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사대흉수
쏜살같이 날아오는 그 청흑색 거대한 용은 맹장이었다. 지금 그의 몸속 용맥은 이미 궁기의 혈로 거의 다 치유가 된 상태였다. 실력도 합체기로 한 번에 올랐다. 그가 동굴속에서 궁기의 혈을 깔끔하게 흡입한 후 눈을 떴을 때 궁기는 이미 그 봉인을 빠져나온 상태였다. 거대한 요수는 입으로 연못에 웅크리고 있던 맹장을 삼키려 했다. 맹장은 거대한 체형에 동굴 전체가 무너지는 걸 목격하는 곧바로 작게 변신한 후 바위 틈새로 도망쳤다. 궁기를 떨쳐버리고 청룡족으로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도망친 것도 잠시 고개를 돌리자 그 흉수가 이미 그를 따라잡았고, 맹장은 그렇게 흉기를 이끌고 천하까지 오게 되었다.
이때 천하 상공은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두 사람이 오자 하늘 모퉁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궁기가 멈춰서서 귀청이 찢어질 듯 포효하자, 하늘의 균열은 더 빠르게 갈라졌다 그리고 세 마리의 거대한 요수가 그곳을 뚫고 나왔다. 그 끔찍한 상황에 모두 비명을 질렀다.
양의 몸에 사람의 얼굴, 호랑이 이빨에 사람 발을 가졌고, 다른 한 마리는 호랑이 몸에 사람 얼굴, 꼬리가 엄청 길고 멧돼지 이빨을 가졌다. 나머지 한 마리는 황낭처럼 생겼고 다리 여섯에 날개 네 개를 가졌고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도철, 도올 그리고 혼돈 세 마리의 상고 흉수였다!
궁기가 막 세상에 내려왔을 때 십 대 신수가문의 손실이 막대했다. 이 대륙에 진동했던 피비린내는 여전히 수진자들의 기억 속에 깊이 박혀있었다. 고서에서만 보던 사대 흉수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니 대륙 전체에 큰 재난이 닥칠 것 같았다.
숨결이 불안정해지는 송기연을 바라보며 유가는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공간을 찢고 나온 세 마리 흉수를 보니 바짝 긴장이 되었다. 그가 제일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기억을 되찾은 후로 그는 상고의 네 흉수가 사실 동시에 존재했고, 서로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자신은 천마로 공간을 찢어 이 대륙에 오게 되었고, 후에 그자와의 대전으로 천하 상공의 공간은 계속 불안정했다.
궁기는 이 틈에 이 대륙으로 와서 말썽을 피우려 했지만 십 대 신수 가문에게 재빨리 봉인을 당했다. 귀곡심연에 갇힌 뒤 수백 년 동안 도망치지 못했고, 나머지 세 흉수는 봉인 때문에 그의 위치를 감지하지 못해 한참을 찾아다니다 오늘에서야 모든 걸 느끼고 공간을 찢고 나온 것이다.
“금성!”
유가는 저 멀리서 흉수를 보고 얼어있는 금성에게 명령했다.
“마족인들을 집결시키고 흉수와 눈 마주치지 않도록 하라!”
상고의 네 흉수가 어떤 존재인지 그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가 전성기라면 네 흉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그는 절정일 뿐이었다. 또한 송기연과의 전투로 중상까지 입어 상황이 많이 불리했다. 그는 지금 어떻게든 흉수와의 싸움을 피해야 했다. 만약 상대가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면 마족이 먼저 손을 쓸 일은 없었다.
“소인 명을 받들겠습니다.”
고금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유가와 선계를 가지려던 생각을 단념했다. 상황이 급변하여 상고의 네 흉수가 온 대륙을 위협하고 있는 건, 선계와의 갈등을 능가한 정도였다.
“존주. 괜찮으십니까?”
왕다국이 유가 곁으로 다가와 유가 왼쪽 가슴에 흉측한 관통상을 보고 놀랐다.
“저 잡종은 정말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군요.”
안 그래도 중상에 창결이 남긴 신위(神威-신과 같은 위력)까지 끊임없이 유가의 몸을 파괴하고 있었다. 이 상처가 언제쯤 치유가 될지 알 수 없다. 왕다국은 송기연에 대한 미움이 더욱 짙어졌다.
“괜찮…… 큭, 쿨럭!”
유가는 이미 너무 무리를 한 상황이었다. 방금 송기연과의 대치에 모든 힘을 다 쏟아부었다. 기침을 하고 돌아서, 손에 묻은 피를 아무렇지 않게 붉은 옷 위에 닦아냈다. 반지 속에서 검붉은 외투를 꺼내 걸치며 몸의 상처를 가렸다. 그러곤 머리에 비녀를 풀었다 틀어 올렸다. 지금 유가는 얼굴만 좀 창백할 뿐 이미 예전에 기세를 회복했다.
유가는 마족의 제일 앞에 나서서 모여 있는 네 흉수에게 다가갔다. 늘씬한 몸은 흉수에 비해 상대도 되지 않게 왜소했지만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화산과 같았다.
거대한 머리로 유가의 얼굴을 확인한 궁기는 거대한 눈동자가 떨렸다. 도철 쪽으로 물러나 세 흉수를 향해 사람의 말을 했다.
“형님들, 저 사람은 꽤 실력이 좋습니다. 만약 칠 년 전에 저자가 제 봉인을 강화하지 않았다면 그 거지 같은 귀곡심연에서 예전에 도망쳤을 겁니다!”
궁기는 나이가 많지 않았다. 그때 심심해서 찾아왔다가 이 대륙에서 실력이 부족해 백 년이나 갇히게 되었고, 유가를 만나게 돼 비참하게 두 번째 봉인을 당했다. 그리고지금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원기가 크게 손상되었지만 형들을 만나게 되자 바로 그들에게 유가에 대해 알려 주었다.
