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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는 이만 퇴장합니다-36화 (3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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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괜찮으니까 계속 말해 줘.”

“도련님께서 시종과 시녀들 사이에서 이간질을 해 괴롭히게 했다고 합니다.

그걸 참지 못한 마리는 자살을 했고 쟌은 그렇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내가 가해자였구나…….”

비록 자신이 한 행동이 아니었지만, 이 몸에 빙의한 이상 마리와 쟌에게 그

어떤 걸로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밀려오는 참담함에

머리를 부여잡자, 톰스가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도련님,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했습니다. 그 장소를 발

견한 사람이 소르타라는 시종이었는데, 그 시종이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네오 길드라는 곳을 방문했다 합니다.”

“네오 길드?”

“정보 길드입니다. 암암리에 찾아 드는 길드인 만큼 불법적인 물건까지 취급

한다고 들었습니다.”

독약은 비밀리에서 판매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소르타가 정보 길드 상인을 통

해 약을 얻은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애셔는 마리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정말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르타는?”

애셔는 며칠 전 쟌과 은밀하게 대화를 나눴던 이에 대해 물었다. 그를 쟌과

함께 내보내지 않았던 건 자신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걸 티 내지 않

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만약 소르타라는 시종에 의해 마리가 타살을 당한 거

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우선 소르타를 불러 추궁을 한 다음 쟌과의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았다.

“소르타가 마리를 죽일 만한 정황 같은 게 있어?”

“조사해 본 결과, 소르타는 마리와 사귀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결혼까지 약속

한 사이였지만 소르타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이별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쟌을 만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생계까지 도왔던 사이인 만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녀의 찻잔에 독극물을 발라 독살하고 자살로 위장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데는 당연히 증거가 있는 거겠지?”

애셔의 말에 톰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작은 비닐에 담긴 찻잔 조각

을 내밀었다.

“다행히 치워지지 못한 찻잔 조각이 테이블 밑 깊숙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혹

시 몰라 독을 채취해 네오 길드에 가져가 겁박하니, 자신들이 판 독이 맞다고

인정했고요.”

톰스의 말에 애셔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쟌이 그걸 모른다는 말은 두 사람이 비밀리에 연애했다는 거네. 그렇지?”

“네, 맞습니다.”

애셔는 피곤한 듯한 낯빛으로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현재로써는 과거의 애셔

로 인해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이었지만, 쟌과는 다시 전처럼 돌

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애셔는 두 손을 꼭, 깍지 낀 채로 이마에 손을 묻었다.

“도련님,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괜찮아.”

자각하기 무섭게 애셔의 입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히트 이후로 괜찮아졌다

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애셔는 톰스에게 나가 보라 이르고

는 서랍에 넣어 두었던 감기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

번개가 내리치던 밤이었다. 스산할 만큼 긴 어둠이 방 안을 가득 메웠고 애셔

는 창가 아래에 놓인 의자에 앉아 소르타를 내려다봤다. 고요한 침묵이 방 안

을 감쌌고, 겁에 잔뜩 질린 소르타가 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애셔의 눈치를

살폈다.

“도, 도련님?”

애셔의 명으로 톰스가 소르타를 은밀히 방으로 데려왔다. 쟌이 저택을 나갔다

는 걸 알고서 몸을 사리는 듯해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애셔를 보며 물었다.

“제, 제게, 왜 이러세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아는 건지 소르타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애셔는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고는 다물었던 입술을 떼었다.

“지금부터 네게 질문을 할 거야. 만약 네 입에서 거짓이 나올 경우, 너는 이

곳에서 무사히 나갈 수 없을 거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소르타의 입에서 더듬거리는 말이 흘러나왔다. 많이 긴장했는지 그는 말을 하

다 말고 바지에 실례를 범했다. 애셔는 그런 그를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는 톰스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스으윽-,

검집에서 칼을 뽑는 소리가 방 안을 서늘하게 채웠다. 번쩍하고 번개가 칠 때

마다 칼날은 날카로움을 빛내듯 반짝였다. 죽음의 사신이 드리운 듯한 광경에

소르타는 서둘러 엎드리고는 손바닥을 문질렀다.

“사, 살려 주세요. 저는 그가 시키는 대로밖에 하지 않았어요!”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순순히 토해 내듯 말을 꺼낸 소르타를 보며

애셔가 피식, 웃었다. 그건 아마도 빙의 전 애셔가 망나니라는 명성을 지니고

있는 탓 같았다. 망나니라는 별명이 무조건 안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럴

때 보니 꼭 나쁜 것 같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네, 네?”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며. 그래서 무엇을 했냐고.”

