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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는 이만 퇴장합니다-72화 (7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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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는 칸이 알려 주었던 항구로 이동하지 않았다. 그런 루크의 모습에 곁에

있던 세인트가 물어 왔다.

“항구로 가시는 게 아니십니까?”

“제국에는 그를 잡으려는 자들이 많이 깔려 있다. 곧이곧대로 그자의 말을 믿

을 이유가 없지.”

루크는 제게 거짓말을 하던 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간 제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이거나, 지나치게 설명하는 버릇

이 있었다. 마탑주 역시 한때 도와줬다고 했던 인물치고는 애셔의 행방을 지

나치게 잘 알고 있었다.

“데려온 사병을 나눠서 탑 근처를 샅샅이 살피게 하고 흔적이 나오면 즉시 보

고하도록 해.”

“네.”

“그리고 너는 이곳에 남아 탑을 지켜보도록 해. 그자가 거짓을 고했다면 어떡

해서든 애셔와 연락을 취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매를 통해 소식을

전하려고 하겠지. 그럼 너는 미리 준비해 왔던 매를 같이 날려 보내도록.”

루크의 말에 세인트가 짧게 답하고는 서둘러 기사를 나누어 주위를 수색하게

했다. 하지만 루크는 여전히 희미하게 맡았던 의문의 바다향을 떠올리고는 미

간을 팍 구겼다.

“도대체 어떤 놈입니까.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이리도 도망친다는 겁니까.”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애셔의 잔상에 루크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이 드

리웠다. 마탑주에게서 바다 향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 페로몬은 칸의 것이 아

니었다. 그가 알파인지 베타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이성이 아직 그에겐

남아 있었다. 칸이 자신이 찾던 남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단박에 알 수 있었기

에 루크는 손에 잡힐 뻔했던 그 순간에 애셔를 빼돌린 마탑주를 떠올리며 주

먹을 꽉 움켜쥐었다.

*

애셔의 이상 행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무의식중으로 밖을 나

가려는 애셔에 톰스의 얼굴은 날로 수척해졌고 애셔 역시 잠을 자지 못해 고

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애셔는 속에서 올라오는 신물에 물을 한잔

비워 내고는 톰스를 향해 말했다.

“곧 있으면 떠나야 하는데 잠깐 눈이라도 붙여.”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앞으로는 더한 길도 가야 하는데 이러다가 톰스가 쓰러지기

라도 하면 어떡해.”

애셔는 완강하게 뜻을 굽히지 않는 톰스를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하지만 톰스는 그런 애셔의 말에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

무래도 자신이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정말 괜찮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도련님께서 눈 좀 붙이셨으면 좋겠습니다.”

“톰스.”

차라리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안다면 좋을 텐데, 그것도 모르니 애셔는 답답

한 기분이 들었다. 막막함에 애셔가 한숨을 내쉬자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톰스가 문가에 붙어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 손잡이를 움켜잡으며 물었다. 하

지만 예상외로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주인장의 목소리였다.

“종일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아, 감자를 쩌왔다우.”

“문 앞에 놔 주시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별일은 없는 거요?”

주인장은 끝까지 문을 열지 않고 말을 하는 톰스에게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며칠간 밖을 잘 나오지 않았던 두 사람이 걱정된 듯 보였

다. 톰스는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대화에 선을 그었고, 주인장의 발걸

음이 사라지기 무섭게 문을 열어 감자를 끄집어 당겼다.

“참 좋으신 분인 것 같아. 먹을 것까지 챙겨 주시고……. 돈을 더 드리고 가야

겠다.”

애셔는 테이블 위에 돈을 더 올려 두고는 톰스가 내민 감자를 받았다. 그러다

창문을 두드리는 매를 보며 톰스가 창가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탑에서 보낸 매인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지?”

애셔는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톰스가 가져온 쪽지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예상했던 대로 애셔가 사라지고 난 뒤에 루크가 찾아왔다는 이야기

였다. 문제는 그가 반역자의 신분인 자신을 찾기 위해서 왔다는 이유였다. 애

셔에게 단 하나의 마음도 없어 보이는 대공을 보며 일단 제국으로 돌아갔다고

말을 둘러댔으나 혹시 모르니 몸을 사리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어째서 루크가 이곳까지 온 거지……?”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루크가 아닌 공작가의 사람이 저를 찾아왔어야 했다. 하

지만 예상과 달리 루크는 이른 시일 안으로 탑을 찾았다. 그것도 반역자인 자

신을 찾기 위해서……. 당연한 말이었지만 어쩐지 그 단어에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자신을 조금이나마 생각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건 모두 자신의 착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미안한데 감자는 나중에 먹어야겠다.”

애셔는 안쓰러운 얼굴로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들고 있던 감자를 포장해 가

방 안에 넣어 두었다. 톰스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무거운

몸으로 짐 가방까지 떠안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도련님, 이 주머니는 어떻게 할까요?”

애셔는 쪽지와 함께 딸려 있던 작은 주머니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 안

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구슬 두 개가 들어 있었다.

