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인 더 시티 (1)화 (1/114)

#1

“센터 소속이라 기대했는데. 아주 실망스럽군요.”

“네,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가이딩 효율이 좋지 않은 인원뿐이었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는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고개를 팍 수그렸다. 이곳 무주에 있는 국가 기관 ‘EGI’ 소속 가이드를 수차례 납치해 해부했다. 하지만 어느 가이드도 가이드를 물질화하겠다는 ‘도시’의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에스퍼는 회복과 각성을 위해 가이드와 몸을 섞어야 했다. 마음에도 없는 상대와 키스하고, 회복을 위해 섹스를 해야 했다. ‘도시’는 이 모든 불필요한 행위가 가이드의 능력을 물질화한다면 근절될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꼬고 있던 다리를 소리 없이 내려놓은 남자는 등지고 있던 의자를 돌려 제 모습을 드러냈다.

“무주는 버립니다. 서울로 올라가죠.”

“네, 알겠습니다!”

남자의 목소리엔 힘이 있었다. 빨간 입술이 빙긋 웃자 사내는 몸을 반으로 접힐 듯 고개를 숙이고서 곧바로 넓은 방을 나섰다.

“도훈 닥터 생각은 어때요. 서울 센터는 도시 치안뿐만 아니라 중대한 국가 문제도 담당하고 있으니, 우리 기대를 충족시켜줄 가이드 정돈 있을 것 같은데.”

“모든 일엔 확률이 존재합니다. 섣불리 확신할 순 없지만,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끝마친 도훈은 남자의 발에 짓이겨진 서류들을 내려다보았다. 그간 실험에 실패했던 가이들의 정보가 담긴 종이들이었다. 무주 센터 B급 가이드, 용인 센터 A급 가이드, 화천 센터 B급 가이드….

차가운 수술대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에이포용지에 담겨있는 얼굴보다 훨씬 초췌하고 끔찍한 모습이었다. 마지막 그들의 얼굴에 천을 씌운 건 도훈이었으니 그 얼굴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 확률을 백 퍼센트로 만드는 게 도훈 닥터 몫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남자가 도훈을 보며 친절하게 웃어 보였다. 악의라곤 전혀 없을 법한 선한 얼굴의 남자는 가이드를 물질화하기 위해 조직 ‘도시’를 세운 장본인이었다. 소리를 지배하는 S급 에스퍼, 천음. 그의 말을 거역하면 귀가, 아니 온몸이 터져나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믿어요. 당신의 실력을.”

천음은 도훈의 손을 쥐고 손등에 입을 맞췄다. 도훈은 그 입맞춤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충성을 약속하는 뜻으로 입술 자국이 난 손등에 제 입술을 문질렀다.

*

의진의 손가락이 하얗게 질린 채 풀어졌다. 구겨진 이불 위로 진득한 정사의 흔적이 가득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위로 승오의 입술이 덮였다.

“읍… 읏, 흐응…!”

의진이 신음 섞인 숨을 내쉴 때마다 특유의 기운이 승오에게로 스며들었다. 본능적으로 더 짙은 가이딩 파장을 갈구하게 된 승오는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찬 성기를 세게 내리눌렀다. 한입에 머금을 수도 없이 굵다란 승오의 성기가 제 몸을 꿰뚫자 의진이 허리를 꺾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으응… 흣!!”

“약한 소리 내지 마. 제일 흥분하는 곳이잖아.”

승오가 한 곳만 고집스럽게 박아대는 탓에 선액으로 축축해진 접합부에서 찌걱찌걱 야살스러운 소리가 났다. 살이 맞닿을 때마다, 안쪽을 묵직하게 찔러오는 관통감에 자르르 의진의 몸이 떨렸다. 바르르 떨리는 몸을 통해 의진으로부터 파도처럼 가이딩 파장이 전신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오, 늘…읏! 너, 무… 하앙! 세, 으으읏…!”

더는 무리라는 식으로 고개를 젓는 의진의 구멍은 오히려 빠듯하게 물려왔다. 승오도 마찬가지였다. A급 정신계 에스퍼인 승오에게 의진이 흥분했는지 제 성기를 욕망하는지는 굳이 능력을 쓰지 않아도 눈에 훤했다.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최고조의 컨디션에서 받는 가이딩. 즉, 순전히 상호 간의 합의에 따라 벌어지는 섹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당해야 할 절정의 크기도 커질 뿐이었다.

“앙, 흣! 흐응…! 읏, 으, 항! 이, 제…! 하앙…!! 하… 싸아, 싸, 아읏!!”

“지의진. 똑바로 말해.”

천치처럼 어눌한 말투로 싸달라 애원하는 의진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승오는 추삽질에 박차를 가했다. 눅진한 마찰음이 들려올 때면 제 몸도 섹스를 시작할 때처럼 예민해지는 것 같았고, 몇 시간 째 의진의 구멍을 희롱해도 부풀린 성기는 가라앉질 않았다.

