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인 더 시티 (18)화 (18/114)

#18

승오의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전력기획팀은 ‘도시’ 추적 작전에 투입됐던 요원들을 모아 분석 회의를 시작했다. 모인 인원은 약소했다. 기획팀장과 태준, 분석팀 핵심 인원들과 승오가 전부였다.

‘도시’에서 수집된 자료는 생존한 요원들의 기억에 의존해 데이터화 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쓰이지 못하고 사라진 것들도 많았다. 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참패한 것에 대해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올리지 않았다. 이유 있는 침묵 속에서 분석팀 지환이 노트북에 저장된 회의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그들의 은거지는 파주 우암산에 있는 혜음로였으며 예전 컨트리클럽으로 사용됐던 부지 일부를 사용하고 있었다. 부지 크기로 파악할 수 있는 군대 규모와 마취실에서 발견했던 가이드 실험 보고서를 토대로 몇 장의 화상 자료가 만들어졌다.

이번 작전에서 유일하게 부상 하나 없는 태준이 먼저 빔프로젝터에 쏘아진 화면을 보고 회의의 포문을 열었다.

“그들의 배리어는 일반적인 은닉이라고 하기엔 어딘가가 이상했습니다. 하위 계급이 만들어낸 수준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사적으로 침입을 막는 형태도 아니었으니까요. 능력을 쏘자마자 사라졌습니다. 리플렉션 반응도 없었어요.”

“그저 ‘도시’라는 걸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승오가 태준의 말을 거들었다. 태준은 승오를 바라보다가 팀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전 인천과 목포, 부산 등을 순회하며 군사 물자를 빼돌리던 조직과 유사한 듯도 보였습니다. 연관이 있을까요?”

태준의 질문에 분석팀 성우는 사각 무테안경을 추켜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소탕한 조직원들의 DNA는 저희가 전부 보관하고 있어요. 현장에서 수집한 물품들과 현재 보관된 여러 조직의 DNA를 대조해보았지만 모두 불일치였습니다. 애초에 그들 모두 수감 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럼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사이코메트리 결과는, 아직입니까?”

가이드 실험 보고서를 추적했던 지환은 태준의 질문에 스페이스바를 눌러 자료 화면을 넘겼다.

“화면에 보이는 인물들이 보고서를 작성했던 자들입니다. 모두 EGI 연구원 이력이 존재했고 퇴사나 무단결근 등으로 현재는 근무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고서 작성이 끝나면 권력자에 의해 사망한 듯 보입니다.”

간단한 프로필과 함께 걸려있는 얼굴들은 평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승오는 감흥 없이 스크린을 주시했다. 생사가 어찌 됐든 살아있는 가이드를 죽이는데 가담한 것들이었다. 애도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증거를 없애는데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았군.”

팀장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사이코메트리를 발동하면서 이상 증세를 발견했습니다. 제 능력의 한계일지는 몰라도, 웬만한 추적엔 소리도 포함되기 마련인데 이번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바람이나 물소리까지도요.”

“…그럼 누군가가 그 보고서에 스며든 소리마저 지웠다는 소리입니까?”

태준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능력을 쓰는 자는 최상위 에스퍼여야 했다. 팀장은 지환의 말에 고개를 잠시 숙였다가 화면을 바라봤다.

“한 가지 의심되는 사람이 있어.”

“그게 누굽니까?”

“…천음.”

“천음, 이요?”

태준이 되물었고 승오는 팀장의 말에 인상을 구겼다.

‘누구냐고 물었다.’

‘천음. 이곳 도시의 수장이다’

모든 게 조각조각난 기억 속에서 그의 목소리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됐다. 승오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고민하던 팀장이 책상 앞으로 팔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예전 서울 센터에 있던 에스퍼지. D급에서 S급으로 재발현된 희귀 에스퍼…. 소리를 다스리는 능력이었던 걸로 기억하네. S급으로 발현된 이후엔 종적을 감춰서 반역자일 가능성을 높이 사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주승오 요원.”

팀장은 승오를 바라본 채 물었다.

“첫 번째 폭발지와 가까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뭐 확인된 게 있나?”

“……천음, 이란 자를 봤습니다.”

승오가 야릇한 미소를 지었던 천음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승오의 대답에 뜬구름 같았던 ‘도시’의 테두리가 대충이라도 그려질 가능성이 생겨났다.

“그가 직접 이곳의 수장이라 말했습니다.”

“…또 다른 말은?”

잇따른 질문에 승오가 입을 다물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의진에 대한 불안을 천음이 건드린 것밖에 없었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폭발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 이후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차피 ‘도시’를 소탕하는 계획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묻어두기를 택한 승오가 말을 마치고 팀장을 바라봤다. 승오를 응시하던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곤 앞으로 쏟았던 몸을 뒤로 가져갔다.

“전과 같이 인력을 빼가는 국제 브로커나 금전을 꾀하기 위한 피라미 조직의 움직임이 아니라는 것만 다들 알아두게. S급 에스퍼가 가담하고 있을 줄이야…. 그 가능성을 간과한 우리의 잘못이야.”

“…….”

“그들은 반역을 꾀하는 테러범들이다. 앞으로의 작전은 ‘도시’ 소탕이 아닌 ‘천음’을 추적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도록 하지. ‘도시’의 모든 걸 총괄하고 있을 테니 그에 대응하는 작전을 수립하도록 한다.”

