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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는 이만 퇴장합니다-60화 (6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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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는 반드시 애셔를 찾아내겠다는 듯이 예리한 눈빛을 보내며 방을 빠져

나갔다. 루크는 세인트가 빠져나간 자리만 바라보다 감정을 억누르며 누군가

를 불렀다.

“나와.”

부름에 답하듯 그림자 세 명이 어둠에서 나와 루크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

나같이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루크

에게 목숨을 바치겠다는 이들이었다.

“한 명은 공작가 내부 조사를 담당하고 다른 한 명은 샤키의 행방을 조사해

오도록 해. 아마, 애셔와 가까이 있었던 인물인 만큼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애셔의 기사인 톰스를 추궁하는 게 빨랐지만, 삼 일이나 지난 시점임

에도 공작가에서 애셔의 행방을 모른다는 건 그가 누구에게도 진실을 발설할

생각이 없거나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야기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너는 삼 개월간 애셔가 만났던 인물들을 빠짐없이 기록해 가져오도록

해.”

루크는 애셔에게서 나던 다른 이의 페로몬을 떠올리고는 그와 연관이 있을지

도 모른다 생각했다. 어떡해서든 공작보다 더 빨리 애셔를 찾아야 했고, 찾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분명 만났던 인물 중에서 단서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 찾아야 해. 반드시.”

정말 애셔가 자신과 러트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는 히트를 앞두고 있을 터였

다. 그런 상태의 제 짝이 소리 없이 사라졌기에 알파로서 제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웠다. 루크의 말에 그림자 셋은 언제 이곳에 있었냐는 듯이 빠르게 사라졌다.

“……내가 놓아주지 않겠다 하여 떠난 것인가.”

처음부터 그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얼굴로 순수

함을 표하던 애셔를 보며 루크는 무슨 장난인가 싶었다. 하지만 일 년을 만나

는 동안 애셔는 다른 인물이 된 것처럼 과거와 달라져 있었고, 알파로서의 본

능을 깨우며 자신이 겪지 못한 감정들을 일깨워 줬다.

“그런데 이젠 나를 두고 떠나려 한다? 그런다고 해서 제가 못 찾을 줄 알았습

니까.”

루크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입매를 삐뚜름히 휘었다. 찾으면 절대로 놓아주

지 않겠다는 듯이 서슬 퍼런 광기를 드러내며 소유욕이 깃든 웃음을 지었다.

*

추운 계절이 언제 왔냐는 듯이 탑에는 따뜻한 봄의 기운이 가득했다. 정확히

는 조금 봄이 늦게 찾아오는 블레이크 제국과는 다른 따뜻함이었다. 애셔는

유채꽃이 가득 핀 탑의 주변을 내려다보며 숨을 흠뻑 마셨다.

“도련님!”

애셔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 나르타가 서둘러 허리를 감싼 채로 얼굴을 비비적

거렸다. 예전에도 그러더니 나르타는 한결같이 동생처럼 애교가 많았다.

“이젠,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그렇지만…… 저는 도련님이라는 소리가 편한걸요.”

도련님이라는 소리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고 나르타의 얼굴이 시무룩함으로 물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린 시점에서 나르타에게 도련님 소리를 들을 이

유는 없었다. 애셔는 허리에 붙은 나르타를 떼어 내고는 허리를 굽혀 다정하

게 눈을 마주했다.

“그래도 안 돼. 이제부터는 애셔 하고 편하게 불러.”

“……알겠어요.”

단호하게 말을 하는 애셔를 보며 나르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이 살짝 나온

게 서운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것 같았지만, 애셔는 주머니에 넣어 둔 사탕을

꺼내 나르타의 입안에 넣어 주었다.

“네가 좋아하는 레몬 맛 사탕이야.”

애셔의 사탕 공세에 나르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배시시 웃으며 눈꼬리를 접

었다. 순수한 나르타의 모습에 애셔는 나르타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이

곳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애셔가 공작가를 떠나겠다고 다짐하던 날, 칸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갑자기

찾아오면 나르타가 놀랄 수도 있으니 탑 근처에 있는 숙소에 머물고 있겠다는

연락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애셔가 소원의 돌을 사용해서 이곳을 넘어

올 만큼 긴급한 일이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한 것 같았다. 애셔는 칸의 배려로

불독 왕국으로 넘어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꼭 언젠가 보답하겠습니다.

-사례는 됐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그것보다 설마 이대로 떠나

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당연한 걸 묻는 칸의 질문에 애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칸은 그럴 줄 알았다

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처음 오셨을 텐데 어떻게 생활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여기까지 넘어오게 도와주셨는데 나머지는 제가 잘 해결해 볼게요.

