아들에게 범해질 것 같았다. 아들의 넓은 어깨를 잡은 손끝이 떨렸다. 기대감으로 인한 떨림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김산은 헐떡거리며 고개를 틀었다. 아이가 끝까지 쫓아왔다.

“무서워하지 마.”

이탁이, 장마가 만든 어둠 속에서 입을 움직여 김산을 옭아맸다.

“그냥 이리로 와서 안기면 되는 거야. 쉽잖아.”

이탁이 김산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목소리로 그를 자극했다. 김산은 입술을 악물었으나 이미 그의 눈은 아들에게 함락당했다. 그의 정신과 영혼은 이삭과 이탁 한정으로 너무 약했다. 점토처럼, 손으로 뭉개면 완전히 뭉개져 버릴 것 같았다.

“아빠도 이제 우리한테 자지가 반응하잖아. 그대로 안기라고. 다 받아줄 테니까.”

김산의 몸이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이탁이 의도가 분명한 미소를 지으며 시트를 뒤로 확 젖히고 누웠다. 일부러 카섹스를 고려해 산 차에서 김산이 느릿하게 움직여 아들 위에 올라탔다. 어느새 이탁은 김산의 둥근 엉덩이를 꽉 틀어잡으며 젖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탁의 목소리엔 성적 흥분감이 담겨있었다. 조금만 톡, 건드리면 흘러넘칠 정도였다.

“차 안도 괜찮겠어? 예전엔 싫다고 했잖아.”

김산의 눈이 어둠에 완전히 묻혔다. 어둠을 오롯이 매달고 있는 김산의 하얀 몸은 헤롯을 유혹하는 살로메 같았다. 베일을 여러 겹 두른 것처럼, 그는 겹겹이 쌓인 어둠을 몸으로 감싸 안고 야릇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살로메처럼 춤을 추는 것도 아닌데도, 그의 몸은 어둠 속에서 지나칠 정도로 음란했다. 이탁의 손이 나무를 오르는 뱀처럼 김산의 몸을 타고 올라와 등을 안았다.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집착이 뒤섞인 손 아래에서 김산은 나지막이 숨을 터트리며 아들의 가슴에 완전히 누웠다. 김산의 하얀 얼굴이 어둠에 녹아내려 요사스럽게 빛났다. 그곳에 이성적인 아버지는 없었다. 아들의 자지에 반응하고, 원하는 음란한 아버지가 있을 뿐이었다.

“상관없잖아, 그딴 건.”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탁이 달려들었다. 김산의 목을 감싼 이탁의 두툼한 팔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데도 계속 김산을 아래로 끌어당겼다. 상체를 틀어잡은 억세고 강한 팔에 김산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이탁이 누워있어도 답답한 건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와서 집으로 들어가, 아들과 섹스를 할 수 없었다. 그곳엔 아직 지켜야 할 어린아이가 있었다. 지옥 불에 같이 떨어져야 하는 건, 두 아들과 자신뿐이었다.

김산은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아들의 얼굴을 감상했다. 지독하게 예쁜 얼굴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외모에 김산은 쓰게 웃었다. 그는 자신의 바지를 벗기는 아들의 손을 보았다. 아들의 하얀 손이, 진주 가루로 만든 듯 고운 손이 바지를 벗기고 속옷까지 내려 발기한 성기를 단숨에 잡았다. 숨을 흡, 하고 들이마셨다.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창백하던 얼굴에 단풍이 든 것처럼 붉어지자 이탁이 피식 웃었다.

“하여간… 아빠, 콘돔 좀 뜯어볼래?”

뒷말을 삼킨 이탁이 몸을 움직여 콘솔박스를 열었다. 콘솔박스에 콘돔과 젤이 한가득이었다. 이탁은 손에 잡히는 대로 콘돔을 잡았다. 애초에 섹스를 위해 산 차였다. 김산은 한숨을 내쉬며 아들이 입에 갖다 대는 콘돔을 입에 물었다. 눈가가 발그레해진 미남이 입술에 콘돔 끝부분만 물고 있는 게 너무 야해서, 이탁의 성기가 벌떡 섰다.

“아, 존나 섹시해. 아빠, 콘돔 계속 물고 있어 봐. 꼴려.”

김산은 손으로 콘돔을 잡아 내렸다.

“불편해.”

“한 번 물어봐. 콘돔 물고 있는 거 꼴린단 말이야. 우리, 색다른 연애 한다고 생각하고 해보자. 응?”

애교 섞인 아들의 부탁에 김산이 한숨을 내쉬며 콘돔을 물었다. 입술에 따끔하게 닿는 이 재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김산이 얌전히 콘돔을 물고 빤히 내려다보자, 이탁은 슬그머니 웃으며 두 번째 콘돔과 젤을 꺼냈다. 이탁은 김산 손가락에 젤을 듬뿍 짰다. 김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이 어리숙해 보여 이탁이 소리 내서 웃었다. 이탁은 누운 채, 김산의 얼굴을 매만지며 명령했다.

“넣어봐.”

