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짜는 이만 퇴장합니다-26화 (2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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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이틀 만에 찾은 광장은 북적임으로 가득했다. 축제가 개최된 지 삼 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열기는 여전했다.

“다 왔어.”

생각보다 큰 행사였는지 검술 대회장은 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그들은 하나같

이 샤키처럼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위압감에 애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

“꼭 나가야 하는 거지?”

“왜? 내가 걱정돼?”

“응. 아무래도 가족이니까…….”

애셔의 말에 샤키는 머리를 덮고 있는 모자 사이로 손을 넣어 머리를 흐트러

트렸다. 애셔는 그게 샤키만의 애정 표현 방식이라는 걸 알았기에 핏, 웃어

버렸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제국에서 제일 강한 자들이 모인대.”

“…….”

“나는 강한 사람들만 보면 심장이 뛰어. 내가 그 한계를 어디까지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궁금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벅차다는 듯이 그가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이렇게

까지 설렌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애셔는 덩달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접수 끝나겠다. 어서 다녀와.”

“잠깐만 이쪽으로 와 봐.”

“응?”

그가 자신의 손목을 살짝 그러쥐었다. 성큼성큼, 접수대가 있는 쪽까지 큰 보

폭으로 걸어가더니 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어디 가지 말고.”

“……형.”

“왜?”

“그러기에는 너무 바로 뒤잖아…….”

정말 뒤돌아서면 바로 보일 그런 거리에 애셔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정말이지, 브라더 콤플렉스도 이런 콤플렉스가 없을 것 같았다.

“세상은 정말 위험한 곳이야. 그런 곳에서 너를 아무 데나 둘 수는 없잖아?”

물가를 내놓은 아이를 보는 어미처럼 어쩔 줄 모르는 샤키를 보며 애셔가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어서 다녀오라는 듯이 눈짓을 보내고는 푸스

스 웃어 버렸다.

“애셔 공자?”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는 목소리에 애셔가 뒤를 돌아봤다. 애셔 공자라고 부를

사람은 단 한 사람, 그건 바로 록시나였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등장에 애

셔가 서둘러 예를 갖추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새 애셔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입을 가리고는 반대편 검지를 본인의 입술에 대었다.

“황……!”

“쉿. 비밀이에요.”

록시나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붉은 눈동자를 나른하게 접었다. 자

신과 샤키처럼 변장한 채로 서 있는 모습에 애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손을 떼었다.

확실히 우성이라는 피가 흘러서 그런지 그녀에게선 감춰지지 않는 고혹함이

흘렀다. 우아하면서도 기품이 흐르는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루크와 묘하게

닮은 것 같았다.

“혼자서 오신 거예요?”

“설마요.”

록시나의 말에 애셔가 주위를 살폈다. 보아하니 호위 기사 역시 변장한 채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곳까지는 어쩐 일이세요?”

“애셔 공자는?”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좋아요. 편하게 애셔라고 부를게요.”

록시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샤키가 곁으로 다가왔다. 록시나는 눈치로 전하

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샤키를 발견하고는 입술을 부드럽게 끌어

올렸다.

“설마, 이 검술 대회에 신청하신 건 아니겠죠?”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묻는 록시나를 보며 샤키가 웃음으로 화답했다. 동시에

두 사람 사이로 암묵적인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숨은 고수를 만난 것

처럼 두 사람은 뜨거운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어쩔 수 없겠네요. 잘해 봐요, 우리.”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샤키는 록시나가 내민 손을 가볍게 그러쥐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이나

손을 잡은 채로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용케도 잘 빠져나오셨습니다?”

“설마요. 망할 영감탱이가 어찌나 까다롭게 굴던지.”

여, 영감탱이라니……. 두 사람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애셔가 화들짝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대화의 대상자인 샤키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을 맞

받아쳤다.

“그건 저희 쪽도 만만치 않죠. 그렇게 숨 막히게 살면 뭐 하나 싶을 만큼 말

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냥 대회

때도 느꼈지만, 두 사람은 서로만의 뭔가 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았다.

*

검술 대회를 알리는 사회자가 무대 위에 올라왔다.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번호

표를 부여받았고 판 위에 배치된 순번대로 무대 위로 올라와 상대와 대련했

다. 확실히 샤키가 말했던 대로 다들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인 만큼 무대 위에서는 팽팽한 기류가 오갔다. 상

품을 준다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참가한 이들은 하나같이 모든 전력을 다해

싸웠다. 그런 모습에 애셔는 샤키와 록시나가 걱정되었다.

