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개나 고양이, 토끼, 고슴도치 등 사람들이 흔히 좋아하는 귀엽게 생긴 동물도 다 좋아했지만 그 무엇보다 특히 좋아한 건 맹수류였다. 사자, 호랑이, 표범, 재규어, 치타, 늑대 등등의 맹수를 예전부터 무척 좋아했다.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용맹한 모습이 멋져서? 물론, 그들의 멋진 모습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맹수류의 동물들을 좋아한 진짜 이유는…… 귀여워서였다. 새끼 때의 맹수가 귀여운 건 당연하고―다들 알겠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어릴 때 다 귀엽다―다 자라 이빨과 발톱을 날카롭게 빛내며 사납게 포효하는 모습도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특히 고양잇과 맹수들이 사뿐사뿐 땅을 디디는, 둥글고 폭신해 보이는 앞발에 보송보송 나 있는 털을 보면 그게 영상이든 사진이든 모니터를 향해 달려들었고, 동물원에서 실물을 볼 때면 정말 참을 수 없는 기분에 발을 동동 굴렀다.
대부분의 맹수가 가진 둥그런 입매도 무척 매력적이다. 날카로운 눈을 일자로 감고 나른한 표정을 지어도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각 개체마다 귀여운 포인트가 또 달랐다.
호랑이는 목에서 시작되어 볼까지 이어진 입 주변의 뽀송뽀송한 털이 특히 매력적이지만, 몽실몽실 통통한 볼살이나 봉긋한 귀도 귀엽다. 온몸에 새겨진 줄무늬도 매력적이고 얼굴 곳곳과 배에 나 있는 하얗고 보송보송한 털도 사랑스럽다. 날렵한 몸매나 수컷 중에도 특히 덩치가 큰 녀석들이 보여 주는 두툼한 몸도 예쁘다. 검은 아이라인의 동그라면서도 날렵한 눈매나 코 아래 송송 난 긴 수염도 귀엽기 짝이 없다.
사자는 왠지 모르게 조금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 좋다. 뻥-해 보인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눈매가 귀엽고 성별에 따라 각기 다른 매력도 있다. 갈기가 없이 미끈하게 생긴 암컷은 아름다우면서 멋있고 갈기가 복슬복슬 난 커다란 수컷은 용맹하면서 멋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에너지를 절약한다고 24시간 중 20시간 이상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뒹굴거리는 그 특유의 느긋함이 좋다. 그러다 가끔 새끼랑 놀아 준다고 꼬리만 철썩이는 모습은 정말 못 견디게 귀엽다.
치타는 몸에 비해 너무 소두(小頭)인 점이 처음에는 좀 별로였던 적도 있지만, 그만큼 날렵한 움직임과 잘빠진 몸체, 그리고 무엇보다 눈물 길처럼 눈에서부터 입까지 이어진 검은 줄이 매력적이다. 또 새끼 치타는 목 뒤에서부터 등까지 갈기 같은 하얀 털이 나 있어서 성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 무척 귀엽다. 깃털 모자를 쓴 어린 인디언 같다고나 할까.
언젠가 엄마 치타 곁에 같은 자세로 나란히 선 아기 치타와, 새끼의 턱을 핥아 주는 엄마 치타의 모습이 담긴 두 장의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내게 치타는 다정한 모자의 상징 같은 느낌이 들어 또 다른 사랑스러움을 가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표범은 왠지 짠해서 마음이 갔고 그만큼 더 사랑스러웠다.
표범 또한 대표적인 고양잇과 맹수이지만 다른 맹수에 비해 훨씬 몸체도 작고 약한 편에 속한다. 그래서 다른 강인한 맹수들에게 음식을 뺏기지 않기 위해 사냥에 성공하면 나무 위에 먹이를 저장해 두기도 하고, 또 위험에 처하면 나무 위로 대피하기도 한다. 가끔 더위를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가기도 하는데 그때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가지 위에 올라 있는 모습은 정말……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흑표범은 탐스러울 만큼 매끈한 털로 덮인 유연한 몸체만으로도 단연 시선을 끌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재규어나 곰 같은 동물도 좋아한다. 조류는 썩 좋아하지 않지만 독수리나 매는 왠지 귀여워서…….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이 없는데, 어쨌든 결론은 내가 맹수를 무척 좋아하고 그 이유가 하나같이 다 귀여워 보여서라는 점이다. 단지 생김새가 귀엽다는 의미가 아니라 왠지 모를 사랑스러움이 마구 샘솟는달까.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했다. 그래서 제발 한 번만이라도 손으로 만져 보고 꼭 끌어안아 보고 싶었다.
한데, 보통의 맹수에게 그런 짓을 했다간 그대로 저세상행이니 불가능했다. 그래서 오죽하면 어릴 때 소원이 동물하고 말이 통하게 되어서 빌고 빌어 한 번 안아 보는 거였다. 물론,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이었다.
하지만 가끔 TV나 인터넷에서 그런 사람들이 나왔다. 어릴 때 다친 맹수를 구해 준 은인이라든가, 영화에 출연하는 동물을 조련하는 사람이라든가, 아프리카에서 맹수들을 사육하는 사람이라든가. 분명 세상 어딘가에는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맹수들과 아무렇지 않게 뒹굴며 지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볼 때면 부러워서 침만 꿀꺽꿀꺽 삼켰다.
워낙에 귀여워하다 보니 내게 있어 맹수들은 옆집 강아지같이 친근한 느낌이었으나, 그렇다고 그들이 가진 용맹함이나 공격성을 간과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다 행동했다면, 나는 이미 어느 맹수 하나에 열렬히 달려들다 장렬히 물어 뜯겨 죽었으리라.
아니, 사실 그러진 못했을 거다. 내게는 그렇게 맹수와 독대할 기회가 전혀 없었으니까. 맹수들과 함께 뒹굴 자연은커녕, 자그마한 반려동물만 겨우 키울 수 있는 도심의 아파트에 살던 나에게는 그조차 무리였다.
너무 맹수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한때는 동물원 사육사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동물원 우리에 갇혀 지내는 녀석들이 아니라 드넓은 들판을 마음껏 뛰어노는 자유로운 맹수라는 걸 깨닫고 그 꿈을 접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에 남은 미련을 매일 동물원에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해서 지우고, 언젠가 반드시 아프리카의 사파리 공원에 가서 꿈을 이루자며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나는 1년 반 동안,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다 드디어 꿈을 이룰 때가 왔다. 군 입대 전에, 꼭 소원하던 아프리카에 가 보겠다는 일념으로 학교를 휴학하고 그동안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여행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단지 여행 준비를.
그런데…… 대체 왜, 나는 지금…… 아프리카의 사파리 공원에 가서나 볼 수 있을 맹수와 마주하고 있는 걸까.
아니, 아프리카에서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내 가슴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 어릴 때부터 읽어 온 그 무수한 동물도감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집채만큼 거대한 크기를 지닌…… 검은 호랑이였으니까.
정말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