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뱀의 눈
“점심 나랑 먹지?”
우진이 점심시간에 사업팀에 나타난 건 처음이라, 사원 몇 명이 그를 보며 쑥덕거렸다. 그럴만도 한 것이 우진은 층별로 전략회의 시간이나 교육 시간 이외는 잘 나타나지 않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말 많고 사회성 좋은 사업팀에서 그런 우진을 몰라볼 일은 만무하고, 심지어 몇 명은 다가가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있는 이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준이 금방 뒤를 돌아봤다. 콧등에 올려진 안경이 반짝, 하고 빛났다.
“여왕님이 여기는 웬일이야. 문자해도 답도 안 주더니.”
“바빴어.”
“무슨 일로?”
“여러 가지 집안 문제로.”
“내가 모르는 집안 문제도 있냐?”
“넌 우리 집안사람 아니잖아.”
그렇게 우진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준의 눈이 가늘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우진은 모르는 척하며 이준의 얼굴을 쳐다봤다. 지금 보니, 이준이 어딘가 불편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할아버지를 통해 모든 정보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준은 늘 우진과 지훈에게 거리감을 두었다. 배명훈도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 본, 마르고 뱀 같은 눈을 한 남자. 이준은 닮은 구석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암막처럼 비늘이 생기는 눈동자가 유난히 똑같았다. 소름이 돋아 우진은 코트를 좀 더 목 위로 여몄다.
“뭐 사줄 건데?”
“먹고 싶은 것.”
“난 고기 먹고 싶은데.”
그렇게 말하는 이준의 얼굴을 보다가 우진은 며칠 전 마주한 주완을 생각했다. 주완이 이준의 이름을 꺼낸 건, 예상된 시나리오였다. 배명훈은 하나제약과 깊은 관계가 있는 자였고, 하나제약이 정보를 사고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김주완과 배이준의 관계는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배명훈이 자신의 집안에 아주 오랫동안 관계하며 만들어온 거짓말들이었다. 유전병. 사실 유전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을 치료할 만한 약물도 개발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허무하게도 환상이었다. 고모는 다음 달에 귀국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훈은 어머니와 전화하면서 처음으로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럼 먹자 고기.”
“아냐. 갑자기 다른 거 먹고 싶어졌어.”
이준은 그렇게 말하며 파티션 옆에 세워둔 옷걸이에서 코트를 빼내며 웃었다. 머스타드의 핸드메이드 코트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색이 고왔다. 금방이라도 흙탕물이 튀기면 바로 티가 날 것 같은 느낌의 옷. 늘 밝은 색의 옷을 골라 입는 이준의 코트를 우진은 손을 들어 쓸었다.
“엄청 따듯해 보인다.”
“그래?”
“응 너 같네.”
“정말?”
“금방 더러워질 거 같아.”
그렇게 말하는 우진의 얼굴을 이준은 빤히 바라보았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긴 속눈썹이 아래로 차르르 떨어졌다. 얼굴은 곱고 이쁘지만 아래위로 검은 그림자가 자주 드리워져서 빛을 먹는 느낌이 들었다. 이준이 순간 주먹을 꾸욱하고 쥔 거 같기도 했는데 우진은 무시하고 엘리베이터 근처로 걸었다.
“나 죽 먹고 싶은데.”
“그래 자주 가던 집으로 가자.”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에 이준과 함께 몸을 실었다. 이준은 지하 1층의 버튼을 누르며 우진에게 웃어 보였다. 입꼬리가 약간 떨리는 걸, 우진이 발견한 건 우연이었던 걸까. 수욱, 하고 지하 1층으로 엘리베이터가 떨어지는 순간 몸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매듭을 풀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
“점심시간에 여기로 오지 말랬지.”
시우는 침대 옆에 놓아둔 협탁 위의 안경을 찾아 쓰며 두 손 가득 종이봉투를 들고 온 지훈을 보며 나무랐다. 시우는 사실 다리 말고 다친 곳이 없어 생활하는 데 무리가 없기에 몇 번의 내원 말고는 바로 퇴원해도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지훈은 시우의 퇴원을 뜯어말렸다. 심지어 가끔 여기서 자고 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시우는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뭐 먹고 싶어?”
“뭘 사왔는데.”
“샐러드와 초밥, 그리고 오뎅 나베?”
“너 때문에 살쪄.”
“셋 다 네 취향이지?”
