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인 더 시티 (68)화 (68/114)

#68

“나 왔어.”

“왔어?”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승오는 기분 좋아 보이는 의진의 얼굴에 덩달아 미소가 번졌다. 제 앞으로 다가온 의진을 끌어안자 포근한 바디워시 냄새가 풍겼다. 콧속으로 스미는 차분한 향에 승오의 복잡했던 마음도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나 오늘 유찬이 만났어.”

“그랬어?”

“어. 그리고,”

“응.”

의진은 승오의 허리에 감았던 팔을 풀고 그를 마주 봤다.

“다음 주부터 코빈 박사님이랑 훈련 들어가기로 했어.”

“…그래도 되는 거야? 괜찮겠어?”

“응. 아직 치료 일자도 더 남았으니까… 할 수 있을 거 같아.”

작은 머리통이 힘있게 주억거려졌다. 어쩌면 코빈과 함께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땐 천음도 의진에게 접근하지 못할 테니까. 승오도 함께 고개를 끄덕이곤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래, 잘됐네. 축하해.”

승오의 손길을 받던 의진은 오늘 있었던 천음의 목소리를 말해줘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천음이 했던 말을 곧이곧대로 전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모든 걸 말해주기로 했는데. 살풋 웃던 의진이 입꼬리가 조금씩 내려갔다.

“아, 그리고 또….”

“또?”

“코빈 박사님이랑 면담하고 유찬이 만날까 싶어 본관 옆으로 돌아갔었거든. 그때… 천음 목소리가 들렸어.”

역시. 의진의 예상대로 천음이란 말을 듣자마자 승오는 얼굴을 굳혔다. 금방이라도 생각을 읽을 기세로 제 어깨를 붙잡아와서 의진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 새끼가 뭐라 그랬어.”

“잘, 기억은 안 나. 내가 말하려던 건 그게 아니라.”

의진은 승오의 팔을 붙잡고 고개를 좀 더 들었다.

“유찬이가 오자마자 천음의 목소리가 안 들리더라고.”

“…….”

“그래서 다행이었어.”

“…인기척을 느끼고 사라진 건가?”

“그러겠지?”

한숨을 푹 내쉰 승오가 다시금 의진을 껴안았다. 쿵쿵쿵쿵. 승오의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의진에게 느껴졌다. 꼭 의진의 심장이 그렇게 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목소리 듣는 동안 괴로웠을 거 아니야.”

“……기억도 안 나. 유찬이 보호소 구경도 했다? 그래서 다 까먹었어.”

그들을 방해해. 천음의 말을 곱씹은 의진은 승오의 품에 갇혀 고개를 저었다. 더는 그자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찰나였던 목소리만 뺀다면 오늘은 돌아온 이래 가장 기분 좋은 날이었다.

“그럼 다행이고.”

“응. 아! 내일은 심리 치료받으러 갈 거야.”

“지의진 꽤 바쁘네?”

“어, 그치.”

귓가에 닿는 승오의 심장이 원래 속도대로 뛰었다. 의진은 안았던 몸을 떼어내고 발꿈치를 들었다. 승오가 조금 고개를 숙이자 입술이 쪽 부딪혔다가 떨어졌다.

어딘가 먹먹했던 귀가 이제야 트이는 느낌이었다. 의진은 저를 번쩍 안아오는 승오에게 팔을 감으며 자연스레 키스를 이어갔다.

“해도 돼?”

“…언제부터 물어봤다고.”

승오의 넓은 침대에 당도한 의진은 옷자락을 스륵 들추는 승오를 보며 조그맣게 말했다. 툴툴거리는 말투에 승오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건 그렇네.”

“언제든, 마음대로 해.”

판판한 배에 입술을 비비던 승오가 허락이 떨어지자 헐렁한 잠옷 바지를 잡아 내렸다.

“흣!”

익숙해질 법도 한 입맞춤은 여전히 의진을 설레게 하고 긴장시켰다. 승오의 몸속으로 서서히 의진이 전달하는 가이딩 에너지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아, 아응… 응!”

