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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6 1부 : 광공이 되기 위하여 지켜야 할 규칙들 (6/82)

00006 1부 : 광공이 되기 위하여 지켜야 할 규칙들 =========================

끼이이익하고 차가 아스팔트 바닥에 긁히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타이어 타는 냄새도 났다. 잘 빠진 검은색 스포츠카가 호선을 그리며 도로를 넘어가 비스듬히 선다. 맞은편 도로에 있는 흰색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윽고 나는 차문을 벌컥 열고 나온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가 반대편 흰 차의 문을 거칠게 열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뜨거운 침과 함께 꿀꺽 삼켜버렸다. 흰 차의 조수석에 앉아있던 도윤씨의 안전벨트를 풀고 손목을 거칠게 잡아 끌어냈다. 도윤씨가 넘어지듯 딸려온다. 그리고는 난 도윤씨에게 소리쳤다.

"몇 초 걸렸어요!"

"34초요! 훌륭하시네요!"

도윤씨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엄지를 지켜올렸다. 광공이 되는 14번째의 가르침. 평소에는 기사에게 운전을 맡겨두되 누군가를 추격할 때는 거침이 없고 실수도 없을 것. 처음 들었을 때에는 기사에게 운전을 맡길 정도로 운전을 하지 않을 사람이 추격전을 할 수 있었야 하냐든가, 차량 추격전이라니 이 사람은 형사까지 겸직을 해야 할 정도인가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도윤씨가 가르치는 것들에 대해서 점점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래, 연봉 100억의 우주파괴용을 단 사나이로 환생하게 해 주는 조건이 그렇게 쉬울 일이 없었다. 도윤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굉장히 좋은 선생님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기에 나는 그저 군말없이 따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한 번 더 해보죠, 민혁씨. 제가 도망간다고 생각하고, 이 흰 차를 움직일게요. 이번에는 역방향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요. 따라잡아서 앞을 막는 거예요."

"아니 도윤씨, 이거 생각보다 조절이 힘들어요. 완전 액션 찍는 거잖아요."

"환생해서 분명 쓸 데가 있을거에요. 지금 연습 안 하면 환생해서는 가로등 박고 잡을 사람도 못 잡아요."

"네...도윤씨..."

도윤씨의 말에 나는 조용히 꼬리를 내렸다. 도윤씨의 시작한다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어 검은 람보르기니에 몸을 실었다. 날렵하고 검은 차체가 웅웅 거리는 엔진소리를 내며 뒤로 빠졌다. 처음에는 이걸 운전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영화를 찍고 있다. 창 바깥을 보니 도윤씨는 하얀 차에 다시 몸을 싣고 있었다. 이윽고 도윤씨가 창 밖으로 손을 저었다. 나는 다시 악셀을 밟았다.

"복리후생이 좋네요. 광공은."

도윤씨가 나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런 좋은 차를 주는걸.

"민혁씨, 당신은 너무 긍정적이라서..."

"긍정적이라서?"

"가끔은 대형견공이 더 어울릴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대형견공...?"

"집도 준다는 소리 하면 뒤집어 지시겠네요."

"집도 줘요? 어디에요?"

"서울이죠. 뉴욕이랑 런던에도 한 채씩 있어야 하구요..."

대형견공이라는 수상한 단어에 대해서는 물어볼 시간도 없었다. 요즘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말도 있는 판에, 집을 세 채나 가지고 태어난다니 어이가 없을 정도로 좋은 태생이었다. 서울 뿐만이 아니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이나 뉴욕에도 집이 한 채씩 더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니 아마 광공은...

"민혁씨 생각대로 재벌이거나 재벌2세겠죠?"

"제 마음을 읽으셨습니까?"

"보통 이 대목에서 그런 질문이 많이 들어오거든요."

도윤씨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마 '광공'을 키워낸 경험이 한 두번은 아닌 것 같은 베테랑다운 제스쳐였다. 집이 생긴다는 소식에 흥분한 나를 보던 도윤씨는 손을 휘저었다. 그 곳에 작은 집 모형이 생겼다. 모델 하우스에서 보면 나도 가고 싶다 가지고 싶다 염불만 외고 눈물 흘리던 집, 바로 그 모형이었다.

"보시면 알겠지만 여기가 민혁씨가 광공이 되면 지낼 집이에요."

"감사합니다!"

"가구도 있어요. 민혁씨는 몸만 들어가면 될 거예요."

나는 차갑게 미소지으며 모델 하우스에 가까이 가 보았다. 가까이 가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큰 평수, 흰색 대리석 바닥, 통유리로 되어 있는 큰 창, 창 너머로 보이는 회색의 도시와 흐르는 강, 넓은 마루, 검은색 소파, 검은색과 흰색의 벽, 검은색 커튼, 검은색 침대, 흰색 베딩......검은색....흰색....검은색....흰색....

