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사실 승오는 의진과 살을 부대낄 때마다 바다를 경험하고 있었다. 피부로 감겨오는 에너지는 바다의 거품 낀 잔물결과 같았고 혓바닥에 닿는 피부 맛은 짭짤하며 달콤했다. 의진에겐 애정 가득한 애무가 어떻게 느껴질진 모르겠지만, 승오는 그랬다. 늘 바다를 유영하는 듯했다.
“으응….”
큰 손으로 허벅지 안쪽과 봉긋한 볼기를 주무르자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미 수차례 빨린 가슴에 입술을 갖다 대니 의진이 승오의 어깨를 살며시 쥐었다. 승오가 흥분으로 꺼떡대는 젖은 귀두를 바라봤다.
“의진아, 흥분돼?”
“읏, 응….”
이미 달아오르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데도 승오는 가끔 확인받고 싶었다. 달짝지근한 신음에 거짓이 섞이진 않았는지, 애써 가이딩 에너지를 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묻고 싶어졌다.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의진을 빤히 바라본 승오가 고개를 내렸다. 체향 가득 품은 오금에 코를 박고 혀를 할짝댔다. 그리고서 몸을 일으키더니 한 손에 들어오는 딱딱한 성기를 슬슬 문지르며 판판한 몸을 타고 떨어지는 신음을 귀에 담았다.
“앗, 응, 으응…! 아…! 승오, 승오야….”
“응, 나 여기 있어.”
굳은살 가득한 손바닥으로 예민한 좆대를 자극하자 의진의 요도가 사정할 듯 뻐끔거렸다. 투명한 선액을 줄줄 흘리던 의진은 허벅지를 꼭 모으곤 끊어지는 숨을 뱉었다.
찬 공기가 닿아 차가워진 허벅지가 슬쩍슬쩍 승오의 팔뚝 근처에 닿아왔다. 성기 자극에 유독 바르작거리는 의진이 빨간 입술을 벌리고 헉헉거렸다. 승오에게도 그의 첫 번째 절정이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우웃, 아…! 흐응…!!”
성기 표피가 불긋해질 정도로 세게 흔들어 사정을 종용했다. 의진은 허벅지를 벌리며 허리를 쳐올리더니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진한 사정액을 분출했다. 시트에 눌린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는 게 승오의 시선에 잡혔다.
“너, 넣어줘. 승오야, 응?”
사정 직후라 무력감이 밀려올 텐데도 의진은 승오를 삼키고 싶어 했다. 화끈해진 산소를 들이마신 그는 다리 사이로 가까이 들어오는 승오를 맞이하며 스스로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애액으로 흥건해진 구멍이 빠끔 벌어졌다. 승오는 음습한 뒷입에 얼른 들어가야만 했다.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를 잡고 귀두를 벌어지는 입구에 비비적댔다.
“아흐으…!”
“의진아, 넣을게.”
꽉 다물린 채 미끈대던 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 쑥쑥 굵다란 좆을 삼켜갔다. 하윽! 의진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숨을 참았다. 늘 받아내던 것인데 오늘따라 정신이 나갈 만큼 전율이 흘렀다.
“하아….”
삽입하자마자 꽉꽉 조여오는 의진의 구멍에 승오의 목에 핏줄이 섰다. 마음 같아선 다리를 더 벌리고서 마구잡이로 쑤셔대고 싶었다. 퍽퍽 박을 적마다 핏핏 튀어 오르는 애액에 아랫배를 적시고 싶었다.
부글대는 욕망을 꾹 삼킨 승오가 천천히 성기를 다 밀어 넣었다. 승오의 뿌리 끝이 엉덩이에 비벼지는 게 느껴졌는지 의진도 더듬더듬 불룩해진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흣, 아… 좋아, 승오야…. 네가 내 안에 있어서.”
“…좋아?”
“응, 응! 앙…! 아아, 응! 흣! 아!!”
의진의 흥분 섞인 진심에 승오도 더는 한계였다. 의진의 납작한 몸이 더 머리 쪽으로 밀리며 승오가 정신없이 추삽질을 해댔다. 고약한 풍랑에 흩날리는 파도와 비슷했다.
“후으, 응, 으응! 아! 앙! 응! 응, 응! 흣, 아아…!!”
“하, 의진, 큿…!”
정신없이 몸을 섞는 와중에도 착실하게 승오의 몸 안엔 의진이 전달하는 에너지가 쌓여갔다. 혈류에 올라탄 에너지 덕에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승오는 좀 더 깊숙이 좆을 박고선 의진의 내벽이 엉망이 될 정도로 허리짓을 했다.
“흐아, 아, 응! 읏, 응! 응! 앙! 응!! 흐, 승, 아응!”
퓨붓, 의진의 아랫배에 철썩이며 흔들리던 성기에서 또 한 번 정액이 분출됐다. 승오는 척추를 타고 찌르르 흐르는 가이딩을 받아내고서 섹스에 박차를 가했다.
의진의 안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좁고, 따뜻하고, 축축하고, 그 무엇보다 자극적이고 집요했다. 성기에 솟은 혈관 하나하나를 핥아대며 다정하게 굴었다. 승오는 바닷속에 잠식된 여느 가라앉는 부유물처럼 자꾸만 의진의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 의진아, 의진아.”
“으응, 응…! 죽을, 아, 아아…!! 응!”
시트에 널브러진 손바닥에 깍지를 낀 승오가 붉은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자잘하게 허리를 털었다. 의진과 밀착하자 할딱대는 가슴이 선연했다.
단단하게 저를 옭아매는 승오를 힐긋 내려다본 의진은 다시 시선을 올렸다. 제 안을 무자비하게 쑤셔대며 이름을 불러대는 목소리에 성기가 다시 빳빳하게 선 탓이었다. 무슨 약을 탄 것도 아닌데 승오와의 섹스는 이성을 해리시키는 재주가 상당했다.
