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욕심과 전략
-그날 병원에 왔었죠?
이 질문을 꺼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수영장 바깥에 앉아 어느새 발목 부근이 뜨거운 물에 의해 불그스름하게 번진 우진의 바짓단을 얌전히 접으며 김신은 무심한 척 물었다. 발목이 딱, 한 손 감이었다. 심장이 두근, 하고 깊게 뛰었다.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으나, 우진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응.
언제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우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 그때 갔었어. 라고 웅얼웅얼, 답하는 그 목소리에 거리낌이 없어서, 김신은 좀 더 일찍 물어볼걸, 하고 순간 후회했다.
-다친 거 어떻게 알았어요?
-강지훈이 말해줬어.
그렇게 답하는 우진의 얼굴이 어두웠다. 뺨을 감싸자, 우진이 김신의 손을 아래로 내리고는 물 아래로 손을 넣어 몇 번을 휘저었다. 따듯해, 라고 말하는 입술이 붉어서 자기도 모르게 입을 맞추자, 수줍게 웃었다.
-그 사람이 그랬다고 생각해요?
-아니라고는 말 못 해.
-왜요?
-고모는 무서운 사람이니까.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붉은 눈을 했다. 그가 김신의 상처 근처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아프냐 물었다.
-얼마나 오래된 상처인데 지금까지 아프겠어요?
-난, 아파. 신아.
그렇게 말하며 우진의 뺨에 주륵,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김신은 입술을 물어야 했다. 눈물을 닦아주자, 우진이 말없이 다시 수영장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코발트블루의 타일이 울렁거렸다.
-난 네가 수영하는 걸 볼 때마다, 여기가 두근두근했는데.
-….
-너는 얼마나 더 두근두근했을까.
-….
-그걸 내가 잃게 만들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 라고 말하는 우진에게 김신은 입맞춤 대신 수영장 아래로 천천히 잠수했다. 숨이, 아주 잘 쉬어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못 쉴 정도도 아니었다. 셔츠가 젖어 들어서 우진이 놀란 얼굴을 했지만 김신은 괘념치 않았다. 예전처럼 잠수해서 수면 위로 떠올라, 어린아이처럼 깔깔 걸리고 웃었다. 발끝이 금방 닿았는데, 우진이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기에, 뜨거운 물을 몇 번 끼얹었다. 그러나 우진이 스스럼없이 수영장 안으로 들어와 김신의 목을 감았다.
-구해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요.
***
“무슨 생각해?”
지난 주말에 있었던 상념을 꿰뚫고, 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신은 이마에 손을 얹으며 자신에게로 얼굴을 가져다 댄 시우의 시선을 피했다. 아마 뺨이 조금 붉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귀신같이 알아챈 시우가 눈을 가느다랗게 접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야한 생각했구나.”
“넌 간호하러 온 거야, 아니면 음식 축내러 온 거야?”
“둘 다라고 생각해.”
“뻔뻔하긴.”
“환자복 입고 있는 걸 보는 게 두 번째네.”
그렇게 말하며 시우는 얌전히 토끼모양으로 깎아둔 사과가 놓인 접시를 김신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러게.”
“그 전에는 붕대로 온몸을 감고 있어서 미라 같았는데.”
“그때 좀 추했나?”
“맨날 징징 거리고 울었던 거 같아. 덩치는 지금에나 그때나 똑같아 가지고 눈물이나 줄줄 흘리고, 죽을 거라고 그러고 막.”
“사춘기였나 보지.”
김신은 그렇게 말하며 흥분한 얼굴로 옛 기억을 더듬는 시우의 갈색머리칼을 찬찬히 쓸어주었다. 그러자 시우가 김신의 손을 치워내며 샐쭉하게 입술을 늘어뜨렸다.
“너 그런데 이렇게 헤프게 굴면 우진 씨가 뭐라고 안 하냐?”
“어디가 헤프다는 거야?”
“너 자주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만지고 어깨동무하고 친한 척 잘하잖아. 엄청 느끼하게.”
“뭐?”
“야, 내 애인이 너처럼 굴었으면 난 손에 수갑 채우고 다녔어.”
시우가 그렇게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진심 싫어하는 얼굴이었다.
“우, 완전 싫어. 바람둥이 같고.”
“지금 그게 아픈 사람한테 할 말이냐?”
“인간 안 변해. 우진 씨도 사람 보는 눈 없어.”