이미 수차례 절정을 맞이한 의진의 입장에서도 지칠 법도 했지만 민감한 곳을 훑어내면 다시금 승오의 성기에 올라타길 반복했다.

“흐으… 싸줘, 싸…줘…. 아! 안에, 네가… 하앙! 넣어줄 수 있는 만큼…!”

의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승오가 의진의 둔부를 쥐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제가 들쑤시는 구멍이 잘 보이도록 벌리자 말갛게 선홍색을 띠는 빠듯했던 구멍이 면적을 넓혀 제 성기를 완전히 품을 기세였다. 이미 어지럽게 체액을 쏟아낸 터라 그 모양새가 더 음란했다. 승오가 천천히 허리짓을 물렸다.

“하…, 왜… 빼는 거… 응긋…!!”

그리고는 단박에 기둥을 박아 넣었다. 폭죽처럼 터지는 신음이 멈추질 않았다. 이미 이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해리된 의진은 제 안을 함부로 찔러대는 승오에게 완전히 몸을 맡겼다.

그럴수록 승오의 추삽질은 점점 거세지기만 했다. 100%에 육박하는 가이딩 효율 때문인지, 의진과의 속궁합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앙! 흐으읏…! 하, 항, 앗…! 아응!!”

“크읏…!”

퍼런 핏줄이 돋아난 커다란 손등이 의진의 엉덩이 부근을 세게 붙잡았다. 깊게 처박아도 무를 수 없도록 속박한 셈이었다. 승오는 좆대를 뻐근하게 조여오는 내벽을 콱콱 내리박으며 교성을 내뱉는 의진을 바라봤다. 엉덩이 살이 짓무를 정도로 추삽질이 이어지자 의진의 빳빳한 성기가 울컥, 액을 분출했다.

의진은 사정감이 다가올수록 폭발적으로 가이딩을 흩뿌렸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짙게 스며든 가이딩에 승오의 흥분감은 도리어 범람하듯 넘쳐흘렀다. 무수한 관계로 그의 메커니즘을 파악한 승오가 허리짓을 멈추지 않고 속도를 높였다.

끝까지 맞닿은 귀두가 뭉그러지는 기분이 들면서 승오는 호흡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쾌락으로 부푼 전립선을 계속 건드니 깔려있던 몸이 바르르 떨었다.

“아, 으아…! 읏, 흐으, 아아… 응….”

절정은 늘 이런 식이었다. 시트에 비벼진 성기 끝이 축축해진 것도 모르고 덩어리진 호흡을 내뱉기 바빴다.

안을 몽땅 들쑤셨던 주승오에게 온몸의 피가 다 흡수된 기분이라 몽롱했다.

의진이 뒤집힌 몸을 바로 할 체력도 없어 간신히 학학대고 있으면 섹스 흔적을 갈무리한 승오가 손수 일으켜 입에 물병 입구를 갖다 댔다. 앞니로 족족 씹어 붉어진 입술이 갈증을 느끼고 빠끔히 벌어졌다. 벌어진 입안으로 미지근한 물이 꿀렁꿀렁 들어갔다.

“이제 살겠네.”

입가에 흐른 물기를 손등으로 닦아낸 의진이 공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까진 뭐 죽어있었고?”

승오의 말에 의진의 눈빛이 새초롬해졌다. 그 앙칼진 눈빛에도 승오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콘돔들을 정리했다. 커다란 손바닥 위로 묵직한 비닐 껍질이 여러 겹 쌓여갔다.

“한 번도 박혀본 적 없는 놈이 뭘 알아?”

“그럼 네가 박아볼래? 이것도 보통 힘든 게 아닌데.”

“…그럴까? 내가 한번 해볼까?”

“근데, 그걸로 날 만족시켜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콘돔을 손에 든 승오의 시선이 주르륵 미끄러지며 의진의 모아진 다리 사이로 옮겨졌다. 의진은 순간 화끈대는 귀를 문질렀다.

“이게! 너 크고 잘한다고 유세 떠는 거지!”

“고마워. 최고의 칭찬이네.”

승오가 쓰레기통으로 기울었던 손을 털어내며 말했다.

“어유, 얄미워.”

투덜대는 목소리에 악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승오는 어깨만 으쓱일 뿐 별다른 답변을 주지 않았다. 의진도 싸움을 조장하고자 한 말은 아니어서 자신의 옷가지를 주워 각 잡아 개는 그를 보며 뻐근한 허리를 두어 번 두드릴 뿐이었다.

에스퍼와 가이드로 이루어진 국가 기관 EGI. EGI는 에스퍼와 가이드의 등급을 부여하고, 상성이 맞는 두 사람을 파트너로 지정해 같은 숙소에 배정했다. 그렇게 국가의 부름을 받고 EGI에 선별된 에스퍼와 가이드들은 각 지방의 센터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에스퍼들이 치안 유지 같은 자잘한 업무나 국가의 위협이 되는 강력 범죄를 해결하면 가이드들은 가이딩을 통해 에스퍼들의 회복을 촉진하거나 능력 발현을 통해 어지럽혀진 에너지 파장을 안정적으로 되돌려놓았다.

