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의진과 짧은 바깥 공기를 쐰 도훈은 5층으로 내려와 실험관에 갇혀 대기 중인 에스퍼들을 훑어봤다. 좁은 관에 일자로 누워있어 사람이 아닌 송장 같기도 했다. 리스트에 적힌 이름 중 제일 끄트머리에 있는 에스퍼에게 다가간 그는 실험관 옆쪽에 부착된 작은 주입구 뚜껑을 열었다. 그들에게 꽂혀있는 전극을 통해 각성제가 주입될 터였다.
일단 등급이 낮은 순으로 진행해보기로 했다. 검지만 한 유리병에 담긴 무색무취 액체가 꿀렁꿀렁 주입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전부 다 쏟아부은 도훈이 차가운 눈빛으로 버튼을 조작했다. 각성제가 빠르게 몸을 순환할 수 있도록 실험관 내부 설정값을 바꿨다.
총 10개의 실험관에 각성제 주입을 마친 도훈은 내려오기 전 의진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바꿔 물을게요. 그럼 전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나요.’
‘……잘 모르겠어요.’
‘그럼 그것만 알아두세요.’
‘…….’
‘선생님이 절 지옥에 데려오신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장대비가 쏟아졌었다. 마치 천음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했다. 의진이 퍼붓는 감정을 그대로 폭우에 흘려보내라는 것처럼 끊임없이 비가 내렸다.
몇 시간 후면 이들은 각성 상태가 되어 가이딩 에너지를 원할 거였다. 의진을 마구잡이로 뜯어 삼키고 괴롭히려 들겠지. 도훈은 의진의 말을 곱씹으며 실험실 밖을 나섰다. 도훈이 떠난 실험실엔 아직 채워지지 않은 많은 시험관이 존재했다.
아무리 이곳이 지옥이라 할지라도, 벗어날 수 없다면 지옥에서 사는 법을 강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의진에게 천천히 그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지옥을 괴로워하지 않는 방법. 지옥에 순응하는 방법. 지옥을 미워하지 않는 방법.
복도 창문을 바라보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마 천음은 내일 실험이 끝날 때까지 비를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모든 소음이 시끄러운 비에 묻히도록 내리게 할 것이었다.
*
폭풍전야 같은 날이었다. 유독 든든하게 준비됐던 아침 식사를 거른 의진이 외계인들에게 이끌려 실험실로 들어왔다. 이미 천음과 도훈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도훈은 으레 건넸던 인사를 제외하고 곧바로 실험 준비에 들어갔다.
방출되는 가이딩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전극을 팔에 꽂은 의진은 곧바로 실험관에 들여보내 졌다. 멀쩡한 정신으로 처음 들어오는 이곳은 마치 처음 경험하는 곳처럼 낯설었다.
의진이 밖을 쳐다보자 실험관 유리 벽이 외부를 차단했다. 밖에서만 안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그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몸이 자꾸만 떨려댔다. 그동안 뇌를 마구 주물렀던 약의 효과가 컸던 모양이었다.
“Z-10. 투입.”
도훈의 단조로운 목소리가 실험실을 울렸다. 버저 소리가 윙 윙 들리더니 곧바로 거센 숨을 쉬는 에스퍼가 눈과 손목이 묶인 채 외계인들 손에 붙들려 왔다. 의진은 구역질이 나올 거 같아 입을 틀어막았다.
“웁…!”
“가이딩 시작.”
의진은 제게로 다가오는 에스퍼를 피해 뒷걸음질 쳤다. 저건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흉통을 부풀리며 헉헉대던 에스퍼가 벽에 막힌 의진을 잡아챘다. 바닥에 자빠진 의진의 위로 올라탄 에스퍼는 의진의 옷을 찢고 드러난 상체에 코를 박았다.
“싫어, 싫… 읏!”
각성한 에스퍼에게 필요한 건 의진의 가이딩이었다. 가장 은밀한 곳까지 들어가야 얻을 수 있는 태초의 힘을 닮은 에너지. 신경 감각이 월등하게 증폭한 그는 눈이 가려져 있어도 의진의 신체를 턱턱 잡아댔다.
자꾸만 오므라지는 허벅지를 활짝 벌린 에스퍼가 더듬더듬 구멍을 찾아 제 기둥을 쥐고 곧바로 몸을 갈랐다. 무자비한 힘에 의진은 반항 한 번 못 하고 관계를 맺어야 했다. 젖지도 않아 뻑뻑한 구멍을 밀고 들어온 성기는 불에 달군 쇳덩이와 다를 바 없었다.
