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인 더 시티 (110)화 (110/114)

외전 #2

두 사람은 강을 건넜다가 돌아오는 길에 초록 어닝이 늘어진 버거집에서 소고기 패티 두 장이 올려진 버거와 어니언링,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돌아왔다. 제 곁에 앉아 가만히 모든 걸 포용하는 천음을 보고 있노라면 도훈은 이곳 코르도바가 사후세계는 아닐까 생각이 됐다.

그러다가도 생각을 접었다. 도훈과 천음의 죽음 후는 고통이어야 했다. 바삭한 햇볕 냄새가 고인 땅과 총천연색 바다, 붉었다가 파래지는 자연을 만끽하며 살 리가 없었다. 그러니 이건 현실이었다. 실재였고 앞에 놓인 천음은 죽지 않았다.

“노을 지는 건 집에서 봐야 예뻐요.”

“서둘러야겠네요.”

천음의 말에 도훈이 느긋했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완전한 일몰까지는 40분여가 남았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3층 베란다로 올라가기까지 너무나 충분했다.

코르도바의 노을은 매번 보아도 경탄이 절로 나왔다. 베란다의 서서 로마교로 넘어가는 노릇한 해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바라봤다. 도훈이 난간에 팔을 기대 키가 작아진 천음에게 고개 숙여 입을 맞췄다.

“하아….”

노을을 배경 삼아 혀를 섞으면 붉은빛을 머금은 구름이 입안으로 섞여드는 기분이었다. 비벼지는 점막 하나하나가 달았고 가끔 물었다 떼는 폭신한 아랫입술이 침샘을 자극했다.

베란다에서 시작된 키스는 안으로 들어와 너른 침대에서까지 이어졌다. 천음은 풀냄새가 잔뜩 밴 탄탄한 몸을 어루만졌다. 까슬거리는 린넨 셔츠 사이를 파고들어 또렷한 등골을 쓰다듬자 목덜미로 온기가 박혀왔다.

“읏, 도훈….”

스퀘어넥의 반팔을 입고 있던 천음의 허연 목과 빗장뼈 주위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여전한 은색 머리카락까지 손을 올려 살며시 쥔 천음이 흐읏, 크게 숨을 삼켰다.

“소리 내주세요. 굉장히 듣기 좋아요.”

조도가 낮은 ‘도시’에서의 섹스와 달리 여기선 방에 있는 모든 조명을 켠 채 이어졌다. 피부로 나타낼 수 있는 흥분의 지표를 꼼꼼히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자연스럽게 천음의 상의를 벗긴 도훈은 금세 딱딱해진 붉은 유두를 입에 머금었다.

“아흣, 응, 좋아요…. 아아…….”

방금까지 끈적하게 섞였던 도훈의 혀가 넓적하게 펴지며 젖꽃판을 핥았다. 도드라진 유두를 이로 건드리니 천음의 목덜미가 확 젖혀졌다. 마른 가슴의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애무가 부드러운 만큼 녹아내리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목과 가까운 목덜미를 잘근잘근 깨물며 바짝 세워진 유두를 꼬집으니 천음의 허리가 바들바들 떨려댔다. 유연하게 휘어진 허리가 도훈의 불룩해진 아래에 맞닿았다.

“하아, 딱딱하게 부풀었어요.”

“당신이 만져주니까요….”

내려가려는 천음의 허리를 붙잡고서 엉덩이를 들썩거린 도훈이 말했다. 천음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짤막한 신음을 뱉었다.

마른 몸에 잘 붙어있던 바지와 속옷을 내리며 도훈은 짧게 입을 맞췄다. 동그란 엉덩이를 타고 내려온 하의가 모두 벗겨졌다. 언제 봐도 희고 고운 몸이었다. 오늘 봤던 코르도바의 모든 것보다 더. 스스로 셔츠 단추를 푸는 것으로 모든 탈의를 마친 길쭉한 몸이 천음의 위로 올라탔다.

“어서….”

