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인 더 시티 (23)화 (23/114)

#23

먹구름이 불어오는 바람에 흘러 사라지고 가려졌던 해가 달로 바뀔 때까지, 승오와 의진은 마음껏 서로를 안았다. 허기졌던 마음을 배불리 채웠을 땐 이미 저녁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아…!”

마지막 사정을 마치고 나온 승오가 의진 위로 엎어졌다. 의진이 숨을 쉴 때마다 성기 크기로 벌어진 구멍에서 덩어리진 정액이 뭉쳐 흘렀다. 가빠진 호흡을 승오의 어깨로 뱉어내던 의진은 힘 빠진 웃음을 지었다.

분명 끝을 향해 가고 있는데도 승오에게 느껴지는 에너지는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의진에게 고여있던 감정이 상당했다는 뜻이었다.

“나 너무 힘들어. 너는 멀쩡하지?”

“응.”

승오의 등은 운동을 일주일 넘게 쉬었는데도 굴곡이 그대로였다. 당연하다는 듯 곧바로 따라붙는 대답에 더듬더듬 손끝으로 등을 훑던 의진은 안 아프게 손톱을 세웠다. 단단한 피부를 뚫지 못한 손톱이 살살 간지럼을 태우다 이내 몸통을 끌어안았다.

“약간 얄밉다? 너한테 기 쪽쪽 빨린 기분이야.”

매일 평범한 연인 같다가도 이럴 때 서로의 소속이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승오는 몸을 섞으면 섞을수록 체력과 정신력이 또렷해졌다. 의진에게 전해지는 에너지를 공급받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의진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승오에게 혹사를 당할수록 체력이 깎여나갔다. 흥분할 땐 무의식적으로 거대 에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더욱 컸다.

“어떻게 채워줄까?”

“으음, 글쎄. 일단 이러고 있자.”

승오가 의진의 옆에 누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적막이 가져다주는 포근함. 의진은 승오를 향해 몸을 돌아눕고선 비싯 웃었다. 이상하게 체력이 채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신기하다. 수술 자국 하나도 없는 거.”

“너랑 있으면 다 사라지니까.”

수술받았던 팔꿈치 자리를 유심히 보던 의진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승오가 의진의 허리를 감싸 제 쪽으로 더 붙게 했다. 옅은 땀 냄새와 체향, 큼큼한 정액 냄새가 뒤섞여 풍겼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한테 가이딩 받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어. 근데 너랑 파트너 되고 나선 상처도 말끔해지더라.”

“…그래? 그거 좀 기분 좋네.”

매칭률이 가져다주는 효과도 차원이 달랐다. 둘은 에스퍼와 가이드, 각각의 대상일 뿐 그것을 연구하는 자들은 아니었기에 극명한 차이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

파트너로 이루어진 에스퍼와 가이드의 교감이 극에 다다르면 에스퍼의 근본적인 파워가 향상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능력이 발현될 수도 있었다. 아직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들도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이었다.

의진은 뿌듯한 얼굴로 부르튼 입술을 혀로 쓸었다.

“앞으로도 내가 너 안 다치게 할 거야. 나만 믿어.”

승오의 얼굴을 야무지게 부여잡은 의진이 심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승오는 키스 마크로 덧칠된 하얀 몸을 훑어보다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

“네가 믿으라면 믿어봐야지 뭐.”

“뭐야, 그 성의 없는 대답은.”

“그건 그렇고 나 더 하고 싶은데, 하면 안 돼?”

투덜거리는 의진을 빤히 보던 승오가 손을 뻗어 동그란 둔덕을 조물거렸다. 커다란 손가락 사이로 삐죽 튀어나오는 볼깃살이 탐스러웠다. 살짝 쭈물거리는데도 워낙 안에 싸지른 양이 많아 정액이 자꾸만 쏟아져나왔다. 의진은 허벅지를 적시는 흔적 느낌이 간지러워 살짝 허리를 뒤로 뺐다.

“나 안에서 자꾸 네 거 흘러나와.”

“빼줄게.”

“그리고 다시 싸고?”

“응.”

은근슬쩍 삽입 자세를 취하는 승오를 밉게 노려본 의진이 졌다는 표시로 몸을 늘어뜨렸다. 방전된 힘이야 내일 채워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의진의 다리 한쪽을 제 골반에 얹은 승오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다리가 벌어져 있어 구멍에 손을 넣기가 꽤 수월했다.

원래보다 살짝 도톰해진 구멍 주위를 만지니 의진이 어깨를 크게 떨었다. 온 감각이 예민해진 모양이었다. 자연스럽게 손을 넣어 뱃속에 가득한 정액을 긁어냈다. 의진은 승오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간간이 앓는 소리를 뱉었다. 자잘한 진동 같은 파장이 승오에게 닿았다.

의진이 느끼는 모든 감각을 공유한다는 게 승오에게는 신기하면서도 고귀했다. 내가 좋은 만큼 너도 좋아하고 있구나.

“우으, 설 거 같… 으응.”

“이미 섰는데?”

발딱 세워진 의진의 성기가 승오의 배를 쿡쿡 찔러왔다. 쿠퍼액에 적셔진 귀두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의진은 먼저 발기한 게 민망했는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까부터 뒷구멍을 잔뜩 희롱당하고 있는데 당연하지! 차마 말하지 못한 본심이 타액과 함께 식도를 넘어갔다.

하얀 시트가 울컥 쏟아지는 정액으로 질척해질 즈음 손가락을 거둔 승오는 정상위 자세로 의진을 눕혔다.