“큿, 읏, 아… 제발…!!”
“하아, 하아….”
단단한 좆대가 퍽퍽 의진의 내벽을 찌르고 턱을 쥐어 잡아 혀를 내밀게 했다. 혓바닥을 내밀어 게걸스럽게 문댄 에스퍼는 그저 행위에 집중한 괴물이었다. 아프기만 한 통증에 의진은 우욱, 웁! 거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흐음.”
으아, 아! 그만! 하윽! 밖에서 들리는 의진의 고통스러운 신음에 천음은 인상을 구겼다. 예상보다 적은 가이딩 에너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부러 의진이 에너지를 풀고 있지 않은 거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상황에 대해서. 도훈 닥터가 워낙 애지중지 다루다 보니 아직도 고집을 부려대는 거 아니에요.”
“…….”
“저는 도훈 닥터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발로 차버린 건 당신이에요.”
“…천음님.”
“이제부터 저 건방진 애송이의 멘탈은 제가 관리합니다.”
천음은 도훈을 노려보듯 바라보고는 실험관으로 향했다. 아직도 정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내부는 에스퍼의 들썩이는 허리 짓과 팔랑이는 의진의 다리가 교차로 보였다.
천음이 가까이 다가서자 앞에 있던 외계인들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 처참하게 옷이 찢긴 채 몸을 내주고 있던 의진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의진 씨?”
“……천음?”
성교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걸어간 천음은 곧장 의진의 위에 있는 에스퍼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단번에 일어나게 하자 의진의 안에서 발기한 성기가 쑤욱 빠져나왔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았나 보네.”
“……지, 랄하지 마….”
의진의 대답에 천음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갔다. 천음이 검지를 올리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파악!
“끄아아아…!!!”
묶여있던 에스퍼가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을 지른 에스퍼의 귀에서 순간적으로 붉은 피가 터졌다. 아무 말 못 하고 멍청하게 바라보던 의진의 턱을 쥔 건 천음이었다.
“그게 아니면 협조적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눈으로 보고 싶었던 건가?”
“으아아악! 귀가… 내 귀가…!!”
경악에 물든 의진이 에스퍼를 바라보자 그의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의진은 온몸을 떨며 괴로워하는 에스퍼를 보고 얼굴이 창백해진 채 손을 입에 가져갔다.
“다음엔 곧바로 소각장에 처넣을 수 있게 심장을 터뜨려볼까 하는데.”
“뭐, 뭐… 뭐라고…?”
-퍽!
“끄으으…!! 아아아…!!! 살려줘…!! 제발… 제발 살려줘….”
남자의 어딘가 또 터져나간 모양이었다. 천음이 의진의 얼굴을 붙잡고 있었기에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천음은 의진의 시선을 제게로 옮겼다. 의진이 바라본 천음의 표정은 항상 여유 넘치던 나른한 표정이 아니었다. 날카롭게 벼려낸 칼처럼 섬뜩한 표정이 의진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현기증이 났다. 자꾸만 허공을 맴도는 동공 때문일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때문일까. 의진은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랐다.
“하, 할… 할… 할게…요…. 할게요…”
벌벌 떨리는 의진을 보니 그제야 정복욕이 샘솟았다. 천음은 손을 휘저어 에스퍼를 흔든 다음 바닥에 내던졌다. 그의 귀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새하얀 바닥을 적셨다. 의진은 그 잔인한 행동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제대로 해. 네가 뻗대면 뻗댈수록 죽어가는 건 네가 아니라 이것들이야.”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가죽 구두가 신음하는 에스퍼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의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끔찍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는 악마 같은 행동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천음은 다시 누워있는 에스퍼를 끌어다 의진에게로 던졌다.
“왜, 하기 싫어?”
“하, 할게요. 하면, 하면 되잖….”
간헐적으로 발작하는 에스퍼의 얼굴을 쥔 의진이 떨리는 입술로 입을 맞췄다. 천음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열린 문으로 보이는 방역복을 입은 남자에게 말했다.
“끝나면 한 명 더 들여보내.”
천음은 밖으로 나와 도훈을 바라봤다. 무엇도 담겨있지 않은 공허한 눈빛으로 천음과 눈을 맞추던 도훈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러길래 제가 말했잖아요. 똑바로 하라고.”
“…면목이 없습니다.”
“괜찮아요. 앞으로 안 그러면 되니까. 도훈 닥터는 학습력이 뛰어난 사람이잖아요.”