“텔레포트네.”

귀한 탓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구슬을 보내준 칸 덕분에 지금 상황이 얼마

나 위급한지를 알 수 있었다. 비록 멀리 이동할 수 있는 구슬은 아니었지만,

하루 정도 걸어야 할 거리를 빠르게 단축시켜 이동할 수 있는 구슬이었다. 애

셔는 테이블 위에 돈과 감사의 쪽지를 남겨 두고는 톰스와 함께 구슬 사용해

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

“말씀대로 탑에서 매를 보냈습니다. 전하의 명대로 매를 풀어 몇몇 기사를 보

내 추격하라 일렀습니다.”

“다른 단서는?”

“서쪽 마을에 있는 시골 시장 근처에서 핑크빛 머리를 봤다는 사람을 발견했

습니다. 혹시나 싶어 기사들이 표시해 둔 곳을 따라가 보니 매의 방향과 같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애셔는 해안가가 아닌 다른 방향 쪽에 있었다. 곧 있으면 만날

애셔의 모습에 루크는 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올라탔다.

“바로 출발 하겠다.”

루크의 명령을 기다렸던 기사들이 하나둘 말에 올라타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

작했다. 하지만 루크의 속도는 따라잡기 버거울 만큼 빨랐고, 순식간에 자취

를 감추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세인트는 기사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 최대한

빠르게 말을 몰아붙이고는 어렵사리 루크가 도착한 곳에 멈췄다.

“전하.”

거친 숨을 최대한 삼키며 세인트가 루크에게 다가갔다. 루크가 멈춘 곳은 다

름 아닌 허름하게 낡아 빠진 숙소였다. 내일 아침 무너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은 숙소에서 루크는 먼저 와서 수색을 준비하고 있는 기사에게

대기하라는 수신호를 보내고는 숙소에 들어섰다.

“아이고, 손님이 또 왔구려.”

방이 딱 하나밖에 없는 숙소에서 마침 안에 있던 이들이 밖을 나갔는지 주인

장이 청소하고 있었다. 루크는 반기는 주인장을 뒤로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살폈다. 그러다 확연하게 맡아지는 옅은 바다 페로몬 향에 미간을 구겼다.

“이곳에 머물던 이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나도 모른다우. 감자를 가져다줄 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워낙 방에서 잘

안 나오던 이들이라 이상해서 노크했더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우.”

주인장의 말에 루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탑에서 매를 보냈다면 이미 도망치

고도 남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또 한 번 사라진 애셔에 루크는 대기하고

있는 세인트에게 그 뒤를 쫓으라며 눈짓을 주고는 주인장에게 다시 물었다.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이 안에 있던 이는 몇 명이었습니까?”

“딱 둘이었다지?”

바다 향이 나서 설마 했는데, 둘이라는 단어에 루크의 눈가가 서슬처럼 빛났

다. 루크는 습관처럼 주먹을 꽉 움켜쥐고는 화를 누그러트리며 물었다.

“정말 둘이었습니까?”

“그렇다우.”

제 오메가였다. 아무에게도 뺏길 수 없는 소중하고 하나뿐인 오메가. 루크는

바다 향이 묻어 있는 방을 싸늘하게 응시하며 밖으로 나와 그림자를 불렀다.

“분명 알아 온 정보에 의하면 칸이라는 자를 제외한 외부 인물은 없었다. 그

런데 어떻게 된 일이지?”

“조사 중에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알아 오라 이르겠습니다.”

“그자가 이곳에 있다. 최대한 신속하게 그자를 찾아 데려오도록. 물론, 애셔

도 모르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존명.”

루크의 말에 그림자가 언제 이곳에 있었냐는 듯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루크는

뒤늦게 원망이 밀려왔다.

“제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동안 당신은 그자와 함께 있었던 것입니까? 도대

체 무엇 때문에……. 어찌하여 저를 떠나 도망친다는 것입니까?”

솔직히 루크는 애셔가 걱정됐었다. 공작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제일 먼저 혼란스러워할 사람이 애셔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을 찾지 않았

고 자신을 피해 도망까지 치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을 향한 마음만큼은 진심

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뜻하지 않은 애셔의 행동에 루크는 이별을 하기 전 애

셔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전하께서 그랬죠? 제가 과거에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요. 제게는

아직도 그 말 유효해요. 전하에게는 분명 좋은 사람이 나타날 테니까요.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자신을 도발하기 위해서 한 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제게 의사를 표했었다.

-제가 전하께 말씀드렸던 것처럼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저는 전하께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되겠죠.

-그게 약혼을 앞둔 약혼자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전하의 운명이 아니었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그제야 그는 애셔가 다른 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크는

배신감에 가득 찬 얼굴로 마른세수를 하고는 조용히 읊조렸다.

“모든 것이 거짓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어떡해서든 당신을 데려올 것입니다.”

데려와서 반드시 제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유일하게 자신이 욕심내는 사

람, 그것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는 핏빛처럼 붉은 눈동자를

형형하게 빛내며 말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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