경험이 많지 않던 궁기는 유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세 흉수는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가 천 년 전 세상에 이름을 떨쳤던 천마라는 걸 알고 있다.
창결검을 쥐고 있던 송기연은 유가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검은 눈동자는 완전히 붉게 변했는데, 그 속에서 새어 나오는 감정은 아까와 완전히 달라졌다. 광기 가득했던 표정은 그의 눈동자 색을 따라 완전히 사라졌고,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그가 유가에게 다가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유가, 냉정해지니 네가 하는 말은 허점투성이더군. 당신과 엽망지의 성격은 많이 다르지만, 날 향한 엽망지의 마음이 완전히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의 웃음을 난 똑똑히 기억한다. 만약 진짜 감정이 아니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다 탄로 났겠지. 게다가 그자는 항상 내가 필요하고, 날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만약 이 모든 게 당신이 말한 대로 그저 놀이에 불과했다면, 그 안에서 잃어버린 건 분명히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송기연이 더욱 활짝 웃었지만 꼭 얼굴에 가짜 면구를 쓴 듯 눈은 더욱 공허해졌다.
“유가, 언젠가 널 장악하고 너와 나 두 사이의 원한을 하나하나 똑똑히 알려주지.”
그때 무슨 수를 써서도 진실을 털어놓게 하고 말 것이다.
겨우 다스린 심정이 다시 아득해졌다.
귀곡심연 그리고 무주지에서 이 녀석과 지냈던 순간들.
이자가 자신을 위해 상처 입고, 눈물을 흘리고, 이틀 전 신묘도에서 자신을 ‘사존’이라 불렀던 일까지.
유가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송기연에게 걸어가 비웃었다.
“네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사랑을 받아? 지금 세 살짜리 어린 애를 농락하는 것인가?”
손으로 매끄러운 얼굴을 따라 그리며 송기연에게 그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송기연을 하찮게 바라보며 반문했다.
“정말 본존이 널 사랑했다고 생각하는가?”
주먹을 꽉 쥔 송기연이 붉은 눈으로 유가의 얼굴을 샅샅이 살폈다. 조금의 허점이라도 밝혀내려 했다. 하지만 유가의 두 눈엔 비웃음과 냉소만 가득했다. 달리 담겨진 걸 찾을 수 없었다.
유가는 붉은 입술을 매혹적이게 비틀며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군.”
우물쭈물하다가는 오히려 당하고 만다. 유가는 송기연과 자신 사이의 원한은 결코 속속들이 셈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열두 마사와 송기연의 가문. 영혼 깊숙한 곳에 두려운 기억.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과 증오가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두 사람이 어떻게 엽망지와 어린 그 녀석처럼 지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유가는 엽망지의 가면을 벗고 두 사람의 관계를 철저하게 끊었다. 유가의 한낱 놀이라고 단언했다. 송기연이 자신을 죽도록 증오해야 했다.
“그래?”
텅 빈 송기연의 목소리가 말했다. 하지만 곧바로 손을 뻗어 유가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의 뒷덜미를 우악스레 자신 쪽으로 끌어 누르고 새빨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원망하듯 붉은 입술에 더 붉은 상처를 만들고 비릿한 입술을 핥고 빨아들인 뒤, 반응이 없는 유가를 밀쳐냈다.
잠깐 멈칫한 유가는 입술의 피를 닦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미쳤구나.”
선마 양계의 사람들 모두 놀라 숨을 들이켰다. 방금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송기연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쿠쾅-!
그 시각 도철이 포효하자 모두의 이목이 다시 집중됐다. 유가도 시선을 그 흉수에게 돌리며 송기연과 거리를 벌렸다.
송기연에게 대처하지 못하겠다는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유가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송기연이 단념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도철의 거대한 눈동자가 송기연에게 향했다.
송기연의 숨결이 느껴지자 눈을 가늘게 떴다. 좀 전에 유가를 보고도 놀랐으나, 지금 그때 그 살신(杀神)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원래 궁기의 복수를 해주려던 것이지만 지금은 어떤 결정도 쉽사리 내리지 못했다.
지금 두 사람이 부상당해 자신들보다 실력은 못 하겠지만, 성신이 된 영혼은 예로부터 완전히 소멸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 두 사람을 말살한다고 해도, 후에 그들의 환생이 자신을 찾아온다면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송기연도 겉으로 차분한 척했지만, 그도 자신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몰랐다. 심지어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가의 입술을 깨물어 버렸다. 그의 허점을 찾으려던 것뿐인데.
송기연이 자조했다.
유가는 그의 가문을 멸한 원수이자, 자신을 구해준 따뜻한 엽망지였다. 완전히 상반된 인물이라 그는 지금 어떻게 유가를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저 저 사람을 잡아서 끌고 가 모든 걸 털어놓게 하고 싶었다. 저자가 저렇게 잔인한 말을 내뱉고 하찮아하는 표정을 지어도 그는 계속 의구심이 들었다.
그는 믿지 않았다.
“천마, 수백 년 동안 궁기를 봉인해둔 것에 대해 난 당신에게 책임을 묻고 싶지 않네. 하나 모든 신수 가문에게 묻지 않겠다는 건 아니네.”
도철은 평온한 표정으로 유가를 바라보지만 말속에 담긴 의미는 단호했다. 그는 수진자를 번거롭게 만들진 않겠지만 신수 가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뜻이었다.
“방금 그 청룡이 궁기의 피를 깨끗하게 삼켰으니 그를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러니 천마는 부디 이 일엔 관여하지 마시게.”
도철이 거대한 발톱으로 사람들 틈에 숨어있는 맹장을 가리키는데, 그와 한판 붙고 싶은 모양이었다.
맹장은 재수 없게 걸렸다고 속으로 욕을 했다. 그는 유가와 선마계의 고수들에게 저 네 흉수를 떠넘기고 자신은 그 틈에 도망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흉수는 다른 건 상관도 하지 않고 신수 가문만 노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수진자들은 그를 도우려 괜히 위험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지 않을 테니 절망적이다. 도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유가는 청흑색의 눈에 익은 용이 하나 보였다. 그가 귀곡심연에서 궁기의 피를 흡입했다는 게 떠오르자 머릿속에서 답이 하나 떠올랐다.
