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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는 이만 퇴장합니다-59화 (5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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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작의 행위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마치, 겁만 주려고 한 사람처

럼 비릿한 웃음을 짓고는 검을 지팡이 안에 넣었다.

“굳이 내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겠지. 목숨만 부지시켜 놓도록 해. 이왕이

면 손발을 부러트리는 쪽이 취향일 것 같군.”

거의 반병신을 만들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 혀를 자르면

애셔의 소재지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에 룬은 머리를 조아렸다. 공작은

룬이 내미는 손수건을 받아 들어 지팡이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는 바닥에 던

진 채로 자리를 떠났다.

“같은 기사로서 그쪽을 불구로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

해 주십시오. 그럼 그 성의를 봐서라도 손만큼은 멀쩡하게 둘 테니.”

룬은 톰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톰스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똑바로 응시했다.

“주인에게……, 충성하는 건 서로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설령 내 목숨이 고문

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할지라도 이 마음은 변함이 없겠죠.”

알아도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이 톰스는 애셔에 대한 충성심을 표하며 눈을

내리감았다. 이렇게 숨을 쉬는 것조차 마지막이겠지, 라는 생각에 톰스는 애

셔를 떠올렸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끝까지 곁에서 모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습

니다.’

이 상황에서조차, 톰스는 그를 지키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괴롭다는 듯 입안을

으득 깨물었다. 룬은 그런 톰스를 보며 안타까운 얼굴로 미리 피워 둔 화로로

다가가 달궈진 꼬챙이를 들었다.

“나를 너무 원망은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주군에게 충성을 다짐한 기사의 운명이라는 듯이 룬은 톰스에게 다가

갔다. 하지만 곧 ‘쾅’ 하고 열리는 문소리와 함께 그 사이로 한 남자가 호위

를 달고서 등장했다.

“지금 당장, 그 손 멈추도록 해.”

샤키 아네스트. 공작가의 차남이자, 공작의 신임을 두둑이 받는 남자였다. 룬

은 샤키의 등장에 놀란 듯 눈을 키웠지만, 곧 공작의 명을 반드시 시행하겠다

는 듯이 꼬챙이로 톰스의 손을 지지려고 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저하의 명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샤키는 룬의 마지막 말에 그대로 계단이 있는 곳에서 뛰어내려 그가 들고 있

던 꼬챙이를 발로 찼다. 얼마나 강하게 찼는지 룬은 손이 욱신거려 왔지만,

위기감을 느끼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샤키

가 룬의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목 끝에 칼날을 겨누었다.

“내가 분명 멈추라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이곳을 알아내셨습니까?”

“내가 이곳을 어떻게 알아냈냐는 것보다 목숨을 구걸하는 쪽이 빠를 텐데?”

“아무리 도련님께서 저하의 총애를 받으신다고 하나, 선은 지켜 주셨으면 좋

겠습니다.”

부탁의 말에도 샤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룬의 목 끝에 더 힘을 가하

고는 검날에 붉은 핏방울을 만들어 냈다.

“그럴 거였다면 처음부터 오지 않았겠지. 그러니까 비켜. 네 목숨이 두 개가

아니라면.”

“싫습니다.”

“정녕 네가, 나를 상대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냐?”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는 듯이 샤키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지만, 룬은 알고

있었다. 제국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검사인 샤키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죽이

기조차 쉽다는 것을 말이다. 룬은 고통스럽다는 듯이 신음을 토해 냈다.

“……크윽.”

“너도 알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하나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는 것

을. 그러니 돌아가 아버지에게 전하도록 해. 톰스는 내가 데리고 있겠다고.”

기사의 자존심에 돌아가지 않으리라 판단한 샤키는 그에게 살기를 드러내며

명을 내렸다. 덕분에 룬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전상 후퇴하며 지하를 빠져

나갔다. 그제야 샤키는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던진 채로 톰스에게 다가갔다.

“……도련님.”

핏물을 왈칵 토해 내는 톰스의 모습에 샤키는 서둘러 구속구가 채워진 손과

발을 풀어 주었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지금은 치료가 급선무인 것 같아 묻지 않겠다.”

“애셔 도련님의 위치라면……, 저도 잘 모릅니다.”

“알아도 말을 하지 않겠지. 하지만 나는 네게 위치를 물으려고 온 것이 아니

야. 그러니 안심하고 나를 믿도록 해. 지금부터는 서로 협조해서 애셔에게 피

해가 가지 않게 해야 할 타이밍이니까.”