애셔가 괜찮다는 듯이 선을 긋자 칸은 작게 숨을 내쉬고는 눈을 마주했다.

-외부인들이 많이 오가는 나라인 만큼 도난과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입니

다. 더군다나 당신의 머리는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핑크빛 머리를 지녔고요.

-…….

-차라리 제가 머무는 탑으로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지만 제가 함부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탑의 보안상 마탑

주의 승인도 받아야 하고요.

그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기에 애셔가 거절하려 했지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날카로운 말을 던졌다.

-곱게 자랐다 들었습니다. 거기다 배 속에 새 생명까지 있는 이상, 혼자 다니

시기에는 위험하실 겁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마법사는 생명의 기운을 느낍니다. 제가 나르타의 기운을 알아봤듯이 당연한

이치인 거죠.

애셔는 충격에 휩싸인 듯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

실을 톰스와 주치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본의 아니게 한 사람이 늘어

버렸다.

-걱정 마십시오. 누군가에게 남의 이야기를 떠벌릴 만큼 입이 가벼운 사람이

아니니까요. 다만, 당신이 저희 탑에서 머물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농담이 섞인 협박이었지만, 그가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

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계속해서 고집을 피우니 어쩔 수 없이 한 말인 것

같았다. 애셔는 생각이 많은 듯한 눈으로 입술만 깨물었다.

-제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되실 겁니다.

-……미래도 내다보실 줄 아시는 건가요?

-글쎄요?

칸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애셔의 배에 손을 대었다. 화들짝 놀란 애셔가

뒤로 몸을 물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손에서 희미한 빛을 뿜어냈다.

따뜻하고도 포근한 빛이었다.

-뭐, 뭐 하는 거죠?

-축복 마법입니다. 아이가 태어나 큰 사람이 될 때까지는 험난한 일이 가득하

실 겁니다. 그 길이 너무 외롭고 쓸쓸할 것 같아서 특별한 선물을 걸어 드렸

습니다.

축복 마법. 배 속에 있는 태아에게 걸어 주는 고위 마법이었다. 무엇보다 마

력의 소모가 많은 만큼 황실에서만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그렇게 귀한 마법을

자신의 아이에게 걸어 줬다는 것에 애셔는 고마웠다.

-……제게 왜 이렇게 호의적인 건가요? 저는 당신에게 해 준 것이 없는데.

-나르타를 제게 보내 준 보답이라고 하죠. 그 아이 역시 훗날 탑에서 제일가

는 마법사가 될 인재니까.

-…….

-그러니 잠시 탑에서 거센 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애셔는 차마 축복 마법까지 걸어 준 그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지금 생

각해 보면 어쩌면 그가 서쪽 탑의 마탑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르타. 마탑주님은 언제 오신대?”

“그, 그건 왜요?”

“탑의 주인 허락도 없이,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잖아.”

애셔의 말에 나르타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데굴 굴렸다. 열한 살이라

는 나이라 그런지 생각하는 게 표정에서 감춰지지 않았다.

“혹시 나한테 숨기는 게 있어?”

“아, 아니요!”

놀란 나르타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아니라고 손까지 저으며 부정하는 것이

확실히 제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애셔는 알아내겠다는 듯이 굽

혔던 허리를 펴고는 나르타에게 말했다.

“그럼 오늘 나가야겠네.”

“네?! 왜요?”

“언제 오실지 모르는데 계속 머물기에는 실례잖아.”

“그, 그렇지만……!”

애셔가 나간다는 말에 나르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상처 주려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슬퍼하는 나르타의 모습에 애셔가 그를 서둘러 달래 주려 했다.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두 사람은 동작을 멈춘 채로 소리가 나는 방향

으로 고개를 틀었다.

“애를 울리다니 못된 어른이네요.”

“칸.”

장난기를 머금은 칸이 팔짱을 낀 채로 문가에 기대 자신과 나르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과 나르타를 귀여워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르타, 잠시 자리 좀 비워 주겠어?”

“네.”

칸의 말에 나르타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누그러트리며 방을 빠져나갔

다. 가고 싶지 않아 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나르타는 칸의 말을 잘 들었다.

줄곧 느꼈지만,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칸의 말이라면 절대적으로 받

아들이고 있었다.

외부인을 데리고 올 수 있는 사람, 탑 안에서의 결정 권한을 지니고 있는 사

람. 어쩌면 정말, 칸이 서쪽 탑의 마탑주일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왜 그렇게 봐요? 제가 마탑주일 것 같아서?”

칸은 능글맞은 미소를 띠며 애셔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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