제 위를 점령한 목을 끌어안은 천음이 다리를 벌렸다. 애액으로 젖은 채 벌름대는 구멍에 맞춰 크고 굵은 귀두가 문질러졌다. 곧 삽입하겠단 신호였다. 납작한 아랫배가 힘을 훅 빼는 게 느껴지면, 도훈은 기다렸다는 듯 음습한 곳을 파고들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깊숙하게.

“아흐으!”

“여기까지 들어왔어요.”

여전히 세워져 있는 성기 선단을 쓸어올린 도훈이 아랫배 근처를 더듬거렸다. 배꼽 바로 밑을 지그시 누르자 한껏 벌어진 구멍이 꽈악 조여졌다.

“으응! 그러지 말아요… 너무…… 읏!”

벌어져 있는 허벅지를 쥐어다가 더욱 거리를 넓히면 하얀 오금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 가운데엔 핏발 선 좆이 들쑤시고 있었다. 찰박찰박 소리가 나던 접합부에 하얀 거품이 생겨나는 것도 그쯤이었다.

“하응, 응, 으응, 아, 도훈…!! 읏, 으응! 아…!!”

“흣, 천음님… 하아….”

우웅, 우웅.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굉음이 격렬한 두 사람 주위를 맴돌았다. ‘도시’에 있었을 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소리. 완벽한 쾌락에 담가진 것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시기로 인한 관계가 아니었다. 단지 노을이 예뻐서. 그걸 같이 바라보는 서로가 좋아서. 키스가 포근하고 스치는 살결이 야릇해서.

“후으응, 가, 갈 거 같…! 아흐응!!”

허리를 조금 띄워 흥분점을 찾아 짓눌러주니 천음의 요도에서 정액이 픽픽 분출됐다. 절정에 오르는 모습은 도훈에겐 아주 강력한 자극제였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처박아대던 도훈도 집요하게 물어오는 내벽에 제 흔적을 듬뿍 남기고야 말았다.

흔들리는 종아리를 허리에 감게 한 도훈이 학학대며 후희를 즐기는 천음을 바라보았다. 잔뜩 풀어져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는 천음. 너무나도 고결해 잇자국조차 낼 수 없던 몸엔 이제 시간 다른 열꽃들이 곳곳에 피어있었다.

“사랑해요.”

도훈이 박는 대로 입 벌려 신음하던 그가 도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모든 게 변했어도 우주를 품고 있는 저 까만 눈동자는 영원할 것 같았다. 퍽, 퍼억 퍽…. 천음의 내벽을 들쑤시던 성기가 깊게 박힌 채 속도를 줄여나갔다.

“사랑해요.”

“…….”

“사랑해요.”

“나도,”

천음은 도훈의 입에서 나오는 저 말이 온전한 진심임을 알았다. 그토록 갈망했던 도훈의 애정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도시’에서의 천음이라면 아마도 짜릿한 승리감을 먼저 느꼈을 수도 있었다. 지의진이 아니라 나를 택한 것에 대한 당연함도 마음 한편에 있었으리라.

“나도 사랑해요.”

그러나 정복욕에 도취했던 그는 예전에 죽었다. 탐욕스러운 육신과 영혼은 이제 정부 소유가 된 영토 흙바닥 위로 뿌려졌다.

“이 행복이 영원하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겠죠.”

천음은 팔을 뻗어 도훈의 긴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래도, 다시 죽게 될 그 날까진 이렇게 살고 싶어요. 당신과 이렇게… 우리밖에 없는 이곳에서요.”

“그럴 거예요. 우리는, 지옥에서도 아마 함께일 테니까요.”

도훈의 말에 천음이 비싯 웃었다. 지옥까지 함께라니. 그건 지옥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오류를 짚고 싶진 않았다.

“날 좀 더 안아줘요. 이제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어요.”

천음은 도훈에게 안기며 허리짓을 했다. 유연하고 뭉근하게 움직이는 덕에, 보드라운 엉덩이가 도훈의 장골 언저리에 비벼졌다.