“궁기가 대륙으로 와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 신수 가문이 그를 봉인한 게 잘못된 것도 아닌데, 어찌 너희가 처리할 테니 사람을 넘기라는 것이냐?”
송기연이 창결검을 들고 도철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가 돌아서서 맹장을 바라보는데 눈에 이채가 발했다. 그자의 기억 속에서 저 청룡은 후에 자신의 탈 것이 되며, 청룡족의 족장이 되고 그가 주작족에 저항하는 승부수가 되었다. 그러니 무조건 구해야 했다.
송기연을 바라보고 도철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설마 저 뱀에게 목숨을 건 것이냐?”
저 살신이 남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네 흉수에게 대놓고 핀잔을 주었다.
멀리서 듣고 있던 맹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에게 송기연은 만난 적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자가 자신을 위해 도철과 대치하고 있자 마음이 놓이는 한편 의구심도 들었다. 이변이 일어나면 꼭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하니 그 변화를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송기연이 왜 나섰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 유가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저자가 아구가 이를 악물고 얘기하던 청룡의 맹장이라는 걸 알아챘다. 아구가 맹장을 욕하던 걸 수도 없이 들었고 전생에 아구의 몸에서 흉터까지 봤던 터라 둘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 지 알고 있었다. 유가도 맹장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다.
유가가 도철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마족인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저 청뱀을 죽이든 토막을 내든 본존은 개입하지 않겠네.”
유가는 똑똑히 알고 있다. 지금 송기연을 단념시키려면 그의 죽음에 개입하지 않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만약 다시 손을 쓴다면 끊어내지 못할 것이다.
“천마가 개입하지 않는다니 마음이 좀 놓이는군. 그럼 이 고수분께만 실례를 좀 해야겠군.”
도철, 도올, 궁기, 혼돈은 상고 네 흉수로 지위와 실력이 극강했다. 좀 전에 유가에게 격식을 차린 것뿐인데, 송기연은 그만 선을 넘어버렸다. 이미 천마가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니, 이번에 죽기 살기로 저 살신에게 도전하는 것도 안 될 건 없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뜬 송기연의 머릿속이 한순간에 또렷해졌다. 그는 유가가 전에 자신의 실력이 소모되는 걸 아끼지 않고 몇 번이고 자신을 구해주었고, 그러다가 흉터까지 남은 일들이 떠올랐다. 그는 이 모든 게 거짓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너덜너덜한 흰 옷을 입은 소년이 창결검을 쥐고 기세등등하게 네 흉수를 가리켰다.
그리곤 유가의 이름을 꺼내는데, 어이없는 자조가 섞여있었다.
“유가, 만약 이번에도 내가 버티지 못한다면, 날 구해 줄 것인가?”
그는 유가를 원망했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고통과 마굴에서 지낸 두려운 기억들을 준 걸 원망했다. 하지만 지금 애석하게도 자신이 더 원하는 건, 유가가 자신에 대한 감정과 자신에게 한 모든 행동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었다.
유가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자신은 미친 게 분명했다. 정말 완전히 정신을 놓은 것 같다.
“기연! 내가 도와주마!”
완십주가 이를 악물고 서 있었다. 그는 송기연과 유가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며, 지금 왜 송기연이 저 청룡을 구하려는 건지 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그는 원래 감정을 중시하는 사람이고, 송기연 혼자 위험에 빠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저도 돕겠습니다!”
“저도요! 고작 상고에 네 흉수 아닙니까?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완십주를 따라 순식간에 정상, 초운, 백유리가 송기연의 곁으로 다가갔고, 그 뒤를 이어 경창파 제자들, 심지어 선계의 고수들도 모두 앞으로 나왔다.
송기연이 선계를 위해 유가와 치룬 대전으로 모두가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어린 소년에게 이런 기세가 있었다. 지금 적을 앞에 마주 보고 있는 순간 그들은 결코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 없었다.
뒤로 물러난 유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송기연이 대놓고 한 질문에 심란하여 자신도 모르게 ‘구할 것이다’라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송기연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선계의 구심점이 되었다. 자신이 구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구할 것이다.
어깨에 무게가 느껴졌다. 유가가 뒤돌아보니 고금성이 검은색 두포를 둘러주고 있었다. 고금성은 유가가 몸을 돌린 틈에 조심스럽게 두포의 끈을 매준 뒤 유가 입가의 상처를 손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존주, 입술이 터졌습니다.
고금성의 부드러운 손길에 유가는 멈칫했다. 그 차가운 얼굴을 보고 한 마디도 꾸짖지 못했다. 고금성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고금성은 다른 동작은 하지 않고 그의 얼굴에서 손을 뗀 뒤 유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존주, 다음에 할 일은 무엇입니까?”
고금성도 자신이 왜 유가에게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송기연이 그의 입술을 물 때 왠지 모르게 분노가 치밀었다.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는데, 그의 입술의 상처를 보고 다시금 감정이 요동쳤다
그는 유가가 제 가족을 죽이고 자신을 속인 채 수백 년을 이용한 것을 원망했다. 하지만 전생에 자신이 그렇게 유가를 사랑했고, 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치며 충성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본존은 그자가 네가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몇 달 전 유가가 침전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 고금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우선 지켜보자.”
유가의 목소리에 고금성이 정신을 차렸다. 이미 돌아서서 송기연 쪽을 바라보는 유가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 * *
송기연의 행동은 대놓고 시비를 건 것이다. 눈에 독기가 서린 네 흉수는 거대한 콧구멍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입으로는 강한 힘을 내뿜으며 포효했다. 만들어진 폭풍에 송기연 일행은 진기로 가림막을 만들어 저항했다.