콘돔을 물고 있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말 별의별 걸 다 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산은 콘돔을 문 채, 슬금슬금 손을 움직여 메마른 구멍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아들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집에서 유담이 몰래 섹스한 덕분에 구멍이 적당히 풀려있었다. 김산은 인상을 쓰며 손가락을 하나 넣었다. 아프지 않은데 불쾌했다. 안에서 기분 나쁘게 자극하는 이물감에 눈을 감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두 번째 손가락을 넣으려는데, 구멍 안으로 불쑥 무언가가 침입하는 게 느껴졌다. 김산이 눈을 크게 떴다. 흐으, 하고 앓는 소리가 나오며 콘돔이 아래로 떨어지려 하자 이탁이 잡아 억지로 물게 했다. 이탁의 손가락이 구멍에 들어왔다. 김산의 손가락과 이탁의 손가락이 한 구멍에서 맞물려 질척거리며 움직였다. 김산의 한 손이 이탁의 가슴팍을 세게 붙잡았다. 물고 있는 콘돔이 바람을 맞은 이파리처럼 흔들렸다. 김산의 구멍에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 넣자, 이탁의 가슴팍을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옷깃과 함께 잡힌 살이 아플 정도였다. 이탁이 웃으며 김산의 손목을 잡아 달랬다.

“자지 두 개 넣는 거랑 또 다르다.”

“흐으, 으읏….”

이탁의 길고 두꺼운 손가락 두 개와 김산의 손가락 하나가 구멍에 딱 만났다. 아들의 손가락을 자신의 구멍에서 만날 줄이야. 손가락이 제멋대로 그물에 얽힌 것처럼 맞물렸다. 아들의 손가락에 검지가 잡혀 들었다. 김산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콘돔을 물고 있는 입술 부분도 힘이 들어가 붉어졌다.

“응, 으응….”

김산이 콘돔을 무느라 말을 못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 사이, 이탁이 손가락을 하나 더 넣으려고 입구에서 맴돌았다. 김산의 눈이 부릅떠지며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 네 개는 무리였다. 지금 풀고 있는 와중에 무리하게 손가락 네 개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김산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분명히 에어컨을 틀어놓았는데, 이상하게 안이 더웠다.

“아빠가 넣어.”

이탁이 명령했다. 김산은 콘돔을 물고서 멍청하게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이탁의 손가락이 내부를 비틀었다. 아무리 젤을 발랐다 해도, 덜 풀린 내부를 휘젓는 손가락 때문에 허리와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 덜덜 떨렸다. 입구가 벌어지는 고통 때문인지, 내부에도 힘이 들어가 손가락 세 개를 물고 놔주지 않았다. 입구가 조임에 따라 오므라들었다가, 펴졌다. 이탁은 손가락에 달라붙는 예민한 점막을 즐기며 친절하게 물었다.

“넣고 풀라니까. 내가 넣을까? 아님 아빠가 넣을래?”

“읏, 응…흐응….”

콘돔을 물고 고개를 젓자, 콘돔이 따라서 움직였다. 김산은 단단한 가슴 근육을 손바닥으로 지탱하고, 허리를 좀 더 띄웠다. 점막이 손가락을 따라 딸려가는 게 느껴졌다. 이탁은 열이 고인 눈을 움직여 김산의 얼굴과 목을 보았다. 날렵하고 냉기가 도는 눈매가 야하게 일그러져 있다. 눈가는 일부러 붉은 물감을 탁하게 흘린 듯, 붉어져 있었다. 눈꼬리 끝은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 금방이라도 울 거 같았다.

“자지 두 개도 잘 먹으면서 이건 왜 못 먹어.”

이탁의 저질스러운 발언에 김산이 아들을 노려보았다. 그 움직임에 결국 고였던 눈물이 흘러내려 뺨에 한 줄기 흔적을 남겼다. 그 모습을 보던 이탁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하나를 슬그머니 구멍에 갖다 대었다. 아직 미세하게 남아있던 주름이 손가락의 침입에 펴지기 시작했다. 입구를 벌리는 아득한 통증에 김산의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콘돔이 흐느적거렸다.

“흐읏!”

콘돔을 마치 재갈이라도 되는 것처럼 앙다문 게 예뻤다. 오므라든 입술과 신음을 참느라 힘줄이 돋은 날렵한 목, 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팍. 모든 것이 자신으로 인한 움직임이었다.

오랜만에 손가락으로 진득하게 맛보는 내부는 뜨거웠다. 얇은 점막으로 된 내벽을 살짝 긁기만 해도 김산의 몸이 전율하듯 벌벌 떨렸다.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김산의 손가락이 방해물처럼 걸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이탁은 아빠의 손가락을 잡아당겨 같이 내벽을 벌리게 했다. 찐득하게 손가락에 붙어있던 연약하고 부드러운 점막이 벌어지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손가락 세 개를 천천히 벌리자 점막이 따라 눌렸다. 김산이 고개를 떨며 숙였다. 그 와중에도 콘돔은 착실하게 물고 있었다.

자신의 구멍인데, 정작 그 안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건 아들 손가락이었다. 김산의 손가락이 소심하게 두 번째 마디까지만 넣는다면, 이탁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아빠를 올려다보며 손가락을 뿌리까지 박아 넣었다. 평균 남자보다 월등히 길고 두꺼운 손가락이 안에 푸욱, 하고 박히는 느낌에 김산의 호흡이 달아올랐다. 김산의 손가락이 멈춰있자, 아들의 손가락이 멈추지 말라는 듯 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 네 개가 박혀있는 붉은 구멍이 차가운 공기를 맞자 오므라들었다.

“손가락도 맛있게 먹네. 하긴, 아들 건 다 좋지?”

손가락으로 내부를 푹, 푹 헤집고 마음대로 벌리는 통에 몸을 파들파들 떨던 김산은 음란한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손을 느리게 움직여 아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아들은 김산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머리 옆에 두었다. 지탱할 곳이 멀어진 김산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그렇게 박아댔으니까 이쯤에서 그만할까.”

