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상담을 핑계 삼아 지혜에게 묵혀뒀던 감정을 꺼내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가뿐해진 느낌은 있었다. 의진은 서서히 해가 중턱으로 향하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승오가 먼저 나갔으니 지금쯤이면 훈련을 마무리 짓고 있을 것이었다.
“…보고 싶은데.”
본관 뒤편 에스퍼 훈련장을 바라보며 입술을 만지작거리던 의진이 직진으로 두었던 발을 휙 돌렸다. 아무래도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제일이지 싶었다. 뚜벅뚜벅 걷는 발걸음은 걸을수록 망설임을 덜어냈다.
승오의 훈련장은 지정되어 있어 찾기가 수월했다. 시간 맞춰 잘 찾아왔는지 문이 열리자 목을 축이던 승오와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의진은 눈을 동그랗게 뜬 승오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의진아.”
“미안. 방해했어?”
“아니, 전혀. 이제 막 끝났어.”
훈련 일지를 작성하느라 뒤늦게 나오던 여울은 의진을 보고 또 피해줘야 하냐며 너스레를 피웠다. 승오는 그러라고 대답했고 의진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몇 년 키운 애제자보다 의진이가 훨씬 낫네. 잘 쉬고 오후에 봐.”
목덜미를 주무르며 계단을 올라가는 여울을 보던 의진이 승오에게로 몸을 돌렸다.
“상담 잘 받았어?”
“응. 왠지 끝나는 시간 너랑 비슷할 것 같더라고. 그래서 여기로 왔어.”
“잘했어.”
승오는 눈앞에 놓인 의진의 살갗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고 싶은 욕구가 들끓었다. 막 훈련을 끝낸 참이라 가이딩 에너지를 몸에서 원하는 듯싶었다. 제 속내를 알아챘는지 의진이 먼저 뒤통수를 쓸어주는 손을 끌어다 입술을 비볐다.
“이런 건 주승오한테 충전 축에도 안 끼려나?”
의진이 승오를 올려다본 채로 쪽, 쪽. 짧은 키스를 계속 이어갔다. 승오는 저 끝에 보이는 샤워실로 의진을 들쳐 엎다시피 들고 빠르게 직진했다.
“읏, 야!”
“잠깐만.”
일인용 샤워실은 엄청나게 큰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둘이 붙어먹을 만한 장소였다. 물기 하나 없는 버석한 바닥에 의진을 내려놓은 승오가 다급하게 입을 맞췄다.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부딪힌 입술은 당황도 잠시 서로를 핥아대기 바빴다.
“읏, 응… 승오야.”
혓덩이가 떨어지자 초옥, 하는 소리가 샤워실을 울렸다. 의진은 다시금 제 입안을 헤집는 승오의 혀를 받아내며 가이딩 에너지를 풀었다. 그러자 승오가 헐렁한 훈련복 상의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으응, 왜 이렇게 급해?”
“훈련 내내 너 보고 싶었거든.”
승오는 눈을 감고도 의진의 몸에 새겨진 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유독 열감이 짙었고 그 부위를 만지면 가이딩 에너지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옆구리를 문지르던 손바닥이 쭉 올라와 겨드랑이 주위와 윗가슴을 어루만졌다.
허리 숙인 승오 목에 팔을 감은 의진이 발꿈치를 들며 더욱 밀착했다.
“나도 그랬는데.”
훈련장 내부에 딸린 샤워실이 존재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물론 공식적인 사유는 아니었으며 가끔 제어 장치가 고장 난 에스퍼와 가이드들의 일부 변명이기도 했다.
하나는 에스퍼들의 청결을 위해서, 또 하나는.
“여기서, 할 거야?”
“그건 아니고.”
의진의 하의가 스르륵 승오에 손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납작해진 훈련복 바지를 발목에 걸어둔 채 승오도 발기한 것을 꺼냈다.
둘 다 발기를 했음에도 확연하게 다른 크기에 승오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의진도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서 얼굴을 확 붉히곤 팔뚝을 찰싹 내려쳤다. 예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때는 장소가 체력단련실이었나.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희미했다.