애정을 가득 담아 도훈의 뺨을 쓸어낸 천음이 그를 지나쳐 아예 실험실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폭주 직전의 에스퍼가 실험관 안으로 한 명 더 들어오고 있었다.
“읏, 윽…! 으, 윽, 아흑…!”
기절 직전이었던 에스퍼에게 입을 맞춘 의진이 스스로 에스퍼의 성기를 구멍에 넣으며 허리를 들썩였다. 최대한으로 가이딩 에너지를 뿜어내자 흘러내렸던 피가 멎었다. 고개를 튼 채 제 몸짓에 맞춰 움직이기만 하는 에스퍼가 금방이라도 죽을 거 같아 무서웠다.
“흣, 제발, 아… 제바알….”
계기판에 낮게 기록되던 가이딩 에너지 추출량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냈다. 하지만 방사되는 양은 그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스스로 만들어낸 에너지는 회복력도 빨랐다. 천음의 힘으로 정신을 잃었던 에스퍼도 점차 각성제로 불규칙했던 안정을 되찾았다.
“Z-10. 실험 종료. Z-09 투입.”
도훈의 낮은 목소리에 맞춰 수행원들은 에스퍼를 교체했다. 아까와 똑같은 각성 상태의 에스퍼였다. 의진은 눈물 자국 번진 얼굴로 헉헉대는 남자를 올려다봤다.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색욕에 미친 짐승 같았다.
“가이딩, 가이드…. 빨리… 어서…!!!”
“응…긋…!”
의진의 목덜미를 깨물며 허벅지를 더듬거리던 에스퍼는 본능적으로 성기를 엉덩이골에 비벼댔다.
‘제대로 해. 네가 뻗대면 뻗댈수록 죽어가는 건 네가 아니라 이것들이야.’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사람도 어딘가가 터져나갈 것이다. 천음은 의진의 손에 칼을 쥐여준 거나 다름없었다. 죽이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형체 없는 목소리가 귓전을 떠돌았다.
“으으… 흐윽.”
“더, 더 필요해…. 큿…! 제발… 더…!”
의진의 젖은 구멍으로 성기가 급하게 밀고 들어왔다. 조금 전 다른 에스퍼가 파정해 물기 젖은 내벽은 피스톤질을 할 때마다 듣기 싫은 소리도 같이 들렸다. 에스퍼는 단 꽃물이라도 빨아내듯 의진의 스팟 마다 혀로 훑고 지나갔다.
의진의 가이딩이 범람하듯 쏟아지자 에스퍼는 의진에게 도리어 처절하게 매달렸다. 찔걱찔걱 처박는 축축한 소리가 점점 거칠게 변하기 시작하자 의진의 입에서 결국 천박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아흣, 응…!! 힉…! 으응…하, 아앙!”
깊은 곳을 콱 찌르자 의진도 목소리를 높였다. 살려야, 살려야 해. 의진은 할 수 있는 최대로 가이딩 에너지를 에스퍼에게 전달했다. 그럴수록 에스퍼의 허리짓은 격해져 갔다.
온기 잃은 인형처럼 흔들리는 의진을 빤히 바라보던 도훈은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의진이 본격적으로 가이딩을 시작하자 센터에서의 수치와 근접하게 가이딩 에너지가 추출되고 있었다. 천음의 말이 맞았다. 애초부터 천음이 모든 걸 맡았어야 했다.
“아, 아읏…! 응, 응! 그…만! 가, 이딩은 끝, 응…그읏…! 났, 는데… 흣…!”
의진의 애원이 들렸다. 도훈은 고개를 내려 모니터를 바라보자 가이딩 추출 완료. 가이딩 추출 완료. COMPLETE. 깜빡이는 문구가 팝업되었다.
“…실험 종료.”
집요하게 안쪽을 찔러오던 에스퍼는 도훈의 말과 함께 마지막으로 안에 깊게 파정했다. 에스퍼도 아까와 달리 안정을 찾은 듯한 모습이었다. 성기를 빼내자 의진의 안에서 하얀 정액이 물처럼 새어 나왔다.
방역복을 입은 인원들은 곧바로 에스퍼를 5층으로 이송했다. 한 실험에 두 사람을 받아낸 의진은 그저 바닥에 누워 숨만 쉴 뿐이었다.
“……수고했어요.”
도훈이 들어와 무릎을 꿇고 의진을 바라봤다.
“…이제 만족하세요?”
끊어져 가는 정신을 붙든 의진이 다가온 도훈에게 말했다. 너무나 희미한 목소리였지만, 천음의 능력 탓인지 귓가에 속삭이듯 선명한 음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