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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6 1부 : 광공이 되기 위하여 지켜야 할 규칙들 (16/82)

00016 1부 : 광공이 되기 위하여 지켜야 할 규칙들 =========================

세종대왕님께서도 분노하사 들고있던 훈민정음을 던질정도였던 국어파괴자 광공을 뒤로 한 채, 도윤씨는 이왕이면 다시 재교육을 받거나 수에게 너무 심하게 차인 광공의 사례를 보자고 했다. 도윤씨는 사진을 하나 보여주었다. 아주 잘 생긴 남자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이건 뭐가 문제였을까요?"

"블루투스 이어폰이에요."

"그래요. 연예인공이라면 제한적으로 허용되겠지만... 광공은 블루투스이어폰이 잘 안 어울리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블랙으로 입었는데 하얀 콩나물을 귀에 달고 있으면 콩나물 재배 화분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럼 그냥 핸드폰을 들고 받는게 차라리 낫다는 겁니까?"

"그렇죠. 여기서 응용문제를 해 볼게요. 차에서는 어떻게 받는게 좋을까요?"

"음...핸드폰을 들고 받겠죠, 이것도?"

"경우에 따라 달라요. 하지만 자동차 안에서 블루투스 연결이 되어 있어서 운전하면서 받는 것까지는 좋아요. 의외로 광공의 준법의식과 도로교통안전의식을 문제삼아 운전 중 전화가 지적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하지만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상황보고 결정하라 이거네요."

"맞아요. 참고로 이분은 재교육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위험했어요. 블루투스 이어폰이 떨어져서 한쪽만 끼고 다니는 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에 경고감이었죠."

콩나물 하나만 귀에 걸고 다니는 광공은 내가 보아도 조금 우스워 보였다. 흥미롭다는 미소를 짓는 나에게 도윤씨는 이어서 동영상 파일을 하나 재생해 보여주었다. 사람의 생김새에 공룡상이 있고 과즙상이 있다면 분명히 광공몰드도 있을 것이다. 도윤씨가 보여주는 사람은 하나같이 나와 다 다르지만 어디선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덩치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잘못된 점은요?"

"어...소리요?"

"그러니까 더 정확히 말하세요."

"신나고 흥겨운 케이팝을 듣고 있습니다."

"광공은 아쉽지만 케이팝을 듣는 것을 지양해야 해요."

"광공은 들을수록 구시대 흑백영화에 나오는 로망같은 사람이군요."

"고도로 발달한 광공은 대리석 조각과 별 차이가 없죠."

"그보다는 실버타운 요보호 대상자같은데요."

"조용히 해요. 광공이 들을 수 있는건 클래식 정도로 제한을 두고 있어요."

"국악도 안됩니까?"

"국악도 가사가 없는 것으로 들어줘요."

"그럼 아카펠라는요?"

"애써 그렇게 맹점을 찾으려 들지 마요! 아카펠라 들을 거에요?"

"그...그건 아니지만..."

"어차피 안들을거 뭐하러 물어봐요."

"알겠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도윤씨는 귀를 톡톡 두드리며 이 귀로 듣는 건 가사가 없는 음악이거나 오페라곡들 뿐일거라 했다. 나는 광공이란 것을 무사히 수행한다면 아마 수행자의 삶과 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모든 욕구가 절제되어 있다니... 아마 이런 삶을 평생 살고 나면 열반에 들어 하늘나라로 승천하지 않을까. 화장하면 큼지막한 사리도 나올 것 같은 삶이다.

"민혁씨, 다음 사진을 보고 생각나는 것을 말해봐요."

"이건 운동화네요."

"그렇죠."

"운동화가 뭐 어때서요?"

"운동화는 신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있겠죠. 방금 전에도 운동했잖아요. 운동을 할 때 구두 신고 운동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운동화는 신을 수 밖에 없겠죠."

"지금 까지 한 대답 중에 가장 마음에 드네요."

"그럼 운동화 신을 일이라곤 운동할 때 뿐인가요?"

"맞아요. 광공네 집은 삼선슬리퍼도 없어요."

"아니 광공이 밤중에 나갈 일이 있으면 어쩌려고요."

"그래요. 광공은 집앞에 잠깐 나갈 일이라곤 없어요."

단호한 도윤씨의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질문 있습니다."

"네."

"잠잘 때도 정장차림으로 자야 합니까?"

"아니 그걸 질문이라고 해요?"

"정말인거에요! 아니 흑백영화에 나오던 드라큘라 백작도 아니고 풀정장으로 사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그러니까 제대로 된 질문이냐고 묻는거죠! 실크 잠옷이나 검은색 가운 줄 거에요. 한 번 이 공간에서 쿨쿨 자봤으면 잘 알아야지!"

도윤씨의 맹비난에 나는 나의 기억력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다시 떠올려보니 그랬었지. 나는 슬쩍 말을 돌렸다.