“흐읏!”

냉정하게 중얼거린 이탁이 손가락을 확 빼내었다. 손가락에 붙어있던 점막이 한순간에 확 떨어지는 느낌에 내벽이 홧홧해졌다. 손가락만으로도 이런데, 아들의 커다란 성기가 들어와 쑤실 때는 얼마나 뜨거울지. 김산은 몽롱한 눈을 깜박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반동에 콘돔이 흔들거렸다.

이탁은 자신이 챙긴 콘돔을 슬쩍 보다가 던져버렸다. 그는 김산이 물고 있는 콘돔을 잡았다. 김산의 입이 벌어졌다. 김산의 입안에서 요염하게 꿈틀거리는 붉은 혀가 보였다. 그것을 마음껏 빨고, 맛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탁이 콘돔을 내밀었다.

“아빠가 벗겨주라. 누워서 하니까 힘드네.”

아래에서 달아오르기 시작했던 쾌감이, 뒤에서 밀려드는 에어컨 바람에 식혀지고 있었다. 김산은 차 천장에 뒤통수가 닿아 인상을 찡그렸다. 좁은 차 안이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걸 안 씌워주면 분명히 안에 엄청 쌀 것이다. 기껏 밖에 나왔는데 아들의 정액을 품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김산은 콘돔을 이로 뜯었다. 벌떡 일어서서 자기 과시를 하고 있는 성기를 보던 김산은 손을 멈칫했다.

정말 컸다. 너무 커서, 저걸 뒤로 두 개나 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김산은 생명의 위협이 느껴져 잠시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 배 속에 있을 때 좀 작게 만들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덜 고생이었을 텐데. 머리가 맛이 간 건지 별생각을 다 했다. 자지가 듬직하고 커서 자랑스럽긴 한데, 그것을 받는 게 자신이니 울적하고 슬펐다. 많이는 아니고, 여기서 조금만 더 작아도 자신이 덜 고생할 것 같았다.

심지어 이런 걸 가진 게 한 놈이 더 있었다. 그리고 이걸 두 개나 넣어야 했다. 김산은 속으로 한탄했다.

“왜 그래?”

시무룩해진 김산의 얼굴을 보던 이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김산은 고개를 저어 답을 대신했다. 김산은 느릿한 손길로 아들의 성기에 콘돔을 씌웠다. 걸리적거리는 바지 때문에 앞으로 가기가 불편했다. 이탁이 바지를 잡아당겨 벗겼다. 이제 입고 있는 것이라곤, 티셔츠 하나뿐이었다. 아파트 지상이라 다른 사람이 볼 가능성도 있었다. 김산의 얼굴이 수치심이 장막처럼 드리우자, 이탁이 그걸 보고 히죽 웃으며 김산의 턱을 잡아 돌렸다. 김산의 볼이 붉었다. 앞머리를 내려서 그런지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지금도 자신들과 나가면, 형이라고 생각하지 자신들의 아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탁은 고개를 숙인 탓에 흘러내린 결 좋은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밖에서 안 보여.”

“하지만….”

김산이 머뭇거렸다. 여태까지 구멍도 잘 벌리고, 콘돔도 잘 물고, 뒷구멍도 잘 풀었으면서 부끄럼을 타는 게 귀여웠다. 이탁은 김산의 얼굴을 달래듯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말했다.

“섹스하려고 산 차인데, 밖에서 보이겠어?”

이 차의 용도를 김산도 알고 있었다. 늘 차에서 섹스할 때마다 이랬다. 밖에서 섹스하는 자체가 약간의 트라우마처럼 남은 것 같았다.

하긴, 공원에서 한 섹스가 강하긴 했다. 무심히 그런 생각을 이어가던 이탁은 김산을 내버려 두고, 자신의 성기를 잡아 부은 구멍에 비볐다. 어젯밤, 혹사당한 구멍은 비비기만 해도 따끔거리고 쓰라렸다. 김산은 아들의 손목을 잡고 더듬더듬 말했다.

“세게 하면… 아!”

세게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려는 찰나, 아들이 두터운 귀두로 예민한 입구를 헤집었다. 입구 주름을 단번에 펴면서 들어오는 두터운 살덩어리에 김산은 숨을 들이마셨다. 아직 다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꽉 찬 듯 내부가 빠듯하고 아팠다. 김산이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다리를 벌렸으나, 차 문에 걸려 벌릴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었다. 음울한 어둠 속에서도 김산의 엉덩이 하얀 엉덩이로 쑤욱 들어가는 검붉은 성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평소보다 불편한 자세 때문에 오그라든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 김산도 아파서 몸에 힘을 주느라, 내벽이 성기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힘을 줘 뱉어내고 있었다. 이탁은 고개를 숙이고 헐떡거리는 김산을 물끄러미 보았다. 가지런한 눈썹이 일그러져 있고, 양 볼이 붉어서 마치 열에 들뜬 사람 같았다. 붉은 입술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 사이로 나오는 신음과 숨결은 사막처럼 뜨거웠고, 이날의 습기보다 축축했다. 이탁은 두 팔을 벌려 아빠의 상체를 안았다. 김산이 아이처럼 이탁에게 완전히 안겨, 아들의 어깨에 얼굴을 댔다.

“하으, 아, 아파….”

“아직 반도 안 넣었는데.”

이탁이 얄밉게 웃으며 말하자, 김산이 눈물 맺힌 눈으로 아들을 노려보며 사납게 말했다.

“그럼 빼.”

