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6 1부 : 광공이 되기 위하여 지켜야 할 규칙들 =========================
도윤씨가 지친 얼굴로 일어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걸어온 자국마다 벗어 던진 옷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침대가 있었다. 나는 도윤씨를 뒤에서 꼭 안았다. 도윤씨가 내 품 안에 꼭 맞듯이 들어왔다.
“아직도 자요?”
“몰라요...”
도윤씨의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이한율이 선물해 준 종마급 정력 때문일까. 도윤씨는 나중에 울음과 신음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내질렀었다. 우리 둘은 온몸이 녹아날 정도로 뒹굴었고 엉키고 설켰다. 아마 그 덕에 도윤씨의 목소리가 쉬어버린 거겠지. 나는 도윤씨의 어깨를 쓸어내리다 이마부터 뺨까지 입술을 하나하나 맞추었다. 정성스러운 입맞춤에 도윤씨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간지러워요, 민혁씨.”
“느끼고 있어요?”
나는 웃으며 도윤씨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도윤씨가 파득거리며 목을 뒤로 젖히며 나를 밀어내었다. 그러지 말라는 소리와는 달리 나는 도윤씨를 더 간지럽히며 파고들었다. 발버둥치던 도윤씨를 와락 안았다. 도윤씨가 웃었고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행복했다.
그렇게 장난을 한창 치다가 도윤씨의 다리 위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서로 간지럽히고 키스하며 웃다가 지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도윤씨는 내 옆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넘기고 있었다. 나를 말없이 빤히 쳐다보는 도윤씨를 바라보기 위해 몸을 돌려 바로 누웠다. 그렇게 도윤씨를 보고 있자니 예전에 이 곳에 처음 와서 기절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이렇게 누워있는 나를 도윤씨가 깨워주었다.
“도윤씨.”
“네.”
“처음 왔을 때 생각이 나네요.”
“...”
“그 때, 100억이라는 말만 듣고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나요?”
“지금은 도윤씨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도윤씨를 바라보았다. 도윤씨는 뭐라고 말할까?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도윤씨에게 수없이 속삭였었다. 그리고 방금 전, 몸을 겹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다르게 도윤씨는 고요했다. 도윤씨는 말없이 나의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있었다. 내 말에 대답이 없는 도윤씨의 모습은 조금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도윤씨?”
“제가 그랬죠. 여기 처음 왔을 때 당신에게 가르쳐 준 거 기억나요?”
“이름이요?”
“아뇨. 그것보단 나중이요.”
“아마...아마... 웃음이었던 것 같은데. 왜요?”
나는 피식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 도윤씨는 이렇게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도 않았고 잔뜩 흐려져 있었다. 그 와중에 나보고 웃는 법을 가르쳐 줬었다. 광공답게, 품위있게 웃는 법을 알려주었지. 이렇게 내 입술을 직접 당겨가면서 가르쳐줬었다.
“기억하네요.”
도윤씨는 그렇게 말하며 내 입가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고 보니까, 도윤씨.”
“네.”
“도윤씨 이렇게 치는 거 싫어해요?”
“아니요.”
“근데 왜 치지 말라고 했어요?”
도윤씨는 나를 빤히 보다가 내 머리를 들어 다리에서 내려놓았다. 나는 도윤씨의 달라진 분위기에 의아해하면서 따라 앉았다.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나에게 도윤씨는 말없이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도윤씨가 무언가를 한가득 안고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작은 구슬 수십개가 있었다. 반짝거리며 빛나는 구슬더미에게서 친숙함이 느껴졌다.
“이게 뭔 줄 알아요?”
“뭔데요?”
“당신의 조각들.”
“네?”
“민혁씨가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할 때마다, 내가 톡톡 두드렸잖아요.”
떠올려보니 그랬다. 도윤씨는 늘 톡톡 두드렸다. 나는 그것이 도윤씨의 버릇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한율은 어땠더라? 난 당황하며 이한율을 생각했다. 급하게 생각하려니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이한율은 날 두드렸던 적이 있었나?
“민혁씨, 내가 첫 날 웃음을 가르쳐 줬을 때 했던 말 기억나요?”
“미소...”
“보통 미소는 이렇게까지 일찍 알려드리지 않는다고.”
그때 나에게 망설이며 말끝을 흐리던 도윤씨가 생각났다. 잠시 말을 멈추고 말을 해 줄까, 말까 망설이는 표정들. 나의 시선을 피하던 고갯짓을. 그 이후로 나는 어땠더라?
“그 이후로 크게 웃어본 적이...”
“없죠?”
나는 굳은 얼굴로 도윤씨를 쳐다보았다. 도윤씨가 손짓을 하자 들고 있던 빛나는 구슬들이 도윤씨의 몸 안으로 녹아들 듯 사라져갔다.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굳은 얼굴로 도윤씨를 보았다.
“도윤씨.”
“네.”
“‘내 조각’이라고 했었죠. 그거?”
도윤씨는 개중 하나를 다시 꺼냈다. 도윤씨가 구슬을 쓰다듬자 빛나는 구슬이 깜빡거리며 내 모습이 떠올랐다. 판타지 소설에서 보던 영상구 같은 느낌이었다. 광공이면서 침 줄줄 흘리고 자지 마세요, 라는 도윤씨의 목소리와 함께 내가 입술 근처에 말라붙은 침을 닦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실수로 말이 꼬여서라도 침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나의 일부분을 상실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탁하게 나왔다.
“도윤씨, 그거 돌려줘요.”
“안 돼요.”
“그럼 광공같지 않아서요?”
“당신은 정말 이해하지 못할 거에요.”
도윤씨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저 표정을 알고 있었다. 눈도 입도 웃음의 곡선을 띄고 있지만 일그러져 우는 얼굴처럼 보이는, 애와 증이 뒤섞인 웃음을. 그것은 내가 도윤씨와 함께 섹스하기 전 도윤씨를 팔 안에 가두었을 때 도윤씨가 보이던 기묘한 웃음이었다. 드디어 찾았다며 말하고서는 지었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찾았다는 말은 언젠가 한 번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한율이 나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도윤이는 도망수였다고. 괴도라고 한다고. 너무 잘 도망가서 공이 못 찾았다고. 소름이 쭈뼛 돋았다.
“내가, 도윤씨, 내가 설마 당신을 예전에 잃어버린 적이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