"역시 검은색이네요. 광공의 잡화도 다 검은색이죠? 보통은?"

"말 돌리지 마요. 민혁씨 말이 맞긴 하지만."

"맞잖아요. 지갑도, 손수건도, 그러고 보니 장갑도 그렇겠네요."

"장갑은 반장갑 안됩니다."

"알겠어요. 그건 나도 알겠다."

"행여나 사이클을 취미로 삼을 생각은 하지 말아요."

"왜요. 이 몸에 사이클복장 입고 달리면 이목이 쏠릴텐데."

"그것보다 옆에서 정장을 타고 같이 달리는 경호원에게 이목이 더 쏠리겠죠. 민혁씨 상의는 빨강 하의는 파랑 입고 정장입은 경호원이랑 달리면 태극기같아보이고 좋겠네요."

"아니 경호원도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강한데?"

"당신 차기 재벌 총수라구요. 경호원 없이 다닌다는게 말이 안되는거죠."

"그럼 무술은 왜 배운거에요?"

"무술을 배워야 사람이 멋있어 보이니까요. 민혁씨 007 안봤어요? 정장입고 사람을 거칠고도 우아하게 패잖아요. 진짜 멋있어 보이고요."

"저는 멋드러짐을 위해 존재할 뿐이군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멋이라는 글자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당신이 되어야 한다고요. 얼굴이 개연성이고 피지컬이 근거에요."

도윤씨는 그렇게 말하다 갑자기 얼굴이 밝아졌다. 도윤씨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보통 신나서 무언가를 알려주곤 했다. PT할 때도 저런 느낌이었는데.

"아 참, 그러고 보니 하나 좋은 거 알려줄까요?"

"뭔데 그래요?"

"이거 광공 특수 버프 효과인데요..."

도윤씨가 나에게 밀착한다. 좋은 거 알려줄까? 할 때 하는 도윤씨의 제스처. 뭔가 잔뜩 기대하고 있는 눈빛에 난 그만 웃음이 절로 났다. 도윤씨는 혼자 신나있었다. 마치 조그만 동물이 신나서 방방 뛰고 싶은 걸 억지로 눌러 참는 것 같았다.

"광공은 이에 뭐 안껴요."

"그건 좀 좋은데요."

"광공은 뼈다귀해장국을 먹어도...물론 먹을 일은 없겠지만요."

"뼈다귀해장국도 못먹어요?"

"네. 암튼 들깻가루가 듬뿍 든 뼈다귀해장국을 먹더라고 이에 뭐가 끼는 게 없어요. 이건 광공으로 살면서 좋은 버프라고 해야하나."

"또 이런거 뭐 있어요?"

"광공이면 기본적으로 건강하다는 설정값이 있어요."

"그렇군요."

"광공이면 과민성대장증후군, 신경성 위염, 역류성 식도염, 아토피, 비염, 천식, 습진 이런 병 같은 게 기본적으로 없어요. 생각해봐요. 수 도망친 거 알고 튄 거 때문에 엄청 빡쳐서 위염때문에 배 부여잡고 약 쭉쭉 빨아먹는 광공을."

"그건...인간답네요."

"그리고 수한테 고백하거나 중요한 대사 할 때 너무 긴장해버린 나머지 대장의 움직임이 격렬해져서 화장실로 뛰쳐가서 거대한 방귀소리와 함께 현자타임이 온 공이나... 수 잡으려고 미친듯이 달리기하는데 천식때문에 몇 걸음 뛰지도 못하고 천식흡입제 주머니에서 꺼내는 모양이나... 광공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죠."

"그럼 광공은 아예 없어요? 그런 병이?"

"아니요. 두통은 있을 수 있어요. 가끔 감기에 걸리는 것도 있긴 해요. 수가 간호해주는 모양새가 보기 좋으니까. 의외로 불치병은 수가 걸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중병은 제외하구요. 정신적인 문제는 있을 수 있겠네요."

"정신적인 문제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인데 수 하나에게만 참사랑을 느끼는 경우는 의외로 많은 편이에요. 수가 없어서 불안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구요."

"어쩐지 원인은 다 수인것 같은데요."

"광공이니까요. 사랑이 사람을 미치게한다, 몰라요?"

도윤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방긋 웃었다. 나는 내 옆에 붙어 조잘거리면서 떠드는 도윤씨가 참 귀여워보였다. 이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도윤씨가 만들어낸 허상속에서, 도윤씨만이 오로지 진짜였기 때문일까. 도윤씨는 이 하얀 공간에 유일하게 살아 숨쉬는 색채 가득한 존재처럼 특별하게 보였다. 일부러 흐린 인상으로 다닐 때에도 그랬는데, 지금처럼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나서는 더 특별하게 보였다.

"도윤씨."

"네."

"광공은 키스도 잘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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