송기연의 지금 몸 상태는 유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뼈도 몇 군데 부러져 있었다. 진기를 움직여 지탱해야만 움직일 수 있었고 통증은 피할 수 없었다. 체내를 살펴보니 오장육부가 전부 망가져 있었다.
그의 심마는 강했고, 다행히도 심마를 실력으로 바꿀 수 있는 이상한 체질이었다. 곡연이 준 약을 먹고 심마의 힘까지 보태자 평소의 위력까지 낼 수 있었다.
다만 송기연은 알고 있다. 이 상태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고 단 한 차례 공격만 가능하다는 것을. 그가 공격대상이 되자 창결검은 무시무시한 검의로 도철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지휘했다.
“완 장로! 경창파 제자들과 봉인 진법을 설치해 주세요! 장금문주 오른쪽에서 궁기를 막아요! 사우(寺宇)문주, 태극(太极)문주는 도올과 혼돈을 막아요. 흩어져서 공격합시다!”
다들 속으로는 불편했지만, 적이 앞에 있고 송기연의 말이 크게 틀리지도 않아 각자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송기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고의 네 흉수는 공간을 찢을 수 있었는데, 그럼 실력은 상당히 위협적이라는 소리다. 전성기의 유가가 그들에게 예의상 양보했다고 해도 선계의 저 사람들이 그들을 이기기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게 바로 그 시간이었다! 그때 사상(四象)이 연합하여 비법으로 궁기를 봉인했고, 지금 궁기가 봉인을 깨뜨렸으니, 요수삼림이 크게 요동쳤을 것이었다. 만약 그의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곧 신수 가문의 고수들이 도착할 터였다.
이와 동시에 요수삼림과 경창파는 모두 난장판이 되었다. 모풍의 죽음에 경창파 사당 안, 운명의 시영패(示靈牌- 목숨을 나타내는 패, 위패와 반대)가 산산조각 났다. ‘타악’하는 소리가 탁자에서 울리자 청소하던 제자가 깜짝 놀랐다. 혼비백산한 제자가 모풍과 실력이 비슷한 다른 두 분의 사조께 알리자, 두 사람의 안색이 한순간에 어두워졌고, 급히 천하 쪽으로 질주했다.
요수산림의 삼대 신수 중 사상 가문엔 경종이 길게 울렸다. 능광이 제일 처음으로 궁기의 봉인이 깨진 걸 감지했다. 엄숙한 표정으로 청요를 끌고 주작족 고수를 모아 요수삼림을 빠져나갔다. 몰래 아구를 동굴에 가두려고 했지만 그만 들켰고, 아구는 함께 가겠다고 격렬히 떼를 썼다.
능광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가는데, 반짝이던 두 눈엔 회색빛이 감돌았다. 아구의 부모는 궁기와의 전투에서 저항하다가 추락했고, 능광은 이 일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길 원치 않아 아구조차 알지 못했다. 지금 상황은 그때와 비슷했다. 손을 뻗어 아구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번엔 절대 예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삼림을 나가는 동안 능광은 자연스레 청룡, 백호, 현무족을 맞닥뜨렸다. 눈을 마주치자 오래전 가족을 잃은 고통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서로 긴 한숨을 내쉬며 함께 천하로 향했다.
“퉤!”
송기연이 피를 내뱉고 창결검을 다시 휘둘렀다. 도철의 오른쪽을 공격하며 그 기세로 그의 머리 꼭대기로 올라가는데, 검의를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두 손으로 검을 쥐고 힘을 다시 주며 도철의 두개골을 겨누고 매섭게 달려들었다.
쾅-!
창결신검은 만물을 자를 수 있다. 검을 쥔 자가 실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위력을 발휘했다. 송기연의 절정이 된 검의가 도철의 두개골에 꽂히자 도철이 비명을 질렀다. 처절한 울음소리에 사람들은 귀청이 떨어질 뻔했다.
분노한 도철이 거대한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송기연을 머리에서 떨어뜨리려 했다. 창결검은 영혼을 소모하는 강력한 힘을 가졌는데, 만약 두개골위에 계속 꽂혀 있다면 결과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눈빛이 매서워진 송기연이 죽을힘을 다해 창결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다시 힘을 주자 검날이 가 도철의 머릿속으로 사라졌다.
“기연, 조심해!”
송기연 뒤로 도올이 다가가는 걸 본 정상이 급히 소리쳤다. 검은 도철의 몸에 꽂혀 있어 송기연은 빈손이었다. 돌아서자 도올이 이미 코앞까지 와 있었고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위험한 찰나에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청흑색의 거대한 용이 도올을 그대로 덮쳤고, 그와 부딪히며 비틀거렸다. 송기연을 간신히 피한 맹장이 꼬리에 송기연을 태우고 급히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이 모든 걸 지켜본 유가는 피가 거꾸로 돌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맹장이 송기연을 구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본인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얼굴에 드러난 쓴웃음을 감추려 두 손으로 검은 두포를 다시 썼다. 고통을 즐기는 것도 아닌 주제 기어코 내장을 뒤트는 결전을 보고 있었다. 자신과 송기연이 사제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여전히 송기연이 죽는 꼴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주먹을 꽉 쥐며 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억눌렀다.
“날 구한 목적이 뭐야?”
맹장이 물었다. 맹장이 송기연을 구한 건 다른 뜻 없이 그냥 이자가 죽는 게 싫었을 뿐, 송기연이 그를 구해준 목적에 대해 알지 못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좋은 사람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잠깐 멍했던 송기연은 금방 되돌아왔다. 그러곤 자신의 목적을 명명백백히 말했다.
“오늘 내가 널 구하면 후에 반드시 네가 날 구할 테니까.”