“평생 이러고 살자.”
“앗, 아… 으응…! 응, 응, 하읏…!!”
꼭 그러자고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아랫배에 꽉 들어찬 성기가 목구멍까지 틀어쥔 듯했다. 그저 박히는 대로 흔들리며 신음을 내뱉는 게 지금 의진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의진을 끌어안고 읊조리던 승오는 뭉근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힘이 잔뜩 들어갔던 깍지가 풀리자 의진은 다급하게 승오를 안았다. 뱃속에 승오의 흔적이 채워지고 있었다.
“나가지 마.”
성기를 빼려는 승오를 의진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조금만 이러고 있어.”
“…의진아.”
“천음이 내 안에 들어온 이후로 지옥을 걷는 기분이었는데.”
“…….”
“너랑 이러고 있음 여기가 천국 같아.”
달뜬 숨이 승오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승오는 고개를 들어 의진을 바라봤다. 쾌락에 취해 또렷함이 사라진 동공마저 사랑스러웠다.
“그러니까 잠깐만 이러고 있자. 응?”
“네가 하자는 대로 할 거야, 나는.”
승오의 말에 의진이 푸스스 웃음 지었다. 그 힘 빠진 웃음에서도 바다가 보였다. 햇살에 부서지는 윤슬보다 더 예뻤으니까.
고개를 기울인 채 숙이자 의진이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벌렸다. 입술이 맞물리고 혀가 섞였을 땐 수면 바로 아래를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
“지의진은 이 정도에도 멀쩡하던데.”
핏기 하나 없이 죽어버린 정현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천음이 말했다. 의진의 절규를 듣고 나서부터 말아 올라간 입꼬리는 지금까지 내려가지 않았다. 천음에겐 이 상황이 그저 즐거운 모양이었다. 도훈은 바닥에서 시선을 거두고 천음을 바라봤다.
그때 시체 수거를 담당하는 방역원이 달려와 파란 천으로 처참한 그를 가렸다.
“아무래도 대접이 달랐던 탓일까요?”
천음의 뾰족한 말에 도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답했다.
“…며칠 전부터 기절 빈도가 잦았습니다.”
“쯧.”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구두가 정현의 머리 부근을 툭툭 건드렸다. 그의 눈엔 불필요한 쓰레기와 다름없었다. 지의진을 다시 한번 몰락시켰으니 그걸로 제 임무를 다한 셈이었다. 알맞게 죽어버린 거 같기도.
“도훈 닥터가 직접 처리해주세요.”
에스퍼가 아닌 족속들은 왜 이렇게 쉽게 죽어가는지. 천음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몸을 돌렸다. 또각또각. 차가운 구두 굽 소리가 점차 실험실 밖을 벗어났다.
“……소각장으로 옮겨. 그리고 다른 시체들이랑 섞지 말고 단독으로 태워.”
쓰레기를 연소시키는 것처럼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그 흔한 추모 없이 불구덩이로 던져졌다. 도훈은 처음으로 멀쩡한 사람 한 구가 직사각형 작은 상자에 담기는 재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방역원이 건네는 상자를 받아든 도훈이 잠시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다가 갑갑한 소각장을 빠져나왔다.
“…….”
도훈이 온 곳은 은거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계곡이었다. 이곳 또한 천음의 주둔 하에 감시되고 있었으므로 적이 침범할 수 없는 곳 중 하나였다.
고동색 상자 뚜껑을 연 그는 천천히 잿가루를 꺼내 바람에 흩날려 보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섞여든 가루는 금세 모습을 감추고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미안해요.”
곧은 손가락 사이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차가웠다. 겨울을 품은 모양이었다.
“당신이 죽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어요.”
도훈은 알고 있었다. 오늘 정현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라는 걸. 처음 왔을 때보다 삐쩍 마른 몸과 부위를 불문하고 피어가는 죽음 꽃을 그저 묵시할 뿐이었다. 의진처럼 주기적으로 영양제를 놔준 것도 아니었고 고작 하루에 미음 하나 건네기만 했으니 오늘까지 버틴 게 대단할 정도였다.
‘당신들은, 인간도 아니야….’
가이딩 에너지를 추출 당한 직후 상태 확인을 위해 다가왔던 도훈에게 정현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원래 목소리가 어땠는지 생각이 안 날 만큼 상해있었다. 그때 도훈은 아무 말 없이 죄다 터진 입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 말할 힘은 있나 보네요. 다행이에요.’
‘평화를… 짓밟는 자는,’
‘…….’
보랏빛 입술이 남은 힘을 쥐어짜 말을 이었다.
‘파멸이 따르리.’
그 말을 하고서 정현은 정신을 잃었다. 그 말은, EGI에서 교육한 내용일 것으로 추측했다.
방역원들이 쓰러진 정현을 데려가고, 도훈은 그 자리에 남아 지저분한 실험관 내부를 훑어본 게 기억의 끝이었다.
왜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올랐을까. 시린 바람을 맞으며 정현을 날려 보낸 그는 곧바로 ‘도시’로 돌아가지 않고 바다를 향해가는 강물을 바라봤다.
“용서받지 못할 삶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압니다.”
차라리 저 깨끗한 물에 잠긴 암석이었다면, 사는 게 조금은 즐거웠으려나. 바위에 살며시 체중을 실었던 몸을 일으킨 도훈이 느리게 걸음을 뗐다.
천음으로 꾸려진 세상이 처음으로 아주 조금 후회되는 것 같았다. 도훈의 가운 자락이 겨울바람에 펄럭였다가 제자리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