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50화 (50/60)

50화. 수묵화

“네가 웬일이야. 저녁을 먹자고 하고.”

지훈은 주차장으로 내려가 자신의 차에 타며, 보조석에 앉는 우진을 쳐다보며 웃었다. 눈에 연하게 잡히는 주름이 김신을 생각나게 해서, 우진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게. 음식이 맛있는 곳이 있었는데.”

“….”

“이상하게 네 생각이 나더라고.”

그건 진심이었다.

우진은 핸드폰을 꺼내 레스토랑의 이름을 대고, 자연스럽게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는데 지훈이 기어를 드라이브에도 놓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우진이 손가락으로 지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뭐 해. 저녁 먹으러 안 가?”

“…넌 정말….”

무신경해, 라는 말 따위가 나올 것 같았는데, 지훈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눈 주위를 덮었다. 고민의 흔적이 숨소리에 묻혀 흘러나왔다.

“너랑은 나사가 서로 반대로 조여드는 기분이야.”

“….”

“그래서 마모되어버리는 거 있잖아. 알아?”

우진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서로가 부딪쳐 깎여버리는 존재. 강지훈은 대신 사회성의 가면을 쓰고 내면을 긁어내렸다. 우진은 반대였다. 겉과 안이 텅 비어 그대로 그 자리에서 진동하고 있는 기분. 우진은 손을 내리고 말없이 차를 출발시키는 지훈의 프로필을 들여다봤다. 고민이 많은 사람은 상처를 많이 받고, 사랑이 많은 사람은 그 상처를 내면으로 덮어버린다. 한 번도 이 사람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생각을 안 했다. 바깥부터 들어오는 찬 기운을 막으려, 지훈이 히터를 급히 올리는 걸 보면서 이런 것들을 볼 수 있게 만든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술도 한잔했으면 하는데.”

“대리 부를게.”

우진은 급하게 대답하고 있는 지훈을 바라보자니 입이 썼다. 이 관계에서 어쩌면 아주 조금의 대화가 필요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펑펑, 오는 밤이었다. 여름과 겨울은 늘 상극이었지만, 지독하게 덥고 혹독하게 추워 사람을 괴롭게 했다. 그러고 나면 봄이 오거나, 가을이 다가왔다. 그게 수순이었다.

***

지훈은 초조했다. 우진은 늘 자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자신과 생일이 몇 달 차이 나지 않는 외사촌 형. 자신의 생일파티에 우진은 매년 초대되었지만 발걸음을 쉬이 옮기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도 그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한 번도 그러지 못했던 관계. 어쩌다 보니 이사를 자주 다니는 바람에 우진과 자주 왕래할 수 없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유난히 우진을 싫어했고, 우진의 아버지인 자신의 외삼촌은 지훈에게 무섭기만 했다. 그는 우진과 닮았지만 어디 한 군데가 텅 비어 있는 인형 같았다. 어쩌면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바른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평범과 비정상의 기준을 무너트리는 듯한 까만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와 유난히 닮은 텅 빈 눈동자를 가진 우진을 마주했던 때가 기억났다. 어머니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뭐 먹고 싶어? 너 고기 좋아하잖아.”

“네가 먹고 싶은 걸로 먹자. 여기 연엽주가 맛있었어.”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한적해 보이는 기와집의 레스토랑은 외관과는 달리 모던한 인테리어를 품고 있었다. 천장에 달린 물고기 등불은 제법 크고 은은했다. 룸과 바가 적당히 있는 곳인 데다, 벽 한편에는 와인 셀러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우진 자신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산미가 있는 화이트 와인을 즐겨 마셨다.

“그럼 술은 네가 주문하고, 나는 양고기 먹을래.”

“그래.”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저게 웃는 거라는 걸, 지훈은 최근에 알았다.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아니,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우진은 표정도 없고, 낯가림도 심했다. 시선이 바르지 못해 집안 어른들께 자주 혼이 나곤 했다. 우진은 누군가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게 두려움 때문이라는 사실 또한 이제야 지훈은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가끔, 아주 흔들리긴 했지만 자신의 눈을 쳐다보곤 했다. 그 까만 눈동자가 시선을 마주할 때 결국 피하고 마는 것은 자신이었다. 저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꾼 것은 다름 아닌 김신이었다. 지훈은 김신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냥 불편했을 뿐이다.

