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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3 2부 : 유리구두 (33/82)

00033 2부 : 유리구두 =========================

“예?”

“마침 수행비서가 필요했습니다.”

“대, 대표님.”

“김 팀장님께서 추천해주신 인재라면 믿을 만합니다.”

“아... 저... 그러니까....”

김 팀장은 갑자기 사람 보증을 서게 된 사실에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민혁이 재빨리 눈치채고는 살짝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3년간 일하며 민혁의 미소를 처음 본 김 팀장은 조금 놀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얼어붙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어린 친구들이니 실수에 대해서 큰 문책은 하지 않겠습니다. 믿으세요.”

“예, 예. 송구합니다.”

“그저 오랜 시간 두고 사람을 키우려는 겁니다.”

“아, 그런 큰 뜻을 몰라 뵙고...”

“조금만 잘 배우는 것 같으면 이대로 정규직 절차를 밟아도 되고요.”

“정규직이요?”

민혁은 여유롭고 나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김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두 조카들을 바라보니 한 명은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한 명은 조금 부담되는지 살짝 질려있었다. 민혁은 조금 전 자신이 처음 커피를 쏟았을 때 한 명은 손수건을 꺼내 닦아주려고 했었고, 한 명은 얼굴을 붉혔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누가 손수건으로 닦아주셨습니까?”

“예, 접니다.”

“고맙습니다. 이름이?”

“정도현입니다. 제 동생은 정도운입니다.”

이름도 비슷하군, 민혁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도현은 손수건을 갖다 준 쪽이었다. 도운은 얼굴이 빨개졌었다. 민혁은 도운이 자신을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이 아닐까 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도 조금 얼굴이 발그레해져 있는 것을 보니 원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 속에서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께서 제 수행비서를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네, 영광입니다.”

“아침은 정도운 씨, 동생이시죠?”

“아, 네!”

“새벽 5시부터 1시까지는 도운씨가, 1시부터 9시는 형이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침잠이 엄청나게 많은 도운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도현은 그것을 알아차렸으나 대표님 앞이니 별말 하지 않았다.

“형 되시는 분 이름이 도현이시죠?”

“네.”

“정도현 씨가 아마 초과근무를 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야근 수당은 넉넉하게 챙겨줄 테니 너무 서운해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 계약서를 쓰겠습니다.”

“대표님, 벌써요?”

“김 팀장님, 전 일이 늦어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누구나 그렇죠.”

“그리고 둘이 너무 똑같은데, 어떤 사람이 형인지 동생인지 잘 구별이 안 되니까 이름표를 항상 달고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비서실장에게 가서 말해 놓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도현은 잘 새기며 말을 듣고 있었다. 그 모습에 김 팀장은 흐뭇해졌다. 도운이는 조금 불안한 구석이 있었지만, 도현이의 저런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면 안심이 되곤 했다. 민혁은 버튼을 눌러 비서실장을 호출했다. 비서실장은 민혁이 수행비서를 들이기로 했다는 사실에 조금의 토도 달지 않고 도현과 도운을 데려갔다. 저 문 너머로 사라지는 두 형제를 보며 김 팀장은 오늘의 보고자료를 펼쳤다. 오늘 보고할 인원은 2명이었다.

“비서실장님.”

비서실장을 따라 나온 뒤, 도현이 비서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비서실장이 무슨 일이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무언가 고깝지 않은 눈빛에 도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자신이 형이고, 도운이를 챙겨야 하니 자기가 그런 눈빛도 받고 말도 처음 하는 게 나았다.

“왜 그러십니까?”

“대표님께서 저희 둘에게 이름표를 착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군요.”

비서실장은 앉아있던 비서 하나에게 눈짓을 했다.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비서실장은 갑자기 내려온 낙하산 두 형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대표님의 지시를 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룹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지나칠 정도로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대표님이었다. 이런 적은 없었다. 이렇게 행동하시는 것은 다 뜻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헤아리지 못하는 뜻이. 비서실장은 당장 드는 못마땅함은 눌러두고 두 사람에게 지켜야 할 기본 사항을 알려주기 시작하였다.

