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차디찬 천음의 말에 도훈은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말을 덧붙였다간 오히려 의진이 힘들어질 수 있겠다는 판단을 마쳤다. 담요에 둘러싸여 있는 의진이 앓는 소리를 냈다. 도훈은 그 소리에 즉각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봐주는 것도 이제 끝이에요.”
천음은 자신이 아닌 의진에게 향한 도훈의 시선이 미치도록 불쾌했다. 힘겹게 눈 뜬 의진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도훈이 짜증 났다. 말을 끝으로 천음은 뒤를 돌아 고요하게 밖으로 나갔다. 소리 없는 퇴장이었다.
“승오….”
“…….”
사라진 천음의 뒷모습을 좇던 도훈은 의진의 목소리에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평소보다 많이 투여된 약 때문인지 의진은 아직도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약효가 사라질 때 즈음 늘 의진은 승오를 찾았다.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찬 도훈의 얼굴이 연인을 부르는 목소리에 서서히 굳어졌다.
“그자는 없어요.”
“…….”
“주승오는, 여기 없다고요.”
“……승오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찾아요.”
“…승오,”
실험관 밖에서 대기 중인 방역원들에게 의진을 건넨 도훈은 넥타이를 잡아 풀었다. 수많은 가이드가 살려달라 부르짖을 때도 무감했던 도훈이었다.
그러나 의진을 향한 활자 하나마다 목울대를 찌르듯 토기가 밀려왔다. 도훈은 제 입으로 ‘주승오’를 게워내고는 천음이 사라진 방향을 따라 실험실을 나섰다. 의진의 비명은 도훈에게 닿지 않았다.
도훈은 천음의 방으로 향했다. 그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천음은 도훈의 멱살을 낚아챘다. 도훈이 파리한 낚시감처럼 침대로 내던져지자 그 위로 천음이 올라탔다.
천음의 눈에 들어온 건 도훈의 동요 없는 호박색 눈이었다. 의진을 바라볼 때와 다른 온도였다. 어째서 의진이 아닌 나에게 저런 시선을 보내는지 알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대상이 반대여야 했다. 천음에겐 욕정에 달은 시선을 보내야 했고, 의진에겐 감정이 거세된 시선을 보내야 했다.
들끓던 소유욕이 마그마가 되어 피부 밖으로 터져 난 느낌이었다. 뜨겁고 거추장스럽고 짜증이 났다.
“내가 착각했어요.”
“…….”
“고작 몇 달간 쌓은 정 따위에 허덕이고 있을 줄이야.”
“…천음님.”
“나에게 충성한다는 모든 말들은 다 거짓이었던 거죠.”
도훈이 천음의 손을 감쌌다. 서서히 에너지가 퍼져나가며 천음에게도 수풀 내음이 맡아졌다. 언젠가 이 향을 맡으면 모든 분노가 진정이 되곤 했다.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자들의 고막을 터뜨려 죽일 때도 도훈은 늘 제 곁에서 안정을 주었다. 자존심이 구겨졌다. 지금도 저 에너지로 인해 고르게 호흡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저는 천음님의 성공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
“어떻게 천음님의 시혜를 일개 가이드로 인해 저버린다고 생각하세요.”
“…김도훈.”
천음의 손이 느슨해지자 도훈은 마른 어깨를 쥐고선 눈을 맞췄다.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지만, 충성을 말하는 여상한 눈동자. 질투에 가려졌던 도훈의 충성심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진심.
그런데, 도훈은 의진을 볼 때도 저 비슷한 얼굴을 했다. 아니 이것보다 더 측은한 얼굴인 거 같기도. 천음의 흰 얼굴이 움찔, 떨려왔다.
“기존에 실험에 쓰인 가이드와는 존재 가치가 다릅니다.”
“…….”
“능력도, 효율도 훨씬 우수하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지의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몸을 일으킨 도훈은 천음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주며 살며시 웃어 보였다. 그리고선 작은 뺨을 잡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키스하듯 입을 맞췄다. 도톰한 아랫입술이 맞물렸다가 떨어지는 감각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저를 그자에게 뺏긴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
“제 육체와 정신은 전부 천음님 것입니다.”
