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1 에필로그 =========================
아침에 일어난 민혁은 도윤을 깨웠다. 어젯밤의 정사가 힘이 든 모양인지 아직 자고 있었다. 민혁은 도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 식탁으로 향했다. 가정부가 차려놓은 밥상이 있었다. 민혁은 제 몫의 밥을 빨리 먹은 뒤 밥상을 들고 조용히 침실로 향했다. 넓은 침대의 구석에 도윤이 흰 이불 속에 폭 파묻혀 자고 있었다.
“일어나, 도윤아.”
민혁은 도윤의 온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느닷없는 뽀뽀 세례에 도윤이 슬금슬금 눈을 떴다. 도윤이 멍하게 민혁을 쳐다보면서 잘 잤어? 하고 아침인사를 하자 민혁이 웃으며 도윤의 입에 입맞춤을 가볍게 했다.
“밥 먹고 출근하자.”
“으응...”
도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혁은 도윤을 번쩍 들어 앉혔다. 그리고는 밥상을 침대 위에 잘 세워두고 숟가락을 가리킨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다가 민혁에게 물었다.
“네 밥은...?”
“차리면서 내 건 먹었어.”
“다음엔 나도 깨워서 같이 먹어.”
“응, 알겠어.”
민혁이 도윤을 사랑스럽게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느릿느릿 밥을 먹고 샤워실로 향하자 민혁이 슬그머니 따라 들어왔다. 샤워를 같이할 속셈이었다.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샤워를 같이하다 오전에 도로 침대로 돌아가 신음을 질러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절대 안 할게! 라고 선언하고 나서야 같이 샤워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법이다.
“앙...! 아! 아아, 흐, 흐으, 아아아...!”
“도윤아, 큿, 흐으...”
결국에는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다 눈이 맞아버린 것은 불타오르는 연인이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샤워실 벽을 두 손으로 잡은 도윤을 뒤에서 민혁이 쳐올리듯 허리를 움직인다. 도윤의 내벽이 민혁의 것을 꽉 조여온다. 민혁의 길게 그르렁거리듯이 신음하며 도윤의 안에 파정했다. 도윤은 뒤늦게 몰려오는 쾌락의 파도에 몸을 부르르 떨며 신음을 더욱 높였다. 잠시 뒤 조금 정신이 든 도윤은 마구 민혁의 몸 이곳저곳을 때렸다.
“오늘도 지각이야, 지각!”
“괜찮아. 내가 대표라서.”
“그렇게 철저하던 대표는 어디가고...”
도윤이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이어 자신의 내벽을 긁어 정액을 빼내는 손길에 다시 신음을 흘렸다. 민혁은 도윤이 잔소리를 할 때마다 다정하게 웃으며 도윤이 느끼는 곳만 골라 누르며 정액을 빼냈다. 도윤이 이를 꽉 깨물고 민혁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지민혁 대표님, 빨리 가야 합니다.”
“네, 수행비서님. 말씀 받들겠습니다.”
민혁은 도윤이 조금 더 하면 정말로 잔소리 폭탄이 날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민혁은 안쪽에 정액을 서둘러 긁어 빼내고는 같이 샤워를 마무리했다.
샤워를 마무리한 뒤 도윤은 민혁의 옷을 골라주었다. 늘 정장만 입는 민혁이었지만 요즘은 캐주얼 정장도 입는 편이었다. 민혁은 패션의 시작이라는 몸과 패션의 완성이라는 얼굴을 모두 갖추고 있엇 무엇을 입어도 격식이 있어 보였다. 도윤은 오늘의 일정을 보았다. 오늘은 J그룹 계열사의 이사 두 명을 만나는 약속이 있었다. 이럴 때는 정장이었다. 도윤은 자줏빛이 살짝 도는 검은색 정장과 베스트, 그리고 오크빛 넥타이와 적당한 시계를 골라주었다. 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입고는 검은 코트를 위에 걸쳤다. 완벽한 모습에 도윤은 아침의 정사로 지친 데도 저절로 웃음이 났다. 옷 입힐 맛이 나는 연인이다.
기사가 아닌, 민혁이 직접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출근했다. 옆에서 도윤은 열심히 민혁에게 오늘의 일정을 브리핑했다. 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다 하나 덧붙여 말한다.
“오늘 9시에 일정 없습니까, 비서님?”
“네, 일정 없습니다, 대표님.”
“그럼 약속 하나 잡겠습니다. 거긴 비워두세요.”