“구멍이 물고 안 놔주는데?”

“이 개새끼가….”

거친 욕설에 이탁이 능글맞게 웃으며 김산의 입술을 덥석 머금었다. 입에 혀를 넣어주고 살살 달래듯 애무했다. 혀로 김산이 가장 느끼는 부위를 쓸어주자 언제 욕을 했냐는 듯, 눈이 노골노골해졌다. 음험하고 매섭던 이탁의 눈도 키스를 통해 한결 부드러워졌다. 혀를 빼내고, 김산의 입술을 빨아주었다. 김산이 눈을 반쯤 감았다. 속눈썹이 나비 날개처럼 파르르 떨리더니, 맺혔던 눈물이 또르륵 굴러떨어졌다. 그걸 손으로 받아낸 이탁은 김산의 단단한 팔뚝을 잡아 올렸다. 덩달아 삽입이 깊어져 김산이 우는 소리를 내며 허벅지를 오므렸다. 이탁이 상체를 내리게 하자, 구멍이 서서히 벌어져 이탁의 성기를 받아먹었다. 콘돔을 꼈어도, 얇은 층에 점막이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김산이 눈을 감고 목을 젖혔다. 더운 숨이 입 밖으로 가녀린 음성과 함께 터져 나왔다.

“하, 너무… 너무… 커서… 으…!”

“커서?”

이탁이 짓궂게 웃으며 팔뚝을 잡고 일정한 속도로 김산의 상체를 내렸다. 김산의 상체가 파드득 움직였다. 김산이 버거웠는지, 양손을 아들의 가슴에 올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전보다 붉게 올라온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었다.

“아파… 깊고….”

“그래야 느끼잖아.”

직설적인 말에 김산이 입을 악물었다. 팔뚝을 잡던 손을 움직여 이번엔 김산의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엉덩이 살에 파묻혀 있던 구멍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어떻게 조이고 삼키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였다. 어젯밤 시달린 구멍은 자두보다 붉게 달아올라, 부어오른 구멍보다 더 붉은 자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적당히 풀린 입구와 다르게 내벽은 정도를 모르고 조였다. 귀두부터 뿌리 부근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조이는 구멍이 기특했다. 이탁은 손가락으로 입구를 슬슬 매만졌다. 자신과 연결된 얇은 피부가 느껴졌다. 부어올라서 조금만 만져도 아파 보였다.

“넣지 마…. 아파….”

하나 더 넣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지레 겁을 먹은 김산이 애처롭게 중얼거리며 허리를 내렸다. 그것이 아들의 난폭한 성욕을 달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귀두가 느끼는 부근까지 닿자 김산의 다리가 안으로 모아졌다. 느끼는 듯 입에서 신음이라고 할 수 없는, 가느다란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탁은 손가락을 여전히 떼지 않고, 주변을 만져보았다. 아버지의 엉덩이 안에 뿌리까지 들어갔다. 허리를 반듯하게 세워 박고 싶었지만, 천장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이탁은 입맛을 다시며 김산의 허리를 잡았다. 골반과 허리 부근을 꽉 잡자, 김산의 눈이 느리게 떠졌다.

말간 눈에 쾌락이 진동했다. 벌어진 입에선 쉴 새 없이 신음이 터져 나온다. 감히 아들의 자지를 맛보며 절정에 이르는 아버지라고 느낄 수 없을, 음란한 광경이었다.

이탁은 왼손으로 뾰족하게 선 유두를 잡아 비틀었다. 내부 조임이 강해졌다. 성기를 압박하는 조임에 이탁은 미간을 찌푸리며 웃었다.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아빠?”

김산이 인상을 찡그렸다. 안에 든 이탁의 성기가 너무 크고, 공간은 협소해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어제 아들 둘에게 시달린 터라 넣기만 해도 안이 쓰리고 홧홧했다. 젤을 바르고, 콘돔을 꼈어도 얇은 점막이 너무 약해져 있었다. 김산은 자신의 구멍을 계속 희롱하는 아들의 손을 잡아 내렸다.

“가만히 있어. 아프니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이탁은 피식 웃으며 눈물로 젖은 아빠의 뺨을 만져주었다. 이탁의 눈빛은 초여름의 햇살처럼 적당히 뜨겁고, 따스했다.

“유담이만 달래주지 말고, 나도 달래줘. 안에 열심히 싸줄 테니까.”

김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여 아들에게 키스했다. 이렇게라도 아들의 저질스러운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다. 김산이 혀를 내밀어 꽉 다물린 입술을 핥아주니, 이탁이 탁한 신음을 흘리며 김산의 허리를 꽉 잡았다. 이탁이 입을 벌려 느리고, 부드럽게 입술을 빨았다. 김산의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 이탁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없이 맞춘 입술이건만, 오늘은 더욱 달콤하게 느껴졌다. 단둘이 하는 섹스라 그런지, 분위기가 정말 오래된 연인처럼 아늑하고 달달했다. 이탁은 자의적으로 안긴 아버지를 놔주지 않았다. 이탁은 입안으로 파고든 혀도, 자신의 자지를 물고 놔주지 않는 내부도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것으로 음미하고 싶었다.

“아빠….”

이탁이 끊길 것 같은 신음으로 김산을 부르며 한 손은 뒷목을, 다른 한 팔은 그의 허리를 휘어 감았다. 김산은 이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깨를 잡던 손이 올라가 뺨을 감싸자, 이탁이 인상을 찡그리며 키스를 거칠게 이어갔다. 입술이 부어오를 것 같았다.

