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인 더 시티 (30)화 (30/114)

#30

“컥…!”

입을 벌리지 않는 의진의 턱을 부여잡은 승오가 힘을 주었다. 커다란 손에 잡힌 얄쌍한 턱은 억센 힘을 받아 살짝 벌려질 수밖에 없었다. 혀뿌리가 아플 정도로 키스하던 승오는 의진이 느낄만한 곳을 사정없이 주무르고 만지기 시작했다.

“으, 하지 마…!”

“왜? 진짜 그 새끼랑 자기라도 했어?”

“……주승오. 너 진짜 왜 그래….”

의진의 상의가 찢겨져 너덜거렸다. 바지와 속옷은 한꺼번에 내려져 발목에 걸쳐진 상태였다. 의진이 눈물을 뚝뚝 흘리자 승오는 아예 몸을 돌려 벽을 보게 했다. 처음이었다. 키스하면서도 달아오르지 않은 건. 화려한 색채로 자신을 물들이지 않은 건.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지 않은 건.

그리고 의진의 파장이 느껴지지 않은 건.

“제발… 하지… 마, 승오야….”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승오는 풀어지지도 않는 구멍에 무작정 성기를 박아 넣었다.

“윽, 으윽…!”

뻣뻣했던 구멍은 승오의 추삽질에 서서히 액을 뿜어냈다. 구멍 주위가 미끌해지는 걸 느낀 승오는 벽을 짚고 서서 버티는 의진의 허리를 감싸 안고 깊게 허리를 쳐올렸다. 그러자 구멍이 뿌리 끝까지 삼킨 좆을 꽈악 조여왔다.

“하, 읏…! 그만, 아흑, 그만…!”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감각은 너무나 괴로웠다. 의진은 벽에 이마를 맞대고 눈을 감았다. 마구잡이로 제 안을 휘젓는 승오가 낯설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귓가에 닿는 숨소리는 승오의 것이 맞았다. 익숙한 길을 따라 전립선을 지그시 짓누르자 의진은 고개를 젖혀 신음을 질렀다.

“아응! 응! 아… 하지, 응! 하지 마, 승오… 으읏!”

“왜, 자꾸 하지, 말라는 건데.”

승오는 아예 서지 않은 의진의 것을 탁탁 흔들며 박아댔다. 손바닥에 쓸리는 성기 표피가 귀두까지 밀려왔다가 빠지길 반복했다. 엄지로 쿠퍼액을 뿜는 요도를 문지르던 승오가 깊숙이 박은 채로 추삽질을 했다.

“으읏, 응! 윽, 아흣! 응!”

“왜, 자꾸 그만… 하라는, 거냐고.”

벽에 사정액을 분출한 의진이 이번엔 가슴을 주무르는 승오의 손목을 붙잡고 헉헉거렸다.

“그, 그만….”

의진을 안아다 거실에 눕힌 승오는 얼굴이 죄다 눈물로 번진 얼굴을 무시하고 다리를 벌렸다. 홧홧거리는 구멍에 다시 성기를 박아넣고 허리를 쳐올리자 의진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왜, 내 얘기는 들어주지 않는 거냐고, 지의진…!”

뱃속에 자리한 정액이 꾸역꾸역 밖으로 벗어나려 승오의 성기를 적셨다. 철썩대는 마찰음과 찌걱거리는 섹스 소리에 승오가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의진도 반쯤 포기를 한 모양인지 온몸에 힘을 빼고 박히는 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우으, 응, 으응… 흣, 으!”

평소라면 광활한 삼림에 갇힌 것처럼 에너지가 돌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미미하게 뻗어 나오는 에너지가 의진이 이 순간을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승오는 꺼떡거리는 의진의 아담한 좆을 쥐고 또 한 번 파정을 종용했다.

이렇게 엉망인 섹스는 두 번 다시 없을 거였다. 의진은 물티슈로 아래를 닦아주는 승오를 밀쳐내지도 못하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찢긴 채 널브러진 옷은 사방을 나뒹굴었고 행복해야 할 후희가 아프기만 했다.

“지의진.”

“…….”

“아니라고 한 번만 해주지 그랬어.”

“…….”

“그 사람을 거짓말로라도 부정하고 싶지 않았어?”

“……흑.”

“그럼 나는 이제 어떡하냐.”