“네, 알겠습니다.”
직장이 가까워져 오자 두 사람은 존댓말을 썼다. 민혁도 도윤도 서로를 보고 씩 웃었다. 직장에서 민혁은 도현을 도윤이라고 부르지 않게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도윤도 민혁을 편하게 말하지 않기 위해서 신경 써야 했고.
직장에 도착하자 민혁의 일과가 시작된다. 도윤이 옆에서 완벽하게 보조해주고 있고, 지켜보고 있었다. 민혁은 실수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누구나 잘 보이고 싶은 것이 연인의 마음이다. 그리고 도윤이 준 능력 때문에라도 실수할 수 없었다. 민혁은 오늘도 성공적으로 미팅을 끝마쳤다.
“퇴근하겠습니다, 도현씨, 수고해요.”
“형, 나 먼저 간다.”
“응, 도운아. 수고해. 주말에 집에 들를게.”
“어, 엄마가 안부 전하래.”
팀원들과 인사하고 민혁과 도윤이 나간다. 9시에 있을 약속은 P 영화관 앞이었다. 도윤과 민혁은 P 영화관 안에 들어갔다. 민혁이 자연스럽게 S관으로 향하자 도윤이 의아함을 표했다.
“대표님.”
“네, 수행비서님.”
“지금 약속상대도 안 오셨는데...”
“비서님 계시잖아요.”
“네?”
“제 약속 상대가 달리 누가 있겠습니다. 적적한데요.”
“네...?”
“영화라도 한 편 보죠.”
민혁의 말을 드디어 이해한 도윤의 귀 끝이 확하고 달아올랐다. 저도 모르게 민혁이 슬쩍 영화관을 빌려 놓은 모양이었다. 최근에 VOD서비스로 이것저것 돌려보면서 이걸 볼까, 저걸 볼까, 아 최근에 개봉한 영화가 뭐가 있지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가끔 영화관을 통째로 빌리곤 하는 것이다. 그것도 편한 의자가 있는 프리미엄 관을 빌려다가 이렇게. 도윤은 민혁의 양복 끝을 잡았다. 민혁이 뭐냐는 듯 도윤을 바라보았다.
“팝콘이랑 나쵸랑 콜라 사 주세요, 대표님.”
“알겠습니다, 비서님.”
캐러멜 팝콘과 나쵸, 콜라까지 야무지게 산 도윤과 민혁이 극장에 입장했다. 곧이어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한다. 언젠가 도윤이 보고 싶어하던 로맨스 영화였다. 도윤이 지나가는 말로 했던 것을 이렇게 놓치지 않고 민혁이 틀어놓으면 도윤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마음 한 구석이 간질간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영화관에 들어오자마자 도윤은 민혁의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팝콘에 나쵸, 콜라까지 든 민혁이 허리를 굽혀 화답의 키스를 한다.
설레는 마음 탓일까. 영화는 더욱 사랑스럽고 설레게 느껴졌다. 늘 그러하듯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과 겹쳐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영화가 끝나자 도윤이 일어서는데 민혁이 잡아당긴다.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던 도윤에게 민혁이 아직 영화가 끝나지 않았다 말해주었다. 이윽고 영화가 다시 상영되기 시작했다. 유명한 옛 로맨스 영화들의 가장 아름다운 시퀀스만 모아놓은 장면이 흘러가기 지나갔다.
도윤이 고개를 돌리자 민혁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도윤은 저도 모르게 들고 있던 서류와 메모 보드에서 손을 놓았다. 후드득 떨어지는 종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혁은 무릎을 꿇고 뒷주머니에서 붉은 사각 케이스를 꺼냈다.
케이스가 열리고 오벌 컷 10캐럿의 블루 다이아몬드와 그걸 둘러싸고 있는 작은 화이트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운 반지가 드러났다. 민혁은 이 다이아몬드 원석을 구하기 위해 치렀던 입찰 경쟁을 생각하며 도윤의 얼굴을 보았다. 도윤은 입을 가리고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뚝뚝 흐르는 눈물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민도윤, 나 지민혁과 평생을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도윤은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민혁의 위로 무너져내리듯 껴안았다. 도윤은 같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며 민혁과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여섯 번을 돌아, 서로를 알지 못한 채로 일곱 번째 상처를 주고, 다시 여덟 번을 만났을 때야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었다. 떠돌던 마음이 제 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안개가 걷히고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는 기분이었다. 여덟 번째의,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시작이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