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인 더 시티 (107)화 (107/114)

#107

의진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도 숨을 삼켰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와 펄떡거리는 것도 같았다. 간결했던 구두 소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멎었고 의진의 뺨엔 다 식은땀 한 줄기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

분명 천음의 발소리였는데. 발소리가 지나갔음에도 쉽사리 손을 떼지 못했다. 땀이 새어 나와 손바닥이 미끈거릴 정도가 되어서야 느릿느릿 손을 내렸다.

콰과광! 하늘을 죄다 가렸던 검은 먹구름 사이사이로 번쩍 빛이 내려쳤다.

“…….”

“…쥐 새끼처럼 어디 숨어있었나 했더니.”

벽처럼 생긴 문이 천천히 열리며 천음의 모습이 나타났다. 의진은 그 순간 온몸의 피가 바닥으로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듯했다. 밤색 눈동자가 소스라치게 떨어댔다.

“흐악!”

천음의 손이 의진의 멱살을 잡아 쥐었다. 속수무책으로 힘에 이끌려 일어난 의진이 천음에게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김도훈이 여기다가 숨겨줬나 보지? 웃기는군.”

승오야, 승오야…! 옥상으로 끌려가면서도 수천 번 속으로 승오의 이름을 불렀다.

천음의 행방을 살피던 승오는 머리를 관통하는 의진의 목소리에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잔상처럼 계단을 끌려가듯 오르는 전투화가 시야에 그려졌다. 승오는 그게 무엇이라 인식하기도 전에 조금 전 천음과 짧은 전투를 벌였던 옥상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문이 활짝 열려있는 옥상은 비바람을 정면으로 맞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한 손으로 잡은 멱살을 내려놓자 빗물이 고인 구덩이로 의진이 내동댕이쳐지듯 굴러갔다. 어느 순간부터 도훈이 보이질 않았다. 천음은 제가 공들여 세운 ‘도시’가 무너지고 있는 것보다 그 사실이 더 화가 났다.

역시 나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던 것이지.

“말해. 김도훈이 널 거기다가 숨겨둔 건지.”

“……아흑.”

피부를 때리는 빗줄기가 아플 정도로 매서웠다. 의진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천음을 올려다봤다. 사실대로 고하는 대신 그저 몸을 똑바로 일으킬 뿐이었다. 언제나 수많은 이를 거느리던 그 옆엔 이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공백만으로도 천음의 기가 반쯤 꺾인 듯했다.

“진짜 벙어리가 되고 싶은 거… 크윽…!!”

허리를 숙여 구겨진 의진의 멱살을 다시 잡으려는 그때, 천음의 시야가 까맣게 점멸했다. 깜빡.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져가는 감각. 주승오였다.

“이 개새끼가…!”

손을 뻗어 고주파의 진동을 일으키려는 천음이 승오의 주먹에 바닥을 나뒹굴었다.

“천음, 도시는 이제 끝났어.”

말을 끝으로 천음 위로 올라탄 승오가 수차례 묵직한 주먹을 내리꽂았다. 불쾌한 타격음이 멎자 승오는 서둘러 의진에게 다가갔다. 굳어있는 의진을 깨운 건 승오의 목소리였다. 천음이 들려준 환청이 아닌 진짜 승오의 목소리.

“의진아, 괜찮아? 다친 데는?”

“승오야.”

“다행이다.”

“없어. 하나도 없어.”

비틀거리며 일어난 천음이 승오와 의진을 향해 조소를 지었다. 왜 저들을 보며 패배자의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낙원을 무너뜨려 놓고, 나의 김도훈을 앗아가 놓고. 왜 저들은 잃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인지. 분노가 치밀었다.

천음의 눈동자에 희미한 요동이 일었다.

“너희는 나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야.”

입꼬리를 올린 천음이 조용히 말했다. 승오는 의진을 뒤로 보내고 금방이라도 무력화시킬 자세를 취했다. 폭풍전야,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만물을 두드렸던 빗소리는 점차 잦아들었고 건물 아래에 있는 EGI 요원들이 옥상을 주시하며 공격 태세에 들어갔다.

“내 피땀으로 일으켜 세운 ‘도시’를 망가뜨렸으니 너희도 죽어줘야겠어.”