맹장은 그의 말에 좀 놀랐다. 이자가 자신과 좀 비슷한 것 같아 속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계획이었구나.“
”크와앙-!“
도철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창결검이 그의 영혼을 부식시키는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도올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진자를 뿌리치고 곧장 도철에게 달려갔다. 거대한 발톱으로 도철의 머리 부분을 두드리며 창결검을 몸 밖으로 밀어냈다. 그때 뿜어낸 피가 하늘에서 붉은 비를 한바탕 뿌릴 뻔했다.
엄청난 고통에 도철은 포효했다. 도올은 발톱으로 도철의 상처 부위를 누른 채 공간 속에서 꺼낸 빻은 약초를 그 위에 붙였다. 그러곤 재빨리 선계인들을 보는데, 고전하는 혼돈과 궁기가 보였다. 송기연을 바라보며 음산한 목소리가 거대한 요수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네가 정녕 죽고 싶구나!”
그의 네 발톱에서 2장(丈)정도 되는 금색 법진이 튀어나왔다. 진형도 중앙엔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도올의 도안이 있었다. 도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였다. 그가 송기연과 청룡 쪽으로 입을 열자 그 속에서 거대한 금색 구체가 튀어나왔다. 주위 공간을 산산조각 낼 것 같은 영력구가 사방에서 흘러넘쳤다.
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색의 구체가 저 멀리에서 두 사람을 향해 급히 날아왔다. 공기를 가르며 육중하고 강력한 힘으로 그대로 송기연을 밀어버리려 했다.
맹장이 급히 오른쪽으로 휙 돌았다. 몸은 거대했지만 속도는 재빨랐다. 그가 끊임없이 금색 구체를 피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만 두 사람을 쫓는 구체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곧 자신들을 덮칠 거라는 걸 눈치챘다.
송기연은 방금 도철과의 전투에서 적지 않은 진기를 소모하였고, 또 몸에 중상을 입었다. 이를 악물고 창결검을 소환했다. 맹장의 등에 서서 질주해오는 구체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압박감은 보는 것만으로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그러나 그 순간 송기연의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마치 귀신에 씌인 것처럼 그 많은 사람 사이에서 유가만 정확히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두포밖에 보이지 않았다.
“키이이이익-!”
위험천만한 순간, 귓청이 떨어질 포효소리가 들렸다. 작열하는 자홍색 주작 진화가 금색의 구체를 향해 뿜어져 나와 구체의 속도를 떨어뜨렸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작으로 현신한 능광이 송기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부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화가 금색 구체를 감싸며 화염 안에 가두었다.
동시에, 청룡, 백호, 현무족도 원래 모습으로 변한 뒤 모두 일렬종대 했다. 대부분 대승기의 고수들로 기세로는 저 네 흉수에 절대 뒤지지 않았다.
“할아버지! 왜 저 녀석을 구해준 거예요?”
아구는 오자마자 능광이 송기연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
아구는 유가가 저 녀석 때문에 그 많은 고생을 했던 것을 알기에 당연히 저 자식이 달갑지 않았고 증오했다. 곧바로 송기연 다리 아래의 맹장을 보고 또다시 미간이 찌푸려졌다. 만약 송기연이 죽고 맹장도 함께 순장된다고 해도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때 몸을 돌린 맹장은 아구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눈빛을 보고 그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자신이 아구의 눈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적수였다는 걸 깨달았다.
있으나 마나 한 적수. 설령 실력이 그와 비슷하게 회복된다고 해도 아구는 자신에 대한 연민을 거두고 또다시 자신을 지켜만 볼 것이었다. 그뿐이었다.
“아구야, 난 단지 저 청룡을 구하여 잘 지나가길 바랐을 뿐이니 화내지 말아라.”
능광이 아구를 몸 뒤로 보호하며 맹장을 힐끗 보는데, 표정이 복잡해졌다. 방금 그는 아구와 목숨이 연결되어 있는 자가 저 청룡이라는 걸 확신했다. 그날 뇌겁 속에서 아구를 구한 자. 만약 그가 죽는다면 아구도 액운을 피하긴 어려웠다. 그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두고 볼 수 없었다.
“흥!”
아구는 화를 가라앉히고 주위를 둘러보며 유가를 찾았다. 갑자기 눈이 한 곳에 멈추고 바람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유가의 품으로 돌진했다. 힘이 너무 세서 순간 유가가 신음했다.
유가도 손을 뻗어 아구를 안고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잘 놀고 있었느냐?”
유가의 품에 안긴 아구는 뜻밖에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몸을 살짝 떨며 코를 훌쩍이자 진한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왔다.
“네 흉수는 대인과 겨루지 않았고, 선계에도 적수가 될 만한 자가 없는데.”
유가의 품에서 벗어난 아구가 갑자기 그의 두포를 벗겼다. 과연 그의 붉은 옷의 가슴 부위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아구가 고개를 돌려 고금성을 향해 물었다.
“금성! 이거 설마 송기연 짓이야?”
고금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구는 그대로 몸을 돌려 송기연에게 돌진했다.
“송기연! 오늘 내가 배은망덕한 네 놈을 죽여 주마!”
아까부터 아구를 주의 깊게 보고 있던 송기연의 안색이 어두워 졌다.
송기연이 유가를 향해 말했다.
“이제 보니 아구가 그 종달새군. 당신이 엽망지가 맞았어. 이렇게 많은 단서들이 있는데 알아채지 못했다니. 정말 어리석었군.”
그는 검을 휘둘러 아구의 불을 막았다.
“내가 배은망덕하다니, 설마 유가가 내게 어떤 은혜라도 베풀었다는 것인가.”
유가가 몸을 살짝 떨고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본존이 말했듯 넌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구나.”
유가는 아구를 따라가 자신의 뒤로 잡아끌고 흑금 장갑으로 송기연을 향해 휘둘렀다.
송기연이 창결검으로 유가의 주먹에서 나온 진기를 받아내고 거리를 벌렸다.
“유가, 조급하구나.”
그의 얼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좀 전에 그렇게 나를 비웃더니, 사실은 나와 다르게 이 황당한 관계를 직시하지도 못하는군.”
