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59화 (59/60)

59화. 원인행위와 결의

탕, 하고 난 총소리에 우진은 눈을 감았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피가 튀기던, 그 순간에 우진은 처음으로 크게 울부짖었던 것 같기도 했다. 이준이 밖에서 들린 총소리에 뒤를 도는 그 찰나에, 우진은 침대에서 있는 힘을 다 끌어내어 협탁 위에 올려져 있던 책을 손에 쥐고 모서리로 이준의 머리끝을 내리쳤다.

“야!!”

얼마나 세게 내리찍었는지 이마 위 혈관이 터져 피가 났다. 이마의 피부가 약해 금방 찢어지는 걸 잘 알고 있던 우진은 숨을 몰아쉬면서 이마를 짚은 이준을 밀어내고 힘겹게 방문을 열었다. 자동문이 삐비빅, 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는데 그 순간 불이 번쩍였다. 아마도 CCTV와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복도가 어지러이 길어, 우진은 뒤를 돌아 등 뒤로 몸무게를 실어 문을 닫고 중앙에 있는 락(Lock)버튼을 눌렀다. 드르륵, 하고 자동문이 잠겼다.

-씨발!! 문 열어!!

“…하아… 하아….”

다행히 잠겨버린 문은 안쪽에서 열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우진은 뇌에 산소를 넣기 위해 고통의 몸부림을 쳤다. 아까 물을 마시는 척하다가 버리긴 했지만 여전히 목이 탔고, 다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여길 나가야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간이었다. 배명훈은 모든 것에 완벽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에 우진을 납치한 건 할아버지에 대한 경고임과 동시에 실제로 우진을 제거하겠다는 무언의 의지였다. 에너지가 정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바닥의 상태라 우진은 절로 허리가 굽어졌다.

“…으….”

한 걸음 걸음이 무리라는 걸 알았다. 눈을 뜨자마자 기억이 돌아온 건, 상처 때문이었다. 상처를 봉합해준 건, 의사도 김신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였다.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 그리고 그 삶이 나에게 주어질 만한 것이라는 것을 우진은 그때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살아야 했다. 그때 주어진 삶으로 인해 김신을 만났고, 김신은 우진에게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사랑을 퍼부어주었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퍼붓는 애정만큼, 우진은 자신에게서 애정이 그에게로 쏟아지는 걸 느꼈다. 따듯했다. 흑백이었던 세계가, 색을 입었다.

“…윽….”

결국, 쿨럭 하고 침을 뱉었다. 침이 나오지 않아 어금니 아래가 아리도록 아팠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추니 그제야 사물에 초점이 맞춰졌다. 복도가 긴 건물. 같은 크기의 방이 한 복도에 세 개가 있었다. 나란히 있었다. 몇 층인지 알아보려고 벽을 바라봤는데, 층도, 호수도 나와 있질 않았다. 아무래도 숙박건물은 아닌 듯했다. 우진은 있는 힘을 짜내어 벽을 짚으면서 걸었다. 복도에는 그 흔한 유리창도 없었다. 어둠뿐이었다. 쾅쾅,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멀어져 갈 때쯤, 비상구의 불빛이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탕!”

몸이 얼어붙는 듯한 총소리가 다시 들렸다. 숨을 몰아쉬며 벽의 진동을 느꼈는데, 매캐한 냄새가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왔다. 숨을 크게 쉬고 우진은 최선을 다해 빨리 다리를 움직였다. 바로 아래층이거나, 분명 이 층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숨을 몰아쉬며 비상구의 문을 열자, 다행히 잠기어 있지 않았다. 계단이 어지러이 아래로 펼쳐졌다. 내려갈 힘이 없었다.

“….”

비상구의 계단은 둥글고 단차가 높았는데, 도망갈 수 없게 만들어놓은 것이 분명했다. 이 건물은 확실히 우진의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5층 정도에서 10층 사이의 건물, 창은 전부 차단되어 있는 걸 봐서 방치되어 있는 건물이거나, 특수한 목적으로 지어진 것인 것 같았다. 벽을 찬찬히 짚으며 내려가는데 총소리의 진동이 느껴져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이럴 때 교육을 받은 기억이 있었다. 정신을 잃을 것 같으면 노래를 부르거나, 부모님의 목소리를 기억하라고. 우진은 내려가면서 계속 김신의 얼굴을 떠올렸다. 절대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비상구를 나오면 또 펼쳐질 지옥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그랬다. 김신이 보고 싶었다.

