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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 축제, 그리고…… (10/11)

혼례 축제, 그리고……

통통, 풀잎 위의 물방울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튕겼다. 그 사이사이 따닥, 따닥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팡팡, 수면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와 피, 피― 맑고 고운 풀피리 소리도 곳곳에서 뒤섞였다. 그런 자연의 소리와 조화를 이뤄 뽀로롱뽀로롱, 어여쁜 소리로 새들이 노래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나와 금왕의 혼례를 축하해 주기 위한 동물들의 축하 공연이었다.

지난주에 열린 왕들의 만찬에서 다들 부쩍 혼례식에 관심을 보이며 준비에도 신경을 써 주었지만, 다른 왕들은 선물만 보낼 뿐 혼례식에는 오로지 금왕의 백성들, 즉 금수들만이 참여했다. 그래서인지 혼례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결혼식과 달리 그냥 축제 같았다. 특별히 정해진 절차나 의식 같은 것 없이, 그저 축하하는 마음을 지닌 모두가 모여 함께 뛰놀며 즐겼다.

모든 금수가 옹기종기 모여 즐기니 시끌벅적 즐거운 분위기가 절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혼례식이라는 말에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어느새 다 풀어졌다. 나는 한결 편안해진 상태로 인간 모습이 된 금왕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숲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동물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간혹 앞쪽의 낮은 탁자 위에 준비된 과일을 집어 먹기도 하고, 과일로 만든 음료를 마시기로 하면서.

물론 그러던 와중 금신께서 축하하러 오셨을 때는 다시 한껏 긴장하기도 했다. 백하 님께 전해 들은 대로, 정말 산처럼 거대한 푸른색의 호랑이가 하늘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상으로 가까이 오지도 않고 저 하늘 높은 곳에 떠 있는데도 그가 드리운 그늘이 모든 금수가 모여서 뛰노는 넓은 공터를 전부 뒤덮을 만큼 컸다.

게다가 하늘의 빛깔을 그대로 따온 듯 연푸른 몸체에 깊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짙은 파란색의 줄무늬가 새겨진 호랑이인 금신은 무척이나 신성하고 지엄해 보였다. 사람의 모습이었을 때랑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도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의 위압감을 느끼지 않고 의외로 편안히 그를 올려다볼 수 있었던 건, 하늘에 새겨진 산처럼 거대한 그가 하늘의 구름을 모아 형체를 만든 듯이 흐릿하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우와!’

안 그래도 귀여운 호랑이의 모습에 몽실몽실한 구름의 감촉까지 더해지자 나는 처음 본 순간 느낀 경외감도 잊고 입을 헤 벌린 채 손을 움찔거렸다. 그러다 별안간 귓가에 울리는 엄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인간의 아이야, 내 아이의 반려가 된 것을 축하한다. 너도 이젠 나의 아이다.]

하늘에 구름으로 수놓인 금신은 입조차 벌리지 않았지만, 신성한 목소리로 공기를 울리며 우리의 결혼을 축하했다. 그리고 잠시간 지긋한 눈으로 나와 금왕을 내려다보더니, 살며시 눈을 감아 웃어 보이고는 그대로 휙, 뒤돌아 바람결에 밀려나는 구름처럼 흩어지며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그의 등장이 남긴 여운에 지상은 여전히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장엄했던 금신의 등장에 일제히 고개를 숙인 금수들은 물론, 축복을 받는 당사자이기에 금신과 제대로 마주 봐야 한다는 금왕의 설명대로 고개를 들고 있던 나와 금왕 또한 일순 말을 잃었다. 그저 멍하니 조금 전 금신이 머물다 사라진 허공만을 바라봤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들 정신을 차렸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혼례 축제의 막이 올랐다.

금왕과 나는 무척 많은 금수에게 축하를 받았다. 하나둘씩 짝을 지어 정말 각양각색의 동물 대표들이 다 축하를 하러 왔다. 그중에서 좀 특별했던 동물들을 꼽자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토끼였다.

“꺅! 꺅! 꺅꺅! 꺅꺅꺅!”

부지런하게도 제일 먼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토끼는 축하의 말을 하는 대신 부끄러운 듯 비명만 잔뜩 질렀다. 보송보송한 털로 뒤덮인 하얀 귀를 두 손으로 꾹 접어 내려 눈을 가린 채, 빨개진 볼만 보여 주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 자리에서 깡충깡충 뛰었다.

그때마다 눈앞에 폭신폭신한 털로 덮인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어른거려서 당황도 잊고 홀린 듯 바라보는데, 한참 호들갑을 떨던 토끼는 어느새 나타난 친구 자칼에게 목덜미를 덥석 물려―물론, 상처 입지 않을 정도로 살짝만 물었다―자리를 떠났다.

목덜미를 물려 달랑 들어 올려지는 토끼의 둥글게 말린 몸이 너무 귀여워서 정말 만져 보고 싶었지만, 이제 정식으로 금왕의 반려가 되었기에 더욱 열심히 반려의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겨우 자제했다.

“두 분의 혼례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토끼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사이좋은 악어새와 악어가 우리 앞에 나타나 정답게 축하를 건넸다. 둘의 공생 관계를 알고 있음에도 악어가 제 입 안에 악어새를 담아서 다가오는 바람에 처음에는 조금 놀랐는데 그것 말고는 무난한 인사였다.