그렇게 말하며 시우는 벽에 동그랗게 걸려 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단독 병실이라 고급스러울 것으로 예상하긴 했는데, 크기가 제법 원룸만 했다. 침대매트를 몇 번 두드리던 시우가 김신을 쳐다보고는 약간 우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너 맡기고 우진 씨는 어디 간 거야?”
“회사 갔지. 어디 갔긴.”
김신은 늦은 시각까지 모든 검사 및 예약 절차를 밟는 우진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안정제가 들었다고 했는데, 링거 바늘을 찔러 넣는 순간에도 우진은 김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시우의 전화를 받았다. 점심때부터 들르겠다고 하고선 금방 날아온 시우는 이미 반차를 낸 상태였다. 우진은 자리에 없었다.
“왜 나는 너 보러 오라고 하고 자긴 회사 간 거야? 무책임하네.”
“이틀 연속 나랑 같이 휴가 내면 이상하게 볼 거 아냐?”
“…오? 이제 눈치 볼 줄 도 알고 사내연애 도사 다 됐네.”
그렇게 말하며 시우는 웃었다.
“아프지 마. 걱정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늘어났잖아.”
“응.”
“그래도 정말 많이 안 다쳐서 다행이야. 김신.”
시우는 그렇게 말하며 김신을 향해 웃었다. 김신은 손을 부들부들 떨던 우진이 생각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만일 그때 차가 시동을 거는 순간을 놓쳤다는 상상만 해도 김신은 아찔했다. 몸이 부웅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그 순간을, 김신은 한 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야가 빨라 다행이었다. 차가 돌진하는 방향을 가까스로 피하고선 바닥을 구르는 바람에 찰과상밖에 입지 않았다. 그대로 들이박혔으면 뼈도 못 추렸을 속도였다. 심지어 주위에는 CCTV도 없었다. 여러모로 대낮에 간이 큰 사람이었다. 실수라고 하기엔 계획적인 면이 있었다. 그걸, 아마 우진도 알고 있는 듯했다.
“차번호 기억한다고?”
“응. 알잖아. 나 강박 같은 거.”
“이제 그 새끼 잡히면 뒈졌어.”
그렇게 말하며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하는 시우를 한참 보고 있던 김신은 한숨을 쉬었다. 김신이 걱정하는 건, ‘누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왜’, 우진이 아닌 ‘김신’을 노리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는 한, 최우진은 죽을 때까지 불안해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떠났던 이유였다.
“왜 나일까.”
“…뭐?”
“왜 나냐고. 최우진이 아니라.”
그 여자의 타깃은, 늘, 최우진이 아니라 김신 자신이었다.
***
“야근해? 얼굴 완전 안 좋은데?”
지훈이 말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우진에게로 다가와 재킷을 입으며 물었다. 우진이 안경을 벗고 시선을 위로 올리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훈이 보였다. 매끈한 얼굴. 좋은 것만 입고 좋은 것만 먹고, 좋지 않은 일만 하는,
강지훈.
“나 어제 반차 썼었어.”
“오, 그랬다. 참. 무슨 일 있었어?”
그렇게 묻는 지훈의 얼굴에 일말의 죄의식도 보이질 않아 우진은 순간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때도, 지훈은 우진에게 김신이 다쳤다는 말만 전했을 뿐이었다.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해 들었는지, 김신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순간의 자신이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난동을 피울 것이라는 걸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는지. 몇 년간 지속된 감시는 이제 지겨울 만큼 지겨웠다. 입술을 너무 꾹 깨물었더니, 윗니가 아릴 정도였다. 우진은 천천히 일어섰다. 퇴근시간이 다가온 사무실 안은 번잡했다.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응?”
주목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참고, 우진은 지훈의 시선을 마주했다. 어릴 땐 지훈이 아무런 이유 없이 무서웠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더 큰 두려움은, 하찮았던 무섬을 모두 잡아먹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너, 왜 그랬어?”
“….”
연우가 퇴근 인사를 하려다 말고, 의자에서 일어나 지훈에게 소리치는 우진을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다행히 팀장과 과장급이 모두 회의에 소환된 터라 정책실은 연우를 제외하곤 비어 있는 상태였다.
“무슨 소리-”
퍽, 하고 주먹이 먼저 날아갔다. 그건 본능적인 것이었다.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손끝이 저릿하게 울렸다. 태어나 한 번도 행사해본 적 없는 폭력이었다. 똑같아지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덤비기에는 우진은 너무 어리고 연약했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만든 벽을 더 이상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그건 이미 환상 속에서 그 덩치를 키워 현실을 넘어서버렸다. 지훈이 뺨을 감싸며 눈을 크게 떴다.
