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방에서 골몰하던 승오는 의진으로 점령된 생각을 휘발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땀구멍을 열고 심장 박동수를 높여야 꽉꽉 들어찬 짝사랑 상대가 그나마 희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방 문고리를 잡아 돌려 문을 열었다. 어느새 의진은 방으로 들어갔는지 방금까지 떠들썩했던 거실이 고요했다.
승오는 부엌과 가까운 의진의 방문을 빤히 쳐다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너 진짜 최고다….”
처음 관계를 맺은 날 의진은 땀에 젖은 승오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었다. 쪼그라든 발가락은 제멋대로 쥐었다 펴지길 반복했고, 크나큰 성기를 문 구멍은 쉼 없이 옴싹거리기까지 하며 가장 극락의 전율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좆질을 하느라 빠르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그 선연했던 얼굴은 승오의 뇌리에 오래도록 기억됐다.
“뭐가 최곤데?”
“네 여기.”
퍽퍽 처박아대는 접합부를 달달 떠는 손으로 만지던 의진이 비식 웃었다. 승오는 제 아래에서 속절없이 흔들리는 주제에 흐트러짐 없이 흥분하는 그가 신기했다. 그리고 그의 깊은 곳을 비집고 들어갈수록 목덜미가 빳빳해지며 서서히 또렷해지고 있는 정신도 신기했다. 마치 건드려지는 전립선이 회복의 원천 같기도 했다. 그럴 리 없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크읏… 부끄럽, 지도 않냐? 그런 말.”
“흐응, 더한 말도 할 수 있, 아아…!”
“참나…….”
“키스하자. 응?”
의진의 재촉에 승오는 땀에 젖은 허벅지를 바짝 붙이고 허리를 숙였다. 감도 좋은 입술이 맞물렸다. 수업 때 배웠던 가이딩 키스와 달리 점차 혀를 녹진하게 섞게 됐고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물고 애무하기도 했다. 흡사 연인들이 하는 키스와 비슷한 방식이었다.
승오는 제 품에 안겨 입맞춤에 몰두하는 작은 얼굴을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댔다. 훌러덩 옷을 벗는 마른 허벅지를 볼 때도, 절정에 젖어 새된 신음을 내지를 때도, 부족하다며 직접 콘돔을 뜯어 성기에 입힐 때도. 언제부터인지 그 솔직한 얼굴을 좋아했다.
“야, 야. 울지 마. 왜 울고 그래.”
그러던 어느 날. 그 감정을 정리하게 되는 계기가 생겨났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기 가이드 은후가 반입 금지인 소주 세 병을 끌어안고 승오와 의진의 숙소에 들어왔다. 파트너인 에스퍼를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이제 걔랑 어떻게 입을 맞추고 어떻게 섹스하냐고오…. 문드러진 내 심장은 누가 책임져?”
그러나 그 에스퍼는 다른 이를 이미 사랑하고 있었고, 자신과 섹스를 하다 다른 이의 이름을 불렀었다고. 은후의 취기로 버무려진 말을 두 사람은 애써 알아들었다.
“왜 못해. 너도 잊어. 그냥 가이드와 에스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해. 애초에 우리끼리는 이뤄질 수가 없다니까? 그냥 일과 관련된 사이야. 몸만 즐기면 된다고! 아무 생각 말고 즐겨!”
은후와 함께 술에 물든 의진은 그렇게 말했다. 깡그리 사라진 초록색 병들을 일렬로 세우던 승오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마음이 아팠던 것도 같았다.
“너는 그러면 여기, 얘 주승오랑 하면서 정말 아무런 감정도 안 생겼어…?”
“당연하지이. 우리는 파트너야. 짱 잘 맞는 파트너. 승오야, 그치?”
“…….”
의진은 승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 말을 끝으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지의진. 너 진짜 그렇게 생각하냐?”
벌어진 입으로 의진이 숨을 후욱 내쉴 때마다 술 냄새가 퍼졌다. 승오는 당장에라도 저 작은 머리통에 담긴 생각을 읽고 싶었다. 정말 나를 몸만 섞는 파트너로 생각한 건지, 아닌지. 만약 그랬다가 그 진심을 알게 된다면. 술김에 했던 그 말이 사실이라면….
“됐다. 그런 거 알아서 뭐해.”
넓은 극세사 담요를 펼쳐 잠든 의진에게 덮어준 승오는 그날 이후로 의진을 향한 마음을 멈췄다. 하루가 멀다고 커졌던 애정을 순식간에 거둘 수는 없어서, 그 자리 그대로 남겨두고 있었다.
