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46화 (46/60)

46화. 팩트와 루머

시우는 핸들 위에서 초조하게 손마디를 꺾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자꾸 목이 말라, 편의점에서 사두었던 물을 하나 땄다. 6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오셨네요.”

“네. 방금 퇴근했어요.”

언제 봐도 이 사람은, 조금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시우는 차 문을 열어주며 조수석에 앉는 우진의 프로필을 잠시 감상했다. 옆얼굴은 날카롭지 않은데, 전체의 얼굴은 희미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웠다. 아마, 눈이 가로로 길기 때문인 듯 했는데, 그런 것 치고는 눈동자가 크고 깊어서 묘한 얼굴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마주한 이후로 잔상에 오래 남은 것도 저 눈동자 탓이 컸다.

“급하게 만나자고 했는데, 별다른 말없이 나와줘서 고마워요.”

“이유가 있었겠죠.”

할 말만 하는 타입의 사람은 상대하기 어렵다. 적당히 가벼움이 있어야 적당한 거리감도 느낄 수 있는 편인데, 이런 타입은 거리감에 있어 놀라울 정도로 대중이 없어 예상을 늘 훌쩍 뛰어넘었다. 어쩌면 인간관계에 있어 자신이 더 계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시동을 걸었다.

“편하게 식사하실 수 있는 곳으로 갈게요.”

“여기서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신이는 퇴근했으니까.”

“네?”

“강지훈 이야기죠?”

“….”

“저와 어떤 관계인지 아셨겠군요.”

“조금?”

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진의 안색을 살폈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우진은 창밖을 잠시 쳐다보더니 좌석 뒤로 길게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게 이상할 거예요. 지훈이도 오늘은 퇴근했고. 이미 알고 오셨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상하다뇨?”

“강지훈 주변에는 늘, 감시인들이 붙어요.”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벨트를 풀었다. 시우는 그 말에 담긴 자연스러움에 숨이 막혔다. 그러니까, 그게 아무렇지 않다는 식의, 아주 명확한 대답이었다.

“…뭐라고요?”

“알고 계신 것 아니었나요?”

“….”

“같이 있다 보면 어느 정도 느꼈을 텐데. 몰랐나 보네요.”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코트를 벗어 뒷좌석에 두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라디오를 켰다. 노래가 흘러나왔다.

“도청도 있을 수 있으니까.”

“…무슨 소리예요?”

“강지훈은 이 회사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제일 높은 사람이에요. 당연히 나쁜 소문의 근원은 오려내는 게 당연하죠.”

우진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처음 본 시우는 한동안 멍한 얼굴로 그의 얼굴만 바라봤다. 숨이 조금 차는 것 같아 박스 안에 넣어뒀던 생수병을 다시 찾아 물부터 마셨다. 만나는 동안에 별일은 없었고, 그런 낌새라고는 한 번도 느낀 적이-

“그래서 지훈 씨가 매번 집에서 만나자고 하는 건가요?”

“전 지훈이 사생활을 잘 몰라요.”

“….”

“아주 예전에 한국에서 한 번 사고를 친 이후로 감시가 좀 더 붙었을 뿐이고.”

“…그땐 한국에 없으셨죠?”

“네.”

“무슨 사고를 쳤나요?”

“전 분명 시우 씨가 저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볼륨을 좀 더 높였다. 이제는 라디오 DJ가 방금 송출한 곡에 대해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백이 좀 생길 것 같아 시우는 글러브 박스를 뒤져 CD를 꺼냈다. 절대 차에서 들을 리 없을 줄 알았던 EDM 앨범이었다. CD를 넣고 카 오디오의 볼륨을 높이자 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워낙에 섬세하고 예민한 타입이라고, 김신이 누누이 말했던 게 기억났다. 좋은 점이라곤 없어 보이는데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김신은 즐거워 보였다.

“그쪽은 감시가 안 붙나요?”

“전 좀 덜해요. 할아버진 저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지는 않으시죠. 그리고 지훈인-”

“….”

“지훈이 어머니가 유난하게 구시는 것도 있고.”