이탁이 허리를 얕게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전날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두 개의 자지로 부어오르고 민감해졌던 내부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기름을 바른 듯 쫙쫙 밀고 들어오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김산은 자신의 느끼는 부위를 직격으로 찔러주는 자지에, 아들의 입술에 매달려 흐느꼈다. 김산의 신음과 눈물이 모조리 이탁의 입안으로 스며들었다. 아버지의 잔향까지 뭐든지 먹고 싶은 아들의 욕심이 키스로 느껴졌다. 그 집요한 집착에 김산은 고개를 들었다.

“세… 조금 살살…. 흐읏, 아…!”

“자궁에 들어가고 싶어.”

이탁이 허리를 탁, 탁 쳐올려 엉덩이를 후려치며 말했다. 김산은 내벽 점막이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달라붙는 그 기묘한 감각에 허리를 움직였다. 김산이 이탁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허리를 세우자, 이탁이 팔을 감아 억지로 내리며 자지를 박아댔다. 내장이 한 번에 확 올라가는 듯, 엄청난 압박감에 김산이 눈을 찡그리고 헐떡였다.

“씨발, 이번엔 진짜 내 애 낳을래? 유담이 형 앤지, 내 앤지 모르는데…. 아빠, 이번엔 내 애 낳자.”

미친 소리. 김산은 속으로 욕을 삼키며 아들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몽둥이나 다름없는 기다랗고 두툼한 성기가 안을 헤집을 때마다 장기가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점막이 성기에 감싸여 동시에 쑤욱, 들어오는 감각에 김산의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어깨를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누워서 박는 것인데도 엄청난 속도였다. 젊은 애다운 힘이었다. 김산이 순종적으로 안겨 신음만 흘렸다. 이탁은 머리채를 잡아 올리더니, 그대로 키스했다. 오늘따라 유독 입술에 집착하는 느낌이었다. 김산은 눈물을 매단 채 아들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물이 애처롭게 볼을 타고 흘러 시트에 떨어졌다.

“아빠, 아빠… 사랑해. 정말… 사랑해.”

아들이 허리를 안은 상태에서 꾹, 꾹 박으며 고백했다. 열을 머금은 고백에 김산은 귀가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정말 고백 때문일까. 아니다, 에어컨으로 차가워진 차 안으로 데운 섹스 때문일 것이다. 결코 아들의 고백에 귀가 달아올랐을 리가 없다.

우습게도 지금 이 순간은 정말 아들과 단 둘뿐인 것 같았다. 묘하게 가슴을 채워주는 감각에 김산은 고개를 틀어 아들의 입안에 혀를 넣었다. 혀가 교미를 하듯 엉켜 들었다. 김산은 아들의 입술을 빨고, 이탁은 김산의 혀를 잡아당겼다. 타액이 교차점에 엉기지 못하고 흘러넘쳤다.

정말 이게 문제야.

김산은 아들과 섹스 같은 진득한 키스를 하며 무심히 생각했다.

아들과의 섹스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 아들의 남자다운 체취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 애틋한 사랑을 보란 듯이 담고 있는 저 갈색 눈이….

아니, 아들의 모든 것이 문제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들에게 약한 자신이니 순순히 져줄 수밖에. 그는 그저 눈을 감았다.

*

정신을 놓고 이탁과 차 안에서 뒹군 결과, 데이트는 물 건너 가버렸다. 예상한 일이라 김산은 별 감흥이 없었다. 이탁도 딱히 데이트에 관심이 없었는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김산만 보고 있었다. 조수석에서 늘어지게 앉은 김산은 아픈 허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다리에 힘을 푼 상태에서 입에 담배를 물고 있던 김산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탁이 턱을 괸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나 궁금한 게 있었어.”

“뭔데.”

김산은 하도 울어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이탁이 아직 붉은 기가 남은 뺨과 눈가를 엄지로 만졌다. 살짝 내리뜬 눈매가 단아하고 고와서 김산은 아들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성격은 정말 개망나니였지만, 얼굴은 지독하게 예뻐서 도통 제대로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얼굴 하나만은 정말 내가 잘 낳아놨구나, 싶어 약간 뿌듯하기도 했다.

이탁이 눈을 들어 올렸다. 살포시 웃은 이탁이 고개를 젖히며 물었다.

“최희서가 잘해, 형이 잘해, 내가 잘해?”

“…뭐?”

담배를 잡으려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들의 눈빛이 한없이 진지했다. 어이가 없어진 김산은 담배를 빼내며 사납게 말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응.”

너무 당당해서 김산은 입을 다물었다. 이 녀석을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가 아파와 김산은 끙, 하며 앓았다.

“말해줘. 응? 누가 제일 잘해? 누가 제일 아빠 잘 싸게 해? 역시 나지?”

“제발….”

한숨을 무겁게 푹 내쉰 김산은 가까이 다가온 예쁜 얼굴을 밀어내며 또박또박 말했다.

“닥쳐라, 좀.”

그리고 김산은 문을 벌컥 열어 내렸다. 허리가 아프고, 그 부근도 쓸려서 힘들었지만 묘한 냄새가 진동하는 차 안에서 아들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김산이 대놓고 화를 내며 나가버리자, 이탁도 따라 내려 김산을 쫓아왔다. 비가 그쳐 꿉꿉한 습기가 그들의 몸을 확 감쌌다. 김산은 습기보다 더 끈적하게 달라붙는 아들의 손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들이 김산의 몸을 느리게 잡아당겼다.