“대인! 제가 도울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아구는 유가의 신분이 노출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마음이 아팠다. 아구야 말로 송기연이 이 세계에서 사라지길 가장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아구, 너의 상대는 나다.”
아구가 송기연에게 날아가려는데 뜻밖에 청룡이 앞을 막아섰다.
맹장의 눈에선 전의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만, 깊은 곳엔 복잡한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아구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저 이자가 자신의 길을 막는 것만 보았다.
손 위에 진화가 타올랐다. 그가 공격하는 태세를 취하자 진화가 쇠사슬로 변해 맹장을 꽉 묶었다. 초식이 날카로워 조금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그는 맹장이 어떤 방식으로 용맥을 회복하고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실력을 끌어올렸는지 알 수 없었다. 하나, 지금 이자가 송기연의 앞을 막아섰으니 조금도 봐줄 생각은 없었다.
송기연의 말에 동요한 유가는 입술을 꽉 깨물고 주먹으로 송기연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하지만 창결검에 가로막혔다. 일격 후 유가는 뒤로 물러나 다시 동작을 취하려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한기가 감돌더니 모두가 경악했다.
“뭘 하려는 거야!”
“안 돼! 어서 피해!”
사람들과 교전을 벌이던 궁기와 혼돈 그리고 회복 중이던 도철이 도올과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모두 발아래에 진형도를 그리더니 입을 벌리고 사람들을 향해 엄청난 힘을 지닌 구체를 뿜었다. 그중 두 구는 직접 송기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실력을 회복하지 않은 궁기는 약한 영력구를 쏘았고, 네 사상의 힘에 포위된 도울의 금색 구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콰광-!
귀청이 찢어질 듯한 소리가 시간이 멈춘 듯 응축했다 폭발했다. 사방을 가득 채운 빛과 기운이 순식간에 사람들을 모두 지나쳐 뻗어나갔다. 실력이 부족한 자들은 청각을 잠시 잃었다.
또 다른 두개의 금색 구체가 그를 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송기연의 뒤쪽을 덮쳤다. 이를 봐 버린 유가는 동공이 수축했다. 격렬하게 뛰는 심장이 곧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송기연 쪽으로 바짝 몸을 붙였다. 그대로 손을 뻗어 그 녀석을 끌어당겨 오래 전처럼 당연하게 몸 뒤로 보호하려 했다.
“기연!”
목소리에 유가가 멈춰 섰다. 송기연에겐 이미 모풍과 동행했던 경창파 장로 두 명이 다가가 대승기의 수련 경지로 그를 지키고 있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유가는 송기연이 저 흉수들과 싸우기 전 자신에게 묻던 말이 떠올랐다.
‘유가, 만약 이번에도 내가 버티지 못한다면, 날 구해줄 것인가?’
송기연은 유가가 자신이 죽는 걸 절대 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의 감정을 억지로 인정하게 하려던 속셈이었다.
그 순간 문득 송기연을 어떻게 단념시킬지 생각났다.
거리가 가까워진 지금 뻗었던 손으로 주먹을 쥐고, 그대로 창결검에 힘을 날렸다. 이미 중상을 입고 버티지 못한 송기연이 뒤로 한참이나 내동댕이쳐져 버렸다. 밀려난 방향엔 두 개의 영력구가 달려오고 있었다.
등 뒤에서 영력구의 한기가 자신을 덮쳐왔고 송기연은 자신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인지했다. 유가가 정말 이렇게 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경악한 표정이 드러났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한순간에 모든 걸 잃은 표정이었다.
눈부신 영력구에 둘러싸이는 순간 공허한 눈동자가 유가의 입모양을 보았다.
그자가 뻐끔거리는 말을 똑똑히 알았다.
“죽어라.”
송기연이 위험에 빠진 것을 보고 맹장의 눈이 커졌다. 아구를 밀치고 그 폭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직은 송기연이 이렇게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유가 곁으로 밀린 아구는 맹장의 행동에 경악했다. 그러다 주먹을 휘두른 유가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폭발의 힘에 의한 충격을 막지도 않고 꼭 자학하듯 몸으로 다 받아내고 있었다.
아구가 주작으로 변신한 뒤 유가가 충격을 받지 않게 그를 막아섰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인, 괜찮으세요?”
아구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유가가 바람에 벗겨진 두포를 다시 썼다. 그 두 손이 내내 떨리고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조금 뒤 간신히 유가가 대답했다.
“괜찮다. 본존 괜찮아. 가자 아구, 여긴 너무 위험하구나.”
유가는 폭발의 여력을 막아낼 막을 치고 고금성 쪽으로 걸어갔다.
“알겠어요.”
유가의 뒤를 쫓는 아구는 지금 두포 속에 가린 유가의 얼굴이 눈물투성이인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유가는 알았다. 정말 송기연과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오늘 이후로 두 사람은 정말 철천지원수일 뿐이고, 서로의 죽음만 원할 뿐이었다.
경창파의 두 장로는 청룡이 폭발 속으로 들어갈 때 이미 같이 따라 들어갔다. 그들은 모풍에게서 송기연이 그 ‘대인’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선계의 희망이니 절대 송기연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폭발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이 본 상황은 그들이 생각한 것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청흑색의 거대한 용이 송기연을 감싸고 있는데, 두 개의 빛이 그들을 중앙에서 감싸고 있었다. 폭발한 영력은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그 빛의 가장자리에서 막혔다.
두 눈을 감은 송기연은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체내에서는 혈액이 끓어오르며 불같은 열기가 치솟았다. 맹장도 같은 상황이었다. 지금 이 두 사람의 몸을 만지는 순간 손을 데일 수 있었다.
상고의 네 흉수의 근원은 똑같았고 네 개의 영력도 그들 근원의 힘이었다.
