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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는 이만 퇴장합니다-66화 (6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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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이 너무 아파 보여서 애셔는 목구멍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공작이 그런 거야?”

“오다가 자객을 만났습니다.”

“거짓말…….”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보이는 톰스의 몸 상태는 자객을 만났다고 하기에는

일방적인 상처로 가득했다. 아무리 톰스가 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할지라도

공작가에서 제 호위로 있었던 기사였고, 무작정 맞고 있었다고 하기에는 유능

한 기사였다.

애셔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눈 밑으로 난 상처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먼저 떠나라고 했잖아.”

“도련님을 끝까지 지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톰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애셔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눈물

이 날 것 같아서 잠시 감정을 누그러트리려 했지만, 톰스는 제게 마지막으로

했던 기사의 맹세를 읊었던 자세로 바꾸며 여전한 충심을 보였다.

“지금이라도 도련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죽어

도 도련님의 곁에서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제게 도련님을 호위할

기회를 주십시오.”

“이러지 마, 톰스……. 너도 들었잖아. 나는 이제 아네스트가의 도련님이 아니

야. 그러니까 내게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아도 되고, 예전처럼 호위하

지 않아도 괜찮아.”

“제게는 하나뿐인 도련님이십니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거고요.”

“톰스.”

“그러니 부디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애셔는 톰스의 마지막 말에 목 안이 먹먹해졌다. 안 그래도 예민해진 감정은

더욱 복받쳐 올랐고 눈은 눈물을 쏟아 내며 앞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왜……, 내 옆에 남아 있겠다는 거야……, 바보같이……. 나랑 있으면 톰스도 위험

해진다고.”

“그럴까 봐 남아 있는 겁니다. 도련님이 위험해지실까 봐…….”

결국 애셔는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 내며 울음을 터트렸다. 톰스는 아이처

럼 서럽게 울고 있는 애셔를 보며 곁으로 다가와 손수건을 내밀었다.

“도련님이 우시면 아이도 슬퍼하십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못난 주인 만나게 해서 정말 미안해, 라는 말을 입안으로 삼키며 울음을 터트

리자, 톰스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애셔는 소매 끝으로 눈가를 벅벅 닦으며 그

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고마워. 내 곁에 남아 줘서.”

애셔는 그가 내민 손수건을 건네받았다가 소매 끝에 달린 커프스를 발견했다.

“……아직도 하고 있었네?”

“도련님께서 주신 거니까요. 덕분에 제가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톰스는 사연이 많은 눈으로 커프스를 내려 봤다가 애셔의 뒤를 바라봤다. 애

셔는 그제야 캘럽과 함께 이곳에 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까부터 집요한 시선이 느껴져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저 토끼가

샤키 도련님께서 데려온 토끼인가요?”

“응.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만나게 됐어.”

애셔는 캘럽이 있을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캘럽의 눈

동자가 낮고 스산하게 빛나고 있었다. 토끼답지 않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캘럽에 애셔는 서둘러 그의 곁으로 가 품에 안았다.

“크아앙.”

“캐, 캘럽?”

평소답지 않게 캘럽이 두 이빨을 드러내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누가 보면 토

끼 탈을 쓴 살쾡이라고 해도 될 법한 모습이었다.

“……토끼가 원래 맹수과였던가요?”

“……아니.”

“그래도 귀엽네요.”

톰스가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캘럽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캘럽은 경

계심을 더 높이며 톰스의 얼굴을 앞발로 내리쳤다.

“캘럽!”

“괜찮습니다, 도련님.”

톰스는 그런 캘럽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그동안 일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톰스가 동물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무뚝뚝하고 냉정

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톰스는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듯

싶었다.

“정말…… 귀엽네요.”

“귀엽다고……?”

“네.”

눈에서 꿀이 뚝뚝 묻어나는 톰스를 보며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가 캘럽을 내려

다봤다. 아무래도 캘럽은 자신이 수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은 듯해

보였다. 애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경계만 하고 있는 캘럽을 보며 그

를 당분간 톰스에게 맡겨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

정기적으로 페로몬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몸은

제국을 떠난 지 한 달을 채우기 무섭게 아파져 왔고 입가에서는 감기라도 걸

린 사람처럼 마른기침이 새어 나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도 위험해질 거예요.”

