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38화 (38/60)

38화. 오늘 밤도, 어쩌면 그날 밤도

미친 듯한 열기였다. 김신은 사춘기 이후로 이렇게까지 성급하게 누군가에게 욕정을 내비친 적 없었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본능 같은 것들은 뒷전이었다. 참을 수 있거나 인내할 수 있는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서투른 열기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눈이 마주치고 그것이 하나의 신호가 됐다. 현관 앞에서 뒷걸음질 치는 우진의 허리를 잡아챘다. 그 열기는 하나의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것이었다.

“흐읏….”

영화처럼 셔츠의 단추가 날아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김신이 코트를 벗기고 우진의 셔츠 단추를 풀었을 때, 손가락들이 닿았던 곳에 힘이 들어가 붉은 자국을 남겼다.

우진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감기려는 걸, 바투 뜨면서 김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결국 거실의 소파 위로 뒷걸음질 쳐 올라섰을 때, 어깨를 살짝 밀자 우진이 뒤로 넘어가며 김신의 목을 두 손으로 감았다.

붉은 혀가 귓가와 목덜미 입술 위로 배회하며 기억의 흔적을 남겼다. 축축하고 뜨겁고 작은 살덩이는 신기했다. 혈관이 무수히 많이 연결된 그 작고 뜨거운 것이 김신의 입에도 닿고, 뼈마디에 닿을 때마다 심장이 세차게 뛰고 모든 감각들이 되살아났다.

“허리 들어봐요.”

귓가에 속삭이자, 그 말을 처음 듣는 것도 아닌 우진이 고개를 돌리며 뺨을 붉혔다. 우진은 스스로 옷을 벗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으면서 김신이 벗겨주거나 쓰다듬어주면 묘한 얼굴을 했다.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닌 듯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만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김신에게는 먼저 맡기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경우가 많았다. 그게 사랑스러워 귓불을 깨물자 우진은 숨을 쌕쌕 몰아쉬면서 허리를 들었다.

“하…아….”

크게 토해내는 그 숨소리에 김신이 잠시 팔로 상체를 지탱하고 우진의 시선을 마주했다.

몽롱하게 피어오르는 열기에도 김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우진의 까맣다 못해 파란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김신은 새삼 이 사람의 애정에 대해 생각했다.

“얼마나, 보고 싶었어요? 나?”

갑자기 키스를 멈추고 자신의 아래에서 김신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던 우진은 끄응, 하고 신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오른쪽 끝으로 돌렸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아무 곳이나 데려 달라고 하는 우진의 목소리가 성감대를 자극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면 지금 이 모습은 분명, 귀여운 데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뺨 주위를 이빨로 깨물자, 우진이 간지러운 듯 눈을 찌푸렸다.

“보고 싶다고, 했잖아.”

“…으윽.”

쇄골 근처를 깨물자 우진이 아픈 듯 어깨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싫다는 소리를 안 한다.

김신은 갑자기 섹스보다 우진의 반응이 더 궁금해졌다. 당황한 듯 김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우진의 얼굴이 달아올라 있어서, 김신은 몇 번 쪼듯 입술을 맞추고는 아랫입술을 길게 물어뜯었다. 아프다는 얼굴이면서도 순간 흥분하는 표정을 띠는 우진 때문에 김신은 계속 우진은 괴롭히고 싶어졌다.

“누가 보고 싶었다고요?”

“으… 그, 그만….”귓바퀴에 혀를 집어넣어 진득하게 핥아내자, 우진의 소스라치듯 몸을 떨었다. 이전까지의 담백한 패턴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김신 때문에 우진은 당황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이야기해봐요.”

“…신아.”

“말로 해줘요.”

얼마나 급하게 김신의 집까지 달렸는지, 우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서울역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타자마자 안전벨트를 잡아당겨 우진의 가슴을 메어두고선 김신은 흥분으로 숨을 여러 번 몰아쉬었다.

겨울 냄새에 최우진의 체취까지 뒤섞여 차 안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그 자리에서 뭐라도 해버리고 싶었던 걸, 참고 참아 여기까지 왔다. 손을 든 우진이 김신의 뺨을 두 손으로 잡고 쌕쌕거렸다.

“빨리….”“말해주면,”

해줄게, 그렇게 속삭이자 우진이 눈을 크게 뜨며 입술을 달싹였다. 말해봐요, 라고 하며 목덜미에 코를 묻고 숨을 크게 몰아쉬자, 우진이 잘게 경련했다. 목, 귓바퀴, 혀, 여린 살들을 물고 핥으면 우진은 더 크게 매달려 온다는 사실을 이미 김신은 잘 알고 있었다.