“하나, 둘, 셋….”

그 학생증을 주워 자신의 손에 건네어주던 날을 기억한다. 부딪혔던 손의 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마도 환각제 때문인 듯한데, 우진은 이상하게 웃음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웃는 얼굴의 김신, 안아주던 김신, 첫 키스의 날. 입사하던 날의 날 선 얼굴. 시간이 거꾸로 흘러, 입학식 때의 김신이 생각났다.

“…첫눈에 반했었네.”

그랬다. 의식이 모두 빼앗겨버렸던 그날.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던 모멘트. 시간이 느려졌다가 빨라지길 반복했다. 정신없이 내려와 일 층에서 마주 잡았던 비상구의 문고리가 서늘했다. 문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잠겨 있지 않았다. 몇 시간이 걸렸는지, 아니면 정말 몇 분이 흘렀는지 감각이 전혀 없었다. 철문을 밀어내고 드디어 밖으로 나가는 순간, 뒤에서 뻗어온 손에 의해 입이 막혔다.

“…읍….”

손바닥에서 짙은 라벤더의 향기가 흘렀다. 온몸으로 저항하려고 뒤를 돌아서려는데, 귓가에 들리는 숨소리가 낯이 익었다.

“조용히 해요.”

고개를 들 틈도 없이 뒤로 돌려진 우진이 마주한 건, 까만 두 눈동자. 경악으로 커진 동공에 잡힌 건 다름 아닌 그가 들고 있는 주삿바늘이었다.

“얌전히 있어요.”

그리고 저항하는 손목을 가벼이 잡은 그가, 우진의 혈관을 찾아 순식간에 주사를 놨다. 이로써 끝인 모양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암흑으로 가라앉았다. 우진의 김신과 김신의 우진. 그렇게 둘은 푸른 수영장 아래로 끝없이 침잠했다. 더 이상 떠오를 일 없다는 듯이.

***

시우는 김신이 사다 준 죽 그릇이 식도록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것은 김신도 마찬가지였다. 지훈이 사라진 뒤로 병원에 있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시우는 이미 짐을 대강 싸놓은 상태였다. 퇴원 이후 통원치료는 민지의 병원에서 받을 생각이었다. 김신은 이틀 만에 바싹 마른 얼굴이었다.

“김신 덩치 말곤 볼 것도 없었는데.”

“….”

“우진 씨 오면 못생겼다고 밀어내겠다.”

“아직 얼굴은 괜찮아.”

김신은 그렇게 말하며 억지로 웃었다. 봄이 올 것 같다가도 금방 다시 눈이 쌓였다. 참으로 갈팡질팡한 겨울이었다. 따듯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추워졌고, 금방 추워졌다가 눈이 펑펑 내리기도 했다. 하얗고 푸르고 어두운 겨울이었다. 모든 색을 머금어 결국은 암흑이 된 느낌이라, 김신은 숟가락으로 죽을 젓다가 다시 시우를 바라봤다.

“강지훈 연락 없어?”

“나한테 처 맞을까봐 겁나서 그런가 봐.”

“그럴만도. 성격 더러운 정시우랑 사귀다니 강지훈 배짱도 대단하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그 자식 멍청하단 말이야.”

“너보다 내가 더 오래 알았어. 강 대리님 멍청하지 않아.”

“….”

“아마, 나타날 거야. 금방.”

그때 드르륵 하고 침대 위에 올려놓았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한 번, 두 번을 울리는 걸 보고 있던 시우가 화면 위로 떠오르는 번호를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누구야?”

“김주완이야.”

“받아.”

“뭐?”

김신이 핸드폰을 들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시우의 눈이 커지기도 전에, 숨소리가 들렸다.

-하아… 하아….

“….”

-시… 우야.

“….”

-…들려? 거기 있어?

“…강지훈??”

시우가 바로 핸드폰을 들어 귓가에 갖다 댔다. 분명 지훈의 목소리였다.

“세상에, 강지훈!!”