그 뒤에는 무척 덩치가 큰, 가슴에 뽀얀 털로 멋스러운 브이가 그려진 까만 반달곰이 모습을 드러냈다. 까맣고 하얀 털이 저보다 훨씬 다채롭게 뒤섞이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 판다를 품에 안고서. 자신과 무척 친한 판다 대표가 일이 생겨서 맡긴 아이라고 사정을 설명한 그는 곧바로 곧게 서 있던 몸을 숙여 네 발로 바닥에 엎드리며 정중히 인사했다.

“금왕님, 반려님. 혼례를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두 분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추, 카……?”

마치 어미 원숭이에게 매달린 새끼 원숭이처럼 작지만 도톰한 손으로 반달곰을 꼭 붙잡아 안긴 새끼 판다가 반달곰의 말을 따라 했다. 나를 시험하기라도 하듯, 판다 특유의 축 처진 타원형의 얼룩 속에 자리한 고 까만 눈으로 나를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동그란 귀까지 까딱거려 가면서.

게다가 반달곰이 손으로 받치고 있는, 한눈에도 폭신해 보이는 고 오동통한 엉덩이를 실룩거릴 때는 정말 눈앞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뽀얀 엉덩이에 자리한 짧은 꼬리가 몽실몽실 움직이는 모습에는 코피를 쏟을 뻔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를 악물며 참았다.

‘크윽! 진짜 달려들고 싶어 미칠 것 같다. 그치만 안 돼. 난 이제 금왕의 반려잖아. 그러니까 중립…… 아, 저 엉덩이랑 꼬리 봐. 완전 침이 꼴딱…… 아니, 안 돼. 이러지 마, 이호연. 이성을 찾자. 이성…….’

나는 옆에 있는 금왕의 손을 거의 으스러뜨릴 듯 꽉 움켜쥐면서 겨우 나를 진정시켰다. 그러면서 내가 쥐고 있는 것이 인간의 손이 아니라 흑호 모습일 때의 꼬리였다면 더 버티기 좋았겠다는 생각에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금왕을 돌아봤다.

그리고 힘겨워하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는 금왕의 눈부신 미모를 마주하자 마음속에 깃든 아쉬움이 대번에 날아갔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터질 듯 뛰어 대기 시작하며 그런 생각을 할 여유 따위 전혀 없어졌다.

그 이후로도 셀 수 없이 많은 금수가 우리를 축하하러 왔는데 개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금왕과 만날 수 있게 도와준 삵이 생각나서 괜히 친근한 기분이 드는 삵 대표였다.

“두 분의 혼례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하지만 덕분에 저희 아이 하나가 벌써 일주일째 통 먹지를 못하고 실의에 빠졌습니다. 어찌 좀 위로를 해 주실 수 있을는지요.”

삵 대표가 축하 끝에 한껏 곤란한 얼굴로 하소연했다. 처음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우와, 삵 중에도 팬이 있나 보다.’ 하며 조금 뿌듯해졌다.

“반려님의 머리카락이라도 한 가닥 내어 주시면 어찌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만…….”

‘응?’

내 머리카락? 금왕님 게 아니라? 왜? 아, 설마 그걸 가지고 저주라도 하려는 건…….

나도 모르게 섬뜩한 추측을 떠올렸을 때였다.

“미안하다, 삵. 아무래도 그 부탁은 들어주지 못할 것 같다.”

평소답지 않게 딱딱한 목소리에 놀라서 돌아보자, 언제나 자애로운 왕이던 금왕이 왜인지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그런 것을 가져가면 더 잊기 힘들 거다. 그보다는 어서 마음을 접으라고 잘 위로해 주어라. 게다가 내 반려의 머리카락을 달라는 것은 조금, 불쾌하구나.”

삵 대표를 바라보던 금왕의 눈빛이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처럼 냉담한 기색을 띠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금왕의 차가운 시선에 놀란 표정을 지었던 삵 대표는 이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금왕. 제가 생각이 짧아 감히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잊어 주십시오. 두 분 혼례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잔뜩 미안해하며 다시 한번 인사를 전한 삵 대표가 서둘러 물러갔다.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고 금왕을 향해 조금 당혹스러운 눈길을 던졌다.

언제나 자상한 왕이던 그가 대체 왜 그렇게 단호한 반응을 보였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는 머리카락 하나 달라는 게 그렇게 실례고 불쾌해할 일인가? 혹시 정말로 그걸 가지고 저주같이 무서운 일을 하려던 걸까. 혼란에 잠겨 있는데 금왕이 돌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호연, 너는 벌써부터 인기가 너무 많구나.”

‘엥?’

“그래서……, 내가 너무 왕답지 못하게 행동했다.”

느닷없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해 있는데 금왕이 자책하듯 중얼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아 의아한 눈길을 보내는데, 금왕이 잠시 머리를 식히고 오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멀어지는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마침 그때 또 다른 동물이 내 앞에 인사하러 나타나는 바람에 실패했다. 보통의 상대였다면 양해를 구하고라도 쫓아갔겠지만 하필 그 순간 나타난 이가, 수많은 금수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나를 당황스럽게 한 상대라 넋이 나가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바로…… 대체 어떻게 들고 온 건지 제 몸보다도 더 큰 술독을 옆에 끼고 잔뜩 취해서 나타난 사슴이었다. 얼굴이 온통 붉게 물들고 눈에 초점도 다 풀린 사슴은 술이 한가득 들어가 뽈록해진 배를 주체 못 해서 털퍼덕 바닥에 주저앉은 채, 불량하게 술통에 기대 눕기까지 했다.

“아아, 반려님, 정말 혼례를 축……하는 무슨 개뿔! 에이씨, 금왕님 내가 찜했는데! 내가 얼마나 흠모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채 가다니. 반려님 나으뻐…… 엉. 엉, 엉엉엉…….”