승오는 처음으로 의진에게 능력을 사용했다. 혼란스러움, 슬픔, 고통으로 얼룩진 의진의 얼굴이 아무 감정 없는 로봇처럼 변했다.

‘잠들어.’

승오의 명령에 따라 흐느끼는 소리가 점자 멎더니 의진은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사정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의진의 가이딩 파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의진이 무언가 방사한다는 감각은 들었지만, 승오의 존재를 거부하는 듯 어지러운 파장만 허공을 부유할 뿐 지울 수 없는 불쾌함만이 빈자리를 대신했다. 엉망이 된 몸을 안아 든 승오가 천천히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피가 고인 곳곳의 울혈을 닦아주면서도, 잇자국 가득한 허벅지를 씻기면서도, 답답함이 사라지질 않았다. 승오는 답답함을 앞에 세워놓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게서 당장 떨어지라고 고함을 치고 싶었다.

하얗게 번진 의진의 눈물 자국을 지워준 승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은 의진을 좋아했다. 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그런 의진은 도훈을….

“뭐 같네, 진짜.”

의진을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게 죄로 둔갑한 느낌이었다.

“…….”

잠든 의진을 침실에 눕힌 승오는 베란다로 나와 쏟아질 것 같은 은하수를 올려다봤다. 전에 의진과 비슷한 밤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던 게 떠올랐다.

‘하늘 되게 예쁘다! 그치, 승오야.’

‘어. 서울에서 이런 하늘 보기 쉽지 않은데.’

‘그러게. 우리 또 은하수 보는 날에 서로 소원 들어주기로 할래?’

‘무슨 소원?’

베란다 난간에 팔을 걸치고 있던 승오가 의진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의진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으음, 고민하는 척하다가 단단한 팔에 기대 키득거렸다.

‘네가 나한테 형 소리 하기.’

‘…뭐냐 그게.’

‘왜! 나 그거 좀 로망이야. 뭐 그게 어렵냐?’

‘참나, 그래 뭐 그까짓 거.’

‘대신 침대에서. 오케이?’

‘너 그런 취향이었어?’

그러면서도 승오는 혹여 밤바람에 의진이 추울까 봐 팔을 들어 그를 감싸주었다. 의진은 승오의 품에 안겨 크게 새벽 냄새를 들이쉬었다.

‘내 건 접수됐으니까 너도 말해봐.’

‘나는 없어.’

‘아, 재미없게! 얼른. 뭐든 다 들어줄게.’

의진의 재촉에 승오는 보랏빛과 남색이 융합된 하늘을 보던 걸 멈추고 의진을 바라봤다.

‘그냥 지금처럼 곁에만 있어 줘.’

‘뭐야… 나만 이상한 애 됐잖아.’

‘형 소리는 얼마든지 해줄 테니까. 난 그거면 돼.’

‘치, 너야말로 소원 완전 시시하다. 그건 당연한 거잖아.’

밝게 웃은 의진은 팔을 뻗어 승오의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승오는 꼭 그 추억이 몇 세기는 지난 추억같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네 옆에 있을 거야.’

의진의 나긋한 목소리가 승오의 주변을 공기처럼 맴돌았다. 아무리 제 머릿속에 능력을 사용해도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집어삼킬 수 없다는 불문율 때문에 의진에게 지은 죄악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한심한 새끼.”

아직도 천음이 제 귓가에 속삭이는 역겨운 거짓된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떠다녔다. 잠을 자는 순간에는 악몽처럼 떠올랐고 혼절할 정도로 훈련을 받고 나면 간신히 목소리가 끊겼다. 고장 나버린 것은 사실 자신이 아닐까.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모를 후회만이 가득한 밤이었다.

*

“으으….”

뻐근한 몸을 일으킨 의진은 어느덧 아침이 된 주변을 돌아봤다. 어젯밤 있었던 일은 마치 꿈이었단 듯 모든 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아랫배가 욱신거리지 않는 거로 보아 승오가 뒤처리를 모두 해준 듯했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홀쭉한 배를 문지르던 그는 집안이 무척 조용하다는 걸 느꼈다.

