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인 더 시티 (71)화 (71/114)

#71

의진은 또 한 번 팀에서 저를 배제 시키려는 승오를 빤히 바라봤다. 홀로 ‘도시’를 추적하러 갔을 때도, 납치당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도시’를 좇을 때도. 승오는 이 모습을 하고 있었을 거였다.

숨 쉬듯이 다짐하지 않았는가. 이제 내가 승오를 지키기로. 의진은 승오의 부름으로 뒤돌아보는 팀장 시선에 맞춰 한 발자국 앞에 섰다.

“무슨 일이지.”

“지의,”

“제 기억이 돌아왔습니다.”

일사불란하게 비상시를 대비한 위치로 이동하는 요원들 사이에서 승오와 의진, 팀장 단 세 사람만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승오는 의진의 말에 눈가를 찌푸렸다. 기억이 돌아왔다니. 무슨 연유로 저런 말을 뱉는지 승오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기억이, 돌아왔다고?”

“네, 전부. 그들이 저를 ‘도시’로 데려간 직후부터 버려진 그 날까지. ‘도시’에서 경험한 모든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본부에서 마저 하도록 하지. 따라와.”

팀장의 뾰족한 시선이 의진을 훑고선 멀어졌다. 승오는 팀장을 따라가려는 의진의 손목을 낚아채 제 쪽으로 끌었다. 아까 전만 해도 두려움에 떨었던 그였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궁금했다.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네가 팀에 들어가면,”

“알아. 승오 네가 나 힘들까 봐 작전에서 겨우 제외한 거. 신경 써준 건데, 미안해.”

“…또 그 새끼가 너 협박했어? 들어가서 훼방이라도 놓으래?”

승오라면 굳이 직접 입으로 뱉지 않아도 제 속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의진은 고개를 돌려 손목을 붙잡은 다부진 손을 내려다봤다. 이 온기를 더는 잃고 싶지 않아서 택한 것이다. 이미 수십 수백 번 입으로, 가슴으로, 눈물로 지새웠으므로 후회는 하지 않았다. 않아야만 했다.

“의진아, 그러지 마.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승오야.”

의진은 손목을 잡은 승오의 다부진 손을 떼어내고서 몸을 돌렸다. 무언가를 지키고자 하는 눈빛은 그 무엇보다 결연했다. 지금 의진이 그랬다.

“나 너 지켜야 해.”

“…지의진.”

“걱정하지 마. 그냥, 내가 너랑 함께하고 싶어서 그래.”

“정말 괜찮겠어?”

“응. 너만 옆에 있어 주면.”

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었다. 차가운 손끝을 감싸 쥔 승오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선 팀장이 기다리고 있는 본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황본부실로 올라가니 그곳엔 지환을 비롯한 분석팀 몇 명과 팀장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보고를 통해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승오와 의진이 들어온 걸 확인한 팀장은 그들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명령했다.

“지의진 요원. 정말 기억이 돌아온 게 맞나?”

“네, 맞습니다. 그동안 도움이 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하나만 더 묻겠네.”

모두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그는 바로 본론을 내밀었다. 팀장과 마주 보고 앉은 의진은 무릎에 올린 주먹에 힘을 주었다. 승오도 그 옆에서 의진을 내내 주시하고 있었다. 혹여 예기치 못한 상황에 겁에 질려 발작이라도 할까 걱정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들과 어떠한 결탁도 없었는지 묻고 싶군.”

“팀장님.”

승오가 무거운 목소리로 팀장을 불렀다.

의심으로 응집된 질문에 의진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승오를 바라봤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괜찮다는 의사를 표했다. EGI를 위협하는 존재들을 소탕하는 사람답게 질문이 첨예했다. 다소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 금방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았다간 제 속내를 몽땅 들출 것도 같았다.

“단연코 없었습니다. EGI 가이드로서의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그저… 저는 그곳에서 그들이 목표로 하는 실험에 쓰인 실험체에 불과했습니다.”

“흐음…….”

날이 선 눈빛으로 의진을 바라보던 팀장은 짤막한 고민을 끝마치곤 팔짱을 꼈다. 도시의 군대 규모와 궁극적인 목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의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승오도 곁에 있으니 반역에 대한 의심은 잠시 접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화면에서도 보이다시피 그들은 무주 센터 가이드 훈련장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어. 사상자는 훈련 중이던 가이드와 트레이너 포함 56명. 현재 신원 확인을 통해 리스트를 작업 중이지만, 그들이 직접 그곳에 이런 삐라를 뿌린 모양이네.”

팀장이 테이블에 놓인 리모컨을 들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빔프로젝터에서 발사되던 화면이 바뀌며 현장 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 한 장이 크게 펼쳐졌다.

「We need a guide to succeed in our objective.」

승오와 의진은 동시에 표정이 굳었다. 어지러운 현장 속에서 수천 개의 종이 쪼가리가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성공시키기 위해 가이드가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는 가이드가 의진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았다. 꽉 쥐고 있던 의진의 손바닥은 서서히 땀이 맺혀 미끈거렸다.

“무슨 뜻일 것 같나.”

“……‘도시’에서 가이드를, 데리고 간 것 같습니다.”

화면을 줄곧 응시하던 의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들은 가이딩 에너지를 물질화하기 위해 수많은 가이드를 실험 도구로 삼았습니다. 또한, 에스퍼들을 각성시킨 뒤 강압적인 가이딩으로 폭주를 막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구축한 시스템은… 가이드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에스퍼들을 각성시킨다…?”

