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인 더 시티 (112)화 (112/114)

외전 #4

행사를 마친 두 사람이 서둘러 달려온 곳은 공항이었다. 정부 소속 특수요원으로 지내며 단 한 번도 유희를 목적 삼아 와본 적이 없었다. 훤히 트인 공기와 북적거리는 여행객들의 소음에 의진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와, 다른 세상 같아.”

“그렇게 주위 둘러보면 공항 처음 온 거 너무 티 나잖아.”

“아… 그렇지?”

훈련복도, 전투복도, 행사를 위한 제복도 아닌 평범한 사복은 꽤 오랜만이었다. 품이 큰 흰 셔츠에 피트 되는 청바지를 입은 의진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었다. 의상과 머리 스타일, 수줍게 웃는 얼굴이 꼭 여행 출발 직전의 대학생 같기도 했다.

승오는 부드러운 갈색 머리통을 쓰다듬고서 눈을 굴려 체크인 게이트를 찾았다. 두 손엔 각자의 캐리어가 들린 채로.

“우리 게이트 저기야.”

통신사 부스와 가까이 있는 E 게이트를 승오가 가리키자 의진이 손을 뻗었다. 본인 캐리어는 스스로 들겠다는 의사였다. 그러나 노골적인 의사 표현에도 승오는 아랑곳하지 않고 의진의 등을 팔로 툭툭 칠 뿐이었다.

“앞장서. 가방은 내가 끌게.”

“됐어. 힘센 거 자랑해? 줘, 내 거는 내가 들래.”

손잡이를 꽉 쥔 주먹 위로 핏줄이 돋아났다.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승오의 악력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의진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짓다가 뾰로통하게 돌아섰다.

“그럼 여행 내내 네가 다 끌어라.”

“어, 그러려고 했어.”

“난 너 힘들까 봐 그러는 건데.”

“이런 거로 힘 안 들어. 그리고,”

몇 걸음 앞서 걷던 의진을 금방 따라잡은 승오가 늘씬한 몸을 가까이 붙였다. 그리곤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너는 다른 데다가 힘 써야 하니까.”

“…무, 무슨…!”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이 퍽 귀여웠다.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손이 부족한 관계로 승오는 붉어진 귀 끝을 빤히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도시’와의 전쟁이 끝난 후 의진이 어두운 내면을 덜어낸 만큼 승오도 부쩍 솔직해졌다.

“빨리 와. 너 면세점 구경한다며. 얼른 들어가야지.”

“아, 맞다!”

체크인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의진의 바람대로 여유롭게 면세품을 구경하다가 간단한 요기까지 해결했다. 늘 인지하고 있어야 했던 자신들의 위치를 망각해도 되는 순간이 찾아오니 어색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발을 흔들며 남은 콜라를 쪽 빨아 마신 의진의 뺨을 승오의 약지가 톡 건드렸다.

“너 되게 신나 보인다.”

“되게 신나. 너랑 어디 가는 것도, 작전이나 외부 훈련이 아닌데도 밖을 나온 것도 처음이잖아. 솔직히 센터 들어가기 전에 누렸던 모든 게 엄청 오래된 꿈 같았거든.”

“그건 그렇지.”

승오는 의진의 말에 백 퍼센트 공감했다. 에스퍼는 나라의 이익임과 동시에 길들여야 하는 경계 대상이었다. 에스퍼나 가이드로 발현되고 난 후부터는 국가가 운영하는 EGI 교육 센터로 들어가 훈련생으로서의 교육을 받고, 그 후엔 요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국가 재난으로 분류될 정도의 안전을 위협하는 조직이 꿈틀대면 더더욱 밖을 나올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답답했을, 승오를 바라보던 의진이 눈을 잘게 깜빡였다.

“팀장님이 용돈도 줬으니까 아끼지 말고 놀다 오자.”

“용돈 없어도 너 하고 싶은 거 다 시켜줄 수 있어.”

