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9 2부 : 유리구두 =========================
J그룹의 차남이 J그룹을 나와 세운 T그룹에 관한 이야기는 유명한 편이었다. 아버지의 그룹을 물려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회사를 나와 홀로서기를 했을 때부터 사람들은 편한 길을 놓아두고 가시밭길을 굳이 걸어간단 식으로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T그룹에서 제공하는 앱이 연달아 대박을 치고 끝내 동종업계의 다른 그룹까지 인수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졌다. J그룹의 회장이 차남을 차기 그룹 계승자로 더욱 눈독 들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큰아들은 너무 방탕했고 셋째는 그룹에 관심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T그룹의 오너이자 대표이사인 지민혁을 유명하게 하는 것은 그 사실뿐만이 아니었다. 198센티미터에 달하는 큰 키와 뛰어난 피지컬, 그리고 엄청난 미남이라는 사실에 대중들은 더욱 열광했다. 엄청난 학벌과 천재적인 머리는 거기에 환상을 더해주는 요소였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으로 일컬어지며 시기와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지민혁뿐이었다.
그런 T그룹의 지민혁 밑에는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팀이 하나 있었다. 과거 흥신소에서 이름깨나 날렸다는 사람도 있었고, 외국에서 일하다 온 용병도 있었다. 미국에서 사립탐정을 하다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10명 정도로 구성된 팀이 무엇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지민혁이 매일 아침 회의 전 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재벌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한 번 퍼진 사실이었다.
다만, 그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람 찾는 데 유명한 사람끼리 모였으니 누군가를 찾는 것은 확실했다. 누군가는 그의 신붓감을 찾는 것이 아니냐고 추측했고, 누군가는 그가 배다른 형제를 찾아다 J그룹의 승계에 발들이기 전에 일찌감치 손을 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안이 엄청나게 철저한 까닭에 그 내용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큰 단점이었다. 지민혁은 J그룹의 인맥과 아버지의 힘까지 빌려다 쓰며 그 내용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누구입니까?”
“몇 사람으로 좀 추려 보았습니다.”
지민혁은 김신우 팀장이 가져온 서류를 보았다. 서류 묶음이 지민혁 앞에 놓였다. 지민혁은 흘끗 서류 더미를 손으로 뒤적거렸다. 다섯 개. 그 말인즉슨 민도윤 후보라는 사람이 다섯 명이라는 것이다. 지민혁은 김 팀장의 브리핑을 들으며 서류를 하나씩 천천히 읽어보았다.
“이 사람은 정희준입니다. K대학교 재학 중입니다.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지금 혼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주신 용모 설명 중 눈동자에 대한 설명이 조금 들어맞는 것 같아 데려와 보았습니다.”
“속눈썹에 물방울이 맺힐 정도로 긴 건 맞는군요.”
“그리고 이 사람 이름은 이민훈입니다. 어렸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되돌아왔는데, 대표님께서 주신 설명 중 목소리에 대한 부분이 조금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목소리를 녹음해 왔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틀어봐요.”
목소리가 들렸다. 지민혁은 잠시 목소리를 듣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 어떤 느낌이랄 것도 없다는 듯이. 지민혁은 이민훈의 서류를 다시 김 팀장에게 주었다. 김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옆 사람에게 주자 옆 사람은 그대로 이민훈의 서류를 파쇄기에 넣었다. 꽈득거리며 두꺼운 종이와 사진이 갈려 나가는 소리가 조용한 회의실에 퍼졌다.
이후 세 명의 사람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지민혁은 끝까지 듣고는 오늘 한 번씩 먼발치에서 한 번씩 보겠다며 다음 일주일 역시 기대한다는 말로 마무리를 맺었다. 김 팀장은 인사하고 나가자마자 조용히 욕을 읊조렸다.