“왜?”

김산이 아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담배를 물고 있던 이탁이 빙그레 웃더니, 제멋대로 어깨에 팔을 올렸다. 아들의 몸에 당겨진 김산은 짜증을 내며 팔을 밀치려 했지만, 워낙 힘이 세서 밀리지 않았다. 이젠 힘에서 아들에게 밀리는 게 확실해져서, 김산은 시무룩해졌다. 자신의 손목과 아들의 손목을 비교해보던 김산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왜 그래, 아빠.”

드물게 김산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이탁이 걱정된 듯 물었다. 김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담배를 물고 있었다. 금연 구역이라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너 언제 일 나가.”

김산이 시큰둥하게 묻자 이탁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휴가 일주일이야.”

“그럼 너 쉬는 동안 나도 쉴게. 너희가 유담이 봐.”

김산은 냉담하게 말하고서, 아들을 둔 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버튼을 누른 채 기다리는데 이탁이 슬그머니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김산이 엘리베이터 문을 무심히 보며 말했다.

“연락하지 마라.”

“유담이 걱정 안 돼?”

김산은 아들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너희들이 유담이를 함부로 대할 애들은 아니잖아. 유담이는 너희들에게도 소중한 아인데.”

삐딱한 말에 이탁이 활짝 웃으며 김산을 안았다. 아들에게 곰 인형처럼 안겨버렸다.

“그럼, 잘 보지.”

아들이 고개를 숙이고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연히 내 딸이잖아.”

딸이면서, 동시에 동생인 유담을 향한 말에 김산은 미련 없이 팔꿈치로 아들의 복부를 때렸다. 정통으로 팔꿈치에 얻어맞은 이탁이 소리도 못 내고 배를 감싸 안았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김산은 아직 아파서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들을 두고 닫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느리게 닫혔다. 이탁이 허리를 펴고, 자신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문이 닫혀 온전히 보지 못했다. 김산은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허리를 만졌다. 차에서 아들이 얼마나 박았는지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여기까지 걸어온 것도 기적이었다. 김산은 통증을 줄이고자 허리를 숙여봤지만, 도리어 그 부근에서 찌르르하고 통증이 올라와 허리를 어정쩡하게 폈다.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던 김산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비밀번호를 누른 뒤, 문을 열었다. 바깥에 비해 훨씬 시원하고 건조한 바람이 밀어닥쳤다. 아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아하니 유담은 잠든 것 같았다. 나오기 전에도 잠들어 있었는데. 아이가 있을 방을 열어보았다. 바닥에 유담과 이삭이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유담은 이삭의 팔을 베고서, 배를 드러낸 채 대 자로 뻗어있었다. 다정한 눈으로 아이들을 보던 김산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이불을 들어 아이에게 덮어주었다. 이마를 덮은 검은 머리를 만져주었다.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뺨이 귀여웠다.

자신을 닮은 딸이라 그런가, 아이가 항상 눈에 걸렸다. 또한 버리고 싶었다. 자신과 아들들이 저지른 부덕한 짓의 결과물이었다.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늘 가시가 박힌 듯, 따끔하고 거슬렸다. 보란 듯이 아들과 자신을 적절히 닮은 얼굴이 김산을 괴롭게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이에겐 죄가 없었으므로 아이를 버릴 수 없었다. 김산은 숨조차 내쉴 수 없어, 한숨을 속으로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이삭에게도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떠나려는데, 자신의 손목을 잡는 강한 힘에 갈 수 없었다.

이삭이 잠에 덜 깬 얼굴로 자신을 잡고 있었다. 김산이 무감한 얼굴로 바라보자, 아이가 느리게 웃었다. 부은 얼굴도 예뻐서 웃는 것만으로 방이 꽃밭이 되었다. 아이는 부스스해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눈길을 돌려 유담을 힐끔 본 이삭이 몸을 일으켰다. 이삭이 날씬하고 쭉 뻗은 팔로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뭐 하고 오셨어요?”

“산책.”

즉각적으로 나온 답에 이삭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삭은 스탠드 불을 켰다. 방에 불을 끈 이삭은 김산을 이끌고 거실로 나왔다. 김산을 멀뚱히 세워두고 이삭은 화장실에 들어갔다. 김산은 소파에 드러눕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안 돌려도 뻔했다.

“아빠 너무한다. 아들 두고 집에 먼저 가는 게 어디 있어.”

대답하는 것도 귀찮아서 김산은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았다. 요새 즐겨보는 요리 프로였다. 성큼성큼 다가온 이탁이 휴대전화를 뺏어 들었다. 김산은 화를 내지 않고 눈만 들어 아들을 보았다. 이탁이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담백한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 바람맞은 기분이야.”

김산이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아들을 노려봤다. 이탁이 나이치고 상당히 부드러운 뺨을 만지며 노골적으로 말했다.

“우리 데이트였잖아.”

“데이트하고 왔다고?”

어느새 나온 이삭이 수건으로 턱을 닦으며 시니컬하게 되물었다. 몸을 일으킨 이탁이 나른하게 누운 김산을 보더니 팔짱을 꼈다. 이탁의 얼굴에 퍼져가는 웃음이 짙었다. 비슷한 얼굴을 하고, 비슷한 체격을 한 두 아들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알 수 없는 시선을 교환하는 두 아들을 물끄러미 보던 김산은 이탁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챙겼다.

어차피 또 사이좋게 나눠 가지자 이런 쓸데없는 얘기일 것이다.

“적당히 해라. 집에 싸움 일으키지 말고.”

