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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0 3부 : 사랑의 증명법 (60/82)

00060 3부 : 사랑의 증명법 =========================

가만히 있던 J사의 둘째가 갑자기 경영권 싸움에 움직임을 보인 것은 호사가들의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실상은 지민혁이 큰형이 민도윤을 건드린 것으로 의심하고 달려든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지민혁이 자신의 그룹인 T그룹을 크게 키워나가는 것을 보면서 아마 경영권 싸움이 없을거라 예측했건만 일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지민혁이라는 거대한 맹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J그룹의 일은 한 달도 되지 않아 신문에 실리는 형태로 드러났다. 소위 대기업이라 불리는 기업의 일이었기에, 한국에서 J그룹의 경영권 싸움은 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민홍 씨께서 전화 오셨습니다.”

“바꿔.”

회장실로 연결된 전화가 울리자 민혁은 전화를 받았다. 조금 전 도윤이 마지막 문자를 인천 바닷가에서 확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큰형은 한 달에 한 번 송도에 있는 모임에서 골프를 치러 나가곤 했다. 그리고 도윤이 없어진 날, 큰형이 인천으로 간 것이 확인되었다. 민혁의 의심은 이제 큰형에게 오롯이 꽂혀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왜 이러냐고 협박하듯 애원하는 큰형에게 전혀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민혁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 마디를 덧붙일 뿐이었다.

“형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저 참 조용히 잘살고 있었다는 거.”

“그렇지, 민혁아. 그런데 왜 갑자기...”

“먼저 건드린 쪽은 형님이었다는 걸 기억해 두세요.”

“그게 무슨 소리니, 주주 쪽에서 작당한 적도 없어.”

“가까운 시일 내에 주주총회에서 뵙죠. 빈털터리로 쫓겨나실지, 아니면 뭐라도 받아갈지는 형님 태도에 달렸습니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갑자기 변한 거냐고 묻잖아!”

“제 사람을 건드렸으니까요. 더 시치미 떼지 마시고 곱게 제 사람 돌려보내시면 저도 그만하겠습니다.”

“너 임마, 아버지가 보시면...”

“회장님께서는 아무 말도 없으시더군요.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민혁은 그렇게 말하고 일방적으로 수화기를 내렸다. 전화 너머의 큰형은 억울하다는 듯 무언가를 더 소리쳤지만, 이미 반쯤 돌아버린 민혁에게 큰형이 지르는 소리 따위는 모기보다 더 하찮은 것이었다. 아버지도 아들들이 본격적으로 부딪히기 시작하자 한발 물러섰다.

아들 셋을 모두 다 끔찍하게 여기는 아버지라지만, 그는 아버지이기 이전에 J그룹의 회장님이었다. 대기업을 만든 사업가의 눈빛이란 엄청나게 냉철한지라, 그는 아들들이 피 터지게 싸울 때 한발 물러서 강한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려고 할 것이다. 민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무능한 형과 철없는 셋째와의 싸움에서 아버지는 이미 자신을 낙점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민혁은 급하게 잡힌 다음 약속 상대를 보았다. 자신이 대주주를 하나하나 포섭해 나가자, 급히 연락이 잡힌 주주들도 있었다. 이 주주는 봐서 나쁠 것이 없지. 게다가 형님에게 아부하던 자라, 믿을 수는 없어도 자신의 편이 된 것을 보면 형님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었다.

“대표님, 김 팀장님입니다.”

“들어오라고 해요.”

전화를 끊자마자 도윤을 찾는 김 팀장이 방문했다. 민혁은 기꺼이 일어섰다. 자신이 아무리 주주를 만나고 큰형의 숨통을 조이기에 바쁘다고는 해도 결국 다 도윤을 위한 것이었다. 큰 형님이 목숨줄이 간당간당하니 드디어 도윤에 대한 자료가 터지나 보군. 민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김 팀장을 맞이했다. 그러나 김 팀장이 준 정보는 의외의 것이었다.

“한율이가?”

“네, 셋째 도련님이시죠? 그분도요.”

“정말 그 날 한율이도 인천에 있었다고?”

“잠시뿐이지만 주변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차량 gps 뜯어와. 내가 한율이를 만나서 시간은 벌어주지.”

민혁은 태연한 얼굴로 김 팀장에게 말했다. 김 팀장도 여느 평범한 의뢰 같았다면 차량 gps를 뜯어오라는 주문에서 한 발 물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조카가 걸린 일이었다. 여기서 겁을 내면 누나와 조카들에게 볼 면목이 없었다. 김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뜯어오거나 정보를 복사해 오거나.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왜 그러지.”

“환강이는...언제 돌아오는 겁니까?”