사슴이 갑자기 술독을 끌어안더니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상상치도 못한 상황에 할 말을 잃고 난감해하고 있노라니, 어느새 맹수들이 나타나 술독을 끌어안은 사슴을 통째로 들어서 데려갔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사슴에 이어 다람쥐, 너구리, 족제비까지. 그 작고 앙증맞은 동물들이 어울리지 않게 술독을 들고 찾아와 금왕에 대한 연심을 토로하며 울었다. 다시 맹수들이 그들을 데려가려 했지만 내가 막았다. 그들을 자꾸 피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싶었고, 나도 금왕과 헤어진 동안 무척 힘들었기에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도리어 끌려간 사슴까지 불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도…… 그땐 정말 숨이 콱 막히더라구요, 너무 힘들어서, 세상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어어, 그래요. 맞아. 내가 지금 딱 그렇다니까!”

“족제비 너만 그러냐, 나도 딱 그래!”

“나도, 나도 그렇다우!”

“아, 우리 반려님 계속 이야기해서 목마르시겠네. 한 잔 드시고 계속하세요.”

내게 잔뜩 하소연을 하고 난 뒤인 데다, 내가 금왕과 헤어져서 힘들었던 일에 대해 말해 주자 동지 의식이 생긴 건지 족제비, 다람쥐, 너구리가 차례로 내 말에 동조했고 마지막으로 입을 연 사슴은 친근하게 술까지 건넸다.

“아, 감사합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해 그다지 즐기지 않았지만 비로소 사슴의 마음이 풀린 게 기뻐서 바로 받아 마셨다.

“우와, 맛있어!”

사슴이 조롱박에 떠 준 술을 삼키자마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천연 과일로 담근 술이라서 그런지 쓰디쓴 소주나 코가 찡한 맥주와 달리 상당히 달콤하고 맛있었다. 씁쓸하고 신 포도주하고도 약간 달랐다.

“그렇지요? 제가 작년에 평소 잘 가지 않던 길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정말 맛있는 산딸기로 담근 거랍니다. 한 잔 더 마시겠습니까?”

제법 뿌듯한 얼굴로 설명한 사슴이 기분 좋은 듯 또 술을 건넸다. 아직 입 안에 남은 달콤함에 사로잡힌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맛에 취해 사슴이 주는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상당히 과음을 한 모양이다.

분명 방금까지 동물들과 진지하게 이야기 중이었는데 어느샌가 머릿속이 알딸딸하니 기분이 좋아져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러다가 미약하게 몸이 흔들리는 느낌에 눈을 뜨자 금왕이 보였다.

“어라?”

분명 금왕인데 평소처럼 귀가 없네. 그 귀가 귀여운데. 입도 안 동그래. 아, 사람으로 변신한 금왕이구나. 음, 뭐 귀여운 건 좀 줄어들었지만 대신 진짜 멋있다. 저 날카로운 턱이랑 코 봐. 와, 눈은 또 어떻고. 내리깔고 있으니까 더 예쁘다. 아니, 아름다운 건가? 에이, 아무렴 어때. 결국 내 건데…….

“쪽!”

품에 안긴 나를 내려놓느라 살며시 몸을 굽힌 금왕을 살펴보다가 왠지 모를 뿌듯함에 그의 눈꺼풀에다 입 맞추었다. 순간 흠칫 놀라 물러나는 금왕이 내게 꼬리를 붙잡혀 뽀뽀당할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자 갑자기 사랑스러움이 퐁퐁 샘솟아서 나도 모르게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달라붙었다. 그리고 쭉 고개를 빼서 그의 볼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쪽!”

호랑이일 때처럼 복슬복슬한 털은 없었지만, 매끄럽고 부드러운 피부가 입술에 와 닿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으흐. 기분 좋아.”

나는 금왕이 호랑이였을 때 자주 그랬듯 그에게 마구 볼을 비볐다. 보드라운 털이 없는데도 왠지 기분 좋은 느낌이라 열심히 볼을 맞대다가 또 왠지 모를 충동에 쪽! 입을 맞췄다. 그가 호랑이일 때처럼 온몸을 떨며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강렬한 눈매 때문인지 나를 보는 얼굴에서는 당혹스러워하는 기색보다 놀란 느낌만 조금 풍겼다. 그게 아쉬워서 다시 쪽, 입술을 맞추는데 문득 숨이 막혀 왔다.

“읍……!”

내가 입을 맞춘 것은 분명 금왕의 매끄러운 볼이었는데, 어느새 그의 뜨거운 입술이 나와 맞부딪쳤다. 맞닿은 입술이 나를 짓누르며 반쯤 들린 내 고개를 바닥으로 밀어 내렸다. 순간 짚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푹신한 쿠션이 등 뒤에 와 닿았지만, 그 정체를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금왕은 쿠션 아래로 등이 푹 파묻힐 만큼 강하게 나를 밀어붙였다.

앞서 뜨겁다고 생각한 입술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열기를 지닌 불꽃같은 혀가 내 입술을 비집고 들어왔다. 갑자기 입 안에 들어차는 낯선 감각에 당황해 버둥거리는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나를 녹여 버릴 것처럼 강렬한 열기가 입 안 곳곳을 불태웠다. 금왕의 혀가 닿는 곳뿐만이 아니라 입 안 전체가, 내 얼굴이, 머릿속이, 몸이…… 모두 온통 열기로 가득 채워져 불타는 것만 같았다.