“하지만…….”

지금 이 몸으로 루크를 만났다가는 도망은커녕 손쉽게 잡힐지도 모른다. 무엇

보다 자신을 향해 짓는 원망의 눈빛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애셔는 톰스가 내미

는 물잔을 말없이 움켜쥐며 칸을 향해 말했다.

“제가 꼭 움직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막상 그를 만날 거라는 사실에 애셔는 겁이 났다. 비록 먼발치에서였지만, 혹

여라도 그를 마주했다가 원망스러운 눈빛을 볼까 무서웠다. 칸은 망설이는 애

셔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곁에 앉으며 눈을 지그시 마주해 왔다.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그것보다 제게 아이의 아빠가 누군

지 말씀해 주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이동을 하든, 하지 않든……. 당신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요.”

애셔는 생각이 많은 듯한 눈으로 쥐고 있던 물잔을 내려다봤다. 그러다가 웃

는 얼굴을 그려내며 칸의 눈을 마주했다.

“페로몬의 형태가 어떤 형태든, 제게 닿기만 하면 되는 거죠?”

“네.”

미워하는 마음이든, 증오하는 마음이든 뭐든 닿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애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톰스가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제국으로 간다는 건 도련님께 너무 위험한 일

입니다.”

그동안 톰스는 제국에 있는 공작가와 대공가의 이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혈안

이 되어 있다고 했다. 자칫하면 들킬 수 있는 상황에서 칸은 톰스의 걱정을

안다는 듯이 다독이는 말투로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함께 가는 이상, 그를 다치게 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실패가 많은 법이죠. 이곳에서 저 토끼 좀 돌봐 주시겠습니까?”

칸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캘럽을 엄지로 가리켰다. 그러자 캘럽

은 기다렸다는 듯이 애셔의 침대로 뛰어 올라와 귀를 쫑긋 세우며 앞니를 드

러냈다.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은 알겠으나 안 됩니다.”

“왜지?”

“아쉬워도 이번만큼은 양보해 주시지요.”

칸이 웃는 얼굴로 거절을 하자 캘럽이 불쾌하다는 듯이 애셔의 품 안으로 파

고들었다.

“……토끼가 말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겁니까?”

“당연히 불가능하지. 나는 특별한 동물이라 가능한 것이다.”

톰스의 말에 캘럽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덧붙이며 애셔의 배를 비비적거렸

다. 그 안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이마를 문지르고는 앞발로 콩

하고 눌렀다.

“캘럽……. 이러면 안 돼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외롭지 않게 곁에서 지켜 주려고 하는

것뿐.”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맹세를 했다. 물론 네게는 들리지 않는 맹세였지

만, 나는 아이가 태어나 혼자일 거를 생각해서 아이의 아빠 대신 곁에 있어

주겠다고 말했다.”

“캘럽…….”

“물론 여기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코는 예민하니까.”

그제야 애셔는 그가 왜 자신의 방을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다가 잠을 청하러

가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껏 자신과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인간화

한 모습으로 제 곁에 있다가 떠났던 것 같았다. 고마운 마음에 애셔는 캘럽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눈웃음을 지었다.

“다들 고마워요…….”

그동안 태어날 아이의 운명이 안쓰럽다고 생각했었다. 자신 같은 부모를 만나

아빠 없이 자랄 아이의 운명이 가혹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제게 축복의

마법을 걸어 준 칸도, 아이의 곁을 끝까지 보좌하겠다는 톰스도. 모두 하나같

이 지켜 주려는 이들이었다. 애셔는 마음 약해지지 말자는 생각을 하며 물잔

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그럼 지금 다녀올게요.”

어차피 다녀올 거라면 지금 다녀오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

들의 시선을 피해 어떻게 다녀오냐는 것이었는데, 칸은 그런 제 생각을 읽었

다는 듯이 애셔에게 물약 하나를 내밀었다.

“태아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는 약이에요. 일시적으로 머리카락 색을 바꿔 주

는 역할을 하죠.”

“…….”

“머리 색만 바꾼다면 멀리서 그를 만나고 오는 건 가능할 거예요. 마침, 아네

스트가의 막내 아들인 브래든과 대공이 폴리스 식당에서 만난다는 말을 들었

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애

셔는 아릿함을 억지로 누르며 이어질 칸의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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