딱 서른 명만 받았던 무대였던 만큼 순번은 빠르게 다가왔고 샤키는 무대 위

로 올라갔다. 그가 검을 연습하는 건 여러 차례 보았지만, 이렇게 실전으로

대결하는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걱정되면서도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을

애셔는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순식간에 판은 샤키의 압도적인 승

리로 끝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난 상황에 애셔가 멍하니 서 있자, 록시나

가 그의 팔을 톡톡 건드렸다.

“아무래도 이번 최종 대결은 저와 샤키 공자가 될 것 같네요.”

“두 분 다 다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제 쪽을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누가 봐도 이번 승리는 제가

될 것 같거든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을 하며 그녀가 붉은 입꼬리를 매끄럽게 휘었다.

그렇게 샤키의 무대가 끝나고 록시나가 대결을 위해 올라갔다. 그녀는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보다 두 배나 큰 남자를 빠르게 억압했다. 단 한 번

의 밀림도 없이 제압하는 록시나를 보며 애셔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이번에는 정말 재미있겠는데?”

의욕이 샘솟는 얼굴로 말을 하는 샤키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최종 결승 상

대가 정해졌다.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후보는 샤키와 록시나였다. 두 사람은

무대 위로 올라가 서로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건넸고 그렇게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눴다. 그간 보여

줬던 유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무대 위에서는 오로지 범접할 수 없는 기류

만 흐르고 있었다.

챙챙-, 칼이 부딪히는 소리만 났다. 얼마나 빠르게 내리쳤는지 맞닿은 검 사

이로 작은 불꽃이 튀었다.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 관

객들은 조용히 숨을 죽이며 두 사람을 지켜봤다.

오 분이 흐르고, 십 분이 지나도 두 사람은 여전히 지칠 줄 몰랐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모든 전력을 다해 싸우는 모습에 애셔는 입안이 버석하게 마

르는 기분이었다.

“정말 장난 아닌데?”

“이 정도면 거의 마스터급 아니냐?”

“마스터가 뭐야. 폐하를 호위하는 기사단이라고 해도 믿겠어. 설마 진짜인 거

아냐?”

애셔의 주위에 있던 일행이 수군거리자, 그 말이 밀물처럼 전파되어 주위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두 사람의 정체를 알기 전에는 말을 끝낼 생각들

이 없는 것 같아 애셔는 더욱더 망토를 깊게 눌러썼다.

장시간 이어진 대결 속에 조금씩 두 사람이 지쳐 가는 게 보였다. 점차 흐트

러져 가는 모습 속에서 록시나는 샤키의 빈틈을 파고들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숨 막히는 대결이었는데요, 한마디 하시겠습니까?”

사회자의 말에 록시나가 고개를 저었다. 사회자는 알겠다는 듯이 미리 준비해

둔 메달을 그녀에게 건넸고, 관객들은 제 일처럼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두 사람의 정

체가 궁금하다는 듯이 몰려든 사람들을 본 샤키는 애셔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뛰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애셔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

는 검사들이었고, 애셔가 감당하기에는 체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조금씩 한계

가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빠르게 애셔의 상태를 눈치챈 록시나가 손가락으로

피리를 불었다.

휘이익-,

소리에 맞춰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나와 뒤쫓는 사람들을 막았다. 덕

분에 애셔는 조금 더 수월하게 샤키, 록시나와 함께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피

할 수 있었다.

“이번엔 제가 이겼네요?”

“즐거웠습니다.”

“그럼 이제 무승부인가요?”

체스 이후로 줄곧 샤키와의 대결을 원했던 록시나였다. 그녀는 샤키를 이겼다

는 사실이 매우 즐거운지, 눈매를 예쁘게 접으며 식당 주인을 불렀다.

“주문하시겠습니까?”

“가게에 있는 메뉴들을 전부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 있는 이들의 음식

값도 전부 다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물론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제 일행들 것

까지도요.”

록시나의 말에 식당 주인의 안색이 환하게 바뀌었다. 혹여라도 그녀의 마음이

변할세라 그는 서둘러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애셔. 수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네……?”

“이번에 신전 기도 때 루크가 폐하를 알현한 거 기억하죠? 그때 두 사람이 대

화하는 걸 의도치 않게 들었는데, 아직도 마을에 알파를 수집하는 자들이 있

다고 하더라고요.”

문득 일전 고아원으로 가다 사라진 아이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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