바닥에 발을 딛고 확 일어나자 허리가 콕콕 쑤셔왔다. 의진은 어색한 걸음으로 거실로 나오다가 소파에서 선잠을 자는 승오를 발견했다. 담요 한 장 덮지 않고 눈만 가린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

아직 응어리진 감정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불을 꺼내 덮어줄까, 하다가 의진은 휙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 뭐가 예쁘다고 이불을 덮어줘.

세안을 마친 의진은 근육통 생긴 어깨를 희미하게 주무르다가 곧바로 옷을 입었다. 밖에 나가 산책이라도 할 심산이었다. 지금 상태에서 승오를 봤다간 또 미운 말이 멋대로 나갈 수도 있으니까.

“…하, 정말.”

외투를 입고 나갈 채비를 하던 의진은 거실에 서서 잠깐 고민했다. 아직 공기가 차가웠다. 일자로 누워 숨소리 하나 없이 잠든 승오가 거슬렸다. 뒷머리를 헤집은 그가 종종걸음으로 다시 방으로 몸을 돌렸다.

소파 테이블에 앉아 잠든 승오를 내려다보던 의진은 목덜미에 난 생채기를 발견했다. 어젯밤 거부하다가 저도 모르게 손톱을 세워버린 듯싶었다. 아프겠다. 눈썹을 늘어뜨린 그가 황급히 고개를 젓고는 뺨을 살며시 내려쳤다. 아프긴 뭐가 아파! 어제 억지로 뚫린 건 나라고! 잊지 마, 지의진!

“…진짜 바보.”

의진은 머릿속으로 시끄럽게 싸움을 하다가 승오를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조심스럽게 닫히는 문소리에 맞춰 눈을 뜬 승오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몸 위엔 얇은 이불 한 장과 연고가 올려져 있었다.

“…….”

의진은 새벽 냄새가 걷히지 않는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는 후우, 뱉어냈다. 승오와 한집에 있기가 어색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직 훈련 시간이 되지 않아 언제나 그랬듯 발걸음은 숲길 쪽을 향했다.

어느 정도 초입에 들어서면 아스팔트 길은 포장 되지 않은 돌길로 모습을 바꾸었다. 또 비가 내릴 듯 우중충해진 하늘을 올려다본 의진은 느긋하게 걸었다.

“주승오, 바보.”

스니커즈가 돌을 아그작 밟으며 속삭였다. 의진은 걷는 내내 승오 생각으로 가득했다. 처음으로 본 상처받은 눈빛이었다. 그걸 보자 혀에 추라도 달린 것마냥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선생님을 필요로 하는 건 다 너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했으면 진작 이 문제는 끝이 났을 수도 있었다.

“……아니다. 내가 더 바보지.”

이제 더는 약한 모습 따위는 보여주고 싶지 않아 부린 자존심이 여기까지 이끌었다. 약간은 강제성 있는 관계였다 해도 승오가 저를 배려해주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의진은 걸을수록 허리에 감돌았던 뻐근함이 가시는 거 같아 굽었던 허리를 곧추 폈다.

“그러니까 내 생각 좀 읽어달라고 했잖아.”

중간까지 걷던 의진은 커다란 돌에 잠시 걸터앉아 중얼거렸다. 차마 뱉지 못하는 진심을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승오는 매번 그러질 않았다. 그러니 맨날 말해줄 때까지 삽질이나 해대지. 처음 고백했을 때도 그래. 의진은 엄지손톱 옆 작게 난 살을 툭, 툭 뜯으면서 승오를 흉봤다.

‘너는 한 번도 내가 우선이었던 적, 있기라도 해?’

‘네가 살고 싶어서 내 제안을 거절한 거? 괜찮았어. 그렇게 해서 네가 진짜 살았으니까. 다치지 않았으니까.’

그러다가도 또 승오를 서운하게 만든 것 같아 비난의 화살은 제게로 꽂혔다. 승오는 왜 정말 선생님을 그렇게 경계했던 걸까. 내가 그 이유를 너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바닥과 멀어진 발을 팔랑거리던 의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만나면 승오에게 사과해야겠다. 도훈을 좋아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가감 없이 말해줘야겠다. 그리고 승오가 혼자 앓고 있을 속내를 물어봐야겠다. 충분한 얘기를 나누면 금세 풀어질 사이라는 걸 잘 알았다. 푸른 숲에서 혼자 생각 정리를 마친 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별관으로 돌아가기 위해 돌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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