김산이 무심히 말했다. 이삭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이삭이 휴대전화를 뺏어갔다. 조금 화가 났다.

“밥 드세요. 미리 해놨어요.”

이삭이 휴대전화를 넘겨주며 말했다. 김산은 아픈 허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허리도 허린데, 허벅지 안쪽이 쓸리고 잡혀서 아팠다. 김산이 일어나서 한숨을 푹 내쉬자 이탁이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둘째 만드느라 고생했어, 아빠.”

김산은 아들을 흘겨보았다. 얄미운 주둥아리를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때리려다가 힘이 없어서 팔을 내렸다.

김산이 식탁에 앉았다. 이탁은 상을 깨끗이 닦고, 수저와 젓가락을 놓았다. 이삭이 밥과 미역국을 갖다 주었다. 그 외에 고기반찬과 나물이 한가득이었다. 아이들이 지독하게 굶겨준 덕분에 없던 식탐이 약간 생겼다. 김산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떡갈비를 집어 들었다. 베어 물자 달달한 맛과 부드러운 고기의 식감이 입안에 퍼졌다.

“맛있네. 네가 했어?”

“아뇨. 마트에서 사 왔어요.”

김산은 고개를 무심히 끄덕였다. 그는 현미가 많은 밥을 젓가락으로 푸면서 말했다.

“유담이 밥은 줬어?”

“안 먹는데요.”

이삭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김산이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는데도 이삭이 꿋꿋했다. 이삭은 예쁘게 만들어진 계란말이를 집어 김산의 밥그릇에 놔주며 무신경한 말투로 말했다.

“밥 안 먹겠다고 버티는 애한테 밥 먹이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아시잖아요? 안 먹겠다 하면 안 먹여야죠. 그러다 보면 알아서 먹어요. 덤으로 안 먹는 애 앞에서 ‘아, 맛있다.’ 하면서 먹어주면 효과는 더 좋고.”

“그래도 애 밥은 먹였어야지.”

김산이 화를 내며 다그치자 이삭이 눈을 귀엽게 뜨며 반문했다.

“아빠가 우리 그렇게 키웠잖아요. 뭐 잘못됐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답게 밥을 안 먹겠다고 버티거나 입에 밥을 물고 돌아다녔다. 그러면 김산은 깔끔하게 밥 먹이는 걸 포기했다. 배고프면 알아서 먹겠지, 하는 마음에 애들 보는 앞에서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러면 배가 고파지거나, 식욕을 자극당한 아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수저를 들었다. 딱히 편식하는 애들은 아니어서, 그 문제만 빼면 힘들게 밥 먹인 적은 없었다.

수십 년 전 아이들을 키우던 때를 떠올리던 김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나 밥 안 줬던 거야?”

“네.”

이삭이 너무 말끔하게 대답했다. 이삭은 김산을 순진한 눈으로 보며 방긋 웃었다.

“아빠가 먹기 싫다면서요. 그래서 정액 줬잖아요. 아예 굶길 수는 없으니까요.”

참으로 기특한 말에 김산은 밥맛이 떨어져 수저를 놓았다. 그걸 보던 이탁이 넌지시 말했다.

“그때는 아빠 먹기 싫다고 하도 그래서 어렸을 때 했던 것처럼 한 것뿐이야.”

“그래야 말을 잘 들으니까?”

김산이 보란 듯이 이죽거렸다. 이삭이 이죽거림에 보답하듯 피식 웃었다. 이탁의 얼굴에도 여유로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럴 땐 합이 잘 맞는 아이들이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입맛이 떨어져 그만 먹을까, 생각했으나 오기가 생겨서 김산은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삭은 다정하게 말했다.

“이제 절대 안 그럴 거예요. 그때는 저희도 좀 미쳐서 앞뒤 안 가렸으니까….”

“지금도 미쳤어. 뭘 새삼스럽게….”

김산이 말을 뚝 잘랐다. 그는 아들이 밥 위에 얹어주는 반찬을 보았다. 아들은 자신이 아이들을 돌봤을 때처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들에게 굳이 밥을 안 먹이는 것이나, 좋아하는 반찬 올려주는 것이나, 그 외에 사소한 것에서도 자신이 알려준 방법들이 남아있었다.

어렸을 때, 밥 안 먹겠다고 뛰어다니는 애를 붙잡고 밥을 한 숟가락이라도 먹였으면 좀 나아졌을까. 밥알을 세는 것처럼 깨작거리던 김산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선하고 우아한 눈매를 가진 아들 둘을 보았다. 어엿한 사회의 성인이 된 아이들은 어딜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새카만 머리를 왁스로 정리하고, 반듯한 정장을 입은 아이들을 보면 간혹 가슴이 두근거릴 때도 있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사랑에 근거해서 두근거리는 건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은 넘을 수 없는 최소한의 선이었다. 딱 이대로가 좋았다. 비록 자신이 낳은 아이들의 아이를 다시 낳는, 기이한 행각을 벌였지만 아슬아슬하게 흘러가는 평화가 좋았다. 김산은 그 평화를 조금씩 깨트리는 아들의 도전적인 애정을 떠올렸다. 가슴이 순간 딱딱하게 굳을 만큼, 대범했던 고백에 입술을 깨물었다.

‘도덕, 윤리, 법… 그런 거 지켜서 뭐해.’

차 안에서 기절했다가 일어난 자신에게 이탁이 성기를 세차게 넣으며 말했다. 모든 것을 드러내고 웃는 얼굴이 섬뜩했으나 매혹적이라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손에 깍지를 끼며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맛있고 좋은 걸 그딴 거에 얽혀서 맛도 못 보라고?’

