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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11/11)

에필로그

푸릇푸릇한 잔디로 덮인 드넓은 언덕 위, 조그만 아기 호랑이 한 마리가 잔뜩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호기심을 띠고 주위를 살펴보는 눈이 또릿또릿하고 하얀 양말을 신은 발끝이 무척이나 도톰하고 앙증맞은 녀석은 보통의 호랑이가 아니라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까맣고 복슬복슬한 털에 금빛 줄무늬를 가진 아기 흑호였다.

그 앞에는 아기 호랑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어마어마하게 큰 아빠 호랑이가 있었다. 아빠 호랑이는 보통 어른 호랑이보다 수십 배는 더 커다랬는데, 그 때문에 아빠 호랑이의 꼬리는 아기 호랑이와 비교하자 엄청나게 큰 뱀처럼 보였다. 한데도 아기 호랑이는 겁도 없이 그 꼬리를 가지고 즐겁게 장난을 쳤다.

그에 응해 연신 꼬리를 살랑이며 놀아 주던 아빠 흑호가 돌연 아기 호랑이의 허리를 그로 감싸더니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뒷다리를 굽혀 낮춘 엉덩이 위에 내려놓았다. 완만한 경사가 있었던 탓에 엉덩이에 내려앉자마자 아기 호랑이는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하지만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아릉거리며 좋아했다. 마치 무척 익숙한 놀이인 것처럼.

한 번 미끄럼을 즐긴 아기 호랑이는 또 폴짝폴짝 뛰면서 아비의 꼬리를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 또 아빠 호랑이의 꼬리에 붙잡혀 엉덩이 미끄럼을 타고, 또 내려와선 꼬리를 가지고 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한 번은 아빠의 엉덩이에 올라간 아기 호랑이가 미끄러질 때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넘어져 땅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래도 울지 않고 벌떡 일어난 아기 호랑이가 깜짝 놀란 눈으로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폴짝폴짝 뛰어 아빠 호랑이의 배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곳에…….

“이런, 아팠어?”

아빠 호랑이의 배에 편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노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호연이 아기 호랑이가 부딪친 자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기 호랑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리광을 부리듯 그 품으로 안겨 들었다. 그런데 아빠 호랑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여 끼어들며 그걸 막았다.

“당신도 참.”

꼬리를 피해 아기 호랑이를 무사히 안아 든 호연이 못 말리겠다는 듯 중얼거리자, 금왕은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수호랑 재미있게 놀았으면서 나는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나만 부럽게? 너무하네.”

호연의 말에 금왕이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호연이 제 앞에서 살랑거리는 꼬리를 붙잡아 쪽, 뽀뽀하자 금세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를 잠시 웃으며 바라보던 호연은 곧 품에 안긴 아기 호랑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가, 졸려?”

아기 호랑이는 한참 신나게 뛰어놀더니 그새 졸린 듯 눈을 감고 있었다. 호연이 다정하게 등을 토닥여 주자 아기 호랑이는 더욱 그의 품으로 안겨 들었다. 아직 어려 더욱 보드라운 털이 팔에 닿자 호연이 방긋 웃으며 아기 호랑이를 사람의 아이처럼 뒤집어 안더니 둥그런 등을 쓸어 주고 오동통한 배를 토닥이며 잠재웠다. 그러자 아기 호랑이가 금세 네 다리를 축 늘어뜨렸다.

호연은 자신의 품에서 아무 걱정도 없이 천진하게 잠든 아기 호랑이의 사랑스러운 눈가와 솜털이 보송보송한 자그마한 귀, 털이 복실거리는 조그만 볼, 앙증맞은 네 다리에 차례로 입 맞춘 뒤 마지막으로 동그란 입매에도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금왕을 마주 봤다. 금왕과 눈이 마주친 호연은 빙긋 웃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금왕이 곧바로 고개를 내려 토옥, 동그란 입매로 호연에게 입을 맞췄다.

“하하. 간지러워요.”

금왕이 부드러운 털이 난 볼을 자신에게 비비자 호연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번에는 자신이 그의 볼에다 쪽, 입을 맞췄다. 금왕의 눈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일자를 만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다시 쪽 뽀뽀를 날린 호연은 이내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다 고개를 내려 자신의 품에서 세상모르고 편안히 잠든 아기 흑호를 보고는 또 한 번 살며시 미소 지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네요. 내가 엄마가 되다니.”

호연의 중얼거림에 금왕이 그의 머리를 꼬리로 톡톡 두드려 주었다.

“설왕님과 백하 님이 설하 낳는 걸 봤어도 전혀 안 믿겼는데…….”

잠시 회상에 잠겼던 호연은 다시 제 품에 안긴 흑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는 낳자마자 갑자기 호랑이로 변해서 깜짝 놀랐는데…….”

열 달 배불러 낳은 아기가 낳자마자 갑자기 어린 흑호의 모습으로 변해 당황했던 때를 떠올린 호연이 새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근데 지금은 오히려 이 모습이 훨씬 귀엽네요.”

단지 귀여울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아기 호랑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호연이 살며시 고개를 숙여 동그란 머리에다가 무척 조심스럽게 입 맞췄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어 금왕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당신을 닮아서 더요.”

“호연…….”

감격이 서린 듯 금왕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그는 별안간 꼬리를 움직여 호연의 허리를 감싸더니 자신의 등에 태웠다.

“앗!”

갑작스러운 행동에 호연이 깜짝 놀라 아기 호랑이를 더 꼭 끌어안았다. 그를 본 금왕이 호연에게 두른 꼬리를 풀더니, 대신 이번에는 호연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 호랑이를 꼬리로 감쌌다.

“무슨……?”

금왕이 불쑥불쑥 보여 주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호연이 의문을 표했다. 물끄러미 그를 마주 보던 금왕이 고개를 돌리며 무심히 대답했다.

“호연…… 이번에는 널 닮은 아이가 좋겠다.”

“네?”

여전히 영문을 몰라 하던 호연이 잠시 금왕의 말을 되새겨 보고는 이내 화르륵,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좁힌 채 금왕을 바라봤다.

“아니, 이런 대낮부터 무슨 그런 말을……. 더구나 수호는 어쩌고…….”

“부탁한다, 백호.”

호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금왕이 단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호연이 당황해 아래를 내려다보자, 익숙한 얼굴의 백호가 보였다. 호연이 아기 호랑이, 수호를 낳아 육아로 바빠지자 그를 돕느라 시종 곁을 지키게 된 금왕은 금수들을 두루 보살피기 힘들어졌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백호가 매일 정기적으로 소식을 전하러 오는데, 어느새 그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이 될 때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드물지 않게 벌어졌다. 때문에 백호는 담담히 금왕이 건네주는 수호를 받아 들었다. 안정적으로 안아 드는 폼과 아기를 다루는 모습이 무척 능숙하면서도, 지쳐 보였다.

“금왕……. 이번에는 제발 금왕자님이 깨기 전에 돌아와 주십시오. 일어나셨을 때 반려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십니다.”

결혼도 전에 이미 육아의 달인이 된 노총각 백호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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