“그, 그건……!”

소르타가 섣불리 답을 하지 못하며 말끝을 흐렸다. 애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섬뜩하게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가 사용한 것은 무엇이었어?”

자신이 마시는 찻잔에 소르타가 독약을 발랐다는 사실을 안 후로 조사를 했지

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소르타는 애셔의 물음에 망설이듯 굴다가 바닥

에 고개를 박으며 죽여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죽이고 말고는 네 대답에 따르겠지. 그러니까 말해 봐. 네가 사용한 독약은

무엇이며 왜 그랬는지.”

“저는 쟌이 시키는 대로 했어요! 쟌이 도련님 잔에 독약을 바르면 된다고 하

여……, 죽여 주세요. 절대 그러면 안 됐는데! 쟌이 가족을 거론하여 협박하는

바람에……, 흑.”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실토하며 그가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하지만 그게

극히 일부분이라는 걸 알기에 애셔의 눈에는 그저 악어의 눈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해독제는 어디에 있어?”

“쟌이…… 가지고 있어요! 처음부터 그 독약은 쟌의 부모님께서 가지고 있었으

니까요.”

“그래? 그럼 하나 더 묻을게.”

“네! 뭐든 답할게요!”

“그래? 그럼 마리는 왜 죽였어?”

애셔의 물음에 소르타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표정이 감춰지지 않는 걸

보니 꽤 많이 놀란 듯해 보였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마리는……!”

“소르타. 나는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아.”

나긋하게 묻는 애셔의 목소리에 소르타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 갔다. 그러다

뭔가 결심했다는 듯이 손을 한번 꾹 쥐고는 애셔를 응시했다.

“저는 몰라요……. 이미 왔을 때, 죽어 있었다고요.”

“설마 네게 아무런 증거도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어요. 증거가 있다니……!”

애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리 준비한 증거물을 꺼내 흔들었다. 그제야

소르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얼굴 위로 작은 균열이 지어졌다.

“저, 저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준비가 필요했다. 애셔는 옆방에 쟌을 미리

대기시켰었다. 직접 설명하는 쪽보다 듣게 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다고 판단

해서였다. 하지만 쟌은 듣다 화를 참지 못했는지 그대로 뛰쳐나와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쟈, 쟌?”

소르타를 향해 달려드는 쟌을 보며 톰스가 검날로 등을 내리쳤다. 퍽, 하는

강한 소리와 함께 쟌이 그대로 쓰러지며 소르타를 노려봤다.

“네가 어떻게……!”

“마리를 배신할 수 있냐고? 처음부터 네가 아니었으면 마리는 죽지 않았어,

이 미친 새끼야!”

“뭐? 미친 새끼?!”

처음에는 당황해 보였던 소르타가 이제는 잃을 것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

히려 당당하다는 듯이 구는 소르타의 모습에 쟌의 얼굴이 허망함으로 가득했다.

“……너 때문이야.”

“……뭐?”

“너만 아니었으면 마리는 죽지 않았어! 네가 마리를 뺏지 않았더라면……! 우리

는 행복했다고! 그런데 어쩌냐? 마리는 죽어서도 영원히 내 것인데.”

소르타가 그간 감췄던 본색을 드러내며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런 소르

타의 모습에 쟌은 휘청이더니 이마를 부여잡고는 입술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근데 어쩌냐? 마리도 죽은 판에 네가 살아서? 그건 안 되지. 어차피 이왕 이

렇게 들통난 거 너도 죽어.”

현실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쟌을 보며 소르타가 입가에 작은 조소를 띠

었다. 이 또한 통쾌하다는 듯이 소르타는 증거물로 내민 찻잔 조각을 애셔에

게서 빼앗아 들고 쟌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톰스에게 제지당하고는 그대로 팔이 꺾어졌다. 애셔는 그런

소르타에게 다가가 그 조각을 되찾아 들어 쟌에게 내밀었다.

“이게 바로 소르타가 마리를 죽였다는 증거지.”

“나는 억울해! 너만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으아아아악!!”

애셔의 말에 소르타가 발끈하듯 쟌을 노려봤다.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소르타는 광기를 띤 얼굴로 분을 토해 냈다. 애셔는 톰스에게 그를 아네스트

가에 있는 감옥에 가두라는 명을 내렸다.

서서히 멀어지는 소르타의 모습을 쟌이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곧 허망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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