승오의 둔중한 좆이 좁은 안을 가득 채우며 들썩였다. 이젠 정말 셀 수 없이 몸을 섞었음에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의진은 제 상판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더운 숨결에 솜털이 삐쭉 솟는 것이 느껴졌다. 짙게 그을린 팔뚝을 잡은 후 그가 콱콱 처박는 대로 흔들리며 교성을 내질렀다.

“하, 지의진….”

“응, 응! 아… 으응, 응! 스, 흐으응…!! 아!”

묵직하게 달아오른 귀두가 제대로 전립선을 짓눌렀는지 의진은 몸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젖혔다. 자제력을 상실한 몸에서 가이딩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승오는 스콜처럼 떨어지는 그 기운 덕택에 되레 처박는 허리 짓에 힘이 들어갔다.

까슬한 뿌리 끝이 보드라운 의진의 살갗에 닿으며 빨간 자국을 만들어냈다. 짓무르는 볼깃살마저 승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자극이었다. 발갛게 익어 앙앙대는 의진을 빤히 보던 승오가 쥐고 있는 허벅지를 더 벌렸다.

“그읏, 아, 너무 깊….”

“그래서 좋아.”

승오는 뭉근하게 허리를 돌려 뭉툭한 끝이 느껴질 정도로 성기를 쑤셔 박고선 허리를 숙였다. 양감 좋은 입술을 물어올 적마다 차분히 감기는 혀가 달았다. 격발했던 추삽질의 속도를 줄이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키스에 집중했다.

물컹거리는 혓덩이끼리 얽히는 감각은 왜 이리도 달콤한지. 의진은 승오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 그의 숨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행복했다. 땀이 맺혀 미끈거리는 목에 팔을 두르고 배시시 웃자 승오도 눈을 떴다.

“왜 웃어?”

“좋아서.”

“뭐가.”

지그시 눈을 맞댄 승오가 의진의 좁은 턱을 쥐고서 한 번 더 입술을 물었다.

“너.”

초옥. 축축한 마찰음을 뒤따라 온 대답이 사랑스러웠다. 승오는 깜빡거리는 밤색 눈동자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저 동그란 우주 속 담긴 세상을 맛보고 싶은 걸지도. 아마 달콤하면서도 씁쓸할 것 같다.

“나랑 똑같네.”

“…….”

“나도 너 좋아해.”

승오의 말에 의진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감고 있는 팔에 힘을 줘 버티고 섰던 승오가 제 위로 무너지게 했다. 다시 한번 입술이 맞물리고 혀가 잇새로 나뒹굴었다.

매일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 의진은 다소 싱거운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웠다. 저를 사랑스럽게 봐주는 승오의 하나하나가 미치도록 소중했다.

“다른 생각하지 마.”

“…어떻게 알았어?”

“그걸 지금 나한테 묻는 거야?”

늘어진 은사가 툭 끊기며 타액이 의진의 도톰한 아랫입술에 길게 맺혔다. 승오는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고는 엄지로 키스 흔적을 닦아주었다.

“아!”

한쪽 허벅지만 들어 지그시 박는 시늉을 하던 승오가 옴찔대는 의진을 내려다봤다.

“네 생각은 가끔 저절로 흘러들어와.”

“…으읏, 응…. 아……!”

“그러니까 방심하지 말라고.”

덜 잠긴 수도꼭지 물방울처럼 똑똑 떨어지던 의진의 가이딩 에너지가 추삽질을 다시 시작하자 물씬 풍겨왔다. 검붉은 성기를 꽉 물고 있는 불긋한 구멍이 자꾸만 속살을 뱉었다가 삼키길 반복했다. 홀쭉한 아랫배로 제가 삼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승오의 목덜미가 빳빳해졌다.

“방심, 응! 안, 안 했… 아흣! 응! 아앙…!”

팽팽하게 발기한 의진의 성기가 통통 퉁기며 귀두를 물들였다. 금방 사정할 태세였다. 승오는 제 어깨에 걸쳐진 하얀 발에 입을 맞춘 후 의진이 매번 자지러지는 자극점을 들쑤셨다.