“…내 앞에서 그자를 옹호하지 마세요. 속에서 불이 끓는 것처럼 짜증 나니까.”
천음의 분노 섞인 말씨가 한층 누그러졌다. 도훈은 허벅지에 앉은 천음의 허리를 감싸곤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틀자 볼록한 윗입술이 맞닿았다.
“가이드를 완전히 우리 편으로 귀속시켜야 천음님이 세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흐응.”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저를 믿어주세요.”
부드럽게 혀를 섞어오는 도훈의 뒤통수를 감싼 천음은 눈을 감고 키스에 응했다. 그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의진의 가이딩 에너지는 S급 에스퍼에게 더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A급 에스퍼인 도훈은 그걸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니 천음 스스로 그 의문을 해소해야만 했다.
목 끝까지 잠긴 셔츠 단추를 푸는 도훈의 손이 조금은 거침없었다.
침대에 누운 천음의 옷자락을 살며시 거둔 도훈이 탐스러운 엉덩이를 쥐었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엉덩이 사이가 벌어질 때마다 불그스름한 구멍이 도훈을 유혹하는 듯 보였다.
“당신도 그 가이드와 실험하고 싶나요?”
천음이 엎드린 채 팔에 받친 고개를 틀며 물었다. 의도가 뻔한 질문이었다. 그를 상대로 발정한 적 있냐는 뜻을 내포했다. 공기가 맞닿아 차가워진 엉덩이에 입을 맞춘 도훈은 엄지로 구멍을 벌려 혀를 내밀었다. 높은 콧대가 엉덩이골에 닿아 끝이 뭉개졌다.
“하아…. 아니요. 저는 천음님에게만 욕정 합니다.”
여린 살에 닿는 목소리가 기분 좋았다. 천음은 빙긋 웃으며 옴싹하는 부드러운 입술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흐으읏….”
“천음님 말고는 그 무엇도 저에게 자극되지 않아요.”
“푸흣… 말솜씨가 늘었네요.”
“사실인걸요.”
듣기 좋은 소리만 해대는 도훈의 사탕발림 소리에 마음이 녹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천음의 화가 가라앉은 걸 느낀 도훈은 손에 감기는 엉덩이를 잡아 벌려 자신이 탐할, 자신을 욕정하는 천음의 스팟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간지럽히듯 구멍의 근처만 희롱당하자 천음은 오히려 더 애가 탔다. 얄궂은 장난에 천음의 신음이 느슨하게 새어 나왔다. 천음은 다리에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흣, 믿어, 응… 믿어볼게요.”
츄읍… 하아, 춥…. 조붓한 구멍 안을 파고들려는 혀끝이 꽤 집요했다. 제 안을 수시로 드나들던 도훈의 것보다는 물컹하고, 더 부드러웠으며 길이는 짧은 혓덩이가 자꾸만 천음의 안을 들여오려 꾸물거렸다.
“아흣! 그거 말고…. 응?”
녹진해진 구멍에 입술을 떼고 제 위로 올라오는 도훈의 뺨을 쓰다듬은 천음이 말했다. 도훈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자태에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맞췄다. 뒷입을 빤 후라 불경할 텐데도 천음은 도훈의 키스를 받아주었다.
천음의 매끈한 허벅지가 도훈의 허리를 감쌌다. 격렬한 정사를 알리는 신호탄과 비슷했다.
뒷골이 징징 울릴 정도로 아득한 감각에 마구잡이로 허리를 쳐올릴 때쯤 천음은 성기를 문 구멍을 바짝 조이며 교성을 질렀다. 고결한 얼굴과 달리 뱃속을 헤집는 좆은 난폭하기 짝이 없었다.
“아흐읏…! 으응, 아…!!”
“하아, 하아….”
자극점이 들쑤셔지자 천음은 입술을 질끈 물고 신음했다. 도훈은 천음이 유일하게 제 아래 있는 순간 느껴지는 이 배덕감이 좋았다. 곁에 서 있지만 다가갈 순 없는 존재가 천음이었다.