분명 의진을 향한 감정을 그때 그 시간에 놔두고 온 게 맞는데. 잠시라도 생각의 끈을 느슨하게 놓으면 혀가 잔뜩 꼬부라진 의진의 말이 동동 떠올랐다.
‘애초에 우리끼리는 이어질 수가 없다니까?!’
의진은 꿈에서도, 왜곡되지 않은 선명한 기억 속에서도 늘 그렇듯 단호했다.
“…….”
트레이닝 룸으로 내려온 승오는 아무 생각 없이 훈련에 임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트레이너 여울의 시선이 뾰족해진 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었다. 그저 구역질이 날 만큼 힘이 들면 그만이었다.
“……하아.”
승오는 훈련이 끝난 후 가볍게 달리던 러닝머신의 속도를 높였다. 훈련화 밑창과 고무벨트가 쿵쿵쿵, 계속해서 맞닿았다. 귀밑부터 열이 후끈하게 올라왔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뛰어야만 머릿속 불청객을 지울 수 있었다. 센터에서 가장 실력 좋기로 소문난 정신계 에스퍼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냥 일과 관련된 사이야. 몸만 즐기면 된다고! 아무 생각 말고 즐겨!”
정말 그렇게 생각해? 하루에도 수십 번 의진의 머릿속을 헤집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승오를 향한 의진의 진심을 확인한다면 지금까지의 관계도, 파트너라는 질긴 인연도 모두 물거품이 될까 두려웠다.
천막에 덮인 상자 같았다. 열어보지 않는 이상 입맛대로 상상이 가능한, 입구가 꽉 다물린 내용 모를 상자.
전하지 못할 질문만 혀끝에 맴돌았다.
“가이딩이라는 상황을 제하고 나더라도 정말 아무 생각 없었어?”
“뭘 그렇게 열심히 뛰어?”
“…?!”
곁에서 들려온 의진의 목소리가 승오의 상념을 깨웠다. 제 몸을 내려본 승오는 입고 있던 훈련복이 피부에 딱 달라붙을 만큼 땀에 젖었음을 깨달았다. 목에 수건을 두른 의진이 러닝머신 속도를 슬금슬금 낮추며 물었다. 느린 걸음 수준으로 떨어진 속도에 승오의 젖은 앞머리에서 땀이 똑 떨어졌다. 평소의 말간 얼굴이 승오가 흘린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운동 중이잖아.”
“그러니까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니깐? 오늘 훈련하다가 혼났어?”
“…신경 꺼.”
승오는 러닝머신 손잡이에 팔꿈치를 기대고 빤히 올려다보는 의진을 바라보다 휙 고개를 돌렸다. 그저 의진을 떠올리며 운동한 자신이 민망해서 그런 것뿐인데, 다른 이가 보기엔 지나치게 냉소적인 태도일 게 분명했다. 나름대로 면역된 의진도 이번엔 눈썹을 꿈틀댔다.
“너 절대 지금은 내 생각 읽지 마.”
의진은 가슴에 엑스자를 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너 욕 졸라 하고 있거든. 하여간에 되게 띠꺼워.”
말을 마친 의진이 목에 걸린 수건 양 끝을 잡고 흥!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 걸었다. 제게서 멀어지는 의진의 뒷모습을 볼 때면 자꾸만 혀끝에 맴도는 그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취해서 잠든 의진의 등을 보면서 몇 번이나 삼켰던 고백이.
승오는 내려놓자 생각했던 사랑을 한 번도 내려놓지 못했다.
“…지의진.”
승오의 목소리에 의진이 뒤를 돌아봤다. 땀에 젖은 훈련복 위로 갈라진 근육들이 선명하게 도드라진 승오가 서 있었다. 다가오는 얼굴이 위험했다.
“왜, 왜?”
스트레칭이 주로 이루어지는 단련실 공간까지 따라 들어온 승오가 짐볼을 넣어둔 선반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미안.”
관자놀이 주변을 긁는 것은 진심으로 미안할 때 보이는 태도 중 하나였다. 간지러운 말이 어색한 승오는 가끔 저런 행동으로 민망함을 분산시켰다. 매트 위에 양발바닥을 모으고 앉으려던 의진은 잠시간 눈을 끔뻑이다 풋, 웃음을 터뜨렸다.
“사과할 거면 애초에 그렇게 말하지를 말라구.”
“성격이 이 모양인 걸 어떡하냐.”
“그래. 너그러운 형님이 모난 동생 이해해줘야지. 그치?”
의진이 승오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커다란 눈이 살포시 접어지며 봉긋 올라가는 하얀 광대가 사랑스럽다고, 순간 승오는 생각했다. 주먹을 입가에 대고 크흠, 큼! 헛기침하는 승오의 귀가 지나치게 붉어졌다.