송기연과 맹장이 궁기의 혈을 흡입하며 신체의 일부 혈맥을 바꾸고 있었다. 이 영력은 그들을 같은 종류로 생각했는지, 곧 공격을 멈추고 두 사람의 몸에 녹아들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힘이 변하고 있었다. 정말 전화위복의 상황이었다. 송기연이 죽음의 기로에서 벗어나자 경창파의 두 장로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서로를 바라보며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송기연은 정통한 영력이 사방에서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걸 느꼈다. 꼭 따뜻하고 부드러운 봄날의 물속인 것 같았다.
송기연은 입술을 깨물며, 조금도 기뻐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그의 감정은 유가가 그를 영력구에 밀어 넣을 때 멈춰 있었다. 유가가 전력을 다해 자신을 밀던 표정이 떠올랐다. 바보가 보더라도 그건 정말 자신이 죽길 바라던 것이었다. 그때 송기연은 그냥 자신이 이렇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테니.
그럼 그는 더는 피의 원한을 짊어지고 있는 송기연도 아니고, 상대도 자신의 가족을 죽인 마존이 아닐 테니, 모든 일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송가에서 자라 아름다운 부인을 얻어, 가업을 이으며 평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힘든 선택을 앞에 두고 있을 필요도 없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지도, 지금처럼 자신의 마음을 지키지 못할 일도 없을 것이었다.
그는 정말, 정말 지금처럼 모든 감정을 잃고 빈털털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은 그에게 죽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전화위복하여 살아나게 했다. 그는 몸속의 힘이 점점 충만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도겁 초기를 돌파하는 전조이자 그의 실력이 유가에게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보아하니 곧 유가와의 일을 매듭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송가를 피로 물든 유가를 원망하며,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엽망지를 사랑했다. 송기연은 계속 유가에게 자신을 향한 감정을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그건 자신이 겁이 나서 그랬다. 정말 그자의 말처럼 자신의 마음이 밟혀 산산조각나, 아무런 가치가 없어질까 봐 그게 겁이 났다. 지금 보니 확실히 그랬다.
유가는 자신을 좋아했던 적이 없었다. 놀이의 주도자는 계속 그쪽이었다.
그는 그저 바보 같이 이끌려 다녔을 뿐, 반격할 자격조차 없다. 그는 지난 칠 년 동안 그저 긴 꿈을 꾼 것이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감고 있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뺨을 타고 미끄러지는 눈물들은 머물 새도 없이 곧 고온에 모두 흔적도 없이 말라버렸다.
정말 사랑해 마지않은 흉몽(凶夢)이었다.
한참이 지나 빛이 점점 사라졌고, 송기연이 드디어 눈을 떴다.
붉은 눈동자 주변에 가득한 핏줄에 눈빛이 더욱 어두워 보였다. 꼭 그새 몇 년 더 나이가 든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먼저 깨어있는 청룡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송기연, 꿈에서 깨야지.”
* * *
폭발의 여력이 점점 흩어지며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 속에 있던 송기연과 청룡의 모습이 드러났다.
“송기연이야! 아직 살아있어!”
“어떻게?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순식간에 경악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고, 능광 일행과 뒤엉켜있던 흉수들도 일제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송기연을 바라봤다.
능광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송기연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저 아이는 부러진 검을 들고 경합장 위에서 울고 있었다. 한데 불과 몇 년 사이 이렇게 성장했다. 정말 미래가 창창한 아이였다.
도철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는 지금 송기연의 능력이 두려워할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방금 공격 정도면 저자를 사지로 몰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형세를 보니 저 살신이 이미 궁기 혈맥의 힘을 흡수하여, 자신들이 공격한다고 해도 그를 상처 내지도 못하고 오히려 수련 경지만 높인다는 걸 알아챘다. 송기연 앞에 있는 경창파 사조들을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공격을 거두었다.
천 년 전이든 지금이든 저 살신을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다.
다행히 궁기도 살아 돌아왔으니 이만하면 됐다. 두 사람이 있는 한 이 대륙에 더는 머무를 수 없었다. 도철이 낮은 목소리로 도올, 혼돈 그리고 궁기를 소환했다. 두 앞발을 들어 올려 붉은색 하늘을 향해 포효하자 공간에 거대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거야?”
도철의 행동을 본 선계 사람들은 모두 그가 어떤 무시무시한 초식을 쓰는 줄 알고 그의 동작을 눈여겨보았다.
도철은 신경 쓰지 않고 궁기를 먼저 들어가게 한 후 차례차례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그의 차례일 때, 그는 고개를 돌려 송기연을 보았다. 그제야 왜 계속 송기연이 이상한 것 같다고 느꼈는지 알아차렸다.
방금 공간을 열고 나왔을 때 이자의 기질이 많이 변했다고 느꼈지만 어디가 달라졌는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송기연에 몸 안에 뭔가 중요한 게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도철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천 년 전 기세등등하던 사람이 환생을 하며 기억을 잃었고, 이런 자들과 함께 있으니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출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다니 정말 가엾었다. 그가 비웃으며 송기연에게 말했다.
“기억은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 네 영혼은 이미 완전하구나. 그럼 예전 기억이 곧 생각나겠지. 다시 수련을 통해 신이 되고 싶다면 과연 자신이 잊은 게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아라!”
“내가 뭘 잊었다고? 뭘 잊었다는 거야.”
도철의 말에 송기연이 멍해졌다. 잠시 후 뭔가 생각난 듯 도철을 쫓아갔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공간의 틈 사이로 들어가 사라졌다. 공간의 균열은 닫혔고, 하늘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송기연 왜 저래?”
“그 흉수들 정말 이렇게 가버린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천하 상공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수군대기 시작했다. 방금 자신을 공격하던 흉수들이 송기연이 죽지 않은 것을 보고 이상한 말을 하고 사라졌다. 게다가 상대가 사라진 곳으로 송기연이 쫓아가려고 까지 했다.
그들은 저렇게 어린 소년에게 왜 그렇게나 많은 의혹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유가부터 흉수들까지 아무런 교집합이 없는 자들인데 모든 게 송기연과 얽혀 있었다.