제 좆에 의해 천음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올 때면 드디어 천음에게 닿았다는 만족을 얻었다. 저 순백의 몸에 자국 하나 남길 수 없는 터라 그저 허벅지를 꽉 쥔 채 가장 깊숙한 곳까지 귀두를 문지르고 비빌 뿐이었다.
“후으, 좋아, 좋아요, 아… 아아…! 응!”
“천, 읏! 천음님….”
절정이었다. 파정에 맞추어 울컥거리는 도훈의 성기가 형형하게 느껴졌다. 접합부가 함빡 젖어 찌걱거렸다. 그 소음에 능력이라도 걸어놓았는지 좀처럼 욕정이 가라앉질 않았다. 무방비하게 누워 사지를 벌린 채 밭은 숨을 몰아쉬는 천음은 음란하기 짝없었다.
도훈은 그 천한 광경을 보고서도 천음을 숭배하고픈 마음이 드는 게 신기했다. 도톰한 혈관이 솟은 남근이 다시 한번 그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흣, 응! 으응, 아… 도훈, 후읏…!”
한껏 벌려진 축축한 구멍에 성기를 마음껏 처박아대던 도훈은 허리를 숙여 그에게 입을 맞췄다. 기다렸다는 듯 얽혀지는 혀가 아프면서도 달았다. 키스하는 와중에도 아래는 짐승처럼 움직여댔다. 천음의 하얀 엉덩이와 도훈의 허벅지가 격한 마찰음을 빚었다.
깊게 쳐올렸다가도 허리를 돌려 자극점을 건드렸고 도훈의 좆이 빠질 적마다 난잡하게 섞인 액이 회음부를 타고 흘렀다.
“하아….”
성기에 달라붙은 내벽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느리게 추삽질을 하는 도훈의 잘생긴 콧대와 입술에 연달아 입을 맞춘 천음이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까만 우주 같은 눈동자가 열기로 달아올라 예뻤다.
“아름다우십니다.”
일자로 뻗은 천음의 빗장뼈에 얼굴을 묻은 도훈이 중얼거렸다. 시선을 조금 내리깔면 석류알을 닮은 유두가 보였다. 주변에 퍼진 젖꽃판조차 단내가 나는 것 같다.
“하아… 도훈 닥터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요.”
깊게 들어온 도훈의 것에 인상을 쓰던 천음이 도훈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일부터 5층 실험실에 있는 자들에게 고유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각성제를 투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가이드에게 보내 가이딩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도록 하세요. 에스퍼 리스트업을 해주는 것뿐이니 이것마저 뭐라 할 건 아니죠?”
천음은 시선을 물리지 않고 손을 더듬어 도훈의 엉덩이를 매만졌다. 그리고 손바닥에 힘을 줘 제 안을 더 파고들게 했다. 콱, 콱. 안을 박아댈 때마다 치솟는 근육을 감상하듯 굴던 천음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승오에게 보낼 겁니다.”
“…….”
“‘도시’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을 텐데, 그를 너무 방치해둔 건 아닌가 싶어서요.”
천음이 말을 마치고 미소 지었다.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던 도훈은 마른 턱을 쥐고 혀를 섞었다. 조야하게 마찰하는 접합부는 여전히 철썩거리며 부딪히고 있었다.
추읍, 하아….
얽혀있던 혓덩이가 풀어지며 은사가 늘어지는 꼴이 퍽 농염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기대되네요. 흣! 지의진의 가이딩을 받은… 자들과 싸우는 주승오라. 아… 꽤 볼만하겠어요.”
“…….”
오래간만에 보는 천음의 해맑은 웃음이었다. 저걸 본 게 언제더라. 운영하는 병원에 찾아와 저와 함께 가달라는 말에 답했을 때 빼고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도훈은 저 미소를 보고 천음을 따라온 거였다. 순수와 거리가 먼 사람임에도 저 미소를 보면 그 단어를 제외한 어떠한 것도 수식되지 않았다.
도훈은 침대 시트에 널브러진 천음의 손을 찾아 깍지를 끼었다. 그리곤 여전히 제 아래를 조이고 있는 구멍을 파고들어 끝없이 그를 탐닉했다. 으읏, 응… 앗! 듣기 좋은 선율이 도훈의 귓가를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