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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그게 무엇입니까?”
“유령의 집에 가고 싶어요.”
뜬금없이 튀어나온 단어에 루크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하지만 곧 해맑게
웃는 애셔의 모습에 그가 화제를 돌리기 위해 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괜찮겠습니까? 제국에서 제일 무섭다고 유명한 곳이던데 말입니다.”
“아마도요……?”
제국에서 제일 무섭다고 소문 난 곳이라니. 그 말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
금이 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미 덩굴에 있는 보물 상자가 뭐라고. 꼭
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애셔는 창백한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혹, 장미 덩굴에 있는 보물 상자 때문에 가고 싶은 거라면 제가 도와 드리겠
습니다.”
“아니요. 그렇게 자유 출입권으로 얻으면 보람이 없잖아요.”
애셔가 단호하게 의사를 밝혔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직접 얻겠다는 듯이 눈
빛을 빛내는 애셔를 보며 루크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유령의 집 입구에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듣고만
있어도 밀려오는 공포에 애셔는 줄의 간격이 좁아질수록 심장이 가파르게 뛰
어 대는 것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전하와 꼭 이곳을 통과해서 손등에 도장을 받을 거
예요.”
말을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애셔의 입술이 점점 창백하게 질려 갔다. 유령이
라는 유 자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자신이 과연 이곳을 완주할 수 있을
지 의문이었지만, 루크가 곁에 있다면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점차 줄의 간격이 줄어들고 곧 자신과 루크가 들어갈 차례가 다가왔
다. 애셔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루크를 향해 씩씩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들어갈까요?!”
지나치게 기합이 들어간 애셔를 루크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
만 애셔는 괜찮다는 듯이 유령의 집 입구로 들어섰다.
푸쉬-.
들어서자마자 하얀 연기가 애셔와 루크를 향해 품어져 나왔다. 놀란 애셔는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로 주저앉아 숨만 거칠게 들이켰다.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괜찮은 거치고는 애셔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애셔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
어나며 길게 심호흡을 하고는 머리를 정돈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표정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연기가 품어져 나왔던 입구와 달리 유령의 집 안은 컴컴했다. 벽에서 튀어나
오지는 않을까, 경계하며 들어가던 애셔는 누군가 발을 잡는 것을 느꼈다.
“바, 발밑에……!”
누군가 발을 잡았다고 운을 떼기 무섭게 루크가 그대로 검집을 내려쳤다. 무
시무시하게 딱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그는 유령 역을 하는 이를 피해 바닥을
내리친 것 같았다. 애셔는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단 채로 멍하니 루크를
올려다봤다.
“……전하?”
“제 것에 손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어둠 속이라 그런지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들린 것 같았다. 애셔는 일단 알겠다며 답하고는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려 했다. 하지만 의지와 다르게 풀린 다리는 움직일지 몰랐고 애셔는 굳
어 버린 다리를 톡톡 치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만 손 좀 빌리겠습니다.”
루크는 긴장이 풀려 버린 애셔의 손을 잡으며 살짝 페로몬을 풀었다. 오직 애
셔만이 맡을 수 있게 페로몬을 풀며 애셔의 안정을 되찾아 주기 시작했다.
코끝에서 맡아지는 알싸한 박하 향이 폐부 깊이 가득 찼다. 계속해서 맡고 있
고 싶을 만큼 몽롱한 페로몬의 깊이에 애셔는 무서웠던 감정이 눈 녹듯 사라
지는 것을 느꼈다.
향이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걸까. 어딘가 조금 취하는 듯한 기분에 애셔는 저도
모르게 그가 있는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코를 가져가 대었다. 하지만 그는 한
순간에 페로몬을 거두며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애셔?”
“페로몬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좋은 거예요?”
“……지금 뭐라 하시는 겁니까.”
“누군가의 페로몬이 이렇게 좋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상상 이상으로 달콤해서 애셔는 조금 더 맡고 싶었다. 무언가에 홀리듯 멍하
니 있다가 뒤늦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는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거긴 위험합니다.”
루크가 서둘러 애셔의 허리를 감싸며 끌어당겼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얼굴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 애셔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두근두근.
누구의 것인지 가파르게 뛰는 심장 소리에 애셔가 숨을 그대로 삼켰다. 그렇
게 하면 심장이 느려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서 완주하고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네.”
꺼질 듯한 불씨처럼 희미한 대답에 루크가 허리를 감쌌던 손을 풀고는 손끼리
다시 마주 잡았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유령이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아
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간신히 출구로 빠져나온 애셔가 출구 도우미에게 다가가 손등을 내밀었다. 손
등에 찍힌 것은 참 잘했어요, 라는 도장을 떠올릴 만큼 귀여운 토끼가 그려진
도장이었다. 애셔는 그 도장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서 루크를 향해 웃
어 보였다.
