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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8 3부 : 사랑의 증명법 (68/82)

00068 3부 : 사랑의 증명법 =========================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자신을 버리고 훌쩍 프랑스로 떠났다는 민혁을. 도윤은 자신의 문을 두드리고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그것을 통보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것 같았다. 지금 잘못 오신 것 같다고 문을 닫고 문 앞에 주저앉았다. 말을 전했다며 떠난 그 사람을 보며 도윤은 핸드폰을 열어 민혁에게 수차례 전화를 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바로 울리는 핸드폰을 보며, 민혁이 자신의 전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자며 메시지며 메일까지 보내 보았지만, 여전히 답장은 없었다. 도윤은 이 모든 것을 덤덤하게 에드워드에게 털어놓았다.

“그 뒤에는 화가 났어요.”

“얼마나요?”

“모르겠어요. 그냥 아무에게나 화를 냈던 것 같아요.”

평범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었다. 괜찮냐고 조심스레 안부를 묻는 동생에게 화를 내고, 바로 붙잡고 미안하다며 사과하곤 했다. 주위에 말하기도 어려운 연애였다.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저 애인과 헤어졌다고 말하며 친구와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언제나 허공에 대고 화를 내거나 화장실에서 샤워기를 틀어놓고 자신에게 이별할 준비도 하지 않고 떠난 민혁을 저주했다.

“허공에 말이 맴돌았어요. 대답이 없었어요.”

“이브가 죽었을 때...”

에드워드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이브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도 그랬어요. 런던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만큼 게이에 대해서도 다른 도시보다 관대해요. 멀쩡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괴로웠어요.”

에드워드는 한 호흡씩 쉬어가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이제 이것이 도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자신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장이었다.

“그 다음은 제가 뭘 한 줄 알아요?”

“도윤은 뭘 했는데요.”

“신에게 기도를 했어요. 모든 것에 대해 빌었어요.”

“뭐라고요.”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한 번만, 다시 민혁이와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루만 다시 민혁이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세요. 한 번만 민혁이와 헤어지기 전날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한 번만 민혁이 손을 잡게 해주세요. 보게 해 주세요. 먼발치에서라도 좋으니까요. 한 번만으로 시작되는 소원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거기에 대가로 거는 것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테니 민혁이와 사랑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 목숨을 걸었다. 제가 죽더라도 좋으니 한 번만 그 애와 이야기 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허무하게 마무리될 사이가 아니에요.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어요. 제가 회귀했어요.”

“기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힘들지 않았나요, 우리.”

“알잖아요, 에드도. 우리 모두가 기적이라고 생각했잖아요.”

도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서럽게 우는 눈물 방울이 마룻바닥으로 떨어져 부서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속에서 계속 갇혀 같은 사랑을 반복하는 것을 기적이라고 불러야 할지, 저주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한 것은 에드워드도 도윤도 마찬가지였다.

에드워드는 손을 뻗어 도윤의 손을 꾹 잡았다. 그저 위로밖에 건넬 수 없는 상황이다. 서로가 같은 것을 겪었기에 말은 크게 필요치 않았다. 도윤도 에드워드도 사랑을 끝내지 못했다.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지친 영혼을 달랠 시간도 없이, 회귀라는 희망 속에서 살아가야 했으니까. 그들은 마주보고 거울처럼 울었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드는 도윤의 손을 꽉 잡은 채로 말을 이었다.

“도윤.”

“사실 나는 이미 이브를 찾았어요.”

“겁이 나죠, 그렇죠.”

“네, 다시 이브가 죽을까 봐 겁이 나요.”

“저도 민혁이 저와 다시 헤어질까 봐 겁이 나요. 민혁이 내게 화를 낼 까봐 무서워요.”

“이렇게 해요. 나는 이브에게 갈게요. 당신은 민혁과 이야기를 한 번 해봐요.”

“그러다가 또 안 되면요?”

또 헤어지면요? 이번에 헤어지면 정말 헤어지는 거란 거 알잖아요. 관리자로 일했기 때문에 바뀐 인과율로도 못 막을 이별이란 뜻이에요. 그럼 정말 이별이에요. 그게 나는 정말 무서워요, 에드워드. 도윤이 정신없이 두려움에 떨면서 말했다. 이미 도윤은 한율이 심어준 공포로 제정신이 아닌 채 겁에 잔뜩 질려있었다.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런 공포심을 에드는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마음이 깨질 듯이 아프겠죠.”

“...”

“깨진다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그래서 이런 이야기 하는 게 미안해요, 하지만 도윤은...”

“...”

“도윤은 그래도 죽은 연인 뒤에 남겨질 사람이 되지 않으니까, 한 번 날 봐서라도 그 민혁과 이야기 해 보면 안 될까요?”