“네, 알겠습니다.”

“이상. 모두 수고했네. 돌아가 봐.”

의자 끄는 소리가 간간이 회의실을 울렸다. 승오는 한 가지 걸리는 일이 있었다. 천음이 이미 의진과 도훈을 알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가 센터 사람을 알고 있다는 건 이곳에 소통구가 있다는 걸 의미했다.

“저, 팀장님.”

모두가 빠져나간 뒤 뒤늦게 일어난 팀장의 앞을 막아선 승오가 그를 마주 봤다.

“무슨 일이지?”

“한 가지 말씀 못 드린 게 있습니다.”

팀장은 더 말하라는 듯 승오의 말을 기다렸다.

“그자는 이미 이곳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듯 보였습니다. 게다가, 제 파트너인 의진과 도훈 트레이너를 언급했습니다. 지의진은 몰라도 가이드 트레이너의 이름까지 안다는 게….”

“…이곳에 스파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승오는 절반 정도 확신하고 있었다. 이곳엔 스파이가 있을 거였고 그게, 도훈인 것 같았다. 진중한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팀장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하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지금 상황엔 적합할 테니까.”

“…네, 그렇습니다.”

“당분간 감사팀이 조용히 움직일 예정이야. 일단은 복귀에 전념하도록. 아, 그리고 천음이 두 사람을 알고 있는 만큼 센터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승오가 팀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승오의 팔을 한 번 잡았다가 뗀 그는 단정한 걸음으로 회의실을 나갔다.

“주승오.”

팀장을 따라 회의실을 나온 승오는 앞에서 기다리던 태준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몸은, 괜찮냐?”

“보다시피.”

“그러게 내가 개인행동 하지 말라 그랬잖아.”

“…그러게. 미안하다. 변명할 것도 없네.”

태준은 굳었던 얼굴을 풀고 승오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떵떵거릴 줄 알았더니, 뭐냐? 그래도 어쨌든 너 때문에 천음이라는 어마어마한 단서를 찾았으니 됐지.”

“……그런가.”

“팀장한테는 흩어져서 찾아보느라 네가 거기 있었다고 말했어. 너 혼자 그쪽으로 뛰쳐나갔다는 거 알면 징계감이니까. 왠지, 그것도 생각해 보면 천음의 계략 같기도 하고. 들어갈 때부터 수상하다고 여겼잖아. 아무것도 없이 장난감만 늘어져 있는 게. 정보 누출, 무조건 가능성 있어.”

머리가 비상한 편인 태준은 이런 쪽에서도 재주가 좋았다. 승오는 태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조심해, 인마. 또 다치지 말고. 네 파트너 수술실 앞에서 오열하더라. 쓰러지는 거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태준은 그 말을 마치고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승오는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도 그 말을 들으니 의진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졌다. 가장 늦게 회의실을 떠난 그는 의진을 만나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

의진은 오랜만에 아주 편안하게 눈을 떴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는 게 상쾌하면 어딘가 잘못됐다는 뜻인데. 잠기운이 매달린 눈가를 비비고 천장을 바라봤다. 눈을 감았을 때보다 천장이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

“아, 주승오!”

누워 있던 침대가 병원 침대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의진이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침 진료로 자리를 비운 탓에 다행히 승오는 우렁찬 사자후를 듣지 못했다.

“이씨, 어디 갔어.”

황급히 다리를 침대 밑으로 내려 슬리퍼를 꿰어 신은 의진은 비틀대며 승오를 찾아 나서려 했다. 깊은 잠을 자느라 퉁퉁 부은 얼굴은 금방이라도 승오에게 잔소리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헛손질 몇 번 끝에 잡은 문고리를 열자 곧바로 앞에 서 있던 승오가 나타났다.

“일어났어?”

“뭐야! 너 내 말 안 듣고… 어, 깁스 풀었어?”

왜 멋대로 자기를 침대에서 재웠냐는 타박도 하기 전, 한결 가벼워진 팔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금방 표정을 바꿔 묻는 의진을 보고 피식 웃은 승오가 개운해진 팔을 들어 보였다.

“응. 이제 풀어도 된대서. 내일부터는 재활.”

“잘 됐다! 그럼 퇴원은 언제 할 수 있대?”

“이번 주 주말에.”

“와, 대박. 우리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병실로 들어온 의진은 승오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불편하지 않다고 말은 했어도 내심 숙소가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승오는 부스스한 머리통을 쓰다듬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하면 먼저 가 있을래?”

“싫어. 너랑 같이 있을 거야.”

승오도 진심으로 물었던 말은 아니었어서 단호한 거절에 웃어넘길 뿐이었다. 곧 퇴원이라는 말에 신나게 조잘대는 의진을 바라보던 승오는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도훈은 아군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 대화를 통해 강한 확신이 들었다. 스스로 약속했던 신념을 지키고자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천음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죽음을 당연시하게 여기는 말투, 다정함 속에 숨겨진 냉소적인 시선, 몸에서 풍기는 씁쓸한 차향까지도.

“내 말 듣고 있어? 우리 주말에 숙소 가면 오랜만에 영화나 한 편 볼까?”

“어, 어. 그러자.”

“아, 도훈쌤이 안 그래도 너랑 같이 선생님 방 들려도 된댔는데. 같이 한 번 가볼래?”

의진의 입에서 그가 언급되자 승오는 단숨에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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