“으응, 응! 아…! 아, 하아…! 응, 응, 응…!! 아흐윽…!”

“큿! 하아….”

오르가즘을 맞닥뜨린 의진이 구멍을 잔뜩 조이자 승오도 덩달아 사정감이 몰려왔다. 허여멀건 한 뱃가죽에 뿌연 정액이 후두둑 튄 걸 바라본 그는 의진의 다리를 시트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마른 다리를 최대한 활짝 벌려 접합부를 응시했다.

“후으으… 아흐….”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콱 처박으며 좁다란 뱃속에 흔적을 흩뿌리는 승오였다. 헐떡이는 뒷구멍의 호흡이 그대로 승오 좆대에 달라붙었다.

꾸역꾸역 정액을 품고 있는 의진의 아랫배를 문지르던 승오가 안에서 빠져나왔다.

“으흣…!”

안을 가득 채웠던 성기가 빠져나가면 공허함은 배가 됐다. 의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선 물티슈를 탁탁 뽑는 승오를 바라봤다.

“그거 알아? 유찬이가 너 같은 사람 되고 싶대.”

“그래?”

체액으로 범벅된 의진의 상판을 닦아주던 승오가 그리 놀랍지 않은 톤으로 말했다.

“뭐야. 왜 안 놀라?”

“그런 거 같아 보였어.”

“…….”

“…왜?”

승오에게 그런 동경은 부끄러워하거나 놀랄만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무던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동경한다고 해서 왜 좋아해야 하는지도 통 모르겠고. 그리고 유찬은 승오를 볼 때마다 형처럼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약간 좀, 너라서 할 수 있는 말이긴 하다.”

의진의 예상과는 약간 빗나간 반응이었지만 오히려 이게 더 승오다웠다. 사라지지 않는 잇자국과 키스 마크를 제외한 흔적을 대충 닦아낸 승오는 힘이 쭉 빠진 의진을 안아 들었다.

“씻겨줄게.”

“…응.”

다 씻고 나온 뒤 가만히 소파에 앉아 분주하게 시트를 정리하는 승오를 바라보던 의진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 안에는 원하지 않았지만 천음의 에너지가 깃들어있었다. 이게 언제 어느 순간 발휘될지, 또 누구에게 피해를 줄지 알 수 없었다.

“의진아, 졸려?”

“아니, 괜찮아.”

아직은 천음의 속삭임을 못 들은 척하고 있으나 언젠가 한계점에 도달할 것이었다. 의진은 무릎을 더 끌어안으며 입술을 묻었다.

그럼 그땐 천음이 말했던 대로 내 목숨을 틀어쥐든, 승오를 죽이려 들겠지. 그걸 막기 위해선…. 피할 수 없었다. 의진은 서울 센터를 배반해야만 했다. 의진은 마지막 결론을 맺고 나서 고개를 숙였다.

결국은. 이번엔 제가 승오를 구해야 했기에. 겁쟁이 짓은 그때면 충분했다. 물론 도시에서 겪었던 지옥 같은 시간은 끔찍했지만, 의진에겐 승오와의 이별이 더욱 끔찍했다. 센터를 배반하고 반역자로 몰리는 것도, 천음의 명령을 거역해 온몸이 팽창해 터져 죽는 것도 무섭지 않았다.

“의진아.”

“어?”

의진이 두려운 건 결국 승오의 곁을 떠나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천음에게서 벗어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더군다나 상대는 S급 에스퍼였다. 국가에서 찾고자 혈안이 되어있는 희귀 등급 에스퍼.

“이상한 소리라도 들렸어?”

의진의 우울감이 느껴졌는지 승오는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왔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게 하는 손짓은 거침없었다.

“그런 거 아니야. 걱정했어?”

“…생각, 안 읽어도 되는 거지.”

“응, 진짜로. 안 졸린 줄 알았는데 피곤한가 봐.”

커다란 손에 들어오는 작은 얼굴을 엄지로 매만지던 승오가 의진을 가만히 바라봤다. 의진은 혹여 섹스할 때처럼 제 생각이 읽힐까 봐 가슴이 콩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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