“신….”

“뭐라고요? 안 들려요.”사실 지금까지는 상대방의 반응에 별 관심이 없어서 전희에 대해 고민이 없던 김신이었다.

자신이 흥분할 수 있을 때 흥분하고, 또 다른 스포츠로서 건조하고 깔끔한 섹스를 즐겼는데 우진과의 행위는 좀 달랐다.

“보고 싶었…다고, 네가.”

너라고-라고 끊기듯 목소리를 잇는 우진을 보고 김신은 그제야 웃었다.

결국 원하는 반응을 얻어낸 김신이 본격적으로 손가락을 우진의 허리에 갖다 댔을 때였다.

딩동 하고 길게 초인종 누르는 소리가 났다

“…누가.”“나한테만 집중해요.”

자기도 모르게 흥분한 울대에서 쇳소리가 나와 김신은 눈을 감으며 손가락으로 우진의 골반 근처를 더듬었다.

순간 초인종이 급하게 여러 번 울리기 시작했다. 딩동딩동, 패턴이 누군가와 비슷해, 우진의 아래로 쏟아졌던 김신이 상체를 급히 들어올렸다.

“야! 김신! 문 열어!”

정시우였다.

***

우진은 소파에 앉아 쇼핑백에서 와인, 데킬라, 보드카 등을 꺼내놓는 시우를 보고 놀란 눈을 했다.

“내일 출근인 건 알아?”“영하 15도의 날씨에 30분간 밖에 세워둔 벌이야.”

우진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목을 붉혔다.

그도 그럴 것이 우진이 시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당황해 김신을 밀어냈기 때문이었다. 김신의 곤란한 얼굴을 보자마자 우진이 먼저 몸을 들어올렸다.

시우는 김신의 친구 중에서도 특별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게 달갑지만은 않았지만 이전까지 김신은 우진에게 많은 걸 양보해왔다. 결국 우진은 김신의 뺨에 얼굴을 갖다 대고는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문, 열어줘. 그렇게 말하자 김신이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열기가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분명 그 얼굴에는 고마움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우진은 이전까지의 그리움이 조금은 씻기는 기분이었다.

문을 열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문을 열었을 때 시우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볼 만했다. 자기도 모르게 웃었더니, 시우가 현관 사이로 몸을 밀어 넣고는 미안한 얼굴을 했다.

우진은 추워하는 시우를 얼른 끌어당기는 김신을 보고 있다가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술을 같이 마시자고 제안한 건, 시우였다. 가려는 우진의 손목을 잡고는 소파로 끌어당겼다.

“제가 김신한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이 자리를 뜨는 거예요.”

“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어서 우진은 표정 갈무리가 안 됐다. 시우의 친밀한 스킨십을 볼 때마다 조금씩 기분이 어두워지곤 했는데, 그게 그 순간 폭발했던 모양이다.

-무슨 짓을 할 건가요?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사나워졌던 모양으로, 김신과 시우 모두 당황한 얼굴을 했다.

결국 시우의 손에 이끌려 소파에 앉게 되었다. 김신은 능숙하게 와인잔과 온더락 글라스를 가져와 소파 앞 간이 테이블에 깔았다.

다 마실 생각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컵을 놓자마자 무섭게 술을 따르는 시우는 어딘가 한구석이 비어 있는 것 같았다.

“안 마셔요? 우진씨?”

“우진이 술 약해.”

“우진이? 우진이이??”

미간을 찌푸리며 못 들을 걸 들은 표정을 하는 시우는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이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시우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결국 시우가 한마디했다.

“이 새끼 생각보다 닭살이지 않아요?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막 당사자 앞에서 하고.”

“다정해서 좋은데요.”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김신이 술안주로 꺼내온 과일을 얌전하게 입으로 가져갔다. 멍한 얼굴의 시우를 앞에 두고, 우진은 데킬라를 스테레이트 잔에 따라 한잔 마셨다.

표정의 변화 없이 원 샷을 하는 우진을 가만히 지켜보던 시우가 환하게 웃었다.

“술 약하긴, 이 새끼야.”

“후….”

김신이 웃지도 않고 우진의 옆에 당겨 앉으며 시우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시우가 먼저 우진에게 입을 열었다. 입술 끝이 조금 올라가, 새초롬한 얼굴이었다.

“저 김신이랑 꽤 오래된 사이예요.”