김산이 불쾌감에 인상을 찡그리자, 아이가 입술에 키스하며 속삭였다. 마치 입술에 문신을 새기는 것처럼, 날카롭고 단단한 음성이었다.

‘그만….’

가느다란 신음을 흘리며 아들의 손을 꽉 잡았다. 크고, 듬직한 손이 자신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이제 그만할 수 없는 거 알잖아.’

검은 눈에 고인 눈물을 무덤덤한 눈으로 보던 이탁이, 애처롭게 입술을 비볐다. 아들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입을 맞추기 전, 이탁이 잠시 고뇌하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아빠건, 아들이건, 무슨 상관이야. 맛있으면 그만이지.’

이탁의 음성이 가슴으로 스며들어와 김산의 가슴을 꽉 묶었다.

안 돼, 이 이상 흔들리면. 김산은 다가오는 아들의 입술을 포근하게 감싸며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받아들였다간, 정말 미칠지도 몰라.

*

유담은 물웅덩이를 좋아했다. 그건 자기 오빠들을 닮았다. 이삭과 이탁도 비가 그치고 나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물웅덩이를 찰박찰박 밟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물웅덩이 하나만 있으면 세상 가는 줄 모르고 놀곤 했다. 하얀 발이 흠뻑 젖고 나서야 김산에게 안겨 해맑게 웃었다. 그러다가 아이는 내려달라고 칭얼거렸다. 내려주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한 얼굴로 김산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빠도 함께 놀자고 이끄는 자그마한 손에는 힘이 없는데, 김산은 그 하찮은 힘에 져서 아이를 따라 물웅덩이까지 걸어갔다. 이삭이 웅덩이에 발을 담근 채, 무릎을 굽혀 그를 올려다보며 꽃이 핀 것처럼 웃었다. 햇빛 한 줄기가 스포트라이트처럼 아이의 얼굴을 비쳤다. 빛의 무수한 산란 속에서 아이만이 단 하나의 꽃처럼 빛나고 있었다.

메마른 토양에 하찮지만 소중한 새싹이 폈다. 너무 소중해서, 자신의 온몸으로 지탱하고 감싸줘야 할 새싹이었다.

“아빠! 이거, 이거.”

여기에 또 하나의 새싹이 있었다. 자신을 닮아, 새카만 검은 눈을 가진 어린 생명이었다. 웃을 때면 볼우물이 패어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자기 딸이지만, 오목조목한 것이 예뻐서 하염없이 보게 되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있던 김산은 손을 내밀었다.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손을 맞잡고 발을 움직였다. 물이 튀어 김산의 바지를 적셨다.

“그만해, 유담아. 집에 가야지.”

“싫어.”

유담이가 애교를 부리며 몸을 흔들었다. 어리광에 김산이 소리 내서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벤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삭이 몸을 일으켰다. 이삭은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꽂아 부드럽게 안아 올렸다. 아이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이삭을 보았다. 이삭이 상냥하게 웃으며 아이 콧등을 톡, 건드렸다.

“이탁 오빠가 섭섭해하겠다. 오늘은 이탁 오빠랑 나가서 놀기로 했잖아.”

“으응.”

이탁과 함께 키즈 호텔에 가서 놀기로 한 걸 잊은 모양인지, 아이가 퉁명스러운 소리를 내며 이삭의 어깨에 몸을 푹 기댔다. 스펀지처럼 늘어지는 아이를 토닥거려준 이삭은 김산에게 웃음기 띤 눈빛을 보냈다.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에 분명하게 보이는 목적에 김산은 소름이 돋아 이를 악물었다.

순한 양 같은 외모에 숨겨진 음습하고 집요한 욕망이 벌써부터 손을 뻗어와, 자신의 다리 사이를 누비는 듯했다. 손목을 누르고, 다리를 벌리고, 발갛게 부은 점막을 거침없이 누르며 들어오는 성기가 생생히 떠올라 김산은 등을 돌렸다. 섹스할 때와 차원이 다른, 말간 샘물 같은 눈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김산이 먼저 걸음을 옮기자 그 뒤를 이삭이 유담을 안은 채, 따라왔다. 유담이 ‘아빠.’하며 자신을 불렀지만 김산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르페우스가 아내 에우리디케를 저승에서 데리고 올 때처럼, 뒤돌아보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는 결코 뒤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유담이 이삭의 품에서 내려와, 김산의 다리에 엉겨 붙었다. 마치 진드기 같았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순수한 눈빛이 이삭을 닮아, 그는 아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유담이 두 다리를 짧은 팔로 끌어안았다.

“아빠.”

벽에 기대어 있던 김산은 울 것 같은 목소리에 눈을 떴다.

신은 어찌하여 이런 감정을 자신에게 주었을까. 연약한 것들에게 끌리지 않았다면, 자신이 없어서 무너질 것 같은 생명들에게 사랑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만약의 상황을 가정해보던 김산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럴 일은 없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자신이 없으면 당장 죽을 것 같은 어린 생명에게 손을 뻗었을 테니까.

“미안.”

김산이 조용히 대답하자, 이삭이 소리 내서 웃었다. 듣기 좋은 웃음소리였다. 김산은 걱정 말라는 듯,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이가 얌전히 안기더니,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김산의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았다. 결 좋은 갈색 머리가 금세 자신의 위치를 찾아, 가라앉았다.

“이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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