아주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야기가 흘러갔다. 시우는 숨을 고르며, 오늘 자신이 이곳을 찾은 이유가 궁극적으로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복기했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신이는 알아요?”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모르지만, 그냥 내가 아무렇지 않아 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 같긴 해요.”

“…그게 정말 괜찮나요?”

“둘이 서로 좋으면 그만이죠.”

그렇게 말하는 우진의 얼굴이 단호했다. 신기한 타입의 사람이었다. 하관이 짧아 아직 소년 같아 보이는 얼굴. 희고 가냘픈데 어딘가 강단이 있어 보였다. 광대 쪽이나 눈 쪽이 길어 드물지만 웃으면 눈꼬리가 접혔다. 눈주름이 생기는 김신과는 달리 물결치듯 뻗는 눈의 곡선이 어딘가 묘하게 색기가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사라질 것 같은 옅은 색소도 그랬고.

“아주 명쾌하네요.”

“…”

“예상한 대로 강지훈 이야기예요.”

“…뭐죠?”

“강지훈이 김신을… 그러니까 해치려고 한다고 생각하죠?”

“아뇨.”

우진은 손을 뻗어 좀 더 오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자동차 안이 웅웅 울려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소프트한 곡의 CD를 들고 다닐 걸 그랬다고, 시우는 무심코 생각했다. 그러면 대화가 좀 더 잘 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 우진의 대답을 이제야 이해한 시우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뭐라구요?”

“강지훈은 누굴 해칠 만큼 강단이 있는 애가 아니에요.”

“….”

“그건 어렸을 때부터 봐온 제가 잘 알죠.”

“…오해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자긴 아니라고. 김신을 그렇게 한 건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그걸 믿어요, 정시우 씨?”

“네?”

“지훈이랑 만나요?”

한 번에 답을 할 수 없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질문 간의 도약이 너무 심해 시우는 순간 당황한 얼굴로 우진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자 시끄럽게 진동하는 노래 가운데 우진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미간을 문지르는 게 시선에 들어왔다. 한동안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우진이 시우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새까만 눈동자가 습윤했다.

“잠시만 대답할 시간을 줘요.”

사실, 자신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았어야 할 시점이었다. 시우는 브릿지의 역할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그래서 개인적이었고, 자기 영역이 확실해 공통분모는 만들지 않았다. 주완과 지훈이 서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지훈에 대해 더 이상 알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것이 자신과는 거리가 먼 위치에서 그대로 진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진동을 굳이 자기가 멈추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지훈은 불안한 요소들이 많았다. 아주 짧은 찰나의 만남이었지만 내버려 둘 수 없는, 이기주의자. 시우는 숨을 몰아쉬고는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전 강지훈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에요.”

“….”

“초반엔 몰라도, 나중엔 감시가 안 붙었을 수도 있어요. 저도 예민한 편이라 몰랐을 리는 없었을 거고.”

“상상하지 못하는 일은 안 보이는 법이죠.”

“인정하죠. 그러나 우진 씨가 생각하는 관계는 아닐 겁니다.”

“그럼 왜?”

“전 사람의 진심은 어느 정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진의 질문을 잘라내고 시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김신 앞에서는 먼저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우진이 내심 유연할 거라고 예상했던 건 잘못이었다. 생각보다 강단이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 이대로 있다간 대화에 말려들 거라고 생각했다. 시끄러운 배경음을 찢어내고 시우가 말을 이어나갔다.

“거리감과 상관없이 강지훈은 우진 씨 말대로 나약해요. 누군가를 죽이거나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

“제가 예전에 말했었죠. 강지훈이 당신의 사진을 갖고 있었다고.”

“…네.”

“그것 때문에 더 오해하게 된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어요.”

우진이 고개를 돌려 시우를 쳐다봤다. 여전히 알 수 없는 의미의 시선이었다. 그게 기묘하게 어딘가 뻥 뚫린 느낌이라 소름이 돋았는데, 김신은 저 눈에서 각각의 감정을 읽어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인연은 따로 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강지훈은 아니란 걸 제가 더 잘 알아요.”

우진이 볼륨을 더욱 키우며 말했다.

“전 이만 내릴게요. 할 말은 끝난 것 같습니다.”

“우진 씨-”

“그럼 다음에 뵈어요.”