“오, 멋있어.”

의진의 능청스러운 환호에 승오가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타보는 최신식 항공기 비즈니스 좌석은 무척이나 쾌적했다. 의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위를 둘러보다가 버튼식으로 투명도가 조절되는 창문에 결국 우와, 소리를 냈다. 하늘색 담요를 펼쳐 덮은 무릎이 쉴 새 없이 콩콩거렸다.

“그것보다 더 신기한 장면도 매일 보면서.”

“그거랑 그거랑은 다르지.”

“뭐가 다른데?”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이륙 신호에 의진이 몸을 바로 기대고 승오를 올려다봤다. 광대 아래로 움푹 파였던 얼굴 살이 점점 채워지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늘 자신을 바라보는 깊은 눈매를 한참 바라보던 그는 팔걸이를 올리고 단단한 손을 맞잡았다.

“보는 거랑 경험하는 건 다르니까. 센터에서는 그냥 보기만 한 거고, 지금은 나도 너랑 같이 하늘 위를 날고 있는 거라구.”

오랜 훈련으로 거칠어진 손바닥을 매만지는 피부가 부드러웠다. 승오는 예상치 못한 의진의 답에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럴 때 보면 자신의 능력은 절대적인 힘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머릿속을 억지로 들여다본다 해도 속마음까지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니까. 그것은 능력 밖의 일이기도 했다.

“돌아가면 훈련 더 열심히 해야겠다.”

“왜?”

“그냥. 그러고 싶어서.”

한 사람이 잡은 손을 벌리면, 다른 한 사람이 익숙하게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활주로를 가르며 이륙하는 진동에 맞춰 눈을 마주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소를 지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옆 좌석이 비어있었다.

승오는 고개를 숙여 의진의 입에 입을 맞췄다. 잠깐 닿았다가 떨어질 줄 알았던 입술이 잇새를 가르려 들자 의진은 황급히 다른 손으로 승오의 가슴을 밀었다.

“야,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옆에 비었어. 아무도 안 봐.”

“대각선, 대각선….”

“안 본다니까. 그리고 보면 어때.”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면서 귓구멍이 따끔거려질 테고 쌀쌀한 한기도 느낄 터였다. 그러니까 조금만. 승무원이 안전벨트를 풀고 다시 복도를 돌아다닐 때까지 조금만. 승오의 회유에 의진은 어쩔 수 없이 비집고 들어오려는 혀를 맞아주었다.

비행길에 들어선 기체가 기울어진 몸을 바로 했다. 안전벨트 해제 알림음과 함께 떨어진 입술에서 투명한 은사가 늘어졌다. 의진은 확 얼굴을 붉히고 승오의 젖은 입술을 닦아냈다.

“우리 오래 비행해야 하는데…. 나 흥분시키지 마.”

평소보다 짧은 키스였는데도 의진의 흥분점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새침하게 말한 의진이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고개를 돌렸다.

옅게 오르내리는 상체를 바라보던 승오는 기내 서비스를 준비하는 승무원에게로 한 번 시선을 뒀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시간이나 공간을 다룰 줄 알았으면 좋았을걸. 괜한 아쉬움이 들었다.

*

직항으로 대략 13시간을 날아온 끝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몸이 오들오들 떨렸던 한국과 다르게 살짝 미적지근한 바람이 자주 부는 날씨였다. 진짜로 이곳에 왔구나. 햇볕 받은 의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숙소 가서 짐부터 놓자.”

“응. 피곤하진 않아?”

“전혀. 하나도 안 피곤해.”

승오의 질문에 의진이 고개를 휙휙 돌려 답했다. 벗은 패딩을 팔에 걸치고 택시를 잡으러 종종 걷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승오가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공항에서 3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숙소는 한 채를 전부 사용하는 에어비엔비였다. 여울이 손수 예약해준 곳으로 애제자들의 휴가를 축하한다는 웰컴 카드까지 식탁에 올려져 있었다. 확 트인 거실과 주방, 각각의 방엔 호스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담뿍 묻어났다.