-고막 터지겠다.

“…흑….”

-울지 말고 들어, 옆에 김신 있어?

“…흑… 응.”

-김신 바꿔줘.

“…뭐?”

-시키는 대로 해.

김신은 시우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에게 건네준 핸드폰을 바로 받았다.

“강 대리님.”

-지금 우진이랑 같이 있어.

“….”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어. 위치 찍어 보낼 테니까 바로 와.

“…대리님.”

-그리고 아는 의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다쳤… 어요?”

-우진은 아니고, 주완이 다쳤어.

“….”

-조금 급해. 잘 부탁한다.

“네.”

-그럼,

“괜찮으신 거죠?”

-응.

“감사합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김신은 시우가 뻗는 손을 애써 무시하고 벌떡 일어섰다.

“나도 갈래.”

“어디라고 거길 가. 너 환자야.”

“강지훈 봐야 해.”

“데려올게.”

김신이 코트를 구겨 입으며 시우의 핸드폰을 받았다. 주소는 경기도의 한 건물이었다. 빠르게 캡쳐해서 자신의 메시지로 보낸 뒤 김신은 눈을 치켜떴다. 반드시, 데려와야 했다.

“신아.”

“가만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김신.”

“꼭 데려올게.”

그렇게 말하며 마주 잡았던 시우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모든 감정이 쏟아져 김신에게로 몰아쳐왔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빠르게 뛰어나가며 주머니를 뒤져 차키를 손에 쥐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도 명확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기다려요.”

물어볼 말이 많았다. 김신은 날으듯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며 생각했다. 그와 마주했을 당시의 가을과 겨울, 봄과 여름이 몇 번이고 흘렀다. 시간이 쏟아져 이마 위로 산산이 부서졌다. 숨을 몰아쉴 때마다 우진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를 찾아야만 했다. 그것이 운명이었다면 손에 쥐어야 할 시간이 왔다. 이제는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

“…으….”

타는 듯한 갈증에 우진은 감은 눈을 뜨려고 노력했다. 눈꺼풀이 떠지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빛너울이 어른어른 눈동자를 간지럽히는 기분이 들었다. 목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목소리가 진동처럼 심장 근처에 닿았다가 물결처럼 사라졌다. 눈이 떠지지 않아서 손을 더듬었더니 뜨거운 손 하나가 우진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초인적으로 눈이 떠졌다. 빛이 쏟아지자, 우진은 눈이 부셔 미간을 찌푸렸다. 커튼이 이쪽으로 떨어져, 자신의 손을 잡은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신?”

아주 어린 신이었다. 십 대인 것 같기도, 아니, 그것보다 더 어리거나 현재의 모습 같기도 했다. 시간이 쏟아져 순식간에 흘렀고, 눈을 몇 번 깜박이자 아주 바싹 마르고 눈동자가 습윤한 김신이 앉아 있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자신을 뜨겁게 쳐다보고 있는 김신. 눈을 몇 번 깜박이자, 김신의 눈동자에서 거짓말처럼 눈물이 흘렀다. 그를 부르려는데, 김신이 웃으며 우진의 산소호흡기를 가리켰다.

“듣기만 해요.”

“….”

“나한테 돌아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

“죽지 않아서.”

“….”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그는 힘겹게 울음을 삼키는 듯했다. 그제야 의식이 찬찬히 돌아왔다. 계단 비상구에서 마주한 얼굴은 다름 아닌 김주완이었다. 그는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우진에게 주사를 놨다. 그 뒤로는 아주 드물게 기억이 남아 있었다.

-아마 약 기운을 없앨 수 있을 거예요. 해치는 거 아닙니다.

-….

-…강지훈도 데려와야 해요.

-…으….

-집으로 돌아가요.

탕, 하고 또 다른 총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몸을 떨자 주완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한쪽 입술을 끌어당겨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떨리고 있어서 우진은 몸에 힘이 빠지는 와중에 그를 쳐다보았다. 발아래에 웅덩이가 있었다. 아주 끈적하고, 뜨거운 피 웅덩이.

“우진 씨.”

기억을 헤치고 김신의 목소리가 들려 우진은 그와 다시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 모두 끝났어요.”

구원의 목소리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