지훈은 섬세한 부분이 있었다. 예민한 타입의 상대는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싫었던 때가 있었기에 시우는 지훈이 갖고 있는 섬세하고 능글한 태도가 유독 거슬렸다. 시우가 본 지훈은 자신의 예민함을 드러내는 게 싫어서 외적으로 사회성을 강화시킨 느낌이 있었다. 알고 보면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매우 서투르고, 동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이었다. 심지어 싫은 건 싫다고 말해놓고도 상대방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런 사람이라 대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자신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사람 같기도 했다. 어려운 존재였다. 그게, 결국 발목을 잡아 좋아하게 된 모양이긴 했지만.
“넌 가끔 스토커 같을 때가 있어.”
“집착하는 거 싫어?”
그렇게 말하며 쳐다보는 지훈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친 시우는 숨이 턱 막혔다. 확실히 중증이었다. 얼굴이나 몸이 너무 취향이라 다른 것들은 싫어도 만나보자는 아주 간단한 마음에서 시작한 연애가 본격적으로 돌입한 모양이었다. 아주 오래전 이 눈을 마주하고 동경한 적이 있었다.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강지훈은 난잡했고, 심지어 거칠고 난폭하기까지 했다. 그때 시우는 갓 성인이 되었던 때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아온 자신의 정체성을, 아주 조금씩 벗겨내고 있을 때쯤, 시우는 지훈을 처음 만났다.
“어떤 남자를 생각하기에 이렇게 촉촉한 눈빛이실까.”
“느끼해.”
“인정.”
“너무 쉽게 인정해버리네.”
“밥 먹자.”
아주 다정하진 않지만, 어딘가 외로움을 껴안고 있는 듯한 애잔함과 쓸쓸함이 그때도 발목을 잡았다. 시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침대의 버튼을 조작하고, 식탁을 펴내는 지훈의 뒷모습을 보면서 입을 천천히 열었다.
“그런데 너 되게 이런 거 잘한다. 전혀 안 해본 사람처럼 보이는데.”
“엄마가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거든.”
“…뭐?”
페이퍼백 안에서 샐러드를 꺼내는 지훈의 손을 쳐다보던 시우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니, 어디 아프셔?”
“….”
“묻지 말까?”
“듣고 싶지 않을 텐데.”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시우는 지훈의 저 웃음이 싫었다. 간지럽고, 애매하고, 어딘가 사람의 마음 한구석을 찌릿하게 하는 표정. 마치 저 사람이 혼자 남아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던져줘서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게 하는 순간이었다. 주먹을 꾸욱 쥐자, 지훈은 침대에 털썩 마주 앉으며 시우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었다.
“애완동물 같은 놈.”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한다.”
“내가 키우던 강아지랑 닮았어.”
“욕이냐?”
“하얗고 귀여웠지.”
그렇게 말하며 지훈은 우진의 이마에 내려온 머리칼을 쓸어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민트향이 금방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시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자 귀엽다는 듯이 지훈이 웃었다. 뭔가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기분이 들어 시우는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자 훅, 하고 손목을 잡아당겨 지훈이 시우의 입술을 삼켰다. 찰나의 시간에 혀를 내밀어 지훈은 시우의 입술을 핥고, 치아를 벌려 그 틈으로 다시 혀를 감아냈다. 아주 짧은 키스였지만 짙고 동시에 진득했다. 혀 안이 축축하게 침으로 가득 고였다.
“…특실을 잡길 잘했네.”
입술을 떼어낸 지훈이 엄지손가락으로 시우의 입 근처를 매만지며 말했다.
“나 보험 없어서 병원비 폭탄 맞을 거야.”
“이 병원 우리 회사 거야.”
“…자랑하냐.”
“내가 보호자니까, 돈 안 내도 된다는 거지.”
대신 돈을 내겠다는 말에 시우는 기분이 팍 상했지만, 보호자라는 말은 여전히 듣기 좋았다. 시선을 내리고 있으니, 지훈이 금방 시우의 앞으로 초밥을 당겨줬다. 기름기가 많은 도로 초밥이었다. 초생강과 간장을 함께 옆에 놔두더니 젓가락을 쥐어주었다. 다정하지 않다는 말은 취소였다. 강지훈은 심지어 다정하기까지 했다.
“나, 너 언제 처음 봤는지 알아?”
초밥을 입에 넣고 꼭꼭 씹어 삼킨 시우가, 얌전히 초밥을 먹고 있는 지훈에게 물었다. 지훈이 고개를 들어 시우의 입에 묻은 밥풀을 떼어내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시우가 미간을 찌푸리자, 지훈이 슬며시 웃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응.”
의외의 답이었다.
“설마, 주차장 이야기하는 거야?”
“아니.”