“승오야, 너무 좋다. 우리 여울쌤한테 엄청 좋은 거 사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아까 사와야 할 거 목록 다 적어서 나 보내주셨어.”

거실 커튼을 확 젖히자 아담한 테라스가 눈에 들어왔다. 밖을 구경하는 의진의 뒤로 승오가 몸을 감싸 안았다.

“숙소만 왔는데 행복해.”

“네가 그럼 나도.”

같은 곳을 보던 중 의진이 몸을 돌려 승오를 마주 봤다. 발꿈치를 들어 짧게 입을 맞추니 승오가 자연스레 허리를 감아 당겼다. 부딪힌 입술이 깊게 맞물리고 혀가 뒤섞였다.

“흐으응….”

안 그래도 맨살을 비비고 싶어 안달이 났었는데. 왼손으로 다시 커튼을 친 승오가 아예 목에 팔을 감는 의진의 허벅지를 감싸 들었다. 마스터룸으로 들어가는 걸음은 조급하면서도 여유로웠다.

“그새 침실 봐놨어?”

“물론이지.”

침대에 의진을 눕힌 승오가 셔츠 단추를 톡톡 풀며 말했다. 기내 탑승 전, 라운지에서 샤워한 터라 아직 낯선 샴푸 향이 의진에게 묻어있었다. 허여멀건 한 목덜미에 더운 입술을 묻은 그는 이번엔 청바지 단추에 손을 가져갔다.

“…….”

지퍼를 내리려던 손을 멈추고, 승오의 눈이 의진에게로 향했다. 불룩해진 아래는 청바지 위로 열감을 잔뜩 내뿜었다. 의진도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슬쩍 들리곤 입술을 깨물었다.

“뭐, 뭘 그렇게 봐….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너는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내가 너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승오는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바지를 내렸다. 드러난 흰 허벅지에 입술을 몇 번 문대다가 완전히 발기한 의진의 성기를 속옷 위로 살살 흔들기도 했다. 한 번의 브레이크 없이 섹스 전초전에 입성한 것이다.

“흐읏, 응….”

네가 이러는데 안 설레게 생겼니…. 생각과 다르게 말은 야릇한 비음으로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자마자 이렇게 될 걸 알았다 하더라도 몸뚱이는 여지없이 달아 올라버렸다. 선액이 삐죽 흐르며 의진의 회색 브리프가 짙어졌다. 승오는 천과 함께 귀두를 입에 담고 혀로 할짝이기 시작했다.

“핫! 으응, 뭐, 뭐야… 읏!”

까슬한 섬유과 침에 젖으며 귀두에 달라붙어 오감을 일깨웠다. 의진은 앞뒤 할 거 없이 젖어가는 것이 선연하게 느껴져 목덜미까지 홧홧해지고 있었다. 부끄러워. 근데 좋아. 두 개의 감정이 덜그럭대며 의진의 이성을 톡톡 끊어놨다. 자기도 모르게 가이딩 에너지를 풀풀 풍겨내는 건 덤이었다.

“아흐으… 승오야, 너도 빨리 벗어….”

“알았어, 알았어.”

마른 다리가 맞닿았다가 활짝 벌어지기를 반복했다. 흥분했다는 몇 개의 행동 중 하나였다. 승브리프 중심을 잔뜩 적셔놓은 승오가 티셔츠와 팬츠를 빠르게 벗어내곤 의진의 위로 안정감 있게 올라탔다.

“오늘은 주변만 돌아봐야 할 거 같다.”

“응… 괜찮아.”

속옷을 벗길 때, 늘 승오의 납작한 손톱은 의진의 골반을 살며시 긁고 지나갔다. 바르르 떪과 동시에 딱딱해진 성기가 퉁 튕겨 나와 아랫배에 붙었다.

긴 여행의 서막을 짜릿하게 시작한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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