닿는 것만으로도 그런데 금왕은 부드럽던 혀에 단단히 힘을 주어 나를 압박하기까지 했다. 허둥지둥 달아나는 내 혀를 붙잡아 당기고, 까끌까끌한 입천장을 긁듯이 훑고, 저 안쪽의 연약한 살을 핥다가 갑자기 엄청난 압력으로 내 입 안의 여린 살을 빨아 당겼다.

순간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가 죄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듯, 아니, 영혼이 집어삼켜지는 것 같았다. 마치 그가 나를 꿀꺽꿀꺽 집어삼키는 듯이 아찔하고도 섬뜩한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몸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괴리와 생경함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저 힘없이 허우적거리면서도 나는 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있는 걸 느꼈다.

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정신없이 몰아붙여지는 가운데에도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순간 머릿속에 번쩍 빛이 터지며, 나는 술기운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취한 듯 머릿속이 몽롱했다.

그러나 현실이 멀게만 느껴지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의식이 혼미한 와중에도 내 몸에 닿는 금왕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내 목덜미와 허리를 꽈악 움켜쥔 그가 온몸으로 나를 짓누르며 입을 맞추고 있다는 걸.

‘아……. 우…… 읏…….’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눈을 떴지만 금왕은 여전히 눈을 내리감은 채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에게 빨리는 혀와 힘껏 짓눌린 입술이 얼얼했다. 현실을 자각하고부터 심장이 물 밖에 내어놓은 물고기처럼 미친 듯이 팔딱거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숨이 가빠 와 더욱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던 끝에 끌어안고 있던 금왕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그래도 금왕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보다 한참 뒤, 그를 떼어 내기 위해 애를 쓰던 내가 힘이 다 빠져 반항조차 포기했을 때쯤에야 겨우 놓아주었다.

“하아, 하아…….”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정신없이 헐떡였다. 폐가 찢어질 것처럼 숨이 차고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누군가 머릿속에 폭탄이라도 터뜨린 것같이 엉망인데도 이상하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초점이 풀린 눈은 바로 눈앞에 있는 금왕을 제대로 담아 내지 못했다.

그때, 한참이나 나를 괴롭혔던 익숙한 감촉이 다시 내 입술을 꾹 눌렀다. 지그시 누르는 힘과 잔뜩 열을 머금은 느낌에 처음에는 입술인가, 생각했는데 내 입술을 축축이 핥아 대는 감촉을 보아 혀인 듯했다. 금왕이 마치 도장을 찍듯 혀를 꾹꾹 눌러 내리며 내 입술을 핥고 있었다. 그러다가 쭙, 내 입술을 빨아 먹기까지…….

“우와아아앗!”

멍하니 금왕의 행동을 파악하다 말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반사적으로 그를 밀어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금왕의 단단한 가슴이 밀려나기는커녕 더 내 쪽으로 밀착했다. 그리고 자신을 밀어 대는 내 두 손을 한 손에 모아 잡더니 위로 끌어당겨 손등에다 쪽, 입을 맞췄다. 안 그래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는데, 이러다 내 얼굴이 터지지 않을까 진지하게 걱정될 만큼 심하게 불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어, 어, 어…….”

너무 열이 몰려서일까. 혀가 뻣뻣한 게 말조차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어버버, 당황한 얼굴로 금왕을 보았다. 그런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금왕이 내 어깨를 끌어안아 살며시 일으키더니 등을 토닥여 주었다.

“호연…….”

겨우 조금 진정할 뻔했는데, 근사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자 다시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 대고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 뜨거워졌다.

“술 취해 힘들어하기에, 오늘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금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응? 뭐가요? 느닷없는 사과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의문을 품는데 금왕이 이전과는 달리 조금 단호해진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먼저 시작한 것은…… 너다.”

“네? ……우와와왓!”

여전히 뜻 모를 소리를 하는 금왕에게 의문을 표하는데, 그가 갑자기 내 목에 고개를 묻었다. 흠칫 놀라 버둥거리다가 할짝, 보드라운 감촉이 닿자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아…… 어…… 으아…….”

당혹스러움과 민망함이 뒤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강아지의 혀처럼 말랑하니 기분 좋고 뜨거운 혀가 목덜미를 핥기 시작했다. 이미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아플 정도로 뜨거워졌다. 그 이상으로 강렬한 부끄러움이 나를 덮쳤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앞을 가렸다.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릴 만큼 두 눈에 힘을 꽉 주며 버티는데 갑자기 금왕이 내가 입고 있던 가운을 크게 벌려 어깨 양옆으로 내렸다. 순간 깜짝 놀라 눈을 뜨자 그의 입술이 어깨에 와 닿았다. 목가를 간질이던 입김이 어깨의 둥근 끝을 타고 쇄골로 이동했다.

“아우…….”

보드랍고 뜨거운 것이 다정하게 핥아 댈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 댔다. 그래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무언가가 간질간질 배 속을 자극했다. 그 감각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크게 허리를 뒤틀자 이번에는 금왕의 입술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열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입술로 꾸욱, 꾹 도장을 찍어 내리는 느낌이 지나칠 만큼 선명했다.

‘윽.’

척추를 타고 내려가던 금왕이 갑자기 움푹 파인 지점에서 멈추더니, 그곳을 핥기 시작했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감각이거니와 할짝, 할짝 하고 들려오는 적나라한 소리가 너무 부끄러워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하지만 금왕의 단단한 팔에 허리가 꽉 붙잡혀 불가능했다. 나는 다만 엎드리듯 몸을 웅크린 채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부끄러운 그 순간을 겨우 견뎠다.