“오늘 하루만은 도현씨가 죽 일하는 것으로 하죠. 도운씨는 내일 새벽 4시 30분에 대표님댁 앞에서 기사와 함께 대기하시면 됩니다. 대표님 도착하시면 차에서 나와 문 열어드리는 거 잊지 마세요.”

“4시 30분... 네, 알겠습니다.”

도운이 풀죽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현은 도운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도운은 아침잠이 유난히 많아 늘 일찍 일어나기를 어려워했다. 이제 방학이라며 한숨 늘어지게 자나 했는데, 결국 인턴을 하며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도현은 보이지 않게 손을 뻗어 도운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도운이 그 두드림에 살짝 웃었다. 형은 화날 때나, 격려할 때나, 이렇게 어딘가를 톡톡 가볍게 두드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작은 격려를 받고 나면, 힘이 안 날래야 날 수 없었다.

“아시다시피 저희 출근 복장은 정장이에요. 늘 정장 맞춰 입고 오시고요.”

“네, 실장님.”

“앞으로 시시콜콜한 것들을 알려주실 사수는 임지희 씨에요. 인사드려요.”

“네, 안녕하세요.”

사수는 피곤함이 눈 끝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숏컷에 빈틈없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검은색 폴라티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는 임 비서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힘든 데 들어왔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 잘할 것 같은 막내들이 들어오니까 나도 든든하네요.”

임 비서는 비서실장님과 눈인사를 한 뒤 두 형제를 넘겨받았다. 벌써 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임 비서는 한때 6개월 정도 잠깐 민혁의 수행비서를 해 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3년 전 민혁이 갑자기 수행비서는 필요 없을 거란 판단을 내려 비서 팀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3년 전에 갑자기 비서진을 소집하셔서 수행비서가 없어졌죠.”

“3년 전에요?”

“네. 그 이후로 수행비서를 다시 두기로 하신 건 다 뜻이 있어서겠죠.”

“대표님의 뜻이요?”

“네. 대표님의 판단은 정확하시거든요. 업계에서도 유명하죠. 이 회사가 성공 가도를 달리는 건 다 대표님의 적절한 판단 덕분이에요. 누구든 인정하고 있어요. 가까이에서 본 저는 더욱 감탄스러울 따름입니다.”

도현은 사수님이 상사를 찬양하는 것을 보아 지민혁 대표님이 그렇게 나쁜 상사가 아닐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자고로 윗사람을 칭찬하는 아랫사람은 보기 드문 법이다.

“물론, 야근이 좀 많긴 하지만요.”

조금 생각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여기, 수행비서 할 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에요.”

“감사합니다.”

“보안 때문에 업무용 핸드폰이 개별 지급됩니다. 본인 핸드폰은 오시면 수거해서 여기 거둬 놓아요. 퇴근할 때 가져갈 수 있을 거예요.”

야근 때문에 오후가 힘든 줄 알았는데, 이어지는 설명을 들어보자니 도운이가 맡은 오전 파트도 힘들어 보였다. 도운은 얼굴에 애써 티는 내지 않고 있었지만, 도현은 알고 있었다. 도운이 지금쯤 죽었다고 생각하며 속으로는 펑펑 울고 있을 거라는 걸. 이제 아침에 10분 더 잘 기회는 날아간 지 오래였다.

“여기 핸드폰은 업무용 메신저를 깔아 놓았으니 이것만 쓰시고요.”

도현과 도운은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자신들의 핸드폰보다 훨씬 좋은 최신 기종이었다. 도현은 업무용 핸드폰을 저도 모르게 만지작거렸다. 지금 자기가 입고 있는 정장도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친구에게서 빌린 건데. 빚을 내서라도 정장 한 벌을 빨리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도운은 새 핸드폰 하나가 더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조금은 신나보였다. 도현은 그런 도운의 긍정적인 모습이 참 좋았다.

“계약서를 쓰러 가 볼까요.”

“네.”

조금 떨렸다. 첫 월급은 얼마나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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