“압니다.”

“어머, 김신이 다 깠나보네.”

“그때 저녁 식사 같이하기 전에 말해줬어요.”

“사실, 김신만큼이나 그쪽이랑도 오래되긴 했는데.”우진이 놀란 얼굴을 하자 시우가 입술을 끌어올리며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엄청나게 화려하고 다채로운 얼굴을 갖고 있었는데, 조용히 웃자 그 화려함이 사그라들고 정적인 얼굴이 되었다. 금방 사그라질 것 같은 미소. 우진은 이상하게 그 얼굴에 끌렸다.

“유진 선배 맞죠?”

“…네?”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줄 생각도 못했다. 반 친구들, 아니 반 학생들은 우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우진은 인상이 희미했고, 조용했고, 그 누군가와도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진도 학창시절의 주변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단 한 사람, 김신을 제외하고.

“기숙사 올라가는 언덕에서 가끔 훔쳐봤는데.”

“그런 이야기 처음 듣는데?”

김신이 의외라는 얼굴로 시우를 돌아봤다. 시우가 말갛게 웃고는 데킬라를 잔에 따라 한잔 마셨다. “캬아, 소금 좀 갖고 와라.”라고 말하는 시우의 얼굴이 금방 장난스럽게 변했다.

“말 안 했지. 내가 왜 말하냐. 게이라는 거 들킬 일 있냐.”

“뭐?”“비슷했거든 유진 선배 얼굴이.”

“누구랑?”

“나랑.”

“미쳤냐. 어딜 비교해?”

그렇게 말하는 김신을 바라보다, 우진은 그 얼굴이라고 하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렸다. 김신을 바라보던 얼굴, 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기숙사에서 수영장 쪽으로 걸어가더라고요. 매일같이 똑같은 시간대에.”

“….”

“맞죠?”

간지럽게 웃는 그 얼굴이 약간 슬픈 빛깔을 띠었다. 라벤더 색. 보랏빛을 머금고 있지만 어디든 사그라들 것처럼 오묘한 색.

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눈으로 웃었다. 그 말은, 시우 자신도 기숙사에서 늘 수영장 쪽으로 걸어 다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우진이 크게 한숨을 쉬자, 시우가 까르르 웃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네.”

“그래도 그때는, 유진 선배가 많은 위안이 됐어요.”

“….”

“늘 궁금했어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아 있어, 다행이예요, 라고 말하는 시우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우진은 자기도 모르게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눈꼬리가 뜨거웠다. 고개를 숙이자, 김신이 손을 가져와 우진의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따듯한 체온이 귓바퀴를 지나 목을 스치고, 손을 마주잡았다.

“어… 그러니까.”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고마워요.”그렇게 말하는 순간, 마음이 떨렸다.

어쩌면 우진은 자기 자신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법을 몰랐고, 아프지 않은 게 아니라 아파하는 법을 몰랐고, 누군가에게 늘 희미한 사람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몸 구석구석에 온기가 느껴지면서, 우진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김신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신의 마음을 밀어넣었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는 상대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놓칠 수 있었던 것들을, 자신이 쥐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기의 것이 되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

잠에서 깬 건 갈증 때문이었다. 침대 옆을 더듬어보니 김신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언제 잠들었는지 몰라 우진은 일어나 머리를 조금 흔들었다. 머리가 웅, 하고 울었다. 많이 마신 것 같은데.

곤히 잠든 김신이 깰까 봐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온 우진이 협탁 위에 놓인 생수병을 발견한 건 금방이었다. 아마도 김신이 가져다놓은 것 같았다.

거실 쪽을 바라보자 소파에 누워 잠든 시우가 보였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술을 적당히 마신 날은 푹 자지만, 그러지 못한 날엔 늘 중간에 깨버리는 터라 우진은 생수병을 따서 천천히 물을 마시며 거실 쪽으로 걸어 나왔다. 술병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후….”

머리가 지끈거렸다. 막판에 와인을 마신 기억까지 났다. 제법 즐거운 술자리였다. 그러고 보니 여분의 옷을 가져오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 걱정을 하며 우진이 다 마신 생수병을 재활용 봉투에 넣으려는데, 소파 앞에 떨어져 있던 시우의 핸드폰이 번쩍 거리며 진동을 했다.

우진은 다시 침대로 돌아가려다, 무의식적으로 잠금 화면에 뜬 핸드폰의 수신자를 읽어냈다.

- 강지훈

그것은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어긋난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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