가이딩이란 별 것 없었다. 가벼운 신체 접촉부터 농밀한 성행위까지. 파장이 맞는 에스퍼와 가이드가 신체를 맞닿으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서로의 욕망을 탐할 때 가장 가이딩 효율이 높았다.

센터에서 지정한 가이드와 에스퍼는 대체로 상성이 잘 맞는 편이었다. 다만, 의진과 승오의 경우 다른 파트너들보다 기가 막힐 정도의 가이딩 효율을 보여줬다.

“씻고 한 번 더 할래?”

“…너 진짜….”

센터에서 한 가지 간과한 점은 의진의 성욕이 넘치는 편이라는 거였다. 호기심도 많고 도전정신도 투철했다. 센터에서는 전투를 제외한 상황에서 관계 가이딩은 주에 한두 번으로 권장했는데, 승오와 의진은 그렇지 않았다. 매일 침대 시트를 적셨고 콘돔을 뜯었다.

물론 센터에서도 둘의 관계를 진작 알고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 가이딩…. 아니, 성생활에 따로 제재를 두지 않은 건 승오가 S급으로 각성할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가이딩 뿐만 아니라, 에스퍼의 성장 가능성도 전적으로 가이드에게 달려 있었으니까.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능력의 성장은 계속됐지만, 한 고점을 기준으로 상향선은 곧 평행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냥 쉬자. 너 그러다 뼈 삭아.”

“좀 아쉬운데….”

“신음을 그렇게 질러댔으면서… 아쉽다고…?”

표정을 애써 갈무리한 승오는 TV 전원을 켰다. 긴급 속보라는 자막의 뉴스 화면이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리모컨을 쥐고 있던 승오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속보입니다. 무주에서 또다시 가이드 납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인 가이드는 국가 기관 ‘EGI’ 소속으로 밝혀졌습니다. 시신으로 발견된 피해자로부터 증거로 보이는 명함 하나가 발견… 정부는 국가 신념에 범하는 모든 세력을 소탕하기로…

기계적으로 프롬프터를 읽는 아나운서의 눈을 오래도록 쳐다본 승오는 고개를 저었다. 엄지로 리모컨 상단의 빨간 버튼을 누르자 텔레비전은 빠르게 암전됐다.

“도시, 짓이겠지?”

“뻔하지.”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 승오가 대답을 툭 내뱉었다.

‘도시’는 정부에 반(反)하는 조직이었다. 대개 비상한 일반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몇몇 브로커들의 입김으로 국가 소속 에스퍼를 빼돌려 조직원으로 육성시킨 뒤 힘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대외적인 보도자료였다. ‘도시’는 무슨 영문인지 가이드를 지속적으로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한 뒤 ‘발견’되게끔 시신을 놓아두었다.

“…….”

끔찍한 뉴스에 승오는 의진의 손을 꾹 잡아 왔다. 따뜻하게 전해지는 온기에 의진은 승오를 바라봤다.

“네 능력을 쓰면 관련자들 찾아내는 건 쉬울 텐데 왜 정신 교란 같은 능력만 쓰는 거야?”

“……다른 사람 생각은 읽고 싶지 않아서.”

“왜?”

의진의 말에 승오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의진이 제 앞에서 했던 말의 민낯을 보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냥 가이드와 에스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해. 애초에 우리끼리는 이뤄질 수가 없다니까? 그냥 일과 관련된 사이야. 몸만 즐기면 된다고! 아무 생각 말고 즐겨!”

가이드와 에스퍼는 이뤄질 수가 없는. 그냥 일과 관련된 사이. 그 숨 막히는 테두리 안에 의진과 승오가 갇히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런 거까지 너한테 말해야 하냐?”

자리에서 일어난 승오가 의진으로부터 몸을 돌렸다.

삐뚜룸한 표정을 짓던 의진이 승오를 붙잡았다. 한 손에 들어오는 얼굴을 휙 돌리고 눈을 마주 보게 했다. 연한 갈색을 띠는 눈동자가 눈을 감을 때마다 얇은 눈꺼풀 뒤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기껏 이 한 몸 바쳐서 체력 충전시켜놨더니 말하는 본새 봐라.”

“내가 뭘.”

“넌 그게 문제야. 얼굴은 잘생겼는데 말은 못생겼어.”

의진은 승오의 볼을 주물럭거리며 한탄했다. 에스퍼와 가이드는 섹스뿐만 아니라 이런 간단한 신체 접촉에도 에너지가 생성됐다. 시원한 손끝을 타고 기분 좋은 파장이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다. 승오는 물끄러미 의진을 내려다보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머리를 털었다.

“내 멋대로 사람 머릿속 들여다보는 거, 별로야.”

소파에서 일어난 승오는 뒷머리를 헤집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졸지에 혼자 남겨진 의진은 점점 멀어지는 승오 등만 끔뻑끔뻑 바라보다 입을 다물었다.

센터에서는 알지 못했지만, 승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각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승오 또 사춘기가 왔나 보네.”

지의진 때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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