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인 더 시티 (33)화 (33/114)

#33

의진이 눈을 뜬 건 차가운 실험대 위에 올려지고 나서였다. 눈을 뜨자마자 천장에 다닥다닥 붙어 자신을 쏘고 있는 조명이 따가워 얼굴을 찌푸렸다. 도훈은 그걸 보고 바로 조명의 조도를 조절했다.

“일어났어요?”

“선생…님?”

목구멍이 사포에 문질러진 것처럼 따끔거렸다. 의진은 쿨럭, 쿨럭 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야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팔을 움직이려 하자 달그락 소리가 났다. 시야를 내렸을 땐 손목과 발목이 사슬에 묶인 채 바닥에 딱 붙어 있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무서웠다. 온몸이 으슬으슬 떨릴 만큼 차갑고 낯선 공간에 그보다 더 낯선 도훈이 존재했다. 도훈은 안경을 추켜올리면서 의진에게로 걸어왔다. 벌벌 떠는 의진을 잠시 안쓰럽게 보던 그는 곧바로 표정을 지웠다.

“선생님, 여기가 어디냐고요. 이건 뭐죠?”

“어디인 거 같나요?”

“…잘, 잘 모르겠어요. 이것 좀 풀어주세요. 네?”

“아, 그건 의진 씨가 깨어나면 풀어드리려고 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기본적인 의진의 에너지는 그간 트레이닝을 통해서 파악되긴 했지만, 이곳에서는 센터 수치에 반 토막도 안 나올 거 같긴 했다.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의진의 볼을 쓰다듬은 도훈이 여전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앞으로 이곳에서 의진 씨의 새로운 삶이 펼쳐질 거예요.”

“……네?”

“‘도시’에 온 걸 환영해요.”

믿을 수 없는 단어가 도훈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도시라니. 사전적 의미의 단어가 아닌 ‘도시’는 의진에게 있어 단 한 가지를 의미했다. 가이드를 납치해 산채로 해부해 실험하는 그곳.

“도시…?”

그 단어를 입에 올린 순간 의진은 구역질이 났다.

“우욱…!!!”

믿기질 않았다. 내가 ‘도시’에 있다니. 혹시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의진이 주변을 둘러보자 철창이 눈에 들어왔다. 채도라고는 하나도 없는 회색빛 도시 그대로였다. 시큼한 쇠냄새와 차디찬 온기가 스멀스멀 다리로 기어 올라왔다. 입고 있던 옷은 벗겨지고 걸레짝 같은 천 쪼가리가 겨우 상판만을 가리고 있었다. 지옥에 온 건 아닐까, 이건 현실이 아니었다.

낯선 공포가 사무쳤는지 의진의 마른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두려움 깃든 진동이 도훈에게도 전해졌다. 도훈은 의진을 한 번 바라보고는 진정제가 담긴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주, 주사…. 하지 마세요, 선생님! 선생…!!”

파란 핏줄이 보이는 얇은 피부에 주삿바늘이 망설임 없이 찔러졌다. 도훈의 손길은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듯 거침이 없었다.

“으읏! 하아… 이게… 대체…. 제가 왜 도시에….”

“걱정하지 말아요. 단순한 진정제입니다.”

주삿바늘이 닿았던 피부 위에 새겨진 붉은 점 위로 핏방울이 솟아올랐다. 약이 모두 투여된 것을 확인한 도훈이 알코올 묻은 솜으로 방울진 피를 닦아내고 문질렀다. 모든 게 이질적이었다. 보기 싫어 눈을 질끈 감은 의진의 귓가에 도훈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의진 씨는 정말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나요?”

“…….”

“그렇다면 유감이네요. 당신의 연인인 주승오는 단번에 알아챘었는데, 왜 의진 씨에게 말을 안 했을까요.”

진정제는 빠르게 의진의 혈관을 돌면서 두려움을 산란시켰다. 헐떡거리는 숨이 점차 차분해지자 도훈은 싱긋 웃으며 그의 주변을 서성였다.

“혹시, 의진 씨를 이곳에 보내기 위해 침묵하고 있던 건 아닐까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승오가, 승오가 그럴 리 없어요….”

의진은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휩싸였다. 자신이 믿고 따랐던 사람이 그토록 증오하고 피하려 아등바등했던 ‘도시’의 소속이라는 게. 이제야 승오의 모든 게 이해가 갔다. 계속 무언가를 말하려 했던 얼굴이, 망설였던 말끝이…. 차오르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바투 들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의진 씨는 이곳에서도 충분히 멋진 삶을 살 수 있어요.”

“…….”

“그깟 에스퍼는 잊고 살라는 말이에요. 더는 볼 일이 없을 테니까요.”

“어떻게, 어떻게 저를 속일 수가 있어요? 선생님이 어떻게!”

누워있는 의진의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도훈은 의진의 눈물 젖은 눈을 보니 심장 한편이 아릿해지는 게 느껴졌다. 마음이 약해질까 싶어 시선을 피한 그는 에너지 측정을 위해 투명 전극을 꺼냈다. 필름지를 떼어내고 기계와 연결해 의진의 손등에 부착했다.

아예 칩을 박아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편이 더 수월했겠지만, 그건 의진이 조금 진정되고 나서 진행할 생각이었다. 깜빡거리는 숫자는 올라갔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의진 씨는 언제든 제 편이 되어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선생님이 정말 제 선생님이셨을 때 이야기였다고요!”