삼 년 전, 찾아온 연락이었다. 엄청난 연봉을 제의받고 반신반의하며 갔더니 지민혁이 앉아있었다. 매스컴에서 다루듯 엄청난 외모와 압도적인 분위기에 반쯤 홀려버렸다. 고개를 조아리며 앉았더니 지민혁은 사람 하나를 찾는다 했다. 형사 일을 하다 쫓겨나 흥신소를 차린 김 팀장은 사람 하나는 끝내주게 잘 찾는 것으로 유명했다. 지민혁이 찾으라는 사람도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었다. 하지만 지민혁이 말하는 것을 듣고 김 팀장은 입을 꾹 다물고 이 직장을 수락할까 말까를 고민했다.
“아니 단정한 사람을 찾으라니...”
결벽증인 사람을 찾는 건가 싶었는데 오로지 지민혁이 준 정보는 느낌뿐이었다. 그러니까 필(feel)대로 찾아달라는, 미친 것 같은 주문이었다. 존재감이 뚜렷하다, 목소리가 평범한 듯하면서도 조곤조곤 말할 때 다정하다. 머리가 짙은 갈색이다. 짙은 갈색 눈인데 속눈썹이 예쁘고 눈물이 맺히면 매달린다. 키는 175cm정도다. 내 품에 딱 들어오는 아담한 남자다. 이름은 민도윤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모든 건 아닐 수도 있으니 적당히 그런 느낌을 주는 20~30대 남자 사이의 사람을 데려와라.
지극히 주관적인 그 묘사에 김 팀장은 못 찾을 확률이 높다 하면서 그날 그곳을 나왔다. 돈이 탐나도 할 수 없는 일을 책임지는 것은 이 업계에서 위험한 짓이었다. 그것이 사회면과 경제면, 그리고 연예면까지 장식하는 그룹 회장일 경우에는 더더욱 공수표를 날리면 안 되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누나에게 연락이 온 건 그다음 날이었다. 큰 매형을 잃고 혼자 두 아들을 키우는 큰 누나는 식당에서 음식을 내고 식탁을 닦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두 아들의 등록금 문제와 매형의 빚을 해결해주겠으니 김신우에게 전화 하나만 해 달라고. 누나는 울며 살려달라고 했다. 김신우는 그날로 지민혁을 다시 찾아갔다. 큰 은혜를 입었으니 갚는 수밖에 없었다. 팀원들도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다. 지민혁에게 큰 은혜를 각자의 방식대로 입은 사람. 지민혁의 어이없는 조건에도 모두 지민혁에게 나름대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김신우는 지민혁이 돈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빚을 지운 것이 무섭다고 늘 생각했다.
“씨팔, 뭘 좀 알아야 찾든 하지. 그래도.”
그래도 좆같은 일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느낌에 맞는 사람을 찾아달라니. 그래도 지민혁이 던진 말 중에 희망이 있는 점도 있었다.
“내가 보면 한눈에 알 수는 있으니, 큰 기대 하지 않는다. 후보만 추려와라.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네.”
김신우는 담배나 한 대 피우러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매일 팀원이 찾은 사람을 보고하고 나면 담배가 미치도록 당겼다.
“어. 도현이냐? 응, 동생은 잘 있고?”
김신우 팀장이 때마침 전화 온 조카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매형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 홀어머니 된 누나 밑에서 바르게 큰 조카들이었다. 어찌나 기특한지, 김 팀장은 매일 조카 자랑을 하고 다녔다. 자기 밑에서 일하고 있는 두 놈에게도 그렇게 침이 마르게 자랑을 했다. 조카 둘이 머리는 어릴 때부터 머리가 똑똑해서 공부를 잘 했어, 어머니 속 안 썩이려고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는지 몰라. 화룡점정은 두 사람이 들어간 대학이었다. 둘 다 한국에서는 최고라는 한국대학교에 입학하는 대목이면 김신우 팀장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귀를 막았다. 지겨운 레퍼토리였다. 더불어 올라가는 목소리도 듣기 싫었고. 자기들이 찾는 목소리와 아주 완벽히 동떨어진 미성이라 생각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응 도현아. 너 방학인데 삼촌 좀 도와줄래? 어, 그래, 동생도 데려와.”