“주승오, 너….”
“내 능력이 너한테 옮아갔나?”
밉게 삐죽거리려는 입술을 삼킨 승오가 딱딱한 것에 제 좆대가리를 문질렀다. 비비적거릴 때마다 질질 새어 나오는 쿠퍼액이 퍽 음란했다. 더불어 제게 스미는 의진의 가이딩 에너지도. 체력이 한 칸씩 차오르면 동시에 욕정도 배가 됐다.
“흐으응, 승오야… 아… 좋아.”
“좋아?”
“으응. 응….”
오른손으로 도톰해진 유두를 만져주니 의진이 짧은 신음을 흘렸다. 가끔은 삽입보다도 이런 간지러운 행위가 고플 때도 있었다.
“후으으, 승오야. 빨아줄까?”
“어?”
“안 해준 지 오래됐잖아.”
볼을 붉히며 쓸리는 성기 표피를 느끼던 의진이 아예 바지를 벗어냈다. 그리고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승오를 벽에다가 밀치곤 무릎을 꿇었다. 하얗고 뽀얀 무릎이 샤워실 바닥에 닿자 발기한 성기가 투웅, 튕기다 아랫배 쪽으로 붙었다.
“새삼 이게 내 안을 들어온다는 게 신기하다.”
“…….”
지금 보니 제 마른 팔뚝보다 건실해 보이는 것도 같다. 의진은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이어 뿌리 끝을 꽉 조이고선 피가 몰려있는 귀두부터 입에 담았다. 키스로 따끈해진 혀가 예민한 곳에 닿으니 승오도 눈썹을 찌푸렸다.
고개를 들어 목구멍을 열고서 최대한으로 승오 성기를 입에 넣었다. 다 넣는 건 불가능했으므로 식도에 닿지 않을 정도로만 삼킨 후 혀로 선단에 솟아있는 혈관을 핥았다. 저절로 넘어가는 타액에 승오의 선액 맛이 섞였다.
“츄읍, 응… 하아… 추우웁.”
“하, 의진아….”
입술을 모으고 빠느라 볼이 홀쭉해진 의진이 승오를 올려다봤다. 목덜미가 붉어진 채 입술을 짓이기는 승오 모습에 의진도 덩달아 흥분감이 몰려왔다. 성기를 쥐고 있지 않은 손을 아래로 내려 달랑거리는 좆을 붙잡고 탁탁 흔들었다.
“후으, 응… 춥. 츄으읍. 춥. 아, 허어….”
“미치겠다, 진짜.”
승오는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제 것을 빠는데 집중한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주먹을 쥐었다. 분명 빨리고 있는 건 자신이었는데 의진의 흥분이 제게도 느껴졌다. 그 점이 핀트를 나가게 했다. 샤워실에 데리고 온 것도, 살을 먼저 비벼댄 것도 승오였으나 흥분은 함께였다.
혀끝을 뾰족하게 세워 갈라진 귀두 틈 요도를 살살 자극하던 의진은 제 좆을 흔드는 박자에 맞춰 승오 것을 빨았다. 가끔 볼에 찔러 뭉툭하게 윤곽이 드러날 때면 눈을 치켜떠 승오를 바라봤다.
“우응, 츄읍… 하아… 추으읍….”
“아… 의진아, 그만해도 돼.”
승오의 제어에도 의진은 비릿한 맛이 감돌 때까지 입에서 빼지 않았다. 요도에서 타악 터져 나오는 정액으로 제 목젖이 적셔져도 좋을 것 같았다. 의진의 동그란 머리통이 바쁘게 움직였다.
“하, 지의진…!”
의진은 혓바닥에 고이는 정액을 삼키고서 입을 벌렸다. 승오의 젖은 귀두를 아낌없이 빨아대고 흔드니 잔여 정액이 도독한 입술 주위에 묻기 시작했다.
“나도 쌌어.”