그렇게 말하며 우진은 핸드폰을 내밀었다. 처음엔 갑자기 대화를 정리하는 우진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리던 시우가, 핸드폰 메모장에 쓰인 문장을 보고는 가만히 숨을 골랐다.

-더 이상 이야기하면 안 돼요. 오늘 한 이야기는 지훈에게 말하지 말아줘요.

“알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말하며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이 문을 닫자마자, 시우는 시끄러운 음악을 바로 꺼버렸다.

“후….”

여기서 혼잣말을 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방금 깨달은 시우는 애꿎은 손톱을 물어뜯고는 금방 꺼트렸던 차의 시동을 다시 켰다. 아무래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당장.

***

-밥 먹고 들어가라니까.

“약속 있어.”

우진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저녁 식사를 권하는 이준의 전화를 애써 무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너 김신 사고 때문에 걱정 태산이잖아. 아니야?

“아닌데.”

-그래?

이준의 목소리는 늘 느긋하고 달콤했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목소리임에 틀림없음에도 우진은 순간적으로 피로감을 느꼈다. 정시우는 생각보다 동물적이었고, 김신과 닮아 있었다. 대답을 하면서도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게 되어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시우의 불안한 눈동자가 많은 것을 절제할 수 있게 했다. 그는 김신의 친우였고, 다치면 안 되는 대상 중에 하나였다.

“난 괜찮아.”

-지훈인?

“강지훈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줬으면 해.”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오피스텔로 오르는 길에 점멸하는 가로등을 보고 있었다. 눈이 깜빡깜빡해서 피곤한 느낌이었는데, 순간 가로등 뒤에 서 있던 키 큰 남자가 눈에 들어와, 어쩔 수 없이 명확한 느낌의 인상을 갖게 됐다. 우진은 말없이 핸드폰을 꺼버렸다. 이준이 나중에 잔뜩 화를 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기하네.”

시간이 잘, 기억나지 않던 날들이 있었는데 저 사람은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한다. 자신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사실, 좀 오래전부터 보고 싶긴 했지만 숨기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잘해주는 심성이 나쁘진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질투심으로 사로잡힌 자신을 발견하게 해서, 요즘 거리를 두고 있는 참이었다. 그건 김신으로부터의 거리라기보다, 자신이 김신에게 갖고 있는 감정으로부터의 거리였다.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김신 주임님.”

어깨를 두드리자, 금방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본다. 아마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금방 빠져나온 듯했다. 말끔하게 입은 코트로부터 온기가 후욱 끼쳤다.

“애인 기다립니다.”

“나 오늘 약속 있다고 했잖아.”

“그것치고는 너무 빨리 집으로 온 것 같은데요.”

“….”

“나 피하는 거죠?”

“아닌데.”

“그럼 화난 거지?”

“….”

“삐지기도 했죠?”

그렇게 말하며 김신은 손가락으로 쿠욱, 우진의 뺨을 찔렀다. 손으로 여러 번 문질문질,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자 김신이 웃었다.

“신기하게 나 보자마자 걸음이 빨라지던데?”

“…됐어.”

“삐진 것 치곤 너무 귀여운 반응이잖아요.”

김신은 그렇게 말하며 두 손으로 우진의 뺨을 꾸욱 눌렀다. 입술이 뾰족하게 튀어나오자 눈가를 접으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여유 만만한지 몰랐지만, 그 모습도 멋있긴 했다. 어떻게 항상 마음이 좋은 건지, 자신에게 물어봐도 답이 없었다. 이렇게 만나기만 해도 표정이 풀려버릴 정도로 마음이 풀렸다.

“줄 거 있는데.”

그렇게 말하며, 김신이 꺼낸 플라워박스는 조그마했다. 상자 위의 프리저브는 작약을 말린 것이었는데, 붉은빛이 마치 혈흔 같았다.

“열어봐요.”

꽃을 조심스럽게 들어내고, 리본을 풀자 가죽으로 만들어진 팔찌가 나왔다.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안쪽에 우진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가, 애인한테 선물하는 거였어요.”

“….”

“마음에 안 들어요? 시계 차다가 지겨우면 이런 것도 한번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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