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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7 1부 : 광공이 되기 위하여 지켜야 할 규칙들 (7/82)

00007 1부 : 광공이 되기 위하여 지켜야 할 규칙들 =========================

"민혁씨, 할 수 있다니까요."

"아니, 제가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요!"

도윤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 웃었다. 매뉴얼을 따르는 영업용 미소를 보자 나는 복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도윤씨는 나더러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이 덤벼볼테니 한 번 쳐 보라고 했다. 나랑 덩치도 엇비슷한 사람을. 도윤씨는 한숨을 쉬더니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앞에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민혁씨, 이거 진짜 사람 아니예요. 제가 만들어낸 환영같은 거라니까요."

"도윤씨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저 싸움이란 걸 해 본적이 없다구요. 차마 그 말은 자존심이 상해서 못 말하고 목 뒤로 꿀꺽 넘겼다. 하지만 도윤씨는 계속 할 수 있다면서 나보고 고개도 끄덕이고 손도 휘저었다. 마치 갓 걸음마를 떼는 아이에게 '조금만 더 하면 걸을 수 있어, 아가야, 어서 걸어봐!' 같은 것 처럼. 하지만 나는 걸음마를 떼는 아이도 아니고 걸음을 떼야 하는 것도 아니란 게 문제였지만.

"어쩔 수 없네요. 먼저 덤비기 싫으면 이쪽에서 덤빌게요."

"아니, 도윤씨, 잠깐만...!"

도윤씨가 만들어낸 허상이 덤볐다. 허상이라곤 해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이 부피도 질량감도 그대로 느껴진다. 허상이 주먹을 휘두르자 바람이 느껴졌다. 때마침 날아온 발에 정강이가 맞자 엄청나게 아파왔다.

"허상이라면서요! 허상이라면서요!"

"두번 반복해서 말하기 금지입니다, 민혁씨. 품격이 떨어져요."

도윤씨는 태평한 소리를 하며 차트에 무언가를 쓰고만 있을 뿐이었다. 도윤씨의 커리큘럼을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결국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날아오는 주먹에 집중했다. 주먹이 가까워 오자 눈을 꾹 감고는 손을 들었다. 그러자 어이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내 몸은 자연스럽게 날아오는 주먹을 그대로 잡아챘다. 그리고는 주먹을 잡아 팔을 통째로 잡아 꺾고는 발로 무릎 안쪽을 차 그대로 무릎꿇렸다. 너무 놀라 허상을 잡을 손을 놓치자, 허상이 다시 반격해왔다. 발로 차서 덤비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발을 고개를 까닥거리는 것만으로 쉽게 피했다. 그대로 발을 잡아 뒤틀어 관절을 때리고 나도 발차기를 날렸다. 절도있게 뻗은 긴 다리가 허상의 턱을 후려갈겼다. 허상은 그대로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싸움이라고는 해 본 기억이 없는데, 내 몸은 자연스럽게 공격을 차단하고 최소한의 동작으로 반격을 날렸다.

"도윤씨."

"제가 될 거라고 했잖아요."

"저에게 무슨 짓을 한건가요!"

"예?"

"도핑이라도 한건가요? 아니 광공이라지만 왜 도핑을..."

"진정해요, 민혁씨. 그런거 아니예요."

도윤씨가 웃으며 차트를 흔들어 보였다. 그제야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 마법의 차트에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싸움을 잘 할거라고 적어논 거겠지. 그렇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스며든 거겠거니 생각을 하자 납득이 되었다. 내가 표정이 순해지고 고개를 끄덕이자 도윤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차트를 내려놓고는 내 옆에 앉았다.

"이제 슬슬 적응하네요."

"적응해야죠.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 봐야죠."

"좋은 태도에요."

도윤씨는 한 번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이었다.

"민혁씨. 사실 이 싸움도, 차를 운전하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란 게 있어요."

"네."

"그건 바로 도망자를 잡기 위해서에요."

"도망자요? 광공이란건 정말 형사였습니까?"

"그렇다기보다는 사설탐정에 가깝죠...돈이 많은."

"이해가 가지 않네요. 돈이 많은데 쫓아가야할 사람이 있으면..."

"혹시 알겠나요?"

"사채업자인가요? 돈 빌린 사람 쫓아가야 하는 그런 거?"

도윤씨는 잠시 입을 다물고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저 눈빛. 잘 안다. 원하는 답을 말하지 못했을 때 눈빛이다.

"경우에 따라서 그렇기도 한데...일단 민혁씨는 아니예요."

"그럼 뭡니까?"

"음... 예를 들어서 민혁씨가 아주 애지중지 기르는 강아지가 있어요."

"네."

"근데 그 강아지가 어느 날 줄을 끊고 높은 담을 넘어서 도망을 간 거예요."

"큰일이네요."