“우흣, 응, 아…! 아아! 흐응, 응! 좋아, 으응! 아…! 아으읏…!!”

커튼을 묶어 놓은 매듭이 풀리며 내려온 베이지색 천이 베란다 창을 가려주었다. 천음을 끌어안은 도훈의 허리 짓이 절정으로 내달렸다. 애액과 정액이 버무려진 조야한 추삽질 소리가 끊임없이 방안을 울렸고, 새된 교성이 바람을 타고 밖으로 새나갔다.

도훈은 숨을 고르고선 천음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

그날 새벽. 곤히 자는 도훈을 옆에 두고 천음이 침대에서 벗어났다. 올리브색의 슬리퍼를 고쳐 신은 후 발소리를 죽인 계단을 올라 그가 도착한 곳은 어김없이 베란다였다. 도훈이 잘 정리한 탓에 정사의 흔적이 몽땅 사라진 시트는 주름 하나 없이 침대를 뒤덮고 있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을 만큼 시커먼 하늘에 흩뿌린 듯 쏟아진 작은 별들. 그리고 그사이 은색 테두리를 감고 있는 달 하나. 모두가 잠든 새벽을 유영하는 바람 소리가 유독 잘 들리는 때였다.

“…….”

높이가 비슷한 건물들을 지나 더 멀리 시선을 보내면 오후쯤 걸었던 강이 까맣게 보였다.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색채 찬란한 하루하루를 보낼수록 회색으로 가득했던 ‘도시’의 갈망이 눈 녹듯 사라졌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건 절대불변이었기에 천음에게도 적용되는 진리였다. 그간의 악행이 죄스럽게 느껴진다고 한다면 글쎄. 용서받지 못할 죄인 것은 맞았으나 죄책감에 사무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도훈을 좀 더 깊이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간헐적으로 목울대를 쳐댔지만, 죽은 자를 향한 애도는 아직이었다.

“날이 찬 데 더 주무시지 않고요.”

“내가 깨운 건가요?”

“온기가 사라져서 깬 거니까, 그렇다고 봐야겠죠.”

얇은 카디건을 챙겨 천음에게 덮어준 도훈이 나른한 얼굴로 그의 옆을 채웠다. 천음은 베개 자국이 난 도훈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단단한 어깨 끝이 천음을 받쳐주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으론 더 조심히 나와야겠네요.”

“혼자 자는 것보다, 함께 새벽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어깨에 기댄 천음의 뺨을 다정하게 만져주던 도훈이 물었다. 천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요. 매번 얼마 지나지 않아 따라 나오니까….”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지금처럼 기다렸다가 나올게요.”

그래도 이 지나친 다정과 호흡하고 있다면, 언젠간 내가 벌인 모든 짓을 스스로 심판하는 날이 도래하리라. 천음의 뺨을 매만지던 손은 이제 어깨를 감싸 온기를 나눠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돼요. 혼자보단 역시, 당신과 있는 게 더 좋아요.”

푸흐흐. 서로의 가벼운 콧바람이 터져 나왔다.

“내일 광장에 열리는 플리마켓에 좋은 물건이 많이 나와야 할 텐데요.”

“꽃집 사장이 또 뻔한 식물 화분을 엄청나게 사들였다고 소문이나 안 나면 다행이고요.”

“하하. 소상공인끼리는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모르지아가 그랬어요.”

항공기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별처럼 하늘에서 반짝였다. 천음과 도훈은 그 빛이 반짝이는 순간 짧게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닳아도 좋을 만큼 키스는 달았다.

“꽃축제에서 모르지아를 위한 꽃을 살 거예요.”

“그는 로맨틱한 사람이니까, 틀림없이 좋아하겠네요.”

왕왕 교류하는 이웃 주민으로 대화 주제를 넘긴 두 사람은 20분가량의 수다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 시각 항공기의 빚도 코르도바를 지나 세비야로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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