몸을 작게 말고 눈을 꼭 감고 있으니 내 등허리를 핥는 그 감각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눈을 뜰까 생각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금왕이 돌연 혀를 멈췄다. 대신 혀와는 다른 느낌의 보드라움이 그곳에 닿았다.

“호연…….”

나를 끌어안은 채 내 허리께에 이마를 기댄 금왕이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실제로 등으로 와 닿는 열기에 흠칫, 놀라 몸을 굳히자 그가 소리 없는 숨결을 다시 한번 불어 냈다. 그 자리가 마치 타들어 갈 듯 뜨거웠다. 그곳에 불로 된 꽃이 피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향기에 취하기라도 한 듯 금왕은 나른한 목소리로 다시 나를 불렀다.

“호연…….”

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가 여느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뜨겁고 다정해서 마치 녹을 것만 같았다.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던 주먹에서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살며시 등 뒤의 금왕을 돌아보려던 때였다.

“흐악!”

나는 찬물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놀라선 비명을 내질렀다.

“호연?”

내 반응에 금왕이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갑자기 엉덩이를 꽉 깨물린 감각에,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그를 돌아봤다.

“그, 그, 왜 엉덩이를……!”

내가 당황해서 소리치자 금왕이 낮게 웃었다. 놀란 와중에도 그 웃음소리가 근사하다는 게 느껴져서 나는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가 내 눈가에 쪽 입을 맞췄다.

“본래 이러지 않나?”

원래 그렇다고? 뭐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의아해하는데 금왕이 눈가에서 입술을 떼어 냈다. 그리고 내 귓가를, 뒷목을, 어깨를, 허리를, 엉덩이를,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흐갸악……!”

나는 거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라서 크게 버둥거렸다. 갑자기 금왕이 입 맞춘 엉덩이를 양손을 꽉 쥐고 벌렸다. 그뿐 아니라…….

“그, 금왕, 무, 무슨…… 어, 어째서 그런……!”

너무 놀라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건 엉덩이를 깨문 것보다 훨씬 충격이 컸다. 금왕이, 금왕이……! 바로 내 엉덩이 사이를 핥아 버린 것이다! 충격에 그저 헉, 숨만 들이켜는데 금왕이 계속해서 혀를 놀렸다. 그러자 처음엔 놀란 마음이 너무 커서 느껴지지 않았던 혀의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아…… 응…….”

간질간질, 기묘한 곳에서 피어오르는 참기 힘든 느낌에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의외로 그곳이 예민한 부분인지 강아지의 혀처럼 보드라운 감촉이 생생히 느껴졌다. 너무 간지러워서 엉덩이가 움찔움찔 떨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이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발가락을 힘껏 오므리며 버텼다.

하지만 계속해서 뜨거운 것이 그곳을 핥아 대자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부터 살랑살랑 시작된 간지러운 기운이 온몸으로 번지며 제멋대로 몸이 꼬이기 시작했다. 흠칫흠칫 어깨를 떨면서도, 또 허리를 뒤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당장 도망가고 싶은 걸 두 눈을 꼭 감고 입술을 이로 꽉 깨물어 가며 겨우 버텼다. 하나 그런 내 노력은 곧 수포로 돌아갔다.

“아……!”

나는 비명과 함께 번쩍 눈을 떴다. 겨우 은밀한 곳에서 올라오는 자극에 버틸 수 있게 된 것 같았는데, 갑자기 금왕이 고개를 들어 내 젖꼭지를 이로 긁었다. 사람의 것보다 조금 뾰족한 송곳니가 스치듯 긁어 대는 느낌이 과하게 선명했다. 순간 깜짝 놀라서 쳐다보자 가볍게 스친 돌기를 본격적으로 깨물어 대는 금왕이 보였다.

아니, 사실 내가 본 것은 그의 탐스러운 검은 머리칼과 그 너머에 언뜻 보이는 높은 콧대뿐이었다. 그러나 곧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늘어났다.

“앗……!”

금왕이 내 유두를 문 채로 살며시 고개를 든 덕분이었다. 순간 아릿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움찔, 허리를 떨자 금왕이 달래듯 혀를 유두에 대고 문질렀다. 아릿함에 덧대어진 간지러움이 낯설어서 또 움찔거리자 금왕이 그제야 물어 당긴 것을 놓아주었다.

“읏.”

놀라고 당황해서 원망하듯 바라보자 금왕이 낮게 웃으며 내 머리칼에 입 맞췄다.

“이렇게 귀여워서…….”

마치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이 귓가에 스치듯 닿았다. 흑호의 모습을 한 금왕에게 내가 수시로 했던 말인데 그의 입에서 나오자 어쩐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멍하니 눈만 끔뻑이자 금왕이 이번에는 내 귓가에 입을 맞추며 다시 한번 그 말을 속삭였다.

“처음은 구석구석 천천히 즐길 예정이었지만, 너무 귀여워……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앗.”

내가 미처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금왕이 고개를 숙여 내 몸 구석구석을 핥아 대기 시작했다. 앞서 핥았던 목과 쇄골, 어깨, 젖꼭지, 그리고 그 주위의 넓은 가슴과 그 사이에 있는 무척 얄팍한 골, 배, 옆구리, 허벅지……. 내 등을 핥을 때는 무척 정중하고 부드럽던 혀가 지금은 마치 맛있는 먹이를 씹어 먹을 준비를 하는 짐승처럼 사나운 데가 있었다.

그렇다고 거칠게 움직인 것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다정히 행동하는 데도 무언가 모르게 흠칫거리게 되는 섬뜩함이 있었다.