“그런데 말이다, 주승오.”
“어?”
의진이 터벅터벅 느긋하게 승오 앞으로 걸어갔다. 의진도 그리 작은 키가 아닌데 승오의 키가 월등히 크다 보니 마주하는 시선이 살짝은 기울어진 채였다.
“수상해, 너 요즘.”
“…뭐가.”
의진은 국가 소속 에스퍼 로고가 박힌 승오의 점퍼를 확 쥐고 제게 끌어당겼다. 의진이 코앞에 닿은 도톰한 입술을 눈으로 훑었다. 키스해버릴까. 가이딩을 핑계로 외부에서 가벼운 입맞춤 정돈 장소에 구애받지 않았다.
“부쩍 화가 늘었잖아. 그것도 나한테만.”
“기분 탓이겠지.”
승오가 의진을 떼어내려 손을 뻗자 의진은 더욱 손에 힘을 주었다. 마음만 먹으면 의진 정도야 힘 하나 안 들이고 저 끝까지 떨어뜨릴 순 있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제 멱살을 쥐었던 의진을 밀어냈던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숨결조차 닿을 듯한 거리였다. 익숙하다 못해 제 것 같은 피부가 겹쳐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의진은 승오에게서 풍기는 땀과 뒤섞인 플라워 향을 맡다가 짧게 입을 맞췄다. 쪼옥. 입술을 모았다 떨어뜨리며 귀여운 소리가 파생됐다.
“으으. 센터 섬유유연제 냄새 진짜 별로야.”
투덜거리는 말이 끝나자 승오는 의진의 턱을 잡고 깊게 입을 맞췄다. 맞물린 입술 틈새로 뜨거운 혀가 들어와 곳곳을 훑어갔다. 목에 팔을 감는 의진을 번쩍 안아 든 승오가 몸을 돌려 선반 위로 그를 앉혔다. 열감 가득한 점막이 비벼지자 고강도 운동으로 뻐근했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뿐해지고 있었다.
윗입술을 감쳐 문 승오는 쥐고 있는 좁은 턱을 바투 들었다. 끊임없이 혀를 섞으면서 손가락을 뻗어 얇은 귓불을 주물 댔다. 의진이 좋아하는 포인트였다. 엄지의 넓은 면적으로 살살 쓰다듬듯이 만져주다가 동그란 끝을 당기면 몸을 바들 떨었다.
“흣…! 야아, 사람들이 보면 어떡해.”
승오는 말없이 의진을 바라봤다.
승오로서는 의진이 원망스러웠다. 에스퍼와 가이드의 관계를 무 자르듯 나누다니. 그런 주제에 승오의 몸에서 나는 섬유유연제가 별로라니. 별로라고 해놓고 굳이 입을 맞춰오다니.
솔직히 사형감이었다. 집착광공들도 집착을 하면 했지 이렇게 귀엽게 뽀뽀해오면 누구라도 사형이라고 외쳤을 거였다. 그 정도로 승오는 자꾸 제 마음을 건드리는 의진이 미웠고, 또 좋았다. 아니, 사랑했다.
“…네가 다른 가이드랑 이러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억울했을 거 같아.”
“…….”
좋은 말, 인가. 승오는 헷갈렸다.
“너랑 파트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휴우.”
“왜?”
“어? 그야, 성격은 조금 더럽긴 해도 착한 구석도 많지. 일단 잘생겼지. 그리고, 거기도 크고 섹스도 잘해. 아무리 가이딩이 목적이라 해도 무식하게 박기만 하면 그거 되게 힘들다. 엄청 아파!”
“…….”
“섹스 매너도 좋잖아. 내가 하자는 것도 뭐, 나름 골라서 다 해주고. 아, 참. 나 주승오 너무 띄워주네. 이러면 안 되는데.”
키스가 달았던 거 같은데, 왜 지금은 목구멍에서부터 씁쓸한 맛이 올라오는지 모르겠다. 승오는 신나게 조잘대는 의진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억울했다. 각자 서로를 대하는 이유가 달라 충돌하는 지금이. 아니, 충돌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또 한 번 선이 그어진 이 상황이 억울했다.
“내가 진짜 가이딩만 받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의진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승오를 좋은 ‘에스퍼’로 정의하고 있었다. 승오는 의진의 이마를 꾸욱, 검지로 뒤로 밀고는 돌아섰다.
“…야, 주승오. 잠깐만.”
승오의 발걸음을 멈춘 건 텅 빈 체력단련실에 울리는 의진의 목소리였다.
“그럼 너는 내가 네 좆만 원해서 이러는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