“…이까짓 걸 세우기 위해 네가 한 짓이 어떤 짓인지, 알기나 해?”

“혁명엔 희생이 따르는 법.”

말을 마친 천음은 얇은 눈썹을 한 번 들썩거리곤 정신 분란을 일으키는 날카로운 소리를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게 했다. 의진의 귀를 막은 승오가 재빨리 무력화를 사용했으나 이미 공격을 받은 몇몇 요원들이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크읏!”

“죽어!”

천음의 날카로운 비명에 의진이 눈을 질끈 감고 승오를 끌어안았다. 승오는 의진을 마주 안고 폭주 직전의 천음을 막는 데 집중했다. 의진이 쉼 없이 가이딩을 해주고 있는데도 벅찰 만큼 강한 상대였다.

“천음이, 폭주하려고 해.”

검게 찰랑이던 머리카락이 희게 변한 천음은 눈마저 파란색으로 뒤덮였다. 완벽한 폭주였다. 본인의 힘을 이기지 못하면…. 승오가 달려드는 천음을 막고서 의진을 향해 소리쳤다.

“의진아, 도망가. 어서!”

“미쳤어? 절대 안 가!”

승오의 귓구멍에 딱딱하게 굳었던 피딱지 위로 붉은 액체가 주르륵, 흘렀다. 정신을 조종해 최대한 능력을 막고 있는 것인데도 폭주하는 S급 에스퍼의 능력을 모두 무력화하기가 힘들었다. 의진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조금 떨어진 승오에게 달려갔다.

“안 돼, 절대 나 혼자 도망 못 가!”

일부 요원이 옥상으로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남은 요원들은 여러 군데에서 튀어나오는 ‘도시’ 에스퍼를 상대하기 바빴다. 모두가 스스로를 희생하며 싸우고 있었다. 모두가. 억울하게 죽어버린 사람들의 뼈대로 세운 ‘도시’를, 그 ‘도시’를 만들어낸 천음을 심판하기 위해서.

의진은 승오의 뒤로 걸어가 등을 받치고서 이를 악물고 가이딩 에너지를 발생시켰다.

“크흐읏…!”

의진의 에너지를 받은 승오가 간헐적으로 끊긴 공격을 더욱 극대화해 천음을 노렸다. 하얗게 바랬던 머리카락이 제 색을 되찾자 귓가에 들렸던 구역질 나는 이명도 사라졌다.

“됐다.”

천음을 눕혀 무력화에 성공한 승오가 작게 읊조렸다. 때마침 천음을 체포하기 위해 올라온 요원들이 옥상에 도착했다.

“천음! 이제 항복하고 무릎 꿇어!”

그때였다. 가만히 승오를 응시하던 천음이 승오의 목을 틀어쥐고 몸을 일으켰다.

“나를 이겼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승오야!”

의진이 다가오려 하자 천음은 요원 중 하나의 귀를 터뜨려 즉사시켰다. 파랗게 질려가는 승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진짜,”

“안 돼!”

타앙! 천음의 말이 끊기고 청명한 총성이 울렸다. 승오 얼굴에 검붉은 핏자국이 튀었다.

“하아, 하아….”

서 있는 요원의 허벅다리에 부착된 총을 들고 있는 건 의진이었다.

“…….”

천음 옆구리를 뚫고 탄이 지나간 것을, 승오는 똑똑히 보았다. 에스퍼를 사살하도록 만든 총을 의진이 쏘았고, 천음을 그것을 정통으로 맞았다.

승오의 목을 졸랐던 손에 힘이 빠졌다. 그리곤 천천히 옥상 밖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스, 승오야….”

높다란 건물 옥상에서 그대로 천음이 추락했다.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죽음을 향해 비행하던 그가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추적추적 내리던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았고 은은한 허브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10초, 11초, 12초…. 마치 환락에 빠진 듯한 착각이 들 만큼 기이한 광경이었다. ‘도시’를 덮었던 하얀 빛은 금방 사라졌고, 바닥에 피를 뿌리며 죽어있어야 할 천음은 사라진 상태였다.

“비상입니다. 천음이 사라졌습니다!”

아래에 대기 중이던 요원이 소리쳤다. 승오는 총을 쥐고서 벌벌 떨고 있는 의진을 향해 걸어가 그를 가득 끌어 안아주었다.

“하아, 내가… 내가….”