지훈은 아무렇지 않게 오뎅 나베를 플라스틱 앞접시에 담고 있었다. 김이 잔뜩 올라와 따듯한 기운을 던져주고 있었다. 시우는 잠시 멍해져서, 손을 들어 올려 지훈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지훈이 정말 천천히 웃었다. 시우가 안달 나는 표정을 했다.
“언제?”
“안 가르쳐 줄 건데.”
“야!”
“형이라고 불러봐.”
그럼 가르쳐 줄게, 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여전히 낮고 음울해서 시우는 소름이 돋았다. 입술을 깨물자, 싫으면 말라고 말하는 그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궁금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아, 정말.”
“몰라도 되잖아.”
“궁금하단 말이야.”
“난 상관없는데.”
“왜.”
“어차피 지금 난 너의 보호자고.”
“….”
“넌 내 눈앞에 있고.”
“….”
“내 애인이고.”
어차피 이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절여질 거면, 아주 오래전에 고백했었어도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심장이 너무 쿵쿵 뛰어서 관자놀이께가 아플 지경이었다. 인간의 인연이란 모를 일이었다. 그날, 골목에서 돌아 나오는 손목을 잡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오늘은 나로 해요’라고 말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했을까.
“형.”
“….”
“…했잖아. 빨리 말해줘.”
시우가 고개를 훽 돌리며, 말하는 순간이었다. 지훈이 식탁에 손을 뻗어 시우의 쪽으로 상체를 세우고는 고개를 숙였다. 시선이 진하게 후두둑, 하고 시우의 얼굴로 떨어졌다. 눈, 콧등, 그리고 진하게 마주치는 입술. 숨이 먹혔다.
“…하아….”
“…그때도 그랬던 거 같은데.”
뭘 그랬다는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시우는 다시 덮어오는 입술 때문에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
“죽은 입맛에 맞아?”
이준은 성게알로 만든 죽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비싸고도 고급스러워 죽으로 쓰기에 아까울 정도였는데, 제법 고소한 향이 나서 우진은 자신이 시켰던 전복죽을 한입 천천히 삼키고는 이준의 죽그릇을 들여다봤다. 밝은 노란색 죽이었다.
“난 뭐 매번 먹던 건데.”
“오늘 이솊한테 좀 더 신경 써달라고 했는데.”
“그래? 모르겠는데.”
“그런가.”
이준은 그렇게 말하며 숟가락으로 죽을 크게 떠서 후후, 불었다. 착하기만 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싶어 그의 눈 아래에 있는 눈물점에 시선을 가져갔다. 약간 어지러운 것도 같았다.
“김주완 알아?”
“응.”
죽을 삼키며 이준이 대답했다. 배명훈과 닮은 점은, 들킬 때 꼬리를 자르지 않는 것. 이준은 웃으며 입을 다시 열었다.
“알면서 왜 물어봐.”
“확인차.”
“다 불었다며?”
생긋, 착하게 또 웃었다. 눈꼬리가 뱀처럼 사르르 떨리는 걸 우진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 죽인 거 너야?”
“…난 아니지만.”
“…그럼.”
“뭐 우리 할아버지겠지.”
숟가락이 떨어져서, 테이블 커버가 더러워졌다. 우진은 숨을 몰아쉬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질까 걱정돼서 약을 먹고 나왔는데도 금방 숨이 찼다.
“그럼 그 여자는?”
“그 여자는 누구? 너네 고모?”
“….”
“강지훈 엄마?”
“….”
“그 여자는 아무런 관계없어. 그냥 네가 싫었나 보지.”
“…왜?”
“왜긴 왜겠어. 네가 후계를 꿰찰까 봐 걱정된 거지.”
“왜 걱정해? 우리 아버지는 아무 욕심이-”
“아직도 모르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우진은 왼쪽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준이 천천히 일어났다.
“너네 아버지 우리 할아버지가 죽였는데, 자기가 죽인 것처럼 됐다잖아.”
“….”
“그걸 알 만큼 현명한 여자가 아니라니까 너네 고모는.”
“….”
“심지어 놀아나는 걸 너네 할아버지는 몰랐다니까.”
“….”
“자식이 다른 자식 죽였을까 봐 쉬쉬하는 마당에.”
“…배이준… 하아… 하아….”
“숨이 잘 안 쉬어지지?”
진짜 그랬다. 심지어 우진은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마비가 오는 것 같은 환각이 들어 손을 뻗었는데, 우당탕, 하고 테이블 아래로 떨어졌다.
“바보.”
그 뒤로 암흑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