김신우 팀장은 다음 회의 때 지민혁에게 하나를 더 부탁해볼까 했다. 두 조카의 인턴 자리였다. 이번 부탁으로 지민혁이 연봉을 깎는다면 깎일 각오도 되어 있었다. 취업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T그룹의 인턴 자리는 아주 좋은 경력이 된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다. 인턴치고도 좋은 월급을 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누나도 언제까지 식당일을 할 수는 없었다. 누나는 젊을 때부터 몸이 부서지라 일하며 자기가 형사가 되는 것을 도왔고, 좀 쉬는가 싶더니 매형이 돌아가시면서 두 아들까지 먹여 살리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김 팀장에게 누나는 눈물 그 자체였다. 지금도 자기 월급을 떼어 누나에게 보낼 정도였다. 그리고 그 월급을 두 아들 앞으로 된 적금으로 고스란히 넣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표님이 인턴 자리 하나 내주신댔어.”
전화 너머에서 무어라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자 김신우는 아니,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조카들은 너무 착해서 탈이었다. 남들이면 덥석 받을 기회였다. 조카들은 삼촌이 무리하는 거 아니냐면서 죄송하니까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된다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신우의 오늘의 자랑거리가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아니 글쎄, 우리 조카가 내가 그 T그룹의 인턴 자리를 준다고 했는데, 그걸 글쎄 삼촌 걱정에 말이야, 내가 조카 하나는 잘 뒀지. 그래서 뭐 어쩌겠다고? 아니 당연히 가야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김신우를 다음 주 월요일 동생과 함께 잘 차려입고 오라는 단호한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사무실 문을 열었다. T그룹의 빌딩 10층 전체는 지민혁의 ‘그분’을 찾는 팀을 위해 쓰고 있었다. 김신우는 외근 나간 자신의 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환강아, 용우야. 오늘도 쫑난 거 같다. 더 찾아보자.”
지민혁은 그날 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김신우 팀장이 건네준 서류의 사람들을 보러 가기 위해 차에 몸을 실었다. 검은 정장 위에 코트를 걸치고 기사에게 주소지를 알려주었다. 검은색 세단이 매끄럽게 어둠 속을 빠져나갔다.
수행비서가 문을 열어 집 안에 있는 사람을 불러내거나, 혹은 그 사람이 지금 있는 장소로 가 먼발치에서 지켜보았으나 지민혁의 마음은 텅 빈 듯했다. 바싹 말라붙다 못해 공허함만이 더욱 가득할 뿐이었다. 민도윤을 찾기 시작한 지 그 날로 삼 년이 흘렀다. 지민혁은 차라리 유리 조각을 맨발로 밟아 발이 사정없이 찢긴 그 날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적어도 민도윤과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으니까.
“도윤아, 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민혁은 민도윤 찾기를 매일 실패한다. 매일 민도윤은 밀려왔다 밀려나간다. 3년 전 그 날부터, 지민혁은 민도윤을 매일 잃어버리고 있었다. 처음 민도윤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갔을 때, 지민혁은 아무것도 제 마음속에 차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절망했다. 민도윤과 함께 있을 때 충만했던 기쁨과 사랑이 흔적도 없었다. 민도윤의 말대로다. 보면 알 수 있었다. 운명적인 끌림이란 것이 있다는 것은 몰랐지만,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민혁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민도윤이 이 절망적인 것을 여섯 번이나 회귀하면서 겪었다는 것이다. 민도윤이 지민혁에게 버려졌다고 깨달은 순간은 어땠을까. 지민혁은 그 말을 떠올리기만 해도 자신의 심장이 아파져 오는 것을 느꼈다. 예리한 송곳으로 심장에 천천히 상처를 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지민혁의 마음이 그렇게 고통과 나락으로 떨어질 때, 지민혁은 늘 더 깊은 고통과 나락을 상상했다. 민도윤의 지옥을. 그리고 지민혁의 현실도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민혁은 오늘도 지옥의 끝자락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