“괜찮아. 의진아, 괜찮아.”

천음이 사라진 자리엔 물질화 에너지로 추정되는 캡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건물에서 내려온 승오가 먼저 그것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싸이코메트리. 사물을 통해 그 안에 담긴 과거를 엿보는 능력. 승오의 머릿속으로 도훈이 마지막으로 남기고자 했던 장면이 재생됐다.

도훈은 줄곧 고뇌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죗값을 치러야 하는지, 아니면 이번엔 제가 천음의 구원자가 되는지. 딱 하나 남겨둔 캡슐 하나를 만지작거린 그는 무너져 가는 ‘도시’를 바라보고 몸을 돌렸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탈출구를 마련했다. 천음과 또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가 꿈꾸는 영원한 낙원에서 단둘만의 밀어를 속삭이기 위해. 다른 이를 품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었다.

타앙! 총성이 들리고 도훈은 건물 아래로 나와 떨어지는 천음을 지켜봤다. 피를 흩뿌리며 떨어지는 천음은, 정말 우습게도 하늘이 제게 내려준 마지막 기회처럼 보였다.

‘…천음님.’

목뼈가 부러지고, 옆구리엔 구멍이 뻥 뚫린 나의 세상. 도훈은 치유 능력을 방사했다. 극도의 치유는 아주 잠시 환각을 일으켰다. 천음은 자신을 안아 드는 도훈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제 우리의 ‘도시’는 당신과 나, 단둘뿐인 거예요.’

‘…….’

뺨을 만지는 손이 부드러웠다. 도훈은 점차 제 모습을 되찾는 천음을 내려다보고선 뒷주머니에서 캡슐 하나를 떨어뜨렸다.

우리의 추악한 갈망이 만들어낸 형편없는 조각. 물질화 에너지로 압축된 캡슐이 천음이 누워있던 곳 정확히 떨어졌다.

‘우리는 이 세상과 어울리지 않아요. 그렇죠, 천음님?’

도훈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잔상은 사라졌다. 승오가 손바닥에 둔 캡슐을 내려다보다가 손끝으로 으스러뜨렸다. 천음과 도훈을 추적할 유일한 단서를 승오 손으로 직접 없애버린 거였다.

“승오야!”

“주승오, 뭐 발견한 거 있어?”

살아남은 EGI 요원들이 일제히 ‘도시’를 샅샅이 뒤지며 천음의 흔적을 찾아댔다. 승오는 태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제 안위를 살피는 의진을 바라보고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천음은 죽었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마도 저기 지평선 너머로, 우리가 모르는 음습한 길을 통해 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갔을 것이 분명했다.

“우측 건물 지하에서 붙잡힌 가이드들을 찾았습니다!”

장담할 수 없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천음의 ‘도시’는 ‘우리’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천음은 죽었다. 도훈이 그 죽은 영혼을 어루만지며 살아가겠지.

“상황 종료, 보고하자.”

“그래도 돼? 아직 발견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 심지어 물질화 연구 자료, 그것도 다 사라졌다고.”

“…내가 봤어. 천음, 스스로 사라지길 택한 거야.”

그 말에 의진과 태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뒤져도 천음을 찾을 만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아 승오의 진술에 승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전투는 정말로 끝이 났다. 완벽한 ‘도시’의 패였다.

“정말로, 천음이 사라진 거야?”

센터로 돌아가는 군용차 안에서, 의진은 승오에게 몸을 기울여 조곤조곤 속삭였다. 센터로 돌아가면 해야 할 것이 많았다. ‘도시’로 납치된 과정과 그곳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을 인터뷰하려 들 것이었다.

승오는 의진의 마른 어깨를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건 우리 둘이 있을 때. 그리고,”

어깨 끝을 만질 때 느껴지는 둥그런 뼈. 땀 냄새가 섞인 의진 고유의 체향. 승오에겐 지금을 누리는 게 더 중요했다.

“구해줘서 고마워.”

의진이 승오의 말에 입을 한 번 꾹 다물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하기 싫으니까… 당연한 거야. 조금 무섭긴 했지만.”

승오와 의진이 눈을 맞추고 환히 웃었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그곳에서 평화로운 키스를 나누자. 비포장길을 달리느라 몸이 덜컹 흔들리는데도 마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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