“겁이 나요.”

“뭐가요.”

“다시 돌아와서 좀 달라질 걸 알았어요.”

“달라졌나요?”

“또 사랑한 것 똑같아요. 그래서 무서웠어요. 또 똑같은 절차를 밟을까봐.”

“똑같은 절차란 건 무슨 뜻이죠?”

“죽음이요. 죽음에 대한 기억이 너무 강렬하고, 실패만 했던 나쁜 기억만 떠올렸어요.”

“그래서.”

“그래서 도망쳤어요.”

“민혁이 힘들었겠네요. 도윤도 그렇구요.”

“....아.”

에드워드가 차분하게 말해주었다. 도윤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에드는 도윤이 자신과 닮아 마음이 쓰였다. 도윤은 에드워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는 도윤이 겁이 나도 민혁과 이야기라도 해 보기를 바랐다. 자신의 연인은 죽어서 할 수 없었던 것을, 도윤은 해서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도윤은 에드워드의 그 마음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도 에드워드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랐다.

민혁은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어두운 밤이었다. 새벽 2시의 밤이었으나 민혁이 도착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런던 저택의 고용인들이 민혁을 픽업하러 나왔다. 민혁은 벤틀리에 몸을 싣고서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날이 밝으면 일단 집주인에게 전화를 할 셈이었다.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에드워드 필립 러셀에게 대해 조사해보라고 했다. 결과는 도착하자마자 받을 수 있었다. 에드워드 필립 러셀은 여러 장관과 의원을 배출한 러셀 가의 가문 아들이었다. 첫째와 둘째는 이미 정계에 나서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었고, 셋째인 에드워드는 정계에 아직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 특유의 잘생긴 외모와 사람 좋은 인상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부터 이미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민혁은 고민에 빠졌다. 이런 사람은 건드리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도윤을 보여주지 않으면 어떻게 강압적으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민혁은 한율을 떠올렸다. 한율은 ‘도윤 앞까지는 데려다 주겠다.’라고 했다. 거기까지는 한율을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한율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민혁이 직접 손을 쓸 차례였다. 지금은 오로지 도윤에게만 신경 쓸 타이밍이었다.

“내일 오전 11시 30분까지 이 주소로 데려다 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헤롯 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거야.”

“네, 차량과 퍼스널 쇼퍼, 헬퍼 모두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물어볼 게 있어.”

“네, 말씀하십시오.”

“퍼스널 쇼퍼는 남자로 준비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민혁의 런던 집사는 하마터면 대답을 놓칠 뻔 했으나, 뇌와 입에 힘을 잔뜩 주고 가까스로 잘 대답해내었다. 눈치 빠른 집사는 민혁의 새로운 애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원래 같았으면 회장님께 연락을 드렸겠지만, 최근 J그룹의 행보가 심상찮았다. 모든 것을 민혁이 잡아갈 타이밍에 자신이 끼어들었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었다. 고래들 싸움에  등 터지고 배 터지는 새우가 될 판이었다.

“민혁님.”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네, 회장님께는 알리지 않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을 했네, 당신.”

잘했어. 그 말 안 하면 파묻어버리려고 했거든. 민혁의 덤덤한 말투에 집사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민혁의 냉정한 눈동자가 집사의 얼굴에 박혔다. 집사는 그 눈빛을 마주하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민혁은 자신이 꿈속의 자신과는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밀려 프랑스로 강제로 끌려가 연인의 주검도 보지 못하고 통곡해야 했던 자신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었다.

“꿈이라서 다행이군.”

민혁은 혼잣말을 읊조리며 바깥을 보았다. 꿈이라서 다행이었다. 정말. 그리고 이미 지나간 일이라서 다행이었다. 민혁은 도윤이 이상한 세계에서 자신에게 해 주었던 다양한 교육들이 실제로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데에 감사했다.

자신의 모든 것은 도윤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민혁은 그것이 도윤을 지키기 위해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윤이 자신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어쩌면 도윤도 자신을 포기하지 못하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 아닐까. 민혁은 자신의 모든 것을 도윤을 위해 바치리라 마음먹었다.

민혁은 집에 도착해서 자신의 침실에서 도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저 꺼진 불빛 속 어딘가, 도윤이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보았을 때 경멸하거나 울고, 소리 지르고 싫어해도 좋았다. 그저 민혁은 도윤을 다시 한 번만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제는 네가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게 하지 않을 거야. 이제 아버지는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을 거야. 누구도 너를 겁내게 할 수 없어.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나는 너를 놓을 수 없어.

무엇보다 도윤아, 이젠 걱정 마.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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