"그래서 그 강아지를 잡기 위한 각종 생각을 하는거죠. 어디 숨었을까, 어디로 달려갔을까, 지나가다 뭐 주워먹은 건 없나. 그런 걸 알아가면서 찾는거예요."

"그렇게 말하니 애매하게 이해는 가네요."

도윤씨는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 익숙한 종이의 사이즈는.... 모의고사 시험지의 사이즈였다.

"광공모의고사 1교시 추격영역 시험이나 한 번 볼까요?"

지필모의고사라니 지금까지 겪은 것 중에 제일 싫다.

"2교시도 있어요. 감금영역!"

더 싫어졌다.

"민혁씨. 제가 이 시험을 한 두번 본 건 아니지만..."

"네, 도윤씨..."

내 목소리가 저절로 기어들어간다.

"이렇게 감금과 추격의 점수차가 큰 것도 처음 보네요."

"애초부터 사람을 감금한다는 게 좀..."

"그러면 추격은 왜 그렇게 잘 풀었어요?"

"제가 아끼는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고 생각하니..."

도윤씨는 천천히 추격 영역의 주관식 문제를 읽어내려갔다.

"어떤 한 사람이 광공의 집에서 도망을 갔다. 이 때, 광공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단, 광공의 집에는 기본적으로 CCTV가 설치되어 있으며, 한 사람은 족쇄 없는 부분 자유 상태의 감금 상태에 처한 것으로 간주한다. 잠금은 바깥에서만 할 수 있으며 감금되어 있는 곳은 펜트하우스이다. 이거 제법 쉬운 문제이거든요."

"CCTV를 돌려본다...아닌가요?"

"아니죠. 그건 함정 조건이예요. 광공이 가장 먼저 할 것은 조력자를 의심하면서 분노하는 일이예요."

"예..."

"그럼 민혁씨, 다른 문제를 볼까요?"

"문제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던데요..."

"시끄러워요."

"넵."

"당신은 도망간 수를 잡아야 한다. 마침 당신은 그에게 준 한도 무제한의 블랙카드가 있다. 이 때 당신이 취해야 할 조치는 무엇인가?"

"당연히 도난신고 아닌가요?"

"좋은 정답이 아니예요, 민혁씨. 때에 따라서 도난 신고를 할 수도 있지만 그건 특수한 경우죠. 대부분의 경우 도난신고나 카드 정지 처분은 공의 아버지가 공에게 하곤 해요. 보통은 도난 신고를 하지 않죠."

"그럼 뭐부터 합니까? 쓰게 내버려 둡니까?"

"정답이네요, 그거. 이렇게 쉽게 맞출 걸 뭐하려 어렵게 뒀어요?"

"예?"

"도망간 수를 잡아와야 하는데, 도망간 수가 카드를 쓰면 그건 아주 좋은 일 아닌가요? 내역서만 뽑으면 어디서 뭘 샀는지 당장 알 수 있으니까요."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다. 도윤씨는 추격 영역의 문제집을 내려놓고는 감금 영역을 펼쳐들었다. 정신나간 대답에 내 혼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한도 무제한의 카드를 들고 튀는데 그걸 쓰라고 장려해줘야 하는 세상이라니...아마 쫓는 놈이나 쫓기는 놈이나 둘 다 치정이나 돈이나 원한에라도 미쳐 돌아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쨌거나 도윤씨가 하는 말은 귀담아 들어야 할 좋은 정보니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귀를 세웠다.

"감금 영역은 너무 마음이 약한 게 보이네요, 민혁씨."

"어떻게 사람 발목에 사슬을 감습니까...개도 아니고."

"그런 태도는...초반에 광공이 수에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랑에 빠질 때에는 도움이 되니까 뭐라 할 수도 없네요."

도윤씨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요. 탈출한 개를 다시 잡아왔을 때, 그 개가 내 옆에만 있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요... 목줄도 매 줘야겠지만 매끼니 밥도 잘 챙겨줘야겠죠. 집도 조금 좋은 걸로 바꿔주면 좀 덜 달아나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이면 광공에서 아주 탈락하지는 않을 것 하네요."

도윤씨는 가만히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도 모르게 절로 허리가 펴지고 자세가 곧아진다.

"그래도 수를 감금할 때가 오면....민혁씨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조금은 독해져야 해요. 아니면 계속 달아날 테니까."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있지만...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당신에게는 아주 유능한 비서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 쪽은 제가 준비해 둘게요."

나는 도윤씨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도윤씨는 만족하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절로 모르게 도윤씨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도윤씨는 시험지를 접어 넣더니 다시 손을 휘저었다. 눈 앞에 컴퓨터가 생겨난다.

"이게 뭐죠?"

"이제 필기 시험 봤으니 시뮬레이션 돌려야죠."

"예?"

"수의 명석함이나 도망칠 확률은 적당히 낮춰놓을게요. 이건 수를 추노하는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이니까 한 번 잘 해봐요."

3교시 실기 영역이 있다는 걸 말해줬어야지. 정말 더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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