‘도시’를 경험한 의진이 아니면 절대 들을 수 없던 이야기였다. 의진은 팀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제가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를 얘기했다. 옆에서 끈덕지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그는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똑똑.

본부실 문을 두드린 지환이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곤 팀장에게로 걸어왔다.

“팀장님. 사상자 리스트업 됐습니다. 실종자는 1명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3년 전 서울에서 무주로 옮겨 간 EGI 20기 박정현 가이드입니다.”

“서울에서, 무주로?”

“네, A급 가이드로 무주에서 가장 실력 있는 요원이었다고 합니다.”

의진이 말한 대로였다. 그들은 실력 좋은 가이드를 찾아 데려갔다. 그리고, 20기라면 승오와 의진과 같은 기수였으므로 언젠가 마주친 적이 있을 수도 있었다.

“또 한 가지, 페어였던 에스퍼와 매칭률이 백 퍼센트라 무주에서도 주승오 요원처럼 승격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승오는 지환이 말한 사실들을 곱씹었다. EGI 20기, A급 가이드, 페어 에스퍼와 매칭률 백 퍼센트…. 즉, 무주에 있는 지의진을 데려간 거라 봐도 무방했다. 의도가 무엇일까. 왜 이런 짓을 갑자기 벌인 것일까. 의진은 왜, 갑자기 이 작전에 뛰어든 것일까. 어렴풋이 알 것 같으면서도 명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아 가슴이 답답했다.

“상공에 아무런 전파도 잡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다른 루트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일단은 오늘 밤까지 비상경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그리고 오늘부터 지의진 요원도 ‘도시’ 작전에 함께 할 거야.”

팀장은 의진을 바라보며 지환에게 말을 건넸다. 의진과 지환의 시선이 부딪혔다. ‘도시’ 근처 숲에서 돌아온 날 이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의진을 바라보던 지환은 짤막하게 고개를 숙였다.

“분석팀 김지환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네, 지의진입니다. 저도….”

승오가 아닌 다른 정신계 에스퍼들은 불안했다. 혹시라도 생각을 읽게 될까 봐. 의진은 빠르게 테이블로 시선을 내리꽂았다.

“실시간으로 상황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래, 부탁해.”

인사를 마친 지환은 유유히 밖을 나갔다. 승오는 의진이 조금 안도하는 것을 느꼈다. 티를 안 내려 애쓰긴 해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럼 ‘도시’의 군대는 지의진 요원이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인 것 같나.”

“…….”

돌려 말하는 재주가 없는 팀장은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강속구들만 모아 의진에게 던져댔다. ‘도시’의 군대. 군대를 이루는 에스퍼. 치솟는 에너지를 잠재우기 위해 그들과 몸을 섞었던 의진이다. 천음은 의진이 그들을 키웠다고 말했다. 반은 사실이었고, 반은 거짓이었다. 에스퍼들을 미치게 한 건 도훈이었으니.

“제가 봤을 때 군대 규모는…….”

몇 명에게 다리를 벌렸더라. 몇 명이 죽기 직전까지 갔더라. 몇 명이, 내 거절로 인해 귀가 터져나갔더라. 의진은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모든 걸 생각하기엔 너무나 끔찍했다. 아직도 헉헉거리는 짐승 같은 신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군대 규모는, 제가 봤을 때….”

“의진아, 힘들면.”

의진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허벅지를 쥔 손 주변으로 자잘한 주름이 졌고 바싹 마른 침이 자꾸만 식도를 넘어갔다. 옆에서 지켜보는 승오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구체적인 숫자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매일, 매일 다 여섯 명의 에스퍼가 그들에 의해 각성했습니다. 제가 상대했으니까…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지금은 그보다 더 증가했을 가능성도 있겠군.”

“……네, 그렇습니다.”

“그래, 일단은 오늘 자네가 말해준 정보와 무주 센터 테러 양상을 통해 그들의 공격 방법과 보유 에스퍼들을 추려볼 예정이야. 밤까지는 비상경계태세를 유지할 예정이니 자네들도 돌아가 대기하도록 해. 수고 많았네.”

의진은 처음 입 밖으로 ‘도시’에 있던 일을 내뱉은 것치곤 잘 버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무릎이 고꾸라지기도 전 승오가 의진의 마른 팔뚝을 붙잡았다.

“…….”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의진의 어깨를 감싸 안은 승오가 팀장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후 몸을 돌렸다. 손바닥 표면으로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본부실을 나오자 의진이 하아, 하며 깊은숨을 토해냈다.

“괜찮아?”

“…응, 괜찮아.”

두 사람이 본부실을 나가자마자 곧바로 옆 방에서 상황을 모니터하던 분석팀 팀원들이 옮겨 들어갔다. 승오는 옆을 스치는 지환과 눈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하얗게 질린 의진의 상태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까지 견딜 수 있겠어?”

“괜찮다니까. 그냥 조금 떨려서 그랬어. 우리도 얼른 가자.”

“…안 되겠다. 그냥 숙소에 있어. 나 혼자 있어도 되니까.”

“그건 내가 싫어. 같이 있겠다고 했잖아.”

승오와 의진이 대기 배치를 받은 곳은 유찬이 머무르고 있는 보호소 근처였다. 의진의 고집에 승오는 하는 수없이 함께 보호소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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