“많이 변했네. 최우진.”

“그러게.”

직원에게 이것저것 주문을 넣고 지훈이 돌아서려는데, 우진이 갑자기 등을 세웠다. 아는 사람을 본 듯한 얼굴이라 뒤를 돌아보자 하얀색의 앞치마를 두른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아무래도 이 레스토랑의 셰프인 듯했다. 셰프로 보이는 남자는 제법 젊었는데, 지훈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는 사람?”

지훈이 묻자, 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표정이 다시 무채색으로 돌아간 듯해 미간을 찌푸리자 우진이 테이블 매트에 달린 작은 술들을 만지작거렸다. 원래도 말이 없는 타입이라 그것에 익숙해진 지훈이 자신의 차가운 잔들이 세팅되는 걸 보고 있다가, 주문되어 나온 연엽주의 마개를 돌려 땄다. 향기로운 연꽃향이 코끝을 스치기에 자신도 모르게 웃었더니 우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나?”

우진은 사적인 영역을 궁금해하는 타입이 아니었던 터라 지훈은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도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최우진은 자신이 누굴 만나거나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사념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기가 막혀서 웃자, 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너 처음으로 나한테 누구 만나냐고 물어봤어.”

“….”

“그걸 궁금해하다니, 별일이다 싶어서.”

“그런가.”

“뭐 지금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무슨 뜻이야?”

정말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의 우진이 귀여워서 지훈은 주먹을 쥐고 입을 가린 채 웃었다. 웃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은 더 기가 막혔다.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우진이 저렇게까지 사회성이 없는 건 신기할 지경이었지만, 저런 점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누군가와 어울릴 줄 모르고, 좋은 것과 싫은 것의 티가 확연히 드러나는 솔직함. 가식 같은 것들이 없었다. 집안 어른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을 타고 태어난 지훈은 죽어도 가질 수 없는 성격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잘 안 넘어와.”

“왜?”

“뭐 연인이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라. 내가 귀찮은가 봐.”

“…넘어갔을 거 같은데.”

우진은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비우며 깔끔하게 말했다. 달콤한 숨결이 금방 흘러나왔다.

“뭐?”

“넌 다정하니까.”

“…최우진이 내 칭찬을 해?”

“사실이잖아.”

“….”

“상처받은 사람이라면, 더욱더 네가 금방 좋아질 거야.”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금방 다듬어져 나온 샐러드를 자신의 앞 접시에 덜었다. 늘 깔끔한 손놀림인 데다 군더더기가 없는 움직임이었다. 우진은 어렸을 때부터 명확한 것들만 했다. 어린아이 같지 않다고 어머니가 싫어했지만 우진은 그 말을 듣고서도 한참을 자신의 고모를 쳐다보기만 했다. 끔찍할 정도로 우진은 자신의 어머니와 닮아 있었다. 외가의 피는 늘 탁하고 진했다.

“그건 잘 모르겠다만.”

“너도 나에게 누굴 좋아한다고 말한 건 처음인 거 같은데.”

“….”

“너 다른 이야기는 묻지 않아도 잘 하는 편이었잖아.”

“…그런가.”

서로는 서로를 모르는 만큼이나 자기 자신들을 몰랐던 것 같기도 했다. 지훈은 어색한 기운을 없애려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비웠다. 연엽주는 달았다. 쓴 술을 싫어하는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것이었다. 확실히 우진은 이 술을 마시면서, 자신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이 없었던 오해.