빨간 입술이 말할 적마다 끈적거리는 정액도 함께 보였다. 승오는 정액 묻은 손을 펼쳐 보이는 의진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그를 단번에 일으켰다.
“기분 좋았어?”
“어, 네가 해주는데 안 좋을 게 뭐가 있어.”
“다행이다.”
샤워 호스를 틀어 의진의 손과 입을 닦아주었다. 수돗물 맛이 나는 짧은 키스를 나눈 두 사람은 느지막하게 훈련장을 나왔다. 승오가 복도를 거닐다 손을 뻗자 의진이 냉큼 깍지를 껴왔다.
“지의진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
“응. 센터 돌아오고 나서 이런 적 처음이야.”
승오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의진이 행복하다면 저도 행복했으니까. 손가락 사이사이 들어찬 마른 손가락을 힘있게 쥐었다.
“아, 물론 너랑 있을 땐 다 좋았긴 했는데….”
“너무 늦게 말하는 거 아니야?”
“진짜야.”
짧게라도 휴식을 즐기려 숙소로 돌아가던 두 사람은 아주 오랜만에 장난 섞인 대화를 나눴다. 승오는 마치 ‘도시’를 마주하기 전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말 아주 잠시. 평온했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던 중 위급 상황에서만 울리는 경보음이 서울 센터를 장악했다. 승오는 본능적으로 의진을 품에 가두고 경보음에 귀를 기울였다.
─비상 상황. 비상 상황. 무주 센터 테러로 인해 비상 경계령 1호를 발동합니다. 비상 상황. 비상 상황. 요원직 에스퍼와 가이드들은 모두 본관으로 소집 바랍니다. 비상 상황.
“……승오야.”
위이이이이잉. 고요했던 센터를 울리는 시끄러운 경보음 소리에 의진의 몸이 덜덜 떨렸다. 승오는 의진에게 괜찮다고 속삭이며 곳곳에서 튀어 나가는 요원들을 바라봤다.
“주승오, 뭐해!”
승오를 발견한 태준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승오는 제 옷자락을 쥔 의진의 손을 감싸고 눈을 맞추기 위해 애썼다.
“지의진. 정신 차려. 별거 아니야.”
“……나 때문에.”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의진아, 숙소로 돌아가서-”
“가, 같이 가.”
하얗게 질린 의진은 고개를 크게 저었다. 본관으로 뛰어가는 태준의 뒷모습을 보던 승오가 다시 한번 의진을 바라봤다.
“같이 가. 혼자 있기 싫어.”
“…내 손 꼭 잡아.”
위이이이잉. 최대 볼륨으로 틀어진 경보음은 귓전을 때렸다. 승오는 고개를 끄덕이는 의진을 내려다보고는 손을 마주 잡았다.
“금일 14시 44분. 무주 센터가 ‘도시’ 세력의 폭격을 맞았다. 사상자는 123명. 대전, 호남 지역의 센터 요원들이 현장 구조 및 혹시 모를 테러에 대비해 지원을 나간 상태이며 우리 서울은 또 다른 테러 대상이 될 것을 대비. A01 상태에 돌입한다.”
전략기획본부 팀장은 전투복으로 환복한 에스퍼와 가이드들을 앞에서 현재 상황을 브리핑했다. A01. 완전 무장 상태로 전원 전투태세를 말하는 것이었다. 예기치 못한 폭격에 날카로워진 팀장의 눈이 승오와 의진을 바라봤다.
“우리 서울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팀장은 의진을 한 번 더 바라봤다가 등을 돌렸다. 아직 의진은 현장에 세우기엔 무리가 있었다. 의진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던 승오는 상황본부로 향하는 팀장을 좇았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을 방해해.’
‘너는 엄연한 이곳 사람이야. 그러니 우리를 타도하려는 자들을 방해해.’
의진은 잊고 있던 천음의 말 하나가 떠올랐다.
‘한 번만 더 내 말을 거역했다간 지독하게 후회할 날을 선사해 줄 테니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