"저기요 도윤씨."

"네?"

"혹시 이거 흑백 사진 뭐 그런건가요?"

"아뇨. 여기 보시면."

도윤씨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큰 미술 작품이 하나 걸려 있었다. 미술작품을 들여다보니 회색조의 그림 사이사이로 세련된 주황색과 파란색 선들이 슬쩍 보였다. 내 눈에 보이는 주황색과 파란색 선을 고려한다면 이건 컬러로 만들어진 집의 모형이 맞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검은색이랑 흰색밖에 없나요."

"그게 뭐 문제인가요?"

"회색조차 많이 없는데요."

"그건 그렇죠... 민혁씨 광공이잖아요."

"뭔가 그리고 휑하니 생활감이란게 없게 느껴지는데요."

"원래 광공의 집이란 블랙앤 화이트의 모던인테리어와 미니멀리즘의 정점이죠."

미니멀리즘이란 말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전 맥시멀리즘을 추구하고 싶어요."

"안됩니다."

안된다는 도윤씨의 말에 얼굴의 미간만 살짝 찌푸린 채로 인테리어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문득 살짝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도윤씨. 혹시 이거..."

"네. 물어보세요."

"방금 전에 제가 몸만 들어가면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죠."

"그럼 여기에 이미 생활도구가 다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눈에 보이면 안 되니까 다 수납되어 있어요."

"생활감과 인간미를 동시에 놓친 인테리어네! 어떻게 사람이 이러고 살아요!"

"민혁씨. 걱정 말아요. 고용인들이 다 알아서..."

"네, 고용인이요. 고용인."

"도대체 고용인이 몇 명이에요! 아니 뭐만 어떻게 하면 고용인이래!"

"재벌 혹은 재벌 2세라고 했잖아요. 원하신다면 리스트를 불러드릴게요. 일단 본가 쪽으로 가면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는 거기에만 있구요. 사육사, 가정부, 입주 가정부, 집사, 운전사, 스타일리스트, 비서..."

"아, 아뇨, 더 이상은 괜찮아요."

도윤씨는 기다렸다는 듯 고용인의 목록을 읊어주었다. 듣고 있노라니 한 사람에게 붙은 사람치고는 어이 없을 정도로 많았다. 아니 내가 뭐라고 그렇게 많은 고용인이 붙어야 하나.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모던한 집과 수많은 고용인들 중 어느쪽을 먼저 지적해야 할 지 감도 서지 않을 때, 도윤씨가 내 손을 톡톡 쳤다.

"좀 머리가 복잡하면 입을 옷이나 봐요."

"아, 고맙다고 해야 할지..."

도윤씨가 옷장을 열자 거기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와이셔츠. 그리고 약간 색깔만 다르지 부드럽고 날렵한 느낌의 정장이 수십 벌이 걸려 있었다. 생활감 없는 인테리어에서 도피했더니 이번에는 정장 지옥이 나타났다.

"제가 중학교 때 교복을 입었는데...그때도 여벌이 와이셔츠 3벌이었거든요..."

"교복을 입어보신 적이 있다면 제법 잘 적응하시겠네요."

"도윤씨,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나는 얼굴을 부비고는 다른 옷장을 열었다. 서랍을 하나 여니 거기에는 색깔별로 놓여있는 넥타이가 있었다. 넥타이도 보아하니 명품쪽 커스텀메이드 같았다. 다시 다른 서랍을 열어보니 바쉐론 콘스탄틴이며 해리 윈스턴, 파텍필립같은 수많은 시계들이 나를 향해 시계판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시 서둘러 시계 서랍을 닫고 다른 서랍을 열자 넥타이 핀과 커프스가 세트로 반짝이고 있었다. 지금 정신상태에서 그나마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라 하나를 꺼내서 만져보고 있는데 도윤씨가 웃으며 다가왔다.

"안목이 있으시네요, 민혁씨."

"....예?"

"그거 레드 다이아몬드랑 옐로우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거거든요. 제일 비싼 거 집으셨네요, 지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넥타이핀과 커프스를 서둘러 넣어놓았다. 혹시나 떨어질까 싶어 조신하게 조심조심 넣어놓았다. 조심스레 서랍을 닫고 다른 서랍을 열어보니 안경이 있었다.

"이 안경도 어마어마한 것들이겠죠?"

"민혁씨를 빛내주기 위한 한낱 소모품들일 뿐이예요."

도윤씨가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옷장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이런 것들을 입고 지낼 광공이 '꼭 해야 할 한가지 일'이란 것이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흐르기에 머리를 뒤로 넘기고 살짝 머리를 짚었다. 그런 나를 도윤씨가 콩콩 치며 말했다.

"운동하러 가야죠, 다 쉬었죠?"

네. 선생님. 저런 걸 차고 좀 멋있게 있으려면 정말 말대로 많이 운동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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