“아……!”

내가 멈칫한 틈을 타 금왕은 더욱 대담한 일을 벌였다. 내 다리를 타고 내려가 내 발가락을 입에 물고 빨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온몸을 벌겋게 물들인 그가 돌연 발목을 움켜쥐고 입에서 발가락을 빼내더니 그대로 내게 시선을 맞추며 다가왔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다리가 휙 꺾이며 입고 있던 가운이 한껏 벌어졌다. 나는 기겁을 하며 다리를 모았지만, 금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내 다리 사이에 자신의 단단한 허벅지를 꾹 밀어 넣었다. 그리고 붙들고 있던 발목을 잡아당겨 내 다리를 자신의 허리에 두르게 만들더니, 고개를…… 숙인다?

“아, 우, 앗…….”

입에서 정신없는 신음이 쏟아졌다.

‘마, 말도 안 돼…….’

눈을 부릅뜨고 금왕을 바라봤다. 내 몸 곳곳을 정신없이 핥아 대던 그가 마침내, 내 몸 가운데 자리한 성기마저 물어 삼켰다. 도저히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꼭 감은 채 두 팔로 얼굴을 감쌌다. 그러자 오히려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더 선명해져서 또 흠칫했다.

그렇다고 손을 뗄 엄두도 나지 않아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채로 아래에서 밀려 올라오는 이상한 기분에 다리를 덜덜 떨었다. 안 그래도 예민한 곳을 금왕의 그 보드라운 혀가 핥아 대자 몸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이상해질 것 같았다. 화르륵, 달아오르는 얼굴에 그 앞을 가린 팔이 뜨거울 지경이었다.

“금왕…… 아, 그만…… 제발…… 응, 아응…….”

애원을 내뱉던 입에서 나도 모르게 신음을 쏟았다. 그제야 금왕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호연…….”

나지막한 부름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부끄러워서 두 손으로 가린 채 겨우 눈만 돌렸다.

“미안하다. 좀 더 여유롭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금왕이 곤란한 얼굴로 사과했다. 그 목소리가 또 너무 감미롭고 다정해서, 드디어 내가 알던 그 금왕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얼굴을 가렸던 손을 풀고 그에게 뻗었다.

“정말, 미안하다.”

“어?”

왜 또 사과하지? 의문과 동시에 금왕이 갑자기 흘러내린 내 한쪽 다리를 다시 자신의 허리에 감았다. 왠지 불길한 예감에 어, 어? 하며 놀란 눈길을 보냈지만 금왕은 미안한 얼굴로 역시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해 줄 뿐이었다.

“조금, 아플 거다.”

“어? 아윽……! 무, 무슨……!”

갑자기 아래에서 생경한 감각이 전해졌다. 열기를 훅훅 내뿜는 무언가가 내 가랑이 사이에서 비비듯 움직였다. 무언지 알 것 같았지만 모른 척하고 싶은 기분에 그대로 우뚝 굳어져 금왕만 바라보다가, 두꺼운 것이 뒤쪽의 구멍을 찔러 대는 감각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버둥거렸다. 금왕이 달래듯 숨결 같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호연…….”

귓가를 휘감는 달콤한 울림에 홀린 것도 잠깐. 나는 두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아웃! 윽, 으아……!”

금왕이 혀로 희롱하기 전까지, 이제껏 한 번도 다른 이의 접근을 허락한 적 없는 은밀한 곳에 마치 불에 달군 쇠처럼 뜨겁고 단단한 것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저 살갗 너머로 느낄 때도 한껏 대단한 열기가 느껴졌는데 그것이 안으로 파고들자 화상을 입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좁은 곳에 한눈에도 버거워 보이는 그가 침입해 오니 응당 아플 법도 했는데 처음에는 그가 내뿜는 열기 때문에 아픈 줄도 몰랐다. 다만 그것이 들어찬 곳마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의 부끄러움보다 그 미칠 것 같은 열기가 더욱 참기 힘들었다.

“아, 아……!”

도무지 진정하지 못하고 두 팔을 잔뜩 허우적거리자 금왕이 내 허리를 붙들고 있던 손을 떼어 내 팔목을 모아 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두근.

손끝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울림에, 한 번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 둔중한 진동에 깜짝 놀라서 금왕을 보았다.

“이래서, 나도 여유가 없다. 호연…….”

그 말에야 시종 차분하게만 느껴지던 금왕의 냉정한 얼굴에 깃든 초조함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에 내 눈이 더욱 커지자 금왕이 살며시 고개를 숙여 내 눈가에 입 맞췄다.

“그리 귀여운 얼굴로 바라보면, 더 여유가 없어지니…… 조금만 봐 다오.”

금왕이 알아듣기 힘든 말과 함께 끌어안는 순간에도 나는 그의 가슴에 댄 손을 그대로 두었다. 손끝에서는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조금 더 바쁘게 뛰어 대는 심장의 울림이 전해져 왔다. 얇은 피부와 단단한 근육 너머로도 선명히 느껴질 만큼 세찬 두근거림이었다. 그를 음미하듯 가만히 손을 대고 있던 나는 한 손을 떼어 내 가슴께로 가져갔다. 그와 마찬가지로, 혹은 그보다 더 정신없이 뛰어 대는 내 심장이 느껴졌다.

두근두근, 두근― 두근두근, 두근― 두근…… 두근…….

금왕의 심장을 느끼며 함께 안정을 찾아가서인지, 처음에는 서로 다른 빠르기에 엇박으로 뛰어 대던 심장이 어느 순간부터는 공명하듯 함께 뛰기 시작했다. 언제 서로가 달랐느냐는 듯 완벽히 하나가 되었다.