그걸 지훈은 모조리 어머니의 탓으로 돌렸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외삼촌과의 끊임없는 다툼은 어머니의 욕심이었다. 유산에 욕심이 없었던 외삼촌에게 집착했던 건, 어쩌면 부족하고 모자랐던 자신의 남편에 대한 원망이자 어쩌면 혈육에 대한 애정이었다. 그것이 끔찍해서라도 지훈은 우진에게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 역시 유전 때문인지도 몰랐다. 외모는 아닐지 몰라도 내면이 두렵도록 어머니와 닮아 있다는 사실을 지훈은 알고 있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신지요?”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순간에, 직원 하나가 음식을 가져다주며 물었다. 카르테를 받으며 음식을 확인하려는데 음식을 옮기는 손끝에 묘한 타투가 하나 있었다. 고개를 들었더니 아까 주방으로 들어가버렸던 셰프로 보이는 남자였다. 타고나길 밝은 사람인 듯했는데, 눈꼬리가 아래로 처져 순한 인상이었다. 약간 음울해 보이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아마도 조명 탓인 듯했다.

“더 먹을래?”

“아니.”

남자는 우진을 좀 더 쳐다보다가, 지훈 자신을 한참 바라봤다. 이상하게 시선이 뜨거워 고개를 들었더니 시선을 마주쳐왔다. 이상하게도,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는 듯했다. 거기다 약간 기분 나빠 보이는 느낌이기도 해서, 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닙니다.”

그 순간 우진이 쿡, 하고 웃었다. 지훈이 놀라 우진을 바라보자 그가 기묘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웃음은 계획되거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터져 나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입꼬리를 올렸다.

“왜?”

“아냐. 아무것도.”

손사래를 치던 우진이 술병을 들어 지훈의 잔에 가득 따라주었다. 아마도 자신이 웃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먹을 만한가?”

“맛있어.”

“네가 좋아할 거 같았어.”

그렇게 말하는 순간을, 한참 지켜보던 셰프는 금방 자리를 옮겼다. 우진은 양고기를 담은 그릇을 지훈의 앞으로 밀어주며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잘되길 바랄게.”

“왜?”

“그냥. 그랬으면 좋겠네. 이상하게.”

“…웃겨.”

“그 사람이 약간 불쌍하긴 하지만.”

마지막에 붙은 문장이, 마치 농담처럼 들려 지훈은 눈썹을 휘었다. 지훈이 아는 한에서 우진은 농담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다.

“진담이야. 농담 아니라.”

“뭐?”

“넌 괴팍한 구석도 분명 있으니까.”

“누가 할 소리.”

“같은 핏줄이라 잘 알지.”

자신을 긍정하는 그 한마디가 지훈에게는 구원 같았다. 가족. 분명 자신과 우진은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이전까지 우진은 그것들을 꾸준히 부정해왔었다.

“밥 먹고 집에 데려다줘.”

“응.”

모든 것이 마모되어 둥글어지는 날들이, 오긴 오는 모양이었다.

***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김신은 어딘가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육에 참가한 남자들의 숫자가 홀수였던 터라 결국 이 넓은 호텔방을 혼자 쓰게 되긴 했는데, 어딘가가 부족한 기분이라 미간을 찌푸리고는 빌트인이 되어 있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맥주가 두 캔 정도 있었다. 다행히 호텔 가장 아래에는 편의점이 있어, 교육을 마친 직후에 줄을 서 기다렸다가 구매할 수 있었다.

“직장 다니기 힘드네.”

교육원에서 수업을 받는 건 고역이었다. 업무가 있을 때는 정신이 없어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는데, 계속해서 강의를 듣는 건 고통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날에는 시험도 있었다. 평가에 반영되지만 않는다면 분명 강의를 째고, 전부 줄을 세워 답을 작성했을 것이다.

-끝났어?

그 순간 메시지가 왔다. 진동이 울리기에 바로 열어보니 우진이었다. 전화를 바로 걸려는데, 왠지 마음 어딘가가 울컥했다. 전화 연결음이 얼마 울리지 않아, 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우진 씨?”

-그럼 다른 사람이겠어?

목소리가 달콤했다.

“집이예요?”

-응.

“뭐 하고 있었어요?”

-씻고 누워서 네 생각했어.

“….”

말문을 막히게 하는 데는 선수였다. 솔직하고, 가끔은 수줍은 최우진.

“얼마만큼 생각했는데?”

-열이 오를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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