終. 인연(因緣)
서국군의 막사 안. 그곳은 한없는 비탄에 잠겨 있었다. 승헌은 옥환을 안은 채 한참 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옥환의 뺨에서도, 입술에서도, 더 이상 아무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승헌은 자책했다. 옥환을 두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제 곁에 뒀더라면, 이런 식으로는…….
승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마음으로 옥환의 뺨을 쓸었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저를 불러줄 것 같았다. 전처럼 제게 웃어 줄 것만 같았다. ‘환랑. 이제 오셨습니까.’ 그리 말해 줄 것만 같았다.
“……옥환…….”
역시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살아 있었고, 이길 수 없을 것만 같던 싸움에서도 이겼다. 한데 옥환이 죽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었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이렇게, 죽을 듯이 사랑하는데.
승헌은 옥환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일어나, 옥환. 제발. 응?”
“……전하…….”
그 애처로운 모습에 모든 이가 눈물을 흘렸다. 하나 승헌은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옥환이 이렇게 떠날 리가 없었다. 옥환은 강한 사람이었다. 이런 식으로 저를 버리고 가지 않을 것이다. 오기와도 같은 기이한 믿음이 승헌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았다. 옥환을 이렇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가까운 고집이 샘솟았다.
옥환이 죽을 리가 없다고. 그는 반드시 눈을 뜰 것이라고.
승헌은 옥환을 달래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서. 내가 왔어. 그대의 정인이 왔어. 일어나야 해, 옥환.”
“전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보다 못한 백고가 승헌을 제지하려 손을 뻗었다. 한데 그때, 옥환의 손끝이 움찔거렸다. 승헌의 눈동자가 놀라움에 굳었다.
“……옥환.”
“태, 태사. 태사!”
승헌은 물론 백고 역시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백고는 태의를 붙잡고 흔들었다.
“태의! 태사께서 방금 움직였소! 움직이셨단 말이오!”
“예……? 그럴, 리가.”
옥환의 가슴 위에 올린 승헌의 손바닥 아래, 아주 약하지만 분명하게 뛰는 고동이 전해졌다. 승헌은 입술을 떨며 말했다.
“태의.”
태의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면서도 빠르게 옥환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옥환의 맥이 느껴졌다. 그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저, 전하! 맥이…… 맥이 잡히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라고 하나, 옥환은 확실히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한데 어찌, 죽어가던 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시 살아난단 말인가? 정녕 신이 돕기라도 하였단 말인가?
하나 분명히, 옥환은 살아나고 있었다. 그에게 찾아오던 죽음처럼, 되살아나는 생기 또한 부정할 수 없이 확실했다.
“전하…… 전하, 감축드리옵니다! 태사께서 소생하셨사옵니다……!”
몇 번이나 맥을 짚어 본 태의는 옥환의 생환에 확신을 얻고는 뛸 듯이 기뻐하며 외쳤다. 그 말을 들은 백고는 감동의 눈물을 터뜨렸다. 승헌 역시 옥환을 힘껏 끌어안았다.
아아, 옥환. 옥환. 벅찬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넘쳐흘렀다. 흐르고 흘러서, 승헌의 온 세상을 적셨다.
그리고.
“……전하.”
작은 목소리가 승헌을 불렀다. 승헌은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그리도 간절하게 기다리던 부름이었다. 백년을, 천년을 기다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부름이었다.
“옥환.”
눈을 뜬 옥환의 시야 안에 사랑하는 이가 가득 차 있었다. 옥환은 그것이 마냥 기뻐서, 한량없이 기뻐서, 작게나마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할 수 있다면 크게 웃고 싶었으나 승헌이라면 필시 제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 미소에 보답하듯 승헌이 환하게 웃었다.
“옥환. 내 옥환.”
승헌을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돌아왔구나. 내가 당신을 만나러. 그리고 당신이 나를 만나러. 저승의 강 앞에서 옛 주군과 작별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금야를 가로질러서.
돌고 돌아 비로소 당신과 다시 마주했구나.
옥환이 천천히 입을 열어 승헌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연모합니다.
깊이 연모합니다.
앞으로는 평생토록 승헌의 곁에서 하게 될 말이었다.
[금야기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