샤키는 뒤따르던 아리안을 불러 톰스를 별장으로 옮기라 명하고는 뒤따르던

다른 이에게 신관을 부르라 일렀다. 앞으로는 공작인 아버지와 엠버가 이 건

으로 저를 옭아맬지도 모른다. 최대한 신중하게 작전을 짜야겠다며 돌아서는

샤키를 보며 톰스가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아직 감사 인사는 일러. 그러니 어디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히 치료받도록

해. 그게 애셔와 나를 도와주는 길이니까.”

눈을 마주하지 않은 채로 답하는 샤키를 보며 톰스가 아리안의 도움을 받아

지하를 빠져나갔다. 자신을 빼돌린 일로 샤키는 공작에게 해를 입을지도 몰랐

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도움을 받아 빨리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기에 톰스는

이를 악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제가 곧, 도련님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별 탈 없이 계셔 주

십시오.’

*

요즘 들어 공작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애셔에게 보낸 서신의 답은 당

연히 오지 않았으며 공작은 루크와의 만남을 피하고 있었다. 루크는 세인트를

불러 공작가의 상황을 알아 오라 일러두고는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바다처럼 은은한 향이라…….”

루크는 이별을 고하던 애셔에게서 맡아진 향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보

통 제 오메가가 아닌 다른 이의 페로몬은 역하기 마련인데, 그날 애셔에게서

맡은 페로몬은 역하기보다는 짜증을 유발하는 향이었다. 그것이 아마 알파의

소유욕을 건드려서일지도 몰랐다.

“결국 내 인내심도 여기까지인가.”

루크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온전하지 않은 러트의 기억을 떠올렸다. 기억의

조각들이 길게 이어지지 않지만, 뜨문뜨문 떠올린 기억에서 분명 자신은 애셔

와 성행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애셔는 조금의 거짓도 없다는 듯

이 자신을 바라보며 그때 샤키의 별장에 있었다고 답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루크가 세인트를 통해 조사하라 일렀지만 바뀌는 건 없

었다. 그때 느꼈던 허망함이란. 그간 억누르고 억눌렀던 성욕에 의해 자신이

미쳐 버린 게 분명했다. 꿈을 현실로 착각할 정도라면. 루크는 괴롭다는 듯이

주먹을 꽉 움켜쥐고는 테이블 위에 쌓인 서류 더미를 싸늘하게 응시했다.

“내가 정말 미친 것이라면…….”

루크는 러트 이후로 밀려오는 감정을 억눌러 보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애

셔를 갈망하는 소유욕이 짙어져만 갔다. 자꾸만 곁에 두고 싶어지는 충동이

강해지는 시점에서 루크는 정신을 다른 곳에 두기 위해 서류에 집중했다.

“전하.”

어느새 조사를 끝낸 세인트가 서둘러 루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루크는

쓰고 있던 펜을 그대로 쥔 채로 세인트에게 보고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애셔 도련님께서 공작가에서 사라지셨다고 합니다.”

“뭐?”

“현재 사라지신 지는 삼 일 정도 되었는데, 문제는 공작가에서 그대로 자취를

감춰 버려서 머리 한 올조차 발견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루크는 헛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표정을 구겼다. 애초에 아네스트가에서 애셔

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약혼을 앞둔 시점

에서 애셔의 부재를 폴티크가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절대 외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입을 막는 추세지만, 수도를 봉쇄했음

에도 불구하고 아무 흔적도 나오지 않아 다들 나쁜 쪽으로 생각……!”

“그만!”

루크는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세인트의 입을 막으며 펜대를 부러트렸

다. 제국에서 제일 튼튼하다고 만들어진 물건이었는데, 루크는 그 물건을 손

쉽게 두 동강을 내며 살기를 드러냈다.

“아무리 내가 아끼는 자일지라도 섣불리 말을 뱉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세인트는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허리를 굽혀 사과를 건넸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제국에 사람을 보내. 무조건, 공작보다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한다.”

조용하면서도 묵직한 어투에 세인트가 조용히 답하며 허리를 숙였다. 보통 화

가 나면 윽박지르거나 소리 지르는 게 정상이었지만, 루크는 그런 이들과 다

르게 조용했다. 오로지 동강이 난 펜대만이 그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가 화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말을 하지 않았다 뿐이지

루크의 눈가는 섬뜩한 광기가 넘나들며 꿈틀거렸고, 주위에는 검은 오라가 넘

실거려 숨을 막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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