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예상했던 것보다 손쉽게 배리어를 뚫고 진입했다. 배리어 제거에 심혈을 기울여 플랜을 세웠던 거와 달리 태준의 손짓 한 번에 막은 무너졌다.
전방에 배치된 에스퍼들이 살짝 주춤한 틈을 타 승오가 그들에게 경계 신호를 보냈다. 집중을 알리는 짧은 파장을 느낀 요원들은 태세를 가다듬었다. 이미 ‘도시’는 우리의 침입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회색빛 바닥에 깔린 먼지 같은 자갈이 내딛는 단단한 군화 바닥에 깔려 으깨졌다.
“C-01. 진입 완료. 수색 시작합니다.”
그들이 들어온 곳은 ‘도시’ 연구실의 후문 쪽이었다. 기자재를 보관해두는 창고와 비상 엔진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예상했던 규모보다는 작았으나 중앙에 세워진 메인 연구실은 그중 가장 큰 크기를 자랑했다. 아마 저곳에서 가이드 실험이 이루어졌으리라. 빠르게 주변을 훑은 요원들은 허리를 낮추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딘가 이상해.”
선두에 있던 태준은 쓰고 있는 헬멧 옆면을 고쳐 쓰며 말했다. 승오도 그 말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던 터라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침입을 예상했더라면 지금쯤 공격이 들어와야 맞는 건데,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승오와 한 팀을 이루고 메인 연구실로 향하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허탈감에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누군가 작전을 유출한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선 이렇게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게 말이나 됩니까?”
막내 요원은 확신에 찬 듯 말했다. 보안이 해제된 문은 사람을 인식하자마자 자동으로 옆으로 비켜섰다. 길게 이어진 복도 끝엔 마취실 안내판이 불규칙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덫일 수도 있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적을 만나는 편이 낫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C-01. 중앙 메인 연구실 마취실 발견.”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방심하지 마.”
긴 복도를 가로질러 마취실에 도달할 때까지 사방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장전한 특수 리볼버를 손에 쥐고 걷던 요원들이 열려있는 곳으로 입성했다. 모든 게 비워진 그곳엔 차갑게 식은 베드와 마취에 쓰였을 게 분명한 주사기만 그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승오가 베드 위에 놓인 주사기를 들어 살폈다. 아무리 봐도 실험에 쓰였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이건….
“이거, 장난감 주사기 아닙니까?”
투덜대던 막내 요원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흔히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었다. 몸매가 퉁퉁하고 약도 주입되지 않는 흉내 내기에 불과하지 않는 장난감. 군데군데에 떨어져 있는 핏덩어리 같은 물체는 밟으면 으깨지는 젤 비슷한 점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새끼들, 우리 갖고 노는 거야.”
근처에 있던 태준이 전투화로 그것을 질겅질겅 밟으며 욕을 내뱉었다. 목숨을 걸고 왔건만. 현실고증 잘 된 어린이 병원 탐험에 지나지 않았다.
“…….”
명백한 조롱이었다. 바늘 빠진 플라스틱 주사기가 너희의 수작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승오는 이를 꽉 물고 주먹을 쥐었다. 그들 손에 놀아난 것과 다름없었다.
누구는 이곳에 오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했는데. 승오가 쥐고 있던 주사기를 던졌다. 장난감 주사기는 콰득! 바닥에 처박혀 조각조각 부서졌다.
“이것 봐. 이곳에서 가이드 실험을 한 건 확실해.”
요원 하나가 탑처럼 쌓인 상자 더미에서 실험 보고서 몇 장을 발견했다. 이것조차 고의로 남기고 간 흔적일 수도 있었다. 승오는 종이를 받아들고 내용을 읽어갔다.
보고자 : Dr.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