“이것 보세요, 전하! 도장이에요.”
“그리 기쁘십니까?”
“네!”
아이처럼 신이 난 목소리로 답하는 애셔를 보며 루크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잔잔하게 번져 갔다. 도우미는 애셔와 같은 도장을 루크의 손등 위에도 눌러
주고는 마력으로 가동되는 도구로 기념사진도 찍어 주었다.
“이 사진……, 제가 가져도 될까요?”
“마음에 드십니까?”
“네. 엄청요.”
환하고 웃고 있는 자신과 달리 그의 표정은 딱딱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와
함께 추억할 수 있을 만한 무언가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
는 기분이었으니까. 하지만 루크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이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해마다 함께 이곳에 오면 되겠습니다.”
“…….”
“그때는 유령의 집이 아닌 다른 곳을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다음을 기약하는 루크의 말에 애셔는 섣불리 입
술을 뗄 수가 없었다. 그저 이마 위에 닿은 그의 손길을 조용히 느끼며 고개
만 느릿하게 끄덕였다.
*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마친 애셔는 루크와 함께 장미 덩굴이 있는 곳을 찾았
다. 어느새 해가 지는 건지, 언덕 너머로 석양이 붉게 지는 게 보였다.
평소에는 느릿하게 흘러가던 시간이 오늘은 순식간에 흘러간 기분이었다. 괜
스레 느껴지는 아쉬움에 애셔는 입술만 말아 물었다.
그렇게 걸을수록 코끝으로 진해지는 장미 향이 맡아졌다. 샤키에게 맡아졌던
장미 향보다 짙은 장미 향이었다. 애셔는 덩굴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빠른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서서히 드러난 장미 덩굴은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났다. 자산을 얼마나 쏟아부
었는지, 커다란 규모의 덩굴 공원은 온통 불긋한 장미꽃으로 가득했다. 걷기
만 해도 어지러울 만큼 짙은 장미 향에도 연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손을 잡으
며 저마다 추억을 만들기 바빠 보였다.
“아름다워요…….”
감탄을 감추지 못한 채로 눈을 반짝이는 애셔의 모습에 루크는 조용히 그 모
습을 지켜만 보았다.
“저기가 보물 상자가 있는 입구인가 봐요.”
주위를 둘러보던 애셔가 미로처럼 생긴 장미 덩굴을 발견했다. 입구라고 쓰인
표지판과 함께 안내원도 함께 서 있었다.
“찾을 수 있을까요?”
“꼭 찾을 겁니다.”
그것 때문에 애셔가 고생했다는 걸 안다는 듯이 루크가 안심하라는 눈짓을 보
냈다. 애셔는 루크에게 긍정의 눈빛을 보내고는 안내원이 있는 곳으로 가 도
장을 보여 주었다.
“이 미로에는 보물 상자가 있습니다. 미로 중앙에 설치되어 있죠. 하지만 상
자는 두 개. 선택은 단 한 번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보물 상자가 아닌 다른 상자를 고른다면요?”
“당연하게도 꽝이겠지요. 행운을 빌겠습니다.”
더 이상 대화는 생략한다는 듯이 안내원이 입구 쪽으로 손을 가리키며 구십
도로 인사를 했다. 애셔는 아쉬움을 뒤로하고는 루크와 함께 미로 안으로 들
어섰다.
시야가 어지러울 만큼 미로의 벽은 온통 빨간색 장미로 가득했다. 너무 화려
한 꽃만 가득하다 보니 애셔는 눈이 아픈 것을 느꼈다.
“어느 쪽으로 가는 게 좋을까요?”
“미로의 중앙이라 했으니 이쪽으로 가는 게 좋겠군요.”
그는 정답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렇게 실수 없이 중앙에 근접
해 갈 때쯤 애셔는 그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
“대충 생각했습니다. 오른쪽 끝에 입구가 있었고 왼쪽 끝과 비교한다면 중앙
은 이쪽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들의 동선이 지도처럼 그려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렇다 해도 헷갈리고도 남을 부분을 완벽하게 잡아내다니. 확실히 우성은 우성
이었다. 애셔는 그를 동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그의 곁을 따랐다.
“미로의 중앙을 찾으신 걸 축하드립니다. 축하의 기념으로 상자를 고를 기회
를 드리겠습니다.”
애셔와 루크가 중앙에 다다르자 또 하나의 안내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택은 단 한 번, 고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