‘아…….’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지금 금왕과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바로 이 심장 박동처럼 우리가 하나로 결합하는 일이라는 걸. 순간 왠지 모르게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끼며 뜨거워진 눈으로 바라보자 금왕이 다시 내 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분명 마음으로는 완벽히 그를 받아들이게 된 나였지만 내벽을 스치며 들어오는 느낌이 너무 선명해서 도저히 태연하게 굴 수가 없었다. 다시 화르륵 불타오르는 얼굴이야 두 손으로 가리면 되었지만, 다시 흥분해 날뛰는 심장은 도저히 진정되지 않았다.

“으, 아윽…….”

마침내 금왕이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자 정말로 미칠 것 같았다. 심장은 물론이고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열기로 가득 채워져, 눈앞이 하얗게 세고 온몸은 부끄러움에 새빨개졌다. 어디를 보고 어떤 자세를 잡고 어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금왕의 크고 단단한 것이 나를 가득 채운 순간에 머릿속은 텅 비어 버렸다.

“아, 아…… 아!”

도저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끄러운 신음만 내뱉다가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내벽 안쪽에서 팟, 하고 무언가가 폭발하듯 튀어나왔다. 무언가가 뿌려지는 느낌이 없는 걸 보아 정액은 아니었다.

‘잠깐, 정액이 아니면 이건 대체……?’

당황해 의문을 품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이성을 날려 버릴 것처럼 머릿속이 녹아내리고 몸도 녹아내렸다. 단지 녹아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갑자기 몸 곳곳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듯 강렬한 감각이 터지더니, 폭발한 자리마다 참을 수 없는 열꽃이 피었다.

열꽃이 뿌리를 내린 듯 그곳마다 간질간질한 감각도 함께 피어났다. 피부 겉으로가 아닌 몸 안 깊은 곳에서부터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것 같은 감각에 나도 모르게 몸을 뒤틀었다. 견디기 힘든 감각에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몸이 정상이 아니어서인지 머리도 덩달아 혼미하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으, 으윽, 아, 아파. 시, 심장…….”

숨이 막힐 것처럼 강렬한 감각들에 정신없이 헐떡거리기 시작한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나는 고통으로 심장을 부여잡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견디기 힘든 기분에 몸을 떨었다.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금왕이 당황한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연, 괜찮으냐?”

“아, 아…… 제발…… 빼, 빼 주세요!”

도저히 빈말로도 괜찮다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미칠 것 같은 감각에 몸을 뒤틀다가 그 근원이 무엇인지 간신히 깨닫고 애원했지만 금왕은 곤란한 얼굴을 했다.

“불가능하다. 벌써 아래가 부풀고 고리가 나와 사정을 하기 전까지는 뺄 수 없, 이런…….”

“하, 하윽. 윽…….”

그제야 나는 앞서 느낀 것의 정체가 뭐였는지, 그리고 입구 부근이 왜 아까보다 훨씬 빡빡하고 괴로운지를 깨닫고 신음했다. 정말 그대로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아래를 잔뜩 조여 댄 탓에 금왕이 안절부절못한 채 괴로워하는 걸 알았지만, 나도 나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아우, 우, ……아?”

심장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와중, 갑자기 뺨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감촉에 번쩍 눈을 떴다. 조금 전 얼굴에서 살랑거리던 그것은 까만 바탕에 은색의 줄무늬가 들어간, 익숙한 빛깔과 무늬를 지닌 길고 보송보송하고 보드라운 것. 즉, 금왕의 꼬리였다. 인간 모습일 때도 꼬리를 만들 수 있는 건가?! 놀라서 바라보는 동안 금왕은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여 내 턱과 가슴을 간질였다.

“하하. 하하하!”

잠시 지금의 상황과 고통을 잊은 채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린 나는 이내 그 꼬리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부디…… 이걸로 조금만 버텨 다오.”

순순히 꼬리를 내어 준 금왕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꼬리에 한참 정신이 팔려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상황을 자각하고 화들짝 놀라 그를 보았다. 금왕이 걱정 말라는 듯 내게 붙잡힌 꼬리 끝으로 내 볼을 쓰다듬었다.

동시에 그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금 상태로는 중간에 그만둘 수는 없으니 어서 끝마쳐 주기 위해서일까. 금왕이 사냥을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맹수처럼 맹렬히 내달리기 시작했다.

“음, 음…….”

손에 쥔 꼬리로 입을 꼭 틀어막고는 터져 나오는 신음을 삼켰다. 그렇다고 꼬리를 입 안에 넣지는 않았다. 그랬다가 나도 모르게 깨물어 버릴까 봐, 입술을 꼭 닫은 채 그 앞에 대기만 했다. 그래도 자꾸만 손에 힘이 들어가 아플 법도 한데도 금왕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아픔을 느낄 여유가 없는 건지도 몰랐다. 그는 내 두 다리를 자신에게 두른 채 힘차게 허리를 흔드느라 무척 바빴으니까.

“아우, 욱!”

나 또한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인간형 몸체의 내부를 본체의 근육으로 채워 놓기라도 한 듯 금왕은 엄청나게 힘이 넘쳤다. 정말 교미하는 수컷 호랑이처럼 힘차게 허리를 놀렸다. 그때마다 흥분한 금왕의 몸에서 눈부신 은색 무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때는 그것이 예뻐서 온통 눈길을 빼앗겼지만 이내 그것을 볼 수 없게 됐다.