“지금도 의진 씨의 트레이너예요. 변한 건 없어요.”

도훈의 노력으로 의진은 그간 이곳에 누워졌던 가이드와 다르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일단 실험 방식도 달라졌을뿐더러 대우도 변화했다. 불 꺼진 실험대가 유일한 휴식처였던 그들과 다르게 의진은 쪽방이 주어졌다. 그래봤자 실험체 취급에 불과하겠지만.

“실험은 당장 내일부터 진행될 거예요. 그러니 오늘은 쉬는 게 좋겠어요.”

“선생님! 이러지 마세요. 네? 저희 서울 센터로 돌아가요.”

의진이 손을 움직이자 묶인 사슬에서 듣기 싫은 쇳소리가 났다. 도훈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옆에 둔 2단 트레이 밑에서 발찌를 꺼내 들었다. 이곳에 왔던 가이드들 모두가 착용한 것이었다. 실험실 밖은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설계한 특수 장치였다. 조금이라도 실험실 외부 공기와 맞닿으면 정신을 잃을 만큼의 자극이 주어졌다.

마른 발목에 발찌를 채운 뒤 도훈은 의진의 손목, 발목에 묶인 사슬을 풀어냈다. 피부가 약해 금방 빨간 자국이 생겼다.

“방을 안내해줄게요. 혹여나 도망칠 생각은 말아요. 잘못하다간 발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도훈의 냉소적인 말에 의진은 턱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승오가 너무도 보고 싶었다. 얼얼한 손목을 쥔 의진이 눈을 질끈 감았다. 모든 게 제 탓인 것만 같았다. 몇 번이나 승오는 의진에게 신호를 주었다. 도훈을 멀리하라고, 그자와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단순한 질투라고 가볍게 넘겼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선생님이 스파이 같다고, 네가 위에다가 보고했냐고.’

눈을 감으면 승오에게 건넨 말들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하, 너 진짜 왜 그래? 왜 선생님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승오가 모든 걸 알고 있었으면서, 자신이 내뱉은 가시 돋친 말들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적당히 해. 너 갑자기 왜 그래? 미쳤어? 아니면, 나 놀리는 거야?’

‘갑자기’라는 말은 틀린 말이었다. 승오는 의진이 도훈과 함께 있던 순간부터 도훈을 의심했다. 승오가 도훈을 위험인물로 간주한 이유는 도훈의 생각을 읽었을 수도 있었고, 수많은 전투 경험에서 무의식중에 발현된 직감일 수도 있었다.

‘졸리면 자. 내가 머리 말려주고, 옷 갈아입혀 주고 다 할 테니까.’

‘와, 주승오 완전 짱…. 멋있어. 우리 평생 이렇게 살자, 승오야.’

평생. 과연 승오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기대가 회색빛 ‘도시’에 꼴사납게 내던져 산산이 조각났다. 의진 특유의 해사한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의진 씨는 여기서 가이딩 에너지를 추출 받게 될 겁니다.”

“에너지를, 추출 받는다고요?”

도훈을 올려다본 의진은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분명 껍데기는 도훈이 맞는데, 뱉어내는 말들은 도훈이 아니었다. 안경을 추켜올린 도훈이 울멍이는 의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네. 승오 씨와 했던 것, 그리고 저와 했던 것. 그것을 그저 ‘도시’에서 하게 됐다고 생각하면 돼요.”

“……지금 그게,”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말아요. 제가 봐온 의진 씨는 충분히 적응하고, 더 대단해질 거예요. 천음님도 한심하게 죽어 나간 쓰레기들과 다르게 의진 씨를 기대하고 계시니까요.”

“…쓰레기요?”

의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되물었다.

“제 몫도 하지 못하고 죽어 나간 정부 가이드를 말하는 겁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어떻게 사람을 쓰레기라고 부를 수 있어요?”

도훈은 잠시 흐음, 숨을 뱉어내곤 의진을 내려다봤다. 아직도 마른 몸이 자잘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죽은 가이드들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니. 착한 심성은 이곳에서 하등 도움되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들을 동정하고 측은해하기엔 우리가 이뤄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아요.”

“…….”

“불필요한 존재를 거르는 건 너무나 합리적인 방법이죠.”

“……하.”

말을 마친 도훈은 해사하게 웃었다. 더는 저 미소가 다정해 보이지도, 멋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의진은 또 헛구역질을 나올 거 같아 입을 틀어막았다.

“방으로 안내해줄게요.”

도훈이 뻗은 손을 거절한 의진이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절대, 절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을 거였다. 의진은 앞장서는 도훈, 뒤따라 오는 하얀 방역복 입은 사람들 사이에 갇혀 거르며 다짐했다.

“……승오야.”

의진은 도훈이 안내한 쪽방에 쪼그려 앉아 자그맣게 승오를 불렀다. 창문조차 트여있지 않는 3평 남짓의 방은 의진이 겨우 누울만한 침대가 전부였다. 보조등 하나에 의지한 채 무릎에 얼굴을 묻은 의진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후회는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왔다. 모든 게 잘못이었다. 도훈을 만난 것도,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한 것도, 승오를 좀 더 지켜주지 못한 것도, 그의 말을 묵살해버린 것도. 하나 같이 제 탓이었다. 의진의 눈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 맨 무릎을 적셨다.

“나 같은 건….”

젖은 무릎에 눈을 비비던 의진은 어슴푸레한 새벽이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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