“아주 오래전에 이랬어야 했는데.”
지훈의 눈동자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급격하게 부어오른 뺨이 어느새 붉게 번졌다. 조각조각 난 기억들이 후두둑 눈앞으로 떨어졌다.
“무슨 뜻이야?”
지훈이 떨리는 입술로 먼저 물었다. 우진은 주먹을 쥔 손을 몇 번 폈다 풀며 물었던 입술을 떼어냈다. 입술 끝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사람을 사람 취급 안 한 건, 그 여자나 너나 똑같아.”
“…최우진!”
“왜 하필이면 내가 아닌 주위 사람을 괴롭히는 거지?”
그 순간 지훈의 눈동자가 파랗게 변했다. 착각이겠지만, 그 차가운 색의 눈빛이 쏟아져 나왔을 때도 우진은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그건 확실한 변화였다.
“차라리 날 없애는 게 낫잖아.”
“….”
“아니면, 그 여자가 그냥 날 고통스럽게 만들래?”
“….”
“내 주위 사람들을 하나하나 사라지게 만드는 게 즐겁대?”
쏟아진 진심은 끝이 없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우진은 한 자 한 자 명확하게 이야기하려고 애썼다. 그건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 우진이 가지고 있었던 의심의 뿌리는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여 모든 것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피하고, 숨고, 혹은 사라졌으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향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김신이 그것을 알려주었다.
“너도 그 여자랑 똑같아.”
“….”
“이전까지처럼 가만히 있거나 도망가지 않을 거야.”
돌아서는 그림자까지 후들거렸지만, 우진은 쓰러지지 않았다. 손이 욱신거리고, 온몸이 맞은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만 했다. 모든 것을 잃을까 봐 도망가는 순간조차, 우진은 자신을 잃고 있었는지 몰랐다. 이제는, 단 하나를 움켜쥘 생각이었다. 그건 김신도, 기억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
“아 추워.”
시우는 자신의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서, 장갑을 벗었다. 해가 넘어가려니 더 추워지는 모양이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마저 추워서 몸이 덜덜 떨렸다.
“정시우.”
어깨 부근이 잡히는 순간, 시우는 아무래도 오늘 하루 마가 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주 추운 날, 가장 그립고 듣고 싶은 목소리이긴 했지만, 시우는 애써 열린 문 사이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게 가장 영리한 행동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무시해야만 했다. 너무 추워서 손을 뻗어 안기고 싶어지기 전에, 그렇게 하는 것이 옳았다.
“나 좀 봐.”
“돌아갔으면 하는데.”
어깨가 또 잡혔지만 눈물이 쏟아질까 봐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주완은 강압적인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이상적인 연인이었다. 만나보고 싶은데, 라고 말할 때도 폐가 안 된다면-이라는 말을 덧붙여 시우를 웃게 만들었다.
이별을 통보하고 이제 그럭저럭 몇 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는 순간이 오면, 아마도 마음이 아파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은 기억들이 조금 흐려질 것 같기도 했다. 요즘은 더욱 그랬다. 일을 하는 순간에도, 가끔 자신이 누구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잊었다. 기억이 흐려지는 것, 심지어 일상에서 흐려진다는 그 사실을 잊는 게 슬펐다. 그것이 헤어짐이었다.
“…시우야.”
그 목소리가 끝이었다. 늘 부르기만 하고, 손을 뻗어 돌아서게 만들지는 못하는 사람. 시우는 입술을 꾹 깨물고, 닫힌 문 사이로 가만히 서 있었다. 뒤를 돌면 분명 손을 잡아버릴 것만 같았다.
“개새끼, 부르기만 하고 왜 잡질 않는 거야….”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한동안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울고 있던 시우가, 결심한 듯 몸을 돌렸다. 오피스텔 앞의 자동문이 한 걸음도 채 내딛지 않았는데 열렸다. 마음도 이랬어야 했는데,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언제부터 눈이 내렸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어두운 골목을 뛰어나가 두리번거렸다. 돌아서는 걸음을 찾으려고 한참을 헤매는 동안 머리 위로, 코트 위로 하얗게 눈이 쌓였다.
“정시우.”
돌아서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답하지 않고 그냥 계속 만나자고, 네가 말해주지 않는 그 순간이 너무 슬퍼서 좀 오랫동안 삐쳐 있었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뺨에 달라붙은 눈물 자국을 지우지도 않고 부르는 목소리를 향해 돌아섰을 때, 시우가 마주한 건 주완이 아니었다.
“…괜찮아?”
강지훈, 그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