“읏, 금왕……!”

쉴 틈 없이 시달리며 잔뜩 지쳐 버린 내가 애원하듯 불러 보아도 금왕은 멈추지 않았다. 이 순간의 그는 내가 알던 금왕이 아니라 호랑이 본연의 기운이 넘쳐흐르는 짐승에 가까웠다. 이전에는 왕이라는 위엄과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마음에 그를 단지 짐승이라고만 여겨 본 적은 없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도 알고 보면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는 걸.

“아…… 응, 으흣……!”

이미 충분히 격렬하다 생각한 금왕의 움직임이 더욱 거칠어졌다. 엄청난 힘으로 뜨거운 것이 속을 문지르며 파고들었다 다시 나갈 때마다 머릿속에 무언가가 펑펑 터지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꼬리를 쥐고 있지 않았다면 엉엉 울면서 정신을 놓아 버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손끝에서 느껴지는 보드라운 감각에 의지해 겨우 정신을 잃지 않고 버텼다. 그런 나를 알았는지 금왕이 더욱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쾅! 쾅!

내 어깨를 붙잡은 손길이 아니라면 사방으로 튕겨 나갈 것처럼 세차게 금왕이 아래를 몰아붙였다. 점차 그 간격이 좁혀지고, 그에 반비례해 힘은 커졌다.

“아, 아, 아! ……아?”

정신없이 신음을 흘리다 멈칫해서 금왕을 보았다. 한참이나 나를 괴롭히던 그가 갑자기 뒤로 크게 물러났다. 아직 끝이 난 것 같지 않은데도 찾아온 갑작스러운 후퇴에 의아해하는 찰나.

“하으읏……!”

잠시 물러났다 생각한 금왕이 순식간에 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쉴 새 없던 움직임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아……!”

내부에 퍼지는 온기와 금왕의 흥분한 신음에 나도 바르르 허벅지를 떨며 사정했다. 사정의 여운과 동시에 내부를 가득 채운 온기가 내게로 스르르 녹아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아흐, 흐으…….”

드디어 맞이한 절정과 예민해진 내벽에 부드럽게 퍼지는 나른한 간질거림에 순간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사정 후 내 어깨에 턱을 괴고 얕게 헐떡이며 숨을 고르던 금왕이 고개를 들어 내 뺨을 핥았다. 눈도 핥고, 콧등도 핥고, 입술도 핥았다. 천천히, 그리고 무척이나 다정하게 모두 핥았다.

그 따스한 위로에 나는 겨우 울음을 멈추고 해사하게 웃었다. 그리고 금왕을 꼭 끌어안았다. 아직도 심장은 여느 때보다 조금 빠르게 뛰었지만, 머릿속과 몸은 이제 좀 안정이 되어 맞닿은 금왕의 온기가 기분 좋기까지 했다. 여전히 손에 꼬리를 쥐고 있었기에 그의 목에 두른 두 손으로 느긋하게 꼬리를 조물거리며 더욱 안도를 찾아 갔다.

“호연…….”

금왕도 나를 힘껏 마주 안았다. 뼈가 눌리는 느낌이 들 만큼 세게. 약간 아픈 느낌도 들었지만 온몸을 꼭 감싸 주는 온기가 싫지 않아 얌전히 안겨 있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금왕이 나를 놓아주더니 자신을 끌어안은 내 팔도 풀어냈다. 덕분에 꼬리를 같이 부여잡고 있던 손이 제각각 떨어졌다.

“어?”

조금 더 온기를 느끼고 싶었는데 이리 서둘러 밀어내자 왠지 아쉽고 서운했다. 그런데 금왕이 문득 꼬리를 잡고 있는 손이 아닌 그 반대편 손을 붙잡아 당겼다. 한데도 이상하게 손끝에 보송보송한 감촉이 느껴졌다. 대체 이게 뭐지, 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아아!’

방금까지만 해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동그란 귀가 금왕이 머리 위에 퐁, 하고 나타나 있었다. 놀람도 잠시,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바로 홀라당 녹아 버린 나는 금왕이 손을 뗀 후에도 혼자 계속 그것을 조물거렸다. 여느 때와 달리 손아래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사이즈가 되었지만, 보송보송한 감촉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 기분 좋은 느낌에 한껏 취해 열심히 귀를 만지작거리던 나는 문득 왜 갑자기 이런 게 솟았을까 의아해졌다. 그때 금왕이 갑자기 손을 들어 자신의 귀를 매만지던 내 손을 꾹 눌러 내렸다. 손 아래 부대끼는 보드라운 감촉에 웃음을 터뜨리며 금왕답지 않은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다.

“호연…….”

다시 한번 자신의 귀에 내 손을 꾹 눌러 문지른 금왕이 내 귓가에다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번에는, 이걸로 버텨 봐라.”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귓가로 달라붙는 숨결에 흠칫 놀라 굳어진 동안, 아직도 나를 채우고 있던 금왕의 성기가 다시 부풀기 시작했다. 나를 불태울 것 같은 열기도 함께 되살아났다. 그제야 그의 말을 깨달은 내가 깜짝 놀라 거부하기도 전에 내부에서 무언가가 팟, 하고 터졌다. 내 심장이 다시 폭발하듯 뛰기 시작했다. 숨넘어갈 듯 뜨거웠던 정사의 제2라운드 시작이었다.

그 후, 내가 기절하기 직전 혼미한 눈으로 올려다본 금왕이 단 하나만 빼고, 작은 사이즈의 본체로 돌아가 있었던 것 같은 그 기억은…… 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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