“기연! 괜찮은가?”
완십주는 몸에 부상을 입었지만 송기연이 살아 돌아온 것을 보고 정말 기뻐했다. 급히 송기연의 곁으로 가 몸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다 곁에 두 경창파 사조를 보고 그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숙, 모풍 사존께서 보이질 않으십니다.”
그중 한 명이 완십주의 질문의 뜻을 이해하고 애통한 표정을 지었다.
“사형의 시영패가 조각이 났네.”
그 말에 완십주가 충격을 받았다. 모풍은 그의 사존이었고 사제(師弟)의 은혜가 있는 분이었다. 그는 유가의 말을 믿지 않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시영패가 조각이 났다는 건 모풍이 이미 추락했다는 의미였다. 그건 정말 유가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유가가 모풍 사제를 죽였습니다.”
송기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유가는 칠 년 전 마족을 데리고 송가를 피로 물들이고 제 가족을 죽였습니다. 사 년 전엔 위장하여 경창파로 들어와 저희 제자들에게 중상을 입혔고, 지금은 자신이 정한 규정을 어기고 신묘도에 잠입하여 모풍 사조를 죽였습니다. 경창파의 제자로서, 그 원수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는 없습니다!”
그가 선계 고수들의 가운데로 걸어가 창결검을 쥐고 차가운 눈빛으로 유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늘 나 송기연이 유가와 마족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함께할 분 계십니까!”
그의 말에 모두 아연실색했다.
마족의 고수들이 경계하며 유가를 보호했다. 능광과 네 가문의 대표들은 바라보기만 할 뿐 선마 양계의 일엔 관여하지 않았다. 선계인들도 서로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중대한 일이다. 천 년 전 선마대전으로 쌍방의 원기가 크게 부상을 당했고, 후에 홀로 성장한 유가에 선계는 계속 핍박을 받았다. 게다가 조금 전에 모풍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들은 유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위험에 놓여 있었다.
만약 송기연이 나서서 유가와 교전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경창파의 사조들이 와서 그들을 구해줄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송기연은 은인이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기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러니 송기연의 말에 그들은 이미 동요했고 제대로 한번 싸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기연! 나는 당신 편이야!”
“기연 사형! 저 악당과 경창파는 절대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싸우려면 제대로 싸워봅시다!”
정상과 백유리를 선두로 경창파 제자들이 하나둘 송기연의 곁으로 다가왔다. 분노한 대중은 송기연의 말에 동의했다.
“잠깐!”
그러나 갑자기 누가 끼어들었다. 머리를 틀어 올린 검은 장포를 입은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날카롭게 말했다.
“모두 알다시피 선계의 일파삼문육대가 중 경창파가 최고의 자리에 있으며 선계의 지도자입니다. 만약 경창파 장문인이 한마디 한다면 다른 문파들은 도의상 절대 거절하지 않고 싸울 겁니다.
기연 형제는 나이가 열일곱에 불과하나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고, 방금 우리의 목숨을 구해 주었죠. 하지만 우리가 복종할 수 있는 신분은 아닙니다. 우리 삼문이 유명무실한 송가 가주에게 복종한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중년 남자는 삼문 중 하나인 태극문에 흑무극(黑无极) 장로였다. 그의 곁엔 백무극 장로와 태극문 교도들이 있었다. 육대가 위에 군림하는 존재였다.
“흑무극 장로께서 말 한번 잘하셨소.”
안색이 변한 경창파의 두 사조 중 한 명이 직설했다.
“그럼 우리는 오늘 송기연을 경창파의 장문인으로 인정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경창파 장문인을 교체하려면 양측이 모두 현장에 있어야 하죠. 백려 장문인께서 만약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뭘 하실 수 있으십니까?”
중년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날카로운 말을 내뱉었다. 그는 송기연의 단독 행동에 동의하지 않었다. 그리고 이런 도발은 국면만 어지럽힐 뿐이라는 것을 명시했다.
이리 말하니 선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망설였다. 지금 송기연의 신분에 복종할 수 없었다.
“전 백려 장문인의 여식 백유리입니다. 만약 기연이 나와 혼인을 한다면 아버지께서 분명히 동의하실 거예요.”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백유리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송기연에게 걸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전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경창파의 제자 중 열여덟 전에 합체기를 돌파하고 저와 혼인을 맺는다면 다음 장문인 자리를 내어주시겠다고!”
깜짝 놀란 완십주가 목소리를 낮추고 백유리에게 물었다.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어?”
정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경창파에서 몇 년을 지냈지만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설마 자신이 들어가기 전에 백려가 정한 일이란 말인가?
모든 상황을 지켜본 경창파의 사조는 백유리의 말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총명하다고 인정했다. 지금 그 흑무극의 말은 허점이 드러났다. 송기연은 정당하게 경창파의 장문인이 될 수 있었다.
“모두 보셨다시피, 송기연은 의심의 여지 없이 다음 장문인입니다. 그러니 그의 말이 곧 경창파를 대표합……!”
“기연 형제가 아직 혼인하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는데, 장문인이라니요?”
흑무극은 자신이 졌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시 사조의 말을 끊고 송기연의 반응을 기다렸다.
모두의 시선이 송기연에게 향했다. 지금 이 상황이 좀 우습긴 했지만 그들이 송기연의 말에 복종할 것인지 결정해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들을 쭉 둘러본 송기연이 고개를 들어 유가를 쳐다봤다.
유가는 안심한 듯 두포를 벗고 재밌다는 표정으로 송기연을 바라봤다. 그의 눈 속엔 하찮게 여기는 눈빛이 가득했다.
송기연은 심장을 누군가 꽉 쥐고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숨은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목소리에 진기를 담아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전 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백 사형을 동경했습니다. 늘 이 마음을 표현하기 부끄럽고 쑥스러웠습니다. 오늘 사형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제가 거절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