“내가 에스퍼고 네가 가이드였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래야 공평하지. 박히는 것도 나잖아.”

의진의 흥분으로 물든 광대가 사랑스러웠다. 승오는 열꽃이 핀 빗장뼈에 입을 맞췄다. 의진이 승오 것을 삼키는 만큼, 승오도 온몸이 의진으로 가득했다.

“크큭, 그러게. 다음에 네가 에스퍼로 태어나라.”

“후으으… 그럴, 그럴 거야….”

의진은 처음 뻑뻑했던 삽입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승오의 성기를 느끼며 자잘하게 숨을 떨었다. 몸을 뚫는 듯한 느낌은 왜 익숙해지지 않고 매번 떨려오는지. 재차 이어지는 섹스가 피곤하지 않고 마냥 뜨겁기만 했다.

*

‘도시’로 돌아간 도훈은 오래간만에 맡는 음습한 공기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지겹다고 생각했다. 깨끗하게 정리된 연구실 내부를 살피던 도훈 뒤로 천음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도훈 닥터가 구상한 설계도대로 지어봤는데 어때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합니다. 감사합니다, 천음님.”

몸을 돌린 도훈은 천음을 바라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비현실적인 외모를 자아내는 천음은 도훈을 바라보다가 함께 내부를 둘러봤다. 앞으로 이곳에서 역사가 탄생할 것이었다. 획을 긋는 건 도훈이었고 그 끝에 서 있는 건 제가 될 터였다. 천음은 머릿속에 그려둔 미래를 상상하며 미소 지었다.

“가이드 애송이랑은 친해졌는지 궁금하네요.”

“…어느 정도 신뢰는 쌓은 것 같습니다.”

천음은 굳이 도훈이 보고하지 않더라도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도훈의 안에 자신을 심어놨으니까. 그런데도 질문하는 건 일종의 테스트와 같았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도훈은 그가 알고 있는 선에서 확실한 대답을 건넸다.

“애정을 준 것은 아닌가요?”

날카로운 천음의 말에 도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농담이에요. 이곳에선 도통 말이 없던 사람이 그 한낱 가이드와 있으면 꽤 수다스럽더군요. 덕분에 귀가 아주 재밌었어요.”

“실례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원래 말이 많은 친구라-”

“아아. 그 애송이 얘기라면 됐어요. 뭐, 아무튼. 계획대로 되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도훈의 입에서 의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려 하자 천음은 듣기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종의 소유욕이었다. 가이드를 꿰어내기 위해 지시하긴 했지만, 일일이 보고받고 싶진 않았다.

“이곳에서 도훈 닥터가 연구에 힘쓰는 모습을 하루빨리 보고 싶네요.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거든.”

“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겠죠. 그래야만 하고요.”

도훈의 앞에 선 천음이 차디찬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제 영혼을 다시금 채워 넣기 위한 입맞춤이 시작됐다. 잇새로 넘어오는 소름 끼치는 이물감에 도훈의 손이 꽉 쥐어졌다.

“당신은 이미 제 것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입술을 뗀 천음이 나지막하게 도훈에게 속삭였다. 도훈은 천음의 우주 같은 눈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 있었다.

천음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도훈은 뇌를 흔드는 두통에 살짝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여전히 자신은 회색빛 연구소 안이었다. 관자놀이를 짚은 그가 연구실 한쪽을 차지한 기계 앞으로 다가갔다.

“…….”

의진이 ‘도시’로 왔을 때 이 안에 갇혀 강제로 가이딩 파장을 만들어내야 했다. 안에선 절대 깰 수 없는 유리로 설계된 실험관 벽을 훑은 도훈은 잠깐 상상에 사로잡혔다. 유리장에 갇혀 수족이 묶인 채 버둥거리는 의진의 모습에서 자꾸만 어항 속 물고기가 떠올랐다.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가엾은 인어가 겹쳐 보였다.

톡- 톡-

유리관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도훈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떤 반응이려나. 억지로 주입되는 자극을 못 이기고 괴로워할까, 아니면 모든 걸 체념하고 나에게 의지할까. 도훈은 관에 갇힌 의진을 떠올렸다가 금방 지워냈다. 의진을 떠올리니 곧바로 그 옆에 승오가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주승오.”

S급 정신계 에스퍼. 도훈은 센터로 돌아가서 승오의 능력을 끄집어낼 생각이었다. 생각을 읽는 에스퍼에겐 참과 거짓을 판별할 능력까진 없었다. 어차피 의진은 제게 홀려있었다. 의심이라는 작은 틈이 그들 사이에 생겨난다면 그 뒤는 간단했다. 순순히 그의 뜻대로 되지 않을 걸 잘 알았다.

“누가 이기게 될지 궁금하네요.”

가이드에 의존하는 에스퍼는 쓰다 버릴 무기에 불과했다. 몇 번 총질하고 나면 사그라지는 고철 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의진에게 버려질 승오를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그 고고한 눈빛을 꺾어버릴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짧은 외출을 마친 도훈은 EGI 서울 센터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다시 이곳으로 발을 들일 땐 의진과 함께일 것이다. 암전된 연구실을 나가는 은색 머릿결이 희미한 바람에 흩날렸다.

또각, 또각. 정갈한 구두 굽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굳은 얼굴로 복도를 거닐던 도훈은 무거운 철제문을 열고 모래바람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코끝을 맴돌던 습한 산소가 더는 맡아지지 않자 도훈은 살짝 웃음 지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루하기만 했던 일상이 외줄 타기를 하듯 재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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