“그쪽은 내가 따로 일을 시켰으니까. 거기에 대해 더 묻지는 않아 줬으면 좋겠군.”

사적이고 비밀인 일이라는 거지 전혀 위험하진 않아. 민혁이 덧붙이자 김 팀장은 안심과 불신이 뒤섞인 표정으로 물러났다. 민혁은 그런 김 팀장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다. 아마 당분간 조카 일 때문에 정신이 없을 터였다. 환강의 일이 마음에 걸리더라도 조카가 걱정되어서 환강은 신경 쓰지도 못할 테니까.

“그나저나 지한율이 왜 인천에 갔지?”

방송 촬영이 인천에서 있었나. 아니면 인천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었나. 민혁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셋째가 여러 친한 연예인이 있었던 것은 기억한다. 그중에 혹시 인천에 사는 사람이 있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해보지만 쉽게 답은 나오지 않았다. 환강이 인질로 잡혀있으니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을 터였는데, 찝찝하게 짝이 없었다. 민혁은 이 감각을 이제 무시하지 않았다. 민혁은 비서실장에게 연락했다.

“지한율 친한 연예인 명단이랑 지금 보내주는 날짜 스케줄 좀 연락해서 보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신의 감을 이번에는 무시하지 않은 민혁이 소파 위에 늘어져 눈 위에 손을 얹었다. 따뜻한 기운이 눈 위에 얹히자 조금 감각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조그만 편안함에 민혁은 다시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조금만 편안해도,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민혁은 자세를 바로 하고 다음 스케줄 전에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숨 돌릴 정도의 시간은 있었다. 민혁은 지갑을 꺼내 안쪽에서 사진 하나를 빼내었다. 도윤이 면접 때 붙인 자신의 사진이었다. 광공은 사진도 안 된다는 소리에 사진을 찍지 않은 버릇이 들었다. 지금 와서 가장 후회하는 점이었다. 도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도운이 똑같이 생겼지만 그건 도윤이 아니니까. 민혁은 사진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지갑에 넣었다. 도윤이 너무 보고 싶었다. 먼 발치에서라도 좋으니, 제발.

에드의 저택에 도착한 도윤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처음에 4층짜리 고급 빌라라길래 한 층을 다 쓰고 있나 생각했었는데, 지하까지 합쳐 6층 전부 다 쓴다고 했다. 정원을 지나 2층 전체를 쓰면 된다는 소리에 도윤은 고장 난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침실에 탈의실, 욕실과 테라스와 발코니까지 있다. 한 층이 마치 한 세대처럼 꾸며져 있었다. 마스터 침실은 바로 위층이니 심심하면 놀러 오고 필요하면 벨을 눌러 사람을 부르라는 소리에 다시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하고 싶으면 지하로 가.”

“거긴 뭐가 있는데?”

“실내 수영장이랑 체육관. 스페인 별장에서는 실외에 수영장이 있는데. 아쉽게 되었지.”

스페인에도 집이 있구나. 도윤은 여섯 번의 환생 동안 이루지 못한 내 집 마련의 꿈을 생각하며 어쩐지 서글퍼졌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지하 영화관으로 가. 그럼 틀어줄 거야.”

“그래, 이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다.”

“트리트먼트 룸은 내가 전용으로 쓰는 곳이라... 원하면 너도 써도 되고.”

“이름을 들었는데도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감이 잘 안 잡힌다.”

“내 집이 좀 좋긴 하지.”

그러니까 편해서 좋지 않아? 하고 에드가 씩 웃었다. 마치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떠오르는 그 순둥한 미소에 도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생긴 것도 귀족처럼 생기고 으리으리한 집을 가진 에드는 묘하게 미국 럭비 주장같이 구는 데가 있었다.

“그래, 좋아.”

“그렇지.”

“당신 파트너는 찾았어?”

“안타깝게도, 열심히 둘러보고 있는 중이야.”

“다행이네.”

“왜?”

“애인 있어 봐. 골치 아플걸. 내 존재를 변명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도 당신 짝을 찾으면 이야기 해 줘,”

“당신에게 굳이 보고해야 하는 건가? 재밌네.”

“아니야, 그 때는 나갈 거야.”

괜한 오해의 소재로 쓰이는 거, 진짜 싫거든. 도윤이 그렇게 말하고는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꼬일 대로 꼬인 오해 속에서 뛰쳐나온 터일까, 정말 싫었다. 정작 모든 오해를 풀지 않고 답답하게 외면하고 도망친 자신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심이니까. 가볍게 말하고 무겁게 마음에 담아놓는다. 그런 도윤에게 에드가 정색하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야, 도윤.”

“응?”

“나 집 몇 채 더 있어. 거기로 보내줄게.”

아, 맞다. 얘 부자였지. 너무나 겸손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온 터라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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